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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들어 수업을 하면서 화가 많아진(?) 내 모습을 발견하곤 했다. 아이들은 분명 변함이 없고 내 수업을 심지어 줄어들었는데도 불구하고 수업이 매우 힘들고 짜증마저 나는 날도 늘어가고 있음을. 특 별히 힘든 것도 없고 다른 이유들도 오히려 없었음에도 내 안에 왜 이렇게 많은 분노들이 자리잡고 있는 것일까. 고민하고 고민하며 분노, 화, 온유 등의 소재로 이야기가 써내려가는 서적들을 많이 찾아보았다. 나와 같이 내안의 분노를 잠재우고 싶어하는 사람이거나 지혜롭게 모든것을 해결하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읽는 내내 마음이 무겁고 아팠던 지난 시간들이 떠올라 힘들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망을 보게 하심에 감사하게 되는 책이다 이 책은 특별하게도 많은 예시와 더불어 ' 분노 점검 체크리스트 ' 와 '분노를 경건하게 이끄는 기도 가이드'가 제공된다. 그래서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는 감정이자 어쩔 수 없이 나도 모르게 번져가는 이 마음을 조절할 수 있는 체크해보는 것도 좋을 듯 하다.
P.39_ 인류 최초의 죄를 불러 온 것은 바로 권력을 손에 쥘 수 있다는 가능성, 통제에 대한 기대, 소유할 권리, 강한 자만심,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이었다. 죄는 착각, 일종의 정신이상이다. 이들의 분노는 자신이 찾고자 하는 것을 오히려 망가뜨리고 있다. :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바로 " 하나님이 되고자 하는 숨은 욕구" 분노의 핵심을 들여다 볼 때 마다 우리는 하나님이 되려는 욕구를 발견하게 된다. 칭찬받고 싶어 하는 욕구의 인간이기에 언제 어디서든 우리는 훌륭하고 영예롭기 원하며 그 부분을 존중받고 싶어 한다. 그러나 절대 권력으로 통제하시고 모든 것을 소유하며 영원히 칭송받아야 하시는 분은 단 한분 ! 하나님밖에 없을 놓쳐서는 안됨을 책은 계속 말해주고 있다.
P.61_ 분노는 그 정당성에 대한 깊은 확신과 연결될 때 특히 위험하다. P.63_ 우리는 스스로 옳다고 꽤나 확신한다. 이 분노는 강력한 자기 의에서 비롯된 것이다. 분노는 자기 의와 결합할 때 가장 해롭기 마련인데 자기 의는 회개의 가능성을 부정하기 때문이다.: 분노는 엄청난 파멸의 근원이고 최악의 해를 불러오는 원인이 되기 때문에 매우 심각한 문제이다. 그런데 나의 정당성에만 의미를 부여해서 회개하지 못한다면 분노는 잡을 수 없을만큼 커져버릴 수 있으니 우리는 늘 나의 분노가 정당한지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P.102_ “하나님의 분노는 선하다 ” 죄악된 분노를 포기하고 의로운 분노를 발하시는 유일한 분께 맡기라. 그분의 분노는 완전히 선하다.
: 하나님은 완벽하게 선하신 분이시다. 그러니 하나님의 분노는 선함에서 오는 것이다. 우리의 분노는 그 본질을 찾아보면 무엇을 위해서 인지 알 수 없을때가 종종 있으나 하나님은 아니시다. 하나님은 완벽하신 분이시기에 그분의 선함을 믿고 맡겨야 한다.
사실 그 구절을 묵상할때마다 심판은 하나님께 있으니 하나님께서 노하셔야 하지만 내 생각과 뜻대로 되지 않을때 ( 하나님의 분노가 너무 느리다고 생각할때 , 즉각적인 반응이 나타나지 않는다고 여겨질때 ) 나는 '거룩한 분노' 라고 칭하며 분노할때가 많았다. 하나님은 노하기를 더디하시는 분이시니 내가 더 거룩하게 분노합니다 라는 마음이였던 거 같은데 이 책을 읽으면서 많이 반성했다.
나의 분노는 정말 거룩했을까. 하나님 보시기에 나의 분노는 과연 선했을까.
P.193_ 서서히 다른 욕구가 생겨났다. 그리스도를 따라 살아가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자 하는 욕망이 솟아났다. 이제 출근하면서 그가 던지는 질문은 “ 오늘 상사에게서 제대로 된 대우를 받을 수 있을까?” 가 아니라 “ 오늘 내 삶이 주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을까?”로 바뀌었다. 이제 그에게는 할 일이 있다. 가치있는 일 말이다. 그는 그리스도를 닮아 갈 수 있다. 그렇게 그분을 닮아갈 때 그가 주님을 기쁘시게 하고 있음을 알수 있다.
: 정말 힘들었던 직장생활과 신앙생활할때가 떠올랐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은 이게 아니지 않을까 수없이 많은 밤을 지새웠고 수없이 많은 눈물을 흘렸던 적이 있었는데 그때 내마음 속에 사람이 아닌 하나님을 위한 삶을 기도했었다. 여전히 화가 치밀어 오르는 분노에 감싸질때가 많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은 하나님의 자녀이니 좀 더 가치있는 일을 하자고 다짐해 본다. 그렇게 하나님을 닮아갈 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가치있는 내가 될 것이라 확신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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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분노] 한 때 분노에 휩싸여서 지내던 때가 있다. 지금 그렇지 않을 수 있는 이유는, 책에서 말하는 이유로 경건하게 벗어났다기보다는 그냥 스스로의 약함에 대해 처절하게 무너져내렸기때문이다. 고집부릴 수 있는 내 의가 없기 때문에 원래 하던 대로 세상의 일들에 하나 하나 분노하지 못할 뿐이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보이는 것보다 화가 자주 나는 편이다. 보통 사람보다는 시스템에 대해 화가 올라오는데, 일할 때는 일을 이렇게밖에 할 수 없는 시스템에 대해 화가 나고, 뉴스를 볼 땐 마찬가지로 악인들에게 약한 처벌을 내리는 시스템과 악인을 길러낸 사회(가해자를 옹호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지만, 책임이 전혀 없다고 생각하는 것도 어렵다.)에 대해 화가 난다. 분노에 휩싸였을 때 스스로 감히 이것이 ‘거룩한 분노’가 아닐까? 생각했던 때가 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교만의 끝판왕인데, 이 책에서는 실제로 인간의 분노와 하나님의 분노를 비교하면서 우리가 얼마나 편협하고, 자아도취에 따라 화를 내는지 보여준다. 실제로 스스로 통찰력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자기 의에 취하기 얼마나 쉬운지 설명하는데 절로 숨을 구멍을 찾고 싶어진다. 나는 아직 부족해서 사실 분노를 참는 것이 옳은가에 대해 확고한 답을 정의하진 못했다. 아직까지도 상담과 심리를 선택해 배우면서도, 배울 때마다 회의하는 것은 문제에 대한 상담의 접근 자체가 문제를 해결하거나, 가해자를 처벌하기보단 피해자가 바라보는 시각을 바꿔 피해자의 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을 취하기 때문이다. 이는 내가 결국 직접적으로 피해자를 도울 수 있는 사회복지의 길을 선택했던 이유기도 하다. 그리고 지금, 책을 읽으면서 반성했던 부분은 ‘사실 내가 뭐라고, 누구를 처벌하고 말고를 생각하고, 처벌의 강도에 대해 가타부타 말을 얹을 수 있었지?’ 라는 점이다. 마치 스스로를 신인 것 처럼, 그러니까 하나님인 것처럼 내가 모든 상황을 이해하고, 관장하며, 전지전능하게 판단하여 처벌할 수 있는 위치에 나를 두려했던 것에 대해. 책을 읽으며 베드로전후서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어 지금도 틈이 나면 읽게 되었다. 나는 아직도 나약하고 도대체 왜?! 하나님께서 악한 일들에 침묵하고 행동하시지 않는걸까하고 하나님을 재촉하며 내 입장에서 생각하곤 했는데, 책에서 인용한 베드로후서 3장 9절이 나를 자유하게 했다. “어떤 이들이 생각하는 것과 같이, 주께서는 약속을 더디 지키시는 것이 아닙니다. 도리어 여러분을 위하여 오래 참으시는 것입니다. 그분은,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모두 회개하는 데에 이르기를 바라십니다. The Lord is not slow in keeping his promise, as some understand slowness. He is patient with you, not wanting to perish, but everyone to come to repentance.” 참으로 인자와 자비와 사랑의 하나님이시며, 악을 악으로 갚아줄 것에 치중하기보단 내게 맡겨진 내 일을 해나가야겠다는 결단이 섰다. 그리고, 특히 자기 의에 빠지기 쉬운 교만한 나는 책의 말미에 나온 것처럼 하나님의 지혜가 정말 너무나도 필요한 사람임을 순순히 인정하게 됐다. 분노라는 것이 내 안에서 완전히 사라질 순 없을 것이다. 나는 여전히 쉽게 평가하고 분노하겠지만, 나를 사랑하시고 아끼시는 하나님께서 내가 지혜를 구하는대로 가득 부어주실 것을 믿는다. 그래서 내가 넘어지더라도 예수님을 닮는 길을 걷는 것을 멈추지 않기를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