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장애아이를 키우면서 다른 장애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이 불편했다. 그들과 같은 처지라는 사실을 인정하기가 싫었다. 내 아이의 장애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생각했는데 신체 건강하고 내 손을 잡고 간다면 세상 어디든 튼튼한 두 발로 걸을 수 있으니 발달이 조금 더딘 아이지만 장애 중에 상급이다 생각했었다.
장애등급에 따른 차별에 스스로 갇혀 있던 셈이다. 아이의 장애등급을 아이의 정체성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우리 아이는 다른 자폐 아이들과 달리 말을 하는 자폐 아이, 엄마를 좋아하는 자폐 아이, 친구들을 좋아하는 자폐 아이라 언젠가는 다른 일반 아이들과 같은 모습으로 변할 꺼라는 믿음을 가지고 아이를 다그치며 공부를 가르치고 있다. 그리고 나의 일과는 하루종일 둘째를 쫓아다니며 24시간을 함께 하는 엄마로 살기였다. 하루라도 몸이 피곤하지 않은 날이 없이 아이에게 매달렸고 어쩌다가 자기 전까지 피곤하지 않은 날은 엄마로서 최선을 다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눌려있었다. 그와 동시에 엄마가 이렇게 열심히 아이를 가르치고 상호작용을 하도록 도우지만... 내 아이의 한계는 이렇습니다.. 하며 스스로를 불쌍하게 여기는 엄마였다.
도움이 절실히 필요했지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은 장애를 가진 엄마로서 아이를 책임지지 않겠다고 공표하는 것과 같이 느껴져 항상 피곤한 삶을 자청해서 살고 있던 것이다. 도움을 요청하고 그 시간에 잠을 푹 잤더라면 지금과는 다른 나로, 엄마로, 여자로 살았을텐데...
나는 항상 열심히 아이를 돌보고 케어하고 센터를 함께 다니며 쉼없이 아이에게 언어자극을 해주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빠져 있다. 내 아이도 다른 아이들과 같이 아이일 뿐인데... 남들 시선이 두려워 아이가 아이답게 자라지 못하도록 강요하고 있던 것이구나~! 정말 책으로 많은 것들을 깨달았습니다.
작가님의 곰처럼 우직한 남편은 없지만... 주말에 쉼을 주기 위해 나름 노력하고 둘째를 재우기 위해 애쓰는 남편 덕에 오늘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9살이 되었지만 영원히 4살 아기처럼 사랑스러운 둘째 덕분에 오늘도 살아가고 있습니다. 영원히 사랑스러울것 같은 둘째와 함께 생활하고 함께 잠드는 것이 오늘도 힘들었고 내일도 힘들테지만... 그 또한 내 아이가 가진 여러가지 성격이나 특성 중의 하나일 뿐이며 영원히 사랑스러운 아들을 아주 길게 사랑해주고 싶네요~ 작가님이 글쓰기를 통해 내적 치유를 맛보았든이 저도 엄방의 다양한 글쓰기를 함께 하면서 불안감은 조금씩 사라지고 오로지 나라는 사람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보내게 되어 행복합니다.
둘째의 컨디션이나 둘째의 에피소드에 따라서 들쭉날쭉해던 내 컨디션과 기분에서 이제는 정말 벗어나고 싶다. 꾸준한 글쓰기와 내면 들여다보기를 통해 나도 이제 아이와 나를 분리해 오로지 나라는 사람에 더욱 집중해 보고 싶다~! |
장애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불편하지만 불행한 삶은 아니라는 작은 깨달음을 독자들과 함께 나누었으면 좋겠다. P9
저자는 장애에 대한 프레임을 바꿔주었다. 장애는 그저 조금 불편한 것일 뿐이라고 말이다. 내가 나의 작은 키를 불편해하듯이, 남편이 구부정한 허리와 어깨를 불편해하듯이. 장애는 고통이나 아픔, 슬픔이나 좌절같은 감정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또 하나, 백순심 저자는 몸의 불편함 이외에 마음의 불편함도 이야기한다. 몸의 불편함은 사는 데 아무 지장 없지만, 마음의 불편함은 책 곳곳에 남아 있었다. 어쩌면 저자는 마음의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이 책을 썼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편하지만 사는 데 지장 없습니다>를 읽으며 저자의 입장에 몰입해 읽다 보니 그 불편함을 공감할 수 있었다. 그래, 정말 불편했겠구나. 시선 하나, 단어 하나, 생각 없이 했던 행동들도 상대를 불편하게 했을 수도 있겠구나. 모든 것을 조심했어야 했다. 상대의 입장이 되어보지 않았기 때문에 한 번 더 생각하고 말했어야 했다.
내 마음도 불편했다. 내가 배려라고 생각했던 행동 이면에 차별이 숨어있었다는 걸 발견했기 때문이다. 내가 때로는 저자의 초등학교 친구가 아니었을까, 대학교 동창이 아니었을까, 직장 동료가 아니었을까.
책을 덮고 며칠을 음미하며 저자가 일으킨 내 마음 속 파동에 이름을 붙여보려 노력했다. 수면 아래 숨어있던 밑바닥 감정의 정체는, 불안이었다. 불편의 감정 아래 불안이 있었다. 살면서 많이 마주치지 못해서, 어쩔 줄 몰라서, 겪어본 적이 없어서 실수 할까 봐, 상처 줄까 봐 불안했던 것같다. 어릴 때 옆반이었던 몸이 불편한 친구를 안절부절하며 주위에서 뱅뱅 돌았던 것부터 엘리베이터에서 가끔 마주치는 20층 아주머니를 자연스럽게 쳐다보지 못했던 것까지 모두 상처가 될까봐 두려웠던 것 같다.
그러다 백순심 저자를 만났다.
그녀는 내가 처음으로 만나보고 대화해보고, 그 사람을 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가까워진 장애인이다. 그녀는 내 불안을 없애주었다. 그녀는 씩씩하고 건강하며 밝고 영민하다. 단지 몸이 조금 불편할 뿐이고 장애를 안고 사는 건 사는 데 아무 지장이 없다는 걸 몸소 증명하는 사람. 나와 비슷한 면도 있고 다른 면도 있는 똑같은 사람, 여자, 아내, 엄마이다. 저자를 알아갈수록 불안은 줄고 희미해졌다. 그녀와 대화하면 할수록 편안해졌다. 장애에 대해, 장애인에 대해 알면 알수록 그들이 편안해진다는 것을 그녀를 통해 알게 되었다. 어제 우연히 휠체어를 사용하는 장애인이 차에 탑승하는 법에 대한 유튜브 영상을 보게 되었다. 혼자서도 할 수 있구나! 그냥 조금 다른, 또 하나의 방법으로 살아가고 있구나! 딱하거나, 안됐다거나, 혹은 유별난 게 아니라 그냥 그런 거구나! 느끼며 장애인에 대해 더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들을 알고, 만나고, 부대끼며 배워야겠다고 말이다.
나는 저자와 친구가 되었다. (순심씨는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자랑스럽고 사랑스러운 나의 친구, 백순심 씨. 좋은 책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음속 불안이 올라올 때마다 당신을 생각하고, 이 책을 열어볼게요.
마음에 남는 글귀
장애인을 국가가 책임진다는 의미에서는 우리나라와 같지만 나아가는 방향이 다르다. 우리나라는 장애 수당을 지급할 테니 목소리를 낮추고 살라고 한다. 또한 장애인은 한정된 직업군 안에서 자신이 원하지도 않는 일을 하면서도 고마워해야 하는 구조다. 이 의미는 우리나라는 장애인 당사자가 주체적으로 살아가기보다는 주어진 환경에 맞추어 살기 바란다는 것이다. P48
힘든 것과 키우지 못하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힘들다고 그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것은 차별이다. P100
예전에는 장애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은 낙오자 같았습니다. 그 이미지를 지우는 방법은 ‘장애’를 극복하는 것이라 생각했고, 그러기 위해 치열하게 살았습니다. 살아오면서 내린 결론은 ‘감춘다고 감춰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장애는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인정하는 것’이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P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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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하지만 사는데 지장 없습니다 이 책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같은 하늘에서 사는 세상을 꿈꾸며 장애를 가진 작가님이 쓰신 책입니다. 처음에 이 책을 보고는 가장 먼저 제목이 참 마음에 들었습니다. '불편하지만 사는 데 지장 없습니다' 참 단순한 말인듯 하지만 나름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었던 저에게 참 위로가 되는 말이었습니다. 그래, 사는 데 지장없으면 됏지뭐. 뭘 그렇게 힘들어하니... 라고 저 자신에게 위로를 던지는 것만 같았습니다. 그리고는 장애인들과 함께하는 직업을 가진 저에게 장애인이 이 세상을 살아가며 본인의 시선에서 느낀점을 담은 글이라고 하기에 그분, 그리고 장애를 가진 분들의 생각과 시선이 참 궁금했습니다. 요즘은 사업장이나 교육기관, 공공기관 등에서 장애인식개선교육이 의무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지만, 대부분은 비장애인의 시선에서 장애인을 바라보는 내용들이 많다고 느꼈고, 장애인과 한번도 그들의 삶에 대해 깊이 있는 대화를 해보지 못했기에 그들의 삶을 그들의 시선에서 보고 싶은 마음으로 이 책을 펼쳤습니다. 육아로 인해 지쳐있던 시기에 '조금씩 나누어 읽자.'라는 마음으로 펼친 이 책은 정말 흡입력있게 빨아들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간결하고, 담담한 문장들이 마음을 울렁울렁이게 하고, 참 힘든삶을 살아오셨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이 책이 나오기까지. 그리고 힘든 시기에 곁에 있던 좋은 사람들 덕분에 또 이렇게 멋지게 살아오셨구나 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음.. 이 책을 다 읽고나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나도 작가님처럼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삶을 살아가며 모든 일에 참 당당하고 멋지게 살아온 모습들이 보였고, 높은 자존감이 더 멋진 사람을 만드는 구나 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참 힘들게 살아온 과정이지만, 장애라는 것을 하나의 정체성으로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면서 그리고 모든 일에 어쩌면 '쏘~~쿨'한 모습들을 보면서 나도 이렇게 담담하게, 그리고 당당하게 살아나가야지라고 느끼는 시산이었습니다. 작가님이 꿈꾸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같은 하늘 아래에서 함께 행복하게 살아가는 세상이 봄바람처럼 따스하게 우리에게 다가오길 바래봅니다. 그리고, 이 책을 편찬해내신 작가님께 존경의 마음을 담아 감사인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
나는 장애인의 가족이다. 나의 하나뿐인 동생은 지적장애 2급이다. 약간의 자폐증상도 있어 복합장애라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할듯 싶다. 현재 지능은 10세정도. 처음에 등급판정을 받을때는 5~7세정도의 지능이었다. 장애는 선천성인지 후천성인지 잘 모르겠지만, 아이를 키우는 엄마가 되어 생각해보니 내동생은 '후천성'일 것 같다. 내가 3살때, 40도의 고열로 뇌수막염을 앓고 있는데 동생이 태어났다. 엄마는 한 차례 고비를 넘겼다고 생각했지만, 동생이 3살이 되고 고열을 앓았다. 그 때 아마 뇌에 이상이 생겼을거라 했다. 아이들에게 고열은 꽤 위험하니까. 나는 사람들에게 동생을 소개할 때는 '마음이 아픈 아이'라고 소개했다. '장애인'을 막말하는 동급생들을 보면서 속으로 부글부글 화가 끓어 내 입에 '장애'라는 단어를 올리고 싶지 않았다. 그들도 비장애인들과 똑같이 태어났고, 똑같은 삶을 살아가는데 차별을 받고, 놀림을 받고, 손가락질을 받는 걸 부당하게 생각했다. 장애인의 누나로 살아가면서 정말 많은 에피소드도 있고, 마음앓이도 있었다. 지금도 동생만 생각하면 눈물부터 나기도 한다. (어째 단 한 번도 동생 이야기를 하며 안 울어본적이 없다.) 사회속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는 장애인들의 인권을 눈 앞에서 목격했음에도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는 다르다. 자신의 장애를 드러내고, 인정하며 장애인들의 인권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해 힘썼다. 그 노력의 결과로 이렇게 책까지 나오게 되었다. 장애에 대한 편견이 있는 사람들에게!! 꼭 읽으라고 하고 싶다. '한 번 읽어봐'가 아니라 '꼭 읽어. 꼭꼭 씹어서 읽어.'라고 이야기 하고 싶은 책이다.
나는 친구들에게 감추지 않고 늘 먼저 이야기를 했다. 내 동생은 마음이 아픈 아이라고, 지적장애인이라고. 그럴 때 친구들의 반응을 보면 오래 갈 친구인지, 아닌지가 눈에 보였다. 나를 '어쩌다...'라며 동정의 눈빛으로 바라보는 친구도 있었고, '근데 그게 뭐 어때서?'라며 아무렇지 않게 넘기는 친구도 있었다. 나는 후자의 친구들과 지금까지도 연락을 하며 지내고 있다. 내가 이렇게 서슴치않고 이야기를 하면 생각보다 편견없이 그냥 받아들이는 친구들이 많았다. 책의 이 구절을 보면서 나의 친구들이 불쑥 떠올랐다. 어른들보다 아이들이, 고등학교때 친구들보다 초등학교때 친구들이 '장애'를 받아들이는 것이 더 수월했고 더 많았다. 지금의 우리 아이들에게 가끔 교육을 해주어야 하지 않을까. 이렇게 순수한 아이들이 자라면서 색안경을 끼고 장애인들을 바라보지 않도록 말이다. 친정에 다녀오면 우리 아이들에게 꼭 이야기한다. 삼촌은 지금 사랑이 필요하다고, 관심이 필요하다고. 너희와 다를 것 없는 똑같은 사람이라고.
최근에 엄마가 나에게 정말 흘리듯이 털어놓았다. "내가 지금 이렇게 벌어야 나중에 엄마아빠가 없어도 너한테 동생을 부탁하지. 뭐라도 쥐어주고 부탁을 해야지. 엄마아빠 사망보험금도 가득 채워서 네 앞으로 해놨어." 엄마 아빠는 지금 30년째 맞벌이중이고, 아빠는 내년 여름에 정년퇴임이다. 점점 연세가 들어갈수록 부모님은 많은 걱정을 하실거다. 아니 우리가 태어나고부터 줄곧 고민하고 계셨겠지. 동생이 장애를 갖고 있고, 나는 결혼해서 세 아이 육아에 치여있는데 딸에게 사위에게 짐으로 남겨질 자신의 아들을 잘 부탁한다는 마음으로 돈을 벌고 계신거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는 웃으며 말했다. "엄마, 내가 애가 셋이고 아무리 손가락을 빨면서 살지언정 하나밖에 없는 피붙이를 버리겠어?" 나는 정말 당연하게 생각했다. 부모님이 나중에 노환으로 이 세상과 작별을 하시게 되면 당연히 동생은 나랑 살아야 한다. 무슨 소린가. 내가 있는데 얘를 어디로 보내. 나의 결혼조건 1순위였다.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내 동생과 같이 살 사람이. 지금 내 남편이 바로 그런 사람이다. 장애인으로 보지 않고 한 사람으로 봐주는 사람이다. 그 부분에 대해선 감사하다. (그렇지 않았다면 결혼하지 않았을수도 있다.) 이 책에서 해식 씨의 어머님의 말에 나는 한참을 숨죽여 울었다. 죽기전에 거처를 마련해 두어야 한다는 말... 자신이 죽기전에 해식 씨는 살아야 하니 거쳐를 마련해두어야 한다고 시설에 입소시켰다. 하지만 해식 씨의 부적응으로 결국 퇴소했다. 우리 엄마의 소원이 떠올랐다. 내 동생보다 하루 더 사는 것. 나에게 짐으로 동생을 맡길 수 없다며 하루 더 살고 싶다셨다. '엄마, 짐이 아니야. 내 동생이야.'라고 말했던 기억이 있다. 우리 엄마의 마음과 해식 씨 어머님의 마음은 같았을거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을만큼 수천 수만가지의 생각이 겹치고 겹치고 겹쳐서 자신을 흔들고 있었을 것이다. . 우리 사회의 시급함을 절실히 느꼈다. 장애인의 인권존중, 생활권의 배려, 장애인 가족에 대한 심리치료. 이 모든게 정부차원에서 제공해주어야 할 기본사회서비스가 아닐까 싶다. 장애인 가족의 동반자살 이야기를 듣고 솔직하게 나도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차라리 한꺼번에 다 같이 죽자. 엄마가 입밖으로 이 말을 꺼냈을때 나는 주저없이 말했다. '그러자.' 그만큼 장애인과 장애인 가족에게 배려가 없는 이 세상에서 사는 것은 지옥과도 다름이 없었다. 몸은 장애인으로 살아가지만 생각은 그 누구보다도 뚜렷한 장애인들의 마음치료, 그런 장애인들을 각박한 세상에서 어떻게든 데리고 살아가는 가족들의 마음치료가 나는 꼭 주어졌으면 좋겠다. 저자가 느꼈던 피해의식만큼은 아니지만 나 또한 피해의식으로 살아가고 있다. '동생이 아프니까 내가 더 잘해야해.'라며 내 자신을 쪼이고 더 쪼였다. 친구들과 방과후에 놀아본 적이 없다. 무조건 학교-집이었다. 학원도 5학년이 되서야 저녁반 수업을 들었다. (엄마가 퇴근하고 와서 학원을 갔다.) 친구들 앞에서 내 동생의 이야기를 당당하게 이야기했지만 나의 마음은 알게 모르게 작아지고, 상처받고 살아왔었다. 그런 장애인을 위해, 장애인 가족을 위해 사회가 변화되었으면 좋겠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같은 하늘에서 사는 세상을 꿈꾸며. |
저자는 뇌병변 5급, 마흔한 살의 장애인이다. 현재 장애인 복지시설에서 근무하고 있는 18년 차 사회복지사로, 쌍둥이를 기르는 엄마이기도 하다. 사람들에게 장애인이자 엄마로 사는 이야기와 장애인 사회복지사가 바라보는 사회복지 현장에 대해 알리고 싶은 마음을 이 책에 담았다. 장애인으로 살아오면서 겪었던 차별과 억압을 비장애인이 이해할 수 있을까. 전부 다 이해한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그건 그 누구의 삶이라도 마찬가지. 사회적 약자로 차별받아 본 적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나를 포함) 공감하고 함께 아파하고 또 용기를 얻을 수 있는 내용이었다. 좋은 글이란 어떤 글일까. 무엇보다 부끄러울지언정 꾸미지 않는, 솔직하고 내밀한 나의 이야기를 쓴 진솔함이 담겨 있으면 자연스럽게 마음이 연결되는 감동적인 글이 되는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참 좋은 글이 담긴 좋은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있는 모습 그대로 나를 인정하며 사는 것' 참 간단하면서도 어려운 이 진리를 온몸으로 통과하면서 보여주는 글이다. 글 속에는 담담하게 담겨 있지만 그렇게 인정하기까지 담담해지기까지 얼마나 아팠을까. 상상이 되면서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아는 만큼 보이는 것들. 장애인들의 삶이 더 많이 노출되어야 한다. 일상에서 접촉할 기회가 많아질수록 이해할 수 있는 폭이 넓어질 것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장애인을 보기 어려운 사회는 바람직한 사회인가? 시끄럽고 위험하다고 노키즈존이 되고,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장애인의 대중교통 이용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세상? 그 누구라고 한들 사회적 약자가 될 수 있는 세상에서 더불어 살려고 하지 않는 사회는 불안하게 느껴진다. "장애가 있다는 사실 자체가 불행을 의미하지 않으며, 장애인 역시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누구의 삶과 누구의 삶을 비교하는 것은 의미가 없지만.. 저자의 단단하고 행복한 삶을 엿보며 부럽다는 생각까지 든다. 장애를 극복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사랑하는 삶의 모습이 참 아름다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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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하지만 사는 데 지장 없습니다 / 백순심 이 책은 나약해져 있는 모든 이들에게 희망을 준다. 일어설 힘을 보탠다. 자존감이 한참 낮을 때였다. 나는 왜 쌍커플이 없을까 바꿀 수 있는 건 없었다. 수술할 생각도 없었다. 아니, 수술을 한다한들 허리를 잘라 낼 수 있는가? 하하 다리를 늘릴 수 있는가? 내가 그러고 싶어서 그런 것도 아닌데? 그거였다. 내가 원해서 얻은 것들이 아니다. 그 뒤로 잘생기고 예쁜 사람, 날 때부터 체형이 예쁜 사람, 그들도 그들이 원해서 얻은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니 위축될 이유가 없었다. 장애도 마찬가지다. 자기가 원한 것이 아니다. 백순심 작가는 '있는 모습 그대로 나를 인정하며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자신의 가치는 스스로 만들어 나가는 것이라고. 부족한 점이 누구에게나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작가의 말처럼 자신의 가치는 스스로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바꿀 수 없는 것에 의미를 부여할 것이 아니라 자기만의 가치를 찾아 가꿔나가면 된다. 자기만의 향기는 외모나 장애로 탁해지는 것이 아니다.
작가는 장애인, 비장애인 할 것 없이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존중하기를 바란다. 비장애인에게 장애인을 도와주기 전에 도움이 필요한지, 도와주어도 괜찮은지 묻고 돕기를 당부한다. 장애인에게는 비장애인이 설령 자신을 도와주지 않더라도 상대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 당부한다. 백순심, 그녀 곁에 있던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나는 어느 정도의 위치였을지 비추어본다. 편견없이 그녀를 대하던 좋은 사람이었는지, 대가 없이 그녀의 시험에 도움을 주던 친구였는지, 무례하게 원치 않는 도움을 주던 사람이었는지, 배려하는 척 깍두기를 요구하던 친구는 아니었는지 말이다. - "식판을 들어주는 것이 귀찮다고 자기 의사를 밝힌 선생님의 마음을 알게 되어 다행이고, 귀찮은 일임에도 불구하고 나의 식판을 들어주는 선생님들의 호의에 대해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p72) 그녀의 넓은 마음, 문제를 바라보는 시선, 내가 바꿀수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하는 능력들을 배운다. 마음이 약해졌을 때, 상처받았을 때, 자신을 다스리는 방법을 따스히 전해준다. - "아이들이 갑자기 열이 나거나 조금만 다쳐도 대게 엄마들은 자신이 잘못해서 아픈 것 같아 죄인이 된다. 차라리 내가 아팠으면 하는 마음이 든다. 그 마음은 아이가 다 나으면 곧 사라진다. 친정엄마는 그 미안함을 사십 평생 돌덩이처럼 가슴에 안고 살아 왔다. 나는 아픈 사람이 아니다. 단지 불편할 뿐이다. 그 불편함도 다양한 방식으로 해결하고 있다. 이제는 엄마가 그 무거운 마음의 짐을 내려놓으면 좋겠다."(p68) 그런데 한편 자신의 아이는 장애를 갖지 않길 바랐다. 그녀의 담담한 고백은 매우 진솔하다. "나는 아이들이 나와 똑같은 장애인으로 태어나지 않은 사실에 감사하다. 다른 이들이 '장애'를 이해해주기를 바라면서도 아이러니하게 임신 당시에 나는 '아이들이 장애를 가지고 태어나면 어떡하지?'하며 걱정했다. 내가 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실은 받아들여도 내 아이들이 장애인인 것은 받아들일 자신이 없었다. 아마 내가 장애인으로 살아오면서 불편함을 몸소 체험했기에 아이들에게는 물려주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125)" 나의 좋은 점과 남편의 좋은 점만 닮았으면 하는 욕심처럼, 작가의 바람은 당연하다. 좋은 것만 주고 싶은 엄마의 마음은 어쩔 수 없다. 나도 그녀도. 그 어떤 부모가 아닐 수 있겠는가. '엄마, 난 괜찮아'하는 씩씩하지만 편안한 그 마음도, '아이들은 장애가 없어서 다행이다'하는 안도감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어 괜시리 위로가 되었다. - 우리나라 장애시스템이 선진화되려면 꽤 많은 노력이 필요하겠다 싶다. "우리나라는 장애수당을 지급 할 테니 목소리를 낮추고 살라고 한다. 또한 장애인은 한정된 직업군 안에서 자신이 원하지 않는 일을 하면서도 고마워해야 하는 구조다. 이 의미는 우리나라는 장애인 당사자가 주체적으로 살아 가기보다는 주어진 환경에 맞추어 살기 바란다는 것이다. 뿐만아니라 장애인의 인권과 그들을 돕는 행동수정기법 사이에서의 균형이 필요하겠단 생각이다. "인권이 중요시되는 대신 장애인들의 거주권과 재활서비스가 축소되거나 사라지고 있다"고 한다. "예전에 장애인들의 재활을 위해 개입했던 행동 수정이 이제는 강압의 의미로 변했다(p147)"고 한다. 사회적 약자인 아이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유아의 인권과 문제 행동 수정을 위한 훈육, 그 사이에서의 균형과 일맥상통하다. 중심을 잡는 일이 어떤 일에서나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금 생각한다. -
- 해당 도서는 출판사로부터 무료제공 받았습니다. |
장애인과 이야기를 나눌 때 '비장애인'이라는 용어를 쓴다. 예전에 비하해서 사용하는 용어 대신 시각장애인, 언어장애인, 청각장애인, 지체장애인, 지적장애인과 같은 말로 바꿨다. '결정 장애' 대신 '우유부단', '벙어리장갑' 대신 '손 모아 장갑'이라고 한다. 이 책의 작가는 평균연령이 40~50대인 장애인 시설에서 일하는, 뇌병변 장애를 갖고 태어난 장애인이다. 결혼한 두 아이의 엄마이기도 하다. <불편하지만 사는 데 지장 없습니다>는 비장애인들과 똑같은 하나의 인격체로, 같은 하늘에서 그들과 어울려 사는 세상을 꿈꾸는, 그런 바람이 담긴 장애인의 이야기다. 일일 장애인 체험으로 그들을 이해한다고 생각하나? 잘못된 생각이다. 비장애인들이 전혀 상상하지도 아니 상상할 수도 없는 차별과 모욕을 장애인들은 감내하며 산다. 비장애인들은 전혀 의식하지 못한다. 어린 작가를 앞에 두고 주변 사람들은 심한 말을 서슴지 않고 한다. 마치 장애인은 못 알아듣는다는 듯이. 작가는 어린 시절 깍두기였다. 이편도 저편도 아닌 양쪽 편이 다 되는. 친구들은 그나마 놀이에 깍두기로 끼워줘서 배려했지만 그에게는 차별이다. 선생님은 반 아이들에게 훈계용으로 작가를 이용한다. "순심이는 장애가 있어도 열심히 하는데 너희들은 뭐하니?"라고 말하며. '장애인 특별전형'을 하는 대학교는 '장애인 도우미 제도'도 운영하지 않고 경사로도 없다. 대한민국 헌법에 명시된 '모든 국민에게 교육받을 권리'를 무시한다. '장애인 우대'라고 채용공고를 내고 '정상에 가까운 장애인'이 아니면 뽑지 않는다. '우리는 장애인을 채용하려 했는데 적격자가 없었다'라는 보여주기식이다. 사람들은 '장애인이 결혼해서 아이 낳고 잘 살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한다. 인격체로 보지 않는다. 장애인의 자녀들도 삐딱하게 본다. 작가와 같이 손을 떠는 장애인은 패스트푸드 점의 키오스크를 이용할 때 애를 먹어 포기한다. 비장애인들은 언제나 탈 수 있는 지하철이 어떤 장애인에게는 '타보고 싶은 꿈'이다. 심지어 어떤 비장애인은 장애인이 성기가 없는 줄 안다. 비장애인은 쉽게 얻을 수 있는 것들이 장애인에게는 간절함이다. 비장애인은 장애인을 당연히 '을'로 여기며 갑질을 일삼는다. 장애인이 엄청나게 노력해서 얻은 '익숙함'이 비장애인에게는 어설프기 그지없을 뿐이다. ''장애'는 신체적, 정신적인 기능이 제한되어 고칠 수 있는 병이 아니다. 약물이나 재활을 통해 조금은 호전될 수는 있지만, 완치되지는 않는다. (p. 57)' 이런 사정을 모르고 보행이 불편한 장애인에게 자꾸 걸어보라고, 노력해 보라고 그럴싸하게 강요한다. 비장애인의 기준으로 모든 걸 마련해놓고 장애인에게 그 시스템에 맞춰 살라고 한다. ''극복'은 대체 무엇일까? 자신의 나약함을 마주할 때 '이제는 아무렇지 않아요'가 극복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의 나약함과 부족함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일이 '극복'이라는 생각이 든다. (p. 74)' ''장애는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인정하는 것'이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 사실을 인정하기까지 40년이 걸렸습니다. (p. 191)' 작가의 말을 귀 기울여 보면 장애인이라고 늘 불행하지는 않다. 놀림의 대상이던 시절에는 '장애인들만 모여 사는 섬'에서 살고 싶었고, 비장애인의 삶이 부러워 단 하루 만이라도 비장애인으로 살고 싶었다. 하지만 작가는 이제 자신의 장애를, 자신의 불편을 인정하고 '주체적인 온전한 나'로 살고자 한다. 장애인이나 비장애인이나 자신을 사랑하는가, 그렇지 않은가에 따라 삶이 행복할 수도 불행할 수도 있다. 사람마다 행복의 기준이 다른 법이다. 작가는 장애인인 자신을 끔찍이도 사랑한다. 불편은 느끼지만 사는 데 지장은 없어한다. |
뇌병변 5급, 사실 어떤 장애인지 잘 모르겠다. 살면서 장애인을 볼 일이 크게 없다. 생각보다 장애인들이 밖을 나오는 게 힘든 게 아닐까..... 생각한 적이 있었다. 어딘가에서 불편하게 살아가고 있을 장애인들에게 이 책이 도움이 되지 않을까? 다름을 인정해야 한다는 말은 많이 한다. 그게 성격이든, 생김새이든, 장애이든, 신념이든 간에 말이다. 하지만 실제 내가 장애인을 만나게 된다면 도와줘야 하는 사람으로 인식할 것 같다. 도움을 받아야 하는 사람, 그게 장애인에 대한 나의 인식이다. 이 책을 보면 초반에는 저자가 장애인이라 겪었던 에피소드가 있다. 그 사이에 생기는 피해의식이 어쩌면 저자를 더 크게 성장시켰을지도 혹은 더 고립시켰을지도 모르겠다. 동네의 이웃이, 학교의 선생님이, 주변의 친구들이..... 저자에게 보내는 부정적인 시선과 말과 행동, 하지만 그 중에 저자에게 도움을 준, 정말 고마워하는 사람들도 분명 있다. 감동적일만큼 중반이 넘어가면 저자가 현재 직장에서 일하면서 다른 장애인에게 도움을 주는 이야기가 나온다. 진짜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시작이다. 겪어봐야 안다는 말이 이런 걸까..... 당사자라는 의미가 이런 걸까. 좀 더 이해하고, 좀 더 세심하고, 좀 더 가까이 갈 수 있다. 저자는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직업도 있다. 장애인들이라고 이런 걸 못하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이런 것들이 쉬운 일은 아님을 알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의 인생은 이제 혼자만의 것이 아니다. 조금 더 힘을 내줬으면 좋겠다. 장애인과 비장애인, 차이는 있지만 지장은 없는 사회가 되면 좋겠다. 살면서 장애인을 가까이 만나며, 자주 마주치고, 함께 살아갈 수 있다면, 그런 것을 내 아이가 경험하며 어우러질 수 있다면 더 좋겠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끝까지 읽고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
#불편하지만사는데지장없습니다 #백순심 #설렘 출판사 #책과콩나무카페 #서평이벤트 #장애 #정체성 18년간 장애인 복지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백순심 저자는 뇌병변5급의 장애인이지만 쌍둥이 아이의 엄마이기도 합니다. 장애를 가진 이가 쓴 책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다만 우리나라가 아니고 캐나다에서 사는 20대 여성이었어요. 그녀는 큰 장애 등급을 가졌지만 논문 수준의 책을 발간했습니다. 아주 전문적이라 이해하기 쉽지 않았어요. 또 장애인 남편을 둔 아이 엄마의 이야기도 책으로 접해봤습니다. 에세이 속의 그녀의 삶과 부부를 둘러싼 주변의 우려와 편견, 비장애인이 장애인과 함께 살며 같이 경험하게 된 차별을 읽으며 깨닫는 바가 컸어요. 그리고 두 책을 읽으며 조금 아쉬웠던, 또는 독자인 내가 좀더 알고 싶었던 부분에 대하여 <불편하지만 사는 데 지장 없습니다>의 저자의 이야기를 통해 보완이 되었어요. 궁금했어요. 우리나라에서 장애를 가진 엄마이자 직장인의 삶은 어떠할까? 앞서 읽었던 책들 속에선 바로 이 부분이 없었는데 백순심 저자를 통해 그녀의 삶을 책으로나마 함께 겪으며 궁금한 점들이 해소가 되었습니다. 결국 가장 중요한 건 장애를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었어요. 저자의 말처럼 자기자신부터 받아들이기 힘들고 숨기고만 싶었지만, (선천적이고 신체적인) 장애는 고칠 수 있는 병이 아니라고요. 걷기도 힘든 장애인에게 뛰는 연습을 하라고 시키는 것과 마찬가지라고요. 저자는 자신의 장애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비장애인과 동등해질 수 없다는 걸 수긍합니다. 아무리 애써 노력해도 비장애인들이 말하는 그들의 ‘정상인 범주’ 안에 들어갈 수는 없어요. 정상과 비정상의 기준으로 나누는 것부터가 차별이고요. 비장애인과 장애인 사이의 간극은 어쩔 수 없지요. 한계가 엄연히 존재합니다. 무엇보다 저자의 책을 읽으면서 가장 와닿았던 건 장애인들을 바라보는 주변인들, 타인들의 생각이 변하지 않으면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공평한 하늘 아래서 평화로운 세상을 누리며 살기는 어렵겠구나, 이를 위해 목소리를 내며 노력해야겠다는 점이었습니다. 인상깊은 구절 ‘장애인들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생각은 편견이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장애인을 만나보지 못한 사람들이다. 장애인에게 관심을 가지고 관계를 맺으면 그들의 강점이나 재능을 발견할 수 있다. 비록 비장애인보다 할 수 있는 범위가 좁아도 잘하는 것, 좋아하는 것 한 가지씩 있다. 못하는 것에 목숨 걸로 좌절하기보다는 잘하는 것 하나만 있으면 되지 않을까 싶다. (144쪽) 장애는 병처럼 고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극복해서 비장애인과 똑같아질 수도 없어요. 장애를 가진 게 어떤 이보다 부족하다고 여기는 건 편견이고 차별입니다. 저자의 말처럼 장애는 그 사람의 정체성이 됩니다.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건 당사자뿐 아니라 그를 둘러싼 주변인 모두에게도 필요한 일입니다. 내가 어떠한 편견을 가지고 있었는지 돌아볼 수 있도록 <불편하지만 사는 데 지장 없습니다>를 추천합니다. 이 책은 책과콩나무 카페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았지만, 솔직한 저의 견해로 작성하였습니다. |
이 책은 저에게 좀 남 다르게 다가오는 책이었어요. 어린 시절 가족 중에 장애를 가진 사람이 있었던 저는 책 제목부터 너무나 공감이 되었어요. '불편하지만 사는 데 지장 없습니다.' 장애는 극복의 대상이 아니라 한 사람의 정체성일 뿐이라는 말.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같은 하늘에서 사는 세상을 꿈꾼다는 말. 그냥 스쳐지나 갈 수 없이 공감되었습니다. 저자는 뇌병변 장애인으로 태어나 늘 깍두기 같았던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해요. 하지만 주위 걱정과 달리 좋은 사람을 만나 결혼했고, 쌍둥이를 키우며 워킹맘으로 살고 있습니다. '장애'와 관련된 주제와 시선으로 다양한 형태로 글을 쓰며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사이에서 소통 가로 살고자 장애인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 중이라고요. 사실, 비장애인이라고 명명한지도 얼마 되지 않았어요. 제가 어릴 때만 해도 비장애인이라는 말 대신 정상인이라는 말을 썼던 것으로 기억해요. 아마도 그냥 자연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는 그 말이 사실은 얼마나 차별을 담은 말인지 깨닫는 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어요. 제 가족 중에 후천적으로 장애인이 된 그 분이 얼마나 많은 차별을 당하고 얼마나 편견을 가진 시선을 받으며 살아야 했는지 가까이서 지켜볼 수 밖에 없었으니까요. 있는 모습 그대로 그냥 한 사람일 뿐인데, 장애를 얻었다는 이유만으로 살아오면서 겪었던 차별과 억압, 그걸 고스란히 옆에서 느끼고 또 느꼈습니다. 지금도 많이 인격적으로 대우하는 것으로 바뀌었다고 하지만 아직 사회 구서구석에 뿌리로 남아있는 것들은 여전히 몸이 불편한 사람들이 눈치 보는 삶을 살아가야 할 수 밖에 없게 만듭니다. 장애가 마치 불행인 것처럼, 피하거나 혹은 동정하거나 하는 시선을 받는 대신 몸이 불편하긴 하지만 이 사회를 살아가는 데 있어서 눈치 보지 않고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는 그 날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이 책을 읽었습니다. 사실 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주위에서 어떻게 하지 않아도 몸이 불편해 평범할 수 없고, 어느 일정 부분은 스스로 많은 용기를 내야지만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18년간 장애니 복지현장에서 일하는 두 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이야기들을 읽으며 이 책에 담긴 그 소망을 읽으며 장애인의 가족으로 살았을 때와는 또 다른 제 3자의 시선으로 장애인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저자의 소망을 저 역시 동감하며 응원합니다. 좋은 책 읽게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이?책은?책세상?맘수다카페를?통해?업체에서?도서를?무상으로?지원받아?작성한?솔직?후기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