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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왜 일상의 습관처럼 커피홀릭에 행복감을 느끼는가? 맛이 있어서, 멋이 있어서, 커피에 심각한 결핍을 가지고 있어서, 혹시 외롭기 때문은 아닐까? 씁쓸한 커피원두에 질리지도 않는지, 시미엔 산 아랫마을 알랭의 집에서도, 케이프타운의 카페에서도, 에티오피아 토모카 커피 숖에서는 에스프레소 2잔을 홀짝이고, 솔리테르 마을에서는 커피를 내리는 환상에 젖고, 하루에 진한 커피를 4잔씩이나 마시면서 곤다르시장에서는 커피포트를 사고, 커피원두상점이 늘어선 아디스아바바만 시장을 누비는 저자는 커피 중독은 아닌지, 고독하거나 고통스럽거나 외로움의 순간에 카페나 Bar가 앞에 서 있다면 당신의 기호는 어느 쪽인가. 독한 위스키 한 잔, 시원한 생맥주한 캔, 혹은 그윽한 커피 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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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는 미개하고 가난한 대륙이라는 편견을 바로잡아준 작가에게 감사드린다. 시미엔 산의 맑은 정기를 마시는 여유, 세계에서 가장 넓은 사하라 사막을 비롯하여 나미브, 다나칼 사막이 있고, 킬리만자로의 울창한 숲, 유네스코 세계자연문화유산인 세렝게티국립공원 야생동물의 역동적인 약육강식의 생존, 과거가 되어버린 악숨의 문화유산에서 여행의 매력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문명이 비어있는 풍경이 아름다운 땅이라는 인식을 심어주었다. 현대는 문명의 시대이지 문화의 시대가 아니라는, 문화와 문명은 같은 맥락 같지만, 문화가 정신적이라면 문명은 실제적인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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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일을 전문적으로 하거나 직업적으로 하는 사람을 프로라 한다. 누구나 한 번 쯤 좋아하는 일에 물 불가리지 않을 때가 있지만, 전문성을 갖춘 반열에 들기 쉽지 않다. 등산가, 여행가, 작가- 그런데 도대체 이 여행가는 왜 구도자의 심정으로 여행을 다닐까. 현실과 욕망의 괴리가 여행에 집착하는 것은 아닌지 궁금함이 문득 치밀어 다시 여행기를 펼쳐 본다. 여행자의 삶이란 구도자의 삶이 맞나보다. 나눔으로서, 베풂으로서, 관조함으로서, 그리고 채움으로서 삶에 충실하려 하는 여행가의 구도에 머리를 숙인다. 배낭 한 번 꾸리지 못하는 부끄러움이 슬프게 얼굴을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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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기억은 풍경이 아니라 사람이다. 작가의 앵글을 통해서 만나는 케냐 마사이마르 국립공원의 멋스런 마사이 청년, 잔지바르에서 마주친 해맑은 소녀들, 가난으로부터 고통 받는 어린 아이, 킬리만자로를 안내하는 포터, 잠비아 루사카 시장의 과일상인, 시바의 여왕 도시답게 커피를 마시는 미인, 에티오피아 랄리벨리의 암굴 교회에서 성서를 읽는 사제 등- 낯선 곳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각양의 표정에서 행복을 표착하는 작가의 여행에 중독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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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산책 코스인 [푸른수목원] 온실에 바오밥 나무가 있다. 아직 어려서 불쑥 키만 큰 채로 있지만, 거꾸로 자라는 것처럼 보인다는 마다가스카르의 거대한 바오밥 나무가 벌채와 서식지 파괴로 멸종위기에 놓여 있다고 한다. 작가의 [아프리카 아프리카]에서 <바오밥 나무가 꿈꾸는 모론다바>를 읽으며 오래전 지구는 얼마나 아름다운 별이었던가? 지구의 아름다움에 울었다던 어린 왕자가 다시 놀러 온다면 어떻게 생각할까. 상상해 본다. 일몰 시간에 더욱 아름답다는 바오밥 나무의 이야기를 들려준 작가에게 감사드리며 레날라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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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코로나 바이러스의 사태로 생활패턴이 뒤죽박죽, 생체리듬도 깨어졌다. 티브이 앞에서 책을 읽는 시간이 늘어난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아프리카 아프리카]의 시원한 사진을 다시 펼쳐본다. 나의 버킷리스트에도 아프리카가 들어있었나. TV 에서는 미스타 트롯 열세 살 소년이 ‘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너의 희망이 무엇이냐 부귀와 영화를 누렸으니 희망이 족할까’ 얼마나 인생을 살아 봤다고 심각한 표정으로 나를 울린다. 우리는 어디에서 희망을 찾을까? 희망이 정말 우리에게 행복을 가져다줄까? 책속의 희망봉은 명실 공히 아프리카 인들의 희망봉일까. 희망에 속고 좌절하면서 희망을 버리지 않는 작가의 고독한 발길을 따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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