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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쓰시조>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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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쓰시조김남규헤겔의휴일/2021.12.10.sanbaram “교과서 덕분인지 대부분 사람에게 ‘시조’가 무엇인지 물어보면, 손쉽게 ‘3장 6구 45자’를 답합니다. 시조는 ‘초장 3/4/3/4. 중장 3/4/3/4. 종장 3/5/4/3’이라는 글자 수가 불문율로 정해져 있어 이 규칙을 꼭 지켜야하는 우리 고유의 정형시라고 말합니다.(p.38)” 그래서인지 자신의 욕망을 철저히 숨기고 조선조 양반 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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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쓰시조

김남규

헤겔의휴일/2021.12.10.

sanbaram


“교과서 덕분인지 대부분 사람에게 ‘시조’가 무엇인지 물어보면, 손쉽게 ‘3장 6구 45자’를 답합니다. 시조는 ‘초장 3/4/3/4. 중장 3/4/3/4. 종장 3/5/4/3’이라는 글자 수가 불문율로 정해져 있어 이 규칙을 꼭 지켜야하는 우리 고유의 정형시라고 말합니다.(p.38)” 그래서인지 자신의 욕망을 철저히 숨기고 조선조 양반 같은 작품을 쓰며 정제한 3장으로 승부를 보려는, 그래서 단시조가 시조의 정수임을 강조하는 시조시인들이 무척 많다. 그러나 고시조와 현대시조의 경계가 명확히 나눠진다. 고시조는 개인의 욕망을 최대한 억제하는 것이고, 현대시조는 욕망을 그대로 노출하거나 오히려 증폭시킨다는 것이라고 말하는 <오늘부터 쓰시조>의 저자 김남규는 2008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조부분에 당선되었고, 고려대학에서 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시집 <일요일은 일주일을>, <밤만 사는 당신>, 등을 발간하였고, 가람시조문학상 신인상, 이병기 학술논문상 등을 받았다.


“시조는 전통문화 장르가 아닙니다. 시조는 고려 말부터 시작된 ‘고인물’이 아니라, 1930년대 식민지 때 발견되고 발명된 새로운 문학 장르입니다.(p.27)” 시조는 부르는 시조에서 읽는 시조, 쓰는 시조로 전환되었고, 음악이 아니라 문학이 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시조는 한국 전통 시가, 민족정신 그 자체가 아니다. 시조 역시 한 시대를 관통해가는, 한 시대에 유행하는 예술이자 문학 장르 중 하나일 뿐이다. 그러나 치열하게 쓴 작품은 끝까지 살아남는다. 그 살아남은 작품들은 전통이 될 것이고 문학사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시조의 장점은 간결함이다. 그래서 SNS가 발달한 현대에 맞는 글의 형식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 또한 시조의 한 단면만 본 결과다. 현대인들은 짧은 글로 소통하지만, 일정한 형식에 맞추길 좋아하지 않고, 짧은 글에 깊은 생각을 담으려 노력하지도 않는다. 물론 현대인의 마음과 삶을 시조 3행으로 충분히 담을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을 미학적으로 성취하는 것은 무척 어렵다. 그렇기에 도전해볼 가치가 있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시조의 율격은 의지와 절제를 드러낸 질서입니다. 그러나 이 질서는 흥분과 안정, 각성과 진정이 되풀이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쉽게 쓸 수 없으며, 쉽게 읽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시조입니다!(p.44)” 안정적인 시조의 리듬(형식)에 어떻게 불안정한 감정을 담을 것이냐! 율격은 시인의 흥분된 상태의 산물이기 때문에, 열정과 충동을 함축하고 동시에 반복되는 질서이기에 절제를 드러낸다. 전체적인 질서라는 관점에서 보면 율격은 통일이며 안정일 것이나, 전개되는 과정에 입각해서 살피면, 율격은 자극이며 각성일 것이다. ‘율격은 흥분과 안정, 각성과 진정, 기대와 만족이 되풀이되는 흐름이라’고 김인화는 말한다. (<시조와 현대시: 현대시란 무엇인가>현대문학, 2011, 22쪽)


“시는 이제 더 이상 1인칭 독백의 장르가 아니며, 시인은 시 안에서 목소리를 내는 사람(시적 주체)이 아니라는 것을 압니다. 시에서 말하는 사람을 그동안 ‘화자’ 또는 ‘자아’ 등으로 말해왔는데, 이들은 시인이 아닙니다. 이제 ‘화자=시인’을 잊으시고, ‘화자≠시인’을 기억해주세요!(p.75)” 여기에 덧붙여서, 다른 사람이 되어서,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되어서 다른 사람의 삶을 잠깐이라도 살아봐야 한다. ‘역지사지’라는 말은, 문학에도, 시조에도 적용 된다. 다른 사람의 감정을 이해하려고 애쓰기보다는, 아예 다른 사람이 되어보는 것, 그래서 내가 피부로 다른 사람의 감정과 상황을 체감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문학의 윤리다. 문학이 아름다운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문학은 이타적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모든 시는 서정시다. 다만, 서정성이라고 우리가 말하는 그런 것의 함유량이 많고 적을 수는 있겠다. 그래서 서정과 서정이 아닌 것의 구별은 무의미하다. 그런데도 서정을 고집하는 것은, 자신의 마음과 감정이 그 누구보다,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고집하는 것과 다름없다.


“시조는 특이하게도 인간 마음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보다, 자연의 한 장면을 보여주면서 상징적으로 마음을 처리하는 것에 몰두합니다. 짧은 시형식이라는 큰 이유도 있지만, 무엇보다 ‘시조다움’을 관조라고 스스로 정의했기 때문입니다.(p.87)” 그것은 고시조의 음풍농월의 전통에서 비롯된 것인데, 자연은 쉽게 쓸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시든 시조든 어떤 문학, 예술 장르든 간에 현실을 비판할 수 있고, 직접적으로 현실을 비판하지 않는다고 해도, 이미 미학적으로 현실에 참여하고 있으니, 꼭 시조가 현실을 비판해야 할 필요는 없다. “시는 아름다운 노래가 되거나 새로운 발견, 이 둘 중 하나면 좋은 시가 됩니다.(p.90)” 그렇기에 특정한 사물과 사건에 목숨 걸지 말고, 자기만의 일상에서 자기만의 감정을 끌고 와야 한다. 그것이 자기만의 고유성이자 유일한 것이다. ‘가장 특수한 것이 가장 보편적이다.’라는 말이 있다. 아름다운 노래를 쓸 자신이 없다면 자신의 고유성을 써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일류 시인은 일상의 예사로운 것들에서 특이하고 낯선 감정을 발견하고 가져온다. 모든 사람이 보는 것, 겪는 것에서 새로운 감정을 가져오는 것이 바로 프로다. ‘이거 시적인데!’ 하고 모든 사람이 생각할 수 있는 것을 쓰는 게 바로 아마추어다. 문제는 모든 사람이 다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대시조가 음악장르였던 시조창을 연원으로 두고 있다는 점도 잊지 마시길. 감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시조는 그 어떤 문학 장르보다 아름다운 노래가 되기 쉽습니다.(p.91)” 고시조를 써놓고 현대시조를 썼다고 착각하는 시조시인들이 여전히 많다. 한 구간의 정신이 무너졌다고. 민족정신이 흐려졌다고 현실을 비판하는 것 역시 미학과 예술성을 획득하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민속박물관에서 들을 수 있는 ‘다듬이 소리’는 현대인의 감성은 분명 아니다. ‘탄금’이나 ‘섬섬옥수’, ‘나룻배’라는 어휘 역시 조선조 시조에서나 볼 수 있는 어휘다. 현대와는 어울리는 단어가 아니다. 이처럼 현대인에게 어울리지 않거나 쓰이지 않는 어휘를 사용하는 시조 역시 유물이 되어버렸다. 이게 바로 낡은 술을 낡은 부대에 담은 결과라 할 수 있다.


“시조 3배열이 ‘정형률’의 모범은 아니라고 배웠습니다. 3행 배열은 근대 초기 신문지의 세로쓰기로 인해 부득불 지켜진 원칙입니다. 1920년대 말 가로쓰기로 인해 부득불 지켜진 원칙입니다. 1920년대 말 가로쓰기로 보편화 되면서 3행 배열이라는 형식만 남았고, 이병기, 이호우, 이영도를 비롯한 여러 시조시인들은 3장 배열이 아닌 자유로운 배행을 즐겼습니다.(p.99)” 3행 배열이 아닌 것이 과연 시조 3장을 파괴하고 정형성을 훼손하는 것인지, 다시 따져볼 문제다. 종장은 클라이맥스 혹은 기승전결의 ‘결’에 해당함으로 ‘반전’이 꼭 있어야 한다. 이것이 시조, 정형성의 기준(기본)이 될 것인데, 여기서 문제 되는 부분은 바로 이것, ‘각 장을 꼭 1행으로 처리해야 하는가’하는 문제다. 행과 연의 분절이 시라는 장르가 가진 가장 고유하고 특수한 속성인데, 이 속성은 그저 시와 산문을 나누는 표기법에만 머물지 않는다. 왜냐하면 행연의 분절이 바로 시 자체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종장은 초장과 중장과 다르게 반전이 있어야 하고 충격과 공포가 있어야 합니다. 무릎을 ‘탁’ 치게 하는 묘수가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시조의 정형성입니다.(p.112)” 정형성은 형식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3행은 정형성이 아니다. 무궁무진한 시조의 리듬을 3행으로 가두지 말아야 한다. 3행으로 하기에 시조는 너무 넓고 웅숭깊다. “시조의 정형성은 형식의 문제가 아니다. 리듬의 문제다. 여기서 리듬은 형식으로부터 시작해 의미 형성에 관여하며, 리듬이 바로 시조 자체다.(p.113)” 시조는 모든 것을 할 수 있고 모든 것을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시조 종장이 3음절만 맞추거나 띄어쓰기에 의한 것이라면, ‘시조 종장의 첫 구는 3음절’이라는 내용 없는 형식만 남게 된다. 또 하나는 구를 어떤 기준으로 나누어야 하는가 하는 문제다. 3음절+5음절이라는 종장 조건만 지키면 되는가? 그래서 음보율이 있는 것인데, 결국 통사론적+의미론적 분절이 함께 해야 그나마 시조답게 보일 수 있다. 구 역시 마찬가지, 구를 지키려면 확실히 지켜야 한다. 글자 수만 맞추다가는 이도 저도 아니게 될 수 있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엇시조의 기준을 ”평시조의 기본틀인 3장 6구 12음보를 기준으로 할 때, 초장, 중장, 종장 가운데 어느 한 장의 음보수가 7음보까지 길어진 형식“을 엇시조의 ‘기준’으로 삼을 수 있습니다.(p.153)” 따라서 한 장이 8음보 이상으로 길어지면 4음보를 한 장으로 하는 평시조 기준에서 2장이 되기 때문에 사설시조의 기준이 되는 것이고, 2장에 1음보 못 미치는 7음보는 엇지조로 볼 수 있다. 사설시조의 ‘일반형’을 정의한다면, 하나의 장이 길어지되, 엇시조와 구분되기 위해 반드시 8음보 이상으로 길어져야 한다는 것이며, 대체로 중장이 길어진다. 풍자는 인간과 삶의 세계에 관한 모든 것에만 관심을 두고 있기 때문에 가장 세속적 문학 형태다. 부조리한 현실을 극복하고 개선하려는 의도에서 ‘현대사설시조’는 ‘고사설시조’와 같이 통속성에 머물지 않고 현실비판이라는 사회적 기능 역시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그동안 우리는 시대와 욕망의 리듬을 좇아가기 위해 바빴고, 이제 지쳤습니다. 이제부터 시조는 시대의 새로운 리듬을 만들고 보여줘야 합니다.(p.83)”라는 저자의 말처럼 나만의 눈으로 이 시대의 모든 것을 새롭게 바라보며 찾아낸 것을 표현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독자들은 ‘오늘부터 쓰시죠’ 이 책의 제목처럼.

이달의 사락 k******4 2025.03.24. 신고 공감 13 댓글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