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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책은 입소문을 탄다. 유명한 작가(저자)나 메이저 출판사의 책이 아니더라도, 어마어마한 광고 세례를 퍼부은 책이 아니더라도 잘 쓰인 글은 필히 독자의 마음을 타고 전도되고 확산된다. 때와 대상에 따라 다를 수는 있지만 양서는 언젠가는 적당한 시기에 필요한 사람의 손에 놓인다. 내가 그간 많은 책을 읽으면서 깨달은 공식이다. 룰루 밀러의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도 그 공식을 증명하는 책 중 한 권이다. 현재 베스트셀러 1위에 올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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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정지인 옮김,곰출판) 2021』는 과학자인 아버지에게 헌정된 룰루 밀러의 논픽션 데뷔작으로 빛을 발하는 것을 향한 인간의 고투를 담는다. 빛을 발하는 것은 별이나 식물일 수도, 물고기일 수도, 고향이나 안식처일 수도 있다. 누군가에게는 여전히 특정하지 못하는 모호한 꿈일 수도 있다. 제목의 물고기는 어류인 물고기 자체다. 그래서 결국엔 더 큰 놀라움을 안긴다. 동시에 다양하게 변용 가능한 은유로도 해석할 수 있다. 빛을 찾아가는 과정 역시 만만치 않다. 타협할 수 없는 목표를 위해 “지속적으로 오만을 복용”(p.146)한 결과 인간은 어떻게 다른 무엇이 될 수 있는가를 치밀하게 고발하는 이 책은 위험은 늘, 너무도 가까이 있음을 경고한다. 룰루 밀러는 ‘방송계의 퓰리처상’으로 불리는 피버디상(Peabody Awards)을 수상한 과학 전문기자로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찬사 일색의 평가와 함께 베스트셀러에 이름을 올린다. 여기에 밑줄에서 밑줄로 옮겨가기 어려운, 하나의 밑줄에 오래 묶어두는 책이라는 평을 더한다. 또한 삽화만 보는 시간을 따로 확보해도 좋을 것이다.
무질서도는 계속 증가한다는 열역학 제2법칙, 엔트로피 법칙이라고 알려진 이 명제는 이미 질문이 아니라 법칙이다. 혼돈은 가정의 문제가 아니라 시기의 문제고 이 세계에서 확실한 단 하나이며 “우리 모두를 지배하는 주인”(p.16)이다. 저자는 과학자인 아버지의 이런 주장에 반하는 인물을 알게 된다. 분류학자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 재난에 가까운 혼란을 대하는 방식은 가히 놀랍다. 저자는 조던의 자서전을 통해 그를 추적하게 되는데 형의 죽음과 이 시기 식물의 수집, “승리의 선언이자 통찰의 선언”(p.31)인 라틴어 학명들, 이름들을 강박적으로 수집하며 무력함을 넘어서는 페이지들이 지나간다. 페니키스 섬에서 만나는 박물학자 루이 아가시로부터 “신성한 사다리” 개념(p.44)을 배운 조던은 평생 맞춰야 할 퍼즐이자 반짝이는 비늘로 된 실마리들인 물고기를 처음으로 만난다. 그는 혼돈과 맞서는 자다.
“인생의 의미가 뭐예요?”라는 일곱 살 아이의 질문에 “이 모든 것도, 너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p.54)라고 아버지는 대답한다. 설명하고 재차 강조한다. 이제 더 이상 ‘전혀 중요하지 않은’ 그녀에게 혼돈만이 지배자인 이 세상은 친절하지 않다. 아버지처럼 단단하기가 어렵고 가족들이 감당하는 아픔도 상처로만 새겨진다. 그때 인생의 선물과도 같은 만남으로 그녀는 안식처를 찾은 느낌이었으나 오래지 않아 그를 잃고 그를 되찾고 싶다는 간절함만 남는다. 이 여정의 끝은 기대와는 다른 결말이지만 그녀는 이미 성장한 이후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빛과 그림자로부터 시선을 피하지 않은 결과, 끊임없이 고민하고 진실에 닿고자 움직인 결론이다. 아프지만 다행스럽기도, 충격적이지만 귀 기울이면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듯한 하나의 마침, 해방에 이른다.
저자는 자전적 이야기의 한 가운데에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라는 혁신적 인물을 배치한다. 후회와 고통으로 자책하던 자신에게 실패에도 머뭇거리지 않는 돌진의 아이콘인 ‘조던으로부터 배우기’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스탠퍼드대학 총장을 역임한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19세기에 활동한 생물학자(분류학자)로 개인적 아픔도 오로지 ‘일’로 이겨낸 “그릿”의 대표주자다. “어느 생물이 어느 생물을 낳았는지에 관한 실마리, 생명이 흘러가는 방향에 관한 실마리, 인간을 만드는 데 필요한 실험에 관한 실마리, 그리고 어쩌면 사람들을 개선하기 위한 비결에 관한 실마리를.”(p.105) 찾는데 온 힘을 쏟았으며 그 생물의 이름을 발음하는 행위는 “새로운 종의 탄생”(p.106) 의식이 된다. 자신이 발견한 포획물들을 전리품처럼 높이 쌓아 전시하는 그는 이미 경계를 넘는다. 또 하나의 바벨탑을 세우며 결국 “우생학”이라는 악의 지대까지 확대된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제목부터 독자를 사로잡는다. 다음 이야기를 곧바로 듣거나 하고 싶게 만든다. 계속 몰입하게 되는 흡인력이 책을 덮지 못하게 한다. 책 속 이야기의 연결과 전환이 매끄럽고 미지의 것을 향한 항해에 동승하는 두근거림을 선사한다. 문장은 명확해서 이해하기 용이하다. 동시에 비유와 묘사가 아름답고 때론 사랑스럽기까지 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질문하는 책이다. 인물에 이입하는 읽기가 어느 시점부터 틀어지고 선망이 실망으로, 오싹한 두려움으로, 왜 이렇게까지 되었나 하는 안타까움으로, 다른 선택과 경우의 수는 없었을까 하는 두리번거림으로 번져간다. 미처 알지 못했고 그래서 관심이 덜했던 학문의 일면, 슬픈 역사의 한 장을 엿볼 수 있었고 이는 수많은 인용과 주석에서도 짐작 가능한 저자의 열정에 빚진다. 진심은 역시 독자의 가슴도 뛰게 한다. 다만, 결말에 이르자 저자의 탐구 여정과 “혼돈을 이길 방법”이라는 개인적 추구가 하나의 지점으로 모이며 뜻밖의 각성을 불러일으킨다. 저자의 환희와 감격이 가히 폭발적이라 독자는 오히려 한 발 뒤로 빼며 박수라도 쳐야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물론 잘못된 일들을 저작으로 인해 바로잡을 수 있었다는 건 다행이면서 커다란 성과다. 가능성과 희망, 겸허함과 공존에의 의지, 불확실성의 허용, 불확실성의 확실성을 사유하게끔 하는 책으로 다양한 방향에서 읽힐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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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 소설을 읽다 보면 다음과 같은 유형의 작품들을 가끔씩 만나보곤 합니다. 생각지도 못한 반전 및 놀라운 결말 하나만을 위하여 다소 지루한 앞 부분을 견뎌야만 하는 작품들, 그리고 그 책을 읽는 내내 분명히 힘들었음에도 그 부분들 덕분에 나중에 그 책을 기억할 때는 참으로 놀라웠다는 기억이 더 강하게 남아있는 그런 책 말입니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를 읽은 많은 이들이 말하기를, 이 책을 무어라 정의하는 게 쉽지 않다고들 하던데,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미스터리 소설 애호가인 제 눈에는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앞서 언급한 미스터리 소설에서 많이 보던 구성을 그대로 가져온 과학 도서로 보였습니다. 사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를 읽어 보기 전에는 이 책을 이미 읽어 본 많은 이들이 해당 도서에 대한 정보가 적으면 적을 수록 좋다는 말을 하는 것이 이해가 잘 가지를 않았는데, 이제는 물고기는 존재하지는 않는다가 그야말로 소설책과 같은 구성을 가진 과학 책이라는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에 이제는 저 역시 그분들과 같은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여러분, 스포일러 당하시기 전에 그냥 빨리 읽어버리세요!
이 책을 완독한 직후의 제 첫 감상평은 삶의 의미를 역사적 위인에게서 찾고자 했던 자자가 그 인물의 업적 뒤에 숨겨진 추악한 면모를 발견하게 되고서는 어떻게 해서든 그의 업적을 깎아내림으로써 저자 나름의 정신 승리를 하기 위한 과정을 담은 책이 아닐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다만 이 책을 다 읽고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에서 다루어지고 있는
(이후의 내용은 e북토커의 취지에 걸맞게 추가해 본 주저리주저리)
다만 그 내용을 떠나 읽는 재미가 없는 작품인 건 분명한데, (어찌 보면 과학 도서에서, 그것도 분류학을 주제로 삼고 있는 책에서 재미까지 갖추라고 하는 것은 너무 과한 요구일지도?) 이는 룰루 밀러 작가가 물고기는 존재하지는 않는다를 통하여 말하고자 하였던 바를 보다 극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과정에서 따라올 수밖에 없는 일종의 그림자 같은 것으로 보셔야 될 것 같습니다. 그래도 물고기는 존재하지는 않는다가 챕터를 잘게 찢어 놓는 구성을 취하고 있었다 보니, 그 부분이 지루한 초반부를 넘어가는 데 있어서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는 했습니다. 개인적으로 9장부터는 앞서 말했던 소설과 같은 면모가 아주 대놓고 드러나기 시작하다 보니 읽는 속도에도 탄력이 붙었던 것 같은데, 만약 이 책을 읽다가 중도에 때려치울까 하는 생각을 하신 분들이 계시다면 저를 믿고 거기까지는 버텨보시길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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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를 산 건 사실 3월인데, 결국 5월 말 독서모임으로 겨우겨우 읽네요. (독서모임장이 책을 안 읽을 순…) 이 책은 과학 도서와는 억 광년쯤 떨어진 저에게 표지도 너무 예쁘고, 또 출판사의 마케팅보단 입소문으로 과학 책이 베스트셀러에 올랐다니까 그 부분이 너무 궁금해서 샀습니다. 아니 무슨 추천사가 ‘책의 모양을 한 작은 경이’고, 리뷰는 ‘최대한 정보를 모른 채 읽으라’고 달려있으니… 너무 궁금하지 않나요? 근데 책을 막상 받고 나서 약간 서운했어요. 역시 책은 보고 사야 해요. 책 색상이 제 생각보다 약간 바랜 느낌(?), 색소가 옅은 느낌이라 제 생각만큼 소장 욕구가 샘솟는 책은 아니었어요. 또 책 일부분에 오염이 있었고, 맨 뒤 면지는 울퉁불퉁해서 손으로 뜯어낸 줄 알았어요. 뭐, 이런 부분이 약간 아쉽긴 했지만, 일단 책 전체적인 느낌은 신화 책, 잔혹 동화책 느낌이었습니다. (일러가 너무 멋있습니다.) 줄거리 우선, 책 내용을 모르고 읽는 게 좋다는 리뷰에 대해선 동의합니다. 엄청난 반전이 존재하고 그 반전이 나오면 그 책에 대한 인상이 제대로 변하는 느낌입니다. 그 반전을 책을 읽기 전에 알고 보면 읽으면서 지루했던 기분(반전이 나오기 전)을 지우기 힘들기 때문에 모르고 읽는 게 좋습니다. 단, 이 책에서 엄청 칭찬받을 만한 그런 반전, 엄청 한참 뒤에 나와요…(거의 끝) 그래서 읽다가 리뷰가 사기는 아닌지, 방금 그 부분이 사람들에겐 엄청난 반전이고 나만 딱히 감흥을 못 느끼는 게 아닐까 고민했습니다. 그만 볼까 하다가 독서모임 해야 하니까 계속 넘겼는데, 고민이 무색하게, 끝부분에서 한순간에 딱 감탄이 나왔습니다. 왜 모르고 읽는 게 좋은지 바로 알겠더라고요. 이게 진짜 엄청난 스포였던 거죠. 그 부분에 도달해야 ‘아, 이 책 추천사가 사기가 아니구나.’ 알 수 있습니다. 그전까지는 딱 그냥 전기물입니다. 주인공 ‘룰루 밀러’인 자신의 이야기기도 하고, 데이비드 조던에 대한 전기물이기도 합니다. 작 중 저자는 신 없는 세계 속 인간이 중요하지 않은 존재라면, 어떤 희망으로 살아야 하는지 답을 찾고 싶어 했고, 그 답을 데이비드 조던에게서 얻고자 그의 글을 읽고 그에 대해 말합니다. -예비 독자들에게- 사람들이 언제 충격을 받는지 아시나요? 당연히 상식이라고 생각했던 부분을 부정당했을 때 충격받습니다. 이번 책도 그런 책이었고, 왜 베스트셀러인지 단숨에 납득이 간 책이었습니다. 지루했지만 그래서 오히려 더 충격적인 책이라고 말하고 싶고 사람이라면 한 번쯤 볼 만한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번 서평에선 이번 책의 ‘지루함’’에 대해 다뤄볼까, 합니다. 솔직히 과학 책은 어렵고 지루할까 봐 읽고 싶지 않잖아요? 근데 과학이 어려워서 지루하진 않았습니다. <과학 도서인데 지루하지 않을까?> 우선 제가 왜 지루함을 느꼈는지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단지, 과학적인 내용이기 때문은 아닙니다. 반전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반전이 언제 나오지 기다렸는데 계속 안 나오다 보니 지루해졌습니다. 또 처음엔 ‘데이비드 조던’의 이야기가 금방 끝날 줄 알았는데, 작품 속에서 전반적으로 등장하거든요. 그의 분량은 많은데 초반부터 그가 마음에 안 들었기 때문에, 더욱 지루하다고 느꼈습니다. 위인전이나 전기물은 흔히 주인공이 그렇게 좋은 인물이 아니라고 생각될 때 불편해지고, 그만 읽고 싶어지잖아요? 그런 개인적인 인물에 대한 호불호의 문제로 지루하다고 느낀 거라 데이비드 조던이 마음에 든다면, 아마 같은 이유로 지루하다고 느끼시지 않을 것 같아 우선 기본적으로 전기물, 위인전을 좋아하시는 분들에게 추천드리고 싶습니다. 또한 이 책이 과학 도서다 보니, 과학이 어려워서 지루할 거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습니다. 물론 과학 내용이죠. 하지만, 이 책에는 철학, 과학, 자기 성찰, 전기가 다 섞인 책이고, 과학도 특정 과학 주제를 심도 있게 파는 전공 이야기라고 하기보단, 자신의 궁금증을 해결할 방법을 과학자인 데이비드 조던의 삶 속에서 찾는 와중에 그의 삶에 녹아 있는 과학을 보는 거라, 기존 과학 도서와는 차이가 있습니다. 메인이 아니라, 메인을 다루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나오는 그런 과학적 부분이라 어렵지 않습니다. -책의 물성- 마지막으로 책의 물성에 대해 다른 글로 이야기하지 않고 여기서 가볍게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이미 위에서 좀 언급해서…) 이번 책의 제목인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다 읽고 나서 이 책의 내용과 너무 잘 맞는다고 생각했고, 부제 ‘상실, 사랑 그리고 숨어 있는 삶의 질서에 관한 이야기’는 초반엔 ‘사랑’이란 표현이 너무 의아했지만, 다 읽은 지금은 너무 잘 정리된 부제란 생각이 듭니다. 그 밑에 영어로 제목을 표기했는데, 여러 가지 표지를 고민하다가 그렇게 결정된 걸 텐데, 다른 디자인은 어땠을지 궁금했습니다. 앞 띠지의 추천사를 너무 잘 정한 것 같고, 개인적으로 ‘책의 모양을 한 작은 경이’는 기억해 놨다가 나중에 편집자가 된다면 사용해 보고 싶은 강렬한 인상을 남긴 문구였습니다. 앞표지의 디자인은 앞서 말했듯이 실물이 조금 아쉬운 책이었습니다. 책 색상이 약간 바랜 느낌이라 색감이 조금 더 강하게 나왔다면 좋았을 것 같고, 작은 오염이나 면지 마감 부분이 아쉬웠습니다. (또한 인어가 물고기와 내려가는 장면에서 반짝이를 넣는 후보정을 넣었으면 좋았을 것 같다는 사심을…) 책 자체의 크기는 요즘 보는 책에 비해 좀 길었고, 본문을 보면 쪽수와 장 제목을 위에 기입돼 있었습니다. 장 부분이 위쪽에 있는 걸 오랜만에 봐서 그 부분이 좀 독특하다고 느꼈고, 목차 구성은 더할 나위 없이 좋았지만, 조금 그의 이야기를 줄였어도 좋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반전 전에 그만 보면 인상이 엄청 좋게 남지는 않을 것 같아서…) #룰루밀러 #곰출판 #물고기는존재하지않는다 #편집자지망생 #데이비드조던 #신없는세계 #책서평 #북서평 #인문학도서추천 #과학도서추천 #과학도서 #인문학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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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월의 첫 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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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제목만 보았을 땐 도무지 어떤 책인지 감이 오지 않았다. '자연과학'으로 분류되어 있긴 하나, '상실, 사랑 그리고 숨어 있는 삶의 질서에 관한 이야기'라는 부제까지 보고 나면, 물고기의 특성이라던가 분류 방법이라던가 하는 과학적 정보 전달이 주 목적이 아님은 분명해 보였다. 나는 한 마디로 문과 감성을 지닌 이과생이 쓴 책(혹은 그 반대)을 좋아한다. 잘은 몰라도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그런 책 중 하나일 것 같았다. 이 책에서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 예상은 되지 않지만 '절대 스포일러성 글을 접하지 말고 보라'는 평을 믿고 아리송한 기대감을 안은 채 일단 구매하여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순식간에 마지막 페이지를 읽었다. 여운이 잘 가시지 않는다. 한 마디로 설명하기 힘든 책이었다. 한 인물에 대한 전기이자, 진화론과 분류학을 다루는 과학서이자, 동시에 삶을 살아가는 방법에 대한 철학서 같은 책. 중 후반쯤 등장하는 반전을 놓고 보면 심지어는 추리 소설 같은 구성을 지니고 있기도 하다. 기본적으로 이 책은 과학 기자인 저자 룰루 밀러가 일종의 삶의 의미를 찾아 나서는 구성을 하고 있다. 어린 시절에는 과학자인 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룰루 밀러의 아버지는 '혼돈'만이 우리의 유일한 지배자이며, 혼돈은 우리의 그 무엇에도 관심이 없다고 믿었다. 혼돈으로 가득한 우주 속 인간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은 존재들이다. 그러니 괜히 사사건건 의미 부여하지 말고 살고 싶은 대로 살라는 것이다. (p.54) 아버지에게 이렇게 물었다. "인생의 의미가 뭐예요?" (...) 아버지는 (...) 씩 웃는 얼굴로 내게 돌아서면서 이렇게 단언했다. "의미는 없어!" 마치 내가 살아오는 내내, 그 질문을 할 순간만을 열렬히 기다려왔다는 듯 아버지는 내게 인생에는 아무 의미도 없다고 통보했다. 룰루 밀러는 삶에서 여러 낙담과 절망의 순간들을 겪으며, 대체 왜 삶을 지속해야 하는가 의구심을 갖는다. 이 모든 불행에도 불구하고 딛고 일어나서 계속 나아가야 하는 원동력을 안타깝게도 아버지가 알려준 삶의 방식에서는 찾지 못했다. 이때 룰루 밀러는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라는 분류학자의 일화를 떠올린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스탠퍼드 대학의 초기 학장을 지내기도 했는데, 인류에게 알려진 어류 중 5분의 1이 모두 그와 그의 동료들이 발견하여 이름 붙여준 것이라고 한다. 어느 날 닥친 지진으로, 그가 모아둔 어류 표본들이 박살 나고 각각 붙여주었던 이름표들이 엉망으로 뒤섞여 버린다. 평생의 업적이 산산조각 난 이 절망적인 순간에 그는 망설임 없이 잔해 속에서 그나마 정체를 알아볼 수 있는 물고기와 이름표를 건져 올렸다. 그러고는 이름표를 유리병 대신 물고기에 직접 꿰매는 일을 시작했다. 룰루 밀러는 바로 이 일화를 떠올린 것이다. 룰루 밀러는 그가 보통 사람이라면 견디기 힘들었을 좌절에, 자연이 선사한 혼돈에, 휩쓸리지 않고 곧바로 반격할 수 있는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찾아내는 것에 집착하기 시작한다. 이 '비법'을 찾아내면 막막한 자신의 삶도 앞으로 나아가게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말이다. (p.18) 나이가 들어가면서 내게 찾아온 혼돈에 뒤흔들리고, 내 손으로 직접 내 인생을 난파시킨 뒤 그 잔해를 다시 이어 붙여보려 시도하고 있을 때, 문득 나는 이 분류학자가 궁금해졌다. 어쩌면 그는 무언가를, 끈질김에 관한 것이든, 목적에 관한 것이든, 계속 나아가는 방법에 관한 것이든 내가 알아야 할 뭔가를 찾아낸 것인지도 몰랐다. 이렇게 룰루 밀러는 삶의 '구원자'가 되어줄지도 모르는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삶을 쫓기 시작한다. 그러던 중 데이비드 본인이 쓴 개인 에세이에서 하나의 단서를 찾아낸다. 바로 그가 "운명의 형태를 만드는 것은 사람의 의지"라고 쓴 부분이다. 하지만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 이렇게 말한 것에는 한 가지 문제가 있다. 룰루 밀러의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데이비드 스타 조던 또한 '무의미성'을 받아들이는 것만이 인간이 살 수 있는 방법이라고 했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는 동시에 사람의 의지가 운명의 형태를 만든다고 말하는 것은 모순이고, 거짓말이며, 자기 기만이다. 하지만 그 자기 기만적 태도가 결과적으로 데이비드 스타 조던을 불행을 빠르게 극복하는 '낙천적인' 사람으로, 과학계에 많은 업적을 남긴 '성공한' 사람으로 만들었다. 룰루 밀러는 사실 자기 기만이라는 게 그렇게 나쁜 일은 아닐 수도 있다는 의문을 갖기 시작한다. (p. 146) 겸손을 유지하라는 수천 년 이어져온 경고는 잊어라. 어쩌면 이것이 신이 없는 세계의 시스템이 작동하는 방식인지도 모른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지속적으로 오만을 복용하는 것이야말로 실패할 운명을 극복하는 최선의 방법임을 보여주는 증거인 지도 모른다. 책의 중반부에 해당되는 이 대목까지 보고 나면 자칫 이렇게 결론을 내릴 '뻔' 한다. 삶을 지속하는 낙천의 힘은 '적당한 기만'에서 오는 것이 아닐까 하는. 하지만 여기서부터 흥미로운 반전이 시작된다. 책의 절반에 도달하는 동안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본받을 점을 찾기 위해 달려왔다. 하지만 이때부턴 그의 '악행'이 하나씩 하나씩 드러나기 시작한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 스탠퍼드의 학장으로 있던 시절, 스탠퍼드의 설립자인 제인 스탠퍼드는 그를 탐탁지 않게 여기고 있었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제인 스탠퍼드는 그가 데이비드 스타 조던을 해고할 거라는 소문이 돌던 타이밍에 돌연 사망한다.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의문스러운 죽음이었지만, 여러 가지 정황상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 제인 스탠퍼드를 살해하고 은폐했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이뿐만 아니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우생학'의 열렬한 전도사였다. 우생학자들은 인류의 유전자 풀에 '우월한 유전자'만 남겨야 한다고 주장했던 사람들이다. '열등한' 유전자는 후세로 이어지지 않도록 박멸해야 한다고 말이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자신의 이런 믿음을 바탕으로 책을 쓰고 강의를 했다. 그 결과 그는 미국의 여러 주에서 '우생학적 강제 불임화'가 합법화된 것에 큰 역할을 했다. 당시 몇몇 미국 사회에서는 '사회적으로 부적격한' 사람들을 강제로 수용소에 가두고 불임화 시켰다. 이러한 끔찍한 흑역사의 선봉에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 있었다. 찰스 다윈은 경고했다. 지구의 수많은 생명들에 순위를 매기지 말라고 말이다. "한 종을 강력하게 만들게 하는 것은 바로 변이이며, 변이를 제거한 동질성은 그 종이 자연의 힘에 취약하게 노출되도록 만들어 위험을 초래" 하기 때문이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을 비롯한 우생학자들은 이러한 경고를 깡그리 무시한 것이다. (p.201) 토할 것 같았다. 내가 모델로 삼으려 했던 자는 결국 이런 악당이었던 것이다. 기껏 책의 3분의 2지점까지 달려왔더니,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라는 인물에서 삶의 동력을 찾겠다는 노력은 수포로 돌아가고 다시 원점이 된다. (p.208)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나를 아름답고 새로운 경험으로 인도해 주지 않을 것이다. 혼돈을 이길 방법은 없고, 결국 모든 게 다 괜찮아질 거라고 보장해 주는 안내자도, 지름길도, 마법의 주문 따위도 없다. 자, 이렇게 희망을 놓아버린 다음에는 무슨 일을 해야 하지? 어디로 가야 할까? 룰루 밀러는 부모의 가난과 낮은 지능검사 점수를 이유로 '부적합자'로 간주되어 유년 시절의 대부분을 수용소에 갇혀 보낸 여성, 한마디로 우생학의 피해자였던 애나를 찾아간다. 애나는 몇 해 뒤 수용소에 들어온 어린 메리를 만났고 메리의 보호자가 되기를 자처했다. 그들은 그렇게 서로를 보살피며 그 시절을 버텼으며, 많은 시간이 지난 지금도 가족처럼 지내고 있었다. 룰루 밀러는 애나의 인생 이야기를 들은 끝에 이렇게 물었다. "어떻게 계속 살아가시는 거예요?" 이는 룰루 밀러를 오래도록 괴롭힌 질문이었으며, 데이비드 스타 조던에게서 답을 찾고자 했지만 실패한 그 질문이었다. 뜻밖의 질문에 잠시 흐르던 정적을 깨고 메리가 불쑥 말했다. "나 때문이지!" (p.223) 애나가 웃기 시작했다. "그렇지. 물론이지. 메리 때문이야." 그것은 농담이었고, 우리 모두를 실수로부터 구해주는 메리의 방식이었다. 그러나 그 말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수록, 그 말이 진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점점 더 켜졌다. 나는 그들의 아파트를, 짝을 맞춘 안락의자와 짝을 맞춘 아이스티 잔을 다시 생각했다. (...) 거기 앉아 있을 때에는 의식적으로 인지하지 못했던 것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두 여인 사이를 연결하는 보이지 않는 실들이. (p.226) 바로 그때 그 깨달음이 내 머리를 때렸다. 그게 거짓말이 아니라는 깨달음. 애나가 중요하다는, 메리가 중요하다는 말. 혹은 이 책을 읽는 당신이 중요하다는 말. 그 말은 거짓말이 아니라, 자연을 더욱 정확하게 바라보는 방식이다. 그것이 민들레법칙이다! 서로는 서로에게 중요하다. 그것이 자연이 진화해온 방식이다. 그러니 그 무엇도 중요하지 않다는 아버지의 말도, 어떤 것은 다른 어떤 것보다 더 중요하다는 우생학자들의 믿음도 모두 사실이 아니다. (p.227) 별이나 무한의 관점, 완벽함에 대한 우생학적 비전의 관점에서는 한 사람의 생명이 중요하지 않아 보일지도 모른다. 금세 사라질 점 위의 점 위의 점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무한히 많은 관점 중 단 하나의 관점일 뿐이다. 버지니아주 린치버그에 있는 한 아파트의 관점에서 보면, 바로 그 한 사람은 훨씬 더 많은 의미일 수 있다. 어머니를 대신해 주는 존재, 웃음의 원천, 한 사람이 가장 어두운 세월에서 살아남게 해주는 근원. (p.227) 이제야 나는 나의 아버지에게 할 반박의 말을 찾아냈다. 우리는 중요해요. 우리는 중요하다고요! 인간이라는 존재는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방식으로 이 지구에게, 이 사회에게, 서로에게 중요하다. 이 말은 거짓말이 아니다. (...) 그것은 다윈의 신념이었다! 반대로 우리가 중요하지 않다는 말만 하고 그 주장만 고수하는 것이야말로 거짓이다. (...) 가장 심한 비난의 말로 표현하자면, 비과학적이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틀렸다. 하지만 그는 이미 여러 사람의 사랑과 존경을 받으며 평화 속에 죽음을 맞이했다. 벌도 받지 않고 상처도 입지 않고. 당신은 틀렸다고 분노를 표하고 싶지만 방법이 없다. 이때 드디어 마지막 한 방이 등장한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세계를 허무는 하나의 사실이.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어류를 분류하는 일에 평생을 쏟았다. 1980년대에 분류학자들은 생물 범주로서 "어류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밝혀낸다. 수많은 미묘한 차이들을 '어류'라는 단어 아래 전부 몰아넣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것이다. 조류도, 포유류도, 양서류도 존재하지만 어류는 존재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이런 발견은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업적 덕에 가능했다. 제 손으로 쌓아 올린 세계를 제 손으로 직접 무너뜨린 셈이다. 룰루 밀러는 통쾌함을 느낀다. 하지만 데이비드 스타 조던에게 소중한 사실을 빼앗고 그의 아픔을 상상하며 기뻐할 수 있는 것 외에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p.263) 물고기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이 세계에 관해 아직 모르고 있는 것은 또 뭐가 있을까? (...) 우리가 세상을 더 오래 검토할수록 세상은 더 이상한 곳으로 밝혀질 것이다. 부적합하다는 판정을 받은 사람 안에 어머니가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잡초 안에 약이 있을지도 모른다. 당신이 얕잡아봤던 사람 속에 구원이 있을지도 모른다. (p.268) 우리가 쓰는 척도들을 불신하는 것이 우리가 인생을 걸고 해야 할 일이라고. 특히 도덕적·정신적 상태에 관한 척도들을 의심해 봐야 한다. 겸손하자. 인간이 선을 긋고 이름 붙인 모든 것을 끊임없이 의심하자. "물고기처럼 보이는 모든 것들을 과학적으로 타당한 한 집단에 몰아넣겠다는 고집"을 버리자. 앞에 나온 모든 이야기는 결국 이 말을 하기 위한 빌드업이었던 것이다. 오늘 옳다고 믿는 것이 내일도 옳을 것이라 자만하지 말고 모든 가치판단을 조심하자는 것. 사실 이 메시지 자체는 크게 특별하지 않다. 하지만 이 책의 진가는 이 결론에 도달하기 위한 과정에 있다. 왜 이 책에 대해서 입을 모아 ‘절대 스포일러를 접하지 말 것’이라 신신당부하는지 알았다. 매 챕터마다 다음 챕터를 예측하는 것이 도무지 불가능했는데, '그래서 다음엔 어떤 얘기가 나올까‘ 궁금해하며 계속해서 다음을 읽어내려가는 것이 즐거웠다. 나는 자기계발서나 소위 힐링에세이로 분류되는 서적을 좋아하지 않는다. 이렇게 저렇게 살아라 하는 조언이나 마냥 괜찮다는 위로는 왠지 거부감에 든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에서는 모든 이야기의 전개가 철저하게 과학에 기대고 있다. 그 점이 이 책을 담백하고 또 흥미롭게 만든다. 저자 룰루 밀러가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소개한 책, 캐럴 계숙 윤의 <Naming Nature>도 읽어보고 싶다. 아쉽게도 한국어 번역본이 아직이라, 출간되면 보기로. 너무나도 유명해서 오히려 제대로 읽어볼 생각을 하지 못했던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 또한 한 번쯤은 완독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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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이 책의 저자가 여성이라는 것을 알게 되어 기뻤습니다. 저자가 의도한 질서에서의 해방에 다소 어긋나는 감정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럼에도 저는 그 역시 기쁘게 생각하니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저 역시 믿는 열역학 2법칙을 남몰래 딸에게 일러주었으나 역시나 새 생명을 임신시켜 자신이 설파한 절망의 굴레를 물려주려 했던 저자의 아버지처럼요. 혼돈으로 가득찬 세상에서 때로는 기만이라 부르는 낙관에 기대어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처럼요. ‘물고기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냉엄한 과학적 결론이지만 결국 이 책에 등장한 실존인물 모두는 그 사실에 각자 다르게 반응했습니다. 이 책은 실재했던 어류학자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삶을 반추하는 전기이자 에세이입니다. 데이비드는 19세기 말에 태어나 어류를 분류하는 일에 평생을 바친 학자입니다. 어릴 때부터 별자리를 가늠하고 자신이 사는 마을부터 시작해 전세계의 지도를 그려냈습니다. 대학에 진학한 이후로는 찾아낼 수 있는 모든 식물의 표본을 수집하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졸업 후 교사로 일하다 페니키스 섬 학습캠프에서 박물학자 루이 아가시를 만난 후 진지하게 어류를 선택해서 연구하기 시작합니다. 루이 아가시는 자연물 속에서 신의 의도와 질서를 파악할 수 있다고 여겼기에 다윈의 진화론을 부정했습니다. 데이비드는 신을 넘어 진화론을 받아들였으나 루이 아가시의 영향을 크게 받아 자연물을 탐구하는 방식으로 정연한 질서를 알아내고자 했습니다. 수백여종의 물고기를 분류하며 스탠퍼드 부부의 관심을 얻고 후원을 받아 스탠퍼드 대학교의 초대총장이 되었습니다. 그는 자연의 질서를 드러내어 견고히 하기를 원했으나 혼돈이 지배하는 세상의 풍파는 그를 가만 내버려두지 않습니다. 가족이나 친구를 병으로 잃게 하며 벼락이나 지진으로 그가 수십년에 걸쳐 분류한 연구들을 부수고 헤집어 놓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지진으로 박살이 난 물고기 표본들을 하나씩 수거하여 다시 이름표를 붙이고 연구에 매달려 수천개의 표본을 복원했습니다. 책의 저자인 룰루 밀러는 과학자였던 아버지에게서 일찍이 열역학 2법칙과 혼돈으로만 흐른다는 자연의 통보를 받습니다. 세상은 무의미하고 절망적이며 누구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나름대로 도덕률을 세운 아버지에게 ‘다른 사람들도 중요하지 않기는 매한가지지만, 그들에게는 그들이 중요한 것처럼 행동하며 살아가라.’는 조언을 듣고 이에 따라 살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나 유년기에 남들보다 모자라 보인다고 방황하는 언니를 목격합니다. 자신 역시 남학생들에게 등급을 품평받으며 자해를 합니다. 성인이 된 후로는 남자 애인을 사귀어 7년을 안정적으로 동거했지만 바닷가에서 여자와 바람을 핀 후 이별하게 됩니다. 옛 애인에게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직업적으로도 불안정한 인생의 암흑기에 룰루는 절망적인 혼돈에 굴하지 않고 질서의 토대를 세우고자 했던 어류학자 데이비드 스타 조던에게서 삶의 확신을 찾고자합니다. 그러나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실상은 매우 불쾌한 것이었습니다. 그는 분류학에 몰두한 나머지 우생학에 빠져들어 수많은 사람들을 강제로 불임화시켰습니다. 데이비드가 자연에 질서가 존재한다 믿었고 그것을 수호하고자 했기에 벌어진 일입니다. 그뿐 아니라 그는 자신이 경멸했던 후원자 제인 스탠퍼드의 독살 사건에도 연루되었습니다. 그는 다윈의 진화론을 받아들였으나 결국 옛 은사 루이 아가시의 신념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다윈은 자연에서 생물의 지위나 계층을 매기는 기존의 방법에서 벗어나고자 했으나 데이비드는 자신이 매긴 계층구조에 천착하여 실망스러운 일들을 저질렀습니다. 저자는 미국을 비롯하여 전세계에 성행했던 우생학의 역사를 공부하고 그 실제 피해자에게 찾아가 처참한 기분을 느낍니다. 그러나 동시에 가족과 이웃사람을 아끼며 일상을 살아가는 피해자의 모습을 보고 삶을 긍정할 수 있는 실마리(민들레)를 찾습니다. 데이비드는 그가 저지른 악행에도 불구하고 평화롭게 숨을 거두었고 어류학계의 거두로 남았습니다. 무신론자로서 그리고 과학을 긍정하는 자로서 절대적이면서도 인간적인 정의구현을 믿어서는 안 될 일입니다. 그러나 한 세기도 채 지나기 전에 저자와 독자들에게 약간의 정의구현적 도취를 느끼게 해줄 사실이 밝혀집니다. “어류(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는 분기학(분지학)에서 밝혀낸 것으로서 바다에 사는 물고기들을 어류로 분류하는 것이 잘못된 일이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육지에 사는 척추동물이라 해서 인류와 나머지 포유류, 그리고 조류를 함께 묶는 것과 마찬가지지요. 육지에서 적응하기 위해 비슷한 일부의 외형을 가졌다고 해서 이들이 결코 유전적으로 가까운 동물이 아닙니다. 그러니 데이비드가 평생을 바친 연구가 무의미한 것이라고는 할 수는 없어도, 그가 그런 식으로 어류를 분류하고 질서와 계층을 매기고자 했던 행위는 진리에서 한참 거리가 먼 것이었습니다. 저자는 ‘물고기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어떻게 느끼는지 많은 사람들에게 물어봅니다. 어떤 학자는 기뻐하고, 어떤 학자는 분노했으며, 어떤 사람은 연민합니다. 생의 무의미함을 일러줬던 저자의 아버지는 이를 거부합니다. ‘아직 내가 해방되지 않은 것으로부터 해방되기에는 너무 늙었어.’ 모자라다고 고통받았던 저자의 언니는 이를 덤덤히 받아들입니다. ‘인간은 원래 곧잘 틀리잖아.’ ‘성장한다는 건, 자신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말을 더 이상 믿지 않는 법을 배우는 거야.’ 열역학 2법칙에 따라 세상은 혼돈으로 흘러갑니다. 인간은 어떤 것에도 질서를 부여할 수 없으며 모든 행위는 혼돈을 늘리기만 합니다. 우리가 자고 먹고 만들고 공들이는 모든 행위는 다른 대상을 부수고 자연의 혼돈을 많이 늘려서 우리의 질서를 조금 연명하는 것입니다. 가해적이면서 소모적인 일입니다. 그럼에도 살아가기에 우리는 저자처럼 삶의 무의미함에 괴로워하거나 데이비드처럼 자기기만적 질서를 상정하고 집착합니다. 우리가 물고기라 불러왔던 어떤 동물들은 우리보다 더 다양한 색을 감지하고 음악을 구별하며 도구를 사용하고 고통을 느낍니다. 그래서 생태학자 조너선 밸컴은 물고기를 그만 먹어야 하냐는 질문에 ‘예.’라고 대답합니다. 하지만 살아가는 한 그럴 수 없습니다. 저는 조너선 역시 물고기를 먹는 걸 그만두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수많은 인간이 삶을 바쳐 세운 질서조차 이 냉엄한 자연의 혼돈 앞에서 가차없이 파괴됩니다. 그럼에도 하나의 질서가 부서질 때 우리는 실존적 변화를 얻게 됩니다. 어류를 부정하는 것은 그것을 오래 연구했던 학자 캐럴 계숙 윤에게 고통스러운 일이었으나 그 너머의 지평을 보게 할 것입니다. 인간이 아무리 자의적으로 질서를 세우고 그 과정에서 대상들에게 고통을 준다 한들, 결국 세상에 존재하는 대상들을 인간 멋대로 자리매김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다만 인간의 질서가 부서지고 또 부서지며 더 넓은 우주를 엿볼 수 있게 될 뿐입니다. 그것이 양성애자인 저자가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삶과 학문을 따라간 후 자기 삶과 정체성을 받아들이며 내린 결론입니다. 혼돈이 증가하는 세상에서 강박적으로 질서를 탐구하는 과학자는 결국 무의미에 대한 공포에 어떠한 위로도 주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애써 세운 질서가 쉽게 부서지는 만큼 그 작은 질서에 자기 자신을 부정당했던 사람들이 조금 더 살아가는 힘을 얻을지도 모릅니다. 한 학자의 일생, 어류학(이제 이렇게 불러서는 안 되겠지만 아주 무의미하지는 않겠지요.)과 과학적/철학적 회의론, 심리학을 넘나들며 실존의 긍정으로 조금 더 발돋움하는 책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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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대한 수많은 찬사와 화제를 먼저 접했기에 기대감이 너무 컸던 걸까, 사실 중반부를 읽을 때까지 내용이 머릿속에 잘 들어오지 않았고 지루한 느낌마저 들었다. 하지만 뒤로 갈수록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여 책장을 손에서 놓을 수 없었고, 충격적인 결말에 한동안 헤어나오지 못한 책이기도 하다.
이 책의 내용을 아주아주 간략하게 말하자면 이렇다. 사랑을 잃고 삶이 끝났다고 느낀 그 순간, 저자인 룰루 밀러는 우연히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라는 인물을 알게 된다. 그는 19세기에 실존했던 유명한 생물학자로 자연에 어떤 질서를 부여하려 부단히 노력했으며 수많은 역경에도 굴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나아갔던 인물이다.
책의 처음 대부분은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삶을 추적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는 지진으로 애써 모았던 물고기 표본들이 엉망이 되었음에도 좌절하지 않고 다시 표본을 만드는 등 여러 역경에도 굴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룰루 밀러는 그런 그의 모습을 보고 감탄한다. 사실 여기까지 읽고 나면 이 책은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전기로 보인다.
하지만 어느새 갑자기 책의 분위기가 전환된다. 저자가 그에 대해 더 깊이 조사한 결과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사실 잘못된 확신을 가진 열혈 우생학자였으며, 그가 일하던 스탠퍼드 대학의 설립자인 제인 스탠퍼드의 석연치 않은 죽음에도 관여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밝혀진다. (물론 정황상 그렇다 할 뿐 지금와서 밝힐 수는 없는 일이지만...)
자, 이제 이 책의 제목이 왜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가'인지 알아야 할 차례이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 평생 역경을 이겨내며 그렇게 열심히 분류해온 물고기, 즉 '어류'라는 것은 사실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엥? 무슨말여?ㅋㅋㅋ)
설명하자면 이렇다. 만약 소, 폐어, 연어 이렇게 세가지 동물이 있다면 사람들은 셋 중 어떤 두가지를 비슷하다고 생각할까? 아마 물에 산다는 이유로 폐어와 연어를 비슷하다고 구분할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소와 폐어가 더 유사한 생물학적 특징을 가지고 있다.
다시 말해 포유류나 양서류등의 분류는 생물학적 특징을 가지고 분류가 가능하나, 우리가 흔히 말하는 어류라는 범주에 속하는 동물들은 서로 유사한 생물학적 특징이 없다는 것이다. 개구리도, 새도, 소도, 심지어 사람도 물 속에 들어가면 어류가 될 수 있다는 것.
룰루 밀러는 이제 이렇게 말한다. "물고기가 존재하지 않는 것은 엄연한 하나의 사실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또 무엇을 잘못 알고 있을까?"
넌 이 세상에 중요하지 않다는 말을 듣고 자란 룰루 밀러가 아버지에게 책에서 마지막으로 외쳤던 말은 "아버지, 우리는 모두 중요해요!" 이다.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는 인간이 편의대로 나누어 놓았을지언정 실은 복잡하고도 구체적으로 서로에게 중요한 존재들이라는 것이다.
이 책은 그동안 세상을 바라보던 나의 시야기 얼마나 좁은지를 알게 해주었다. 더불어 과학의 축복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지만 거기에는 또 얼마나 많은 오류가 존재하는지.. 다시금 자연의 위대함과 인간의 미약함을 느끼게 해 준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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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돈은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이라는 가정의 문제가 아니라, ‘언제 일어나는가’하는 시기의 문제다. 이 세계에서 확실한 단 하나이며, 우리 모두를 지배하는 주인이다.’(15쪽) 생화학자였던 아버지에게서 ‘우리는 곧 사라질 점에 불과하고 따라서 너는 중요하지 않다’라는 말을 듣고 자란 룰루 밀러. 학교를 다니면서는 아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중학교에 다닐 때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던 그녀는 대학에서 만난 남자와 함께 살면서 안정을 찾았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떠났고 친구들도 멀어졌다. 그와의 재회를 바라며 힘겹게 버텨가던 중 그녀의 주의를 끈 것은 데이비드였다. 이 책은 과학전문기자인 룰루 밀러가 19세기 어류 분류학자인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일생을 좇아가며 삶의 질서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이다.
데이비드는 어려서는 하늘을 보며 별의 지도를 그리고, 학교를 오가면서는 자기가 알고 있는 땅의 지도를 그리며 자랐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꽃을 수집하려는 충동에 이끌렸지만 세상은 그런 사람에게 아무런 관심도 주지 않았다. 그러다 1873년 페니키스 섬에서 박물학자 루이 아가시를 만난 데이비드는 처음으로 바다의 물고기들과 만나게 되면서 어류 분류학자의 길을 걷는다. 물고기의 해부학적 구조를 통해 인간창조의 실마리를 찾고자 했던 그는 스승인 아가시와 달리 다윈의 진화론을 따르면서도 끝내는 종들 사이의 위계를 표시한 자연의 사다리에 빠져들었다. 부인과 아이들이 죽었을 때도, 화재와 지진으로 어류표본들이 모두 사라졌을 때도 혼돈과 맞서 싸우며 새롭게 시작하는 데이비드를 보면서, 저자는 데이비드의 길을 따라가다 보면 자신도 희미하나마 빛을 발하는 삶으로 되돌아가는 길을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저자의 상상 속에서 아버지의 말은 완고하게 자리 잡고 있었고, 절박해진 저자는 데이비드의 책에서 신념을 계속 밀고 나가는 용기에 대한 문장을 찾고자 했다.
데이비드가 쓴 글은 회고록 외에도 에세이나 강의요강 등 아주 많았다. 데이비드는 자신만의 질서에 빠져 들었다. 그는 학계를 좌지우지하는 학자가 되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생명에도 우열이 있다는 믿음으로 우생학을 신봉하게 된다. 1880년대 골턴의 생각을 제일 먼저 미국에 들여온 그는 죽는 날까지 열광적인 우생학자로 남았다. 저자는 데이비드를 알아갈수록 충격에 빠진다. 데이비드가 부서진 자기 인생의 조각들을 이어 붙이려는 노력을 하면서도 자신에게 속삭인 건 자기기만이었다. 자기가 원하는 것은 다 옳은 것이라고 자신을 설득할 수 있는 무시무시한 능력을 가진 데이비드는, 공개적으로 자기기만을 공격했지만 사적으로는 특히 시련의 시기에는 더욱 더 자기기만에 의존했다. 그런 사실을 알아가면서 실망에 빠진 저자는, 박테리아에서 시작하여 인간에까지 이르는 자연의 사다리를 고집하며 신성한 계층구조를 찾았던 데이비드에 이르자, 회고록을 덮는다. 그리고 데이비드가 더 이상 자신을 인도해주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데이비드에게 ‘우리 모두는 중요하다’고 말해주고 싶었으나 우주에게 우리는 아무 의미 없는 존재들이라는 생각이 가로 막았다.
저자는 데이비드의 기상천외한 아이디어가 현실로 바뀌어 한때는 불임수술을 강제했던 수용소로 간다. 수용소는 허물어져 가고 있었지만 멀지 않은 곳에 그 수용소에서 생활했던 애니와 메리를 만난다. 그리고 그녀들이 살아가는 방식을 보면서 깨닫는다. ‘우리 모두는 중요하다’는 생각. 그것이 자연을 아주 정확하게 바라보는 방식이라는 것을. ‘민들레는 잡초처럼 보일 수 있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그 식물이 훨씬 다양한 것일 수 있’(226쪽)는 것처럼 자연에서 생물의 지위를 매기는 단 하나의 방법이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저자는 비로소 아버지에게 할 반박의 말을 찾아낸다. ‘우리는 중요하다’고.
어류에 대해서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업적은 차고 넘친다. 북미의 어류학자들은 거의 모두가 과학적 혹은 지적으로 데이비드의 후손들이라고 한다. 그러나 분기학자들은 이미 1980년대 어류라는 범주는 존재하지 않으며 그것은 인간의 오류였다고 밝혀냈다고 한다. 사람들은 물속에 산다고 모든 차이를 무시하고 어류라는 범주로 묶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상상 속 사다리에서 정상의 자리를 유지하기 위한 방법으로, 우리와 다른 동물들 사이의 유사성을 실제보다 과소평가’(251쪽) 하지만, 그것은 인간이 항상 하는 일이라고 한다. 즉 내가 물고기를 포기할 때 과학 자체에도 오류가 있음을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저자는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회고록을 따라 데이비드의 삶을 추적하며 그 위에서 자신의 삶을 성찰한다. 부제 그대로 ‘상실, 사랑 그리고 숨어있는 삶의 질서에 관한 이야기’이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것을 잘못 알고 있을까? 그리고 그 오류를 벗어나 혼돈의 상태를 겪으며 자연의 진실을 받아들이고 있기나 한 걸까? 저자가 엮어내는 이야기는 우리 또한 숨어있는 삶의 질서를 찾아보라고 하는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