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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화밭 엽기전 / 백민석 표지 디자인을 보면서 디자인이 비슷했던 다른 소설의 실망감이 먼저 떠올랐다. 비평계의 상당한 논란과 반향 때문에 구입했지만 내용만으로는 나의 취향이 결론적으로는 참 잘한 선택이었다. 책 뒷면의 해설은 읽지 않았다. 나 자신만의 느낌을 오롯이 적어보기 위해서이다. 제목처럼 엽기적인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탄탄하고 치밀한 구성과 문체의 매력이 비평과 찬사를 겸해서 받을만큼의 충분한 조건을 두루 갖췄다는데 의견을 일치 시키고 싶다. 한창림과 그의 아내 박태자. 한창림 자신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처럼 그도 그의 아내도 이 세상에 있으면 안 될 사람들이었다. 조울증 환자인 아내, 툭하면 기이한 수컷 냄새나 풍기는 그. 둘 다 처음부터 이 세상에 있으면 안 될 사람들이었고 필연적으로 불행해질 사람들이었다. 그도 아내도 이 사회에서, 날 때부터 괴물로 운명 지어진 존재들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한창림은 가족들에게도 버림받은 조울증 환자인 박태자와 결혼까지 해서, 밥을 먹다가 젓가락으로 뺨에 상처를 내는 히스테리까지도 묵묵히 감당하면서 보듬어 주고 서로의 기둥이 되어 섬처럼 이 세상 한 모퉁이에 살아가고 있었다. 그가 특별히 아끼는 목록 중의 으뜸은 아내였다. 아니 아낀다기보다는 그 자신의 신체나 같다. 나름대로는 수학 과외 교사로, 대학의 강사로서 평범한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애를 써 보지만 불행한 사람으로 태어난 운명을 거슬릴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이 사회에 대한 분노와 좌절감을 자신들의 방식으로 표출하기에 이른다. 그와 그의 아내가 저질러 놓은 것이라곤 예쁘장한 사내아이 몇을 죽여 둔덕에 파묻은 것 뿐이었다. 그저 그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건 죄악도 패악도 아무것도 아니었다. 다만, 그들을 온전히 받아주지 못하는 세상에 대한 분노의 한 가지 표현 방식이었을 따름. 하지만 그런다고 무엇이 달라질 것인가. 그가 말하고 아는 대로 이 사회에 손톱 자국조차, 한 뼘 이빨 자국조차 낼 수 없지 않은가. 한창림은 또 다른 꿈을 꾼다. 하얀 꽃들이 솜구름처럼 톡톡 터지는 목화밭, 그게 어떻게 생겼는지도, 그게 무언지도 알지 못했지만, 어쨌거나 거기로 가고 있었다. 그가 씨 뿌리고 거름을 주었던 거기로. 하지만 결국 그는 목화밭에 도달하지 못할 것이다. 어떻게 생겼는지도, 그게 무언지도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도달할 수 있겠는가. 그가 뿌린 씨앗은 결코 움트지 못할 것이다. 그는 목화밭을 꿈꾸기 전에 그 모습을 실제로 한번 보는 것이 우선되어야 했을 것이다. 하긴, 그 역시 그러고 싶었겠지만 그럴 수가 없었을 것이다. 볼 수 있다면 그것은 이미 꿈이 아닌 현실일테니. 인간의 내면에 숨어 있는 악마성을 자극하는 섬듯한 소설 한권을 읽고나서 책을 덮고서도 아른한 잔상이 오래 남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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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시님께서, 나하고 너~~~~무나 잘 어울릴 책이라고 멀리 포항에서 직접 보내주신 책( 감사합니다. 집시님~^^)이다.
하지만, 책을 펴고 읽는 순간... 일단..섬뜩하다는 느낌은..워낙 그런 장면들이 아무렇지 않게 나오니, 그냥..아무렇지 않게 느껴졌다.
즉, 처음 50페이지 정도 넘어가니..그냥 사람을 썰든, 묻든... 그냥 하나의 일상처럼 담담하게(?) 읽혔다.
물론, 나의 정서적인 면에서...은근 엽기적인 것을 좋아하는 편이긴 하지만, 이건 조금..도가 지나쳐도 너무 지나친 편이다.
책을 덮고나니... 음...남몰래 한 밤중에 엽기 슬래셔 무비를 숨죽이고 본 것처럼 마음이 두근 거렸다. 그런데, 솔직히..은근히 그런 면이 이 책의 묘미이긴 했다.^^
오늘 저녁에 먹으려고 간고등어를 손질하면서 토막 낼때 생선 살이 찢어지며 생선 뼈가 부러지는소리, 생물 오징어에서 내장 떼어 낼때의 그 '물컹'하는 느낌, 싱크대 주변을 돌아다니는 길 잃은 개미를 손톱으로 눌러죽일때의 '톡'하는 그 발랄한 느낌... 계란찜에 한 숟갈 넣은...새우젖에 떠다니는 새우들의..검은 눈동자.
주중에 이 책을 마무리했다면..중간 중간 회사 동료들을 대입하면서 즐겁게 읽었을것 같은데, 주말이라서..집에서 뭐 해먹는 것이 많은데, 음식 먹는 것 하나 하나에 그 책이 생각이 나서..조금은 괴로웠던 것 같다.
ps. 집시님~ 그런데 토끼처럼 평화롭게 세상을 살아가는 저에게 왜 이 책이 딱 어울릴 것이라고 생각하신 거죠?? 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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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말을 해두어야겠다. 난 원래 공포물은 딱 질색인 사람이다. 아무리 날씨가 찜통같아 오싹한 공포물이 필요하다고 한결같이 입을 모아 동의한다고 하더라도 나는 절대 공포물의 근처에도 가기 싫은 사람이다. 여기서 공포물이라 함은 꼭 귀신이 나와야 하는 건 아니다. 엽기적이고 희대의 살인마를 다루는 영화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굳이 인간의 잔인한 본성을 들여다 보고 싶은 마음이 손톱만큼도 없다.
그런 내가 이 책을 집어든 이유는 순전히 한국문학 읽기 모임 때문이다. 한달에 한번씩 한국문학을 부흥시키자는 취지로 한국문학 읽기 모임을 갖는데 이번 달 책이 바로 하드고어인 것이다. 사실 이런 류의 책을 손도 대보지 않은 나로서는 큰 모험이기도 했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도전해야할 숙제이기도 했던 것이다.
어쨌든 책을 읽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헷갈렸다. 거름이라고 표현된 것이 진짜 비료인줄만 알았던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읽다보니 문맥이 맞질 않는 것이다. 그래서 죽은 개인가? 라고 생각하고 읽다가 그것도 아닌 것 같았다. 결국 알고야 말았다. 거름이란 한창림과 그의 부인 박태자가 데려다 써먹고 결국 내다 버리는 '인간 거름'이라는 것을.
모든 공포물이나 엽기물이 그러하듯 첫 장면부터 충격적인 영상을 던져준다. 한창림이 인간 거름을 묻기 위해 땅을 파고 있는 모습을 영상으로 담는다면 꽤 괜찮은 시작임에는 틀림없을 것 같았다. 이 책의 등장인물들은 죄다 엽기적이고 기괴하다. 한창림과 그의 부인 박태자는 겉으로는 대학 강사와 아이들을 가르치는 수학 과외교사라는 멀쩡한 직업을 가지고 있으면서 사람을 납치해 자기 집 지하실에 가두어놓고 포르노그라피를 찍는 인간들이며 또 그 포르노그라피가 담긴 테잎을 사는 그들이 펫샵의 '삼촌'이라고 부르는 인물 역시 사람을 육절기로 살을 저며내고 분쇄기로 뼈를 가루내어 소각기에 털어버리는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저지르는 위인이다. 거기에 사람을 세일한다며 벌겨벗겨 다른 살림살이들과 함께 창고에 거꾸로 처박아 놓는 '뷰티풀 피플'의 언니의 남편이라는 사람까지. 하나같이 끔찍한 인간들의 군상이 그려진다.
아뭏든 이 구역질 나는 이야기들을 작가는 어떻게 생각해 내었을지가 사뭇 궁금했다. 작가는 몇달동안 방에 틀혀박혀 세계의 엽기물만 보면서 줄거리를 생각해 낸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나중에 작가 후기를 보니 작가는 실제 과천 서울대공원의 동물원을 거닐면서 처음으로 작품을 구상했고 세기의 유괴사건들을 참고하고 스위스의 록 밴드 켈틱 프로스트의 음악에서 기본적인 정조를 형성했다고 한다. 그렇게 따지자면, 악귀의 음악이니 하면서 금지시키곤 했던 여러 록 음악들이 왜 그런 대우를 받아야했는지 이제서야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정말 음악 하나가 그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이었다.
작가가 이 인간 괴물들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으나 나의 이러한 생각은 순전히 이런 류의 작품을 싫어하는 나의 취향에서 비롯된 것임을 참고해 주기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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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엽기적이라는 부분에서《목화밭 엽기전》제목과 잘 어울렸다. 대학강사 한창림과 수학 과외선생 박태자는 좋은 직업을 가지고 있는 맞벌이 부부다. 그들에겐 보여지는 직업외에 숨겨진 특별한 부업이 있는데 그들이 본직보다 더 좋아하고 즐기는 것이 이것이다. 어린 남자아이를 납치하여 포르노를 찍고 그 아이를 죽여 집뒤 공터에 파묻어버리는 것, 증거를 없애기 위해 시체를 파묻는 것은 이해되지만 파묻는 이유가 식물에 거름을 주기위해서라니 공포스럽기조차 하다. 한창림과 박태자 부부는 말한다. 그들 자신은 세상에 존재해서는 안되는 사람들이라고. 다른 사람을 괴롭히면서 희열을 얻는 사이코패스일까?
추리 소설에서 특별한 의미를 찾는 것은 뭐하지만 그럼에도 권선징악이나 해피앤딩을 바라는 면도 있다. 이쁘장하게 생긴 어린 소년을 납치 포르노를 찍는 이들 부부를 뭐라고 말해야 할까? 납치된 아이들은 살아서도 고통을 당하거니와 죽어서도 인간다운 처분을 받지 못한다. 제목이 떠오르지 않지만 예전에 읽었던 젊고 아름다운 여자들만 골라 납치 살해하고 장기를 떼어내 팔던 일당들의 이야기가 주를 이루던 소설이 생각났다. 시체를 강간하는 것을 시간이라 했던가? 그들은 팔수있는 장기는 하나도 빼놓지 않고 팔아 먹었다.《목화밭 엽기전》을 읽으며 드는 생각은 잔혹하다는 것과 범죄에 대한 감각이 무덤덤하다는 것이다.
포르노그라피는 뭐지? 인간의 성적 행위의 사실적 묘사를 주로 한 문학·영화·사진·회화를 뜻한다. 납치, 린치, 강간, 살상, 중독, 포르노그라피 등. 제목에서 뭔가 해학적인 부분을 읽은 것 같은데 착각에 불과했다. 한창림은 그렇게 포르노 비디오를 찍어 '펫숍 삼촌'에게 제공해준다. 특이한 것은 한창림이 아내 박태자를 사랑하고 아낀다는 것이다. 펫 삼촌이라 불리는 그 남자의 정체는 뭘까? 그는 무엇때문에 한창림에게 포르노 필림을 요구하는 것일까? 조울증을 앓고 있어 약을 달고 사는 박태자, 그녀에게도 어린 시절 말 못할 상처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이유없이 평생 조울증을 달고 살지는 않을테니까.
그들은 납치해온 아이를 '거름'이라 부르고 쓸모가 다하면 진짜 거름으로 사용해 버린다. 책속에는 평범한 사람들은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이 다소 위안이라면 위안이다. 착한 사람이 불행을 당했다 억울하게 희생당했다 말하지 않아도 되잖아. 서울대공원의 동물원 뒷편에 주인공 부부가 사는 집이 있다. 거리가 가까워 대공원에서 나는 소리들이 남김없이 생생하게 들려온다지. 하루 이틀도 아니고 매일 그런 소리를 들으며 산다면 스트레스가 장난이 아닐거야. 하지만 그건 그들이 저지른 범죄에 대한 핑계거리는 되지않아. 죄의식이라곤 찾아볼래야 찾아볼수 없고 희생자를 처리하는 과정에서도 귀찮은 일은 겪는 것에 대해 짜증을 부리기만 한다. 그들은 사이코패스가 틀림없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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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언 뱅크스의 말벌 공장 이후 그처럼 충격적인 책을 또만날수 있을까 아니 이런 충격적인 책은 좀 피하자라는 마음 한구석의 다짐을 무너뜨리는 녀석이 나타났다.
클럽에서 누군가 이 책을 서두20페이지 가량을 필사한 뒤 무책임 하게도 계속이라는 마지막 말로 날 우롱했기에 그 뒤가 궁금해진 난 예스24에서 기어이 녀석을 질렀다.
그래 한창림(주인공)니가 어디까지 가나 한번 두고자라는 오기로 이책의 마지막 페이지까지 부들부들 떨면서 한밤을 홀라당 세워 책을 읽었다. 중간에 페이지를 덥으면 사실 다시 펼쳐볼 엄두가 나지 안을거란 확신이 들었기에 뜨거운 블랙 커피 한잔과 함께 한밤을 홀랑 세워 독파 할 만큼 목화밭 엽기전은 흡입력이 대단했고 충격그 자체였다.
페이지를 덥고난 지금도 한편의 슬래셔 혹은 스너프 무비를 보고난 후의 찝찝함으로 몸둘바를 모르겠다.
책의 시작은 주인공 한창민이 대공원이 보이는 자신의 집 뒷산에 거름을 묻는 장면으로 부터 시작된다. 이장면을 시작으로 과거 몇년전의 막가파였던가 희대의 살인 집단으로 연일 뉴스에 오르락 내리락 했던 집단이 기억이 났다. 집안에 시체 소각로를 설치하여 시체를 처리하고 가끔은 그 시체를 돼지고기라고 속여 동네 사람들과 나누어 먹었다는 내용에 한동안 밤거리 출입을 삼가게 만든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목화밭 엽기전은 그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고대로 쓴것이 아닐까 정도록 사실 적이었고 그 배경의 되는 곳이 과천 대공원이라는 실제의 장소로서 존재한다는 사실에 더욱 끔찍함을 더한다. 또한, 한창림의 부인이 조울증 약을 구하는 루트로서 언니가 운영하는 가게의 이름은 "뷰티풀 피플"이다. 이얼마나 아이러니 한가. 이런 허를 찌르는 작가의 언어적 농락앞에 난 속수 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작가는 한창림과 그의 부인 그리고 그의 삼촌이 운영하는 펫숍으로서의 세계를 수컷들의 세계라고 부른다. 진정한 강자만이 살아 남는 정글속 날것의 세계속에서 약한 것은 강한 것의 먹이로서 외에는 존재 가치가 없다.
이런 정글속에서 한마리의 수컷으로서의 한창림이지만 그가 꿈꾸는 목화밭이라는 순백의 세계는 순수라기 보다 일종의 죽음의 안식처와도 같은 세계로 다가왔다. 붉은 피로 뒤덮힌 세계속에서 벗어나고자하는 안식을 꿈꾼는 자리로서의 목화밭. 한창림은 그런 안식을 원했던 것이 아닐까.
살인 강간 린치 그 모든것이 뒤범벅이 된 수컷들의 세계가 두렴움과 찝집함으로 다가온다. 당신의 현실이 지금의 사회가 그러하다고 외치는 작가를 외면하고싶은 마음이다. 2007.11.07 |
| 오래 전, 그러나 그리 오래는 아닌 어느 날, ‘연쇄엽기살인행각’에 대한 보도가 있었다. 그때 난 어렸고 누군가 잽싸게 채널을 돌렸기 때문에 자세한 내막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 다만 그들의 둥지에서 시체 소각장이 발견되었다는 대목에서 경악을 금치 못했다는 기억 뿐. 다른 범죄와는 다르게 살인은 인간의 우발적 행동의 결과물이라 생각했던 내게 그들의 ‘시체 소각장’은, 살인도 사전 계획에 따라 진행될 수 있다는 것을 자각케 함으로써 내 정신 일반에 치명타를 날리기에 손색 없었다. 그러고도 유괴와 살인의 이중주는 현대의 한 테마로 자리매김했지만 한번의 경악과 분노로 그에 대한 기억은 번번이 소멸되었다. 그것은 아마도 우리가 접할 수 있는 것이 일단락된 살인의 결과물에 대한 건조한 보도일 뿐, 끔찍하고 잔학한 살인의 과정에서는 (다행히) 배제되어 있었던 탓일 것이다. 그런데 백민석의 <목화밭 엽기전="">은 독자로 하여금 살인의 도정에 직접 참여하게 함으로써 섬뜩한 공포에 그대로 직면하게 한다. 꾸역꾸역 치밀어오르는 구역질과 뒷골 당기는 서늘함에서 벗어날 방도가 없다. 한창림은 ‘만드릴 원숭이’의 야생적 습성에 매료된다. 만드릴 원숭이의 수컷이 보여주는 단세포적 기질과 포악성은 한창림 자신의 그것과 그대로 닮아있기 때문이다. 야생의 세계를 지배하는 위계 질서는 펫숍 삼촌과 한창림의 관계에서 형상화된다. 그들을 지배하는 것은 힘의 논리이며 살아남기 위해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복종하거나 또 다른 것을 제물로 삼는 방법밖에는 없다. 펫숍 삼촌의 도착을 위해 한창림은 여성성이 남아있는 사내아이를 납치하고 아내 박태자와 포르노그래피를 찍고 사체를 앞마당에 묻는 과정을 반복한다. 여기에서 납치된 ‘작은 수컷’들이 ‘거름’으로 묘사되는 것은 주목할만 하다. 납치된 아이들은, 한창림과 박태자에게 있어 존엄성을 지닌 인간의 객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폭력의 진원이자 욕망의 발화를 부추기는, 그러한 폭력과 욕망의 대상일 뿐인 물화된 존재로 전락한다. 익명의 사내에게 주먹을 휘두르고, 자신의 아내를 세일하고, 유괴와 감금과 린치가 판을 치는 ‘목화밭’은 도덕적 가치는 부재하고 욕망만 극대화된 부조리의 공간이다. 가족의 해체와 인간성의 말살, 피해자도 가해자도 없이 야생의 법칙만이 존재할 따름이다. 이번 이상문학상 작품집에 실린 백민석의 <고마워, 과연="" 너구리야="">에서 그려지는 너구리는 인간성을 파괴하는 것이자 인간성 파괴의 산실인 현대의 거대 메커니즘에 알몸으로 항거하는, 이중적 메타포를 지녔다. <목화밭 엽기전=""> 또한 마찬가지다. 한창림은 권력에 순응하고 권력의 폭력성에 도취되어 있으나, 권력이 휘두르는 야수성에 전면 대항을 도발하는 인물이다. 그것이 전폭적 지지를 얻지 못하고 무능하게 일그러지고 마는 것이 현대의 불행이라면 불행일 것이다.목화밭>고마워,>목화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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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한 눈에 사람들의 눈에 띈다면 그것은 바로 '엽기전'이라는 낱말이 제목 안에 들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과연 그도 그럴 것이 엽기라는 것이 우리에게 주는 코드는 악랄하면서도 코믹한 요소로 무겁지 않게 다가와 유행 아닌 유행처럼 번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목화밭 엽기전]은 그런 [엽기적]이라는 코드를 독자들에게 어떤 방식으로 안겨 주고 있는가.
이 소설은 작가가 20대의 막바지를 달리고 있는 만큼 젊은이들의 새로운 코드들이 등장하고 있다. 가장 대표적으로 뷰리플 피플이라는 의상실의 이름은 그 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건이나 인간들의 행태를 볼 때 마를린 맨슨의 노래 뷰리플 피플에서 딴 듯한 인상을 지울 수가 없고 스웨이드의 브렛 앤더슨의 이름까지 직접적으로 언급하면서 젊은 매니아적 감각 코드를 드러내고 있다. 이런 코드들은 새로운 문화적 자극에 그다지 흥미로워 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쉽게 알아차릴 수 없을지도 모른다. 아마도 그런 코드들을 찾아낸다면 소설이 독자에게 던지는 느낌뿐만 아니라 이야기 전개 자체의 인식 정도도 달라 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 소설은 우리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던진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하나는 한창림을 비롯한 그의 아내 박태자, 팻숍 주인인 삼촌 등이 왜 그러한 행각을 저지르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이 소설도 영화로 따지면 slasher & snuff 영화쯤 되는 이야기이다. 주인공 한창림이나 패숍 주인인 삼촌 역시 슬래셔 무비를 상상하게 할만큼 엽기적인 살인을 저지르고 있다. 게다가 그들은 실제로 스너프 무비를 찍고 있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이런 엽기적인 행각을 저지르고 있는가. 그것은 우리가 왜 포르노 혹은 스너프 영화에 관심을 갖고 즐겨 보는지, 또 폭력성이 강한 영화를 보면서 카타르시스를 느끼는가 하는 문제와 같은 맥락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주인공인 한창림도, 박태자도 자신들의 행동을 범죄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마치 그것은 우리가 슬래셔 무비나 스너프 무비같은 것을 볼 때 그것이 범죄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과 비슷하다. 그러나 그들 역시 일종의 죄책감을 갖고 있다. 마치 우리가 슬래셔 무비나 포르노를 보고 난 후 뭔가 남는 불쾌함처럼 말이다. 그런 죄책감을 소설 안에서는 직접적으로 나타나고 있지는 않지만 그들의 이중 생활에서, 사회적인 인정에 대한 욕구에서, 그리고 간혹 보이는 희생자들을 바라보는 태도에서 그들이 절대 엽기적이지 않고, 엽기적일 수 없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들도 역시 사회적 규제에서 벗어나고 싶은 인간적 욕망을 지니고 있지만 사회에 얽혀 있고 그것을 쉽게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런 잠재된 죄책감은 한창림에게는 팻숍의 삼촌이라는 자신에게 그러한 행각을 사주하는 것처럼 보이는 일종의 신에게, 박태자는 끔찍한 조울증이라는 스스로는 어쩔 수 없는 병에게 그 책임감을 전가시키는 것이다. 그로서 그들은 자신의 행동은 자신들이 통제할 수 없는 불가영역이고 그것을 관할하는 삼촌, 즉 자신의 본능을 만든 신이나 정신병으로 자신의 죄책감을 위안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소설의 막바지로 전개되면서 결국 박태자는 삼촌에게 끔찍하게 살해당하고 한창림 역시 사회적 보호망이며 동시에 감시망이기도 한 형사들에게 잡히는 것으로 끝을 맺는 것도 작가 스스로 사회적, 윤리적 존재 안에서 그들의 엽기적인 행각에 잠재적인 죄책감을 갖고 있는 것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러한 점들이 슬래셔, 스너프 영화나 비슷한 주제의 소설들과 다르게 다가오는 점이다. 김영하의 [비상구]라든지 그 엽기적 강도 면에서는 1/10도 되지 않는 윤경수의 [포포의 천국]이나 채희철의 [풀밭 위의 식사] 같은 작품들이 오히려 더 엽기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것은 이 소설이 주는 엽기적 행각에 대한 충격은 훨씬 큰 것임에도 불구하고 왠지 [목화밭 엽기전]이라는 소설이 더 인간적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저 인간적 욕망을 끝도 없이 풀어낸 것 같은 위의 소설들은 배설 후의 시원함만 생각하고 엄청나고 냄새나는 자신의 배설물은 무시하라고 강요하는 듯 하나 [목화밭 엽기전]은 욕망의 해소 후에 느낄 수밖에 없는 씁쓸함과 동시에 인간적 존재 가치의 사유까지 독자를 이끌고 있다. 이것은 작가 스스로의 사유에서 비롯되어 폭력적이고 색스러운 것을 즐기지만 머리 어느 구석에 자리잡고 있을지 모르는 독자의 죄책감과 수치심에 파고들어 흔들리게 한다. 이 소설은 결국 스너프 필름의 시나리오대로 트리플 섹스를 하고 끔찍하게 살해하는 등의 장면들을 교묘하게 피해 한창림이나 박태자와 동일시하고 있는 독자들의 이마에 찍혀 있을 낙인을 목격하게 하는 것을 피하고 또, 그들의 최후가 심판 받는 것으로 그들의 죄책감을 구원받는 듯이 보이게 하지만 결국 독자들은 스스로의 욕망을 목격하고 그에 대한 죄책감에 허덕일 수밖에 없는 자신을 발견하게 할 것이다.
한 마디 더 덧붙이자면 다른 소리를 좀 하면 요즘 극장에 막 걸린 할로우맨은 인간이 익명성을 띄었을 때, 자신의 행동에 대해 더 이상 사회적 책임을 묻지 않게 되었을 때 인간이 자신의 욕망을 어떻게 발산하는가에 대한 영화이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으로 분한 케빈 베이컨은 투명인간이 되자 강간을 저지르고 차례차례 범죄를 저지른다. 이 영화의 홍보 일환으로 각국의 할로우맨 홍보 사이트에는 익명 게시판이 올라 있고 만약 자신이 투명인간이 된다면 무엇을 할까에 대해 글을 올리는 공간을 만들어 놓았다. 만약 당신이라면 무엇부터 해 보겠는가. 나는 그것을 욕망에 관련된 일. 즉, 폭력, 섹스, 그리고 경제적 침탈 등의 것이 부분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사람들은 놀랍도록 도덕적이었다. 무언가를 훔쳐보는 관음증에서 그치는 경우도 많았고 투명인간이 되어서도 범죄는 저지르면 안된다는 수많은 의견을 보면서 우리의 윤리라는 것이, 그리고 그것에서 파생되어 나온 죄책감이라는 것이 이데올로기일지도 모른다는 의구심을 꺾으면서 그것이 우리에게 얼마나 강력하게 작용하고 있는가에 대해 새삼스럽게 다시 생각해 보게 하였다.
[목화밭 엽기전]을 엽기가 아니라고 읽었다면 오히려 바르게 읽은 것일지도 모른다. 인간이 지닐 수 밖에 없는 욕망과 그것에 대한 죄책감은 욕망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없는 상황에서까지 죄책감은 인간을 사회적 존재로 옭아매고 있다는 사실이 두렵기만 하다. [인상깊은구절] 서울랜드를 빠져나오자마자, 차는 속도를 냈다. 펫숍삼촌은 금세 그의시야에서 사라졌다. 삼촌이 사라지자 그는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어, 아까 뽑아냈던 오장근 형사의 왼쪽 눈알을 꺼내들었다. 그리곤 그것을 옆좌석 형사의 손에 꼬옥 쥐어주었다. 옆좌석에서, 발광하는 듯한 비명이 몇 번 터져나왔다. 그래도 그는 아랑곳 없었다. 그는 행복한 얼굴로 다시 까무러졌다. 역시 눈을 뜬 채였다. 이번에도 확실히 그는 목화밭으로 가고 있었다. 그게 어떻게 생겼는지도, 그게 무엇인지도알지 못했지만, 어쨌거나거기로 가고 있었다. 그가 씨 뿌리고 거름을 주었던 거기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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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장정일 작가를 좋아하기에.그가 쓴 `독서일기2`에 `재능있는 작가`라며 극찬을 마지않던 백민석에 대해 그의 소설을 주저없이 선택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 또한 백민석이란 젊은 작가의 악마적 글솜씨에 반하게 되었다. 뭐랄까. 내 속에 잠재되어 있던 나쁜 습성을 들킨듯.그는 우리의 내면을 훑은듯 자세하게 상황과 심리를 묘사한다. 시작부터 심상치 않은 문장 `누군가 내게 비닐 빵봉지를 쑤셔박아 넣은 것 같다`에 시작부터 주늑들어가며 읽었지만, 점점 박태자와 한창림의 심리를 이해하기 시작했다.(물론 공감은 하지 않았다-_-)그들은 가상의 인물이다.그러나 수컷의 내음을 풍기는 `진정한 수컷` 한창림과 그런 수컷과 공존하는(어떤 면에선 수컷을 조종하는)박태자의 존재성이 생생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인상깊은구절] 그애처럼 수컷 기질이 있는 놈들은 아직 이빨을 드러내기 전에 그 이빨을 제거해버려야 한다. 더 자라기 전에. 아직 어린 놈일 때. 수컷들이란. 더 강한 수컷이 나타나면 꼬리를 말고 낑낑대게 마련이니. 누군가의 평생을 망쳐버린다는 건 아무래도 흥분되는 일이다. |
| 붉은색과 검은색이 끔찍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 표지만큼 책 속의 등장인물들은 본성과 본성을 가리고 있는 이성이 아슬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이 소설의 내용은 정신병자들의 미친 짓이다. 이 정신병자들의 특징은 겉으로는 전혀 정신병자처럼 안보인다는 거다. 이들은 겉으로 보기에는 사회 중산층의 예의바름을 덮어 쓰고 있고, 잘 교육받았으며, 훌륭한 취미를 가지고 있다, 영화와 소설이라는. 하지만, 그들의 겉껍질을 벗겨내면 그 안은 추악한 짐승이다. 물론 모든 인간들은 어느 정도 이중성을 가지고 있으니, 그들의 이중성 자체를 욕할 수는 없다. 욕할 수 있는 이유는 단 하나, 그들은 짐승도 지키는 아주 간단하면서도 분명한 선 하나를 무시한다는 거다. 소년을 잡아와 스너프 포르노를 찍고 죽여서 뒷산에 묻으면서도 아무 죄의식 없는 젊은 대학 강사와 과외 강사 부부나 돈을 주고 그 테잎을 사 자신의 성욕을 만족시키는데 사용하는 의미심장한 펫숍의 주인, 삼촌. 삼촌은 거대한 권력자, 그림자처럼 실체를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권력자고 젊은 강사 부부는 권력자에게 이용당하는 중산층이다. 그럼 그 부부가 타켓으로 잡은 소년은? 아이러니하게도 소년은 삼촌과는 또다른 권력층의 자제다. 물고물리는 악순환이랄까. 그들 사이에서 오고가는 관계를 분석해보면 꽤나 재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