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간은 경험의 동물이다. 아무리 뛰어난 공감 능력의 소유자여도 실제로 자신이 경험하기 전까지 타인의 경험을 100%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이런 생각으로 살아온 나는 언제나 타인의 고통에 민감하게 반응하고자 애썼다. 누군가 힘들다고 말할 때 그 힘듦에 공감해주되 감히 이해한다는 말을 하는 것에는 늘 조심스러웠다. 어릴 때부터 엄마의 입덧에 대한 얘기를 정말 많이 들었다. 엄마는 나를 가지고서 물조차 가려먹어야 했던, 아주 극심한 입덧을 경험한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자식을 셋이나 낳은 것에 대해 언제나 존경심을 가져왔지만 직접 경험한 입덧은 그 이상의 감정을 자아냈다. '낳으시고 기르시는 어머님 은혜'가 어떻게 나온 가사인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임신은 상상 이상의 불편함과 외로움, 인내의 시간이다. 매주 새로운 증상에 낯설어하다가 적응하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한 인간이 본인의 욕구를 참고 희생하여 열달을 꼬박 몸 속에 품어준 뒤 세상의 빛을 보게하는 것은 결코 당연한 일이 아니다. 얼마나 갸륵한 일인지 역시 경험하고서야 깨달았다. 《아기 말고 내 몸이 궁금해서》는 과학저널 기자였던 저자가 직접 임신을 경험하며 느낀 신체적·정신적 증상에 대해 과학적 사실을 바탕으로 타당한 근거를 찾아나가는 과정을 담은 책이다. 임산부가 읽는다면 본인의 증상에 대한 지식과 위로를, 임산부가 아닌 사람들이 읽는다면 임산부의 고충과 노력에 대한 이해를 얻을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 책을 읽으며 가장 공감하고 안타까웠던 부분은 임산부들의 고충을 '임산부끼리'만 나눈다는 것이다. 아직 우리 사회는 임산부의 희생과 노력에 대해 '당연하다'는 인식이 강하다. 임산부가 고생하는 건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나아가 여성이 아이를 낳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이 보편적이다. 임신과 출산을 경험했던 여성들도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데 이 사회는 오죽할까. 그러다보니 그녀들의 목소리는 힘을 잃고 불안한 마음을 오롯이 혼자 감당하다가 자연스레 맘카페에 정착한다. 같은 경험을 한 사람들끼리 끈끈한 우애를 다지게 된다. 맘카페가 순기능만 있다면 좋겠지만 또 그렇지만은 않다. 그곳에는 '카더라 정보'가 너무 많다. 그래서 나도 임신 초기부터 맘카페나 인터넷성 정보보다 믿을만한 산부인과 의사의 유투브 채널이나 병원의 의사 선생님의 도움을 받으려 노력했다. 내 증상이, 내 행동이 뱃속의 아이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해소하는데 과학적 근거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의사 선생님이 언제나 친절한 것은 아니었지만 믿지 못할 정보로 혼란을 느끼는 것보다는 마음이 편했다. 만약 여성에 국한되지 않고 모두가 임신을 했다면 어땠을까? 지금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서로 정보를 나누고 도움을 받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앞서 얘기한 임산부 삶의 질에 대한 논의가 조금 더 열기를 띄지 않았을까. 많은 사람들이 고통 받고 힘들어하니 그만큼 연구도 활발했을 것이다. 임신 행위와 태아를 향한 죄책감도 조금 더 여러 사람들이 나누어 짊어졌을 것이다. 임산부를 향한 매너있는 행동이나 말 등에 대해 사람들이 조금 더 관심을 가졌을 것이다. 그런 경험들이 쌓인다면 임산부를 향한 사회의 시선이 훨씬 더 안정적이고 편안해지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 마지막으로 임산부에게 외모평가는 절대 하지 않는게 좋은 것 같다. 해서 좋을 게 없다는 말이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평균'에 대한 집착이 심한 집단에서 임산부를 향한 '한마디'는 그냥 한마디가 아닐 수 있다. 나도 임신 후 체중이 늘지 않아서 초조했던 경험이 있다. 반대로 갑자기 훅 늘면 평균보다 늘어버린 건 아닌지 불안했다. 찌면 찌는대로, 빠지면 빠지는대로 평균치에 들어가는지 스스로 계속 검열한다. 그러니 배가 크네, 작네, 모양이 예쁘네, 이상하네와 같은 말들은 목구멍에서 굳이 꺼내지 않는게 낫다. 누구든 자신의 신체를 평가 받는 건 기분 나쁜 일이다. 임신을 했다고 해서 배나 체형에 대한 평가를 감당할 필요도 없다. 그러니 제발 매너있는 시선과 말로 임산부들을 대했으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