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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역사에서 일제강점 시기를 보통 1910년대-무단통치, 1920년대-문화통치, 이후 해방까지를 민족말살통치로 구분한다. 무단통치와 민족말살통치는 용어에서 어느 정도 어떤 상황이 벌어졌을지 그림이 그려지는데, 문화통치는 어떤 양상으로 전개되었는지 떠올리기게 쉽지 않다. 이번에 출간된 『100년 전 경성의 음악공간을 산책하다』는 주제가 당시의 음악이기는 하지만, 바로 이 궁금증에 대한 답을 어느 정도 해소해주는 역할도 하고 있어 매우 유익한 책이라 할 수 있다.
우선 총독부가 일본인 생활 공간으로 조성한 남촌의 이야기가 눈에 띤다. 청계천을 중심으로 북촌과 남촌으로 나뉘는데, 휘황찬란한 남촌과 낙후된 북촌의 수준 차이를 의도적으로 드러나게 한 도시개발 정책은 주도면밀했다. 예를 들어 당시 기준으로 최신의 문화시설과 상업적 건물을 지음으로써 조선 사람들에게 충격을 줌과 동시에 서구식 생활 방식을 동경하게 하여 소비문화에 젖어들게 했으며, 이는 결과적으로 일제강점에 대한 거부감을 줄이는 효과로 이어진 것이다.
당시 문화 포털로서의 역할을 담당하던 ‘경성공회당’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것이 이 책의 1장에 해당하는 ‘1코스’다. 근대화된 조선의 도시공간에 소비자본주의가 자리 잡게 되고, 이 시대에 태어나 자란 세대들은 자연스럽게 일제가 조성한 문화 환경에서 근대적 생활양식을 동경할 수밖에 없었다. 이전 세대들은 빈곤과 소외로 피폐해지고, 새로운 세대들은 정신적으로 종속된 처지에 놓이게 된 것이다. 조국의 비참한 현실에 대한 아픈 정서가 담긴 노래조차도, 요즘 말로 하면 일제가 마련한 플랫폼 위에서 유통될 수밖에 없는 너무나도 비극적인 상황이었다.
이 책의 2코스는 1코스에서 다룬 남촌 반대편에 위치한 ‘북촌’이다. 청개천 북쪽으로는 남쪽에 비해 오랜 기간 낙후되어 있다가 조선총독부가 궁궐을 허물고 신청사를 세우면서 여러 가지 개발이 이뤄진다. 이 과정에서 가자 두드러진 부분은 YMCA의 활동이다. 기독교 선교와 연결되어 각종 서구식 문화예술과 사상의 교류가 활발하게 이뤄지는 근원이었기 때문이다. 이 장에서는 한반도 최초로, 황제 직속으로 창설된 서양식 군악대의 등장이 중요한 사건으로 다뤄진다. 이들이 파고다공원에서 연습을 겸하여 연 일종의 정기적인 연주회가 대중들에게 노출되면서 서양 음악에 대한 관심과 흥미가 본격적으로 높아지게 된다.
3코스는 궁궐과 궁중음악의 변화상을 다루고 있다. 500년 간 이어져온 궁중음악은 분명히 연주되고 있었으나 백성들에게는 노출되지 않은 특징이 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에 들어서면서 대중에게 노출되고 음악도 서구적 경향이 섞이게 된다. 일제 감시하에서 점점 친일활동에 동원되는 횟수가 많아지면서 내선일체를 위한 홍보의 수단으로 전락하게 되는 역사가 구슬프다.
이 책을 읽다보니 문화 영역이야말로 실학자들과 개화론자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쇄국으로 일관하다가 결국 식민지 근대화 과정에서 가장 큰 정신적인 근본을 빼앗긴 대상이 된 참사가 벌어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한민족의 정신은 소멸되지 않았고 끝까지 살아남아 지금 시대에 가장 큰 빛을 발하고 있기는 하지만, 일제가 만든 플랫폼 위에서 형성된 대한민국의 예술과 문화의 사상과 정신의 흔적은 결국 받아들여야 할 운명 같은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왜색을 극복하고 K-컬처로 승화된 지금의 상황이 오히려 반만년의 유구한 한민족의 정신과 예술문화적 뿌리의 튼튼함을 보여준 것으로 생각되기도 했다.
* 네이버 「리뷰어스 클럽」 카페 이벤트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읽고 쓴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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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20세기를 논할 때마다 우리의 태도는 암울했다. 19세기 말 일본 제국주의의 무력 침략으로 20세기를 열자마자 강제 병합을 당한 후 36년의 식민지 생활을 감내했고, 해방된 후 5년만에 우리 민족 최대의 위기인 한국전쟁을 겪었다. 무려 3년에 걸친 전쟁의 폐허 속에서 다시 일어서서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뤄내기까지 50년도 안 돼 이룬 성과여서 세계 모든 나라의 귀감이 되기도 한다. 그동안 뼈를 깎는 아픔만큼의 피와 땀으로 선진국 대열에 올라설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21세기를 맞았다. 이 기간에 우리는 돈만 벌고 민주화 투쟁만 했던 것은 아니다. 지금 세계가 대한민국을 놀라운 눈으로 다시 보게 된 또 하나의 축은 문화 역량이다. 그 어려운 나라에서 문화 민족이라는 자부심의 토양은 결국 세계 문화를 선도하는 이른바 'K-컬처'가 21세기 접어들며 우리의 자긍심을 한껏 높여주기도 했다. 이젠 세계 10대 경제대국, 민주주의의 나라 대한민국, K-컬처의 민족이라는 대명사가 훈장처럼 가슴에 달려 있다. 다른 분야도 사실 어려웠지만 문화 분야는 서구화된 세계의 흐름에서 독보적 존재감을 갖고 세계 문화를 선도해 갈 위치에 오르기까지에는 우리가 역사 속에 묻고 있는 일제 강점기의 시절을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 문화에 대한 강력한 욕구는 한민족 5,000년 동안 우리 민족 가슴속에 이어져 왔고, 그 빛은 어쩌면 일제 강점기에서의 우리 지식인들의 피땀이 배어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 책 『100년 전 경성의 음악공간을 산책하다』는 일제 강점기 시대 우리 음악인들의 고뇌와 우리 문화에 대한 계승 의식 등을 짚어보는 저자들의 의지가 빚어낸 산물이다. 신혜승 김은영 이수정 등 3명의 공동저자는 각각 1920년대 이후 우리 음악의 현장을 직접 찾아가고 자료를 수집해 만들어낸 역사 자료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해낼 정도로 온 힘을 기울여 빚어낸 문화역사서로의 가치도 높다. 저자들은 문화산업의 성장에 비해 학계에서 이와 같은 현상을 설명하는 시도는 소수에 불과하다는 점을 깨닫고 이 책의 집필에 의견을 모았다. 일제 강점기 시대 당시 우리 문화의 중심 공간인 서울(경성)에서의 음악의 발전과 서구 음악의 유입 등을 생생하게 재현해 냄으로써 우리의 K-컬처가 우연히 시대의 흐름에 편승해 빚어낸 결과가 아니라는 점을 증명해준다. 원래 문화는 나라가 어려울 때일수록 그 빛이 더 짙어진다고 한다. 일체감을 형성하기에 좋기 때문이리라. 세계에서 한국 문화콘텐츠에 대한 관심이 증대하면서 국내의 연구자들도 학문적으로 이러한 현상을 설명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공감하고 있는 듯하다. 이 책은 음악 분야에서 그 해답을 찾고자 시도한 첫 결과이다. 그동안 각자의 연구공간에서 주로 문헌을 갖고 씨름하던 세 명의 연구자들이 100년 전 서울의 음악문화를 ‘음악회’ 풍경을 통해 소개한다.
저자들의 견해에 따르면 100년 전 서울은 근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전통과 신문물이 충돌하며 성장했다. 신문물의 자극은 과거의 전통을 낙후되고 촌스러웠던 것으로 기억하게 했고 식민지에 의해 그동안의 가치관이 한꺼번에 무너지는 대가도 치러야 했다. 그러나 음악회라는 신문물을 통해 그동안 전혀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사운드를 경험한 청중들은 차츰 매료되어 갔다. 서양음악의 도입은 전통음악의 변화를 요구했다. 과거 특정 청중에게만 연주된 음악은 유성기로 라디오방송국으로 그 대상을 확대시켜 나갔고 여류 명창이라는 새로운 연주자 그룹이 생기면서 여성은 이 시기의 흥행을 보증하는 새로운 계층으로 서게 된다. 이 시기는 우리의 3.1독립만세 운동을 기점으로 일제가 이른바 식민지 정책을 '문화 정책'으로 변화시키는 큰 계기가 된다. 즉 무단통치에서 문화통치로 바꾸어가는 계기가 3.1독립만세 운동이다. 저자들은 이 시대 서울을 세 지역으로 나뉘어 설명한다. 하나가 청계천 아래의 '남존'이다. 또 하나는 청계천 위의 '북촌', 마지막 하나는 '궁궐'의 궁중음악이다. 먼저 저자 신혜승은 모던의 중심부 남촌의 음악공간을 산책한다. 1920년대 모던 걸과 모던 보이들이 거닐었던 도심을 따라 경성공회당에서 열린 각종 음악공연들을 소개한다. 첫 우리말 라디오방송 중계가 경성공회당에서 있었고, 이때 최고의 인기가수 강석연의 공연이 라디오 전파를 타며 그 인기가 증폭되었다. 한국근대음악사의 역사적 사건은 경성공회당이라는 음악공간과 함께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두 번째 코스는 청계천 위의 북촌으로 조선인들에게 ‘운종가(雲從街)’로 불릴 정도로 사람들의 왕래가 잦았던 종로 지역을 중심으로 저자 김은영이 음악산책을 시도한다. 한국 근대사에서 기독교는 종교적 영역을 넘어 가치관, 생활방식 등 문화적 영역에 일대 변화를 일으켰다. 1903년에 창설된 YMCA는 나라의 주권이 외세에 의해 뒤바뀌는 역사적 소용돌이 속에서도 민족계몽운동을 통해 미래를 도모하고자 했다. 양악의 선구자로 구성된 ‘경성찬양회’, 우리나라 최초의 미국흑인음악단의 공연, 작곡가 홍난파의 성장과 실험장이었던 YMCA의 다양한 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 "1933년, 공회당이 지어진 지도 어언 13년이 흘렀다. 경성공회당에서는 그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다. 다양한 양상의 공연과 집회가 열렸을 뿐 아니라 민간 무선실험방송이 실시된 이후 1933년 4월에는 우리말 방송도 시작되었다. 이어 6월 2일에는 또 다른 의미를 갖는 음악회가 개최된다. 이날 밤 경성공회당에서는 국제적 수준만큼 여기에서 성장한 조선인 피아니스트 박경호의 피아노 리사이틀이 열렸으며 여기에서 쇼팽의 폴로네즈가 울려퍼지게 된다."(p.39)
세 번째 코스는 경성의 중심부에 위치했던 궁궐과 궁중음악의 변화과정을 음악회를 통해 저자 이수정이 소개한다. 조선시대까지 궁중음악을 연주하던 장악원은 식민지 시기 동안 이왕직아악부라는 이름으로 존재한다. 이 시기에 박람회, 야앵 등 대중을 동원하여 제국의 위엄을 홍보하려 했던 각종 행사에 빠지지 않고 등장했던 단체가 바로 이왕직아악부이다. 과거 조선의 왕과 궁궐의 행사에 적합하도록 훈련받았던 음악인들은 전혀 다른 환경에서 음악활동을 해야 하는 반전이 시작된 것이다. 이왕직아악부가 각종 행사에 동원되어 연주한 구체적 내용을 보며 봉건사회의 전통이 근대화와 문명화의 이름으로 뒤바뀌고 왜곡되는 과정을 확인할 수 있다. 일제는 우리 궁궐의 격을 낯추고 심지어는 공원으로 격하시키는 등 악랄한 왜곡을 하기도 한다. "창경궁의 상황은 더욱 심하다. 1907년부터 경내의 전각 대부분이 헐리고 훼손된 것은 다른 궁궐들과 마찬가지다. 그런데 일제는 이곳에 박물관, 동물원, 식물원을 지어 대중공원으로 변모시켰고, 공공시설과 놀이시설이 들어서고, 호랑이, 낙타, 하마, 공작 같은 동물과 이국적인 식물이 새로운 주인이 되었다. 왕실 소유 재산에 일본을 상징하는 벚꽃을 심고, '창경원'이라고 낮추어 불렀다. 궁궐이 '짐승 우리'로 전락함을 통탄하기도 했으나, 창경원 꽃놀이가 유명해지자 수만 명의 관람객이 몰려들었다."(p.202)
저자들은 특히 당시 음악 부문의 친일과 반일 인사들의 행적과 마지막을 일부 다루기도 하며 당시 시대 상황과 이들의 행적에 대해 객관적 태도를 유지하고 있으며 오로지 음악에 기여한 부분만 해석하려 했다는 점에서 역사적 자료로서의 역할엔 다소 미흡할 수 있지만 음악에 관한 것을 위주로 그들의 행위 등을 기술하는 객관적 평가를 독자들에게 맡기고 있지만 가급적 중립적 입장에서 기술하려 했다는 점에서 더 알고자 하는 독자들의 개인 탐구에 맡기고, 그들의 행적과 음약 기여도에만 관해 썼다. 그것이 대부분 당시 신문의 평가나 보도에 의존하게 된 원인인 듯하다. 가장 대표적으로 채동선과 홍난파에 대해 자세하게 기술하고 있다. 채동선은 시인 정지용의 시에 곡을 써 발표하는 등 대단한 활약을 했으나 1940년대 접어들어 창씨개명을 강요하는 등 일제의 압박이 심해지자 창씨개명을 거부하고 일체의 외부활동을 중단한 채 농사꾼으로 변신한다. 해방후 고려음악회 회장으로 활동했으나 아쉽게도 1953년 부산 피난시절 급성복막염으로 53세를 일기로 생을 마쳤다. 이에 비해 홍난파는 음악에 몰두하고 음악에만 전념하려 했지만 일제의 회유에 사상 전향서를 쓰고 전향한 후 친일단체인 대동민우회, 조선문예회, 시국대응전선사상보국연맹, 국민총력조선연맹, 조선음악협회와 같은 단체에 가입하여 친일가요를 작곡하고 "지나사변과 음악"과 같은 친일적 논조의 글을 남겼다. 1937년 이후 난파의 음악활동은 그를 음악계의 대표적 친일 인사로 분류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저자 : 신혜승 이화여자대학교 피아노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피아노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18세기 영국의 기악음악에 대한 연구로 음악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음악과 역사는 물론, 음악과 공간, 음악과 정치, 음악과 젠더와의 관계를 음악학적인 입장에서 새롭게 조망하는 연구에 관심을 두고 있다. 최근에는 디지털 음악학 분야에 관심의 폭과 깊이를 넓혀가고 있다. 현재 연세대 · 이화여대 · 서강대 · 한성대 · 건국대 · 세종대에서 음악사 및 음악문화콘텐츠 관련 강의를 하고 있으며 뮤직스토리텔링 연구소 대표로 저술, 창작, 기획, 강연 등의 활동을 하고 있다.
저자 : 김은영 대학 때 노래운동과 민족음악론에 흥미를 느껴 중앙대에서 국악이론을 공부하고 동아대학교에서 전통음악의 근대성 연구로 음악문화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양음악, 전통음악, 대중음악으로 분리된 음악 장르의 경계를 허무는 연구를 지향하며 연구자들의 연대를 통해 음악학 연구의 즐거움을 경험하는 중이다. 현재 한국학중앙연구원 학술연구교수로 있으면서 냉전기 한국음악을 연구하고 있다.
저자 : 이수정 중앙대학교 국악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에서 일제강점기 이왕직아악부에 관한 연구로 음악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근대 한국음악계의 문화와 역사에 관심을 두고 있다. 현재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학술연구교수로 있으며, 저술 및 연구 활동을 하고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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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에는 누구나 쉽게 공연이나 연주회 등을 즐기며 문화생활의 수단이자 휴식의 의미로 활용하는 음악 및 예술문화에 대한 접근과 활용법, 하지만 시대적인 의미나 역사적인 관점에서 이러한 과정으로 오기까지 다양한 사건들이 있었고, 시대를 강타한 인물들의 등장, 새로운 형태의 음악의 유입으로 인해 서양음악이라는 개념이 도입되게 되었다. 이 책도 이런 관점에서 우리의 수도이자 중심으로 볼 수 있는 경성의 음악공간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당시의 사회상을 조명하며 음악 및 음악사 전반에 걸친 변화상, 사회의 모습 등을 표현해 내고 있는 것이다.
<100년 전 경성의 음악공간을 산책하다> 누군가에게는 역사적인 의미로 보일 것이며, 또 다른 이들은 사회변화나 문제, 사회학적인 관점에서 사람들이 어떤 형태로 살아갔으며, 일제강점기라는 특수적인 사회 형태가 어떤 영향력을 미쳤는지, 이에 대해서도 판단해 보게 된다. 물론 단순한 연주나 악기에 대한 언급, 상대적으로 덜 조명된 음악인들의 삶을 통해 우리는 예술과 현실이라는 비교되는 의미에 대해서도 판단해 보게 되며 이를 현대적인 관점이나 현재의 모습으로 해석하기보단 당시의 사회상이나 시대정신 등을 이해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책이 갖는 장점이 명확하다.
어떤 시대를 막론하고 음악과 예술은 사람들에게 긍정과 부정의 영향력을 함께 제공한다. 특히 문화예술 분야의 경우 정치적인 오염이나 이념전쟁, 또는 정치노선 등의 해석으로 인해 왜곡되거나 그 가치를 폄하받는 일도 허다하며, 이를 우리는 객관적인 시각에서 바라보는 자세와 더 나은 해석과 의미부여 등을 통해 이해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격동의 근현대사 시기, 누군가는 이를 통치수단이자, 대중들을 감시하기 위한 또는 그들에게 약간의 자유를 통해 시선을 돌리기 위한 수단으로 선전했을 수도 있고, 또 어떤 이들은 음악과 예술 분야를 진심으로 사랑해서 자신의 생각과 가치를 알리는 수단으로 활용했을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든 우리는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며 평가할 필요가 있으며 책에서 이런 점을 잘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음악이야기, 단순한 음악사나 음악 및 예술인의 삶을 조명하는 형태로 읽어도 괜찮고, 더 나은 의미부여나 현재적 관점에서 우리는 대중문화 및 예술 분야를 어떤 형태로 생각하고 있는지, 그 의미에 대해서도 판단해 보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100년 전 경성의 음악공간을 산책하다> 가벼운 마음으로 읽지만 괜찮은 의미와 새로운 음악적 정보를 함께 제공하고 있는 이 책을 통해 자신 만을 위한 힐링의 시간을 가져 보자. 몰랐던, 그리고 낯설게 느껴지는 다양한 정보와 지식 또한 함께 만나볼 수 있어서 괜찮은 책으로 평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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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_100년전 경성의 음악 공간을 산책하다_신혜승외2명_우리에뜰
p24 경성 공화당. 일본인들에게는 본국과 이어지는 문화적 네트워크의 한 지점이 되어주고 있었다면, 조선인들에게는 다양한 예술을 실현하고 체험할 수 있는 심미적 공간 혹은 식민지 현실을 달래주는 위안의 공간이 되어주기도 했다.
경성이라는 단어 하나가 익숙하면서도 마음을 좀 아프게 했다. 아무래도 일제 치하 시대였기에 무거움은 어쩔 수 없었다. 그 당시의 음악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이 책은 어떤 특별함이 느껴졌다. 여태까지 잘 몰랐던 그 시절의 음악회에 관한 것 말이다.
'100년 전 경성의 음악 공간을 산책하다'
표지 디자인이 고전미가 느껴졌다. 오래된 역사를 담은 도시 사진이었다. 낡은 축음기에서 연기가 피어 나오며 컬러감을 살렸다.
이 책은 저명한 석박사 교수님들의 학술지처럼 어렵게 보일 수도 있으나 예상과는 달리 책을 통해 음악적 산책을 하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일제강점기의 역사를 담지만 무거운 이야기보다는 음악에 맞춰 쓰여 있었다. 당시 국민들의 애환을 담은 노래, 피아노 선율, 연주회는 그 마음을 잘 느끼게 해주었다. 저자는 그 시절 신문 기사의 내용을 수록해서 이해를 도왔다. 솔직히 신문 자체는 잘 모르는 단어나 표현들 도 보여서 어려웠는데 덕분에 편하게 읽을 수 있었다. 일제가 무조건적인 탄압이 아니라 회유책도 내세워서 음악 공간인 경성 공화당도 만들어졌고 그곳에서 우리 노래가 연주되기도 했다.
가사를 보면서 잃어버린 나라를 되찾으려는 우리 민족의 정신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고 얼마나 그런 것들이 다행이었는지 생각되었다.
그 시대에 이런 예술 활동이 있었다는 게 신선하게 다가왔다. 특히 미국 유학을 마치고 귀국 연주회를 가졌던 피아니스트 박경호 님의 연주회 부분은 직접적으로 느껴볼 순 없었지만 그 감정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이 책엔 쉽게 보기 힘든 다양한 사진자료가 있어서 시대적 상황을 한눈에 볼 수 있었다. 거기에 음악을 눈으로 볼 수 있게 악보도 일부 수록되어 있고 큐얼 코드도 있어서 들어볼 수가 있다. 무거운 마음이지만 그런 감정을 넘어 과거로 음악 여행을 하는 기분이었다. 어쩌면 우리나라 K 문화가 세계적으로 주목받을 수 있던 그 시작점이 바로 조상들의 이러한 활동 덕분이 아닌지, 생각하게 되었다.
특히 강석연의 방랑가, 가사가 마음을 울린다.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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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TS의 UN본부 총회장에서의 퍼포먼스, 그뿐만이 아니라 K-POP, K-Drama, K-Movie, K-Art, K-Food 등 이른바 세계는 K-Culture의 시대임을 실감하게 되는 오늘이다.
음악은 의미를 포함한 언어의 전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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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음악 분야에서 그 해답을 찾고자 시도한 첫 결과입니다. 그동안 각자의 연구공간에서 주로 문헌을 갖고 씨름하던 세 명의 연구자들이 100년 전 서울의 음악문화를 음악회 풍경을 통해 소개 해보기로 했다. 1코스에서는 청계천 아래의 남촌-경성공회당과 모던 음악편 입니다. 2코스에서는 청계천 위의 북촌-YMCA와 경성의 음악회편 입니다. 3코스에서는 경성의 심장 궁궐-궁궐의 변화와 궁중음악연주단편 입니다. 목포의 눈물이란 애상적인 민요를 부른 이난영양은 목포의 출신으로 자기 고향을 노래로 불렀고 이난영양의 지금까지 취입한 레코드로서 유명한 것은 <봄마지>,<불사조>등인데 이것은 이 가수가 출세하게 된 초기의 것입니다. 흑백 티브에서 노래부르는 모습들을 여러번 봤던 기억이 나고 조선의 눈물,우리 한국인 모두의 눈물,설움을 노래하는 모습이 보이는거 같았습니다. 곧 목포의 눈물은 우리의 정서를 대변해 주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한국인에게 가장 친근한 음악가를 꼽으라면 홍난파(1898~1941)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을거 같습니자. 난파의 집안은 부친의 영향으로 근대사회의 새로운 직업군인 다수의 의사와 함께 난파의 영향으로 음악가들이 동시에 나오는 특징을 보이게 된다. 한 사람이 해냈다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의 문학에 대한 탐닉은 한동안 계속되었다. 친구였던 변영로에게 우물을 파려면 한 우물을 파라는 질책을 받은 후 비로소 난파는 ?? 음악가로 다시 돌아올 수 있었다. 난파는 해외로 유학 가는 음악 청년이 늘어가고 음악회다운 음악회도 가끔 열리다 보면 빈약했던 조선 음악계에 긍정적인 변화가 일어날 것.. 이라고 보면서1924년 벽두에 서양 작곡가의 작품만으로 자신의 첫 바이올린 ?? 독주회를 열었다. -궁중음악의 몰락,조신신구 예제연주 1926- 일제는 조선 곳곳에 신사를 세웠고 대중이 가깝게 다가갈 수 있는 신사를 통해 신도를 보급했다.일제는 신도가 식민통치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여겨 적극적으로 보급했습니다. 조선시대 국가음악인 궁중음악이 나라 잃은 일제강점기 친일활동에 동원되고 음악도 차츰 변화되었고 근대사회로의 변화를 수용한 것이라는 측면도 있습니다. 이 책을 통해서 궁중음악을 접할 수 있어서 좋은 기회를 가진것 같습니다. 유익한 책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음악에세이#100년전경성의음악공간을산책하다#리뷰어스클럽#신혜승김은영이수정 #우리에뜰 ??감사합니다.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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