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획일성 - 아파트 그리고 학교
한국의 국민의 절반 이상이 아파트에 거주한다1)고 한다. 그렇다면 아파트를 한국 주거형태의 대표로 내세워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아파트가 한국의 대표적인 주거형태가 되었을까?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전통부정과 압축성장이 가장 큰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옛 것은 무조건 낡고 불편하며 버려야 할 것이라는 고정 관념 때문에 우리는 한옥을 근현대 사회의 주거형태에서 배제했다. 그리고, 압축성장으로 인한 도시로의 급격한 사회적 이동은 좁은 공간에 최대한 많은 인구를 집어넣을 수 있는 건축양식을 필요했다. 서울시의 경우에도 1963년 이후 1988년 까지 25년간 700만 명이 급증했다. 1963년 당시 서울의 인구가 300만 명2)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폭발적인 증가라고 할 수 있다.
“매일 밀려오는 이주민을 수용하기 위해 선택한 것은 아파트 공급이었고 지으면 팔린다는 공급자 중심의 시장이 확립되었다. 지으면 팔리는 것이 아니고 짓기도 전에 팔리는 선분양제가 바로 이 시기의 발명이다. 닭장의 오명도 그 부산물이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 서울은 이국(異國)의 도시에서 슬럼으로 지칭되는 대상을 찾을 수 없는 예외적인 도시가 되었다.3)”
이런 점을 감안하면 한국의 성냥갑 같은 콘크리트 덩어리, 아파트는 차선(次善)의 선택이라고 볼 수 있다. 어쩌면 한국의 아파트는 우리가 획일적인 사고방식을 가지도록 길들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러한 획일성이 좀더 노골적으로 표현된 건축물은 한국의 학교다.
저자는 “(한국의) 학교는 병영(兵營)과 일란성 쌍둥이(라고 말하고 있다.) 연병장, 사열대, 막사. 병영은 이렇게 이루어져 있다. 둘러쳐진 담장은 자발적이지 않은 체류자의 모습을 이야기한다. 군대를 유지하는 도구는 규율, 복종, 감시, 처벌이다. 간판만 바꿔 달면 병영은 학교가 된다. 운동장, 구령대. 교사.
한국의 학교(위)와 미국 캘리포니아의 초등학교(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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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서현, <빨간 도시>, p. 37
(비교 사례로 제시된 캘리포니아의 어느 초등학교의 모습을 보면) 교실은 파라솔이 펴진 동그란 마당을 중심으로 배치되어 있다. 교실 내부에서도 위계와 질서를 가르치려는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건물로서의 학교가 증언하는 것은 교육의 철학이 다르다는 것이다. 이 캘리포니아의 학교 배치는 (훈육과 처벌이 아닌) 작은 사회 체험을 교육 방법으로 선택했음을 증언한다.4)”
그렇기에 “건축이 사람을 담는 그릇이라고 표현되는 것처럼 공간은 단지 바라 보기 위한 대상이 아니다. 구체적인 인간의 모습과 생활 그리고 그 사회의 부대낌, 사회가 바라보는 미래의 모습을 담는 그릇이 된다. 이리하여 건축은 건축가가 공간으로 표현하는 시대정신이 되는 것5)”이라는 저자의 말이 더욱 실감난다.
질문하지 않는 사회 - 대한민국
“외국 관광이 일상화되면서 폐해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관광버스 안에서 이국의 풍물을 접한 공무원들이 그 감동을 한국의 도시에 옮겨놓으려 들기 시작한 것이다.6)”
대표적인 것이 바로 스페인의 빌바오 市다. 빌바오 市는 “19~20세기에 탄광 산업과 조선업으로 규모를 키웠다. 1980년대에 이르러 배의 크기가 커지면서 항구는 외해(外海)로 옮겨가야 했고 도시에는 이전 시대의 조선소 컨테이너 야적장, 제철소 등이 남았다.7)” 이들은 도시 재생을 위해, 만장일치에 의해 의사가 결정되는 ‘빌바오리아 2000’이라는 조직을 만들고, 현재 살고 있는 시민들이 즐겁게 찾을 수 있는 공간의 도시를 이루어갔다. 구겐하임 미술관은 여기에 화룡점정(畵龍點睛)을 찍었을 뿐이다.
그러나 우리는 빌바오 市를 “석탄을 캐서 연명하던 도시가 (구겐하임 미술관이라는) 건물 하나 화끈하게 지어서 일거에 관광 도시로 거듭났다더라.8)”라는 정도로만 알고 있다. 그러니 일확천금을 노리고 삽질을 할 수 밖에.
이런 현상이 나타날 수 밖에 없는 것은 생각을 하지 않고, 질문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린 아이들은 질문을 한다.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또 다른 질문을 낳는다. 여기에 대답하려면 정답 혹은 나름의 답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지친다. 그러다 보니 아이를 윽박질러 더 이상 질문을 하지 못하게 만드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그 질문을 거부당한 아이들은 자라서 사지선다(四枝選多)의 미로 속에서 맞는 길을 찾는 연습을 강요 받게 된다. 이런 과정 속에서 우리는 어느 새 질문하는 법을 잃어버리게 된다.
인문학을 배우는 것은 “인문학이 왜라고 물을 수 있게 해주는 힘이기 때문이다. 모르면 묻지도 못한다. (인문학) 공부를 통해 얻게 되는 가치와 힘이 자유다. 인문학이라고 번역된 단어의 근원은 ‘자유로운 능력(liberal arts)’이다. 그것을 공부한 이들이 지적 자유를 얻게 하는 것, 그것이 인문학의 목표고 이를 위해 갖추게 해야 할 덕목이 왜라고 물을 수 있는 능력이다. 근본에 관한 질문을 던지지 못한다면 그들은 결국 기술자의 수준에서 머물 수밖에 없다. 그래서 건축가의 물음은 근본적이다. 학교는 무엇인가, 도서관은 무엇인가 혹은 광장은 무엇인가9)”
물론 이런 근본적 질문은 위험하다. 영화 <매트릭스>에서 네오가 빨간 알약을 먹고 기존에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이 포기했던 것처럼. 진실은 불편하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불편하다고 외면하면 아무것도 변하는 것은 없다.
아마도 그래서 저자는 “이 사회는 정의롭지 않고 완전히 정의로워질 수도 없다. 그러나 좀 더 공정하게 만들려는 구성원의 노력은 여전히 중요하다. 사회의 정의롭지 못한 모습은 물리적으로 표현되어 도시에 깔린다. 가진 자가 가지지 못한 자보다 그렇지 않아도 좋을 곳에서 필요 이상의 대접을 받는 도시는 잘못되어 있다. 때로는 뻔뻔스럽게 드러나고 때로는 교활하게 숨어있는 그 모습을 나는 애써 찾아내고 싶다10)”라는 말을 남긴 것 같다.
왜냐하면 건축은 “구체적인 인간의 모습과 생활 그리고 그 사회의 부대낌, 사회가 바라보는 미래의 모습을 담는 그릇11)”이기 때문이다.
1) 서현,
<빨간 도시>, (효형출판, 2014), p.
12 2) 서현,
앞의 책, p. 13 3) 서현,
앞의 책, pp. 16~18 4) 서현,
앞의 책, pp. 33~36 5) 서현,
<건축, 음악처럼 듣고 미술처럼 보다>(개정판), (효형출판, 2004), p. 248 6) 서현,
<빨간 도시>, (효형출판, 2014), p.
125 7) 서현,
앞의 책, p. 188 8) 서현,
앞의 책, p. 187 9) 서현,
앞의 책, p. 249 10) 서현, 앞의 책, p. 302 11) 서현, <건축, 음악처럼 듣고 미술처럼 보다>(개정판), (효형출판, 2004), p. 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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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에 담긴 우리들의 자화상 무엇이든 극단으로 치우치다보면 왜곡이 일어난다. 마치 빨강색하면 공산주의와 북한이라는 등식이 성립하여 한 사회를 지배하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것도 시간 앞에선 무기력하다. 빨강으로 표현되는 모든 것에 족쇄를 채우던 보수주의자들이 이제 그 빨강색을 자신을 대표하는 색으로 선택하는 어색한 상황을 맞이한다. 한 때는 자신과 다른 주장을 하는 세력을 편가르는 기준으로 사용했지만 이젠 그 기준을 바꾸었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것은 변한 시대에 적응하기 위해 자신의 지배이데올로기를 포기한 것이 아니라 그럴듯하게 자신을 포장한 것이라고 보인다.
모든 것이 그렇게 변해간다. 한때, 우후죽순 격으로 위용을 자랑하며 생겨나던 국적불문의 건물들이 어느 순간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는 주범으로 지적받아 그 존재감을 잃기도 한다. 사람들의 사고방식이 변하면서 지난 시대에 진리처럼 받아들여졌던 당연한 것이 한 순간 지탄의 대상이 된다. 이 당연한 진리 속에 간과하지 말아야 할 인문학적 시각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인문학이 사람을 중심에 두고 세상과 사회를 배치하려는 것이라면 당연하게 사람과 관련된 모든 것에 인문학적 시각이 필요하다고 봐야 한다.
‘빨간 도시’의 저자 서현은 건축을 전공한 건축가로 건축과 인간의 관계에 대해 주목하고 있다. 사람의 삶과 직접 관련된 것이 직업이기에 당연한 귀결일 것이다. 그의 전작 ‘건축, 음악처럼 듣고 미술처럼 보다’를 통해 독특한 시각의 건축가를 만나 건축과 인간 그리고 그 둘이 공존하는 도시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가질 수 있었다. 그 연장선상에 있는 그의 다른 책이 ‘빨간 도시’다. 빨강이라고 하는 특정한 색이 주는 이미지가 왜곡되어 한 사회를 좌지우지 하던 시대의 산물이 사람들의 삶을 구속한 것처럼 여전히 사람들의 삶을 규정하고 있는 도시의 건축물이 사람들의 삶을 구속하고 있는 도시이기에 ‘빨간 도시’라고 표현된 것으로 보인다.
건축가 서현이 본 도시의 모습이 빨간으로 표현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인가를 따라가 보자. 도시, 건축, 건축가를 각각 집중하며 도시에 남아 있는 전 시대의 유물을 인문학적 시각으로 살피고 있다. ‘씨족, 일제강점기, 북한, 반공, 군사/향락 문화, 경쟁, 거짓말, 과열, 월드컵’이 그 중심 키워드로 여전히 우리 시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 모두를 규정하는 현실을 직시한다. 때론 부정하고 싶은 현실과 만나기도 하지만 간과하고 지나쳤던 우리시대의 아픔과 만난다. 그 아픔은 우리시대 사람들이 극복해야 할 과제다. 인정하기 민망한 현실을 직시하고 인정할 때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질문은 피곤하다. 질문은 새로운 질문을 낳고, 질문에 대응하는 나름의 답을 찾아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질문은 위험하다. 질문을 제기한 순간부터 당연해 보였던 현실이 불편하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국회의사당, 잠수교, 서울광장 등에 대한 저자의 시각이 남다르다. 깨어있는 건축가의 인문학적 시각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도 볼 수 있다. 건축은 시대를 담는 그릇이라고 한다. 현존하는 조선시대 건축물을 통해 당시 사람들의 가치관과 사고방식 그리고 삶을 들여다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남긴 이 시대의 건축물을 통해 우리 후손들 역시 이 시대와 우리들을 들여다 볼 것이다. 무엇을 남길 것인가에 대한 깊은 사고가 필요한 이유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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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도시 ] 지은이 서현님은 건축가 이다 , 그러나 일반 건축 구조물만 보는 건축가가 아니라 100년지 대계 미래를 내어다 보는 창을 만들고 싶어 하는 건축가이고 현재 진행형인 대한 민국 부조리한 ? 건축물들에 대한 냉정한 심판가 이기도 하다..
그 이유를 이책을 통해서 하나씩 차아 들어가 보기로 하자 .
우선 대한민국은 [ 아파트 ] 공화국이다... 일단 서민들은 편하게 삶을 영위 하는 공간 이기도 하지만 , 한 나라의 혹은 도시 경관 설계가의 입장에서 보면 , 우후 죽순 올려 놓은 저마다의 ? 개성을 뽐내는 아파트는 진열된 과일 가게의 상품과 다름이 없다.. 브랜드 네이밍도 다양헤서 ,, 이 ~ 편한 세상 무터, 레미~ 안 ,, 상떼 ,,, , 힐 ~ 스테이트 는 엠파이어 스테이트를 상징 하는 걸까 .. 타워 펠리스라는 주상 복합의 고급화 까지 ,, 한국내의 서여을 매길 수 있는 모든 부분에 이어 , 주거 공간에 까지 서열은 확실 하다 ..사는 지역과 동네 구분에 따라서도 가격이 천차 만별이니 말이다..
비하인드 스토리이긴 하지만 아파트가 중산중의 주거 문화로 확산 된 계기는 강남 개발이 들어가면서 압구정 현대를 지어 올리고 해외 유학파와 국내 왠만한 기업들의 임원들과 가진자들의 신분 상승요으로 아파트에 거주 하기 시작 하면서 부터 라는 이야기가 들린다.. 그러한 따라 하기 문화가 제대로 한반도의 아파트 열풍을 만들어 내서 어언 30년 이상 이끌고있는 점도 또한 특이 하다.
한 강 르네상스 개발을 시작 한지도 꽤 되었다,,, 1980년대로 거술로 올라가면 1988 년 국가적 대사 올림픽이 열리던 시절 이고 무엇이든 한면 할 수 있다라는 정신으로 잠수교도 어느 정도는 들어 올려 유람선이 지나가게 만들었다.. 다시 이어서 ,, 국토 대 개발의 연장으로 몇년전에 개통이된 자전거 길은 강따라 ,,,저멀리 충주호나 기타 지방 까지도 이어 지지만 , 정작 실생활에 필요한 자전거 기른 보행자 통로를 같이 쓰고 있거나 전혀 속도를 낼 수 없는 그래서 차량 옆으로 아슬 아슬 하게 곡예를 하여야만 도심지를 빠져 나가는 곡예사의 길 이 되고 만다.... 정작 시민들이 필요한 자전거 길은 현재 우리가 다니고 있는 마을 길이고 집에서 근거리의 도심 까지 출안전한 출퇴근이 가능한 자전거 길이다 ( ㅇ어느 시민이 팔당댐을 가로 질로 충주 호까지 가볼 일은 일년에 몇 번이나 있을까 싶다.. 혹은 몇년에 걸쳐서라도 왠만한 매니아 아니면 계획을 잡고서 실행에 옴기는 데 만도 오랜 시간이 걸릴 그러한 도로에 수조의 예산을 들이 부었단 것은 탁상 행정의 전형적인 표본이 아닐가 싶다.... )
몇 해 전인 지는 모르나 나도 작가와 같이 도로 교차로에 우두커니 석상으로 조각 까지 해놓은 글 < 바르게 살자 > 라는 암석 비비석의 정체를 몰라 의구심이 생겼던 적이 이었다.. 그런 고민이 유독 일반 사람인 나 뿐만은 아니리라 ,,, 그것도 지역 마다 한개씩 고대의 고인돌 세우듯이 세워져 있으니 일관성 정책 측면에서는 점수를 받지 않을까 ?
길을 가다 보면 ,혹은 어떤 구조물 건축물들을 마주 하다 보면 당황 스런 경험이 종종 있는데 , 그 건 인문한적 소양이 많아 서도 아니고 , 건축학에 조예가 깊어 서도 아니다. 단지 주변 여건과 너무나도 어울리지 않은 부자연 스럼으로 나타나며, 과도한 표식 위주의 건축물에서 그러한 건물을 주문한 건물주의 시각을 볼 수 있다... 간단한 예로 국도변에 세워져 있는 혹은 대전에서 천안으로 가다 보면 ,, 서울로 진입 하는 고속도로 주변의 어스름한 밤이 내리면 여지 없이 불 밝혀지는 모텔의 네온 사인 에서 , 그리고 아라베스크 양식 ㅡ혹은 돔 형식의 지붕에서 우리는 그 존재를 그 즉시 알아 차린다.... 단지 한국에 온지 얼마 되지 안은 외국인만 궁금한 눈길로 지적하면 묻는것을 제외 하면 말이다..
건축물은 시대를 대변 한다고도 한다... 일반 시민들이 편하게 드나 들수 있는 공공 기관과 유적지나 박물관 관공서가 과연 몇개나 되는지를 헤아려 보면 당대의 권위 주의와 전체 권력을 지키기 위한 위압적인 생각들이 구조물 속에 담겨져 있음을 어렵지 않게 파악 할 수 있다...
군대의 병영 모습에서 남자들은 익숙함을 발견 하는데 , 이는 유년 시절의 똑같은 제복을 입고 , 열병을 하듯 교장 선생님의 조회 시간 앞 사람 건너 사람의 뒤 통수 가 보이지 않으 때까지 줄세우기 하였던 국민 학교 운동장이 생각이 나서 였다. , 그리고 그 줄을 벗어 나면 무슨 중죄 라도 지은 사람 모 , 뒤로 끌려 나가서 기합을 받던 시절이 있었다... 연병장은 학교 운동장과 그대로 닮아 있어서 훈련을 받은 집체 교육의 졸업자들은 사회에 나가서도 ,, 특별한 개성은 없이 집단 주의 생각과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느나는 구호로 ,, 회사와 건설 현장을 누비기 시작 한다... 세상에서 가장 빠른 공기를 자랑 하는 건설 인프라 , 고속 도로 건설등은 이면에 이러한 전체 주의의 생활 습관상이 배어 있었던 것은 아니 었을까 ...
북한을 두고서 우리는 폐쇄 사회라고 들 한다. 하지만 정신적인 혹은 마음의 빗장을 걸어 잠근 구조적인 폐쇄 사회 현상은 병리적으로 우리 주변에 어쩌면 생각 보다 심각하게 이미 와 있어서 습관 처럼 잘 모르고 지낼 지도 모를일이다..
도심의 트인 광장이란 것을 제대로 가져 보질 못한 시민은 ,, 위압적인 시청앞 , 혹은 청와대의 공간과 광장은 우리것일리 없다고 지례 생각 한다..
그리고 늘 차도에서는 우측 혹은 좌측 보행을 하라며, 불편 하더라도 장애인 비장애인 구별 없이 육교를 오르 내리는 것을 당연시 했던 도시 행정 ,,,, 지금도 수많은 육교와 지하도는 차량이 #1 이라는 것을 무언중에 나타내어 주고 있다..
외국에 가끔식 나가본 사람만이 그 나라의 문화적 차이를 실감 하듯이 무엇이 먼저 주가 되어 건축 , 교량 , 도심 기반이 설계되고 변경 되는 지를 바라 본다면 , 이미 늦어 버린 부분도 있지만 우리 사회 곳곳에 내재 되어 잇는 소수만을 위한 건축물 , 도로 , 도심 기반 설계등은 차츰 인식의 눈높이를 맞춰서 미래 , 진정 인간 다움을 살고자 하는 도시로 거듭 태어나야 하는 일은 자명한 것이다...
습관처럼 , 생태적으로 이러한 문화 생활? 에 익숙해 있던 < 책력거99 > 느껴 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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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왜 빨간도시일까. 도시에 덧씌워진 정치색을 말하는 건가, 어떠한 이데올로기에 대한 반박인가 인상적인 대목은, 요새 인구에 회자가 되는 아파트가 닭장같아진 이유를 설명하는 부분이었다. 1963년 서울 인구는 300만이었으나 1988년에는 1000만 명에 달하였고 이는 매년 한 지방도시 인구가 서울에 이동한 것과 맞먹는다. 이렇게 경제적 기회를 찾아 서울로 밀려드는 사람들을 위해 만든 것이 현재의 아파트이고, 공급자 중심의 시장이 확립되면서 건설 전에 먼저 파는 선분양제가 도입하였다. 도시로 유입된 빈민이 증가하면서 아파트에 '가사실'이라는 외부 노동력 제공자의 방이 있었다고 한다 아시안 게임과 올림픽을 앞두고 여관이 성장하고, 1994년 농지 규제가 완화되면서 개발 가능한 농림지역(준농림지)에 식당이나 숙박시설이 허용되었고 러브호텔이 등장하였다 올림픽을 앞두고 한강이 피사체가 될 것을 기대하고 정부는 유람선을 띄우겠다는 계획을 세운다. 한강 수심이 낮자 생태계 교란은 고려하지 않고 하구에 댐을 세워 수심을 높이고, 북한이 공격이 있을 경우 빨리 복구하려고 낮게 만든 잠수교를 활처럼 부풀려 올렸다 군사 문화를 바탕으로 이루어낸 성공 신화에 대해 건축가는 불편한 시선으로 질문을 던진다 #빨간도시 #서현 #증정도서 #효형출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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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 서현이 건축으로 생각한 대한민국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를 담은 <빨간 도시> 이 책은 꼭 닭장 같았다고 말하는 조신민주주의민주공화국에서 온 아주머니의 말로 시작된다. 예전에 ‘성냥갑 속 내 젊음아’라는 노래가 있었던 것처럼 우리나라의 도시는 확실히 수많은 사각형의 공간 같은 느낌을 갖고 있다. 외국을 다녀보면 그런 느낌이 더욱 강해질 수 밖에 없고 그래서 우리만의 고유한 특색도 멋도 미도 사라져버린 우리의 도시 경관이 안타깝기도 하다. 그런데 건축가가 읽어준 우리 도시의 모습은 내 생각과는 달리 모든 것이 혼재되어 있는 그런 상황이었다. 씨족공동체를 이루던 문화가 남아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을 구별하지 못하는 도로의 모습이나 일제강점기의 흔적이 남아 교육을 훈육과 처벌의 수단으로 바라보며 마지 군대의 막사 연병장 구조 같은 학교의 모습이 그러했다. 참 이질적으로 느껴지는 성 같은 결혼식장에는 유교적인 관습과 주술적 신앙이 이어져 그 내부 구조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우리 도시에는 도시에서의 삶을 제대로 누릴 줄 아는 새로운 세대가 등장했다. 그들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시대를 알리는 것이 바로 2002 월드컵이었다. 이데올로기가 아닌 축제의 상징이 된 빨강색과 광장이라는 공간. 하지만 그들이 살아가는 도시는 여전히 과거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참 안타깝다. 본고사를 준비할 때 만들었던 노트를 아직도 갖고 있다. 그리고 그 노트에는 문학작품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논술로 풀어내야 하는지에 대한 필기가 빼곡히 남겨져 있다. 나부터 시와 소설을 읽고도 어떤 느낌과 연상을 해야 좋은 점수를 받는지에 대한 정말 군대 같은 교육을 받아왔다. 감상이라는 것에 어떻게 정답이 있을 수 있을까라는 고민조차 하지 못하던 시절이다. 그리고 지금의 아이들도 거기에서 크게 벋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어쩌면 그들이 공부를 하는 그 공간이 만들어내는 제약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공간을 갖게 된 이유는 아무래도 질문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외국의 건축물들을 보면 그러한 질문에 대한 답을 제시하는 형태일 경우가 많다. 인도네시아의 캄풍 같은 경우는 서양식 근대도시의 모습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공동체를 지켜내기 위한 형태로 발전하기도 한다. 이 역시 우리가 살아가야 할 도시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깊은 고찰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교육이란 무엇인가?’,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학교는 무엇인가?’, ‘도서관은 무엇인가?’ 이러한 근본적인 질문 없이 그저 발달된 서양의 건축물을 따라하고, 서양의 건축가를 초빙하는데 연연한다면 우리의 도시는 여전히 회색 빛으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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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는 덧칠해나가면서 발전해야 한다 [서평] 빨간 도시 나는 유럽의 건축물을 매우 좋아한다. 역사의 흔적을 고스라니 담고 있는 유럽 건축물의 기품과 고상함을 좋아한다. 수천 수백 년의 역사를 머금고 있는 건축물을 사진으로만 감상해야 하는 것이 아쉬울 정도다.
반면 대한민국의 건축물에는 전혀 감흥이 없다. 기품이나 고상함을 담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대한민국에 내가 감탄했던 기품이나 고상함을 가진 건축물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런 건축물은 나의 일상엔 존재하지 않는다. 유적·사적지에서나 볼 수 있을 뿐이다.
이런 나의 생각들이 대한민국 건축물에 대한 혐오까지 이어질 즈음, <빨간 도시>라는 책을 읽었다. 이 책은 내가 대한민국 건축물에서 느꼈던 바를 명확하게 글로 표현하고 있었다.
대한민국 건축물에 담긴 역사, 그곳에 담긴 의미, 대한민국이 홀대하는 건축물에 대한 역사성 등 다양한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내고 있는 책이었다. 왜 대한민국의 건축물이 이럴 수밖에 없었는지 알려주는 책이었다.
건축의 역사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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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도시》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내게 건축이란 일명 '공구리'라 말하는 시멘트 공사일 뿐이었다. 겨울이 되면 어김없이 멀쩡한 보도블럭을 뒤 엎고 새 블록을 깐다고 여기저기 파헤친 인도, 교통정체를 없앤다고 사시사철 공사 중인 도로 때문에 더 심한 교통체증에 시달리는 도시, 틈만 있으면 비집고 올라가는 높은 아파트와 한 두 달이면 뚝딱하고 지어지는 원룸건물들, 재개발이란 이름으로 자행되는 폭력, 주거의 의미를 잃어버리고 투자의 대상으로 전락해버린 집, 강의 원래 모습을 망각하고 오로지 자본의 논리로 공사된 사대 강 등 늘 얼마의 돈이 들어가고 얼마도 안 되는 짧은 기간에 얼마나 많은 자본을 끌어오고 관광객을 유치하는 가 오로지 돈과 투자, 재테크의 다른 이름일 뿐이었다.
그러나 이 책 《빨간 도시》를 읽으며 건축이 역사와 사람, 인문을 담는 그릇임을 이제야 깨닫는다. 나는 이 책의 저자 <서 현> 이란 사람에게 정말로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 이 책을 한 장, 한 장 넘기며 내가 놓치고 보지 못했고 나도 모르게 익숙하게 물든 군대와 서열, 전체주의의 잔재를 진지하게 마주할 수 있었다. 철학이 없으면, 생각과 의문이 없으면 결국 건축뿐만 아니라 모든 것이 허상이고 돈 잔치가 되고 사용하고 사용당하는 존재들이 될 수밖에 없음을 깨달았다.
이 <빨간>이란 말이 참으로 도발적이다. 빨간, 빨강이란 말은 반역이었고, 도발이고 위험한 것이라는 인식은 월드컵 때문에 열정과 축제, 젊음이란 뜻으로 바뀌었지만 그 색이 품고 있던 의미는 이제 '종북'이라는 말로 바뀌어 현재도 여전히 살아있다. 그 당돌한 이름의 책이라니. 이 책이 품고 있는 그 의미는 역시 그 느낌 그대로 이다. 이 책은 건축으로 본 우리의 현대사이다. 전쟁 후 오로지 재건과 잘 살아야 한다는 목적 하에 행하였던 모든 것은 아파트 설계 도면에서 <가사실>이라는 형태로 나타나고, 늘 휴전선 너머의 주적의 발전과 비교하고, 도발에 대응하여야 했던 도시는 높은 빌딩과 비행기 활주로의 기능을 갖춘 고속도로에도 나타난다.
건축은 교육과 정치에 대한 철학도 담는다. 일제 강점기와 전쟁을 겪은 우리는 국민은 국가의 발전을 위한 도구로써 존재하여야 했기에 군대의 시설 같은 건물과 연병장을 갖춘 학교에서 한주에도 몇 번씩 군대의 사열 같은 조회를 하고 같은 교복에 같은 짧은 머리의 모습을 갖추고 실재로 군사훈련을 받기도 했다. 민주시민의 덕목인 이성과 토론 보다는 과거로부터 내려온 외우고, 강요된 정답을 찾고, 서열화하고, 그 나라에서도 쓰지 않는 언어의 체계를 평생 동안 붙잡고 살아야 하는 교육을 받아야만 한다. 이는 권위적이고 아무나 범접하게 하지 못하는 도서관이나 관공서 건축에서도 나타나는 것이다.
건축은 도시와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에 대한 인식, 문화 예술에 대한 인식을 담는 도구이기도 하다. 국가나 자치지역에서 만드는 미술, 음악, 예술 관련 건물들이 시민들을 어떻게 끌어 안을 수 있는지, 광장은 과연 시민들이 모이고 공론의 장이 되고 있는지, 도시 개발은 과연 그 안에 살아가는 사람이 주가 되고 있는지 혹은 관광객 유치를 위해 겉으로만 번지르르한 피사체가 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저자는 건축을 통해 역사와 도시, 사람, 그리고 교육, 자연에 대한 많은 것들을 고민하고 독자들에게도 질문들을 던지고 있다.
건축이 이토록 많은 이야기와 질문을 품고 있는지 몰랐다. 내겐 그저 공구리에 불과했던 일이 이토록 깊은 사유와 철학과 질문을 품고 있어야 한다는 사실은 정말 내게 새로운 세상을 열어주었다. 시 한편에서, 역사의 한 줄 사실, 음악에서까지도 건축을 사유할 수 있는 저자의 깊은 통찰은 정말로 놀랍고도 존경을 이끌어 내기까지 했다. 인문, 철학, 건축, 교육 등 어떤 분야에 관심 있든 그 누가 읽어도 좋을 만한 책이다. 많은 분들께 읽혔으면 좋겠다는 마음이다. 강력하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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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시작은 우리네가 사는 아파트와 빌딩으로 가득한 닭장 같은 서울을 이야기하고 있다. 인구증가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선택한 것이 아파트 공급이었고 지으면 팔린다는 이유로 지금의 서울 모습을 만들었다. 사실 지으면 팔리는 것이 아니라 짓기도 전에 팔리는 선분양제가 있던 시기란다. 닭장 같은 이야기를 보자니 내가 다닌 대학 캠퍼스가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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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다. 문제는 문제가 잘못되어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미디어 매체에서 만들어낸 건축가의 이미지는 크고 멋있는 사무실, 부자에 지적인 안경남 그리고 불륜남. (Ah, 교수님!) 뭐, 이런거랄까? 나름 학교 다닐 때 친했던 친구조차도 (나의 설계수업 후 멘붕을 봤던 주제에!!!) "건축 재미있지, 편하지, 좋겠다!"라는 드립을 치고 있었으니. 사실, 말 다했지. 비건축인들이 생각하는 건축은 그들이 말하는 대로 '좋아보이는 것'의 판타지, 그 자체였다. 그리고 참 슬펐던 것은 그 어디에도 건축인의 서글픈 삶 이야기를 발견할 수 없었다는 것, 어쩌면 건축이라는 분야 자체가 '갑'질 중에서도 '거의 최정상의 갑'을 행세할 수 있는 분야여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하도급업체에게 갑질하는 건설회사...)
그런데 이 《빨간도시》에서는 과감하게 우리가 도외시해온 현실에 대해서 과감하게 까발린다.
건축, 도시 그리고 건축가라는 건축 3종 세트에 대한 비판적인 이야기가 어쩌면, 아니 사실은 건축뿐만이 아니라 대한민국이라는 문화적, 사회적인 문제에서 기인한다. 궁전 안에는 국가를 대표하는 이가 없는 그저 허울뿐인 수문장, 소통이 필요하지 않은 일방향적인 학교 교육, 주변에 예술을 파급하지 못하는 애매한 위치의 예술의 전당. 대한민국의 현주소가 낱낱히 파헤쳐진다.
책에 소개된 바와 같이 천년의 문이나 시청광장 조성 프로젝트처럼 당선되었으나 공사로 이어지지 않는 경우가 허다한데, 설계가 하루 이틀에 되는 것도 아니고. 개인적인 생각으로도 그런 일방적인 취소는 건축가와 시민들을 기만하는게 아닌가 싶다. 참신한 건축물을 만들겠다고 공고 때려놓고, 구조적으로 불안정하느니 안전상의 위험이 있느니. 거의 만장일치로 당선된 바나 다름없는 설계안을 차일피일 미루면서 백지화하다니. (공무원 시키들...)
개인적으로는 다른 나라의 도시와 비교하는 내용이 많았던 도시 Chapter가 참 좋았는데, 건물과 건물 사이에 도서관을 만든 헬싱키 알토 대학의 도서관은 정말 마음에 들었다! '공간을 이렇게도 활용할 수 있구나!'하는 깨달음이...! (건축하고 있는 친구들이 이런 책을 좀 봐줬으면 좋겠는데, 생각나는 얼굴이 몇 있군)
그러고보니 이 책은 사진과 글의 싱크로가 120%로 전체적으로 잘 어우러져 있다. 저렴한 나의 표현으로는 양념이 잘 되었다고나 할까? 저자분은 사실 건축과를 거쳐온 사람이라면 아마 한 번 이상은 들어봤을 법한 《건축, 음악처럼 듣고 미술처럼 보다》를 쓰셨던지라 책의 내용에 대해서는 일정 이상일거라 기대하긴 했는데, (아마도 직접 찍으신) 사진과 함께보니 이렇게 좋을 수가 없군.
옮겨적고 싶은 글귀가 꽤 많았다. 읽기 쉬운 글, 좋은 글귀가 많은 책, 이미지와 텍스트의 배합이 절묘한 구성. 거기다가 사회적인 메시지! 딱 내가 좋아하는 책이다!!! 확실히 취향인 책이라 《건축, 음악처럼 듣고 미술처럼 보다》를 아직 읽지 않고 거의 10년째 책장에 고이 모셔놓은 것을 후회하게 된다. 저 책을 좀 일찍 읽었다면 나는 제대로 건축인의 길을 걷고 있었으려나. 여튼, 참 여러가지 고민을 다시 떠올려보게 하는 참 좋은 책!
공정한 사회는 여전히 멀다. 그러기에 중요한 것은 더 공정한 사회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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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도시 속에서 자라왔고 국내외 여러 도시를 여행하면서, 그곳의 다양한 건축물들을 보면서 더러 아름답다거나 혹은 웅장함 내지는 화려함을 느끼기는 했어도, 건축물이 우리 생활에 무엇을 의미하고 있고 그 존재의 가치가 얼마만큼이나 될까를 생각해본 적은 없는 것 같다. 그 이유는 건축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이 없는 것도 하나의 변명이 되겠지만, 도대체 건축물이 나와 무슨 커다란 연관이 있겠는가 하는 단순한 생각에 의한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점은 대부분 독자들도 아마 비슷할 것으로 생각된다. 책을 읽으면서 얼핏 기억나는 건축물들을 생각해보니 도시 한 가운데 높이 솟아오른 고작 몇몇의 고층 빌딩과, 여행이나 역사 교과서를 통해서 본 고적들이 전부인 듯하다. 물론 많은 건축물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기억할만한 특별한 건축물이 생각나지 않는 것은, 건축에 대한 평소 나의 무관심 때문이기도 하고, 한편으로 어떤 의미를 부여하거나 오래 각인될 정도의 건축물이 있기는 한 것인가 하는 다소 의문적인 시각도 한몫 거든다 하겠다. 어느 나라든 그 나라의 일반적인 건축물들을 상세히 관찰해보면 그곳의 전반적인 사회문화가 어떤지를 대략 파악할 수 있다. 그렇다면 건축물과 관련한 우리의 현실은 어떠할까. 그리고 건축으로 본 우리의 대한민국은 어떤 모습일까. 그것이 나는 무척 궁금했다. 결과적으로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것은, 건축은 인간의 삶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것에 더하여, 그 중요성이 어느 정도인지를 새삼 깨닫게 만들어 주었다는 것이다. 이 책은 저자가 그동안 건축가로서 도시 곳곳에 들어선 건축물들을 살펴보면서, 그 소회를 고스란히 담아 기형적으로 심하게 일그러져 있는 우리 도시의 실제 모습을 적나라하게 고발하고 있음은 물론, 향후 우리의 도시가 갖추어야 할 건축의 그 방향성을 제시해주고 있어서 독자의 입장에서 이채롭기도 하고 신선하게 받아들여진다. 책 속에는 우선 도시의 구성체가 되고 있는 여러 건축물들의 실체를 소개하고 있고, 이어서 건축물로 이루어진 도시의 전체적인 모습을 조망하고 있으며, 끝으로 건축물과 직접적인 관계에 놓은 건축가에 관한 이야기가 여과 없이 나타나있다. 저자는 책을 통해 우리의 아파트 건축문화는, 인간의 삶에 질을 높이기 위한 어떤 고민은 찾아보기 힘들고, 오로지 투기의 본보기가 되어버린 것에 아쉬움을 토로한다. 또한 교육의 본질을 고려한 건축양식은 보이지 않고 여전히 군사정권의 잔재가 남아 있는 학교의 모습이나, 장소를 가리지 않고 무질서하게 우후죽순처럼 등장하고 있는 모텔과 같은 건축물들을 언급하면서, 우리의 사회 문제점이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지적하고 있다. 그러면서 이러한 건축물로 구성되어 있는 우리의 도시는, 하루빨리 인문학적 요소가 강조된 미래지향적인 도시로 탈바꿈되어야 함을 은연 중 강조한다. 그리고 이에 대한 대안으로 평화로운 도시라는 모토를 토대로, 노인이나 아이들이 안전하고 쾌적한 환경을 마음껏 누릴 수 있도록 설계된 뉴질랜드의 크라이스트처치라는 도시와, 빈곤과 낙후된 주변의 환경에도 불구하고, 공동체라는 단위 구성의 방식으로 새로운 도시로 거듭나고 있는 인도네시아의 캄풍지역 등을 예로 들면서, 우리도 우리의 방식에 알맞은 새로운 도시계획의 필요성을 언급하고 있다. 건축과 관련하여 이 책을 통해서 본 우리의 도시는, 여러 면에서 문제점이 노출되어 있음을 독자들은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점은 어느 날 불쑥 생겨난 일이 아니다. 건축은 도시의 형성 과정에서 자연이 따라오는 핵심적인 요소다. 그래서 오늘 우리의 도시가 지금과 같은 모습을 띠고 있는 것은, 그 동안 건축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 얼마나 부족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한옥의 예가 그렇듯이 우리에게는 선조들이 물려준 자연친화적이며 아름다운 멋을 살린 자랑스러운 건축물들이 많다. 그러나 근대 이후로 넘어와 일제강점기와 군사정권을 거치면서, 전시행정에 의한 주먹구구식의 건축들이 많이 횡행했고 그러한 과정에서 탈법적이고 좋지 못한 관행들이 이어져 오면서, 우리의 건축문화 발전에 큰 걸림돌이 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건축은 애초 그 방향성이 잘못되면 도시의 발전은 기대하기는 힘들며, 그 피해는 고스란히 우리의 몫으로 남는다. 그래서 지금부터라도 이러한 문제점들을 자각하고 조금씩 고쳐나가면서 건설적이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우선 정부 스스로가 먼저 나서서 주도하고 이어 자치단체들도 함께 동참했으면 싶다. 물론 그 전제에 건설과 관련한 기업이나 우리의 인식도 달라져 있어야 함은 당연하다. 더불어 우리의 건축인프라도 획기적으로 확대해야 할 것으로 본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개인적으로 우리의 건축이 이 정도였나 싶을 정도로 큰 충격을 받았었다. 그래서 이 책은 어느 독자들에게도 단순한 건축도서로 여겨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과, 건축물을 통해 우리의 사회와 문화를 통찰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또한 우리의 사회가 건강하지 못한 그 이면에 건축의 문제점이 있음을 알게 해주는 유익한 교양서로 다루어졌으면 싶다. 그리하여 많은 독자들이 이 책을 통해 건축을 바라보는 인식의 새로운 전환점이 되기를, 그리고 우리의 삶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건축에 대해 깊은 관심이 있기를 기대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