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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당하면 웬지 친근한 공간처럼 여겨진다. '맹꽁이 서당'이나 '오성과 한음'같이 만화에 등장했던 서당 풍경이나 훈장 선생님한테 회초리 맞고 울고 있는 학동이 인상적인 김홍도의 서당 풍속도나 모두 서당을 익살스러운 인상으로 각인시키는데 한 몫했다.
하지만 아동들에게 최초로 문자교육을 했던 어엿한 사학의 교육장이 서당이었다. 후기로 갈수록 서당은 교육의 중심으로 부상했고 시대에 맞게 변화하며,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는 자생력을 보여주었다. 그만큼 조선시대에 서당에서 담당했던 교육적 역할은 점점 중요해져 갔고, 그 변화는 조선사회의 변동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었다.
'서당의 사회사'는 조선시대 교육의 전체적인 체계 속에서 서당이 담당한 역할과 변화에 대해 세기별로 고찰하면서 전체적인 흐름을 살펴보게 이끌고 있다. 이 책을 통해서 교육이야말로 체제를 끌어가고 유지하는, 그러면서도 변화의 동인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실감하게 됐다. 관학과 사학의 양 수레바퀴를 통해 조선은 성리학적 지배가치를 유포했고, 양반들은 다른 신분과 차별되는 우수한 교육을 받음으로써 다른 계급들을 통제하면서, 지배 계급으로서의 기득권을 유지해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
조선초에는 고려의 지배 체제에서 벗어나기 위해 성균관과 향교등 관학을 정비하게 됐고, 관학을 통해 성리학적 가치를 지닌 인재를 양성하고 관료로 등용했고, 또 성리학적 가치를 사회에 전파하면서 백성들을 통제했다. 하지만 임진왜란, 병자호란을 겪은 뒤 조선의 교육은 또 개편될 수 밖에 없었다. 토지제도가 바뀌면서 수취제도 또한 변화했고, 그런 경제적 변화는 바로 교육의 변화를 초래했다. 그리고 양 난으로 교육의 기반 또한 적잖이 흔들렸다. 그러자 조정에서는 전쟁으로 흐트러지는 백성들의 윤리관을 재정립하기 위해 사학을 지원했다. 향촌사회를 통제할 목적으로 사학지원에 나섰고, 이런 움직임과 사림들의 등장으로 16세기에 서당과 서원 설립이 활기를 띠게 됐다. 사림들은 조정의 통제를 피하고, 자신들의 기반을 다지기 위해서 서원과 서당 설립에 나섰던 것이다. 이때부터 서당은 향촌교육의 제 일선이자 중심으로 그 역할을 해왔고 그 뒤 변화하는 사회에 걸맞는 변신을 거듭하는 자생력을 보여주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서당'의 변신 폭이 생각보다 넓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17세기 중엽이후에는 동족부락에서는 가문이 서당을 설립하는 주체가 됐다. 서당이 가문의 종학당처럼 운영되기도 했는데, 이렇게 가문에서 서당을 운영하게 되자,서당의 성격은 좀더 복잡해졌다. 그렇게 되자 서당에 관권이 개입할 여지는 현저하게 줄어들었고, 서당은 강학 뿐 아니라 문중 대소사도 처리하고 제사까지 지내게 됐다. 그러면서 서당은 동족 집단 특유의 학문적 폐쇄성이 나타나기도 했는데, 18세기 후반을 기점으로 서당은 또 다시 변화를 하게 된다. 이시기의 변화는 중요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데, 무엇보다 근대적 교육으로 이행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방향으로 내적, 질적인 변화의 조짐이 나타났다는 점에서 눈여겨 봐두어야 할 것이다. 즉 조선전기에는 신분과 교육의 조응관계가 맞아 떨어졌지만 후기로 갈수록 교육과 신분의 조응에 균열이 왔다는 것이다. 신분제가 동요되면서 몰락한 양반들이 늘어났고 이들이 유민화 되면서 촌락서당에 고용훈장이 되는 가하면, 부를 축적한 상인이나 농민들은 양질의 교육을 받으면서 신분 상승할 기회를 마련하려고 했던 것이다. ![]()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18세기 이후의 서당이 자생적인 근대적 교육의 싹을 틔우고 있었다는 주장을 펴칠 때였다. 필자는 우리 사회의 근대성을 조건반사적으로 서구화에서 찾는 것에 반박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서당은 소농민에게도 교육의 기회가 생기고,강상 윤리가 사회적 통제력으로 약화되면서교육을 매개로 한 인신적 예속 관계 또한 약화됐다는 점에서 이시기의 서당 교육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교재만 보더라도 '소학'처럼 성리학적 교화를 최우선적으로 하는 내용이 아니라 '아희원람'이나 '아학'같은 경우 신화 민담 등 재미를 곁들이고,농민의 생활에 밀접한 내용으로 구성함으로써 유학적 가치에서 벗어나고 있음을 보여 주었다. 이런 점에서 이 당시 서당 교육이 근대성의 징후를 내포하고 있었는데 안타깝게도 일제시대에 들어 근대성을 소멸되고 오히려퇴행하고 말았다. 서당 교육은 전면적으로 부정되고 황국 신민화 정책과 같은 우리 교육은 일본 제국주의의 통치를 위한 수단으로 변질되고 말았다.
전통적으로 우리나라에서 교육은 개인에게는 가장 강력한 신승 상승의 통로였고, 사회를 변화시키는 원동력이 됐다.또한편으로는 지배계층이 원하는 가치를 학습을 통해 유포함으로써 통치를 편리하게 만드는 기제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교육이 일방적으로 후자의 역할을 수행하게 될때, 사회의 변화에 둔감하고,새로운 시대를 좇아가지 못할 때, 그 교육은 구태의연해 질 수 밖에 없다. 지금 우리 공교육에 대한 위기론이 나오는 것도 이런 지적이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 어떤 분야보다 능동적으로 시대적인 흐름과 가치를 받아 들여야 하는 것이 교육이라는 생각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서당'은 우리에게는 다소 희화돼고 익살맞은 학습장소로 인상이 남아있지만, 조선시대 그 어느 교육장보다도 시대의 변화에 적응했고, 그 흐름에 걸맞는 변화를 보여주었다. 향촌 교육의 제 일선으로, 또 어느 기관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교육장으로, 새로운 흐름을 학동들에게 전수함으로써 교육에서 자생적으로 근대성의 희망을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희망이 일제 강점으로 꺾인 것은 우리 교육에서 큰 손실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오늘 선행 학습금지법이 국회 법사위를 통과했다는 기사를 접하면서,오늘날 우리 교육의 현주소에 대해서도 우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100년쯤 지난 뒤 지금 우리 교육의 사회사에 대해 고찰한다면 어떤 소리가 나올까.사교육이 성행하게 되는 배경을 분석하는 한편 우리사회에서 교육이 갖는 힘과 의미 또한 되새겨봐야 할 것이다.
'서당의 사회사'는 대중을 상대로 한 책이 아니라 읽는데 꽤 많은 시간이 들었지만, 학술적인 책이 갖는 무게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면서 그래도 역사책 몇권 읽은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는 게 별로 없다는 걸 실감하게 된다. 아직도 갈길이 멀고, 배움이 많이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이 책을 통해 교육의 의미와 역할에 대해서 재고하게 됐다. 교육하면 사교육이나 수능 대학입시같은 내 눈앞에서 펼쳐지는 현실적인 교육 문제의 테두리에 갇혀 있었는데,큰 틀에서 살펴볼 수 있는 기회가 됐다. 덕분에 지엽적이고 말단적이었던 내 시야가 조금은 넓어졌다고 할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