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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의 숲이 시작된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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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씨의 단편소설이 장편화되는 경우를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여기 실린 '개똥벌레'는 바로 '노르웨이의 숲'으로 발전하죠. 진위야 알 수 없지만 일본 네티즌들은 '개똥벌레'를 무라카미 씨의 최고 단편으로 꼽았다고 하는군요. 어쨌든 아름답고 여운이 느껴지는 좋은 소설입니다. '헛간을 태우다'는 태운다는 점에서 근작인 '다리미가 있는 풍경'을 떠올리게 하는데, 좀더 댄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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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씨의 단편소설이 장편화되는 경우를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여기 실린 '개똥벌레'는 바로 '노르웨이의 숲'으로 발전하죠. 진위야 알 수 없지만 일본 네티즌들은 '개똥벌레'를 무라카미 씨의 최고 단편으로 꼽았다고 하는군요. 어쨌든 아름답고 여운이 느껴지는 좋은 소설입니다. '헛간을 태우다'는 태운다는 점에서 근작인 '다리미가 있는 풍경'을 떠올리게 하는데, 좀더 댄디한 느낌을 주는군요. '세 개의 독일 환상'은 무라카미 씨의 단편으로서는 드물게 난해한 편입니다. 이렇다할 스토리도 없고, 세 편의 환상이 어떤 연관이 있는 것인지 무얼 말하고자 하는 것인지 종잡을 수가 없습니다. '춤추는 난쟁이'는 괴기단편이라고 부르고 싶군요. 작품 자체는 훌륭한 것 같은데,오싹하고 불쾌한 느낌을 줍니다. 이런 이야기는 싫군요. '장님 버드나무와 잠자는 여자'가 마지막으로 실려 있습니다. 이 단편은 약간의 손질을 거쳐서 '렉싱턴의 유령'에 다시 수록됩니다. '노르웨이의 숲'을 연상하게 하는 친구 둘과 여자 하나에 대한 회상이 들어 있습니다.
b***1 2002.05.2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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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 특유의 환상넘나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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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그렇듯이 하루키의 소설을 읽고 나면 꿈을 꾼 것 같다. 꿈을 꾸고 나서 그 꿈에 대해 무엇인가 말하고 싶어도 그 내용조차 생각나지 않을 때 있는 것처럼 책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도 쉽게 감상을 표현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내게 하루키는 그런 작가다. '상실의 시대'를 비롯한 대부분의 작품을 읽었지만 창피하게도 제대로 된 감상문조차 써 보지 못했다. 이 책도 예외는 아니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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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그렇듯이 하루키의 소설을 읽고 나면 꿈을 꾼 것 같다. 꿈을 꾸고 나서 그 꿈에 대해 무엇인가 말하고 싶어도 그 내용조차 생각나지 않을 때 있는 것처럼 책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도 쉽게 감상을 표현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내게 하루키는 그런 작가다. '상실의 시대'를 비롯한 대부분의 작품을 읽었지만 창피하게도 제대로 된 감상문조차 써 보지 못했다. 이 책도 예외는 아니었다. '개똥벌레', '헛간을 태우다', '춤추는 난장이'... 편을 거듭할 수록 역시 하루키라는 생각을 했다. 점차 환상의 농도가 진해지는, 독자를 단숨에 이상한 세계로 끌어들이는 그의 작법에 두 손을 들고 말았다. 그렇지만 감상문 몇 자 쓰는 것이 대수랴. 표현할 수 없어도 작가와 통하기만 하면 되지 않을까. 이렇게 위안하며 또 다른 작품을 기약해 본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s******4 2000.06.08.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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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자이크식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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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의 글쓰기는 '모자이크식 글쓰기'라고 나는 정의내려본다. 하루키에게 왜 열광하는가...? 하는 인제 조금은 진부하기까지 한 물음은, 그러한 하루키의 글쓰기에서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기존의 소설들은 하나의 유기적인 체계를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인과의 관계를 따라, 말하고자 하는 하나의 주제를 선명하게 드러낼 수 있는 작품. 그것이야말로 '잘된' 작품의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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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의 글쓰기는 '모자이크식 글쓰기'라고 나는 정의내려본다. 하루키에게 왜 열광하는가...? 하는 인제 조금은 진부하기까지 한 물음은, 그러한 하루키의 글쓰기에서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기존의 소설들은 하나의 유기적인 체계를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인과의 관계를 따라, 말하고자 하는 하나의 주제를 선명하게 드러낼 수 있는 작품. 그것이야말로 '잘된' 작품의 기준이었으며, 나 또한 거기에 동의하는 측면이 많다. 그렇지만 하루키는 그 유기적인 인과 관계에 집중하지 않고도, 충분히 독자들을 자신의 영역으로 끌어들인다. 이것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개똥벌레>는 내가 읽은 하루키의 단편 중 가장 마음에 들었던 작품이다. 이 작품을 다시 한번 읽어보며 하루키식 글쓰기란 이런 것이구나, 하고 감탄했다. 위에서 말했듯이, 하루키의 글쓰기는 유기적인 연결의 과정에 집중하지 않는다. 오히려 순간순간의 장면들에 집중하고, 기억을 회상하고 추억함으로써 연속성을 깨뜨려낸다. 그의 글을 읽는 우리는 순간순간 제시하는 그의 장면들에 빠져든다. 왜냐하면 그의 언어로 제시되는 장면들이란, 우리가 누구나 언젠가 한번쯤은 겪어본, 그래서 아프지만 아름다운 기억들을 들추어내기 때문이다. 젊은 세대가 하루키의 글에 열광을 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그의 글쓰기 때문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는 것은 그의 글쓰기가 영상 세대인 우리가 익숙한 영화의 작법을 닮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단절된 순간순간의 세심한 회상과 기억-. 하지만 하루키가 그러함에도 '훌륭한 작가'라고 말하는 것은 그의 글쓰기가 그렇게 순간순간을 찢어내는 데 머무르지 않고, 거기를 넘어 전체적인 연결성을 재구성하는 경지에까지 이르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러한 글쓰기를 일러 '모자이크식 글쓰기'라 불러본다. 순간을 찢어냄으로써 부분을 응시하며 우리 마음 속의 뭉클하게 공감하는 기억들을 살려내면서, 또한 전체로는 그 부분들을 이어내 한 이미지로 회귀하는 방법. 여기서 덧붙여볼 것은 그 하루키의 시선이다. 혹자는 하루키를 일러 방황하는 젊은 세대의 허무한 감성을 잘 짚어낸 작가라고 했거니와, 거기에 앞서 지적할 것은 그 '투명함'이다. 투명함... 어떠어떠해야 한다는 당위나, 섣부른 감동이나 성급한 분노에 종속되지 않는 '나'의 시선... 그것은 '허무한 자유'라고도 부를 수 있을 것이나, 하루키의 요점은 본질적으로 그가 '투명한' 관점과 사유의 인간이라는 것이다. 그러한 점에서, 그는 젊은 세대가 열광하고 공감해내는 작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하루키는 그렇게 어느 시대에서든지 젊은 세대들이 공감할 수 있는, 투명한 시선을 바탕에 둔 '모자이크식 글쓰기'를 하고있다. 하루키의 매력은 '마력'이라고 해도 좋고, '허무함, 혹은 방향을 잃은 젊은 세대의 회고록'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방황과 상실은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다. 우리 '자유'로 사는 젊은이들에게 그것은 하나의 필연적인 부수물들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기성 세대의 사고로 세상 모든 것을 바라볼 필요는 없다. 하루키의 작품들을 하나하나 읽어나가며, 잘게 찢어놓은 작가의 단편들을 더듬어보자. 그의 그림은 바로 '우리'의 것들로 치환가능한 것들이다. 재즈가 흐르는 바에서의 맥주 한잔, 혹은 세세한 일상에서의 커피 한잔을 음미할 수 있는 이라면 그의 글쓰기는 때로 가슴아프게, 때로 눈물어린 따스함으로 다가올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하루키에 열광하는 것일게다...
b********g 2001.09.08.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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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똥 벌레_무라카미 하루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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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까지 계속 될지 모르지만 나의 단편 공포증은 어김없이 이번에도 찾아왔다.  이분, 무슨 이야기를 하시겠다는 거야?!  "책임 지세요."라며 투정 섞인 말들을 늘어놓기도 하지만, 결국 돌고 돌아 책임져야 할 사람은 나라는 것만 확인 할 뿐이다.    내 깜냥.  내 경험과 축적된 지식이 받아들인 구절은 두 구절 뿐이다.  나머지 구절은 잊었거나, 잊혀졌다.  아마 다음에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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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까지 계속 될지 모르지만 나의 단편 공포증은 어김없이 이번에도 찾아왔다.

 이분, 무슨 이야기를 하시겠다는 거야?!

 "책임 지세요."라며 투정 섞인 말들을 늘어놓기도 하지만, 결국 돌고 돌아 책임져야 할 사람은 나라는 것만 확인 할 뿐이다.

 

 내 깜냥.

 내 경험과 축적된 지식이 받아들인 구절은 두 구절 뿐이다.

 나머지 구절은 잊었거나, 잊혀졌다.

 아마 다음에 다시 읽게 된다면 좀 더 많은 의미를 발견해 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남기며.

 

단편 제목은 개똥 벌레다.

 책 제목과 같다.

 첫 번째 구절은 '그녀'의 고백이다.

 그녀와의 관계는 좀 복잡한데, 죽은 친구의 애인이며 오래 알고 지내온 사이다.

 

25쪽 : "잘 표현하질 못하겠어. 요즘 계속 그래. 정말 말을 잘 못하겠어. 뭔가 말하려고 하면 항상 얼토당토않은 말만 나와. 아니면 아예 내 생각과 반대되는 말이거나. 그래서 그걸 고치려고 할 수록 더 혼란스러워져서 이상한 말이 나오는 거야. 그러다보니 애초에 내가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지조차 잊어버리곤 해."

 

그녀의 고백이지만 나의 고백이기도 하다.

 난 어딘가 늘 서툴다.

 무척 능숙해보이고, 의연해 보이는 방법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결국 모든 것이 서툴다.

 

 문제는 이 서툼이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다는 데 있다.

 그래서 기다리는 것이 아닐까?

 그런 서툰 나라도 "괜찮아."라고 이야기 해줄 사람을.

 

이 소설에서는 '나'가 그런 사람이었던 모양이다.

 서툰 것을 고백하기란 쉽지 않다. 내겐 그랬다.

 

두 번째 구절은 '나'의 삶의 '주의'에 대한 이야기다.

 

29쪽 : "모든 사물에 대해서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 것."

 

좋은 말일 수도 있다.

 지나치게 심각해지다보면 오히려 제풀에 지쳐떨어져나간다.

 하지만 '무관심'의 시작이기도 하다.

 무관심이라고 이야기 했지만 사실 이것은 '관점'의 차이에 불과하다.

 저마다 삶을 대하는 태도와, 삶 속에서 추구하는 목표가 다르며 결과 또한 다르다.

 

한 예로 인간의 관점에서 보면 지구는 점차 '고갈되고' 있다.

 하지만 지구의 관점에서 생각해보면 지구는 조금의 '손실'도 없을지 모른다.

 인류가 멸망한다고 해서, 지구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지금 고조되고 있는 환경에 대한 위기의식조차 '인간만의 위기'일 수 있다.

 

나의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 것이 시작 된 것은 중학교 2학년 때 즈음이 아니었을까 싶다.

 어느 순간 의외의 계기를 통해 절박했던 문제가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린 일이 있었다.

 정말 아무 것도 아니었다.

 

옛 이야기는 그만 두도록 하자.

 

 어찌되었든 한 구절만 깊이 공감하고 기억해도 만족스러울 텐데 두 구절이나 발견해 낸 것이 기쁘다.

 세상을 대하는 태도와 표현하는 방식, 본능적으로도 어느 정도는 해 나갈 수 있겠지만 배우고 고쳐나가야 하는 것이리라.

 

 완전하게 만들어졌든, 불완전하게 만들어졌든 시행착오란 어디에나 있는 법이니까.

 



c*********p 2012.04.03.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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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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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의 소설을 읽고나면 또는 읽으면서 난 참으로 많은 생각을 한다. 그럴수 밖에 없기도 하다. 하루키 책은 생각을 많이 해 보지 않으면 주제를 찾지 못해 헤매이거나 하루키만이 주는 상실감에만 젖을 뿐이기에. 하지만 이런저런 많은 하루키의 소설,특히 단편들을 읽고나면 생각은 많되 그것을 글로 옮기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일단 전반적인 하루키의 메세지는 단편집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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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의 소설을 읽고나면 또는 읽으면서 난 참으로 많은 생각을 한다. 그럴수 밖에 없기도 하다. 하루키 책은 생각을 많이 해 보지 않으면 주제를 찾지 못해 헤매이거나 하루키만이 주는 상실감에만 젖을 뿐이기에. 하지만 이런저런 많은 하루키의 소설,특히 단편들을 읽고나면 생각은 많되 그것을 글로 옮기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일단 전반적인 하루키의 메세지는 단편집들이 서로서로 `대동소이` 하기때문에 같은 말만 반복할수는 없다. 그렇다고 각각의 소설을 읽으면서 같은 생각만을 하는것도 아니니 이또한 미묘한 하루키세계의 묘한 매력이 아닌가 한다. 이 책 개똥벌레외 다수의 단편들. 특히 개똥벌레는 노르웨이의 숲(상실의 시대)의 출발점이며 그 개똥벌레 자신또한 상실의 시대와는 별개로 아주 뛰어난 단편으로 평을 받고 있는 작품이다.(개똥벌레란 이름으로도 알려져 있지만 `반딧불이`라고도 알려져 있다. 구판이 개똥벌레라고 적혀있다고 한다.) 나도 상실의 시대와 이 책을 다 읽었지만 역시 상실의 시대는 그 나름대로 그리고 개똥벌레 그자체만의 나름도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마지막부분에서 개똥벌레가 날아가는 모습이란..아마 상실의 시대에서 마지막대사에서 주는 `짜릿한`정체성의 물음처럼 여기서는 그 정체성의 방황을 나타내는게 아닌가 하고 생각해 보기도 한다.(또는 진정한 자아를 찾아가는 모습이나.. 정말 여러가지의 생각을 가질수 있기에 간단한 `텍스트`로는 진정한 표현은 어려울것같다.물론 나의 실력부재이기도 하지만.) 이 책의 제목에서 알수 있듯이 이 책은 개똥벌레 외에도 다수의 단편이 실려 있다. `헛간을 태우다`에서는 어딘가 알수없는 미묘한존재로부터의 무의식속의 현실세계 접근이라는 나름의 생각을 가지며 읽으면서의 재미보다 읽고나서의 재미가 `쏠쏠`했던 작품이다. 그 외에도 춤추는 난쟁이가 상당히 인상적이었던 것같다.(마치 다른 작품중의 `도서관에서 있었던 기이한 이야기`처럼 미묘한 인상을 준다.) 특히 주인공의 여자와의 `키스신`(?)에서의 묘사란 상상을 할경우 아주 비위에 거슬릴 정도였다. 욱~ 지금생각해도 그때의 묘사가 머릿속의 공연장에서 펼쳐지려 한다. 그리고 `장님버드나무와 잠자는 여자`는 `렉싱턴의 유령`이란 단편집에서 약간의 수정을 가한 `장님버드나무와, 잠자는 여자`의 원본격인데 수정을 가한 작품에서나 원본이나 별반 차이는 없었다.(하지만 수정을 가한부분이 좀더 매끄러워 보이긴 했다.) 그리고 나머지 한편은 그다지 나의 마음에 와닿지 못했던 까닭에 머릿속의 방을 얻지못하고 떠돌아다니는 신세라 찾기가 힘들다. 혹시 `상실의 시대`는 읽었으나 이 원본격인 `개똥벌레`는 보지 못한분이 계시는지요? 혹시 계시다면 얼른 보시기 바랍니다.자~ 우리도 한번 개똥벌레처럼 밤하늘을 날아 볼까요?~
k*****7 2002.11.20.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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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딘선가 본 듯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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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의 책을 접한건 21살 가을이었던것 같다. "상실의 시대" 라고 우리에게 알려져 있는 노르웨이의 숲이라는 책을 그제서야 집어든 것이다. 내가 고등학교 다닐 때쯤 엄청난 라디오 광고로 상실의 시대를 띄웠던것 같다. 그때쯤 무슨 광고에도 어떤 여자가 기차에서 상실의 시대를 읽고 있었으며 붐이 일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때는 그렇지만 그때는 왠지 그 책을 보기 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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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의 책을 접한건 21살 가을이었던것 같다. "상실의 시대" 라고 우리에게 알려져 있는 노르웨이의 숲이라는 책을 그제서야 집어든 것이다. 내가 고등학교 다닐 때쯤 엄청난 라디오 광고로 상실의 시대를 띄웠던것 같다. 그때쯤 무슨 광고에도 어떤 여자가 기차에서 상실의 시대를 읽고 있었으며 붐이 일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때는 그렇지만 그때는 왠지 그 책을 보기 싫었다. 너나 할거없이 상실의 시대니 어쩌니 하는건.. 글쎄 내맘에 안들었었다. 무라카미의 글을 많이 읽은 것은 아니지만 이렇다 저렇다 그렇다로 끝나는 나로서는 고역인 내용이었다. 물론 이 단편집의 경우가 그렇다는 말이다. 긴장을 주는 대목에서도 그는 변하지 않는다. 이렇다 저렇다 그렇다로 끝난다. 처음엔 너무도 당황한 나머지 젠장 나보러 어쩌라는거야 이게뭐야 며 괴로워했지만 차차 거기에 녹아드는걸 알수가 있었다. 세뇌라는 표현은 어울리지 않는다. 그것을 인정하게 되고 이해하게 됐다는게 옳은 표현이겠지. 내가 인정 안한다고 안되는건 없지만 그 내용을 내가 받아들일수 있게됐다는 게 마음에 들었다. 그렇게 책을 읽었고 지금도 읽고있다. 황당하지만 화끈하다. 개똥벌레라는 단편은 노르웨이의 숲의 모티브라고 책표지에 소개되어있다. 그래서 어디에서 많이 본 듯한 내용이라는 생각이 책을 보는 내내 들었었다. 이 아둔함..
i***e 2003.01.18.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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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가지 환상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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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름의 "하루키 매니아"이다. 매니아는 좀 그렇고 국내에 출판된 그의 책들은 도서관을 전전하며 거의 모두 읽었고(같은 내용이라도 역자와 출판사가 다르면 구할수 있는한 모두 읽었다), 요즘에는 방향을 달리해서 그간 읽었던 책 중에서 좀 괜찮다 싶은 그의 책을 직접 사서 다시 읽는 중이니 꽤 훌륭한 팬이라고는 할 수 있겠다.(이미 읽었던 책들을 다시 사려는 것이 "집착"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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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름의 "하루키 매니아"이다. 매니아는 좀 그렇고 국내에 출판된 그의 책들은 도서관을 전전하며 거의 모두 읽었고(같은 내용이라도 역자와 출판사가 다르면 구할수 있는한 모두 읽었다), 요즘에는 방향을 달리해서 그간 읽었던 책 중에서 좀 괜찮다 싶은 그의 책을 직접 사서 다시 읽는 중이니 꽤 훌륭한 팬이라고는 할 수 있겠다.(이미 읽었던 책들을 다시 사려는 것이 "집착"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것도 사실이지만 좋은 걸 어찌 하겠는가? 또,도서관에서 빌린 책에는 밑줄을 치면서 읽을순 없잖은가?) 그리하여 이 책도 사게 된 것이다. 물론 이 책에 담겨 있는 다섯편의 단편소설들은 이미 다른 번역자의, 다른 출판사의, 다른 제목의 단편소설집을 통해서 이미 여러번 읽어보았던 것들이다. 따라서 내게 이 책을 읽는 것은 새로운 무언가를 읽는것이 아니라 기억속에서 예전에 받았던 감동들을 끄집어내며 되새김질을 하는 것 정도의 의미를 갖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 대해서 한가지 마음에 드는 것이라면 책의 원형이-작가 하루키가 의도한 제목과 내용물이 고스란히 담긴-유지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간 하루키의 단편소설들을 "걸작선" 내지는 "단편선"이라는 제목하에 마구잡이로 편집되어 나왔던 책을 통해 읽었던 그의 매니아들이라면 공감할 만한 점이리라. 굳이 그런 의미의 "하루키 다시 읽기"를 원치 않는 독자라도 하루키가 의도한 일관된 분위기의 다섯가지 단편소설을 읽는 재미도 꽤 쏠쏠할 것이다. 이 책에 실린 다섯편의 단편소설을 관통하는 어떤 일관된 분위기가 있다면 그것은 일종의 "환상"이 아닐까 생각한다. 유명한 그의 소설 "상실의 시대"의 원형이 담긴 "개똥벌레"는 건물옥상의 급수탑 근처에서 개똥벌레를 하늘로 날려보내는 장면으로 끝을 맺고 있고, "춤추는 난쟁이", "장님 버드나무와 잠자는 여자", "세가지의 독일환상"은 꿈속에서나 나올만한 분위기의 얘기들이 나오거나 그 자체로 "꿈같은" 분위기의 소설들이니 말이다.

[인상깊은구절]
'귤껍질 까기' 이야기를 해보자. 처음에 만났을 때 그녀는 내게 팬터마임 공부를 하고 있어요, 하고 말했다. 그러냐고 했다. 그리 놀라지도 않았다. 요즘 젊은 여자아이들은 모두 무엇인가를 하고 있다. 게다가 그녀는 무엇인가에 진지하게 파고들어 재능을 갈고 닦아 갈 타입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녀는 '귤껍질 까기'를 했다. '귤껍질 까기'라는 것은 문자 그대로 귤껍질을 까는 것이다. 그녀의 왼쪽에 귤이 가득 든 통이 있고, 오른쪽에는 귤껍질을 넣는 통이 있다고 설정한다. -사실은 아무것도 없다-그녀는 그 상상의 귤을 하나 들고 천천히 껍질을 벗겨 한 알씩 입에 넣고 씹다가 찌꺼기를 뱉어내고, 한 개를 다 먹으면 찌꺼기를 모아 껍질로 싸서 오른쪽 통에 넣는다. 그 동작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것이다. 말로 설명하면 별로 대단치 않다. 그러나 실제로 눈앞에서 10분이고 20분이고 그렇게 하는 것을 바라보고 있으면-나와 그녀는 바의 스탠드에 앉아 세상 사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그녀는 이야기를 하면서도 거의 무의식적으로 그 '귤껍질 까기'를 계속하고 있었다-점점 내 주변에서 현실감이 흡수되어 버리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이다. 이것은 극히 묘한 기분이다
YES마니아 : 로얄 e********n 2000.12.08.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