|
<북클럽 자본 시리즈>의 두 번째 책 [마르크스의 특별한 눈]은 [자본] 제1편 <상품과 화폐>中 제1장 <상품>에 대한 읽기이다. 시리즈 1권인 [다시 자본을 읽자]에서 [자본]이라는 책의 전반적인 성격을 다루었다면 2권부터는 [자본]의 본문을 다루는 셈이다.
저자는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 비판을 한마디로 ‘눈’에 대한 비판이라고 말한다. 기존의 정치경제학자들이 부의 실체로 노동을 내세우고, 그 노동의 가치를 논하면서도 정작 노동의 생산물인 상품에 대한 이해에는 등한시했지만,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생산양식이 지배하는 사회의 부는 상품의 형태로 나타나고, 그 상품이 바로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임을 알아챘다고 한다. 다른 사람들이 엉뚱한 곳을 보고 있을 때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사회의 부의 기본 형태인 상품으로 시선을 돌리고 상품에 들어있는 가치를 새롭게 해석한 것이다. 상품이란 노동생산물로써 사회적으로 그 쓸모를 인정받고 동등한 교환이 이루어지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고전경제학에서는 가치의 척도와 원천을 노동으로 보았지만 마르크스는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즉 현물로서의 상품과 가치로서의 상품을 말할 때 상응하는 노동을 구분했다고 한다.
흔히 상품을 가치를 이야기할 때 사용가치와 교환가치를 든다. 사용가치는 그 상품의 유용성이고, 교환가치는 다른 상품에 대한 구매력이다. 마르크스는 바로 이들 가치에 상응하는 노동이 이중성을 가지고 있다고 보았다. 사용가치를 가진 현물을 생산하는 노동을 구체적인 유용노동이라고 한다면, 상이한 상품들의 교환가치를 생산하는 노동을 추상노동이라고 불렀다. 이는 한 상품에 들어있는 가치에 따라 동일한 노동을 서로 다른 관점에서 바라본 것을 뜻한다. 유용노동은 사용가치의 생산이란 관점에서, 그리고 추상노동은 교환가치의 생산이란 관점에서 본 것이다. 마르크스는 상품의 문제가 가치의 문제이며, 가치란 교환가치를 현상하는 것이라고 할 때, 그 가치의 실체는 추상노동이라 말했다. 그리고 이것을 역사적으로 출현한 특수한 형태의 사회, 즉 자본주의에서 노동이 갖는 독특한 성격으로 규정했다고 저자는 말한다. 상품의 가치를 규정하는 추상노동의 양은 사회적으로 결정되는데, 평범한 인간이 평균적으로 지닌 능력을 기준으로 했다. 즉 사회에서 평균적으로 어느 정도의 노동을 필요로 하는가에 따라 가치가 정해진다는 것이다.
이어서 마르크스는 화폐형태의 발생과정을 논증하고 있다. 단순한 가치형태, 총체적 또는 전개적 가치형태, 일반적 가치형태를 거쳐 화폐형태가 나타났다고 본 마르크스는, 화폐란 일반화된 등가형태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추가 무게를 부여하는 것이 아니듯 화폐가 가치를 부여하는 게 아니라는 뜻이다. 표준화된 저울추만이 무게를 달 수 있는 것이 아니듯 화폐만이 가치를 나타내는 것이 아닌 것이다. 한 상품이 일반적 등가물이 되는 것은 상품세계의 다른 모든 상품들이 등가형태로부터 배제되는 것을 의미했다. 화폐는 일반화된 등가물 자리에 금이 들어감으로써 생겨났고, 이는 사회적 관습에 의해서였다는 것이다. 따라서 화폐형태의 발생은 역사적 발생이라기보다는 논리적 발생이고, 한 상품의 가치가 다른 상품으로 표현되는 것은 역사적으로 특수한 발전단계에 속하는 일이라고 했다. 저자는 이러한 마르크스의 화폐형태 발생과정을 살펴보면서 거기에 내재된 의미를 읽기도 한다. 일반적 등가물로 표시될 수 있는 상품만이 다른 상품과 교환될 수 있는 상품임을 인정받는다. 따라서 상품이 된다는 것은 가치를 인정받아야 가능하다. 이는 순응을 강요받는 것, 복종해야 하는 것, 즉 폭력을 경험하는 것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우리가 무심코 화폐를 통해 가치를 받아들이는 것은 바로 그런 사회적 관계에서 나타나는 것이라고 한다.
제1장 <상품>에서 상품의 두 얼굴, 노동의 이중성, 화폐형태의 발생기원을 차례로 살펴본 마르크스는 마지막으로 상품의 물신적 성격에 대해 이야기한다. 상품이 단순한 노동생산물과 다른 것은 가치가 붙는다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가치를 표현하는 사물이 되는 순간 상품은 스스로 춤을 추기 시작한다. 고전경제학의 근본 결함중 하나는 상품가치분석에서 가치형태 문제를 끄집어내지 못하고 오로지 가치량 분석에만 신경 쓴 것이고, 이는 자본주의적 가치형태가 역사적으로 얼마나 특이한 것인지를 몰랐기 때문이라고 마르크스는 말했다. 그 결과는 관계를 사물로 착각하고 인간들의 사회적 관계를 사물들의 관계로 착각하는 상품물신주의로 나타났다고 한다. 그리고 이런 상품에 대한 물신주의는 주관적 현상도, 현실에 대한 그릇된 지각도 아니며, 자본주의 생산양식이 지배하는 고유한 것이라고 한다.
저자는 이러한 자본주의 역사성에 대한 마르크스의 강조는 자본주의가 자연적 체제, 인간 본성에 부합하는 체제, 가장 발전된 형태라는 주장을 기각하며, 다른 사회형태와 다른 생산양식의 사회가 가능하다는 것을 암시한다고 말한다. 즉, 비자본주의 생산양식에서는 상품, 추상노동, 상품물신주의와 같은 신비가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저자의 읽기를 따라 [자본] 제1장을 읽었다. [자본]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먼저 길잡이삼아 이 책을 읽고 있지만, 이 책이 저자의 관점에 따른 마르크스에 대한 이해라는 것을 염두에 두고 읽는다. 내가 [자본]을 읽으면서 어떤 생각을 하게 되고, 마르크스의 주장이나 저자의 읽기에 얼마나 공감을 할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자본] 1장을 읽어본 후, 시리즈 3권을 읽어야겠다. |
|
2권을 다 읽었다. 하지만 <자본론>을 제대로 맛 보았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아직 '식사전'의 느낌이고, 더 정확하게는 식당에서 '주문'을 하고 아직 '식사'가 나오지 않아 수저만 차려놓은 느낌이다. 아마도 3권을 다 읽어도, 겨우 '밑반찬'이 차려진 정도로 '본 음식'은 아직 구경도 못한 느낌이지 않을까 싶다.
뜬금없는 얘기지만, <자본론>은 왜 이리 어려운 걸까? 으뜸은 '서론'이 너무 길기 때문일 것이다. 요즘 트랜드는 '개념설명'을 짧게, '문제풀이'는 간단명료하게, 그리고 '그림이나 영상으로' 한 눈에 알아보기 쉽게 설명하는 것인데, <자본론>은 고전 중에서도 '왕중왕'일 정도로 정말 길고도 긴 '서론'을 이어가고 있다. 2권을 다 읽었는데도, 아직까지 '자본가의 악랄한 착취'라든지 '노동자의 불쌍한 처지'와 같은 이야기는 나오지도 않고, 주야장천 '자본주의'란 무엇이고, '상품'에는 어떤 가치고 있으며, '노동'에는 어떤 가치가 있는지에 대해서만 씨부리고 있다. 그런데도 아직 다 못 했는지 다음 책은 '화폐'를 이야기한단다. 뭐, 이참에 <자본론>을 대차게 읽어볼 작정을 했으니 끝까지는 읽어볼 거다.
<자본론>의 시작은 '상품'이다. 마르크스는 '상품의 가치형태'라고 표현했고, 정확하게는 '노동생산물의 상품형태'라고 했다. 다시 말해, 부르주아가 가진 '부의 원천'을 상품으로 보고 있다는 것이 <자본론>의 핵심이자 '시작점'인 거다. 그렇다면 '상품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뒤따르지만, 마르크스는 "이것이 가장 설명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자본주의 생산양식이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부가 '상품더미'로 나타나고, 부의 기본형태는 '상품'이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자본론>은 '상품'을 설명하면서 시작한다.
과거에는 '보물'이 많으면 부자로 인식했다. 하지만 마르크스는 '어떤 사물을 갖고 싶어하는 것(물욕)'과 '부자가 되고 싶은 것(치부욕)'은 전혀 다르다고 말한다. 쉽게 말해, 우리가 생각하는 부자는 '물건'을 많이 가진 자가 아니라 언제 어느 곳에서든 부를 '과시'할 수 있는 자이기 때문이다. 이것을 마르크스는 "부자는 자신이 갖고 있는 물건(돈)을 언제든 다른 물건(상품)으로 바꿀 준비가 된 사람이다"라고 고쳐 말한 것이다. 비단 '돈'만 가능한 일이 아니다. 부자들이 부동산에 투자하는 까닭은 '땅에 대한 사랑' 때문이 아니라 언제든 '다른 물건'으로 높은 가격으로 바꿀 수 있는 '가치'이기 때문에 아낌없이 투자하는 것이다. 땅이든, 금이든, 주식이든 말이다. 이처럼 하나의 사물을 '다른 가치'로 손쉽게 환산하려면 '화폐제도'가 발달해야 한다. 다시 말해, '치부욕'이 출현한 것은 '화폐경제의 발전'을 밑바탕에 깔아놓아야 한다.
하지만 '투자'란 말 그대로 '자본을 던진다'는 뜻이다. 던져진 자본이 '금값'이 될지, '똥값'이 될지는 알 수 없다. 그래서 '가치'는 유동적이고, 유동적인 만큼 부에 관한 학문(경제학)이 어려운 것이다. 자, 이렇게 놓고 보면, <자본론>이 어려울 수밖에 없는 까닭이 쬐끔은 이해가 될 거다.
양말 1000켤레 생산하던 공장에서 '생산성 향상'으로 수고로움의 첨가 없이 양말을 2000켤레 생산하게 된다면, 재화의 관점에서는 부가 2배로 늘었지만, 실제로 가치가 2배로 늘어난 것은 아니다. 왜먀면 '생산성 향상'으로 인해서 '똑같은 노동시간' 동안에 양말의 수가 늘어난 것이기 때문이다...
<자본론> 좀 읽어본 독자라면, 어느 책에서라도 찾아볼 수 있는 '문구'였을 거다. 한 마디로 '상품의 수량'과 '가치의 양'이 서로 비례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생산량이 늘어난 이유는 '제조공정의 혁신'으로 늘어날 수도, '노동자의 숙련도'에 의해 늘어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늘어난 상품=줄어든 가치'로 서로는 상쇄된다. 자, 이것을 이해하는 것이 <자본론>을 이해하는 '시작'이다. 이것으로부터 '착취'가 어디에서 어디로 일어나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 '가치'를 직접 눈으로 볼 수 없다. 빵집 주인에게 눈에 보이는 빵이 가득하다는 것만으로 '부자'라고 하지 않는다. 그 '빵'을 팔아서 '가치교환'이 이루어지고 '이윤'을 많이 내야 비로소 '부자'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빵 판 돈'만으로도 부자라고 하기에는 부족하다. 진정한 부자라면 '그 돈'으로 땅을 사고, 땅값이 오르고 또 올라 '또 다른 자산'으로 교환을 하고, 그렇게 여러 번 '가치교환'을 하고 난 뒤에 엄청나게 불어난 '가치'를 보고서야 비로소 '부자'로 보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눈여겨 보아야 할 것은 바로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를 볼 수 있는 '특별한 눈'이다. 누구나 갖고 싶어하지만 아무나 가질 수 없는 '특별한 눈' 말이다.
이처럼 '상품'에는 뭔가가 있다. 그리고 '방대한 상품더미'가 가져다 줄 부를 꿰뚫어보지 못한다면 마르크스가 말한 '특별한 눈'은 결코 가질 수 없다. 그리고 여기에 '새로운 가치'를 더할 수 있는 또 다른 방법도 있다. '방대한 상품더미'를 더욱 화려하고 빛나게 만들 '조명' 말이다. 다시 말해, 화려한 조명으로 '보기 좋게 전시한 상품더미'는 더 많은 사람들에게 갖고 싶어하는 욕구를 부추길 수 있다는 거다. '특별한 눈'이란 이러한 능력도 갖고 있는 거다.
이쯤해서 마르크스가 말한 '유령'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련다. 그가 모든 상품에는 '유령'이 있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뜬금없이 '유령'이라니...눈을 크게 뜨고 살펴보아야 한다. 정말 길고도 길게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방대한 상품더미'가 갖고 있는 '교환가치' 덕분에 진정한 부자가 무엇인지는 이해가 되셨을 거다. 그런데 상품과 상품 사이에는 '어떤 기준'으로 교환이 되는걸까? 이를 테면, 땅을 사기 위해선 '돈'을 지불해야 하고, 그렇게 산 땅의 '가치'가 올라서 더 많은 '돈'으로 교환되며, 그렇게 번 돈으로 '또 다른 상품'을 사고, 그렇게 몇 번의 '교환'을 통해 부를 쌓아간다. 아니 상품과 상품을 교환만 했을 뿐인데, 부를 쌓았단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하단 말인가?
그렇다면 A라는 상품과 B라는 상품은 '동일한 가치'로 교환이 되지 않은 것인가? 그건 아니다. 만약 '동일한 가치'로 교환이 되지 않고, 어느 한쪽은 이득을, 다른 한쪽은 손해를 본다면 '교환'은 성립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도대체 이 사이에서 무엇이 '조화'를 부렸길래 '부의 가치'가 늘어난단 말인가? 마르크스는 이것을 '유령'이라고 지칭한 거다.
그런데 마르크스는 이 '유령의 정체'를 밝혀내기 위해서 저 멀고도 먼 '고대 그리스' 아르스토텔레스서부터 '근대경제학'의 시초인 스미스와 리카도까지 끌어들이며 주절주절 설명한다. 난 이것을 건너뛰려고 한다. 나만 머리 아팠으면 족하지 '또 다른 피해자'를 양산하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대한 간단히 설명하려고 하니 눈여겨 보시길 바란다.
마르크스가 눈여겨 본 것은 '상품과 돈의 교환'이었다. 그는 이 교환을 '특별한 눈'으로 보아야만 '특별하게' 보인다고도 말했다. 그런데 무엇이 특별하냐고 되물으면, '교환가치'를 정하는 정확한 기준이 모호하다는 말을 한다. 상품의 '정가'는 어떻게 정해지고, '할인가'는 또 어떻게 정해지냔 말이다. 그러고 보니, '귀신이 곡할 노릇'이긴 하다. 하나의 상품에 매기는 '교환가치'를 도대체 무슨 기준으로 정하길래 수많은 사람들이 그 '기준'을 신뢰하고 거래를 한단 말인가?
마르크스는 서로 다른 두 상품이 교환된다는 것에는 그 둘 사이에 '공통된 무엇'이 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그리고 집요하게 물고 늘어진다. 그래서 밝혀낸 것이 바로 '노동력'이었던 것이다. 쉽게 설명하면, '집 한 채를 지은 노동의 값'을 돈으로 환산하고, 그렇게 환산한 '가치(돈)'로 '100개의 침대'를 살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집 한 채'를 짓는 노동과 '침대 100개'를 만드는 노동은 서로 같지 않다. 다시 말해, 침대 100개를 줄테니 집 한 채를 달라고 하면 아무리 '동일한 가격'이라고 해도 거래(교환)는 성립하지 않는다. 하지만 중간에 '돈(화폐)'가 낑기면 교환이 성립한다. 뭔가 마법이 부려진 것 같지 않은가? 마르크스는 이것을 '유령'이라고 지칭한 것이다.
그런데 웃긴 것은 정작 '화폐'에는 애초부터 '가치'가 없다고 한다. 마르크스는 "만지지 마라, 거기 어디에 내가 있느냐"라는 성경 속 예수의 말까지 인용하며, '화폐'에는 '가치의 본질'이 애초부터 없고, 그냥 '본질'을 가늠할 수 있는 도구일 뿐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가치형태의 4가지 분석'를 보여주는데, 이게 또 어이가 없다.
꽤나 길고 복잡하게 설명하지만, 마르크스가 하고 싶은 말은 '모든 상품은 화폐로 교환할 수 있다'는 거다. 아항~ 모든 상품은 '등가교환'이 가능하고, '본질적인 가치'를 상품이 애초에 가지고 있으니, '화폐'는 그냥 등가교환을 원활하게 하는 촉매제일 뿐이니, '화폐'를 자체를 많이 가지려고 애를 써봤지 진정한 부자가 될 수는 없는 법이다('')a 장난하시나? 앞에서는 '유령' 어쩌구 하면서 교환을 거듭할수록 부를 쌓을 수 있다고 말하고선, 이제와선 '화폐' 자체에는 가치가 없고, '상품' 자체에 가치가 있으니 '등가교환'이 가능한 거라고...
그런데 아직 하나를 더 설명해야 한다. 바로 '물신주의'다. '물신숭배', 또는 '페티시즘'이라고 부르는 '물신주의'는 애초에 하찮은 가치를 가진 물건에 어마어마한 가치를 부여해서 우상으로 삼는 일이라며 '문명국'이 '야만국'을 미개하다고 놀릴 때 써먹는 도구였다. 그런데 마르크스는 이걸 '정치경제학자'들에게 써먹으면서 "너희들이 애초에 '등가교환'이 가능한 상품에 '유령'을 끌어들여서 노동자의 노동력을 착취하고 자본가들의 배만 불렸다. 그러니 너희들이야말로 황금에 눈이 멀어 '물신주의'로 가득찬 놈들이다"라면서 비난을 한 것 같다. 그럴 것 같다고 표현한 까닭은 이 책 어디에도 위와 같은 직접적인 내용은 찾아볼 수 없지만, 책의 내용을 곱씹어본 결과, 이렇게 해석이 가능하지 않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적어도 난 이렇게 써놓고 나니 이 책의 내용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물론 '시리즈'를 읽어나가면서 달라질 수도 있는 내용이기에 미리 밝혀두는 거다.
이밖에도 '공산주의'에 대한 내용이 조금 더 나와 있는데, 아직은 전체적인 맥락 파악을 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고, 마르크스가 지독한 가난을 겪으면서도 철저하게 노동자의 편에 섰고, 애를 썼는데도, 자본가들이나 정치경제학자들이 눈도 깜짝하지 않기에 '공산주의자 선언'을 했노라는 내용을 앞당겨서 비유한 내용인 것 같다. 물론 <자본론>을 이해하는데 마르크스의 다른 저작도 참고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아직은 '문외한'에 불과한 까닭에 될 수 있으면 '이해'한 것만 리뷰하기로 했다. 추후에 더 많은 것을 이해할 때 다시 포괄적으로 리뷰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
|
북클럽 자본 시리즈는 총 열두 권이고, 나는 고작 두 권을 읽었을 뿐이니, 아직 갈 길이 멀다. 오랫동안 마르크스의 자본을 이해하고 싶어서 몇 차례 읽기를 시도했으나 읽지 못했고, 그러다가 고병권 선생님의 자본 시리즈를 만났다. 1권부터 이해하고 넘어가려고 했으나, 마지막까지 읽고 다시 앞으로 돌아왔을 때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는 누군가의 소회를 들은 뒤, 완벽하게 이해한 뒤 다음 책으로 넘어가려는 욕심은 버렸다. 다만, 누군가에게 설명할 수 있는 수준에 다다랐을 때 다음 책으로 넘어가자고 생각할 뿐이다. 이제 3권이다! |
|
맑스의 자본은 정말 뛰어난 책입니다. 물론 맑스가 현대의 금융자본이나 파생상품으로 인한 금융위기에 대한 직접적인 분석을 제시 해 주진 않았지만, 자본주의를 이해하는 가장 기본 출발점을 명쾌하게 제시 해 줍니다. 하지만 맑스의 자본은 책의 중요성에 비해 누구나 쉽게 접근하긴 힘든 점도 사실입니다. 경제학이란 분야 자체가 그렇고 또한 중요한 부분을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다 보면 어느새 막히는 부분이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고병권 선생님의 책은 이번에도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맑스가 말하고자 한 핵심을 차근차근 명쾌하고 쉽게 설명 해 주시네요. 그런데 12권 다 나올때까지 저 같이 조급한 사람들은 어떻게 기다리죠 ㅎㅎ |
|
이번 책에서 제가 얻은 가장 큰 깨달음은 물신주의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얻었다는 것입니다. 새로운 관점을 얻는다는 것은 세상을 바라보는 또 하나의 창을 얻는다는 것이고 그것은 곧 세상에 대처하는 유용한 무기를 하나 더 획득한다는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물신주의와 마르크스가 바라본 물신주의는 좀 다릅니다. 어떻게 다른지는 각자가 책을 읽고 확인해야 할 부분이니 제가 더 이상 그것을 되풀이해서 설명할 필요는 없을 듯 합니다. 그러나 그렇다고해서 마르크스의 모든 주장에 수긍하며 읽을 생각도 없고 모든 측면에서 마르크스의 주장이 무조건 옳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만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공부해볼 가치는 분명히 있다는 정도는 충분히 알 수 있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