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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수 목회의 현장, 일반 목회의 현장, 신학교 현장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 두 명의 저자의 다른 색깔의 설교가 특징이다.
먼저 첫 번째 저자의 설교이다. 한국에 코로나에 대해 예민했던 시기에 있었던 설교의 내용들이다. 생계와 관련 없는 대규모 모임, 사적 모임으로 불리던 예배에 대해 많은 교회가 성도들이 거리를 뒀을 때 그 한가운데에서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고민한 결과물이다.
말씀을 자신의 어깨에 직접 메고 산을 올라야 한다. 내 땀과 눈물을 바쳐서라도 메고 갈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 말씀이다. 다른 사람이 내 자아를 하나님께 태울 나무장작을 지고 갈 수 없다. 내가 져야만 한다. 어렵고 절망스러운 장소가 하나님의 날개 그늘 아래 이다. 작은 까마귀,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이것이 하나님이 나를 위해 주신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 하나님의 관점으로 봐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말씀을, 예수의 죽음을 자신의 몸에 짊어져야 하는 사명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수레에 싣고 옆에서 구경하며 걸어가는 것은 사명이 아닙니다. 우리의 사명은 그것을 우리 몸에 직접 메고 가는 것입니다. 내 어깨에 말씀을 지고, 그것이 주는 무게감을 느끼며 걸어가야 합니다. 때로는 힘이 들어 땀이 흐르고 포기하고 싶어서 눈물이 날 때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내 땀과 눈물을 바쳐서라도 메고 갈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 바로 말씀입니다. 어려운 길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내 어깨에 메고 갈 때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습니다. (p.29-30)
하나님과 주파수가 맞으면 물동이를 버리게 됩니다. ... 물동이를 붙잡고 있는 이유는 이것이 없으면 살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절대적인 가치,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과 진리를 만나면 물동이가 필요없어집니다. (p.169)
또 다른 저자의 글에서는, 또 다른 관점으로 글이 전개된다. 생명을 전하는 족보에 ‘죽었더라’는 말을 계속 반복함으로써 사람은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임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죽음의 한계를 피합니다. ... 비록 모든 인간은 죽을 수 밖에 없지만 그 죽음이 끝이 아니라 새로운 생명을 허락하시는 그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게 한 것입니다. (p.195)
하나님의 말씀을 듣다가 갑자기 1년 17일동안, 그것도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이 진행되고 있는 홍수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는다는 것은 정말 두렵고도 무서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이럴 때 우리는 보통 ‘하나님이 혹시 나를 잊으신 것은 아닌가?’ ... 인간이 하나님께 의지하지 않고 자기 기억과 경험을 찾으면 분명한 한계에 부딪힙니다. ... 노아는 그의 기억에 의존하지 않았습니다. 하늘이 아닌 땅에서 올라오는 물에 대한 기억, 말씀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기억이 있었음에도 그는 방주에서 묵묵히 기다렸습니다. ... 노아가 방주 안에서 하나님이 자신을 잊으셨다고 생각하는 그 때 하나님은 노아와 방주 안에 있는 모든 생명을 하나님 가슴에 칼로 새겨 놓은 것처럼 한시도 잊지 않고 늘 주목하고 기억하고 계셨습니다. (p.201-213)
치열한 삶의 현장, 휘몰아치는 환경의 변화 한 가운데에 서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언제가 될지 몰라도 하나님의 때에 풍랑이 잔잔해질 때를 기다릴지, 거친 풍랑 속을 통과해 풍랑 가운데 서 계신 예수께로 갈지 고민해볼 문제이다.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말씀의 기준들을 날카롭게 하나씩 제시해주고 우리의 마음과 삶을 돌아보고 우리가 서 있는 그 자리에서 어디로 움직일지를 선택하게 한다.
언제까지나 지금 그 자리에서만 서 있을 수만은 없으니 어디로 갈지를 선택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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