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첫 단추를 잘 끼워야 한다. 언론을 다룬 책을 읽으며 이 말이 떠올랐던 건 그만큼 그릇된 역사가 길었기 때문일 것이다. ‘기레기의 오만과 깨시민의 자만을 넘어’라는 부제가 말해주듯 오늘날 생산되는 다양한 정보들은 사실에 기반한 것이기 보다는 일정한 의도에 입각해 양산된 경우가 잦다. 정보원이 모호하고, 불과 몇 시간 지나지 않아 사실이 아님이 밝혀지기도 하는 일이 반복되다 보니 많은 이들이 언론을 불신하는 사태가 발생하고 있다. 미디어 분야에 변혁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는 과한 우려로부터 비롯된 게 결코 아니다. 우리 시대에 가장 존경받는 언론인 중 하나로 손꼽히는 저자는 현 상황이 뿌리가 깊다고 보았다. 직접적인 연관성은 없어 보일 수 있으나 거슬러 올라가 대한민국의 근대적 언론이 태동하던 시점에서부터 언론이 언론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기 힘든 무언가가 작동하고 있음을 살폈다. 서양의 것을 전적으로 옳다 보아서는 아니 될 터이나, 타국의 경우 민중의 역량 강화와 더불어 언론 또한 세상에 등장했다. 왕권에, 신분제에 반기를 들고 스스로의 권리를 쟁취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대변해주는 무언가가 필요했고, 때마침 발달한 인쇄술에 힘입어 신문 등이 탄생한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인쇄술의 발달이 굉장히 이른 시점에 이루어졌다. 분권적인 형태로 오랜 기간 지속됐던 서양 사회와 달리 왕을 중심으로 한 중앙집권적 정부가 확고했다. 각종 기술은 지배계층의 전유물로 그들의 지배 정당화를 위한 도구로 활용됐을 뿐이다. 한성순보는 관보였다. 현장의 생생함을 대신해 정부의 각종 소식이 대거 수록됐으며, 유통 역시 한정적이었다. 1920년대 들어 다양한 집단이 언론에 발을 디뎠으나, 이는 무단통치에서 문화통치로 전략을 수정한 일제의 기만에 따른 것이었다. 우후죽순 언론은 탄생하였으되 싣고자 하는 소식을 마음껏 싣기 못하였다. 기사와 사진이 삭제되거나 수정됐고, 궁극적으로 일제가 원하는 내용만이 선별 유통됐다. 의도치 않았을지라도 통치 이데올로기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신문은 제작됐고, 그 길만이 이 시대엔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였다. 민중을 배제한 채 성장한 언론은 이어진 군사 독재 정권 시대에도 계속해서 정권에 부합하는 방향을 고수하게 된다. 사람이 죽어나갔으나 보도되지 못했다. 반발이 너무 큰 경우에는 보도는 하되 개개인을 폭도로 매도한다거나 북한 정권, 사회주의 진영과의 내통이 의심된다는 등의 왜곡을 시도함으로써 공포심을 조장했다. 다루어지지 못하였거나 축소, 왜곡 보도된 부분의 대부분이 힘 없는 약자 세계에 속한 것이자 정부에 저항하는 이들의 것이었다. 하나의 기조로 자리잡은 양 이는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노동자들이 임금 체불에 맞서면 그들의 노동은 온데간데 없고 대신 회사 경영의 어려움이 대두됐다. 국가 경기 침체로 이러다가 나라가 망할 수도 있는데 배려를 해도 부족할 판국에 이기적으로 군다는 식의 프레임이 작동하기 시작하면 사방이 적으로 돌변했다. 그렇게라도 다루어지는 게 외려 나은 걸지도. 어느 언론에서도 관심을 갖지 않은 경우는 또 얼마나 잦았던지. 죽음을 도구로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강력한 외침에는 누구보다도 생명을 중히 여겼던 이들이 어찌 죽음에 이르렀는지에 대한 고찰이 없다. 기회일까, 위기일까. 과거처럼 신문에만 의존해 정보를 획득하는 시대가 아니다. 오늘날엔 개개인이 각종 SNS 채널을 활용해 끊임없이 정보를 생산, 유통할 수 있다. 이렇게 말하면 거창해 보이지만,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유튜브 등을 일체 사용 않는 사람을 찾기가 하늘의 별따기 만큼이나 힘든 게 사실이다. 기존 언론은 신문과 방송을 동시에 운영하면서 정보의 획일화에 힘을 쏟고 있는 모양새이며, 그 뒤에서는 국내 유수의 재벌이 힘을 발휘하고 있다. 개인으로 이에 맞서려 들었다간 큰코다치겠다는 걱정이 앞선다. 직업 기자의 객관적, 전문적(이라 여겨지는) 시야가 ‘직접 기자’에 의해 강화되는 형태로 활용된다면 이제까지 빚어진 언론의 그릇된 행태가 도리어 더 강화될 수도 있다. 반대로 이를 전적으로 신뢰해선 안 된다며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반기를 드는 행태 또한 위험하다. 보고자 하는 것만 보고 듣고자 하는 것만 듣는 불통 사회를 우리 스스로 만들고 있는 건 아닌지 성찰이 필요하다 하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