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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역사상 가장 성공한 지도자로 한국 존경하는 인물 1,2위에 세종대왕과 함께 수위를 다툰다. 흔히 임진왜란의 대환란에서 누란의 조선을 구해낸 전쟁영웅 정도로 기억한다. 우리가 흔히 삼국지의 영웅 제갈량을 군사 작전의 귀재 정도로 알고 있지만 그의 진면목은 뛰어난 물론 군사적 능력도 뛰어났지만 정치가요, 행정가였고, 문장가였다. 무엇보다 충신의 사표로 후세에 기억되고 있다. 이순신 장군 역시 7년의 임진왜란 환란에서 나라를 구한 전쟁영웅, 장군 정도로 기억하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그런 영웅적인 면모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가 삶을 살아가면서 보여준 일관적인 자세, 스스로에게 엄격하고 후배들을 사랑하면서 또 뛰어난 공직자로 난중일기를 보면 뛰어난 문장가요, 전쟁기록가였다.
예전에는 이순신 장군이 7년간의 전쟁에서 어떻게 위기를 극복하고, 후배들을 한 마음으로 이끄는 리더십에 집중했다면, 최근에는 워낙 사회 지도층의 편법과 도덕성 부재, 리더십의 실종 등을 보면서 이순신 장군이 어떻게 공직생활을 했고, 삶을 살아가는데 어떤 자세로 살아갔는지에 대한 생각이 더 들게 됐다. 사실 문제다. 존경할 만한 지도자가 없다는 것, 공정성의 부재야말로 그 사회의 심각한 병폐라고 할 수 있겠다. 이순신 관련 책을 많이 봤지만 이제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는데 조금은 씁쓸했다.
'이순신은 공직을 맡고 나서부터 죽을때까지 사리사욕을 위해 자신의 권한을 행사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는 오직 나라와 백성들을 위한 봉사자의 길 위에서 평생을 살다 간 사람이다.'
내가 인간 이순신 장군에 대해 느낀 생각을 정리하면 1. 그는 완벽을 추구한 사람이었다. 우리는 모든 사람이 완벽하다고 한다는 것에 경계해야 한다. 결국 사람이고, 충무공 역시 사람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과 노력을 했다고 봐야 된다. 2. 공직사의 사표라고 생각한다. 공직자로서 기본적 가치에 충실했다. 도덕성이나 업무적인 성과 모두 훌륭했다. 3. 성공한 지도자&리더다. 최악의 여건 속에서 구국이란 목표 달성에 성공했고, 열세의 조선 수군을 강군으로 이끈 지도자였다. 무엇보다 지극히 사랑으로 충만한 성품을 양성하여 매사에 이를 극대화 했기 때문에 마침내 목표한 바를 이루었다. 정의, 준비, 열정, 노력 등의 내면적 가치가 합일되어 인간 이순신, 지도자 이순신을 만들었다. 당대의 승지 최유해와 대제학 택당 이식은 이순신을 기려 쓴 행장에 그 인물됨을 찬탄했다. 공은 엄하고 진중해 위풍이 있는 한편 남을 사랑하고 선비에게 겸손하며 은혜와 신의가 분명하고 식견과 도량이 깊으며 기쁨과 노여움을 잘 나타내지 않았다. 일찍이 하는 말이 "대장부 세상에 나서 쓰이면 죽을 힘을 다해 충성할 것이요, 쓰이지 못하면 농사짓고 말아도 또한 족한 것이니, 권세있는 자에게 아첨해 뜬 영화를 탐내는 것은 내가 부끄러워하는 바라."
여해 이순신 장군은 1545년 4월 28일 이순신 장군은 서울 건천동에서 태어났다. 덕수이씨 아버지 이정과 어머니 초계변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형은 희신, 요신, 이순신은 중국의 명군주인 순임금의 순을 따랐고, 동생은 우임금의 우신으로 4형제였다. 이순신의 집안은 조선 중기로 오면서 명문이 됐다. 덕수이씨에서 유명한 율곡 이이와 그의 집안 종조부격인 영의정 이기 등이 나오면서 조선 중기 명문으로 발돋움한다. 다만, 이순신의 가문은 할아버지 이백록이 조광조의 당여로 인정되어 문반으로 고관대작의 벼슬길이 막혀버린다. 결국 이순신이 무과로 전환하게 되는 계기인데 개인적으로는 불행이지만, 우리 민족 입장에서는 그렇게 다행일 수가 없는 일이라 할 수 있겠다.
이순신은 건천동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20대 그 유명한 말에서 떨어져 무과에 낙방한다. 시험관들은 그의 생사를 보는 확고한 철학과 고금의 경사에 해박한 지식에 감복했다고 한다. 또한 이순신 장군이 병법에 밝고 문관형 장군이라고 흔히들 알고 있으나 선영 앞에 쓰러진 망주석을 여러 하인이 합세하고도 일으켜 세우지 못하는 것을 혼자서 세웠다는 것에서 볼 때 용력 또한 셌음을 알 수 있다.
다만 이순신을 가까이에서 안 많은 지인들이 공통되게 그를 깊은 수양을 쌓은 선비로 묘사하고 있다. 잘 알려진 류성룡의 그의 인물평은 "순신의 사람됨은 말과 웃음이 적고, 얼굴은 단정해 몸을 닦고 언행을 삼가는 선비와 같았으나 그의 뱃속에는 담기가 있어 자신을 잊고 국난에 몸을 바쳤으니, 이는 평소 수양을 많이 쌓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군대문화를 생각해 보면 고개가 절로 흔들어지는데 당시 관행적이던 뇌물, 군대 특유의 기수문화와 상관에 대한 맹목적 복종을 이순신은 하지 않음에 있어 바른길을 걷는 사람이 언젠가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처음의 오해를 벗고 성공까지 할 수 있는 역사적으로 거의 드문 진실을 보여준다는데 의의가 있다. 또한 이순신은 매사에 준비가 철저하고 규정을 준수하는 참된 군인이었다.
또한 난중일기 곳곳에 드러나지만 명시인이었다.
가을 기운이 바다에 드니 나그네 회포가 어지럽다 홀로 배 뜸 밑에 앉았으니 마음이 몹시도 번거롭네 달빛이 뱃전에 비치니 정신은 맑아져서 서늘하고 잠을 이루지 못하는 새에 어느덧 닭이 운다. ---p.205
책을 통해 이순신 장군의 첫 승리 해전인 옥포승첩(해전)부터 당포승첩, 임진왜란 3대첩 중 하나인 한산도대첩, 그리고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남아 있습니다(역사적 사실로 아주 작은 배 한 척이 더 있어 실제는 13척이었다고 한다. 사실 12척이나 13척이나 의미없다, 중과부적으로 적을 물리친 이순신의 신과 같은 전승의 당당함이 남아 있을 뿐이다)로 유명한 명량해전과 마지막 적들이 물러가는 바다에서 분전한 노량해전까지 이순신 장군의 승전사를 그림과 지도로 함께 따라가고 있다.
이순신 장군은 마지막전투 노량해전에서 드라마틱하게 전사한다. 많은 호사가들이 이를 두고 선조의 핍박을 피한 의도된 전사였다, 또는 무덤이 이장되는 1614년이 진짜 서거한 해다라는 여러 학설을 제시하지만 역사적인 팩트에 집중하자. 사실 방패로 나를 가리라는 약간 양념이 많이 가해진 멘트고 실제는 함께 참전한 조카 이완이 나중에 기록한 것인데 "지금 싸움이 한창 급하니 내가 죽었다는 말을 내지 말라"였다. 그렇게 충무공은 마지막 승리와 함께 바다를 지키는 수호신이 되었다.
역시나 선조는 자신을 호종한 호성공신은 내관, 말직까지 공신으로 봉하고 선무공신은 숫자를 박하게 한다. 전쟁의 승리는 오직 자신과 명군이 했다는 논리였다. 선무 1등 공신은 이순신, 권율, 그리고 칠천량에서 패한 원균 이렇게 3명 뿐이다. 이순신과 원균을 함께 두면서 자신의 무능함, 패착을 가리는 용도로 활용했다. 후에 정조가 이순신을 존경해서 이충무공 전서를 간행하고, 당시 좌의정이었던 이순신을 증직해서 영의정으로 하고 제왕이 신하의 묘소에 비문을 직접 지은(우리 역사상 유일한) 현재의 아산 현충사 경내에 묘소가 있다. 후에 이순신 집안은 어머니를 지키며 향토방위에 분전하다 전사한 아들 이면, 조카 강민공 이완, 충숙공 이봉상까지 그의 후손들 역시 무반으로 나라를 위해 또는 적의 침입에 절개를 지켰다.
저자의 이순신에 대한 사랑이 지극해서 이순신을 너무 전쟁 영웅에 가깝게 그리고 있다는 비판을 하는 독자도 있지만, 우리 역사상 이런 위대한 인물 한 명 정도 있는 것은 또 좋은 일 아닌가 생각도 든다. 이순신 같은 공직자의 귀감, 공직자의 자세, 멸사봉공의 위정자를 기대해본다.
이순신의 바다, 민족 최고의 영웅인 이순신이 지켜내고자 했던 바다로 함께 가본다. 그 바다는 오늘도 우리에게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말해주는 듯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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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을 새워서 다 읽었다 책이라는건 이런것이다 죽어가면서 느꼈을 비통함에 눈물이 난다. 죽어야만 하는 상황, 자신이 죽어야만 옹졸하고 세상의 제일 멍청한 임금으로부터 자신의 부하들을 살릴수 있다는 비장함 현재시대에는 가능할까? 정유재란때 삼도수군 통제사라는 직함은 다시 받았으나 망궐례를 하지 않았다. 더이상 임금에 대한 충성은 없다.... 아들에게 들려줄 올바른 역사서가 있다는걸로 위안삼는다 곳곳에 나온 준비와 연구에 감탄과 경의를 표하며 글 마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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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 황현필은 고등학교 한국사 선생님이었고 지금 구독자 60만을 보유한 한국사 유튜버 no.1이다. 이 책은 이순신이 전 생애를 걸쳐 겪었던 모든 일들을 잘 설명해주고 있다. 그야말로 이순신 전기라고 할수 있겠다. 그러나 이 책은 여느 역사책 처럼 펼치기만 하면 잠이 오는 그런책이 아니다. 400쪽에 달하는 꽤 방대한 분량임에도 여러 사진과 도표, 생생한 삽화들이 있어 읽으며 지루할 틈이 없었다. 또한 책의 간결하고 쉬운 문장들도 내용에 몰입하게 만들었다. 그렇다고 책의 내용이 얕은 것도 아니다. 이순신이 23번 치뤘던 모든 전투들을 다루고 있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의 전개과정 또한 그 흐름을 쉽게 설명해준다. 많은 사람들이(나까지도) 이순신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책을 보고 나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의외로 내가 잘 모르는게 많았다는 걸 알게되었다. 또한 책을 읽으며 이순신을 다시한번 존경하게 되었다. 정치적으로 책의 저자를 공격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나는 이런 공격이 정당하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나도 저자랑 정치성향이 완전히 같지는 않지만 그게 도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역사는 역사고 팩트는 팩트다. 다만 그 팩트를 해석하는데 차이가 있을 뿐이다. 만일 서로 인정하는 팩트가 같다면 해석의 차이는 존중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오랜만에 의미있고 좋은 책을 읽은 것 같다. 아직 안읽어 보신 분들께 강추한다. 황현필 선생님! 이 글을 보시고 계시다면 감사하다는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앞으로도 유튜브 영상으로 자주 뵙겠습니당. 또 앞으로 역바연에서 출간하는 책들도 다 읽어 보겠습니다. 앞으로도 화이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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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여태 읽은 이순신 관련 서적 중에 감히 최고의 집필이라고 말씀드립니다. 과연 황현필 선생님. 역사를 가장 역사 답게 배웁니다. 알고있던 사실과 다시 알게되는 상세한 기록이 기존의 역사관과 윈윈합니다. 중간에 읽기멈춤 할 수 없을 만큼 강한 몰입을 하게 되었습니다. 감사한 마음 전합니다. 독서의 즐거움과 감동 그리고 성웅에 대한 존경. 우리의 역사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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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의 바다... 감동의 눈물이었습니다. 제가 2014년도에 발행된 난중일기를 읽고 충무공 이순신을 존경하게 되었는데 이번 이순신의 바다를 읽고는 충무공 이순신을 사랑하여 너무나 보고 싶어 눈물이 흘렀습니다. 전세계의 장수들이 인정하는 충무공 이순신의 전략전술을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책이었습니다. 이 책은 해전별로 그림이 그려져 있어 어떤식으로 전시상황이 벌어졌는지 볼수 있어 더욱 마음에 와닿고 진짜 가슴이 뛰면서 해전들을 머리속에 그림을 그리며 책을 읽어내려갈수 있었습니다. 특히 명량해전을 설명하는 부분에서 울돌목과 명량의 사진을 볼때 저는 눈물을 닦아가며 책을 읽었습니다. 정말 한 인물을 이토록 사랑하게 만들어 주었던 책이 또 있었을까요? 지금도 가슴이 뭉클하고 눈물이 납니다. 모든 분들께서 이 책을 읽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이렇게 멋진 책을 만들어주신 황현필선생님과 도움을 주셨던 많은 분들께 정말 정말 감사하다고 꼭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마지막 글을 적어올립니다. "우리는 이순신의 삶을 통해 이순신을 배우고 이순신의 용기를 얻을 자격이 있는 이순신이 후손이다. 이순신은 지금 우리들의 이순신이고, 우리 후손들의 이순신일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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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하고 많은 분들이 매력을 느껴 연구하는 사람이 바로 이순신 장군이다. 많은 이순신 서적 중에서도 요새 눈에 띄는 것은 황현필 선생을 필두로 하는 역사바로잡기연구소의 이순신의 바다다. 주요 전투의 모습들을 이미지화 하였고 지도를 통해 전법과 시간 순 전투일지들을 보여줘 책의 가독성을 높였다. 또 기록의 어려운 부분들을 잘 풀어내어 썼기 때문에 읽는 데 하등 어려울 것이 없어 거침없이 읽었다. 오랜만에 즐거운 책을 읽었다. 향후 역바연의 책들을 전집으로 구입하는 날이 오기를 기대하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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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장군에 대해서는 많은 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최근 임진왜란에 대해서 많은 사실과 연구가 대중에게 알려지면서 서서히 시각이 수정되고 있습니다.
이순신 장군이 전쟁 전 전라좌수영 수군 절도사에 오를 수 있었던 점도
고작 현감에서 가리포 첨사, 진도 군수 등으로 임지에 도착하기도 전에 연이어 진급시켜 임명하였습니다.
저자는 위대한 이순신 장군의 일생을 꼼꼼하게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다만 몇가지 점에서는 동의하기 어려웠습니다.
이순신 장군이 업적을 강조하다 보니 조선의 해양 정책에 대해서 낮게 보는 점입니다.
하지만 조선은 이례적으로 장기간 한반도 남부 해안에 대규모 정규 함대를 집요하게 육성,운용했습니다.
이순신 장군의 전라 좌수영이 가장 전투준비태세가 갖추어졌지만
그리고 칠전량에 해전에 대해서 의문이 생기는 점입니다.
이후 주요 장수들이 대부분 생환하여 다시 휘하에 들어오고 명량 해전이후 함대 규모가 급격히 늘어난 점입니다.
13척으로 싸웠던 명량해전 시기보다 이후 고금도에 자리잡았을 시기에는 50척이 넘어가는 속도는
실제 이순신 장군은 명량에서 일본 함대에 막대한 손실을 안기고 또 함평까지 물러서고 있습니다.
또한 명랑에서 이제까지와 달리 용장의 모습으로 선두에 싸웠던 것은
그리고 마지막 한가지는 이순신 장군의 경질 문제는 선조의 질투만은 아닌것으로 추정합니다.
칠전량의 패배는 정유재란의 시작이었습니다.
조선 조정은 이 일본군의 대규모 재침공을 예상하고 있었고 시간 문제였습니다.
싸우면 지는 것을 안 일본군은 항구에 웅거하고 나와 싸우지 않았기 떄문에
그러나 재침공을 대비하는게 급했던 조정은 현지 사정에 상관없이 무리한 출전을 강요했고
이렇기에 가장 극적인 순간에 지휘관 교체가 일어나고 조선사 최악의 졸장이 지휘관이 되었습니다.
그 결과는 참혹한 패전과 정유재란의 본격적인 발발이었습니다.
너무 비판적으로만 말했지만 좋은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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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의 바다를 읽고
“이순신 역사서는 이 책 이전과 이후로 나뉠 것이라 자부합니다.” 작가의 대단한 자신감이 느껴진다. 하지만,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그 자신감은 진짜였다. 정말로 오랜만에 하루에 다 읽은 책이다. 약 400페이지나 되는 두꺼운 책이지만, 책을 펼치니, 덮을 수 없었다. 손에 땀을 쥐게 할 정도로 너무나 재밌기 때문이다. 중국에 삼국지가 있다면, 한국에는 이순신이 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엄청난 스토리로 독자들을 몰입시킨다. 하지만, 그 스토리가 허구가 아닌 사실이라는 점이 더 놀랍다. 이미 이순신을 소재로 한 드라마, 영화 등이 많이 있었지만,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이순신 생의 전체를 다룬 책도 없었고, 이렇게 흥미롭게 서술한 책도 없었다. 정말로 이순신 역사서는 이 책 이전과 이후로 나뉠 것이다. 남해 지역을 여행하다보면, 어딜 가도 이순신 유적지가 있다. 여수, 거제, 통영, 사천 등 사실 남해 지역 어딜가도 이순신 유적이 있다보니, 흥미롭지도 않고, 그냥 그저그런 유적지였다. 하지만, 그 때 보았던 유적지들은 모두 왜적을 대항하여, 이순신이 정박을 하고, 전투를 한 역사적인 곳이었다. 또한 남해안 여러 지역에서 볼수 있는 “왜성”이 일본이 이순신을 방어하기 위해 임진왜란 때 지은 성이라는 것을 이번에 알았다. 지금은 매우 반성한다. 왜 조금 더 관심을 갖지 않았을까? 중국의 삼국지 유적들은 수 많은 관광객이 찾고 있는데, 우리나라의 이순신 유적들은 그렇지 못한 점이 안타깝다. 역사 교육이 이렇게 중요하다. 책이 또 흥미로운 점은 삼국지처럼 다양한 인물이 나온다는 점이다. 특히 원균에 대한 작가의 서술이 흥미롭다. 나라와 대의를 위해 충성한 이순신과 적의 수급을 모으는 것에만 집착하는 원균. 그리고 오로지 적의 수급으로 논공행상의 기준을 삼는 까막눈의 중앙 조정. 원균의 박쥐 같은 행위에 이순신을 역적으로 몰아가는 실제 역사를 살펴보면, 지금 현실과도 그리고 회사생활과도 전혀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정말로 회사를 위해서, 가맹점을 일하는 사람은 인정받기 쉽지 않다. 가맹점이 어떻게 되는지 상관하지 않고 눈에 보이는 실적과 평가기준에만 맞취 일하는 사람들이 적의 수급만 모으던 원균과 뭐가 다를까? 중앙 조정이 원균을 높게 평가했듯이, 회사에서 눈에 보이는 실적을 내는 사람을 높게 평가하는 것도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왜냐하면 직접 지내보지 않고 그 사람을 평가할 방법은 실적과 주변사람들의 이야기 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그때 당시의 조선의 조정을 비판할 수 없다. 하지만, 그때 당시 왕이 선조가 아닌 세종이나 정조였으면 어땠을까? 선조가 우직하게 흔들리지 않고, 넓은 혜안이 있었다면, 아마 이순신이 백의종군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130여척의 판옥선과 수만의 조선 수군이 몰살당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임진왜란이 좀 더 빨리 끝날 수도 있었다. 아니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었다. 왜적을 물리친 전쟁의 영웅을 상을 주지 못할망정, 본인의 자리를 탐내는 역적으로 모는 왕에게 무엇을 바라겠는가? 책을 통해 리더의 중요성도 느낄 수 있었다. 리더는 흔들림 없이 우직해야 되며, 누가 뭐라 해도 진리를 볼 수 있는 넓은 혜안이 필요하다. 이 책은 최근 읽었던 어떠한 소설보다 흥미로웠다. 판타지가 아닌 실제 사실이라는 점이 더 놀랍고, 대한민국에 “이순신”이라는 훌륭한 영웅이 있었다는 점을 자랑스럽고 영광스럽게 생각해야 한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이 책을 읽었으면 하며, 이 책을 읽고, 광화문 광장의 이순신 동상과 남해안의 이순신 유적지를 다시 볼 수 있는 눈을 가졌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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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현필 선생님의 유트브 강의는 알고 보고 있기도 했는데. 이순신 장군에 관련된 책은 요번 기회에 처음 접하게 되었다. 그래서 팬심 겸 구입하게 되었고. 임진왜란의 영웅 이순신 장군으로만 기본만 알게 되었는데. 역사적인 사실과 특히 해전에 대한 심층깊은 내용과 삽화등이 좋았다. 매번 겉핥기로 이순신 장군에 대해서 알고 있었는데. 이번 기회에 이순신 장군에 대해 깊게 알게 되어 뜻깊은 시간이 될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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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순신의 삶을 통해 이순신을 배우고 이순신의 용기를 얻을 자격이 있는 이순신의 후손이다. 이순신은 지금 우리들의 이순신이고, 우리 후손들의 이순신일 것이다. 가슴이 뜨거워 진다 임진왜란 시기의 일본 전국시대를 대입해서 객관적인 내피셜을 적용해보면 토요토미 히데요시는 이미 일본 다이묘들 중 라이벌이 없었다 소설 도쿠가와이에야스나 전국지를 종합해보면 토요토미는 제왕에 가까웠다 결과적으로 에도막부를 세운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일본을 통일하게 되었지만 조금만 자세히 그 시대를 알면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임진왜란 덕을 톡톡히 본 인물이다 이순신은 훌륭한 인품과 곧은 성정에 비해 임금 운이 지독히 없는 시대를 살았다 이순신 장군은 자신의 삶과 죽음을 온전히 나라에 바치신 분이다 나라를 구하고 민족을 구한 대인격의 완성체이다 개인의 삶이 너무나 고통스러운 기록에 나는 오늘 선조를 원망한다 너무 무능하다 충무공이 계시지 않았다면 일제시대는 이미 400년 빨리 시작이 되었을 지도 모른다 조선의 무능한 임금과 그걸 이용한 세도가들의 당쟁이 원균을 만들었고 아이러니 하게 그 시기와 질투는 이순신의 백의종군을 2번이나 이끌어 낸다 한산도대첩은 토요토미 히데요시 에게 조선 정벌은 어렵다는 현실을 마주하게 되었지만 가토기요마사가 함경도로 선조를 쫒아가며 잡아 올리는 함경도 호랑이들의 선단을 먹고 회춘한 토요토미는 다 늙어서 임진왜란 중 측실인 챠챠에게 히데요리를 얻는다 양자인 칸파쿠 관직의 히데츠구를 할복하게 하고 막 태어난 히데요리를 후계자로 앉히며 일본은 권력에 균열이 생기며 정유재란에 실패한 토요토미는 사망하고 히데요리를 지키려는 이시다미츠나리와 도쿠가와 이에야스 간의 세키가하라 전투까지 이어지게 된다 세키가하라의 승자인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일본을 통일하고 에도막부 시대를 열게 된다 임진왜란이 없었다면 아니 있었어도 조선의 바다를 수호하는 이순신이 없었다면 역사는 아마 토요토미 위주로 쓰여졌을 것이다 2차 세계 대전 중 일본 국민이 존경하는 인물 1위가 압도적으로 토요토미 히데요시였다는 기록이 이를 증명한다 토요토미는 조선 출병후 고니시 유키나가와 가토 기요마사 둘에게 경쟁을 붙였다 누가 먼저 한양을 토벌하나 승자는 고니시였다 후에 고시니는 지금의 한강 이남지역 가토는 한강 이북에서 조선군과 싸움을 이어나간다 충무공의 활약으로 일본에서의 보급이 이루어지지 못하니 우리 나라 안에서 얼마나 많은 약탈과 핍박이 있었을까 싸움에 임했을 때의 이순신의 용맹과 전략은 타고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철저한 준비에서 비롯된 것이다 1592년 4월 임란 전에 그는 이미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난중일기에 따르면 그는 방어용 성과 못 그리고 봉수대 등을 수리하고, 전라좌도에 속한 녹도, 발포, 흥양, 여도, 방답 등 다섯 진을 일일이 순찰하면서 병선과 무기를 점검하였다 군사 훈련도 철저히 하여 특별히 날씨가 나쁠 때가 아니면 거의 매일 군관들에게 활쏘기를 연습시켰다 그 자신도 공무를 마치면 수시로 활쏘기 연습을 하였다 활쏘기는 해전에서 가장 중요한 싸움 방법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또 화화 무기가 승패를 결정하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임을 알고, 전쟁 전에도 또 전쟁 중에도 무기 개발에 힘썼다 이순신과 절대로 떼어 생각할 수 없는, 거북선 건조도 그러한 준비로부터 가능했다 1591년 전라 좌수사가 되었을 때 이순신은 전쟁을 직감하고 새로운 배를 만드는 일에 힘썼다 그 배는 판옥선과 같은 한선 위에 쇠로 된 뚜껑을 만들어 덮었으니, 형상이 거북이 엎드린 것 같았다 배의 이름은 자연스레 거북선이 되었다 거북 모양의 돌격용 전선은, 사실 조선 초 태종실록에 처음 보인다 그러나 전래의 거북선을 개량하여 철갑선으로 만들어 실용화한 것은 이순신이다 그리고 전쟁에 임하여서는 물러섬이 없었다 1597년 다시 통제사가 된 이순신은 칠천량 해전 대패로 거의 초토화된 수군을 수습하여 한 척의 거북선도 없이 오직 전선 13척을 가지고 명량 싸움에 나섰다 우리가 영화로도 천만이상이 관람한 명량이 그 것이다 원균이 무능으로 치장하고 판옥선을 다 부셔먹을 때 백성의 존경을 받던 이순신을 조정으로 불러들여 선조가 비겁하게 괴롭힐 때 역사를 아는 우리 후대는 분노한다 명이 참전하고 조선을 제외한 두나라가 휴전을 하고 난 후 늦둥이 어린 아들을 얻은 히데요시가 자신의 권력을 전일본에 알리기 위한 정유년의 재란으로 다시 대륙을 노리지만 조선에는 백의 종군 하신 충무공이 계셨다 고니시가 순천왜성에서 일본으로 퇴각할 때 고니시의 사위 시마즈 요시히로가 고니시를 구출하러 가는 해전이 노량해전이다 명나라가 원군을 왔지만 명은 시늉만 했을 뿐 임진왜란에서 사실 한 일이 없다 잔소리나 했겠지 노량에서 24시간 넘게 싸우던 인류 역사상 가장 처절했던 해전에서 충무공은 전사한다 90일간 장례를 치르며 온백성이 통곡한다 고니시는 정유재란을 끝으로 일본으로 돌아가 시마즈와 함께 큐슈지역에서 세키가하라 에서 도쿠가와와 끝까지 싸운다 에도막부가 끝까지 시마즈를 공격했으나 시마즈는 버텨낸다 다시 시간이 흐르고 시마즈가문의 사쓰마번이 조슈번과 연계하여 에도막부를 타도하고 메이지유신을 이끌어 내고 이들의 한반도 정벌과 대륙진출은 정한론으로 포장되어 다시 한일합병에 이른다 현재 일본 극우세력의 뿌리가 이들이다 조선과 싸우며 전라도와 경상도에 왜성을 짓고 공성전으로 수비하며 우리나라에서 계속 버티며 끝까지 조선을 정벌하려 했던 자들,우리 땅의 동네 꼬멩이들도 줄줄 외는 천자문 조차도 모르던 미개했던 왜놈들이 바로 이들인 것이다 가만히 눈을 감고 이순신 장군에게 예를 갖추자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