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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삶과의 조우는 슬프게도 항상 반갑지만은 않고, 언제나 좋은 의도만을 가지고 따라오는 것은 아니며, 미적지근하더라도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경우는 생각보다 드물다. 사만타 슈웨블린의 <리틀 아이즈>는 낯선 사람과 맺는 뜻밖의 관계와 그 어두움을 ‘가상의 반려로봇’이라는 독특한 매개체를 빌려 마음껏 뒤틀어놓는다. 사랑스러운, 누군가에게는 섬뜩한 토끼 인형이 표지에 단적으로 등장하듯이, 리틀 아이즈에는 ‘켄투키’라는 독특한 형태의 반려 로봇이 등장한다. 반려 동물의 ‘성가심(반려인으로서 이 단어가 끔찍하게 느껴진다)’이 제거된, 그럼에도 감정적인 유대를 쌓을 수 있는 귀여운 형태의 ‘로봇‘은 누군가에게는 행복한 대안처럼 느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겉으로는 ‘무해하고’ 귀여운 동물 인형(플러쉬)의 형태를 띠고 있는 이 로봇은 책의 제목인 <리틀 아이즈>, 즉 눈 대신 달린 두 개의 자그마한 카메라로 인해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두려운 존재로 그 정체를 탈바꿈한다. 켄투키 뒤에는 이를 조종하는, 지구 어딘가에서 살고 있는 익명의 ’누군가‘ 가 존재한다. 어떤 이들에게는 새로운 세상과 연결지을 수 있는 새로운 통로로 읽히겠지만, 이 작품을 가장 으스스하게 만드는 점은 켄투키를 구입하는 자도, 켄투키가 되기로 결정한 자도 상대를 ’전혀 모른다‘는 점이다. 켄투키에게, 혹은 켄투키를 통해 베풀던 마음이 무슨 속내를 숨기고 있는지, 그 마음이 ’언제 돌변할지‘ 우리는 인형의 단편적이고 무표정한 두 눈만을 보고는 알 수가 없다. 사만타 슈웨블린이라는 장르의 특징은 독보적으로 많은 등장인물과 사건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 이것만으로도 이 작가가 얼마나 위대하고 무한한 상상력을 지녔는지 우리는 알 수 있다. 이 책에는 대표적으로 켄투키에 관련된 네 번의 관계가 등장한다. 첫 번째로 페루에 거주하는 에밀리아는 토끼 형태의 켄투키를 빌려 독일에 거주하는 에바와 교류하며, 점차 에바의 삶을 동경하게 된다. 두 번째로 과테말라에 사는 마르빈은 용 형태의 켄투키를 통해(자신의 켄투키가 제발 용이길 비는 마르빈의 순수함은 정말 사랑스럽다) 점차 자유를 갈구하며, 눈을 처음으로 보기 위해 떠난다. 세 번째로(이것을 관계라 부를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크로아티아에 사는 그리고르는 타블렛 컴퓨터 수십 대를 구매하고 수많은 켄투키들을 관리하면서 웃돈을 받고 ‘특정한’ 켄투키를 조종하길 원하는 사람들에게 이를 제공하면서 규칙을 깬다. 네 번째로, 멕시코에 사는 알리나는 ’예술가‘ 남자친구 스벤과의 권태에 시달리다 까마귀 모양 켄투키를 구매하지만, 점차 이를 신뢰하지 못하고 끔찍하다고 여기게 된다. 켄투키와 애착에 관한 이야기들은 결국 조금도 사랑스럽지 않은, 기괴한 방향으로 나아간다는 점이 사만타 슈웨블린이라는 장르의 매력일 것이다. Sns에서 기존의 팔로워들과 서로 교류하고 응원을 주고받거나, 발치에서 자고 있는 고양이와 함께 아침을 맞이하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소설에서 대부분의 켄투키는 그저 ’손님을 끄는 용도‘로 진열되어 감금된 채 생활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마르빈은 다른 켄투키들과 연합하여 켄투키의 자유와 해방을 꿈꾼다. 켄투키와 반려인(주인이라는 말이 더 적합할 것이다)의 관계는 양극단으로 치닫는다. 어느 켄투키는 주인이 죽음을 맞이하자마자 추락사를 택한다. 그리고르는 켄투키를 통해 유괴당한 소녀를 구하기 위해 사투를 벌이지만, 자신이 그저 유괴범의 ’돈벌이 수단‘이 되었다는 사실에 절망한다. 엔초는 두더지 모양의 켄투키를 소유한 사람이 소아성애자이며 자신의 아들이 켄투키에게 학대당하고 있음을 알면서도 이를 향한 애착을 끊어내지 못한다. 알리나는 자신의 신체를 향하던 켄투키의 눈을 보고 이를 심하게 학대하기 시작하지만, 켄투키를 소유한 사람의 정체는 뜻밖의 인물이다. 사만타 슈웨블린의 <리틀 아이즈>의 사건들은 비틀리고 정돈되지 않은 상태로, ‘까마귀의 날개가 뽑히고 왼쪽 눈에 부리가 붙어버린 상태로‘ 끝나버리고 만다. 이러한 점이 이 작가의 장점인 공포와 기괴함을 부각시킨다. 네 가지의 관계 이외에도 나아가 사만타 슈웨블린은 ’켄투키가 되기로 한 사람‘ 과 ’켄투키를 소유하기로 결정한 사람‘의 차이를 언급하며 인간의 심리를 내밀하게 파고든다. 단적인 예시로, 에밀리아는 에바가 주인인(아마도 그리고르를 통해 구매했을) 토끼 모양의 켄투키를 선물받고 에바와 가까워진 기분에 기뻐하나 에바는 에밀리아에게 자신의 사생활이 고스란히 노출되고 기록된 수치심을 되돌려준다. 그리고르는 사건이 무사히 종결되었는지에 관심을 두지 않고 절망감에 휩싸인 채로 결말을 맞이한다. 알리나는 켄투키를 소유한 사람의 정체를 알고 패닉에 빠진 채 소설은 끝을 맺고 만다. 마치 밧줄을 칼로 베어버린 것처럼 말이다. 사만타 슈웨블린이라는 독보적인 작가를 창비 사만타 슈웨블린 환상문학 서평단 활동을 통해, 그리고 라틴 아메리카 문학에 대한 사랑으로부터 알게 되어서 더없이 기쁘다. 아마 조예은 작가님처럼 통통 튀는 호러물을 좋아하는 분이거나 김보영 작가님, 천선란 작가님, 김초엽 작가님처럼 탄탄한, 그리고 어딘가 씁쓸한 sf물을 좋아하는 분, 그리고 그렉 이건처럼 하드 sf를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이 책을 분명 좋아히시리라 믿는다(사만타 슈웨블린이라는 장르는 sf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최대한 많은 분들께 <리틀 아이즈>가 읽혀지기를, 충격이 전해지기를 바라며 이 글을 마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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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버드림> 아르헨티나 작가 사만타 슈웨블린의 2018년작 장편소설 어느 날 나타난 외형은 여러종류의 동물모양 두눈에는 카메라가 장착되어있고 단어가 아닌 의미없는 소리만 낼 수 있는 켄투키 인형 인형을 소유하느냐 아니면 사용하느냐 선택은 인간의 몫이지만 결국은 남의 삶을 훔쳐보느냐 아니면 보여주느냐의 차이 일 뿐 수많은 등장인물이 소유와 사용을 나눠서 반복하며 등장하는지라 노트 메모는 필수였다. 삶을 공유하고 존재만으로도 위로가 됐던 스투키들이 누군가의 삶을 조정하고 나 조차 보기 싫은 나의 밑낯들을 공개하고 사람들의 이중적인 모습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모습들을 보며 불특정 다수에게 나의 일상을 공개하는 sns와 유튜브, 또 그들의 모습을 보며 환호하고 대리만족하는 지금 이 시대 사람들이 연상됐다. 결국 나의 인생은 온전히 나만의 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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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3월에 출간된 <피버드림>으로 처음 만난 작가입니다. 차분하게 숨 막히는 공포스러운 이야기에 압도되었지요. 괴물이나 잔혹범죄라 무서운 게 아니라, 서로에게 닿을 수 없는 불통의 문제, 소통의 어려움을 간단한 질문을 반복하는 것으로 보여주는데... 조금 과장하자면 미칠 듯했습니다.
정신에 뿌연 막이 덮여 온전하지 못한 상태에서도 딸의 안부에 집착하는 애정에 쓰리고 슬프기도 했지요. 미스털, 스릴러, 서스펜스 장르 작품을 꾸준히 읽는 편인데 서늘하고 스산하게 강렬한 작품은 드물었습니다. 독특한 그 느낌이 내내 남아 넷플릭스에서 영상화되었을 때 찾아보기도 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3_P3eM4FltM
12월에 창비에 연재를 시작한 작품이 단행본으로 나왔습니다. 범상치 않을 것입니다. 소재는 다르지만 초연결 시대의 소통 혹은 경계의 무너짐이니 전혀 다른 문제의식도 아닌 듯합니다. 차분한데도 강렬하게 몰아치는 분위기는 여전합니다.
인형과 아이들... 귀엽고 사랑스러운 장면일수도 있지만 그럴 리가 없지요. 특히 인형과 아기 혹은 아이들로 장난치는(?) 작품들에 치를 떠는, 무서워 못 보는 저는 실은 표지에서부터 이미 공포에 사로잡혀 읽습니다. 원제 ‘켄투키Kentukis’가 토끼 인형이 담긴 상자에 쓰여 있네요.
“각기 다른 동물 모습을 한 반려로봇 - 장난감 ‘켄투키’가 전세계 사용자들의 삶을 깊숙이 파고든다. 켄투키의 특징은, 그것을 ‘소유하는’사람과 앱을 통해 ‘조종하는’ 사람이 다르며 서로가 서로를 선택할 수 없다는 것. 모든 매칭은 서버에서 자동으로 이루어진다. 소유자와 사용자(조종자)가 관계 맺는 방식에 따라 사람들의 일상과 세계는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달라진다. 핵심은 켄투키의 눈이 ‘카메라’라는 것이다. 사용자는 그 눈을 통해 소유자의 삶을 지켜볼 수 있다.”
매일 네트워크에 연결하는 삶에 대해 이쯤해서 한번 여러모로 생각 좀 해보자, 하고 작정하고 메시지를 던지는 작품으로 읽힙니다. 그렇다고 직설적으로 재미없이 그런 건 아니고 은근하지만 넓게 작품의 전반에 퍼져 있지요.
현실의 우리가 겪는 모든 삶의 고비들, 못마땅한 주어진 환경, 생존, 폭력, 이별, 슬픔, 사별, 아픔, 애정과 관심에의 갈구, 그리움, 후회, 돈, 범죄... 전 세계인들의 결핍과 욕망을 노리는 상품과 사업은 네트워킹이라는 통로가 확보되면 수익이 보장되는 탄탄한 판로가 될 수 있습니다.
자식이 켄투키 사용자(조종자)에게 성적 학대를 당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어도 내 칸투키를 포기할 수 없는 부모, 칸투키 소유자의 삶에 익명으로 존재하는 사용자에 완전하게 동일화되어 소유자를 상실하고 자살하는 이, 현실을 완전히 망각하고 화면 속 세계에 정서적으로 함몰된 사용자……. 현실 도피처가 책과 영화인 SNS 이용자로서 긴장과 불안 없이 읽기 어렵습니다.
연령이 높은 부모님들이 혼자 사시는 게 불안해서 CCTV를 설치하는 자식들이 있습니다. 의도는 선하고 실제로 식사와 약 등을 챙겨 드리기도 하는 순작용이 있습니다. 가족 내에서 관리가 잘 된다면 별 문제가 안 되겠지요.
네트워킹도 심지어 작품 속 켄투키도 그런 방식으로도 사용될 수 있겠지요. 저자도 완전히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문제는 이 기술의 태생이 인류 복지를 위한 국제기구의 협력에서 탄생하고 보급된 것이 아니라 ‘상품’이라는 것에도 있겠지요. 목적도 의도도 다르니까요.
이미 널리 활용되고 있고 곧 일상 속에 자연스럽게 들어올 메타버스의 세계는 어떨까요. 소비와 삶의 선택하는 판단력과 힘을 어떻게 잘 길러야하나... 힘겨운 기분이 듭니다. 진화하지 않는 인간의 뇌, 근절되지 않는 폭력과 범죄, 반성하지 않는 소비와 수익 숭배, 안전망이 부족한 프라이버시, 비대면의 방식으로 견디는 수밖에 없는 판데믹…….
켄투키에 심어준 카메라보다 문명을 더 선명하게 들여다보고 통렬하게 고발하고 경고하는 저자와 같은 작가가 있으니... 심연을 뒤흔드는 공포와 충격을 통해서라도 문제적 상황을 깨부수는 이런 기회를 희망이라 믿어 보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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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처음 받았을 때 귀여운 듯하면서 묘하게 무서운 토끼 인형 표지가 눈에 들어왔다. 책의 후반부로 갈수록 점점 책의 제목과 표지가 무서운 느낌이 들 정도로 이 소설은 묘하게 어떤 소재로 사람을 무섭게 만드는 책이다. 우리의 생각의 기반에 깔려 있었지만 제대로 인식하지 않았던 무서움이 서사가 진행될수록 우리를 점점 더 무섭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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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그램과 같은 온라인 플랫폼에서 사람들의 활동이 활발하다. 사람들은 그 공간에서 자신의 일상을 공유한다. 그 공간은 자신을 드러내는 도구로 은근히 자신을 과시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공간은 팔로우하는 사람들에게는 관심 가는 타인의 삶을 볼 수 있다는 묘한 쾌감을 준다. 설령 그것이 보여주는 이의 통제하에 있다고 해도 말이다. 그런데 만약 누군가가 내가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지 않고 내 일거수일투족을 다 지켜보고 있다면... 그것을 원하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이 소설에는 반려로봇 켄투키가 등장한다. 켄투키를 소유하는 사람과 켄투키를 조종하는 사람이 다른데 서로가 서로를 선택할 수 없고 매칭은 자동으로 이루어진다. 난 우선 작가의 상상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반려 로봇과 켄투키가 되는 사람과 켄투키를 소유하는 사람이 다르다는 설정, 켄투키는 동물의 소리만 낼 수 있지만 켄투키 소유주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는 것, 또 소유주의 모든 것을 지켜볼 수 있다는 것 등이 참 놀랍다. 이 소설은 SF소설 같기도 했다.
소설 속에는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옴니버스 형식으로 이야기가 진행되어 켄투키를 둘러싸고 발생하는 다양한 상황들이 흥미진진하게 다가온다. 켄투키의 긍정적인 측면도 나타나나 대부분 부정적으로 묘사되며 긍정적으로 보였던 상황도 부정적으로 끝난다. 저자는 긍정적인 사람은 아닌 것 같다.ㅋㅋㅋ 염세주의자인가? 아니면 오늘날 관음증적인 시대의 모습을 비판하고자 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렇다고 이야기가 뜬구름 잡는 것은 아니다. 켄투키가 있다면 일상에서 일어날 법한 이야기이다. 그래서 작가가 더 대단하다.
실제로 켄투키와 같은 반려로봇이 개발된다면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사용할지 궁금해지기도 한다. 그것이 행운일까? 악몽일까? 나는 절대로 켄투키를 구입하지 않을 것이다. ㅋㅋㅋ 켄투기를 소유한다는 것은 알지 못하는 타인을 집에 초대한다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쩌면 스마트폰이 켄투키와 비슷하지는 않은가? 누군가 스마트폰을 해킹한다면 비슷한 일이 일어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한 영화나 책을 본 적도 있다. 어쩌면 요즘은 개인주의적인 시대라 하지만 개인의 자유는 없는 이상한 시대는 아닌지 모르겠다. 이 책은 여러모로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책이다.
“해당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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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만타 슈웨블린은 자신의 저서 <리틀 아이즈>를 통해 ‘켄투키’라는 새로운 개념을 제시한다. 켄투키는 동물의 외형을 지닌 반려 로봇으로, 그것을 직접 구입한 ‘소유자’와 제어 프로그램을 통해 조종하는 ‘사용자(조종자)’가 서로 다르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다. 이들이 서로 다르고 소유자와 사용자 간의 매칭을 선택할 수 없으며 단 한 번의 연결만 할 수 있기에 소유자와 사용자의 관계는 더욱 특별하게 다가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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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개인이 세계 어느 곳에서나 임의의 낯선 사람의 삶에 가상으로 연결될 수 있다면 두 사람 모두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 개인의 사생활조차 상품이 되어 팔리는 미래의 세계에 개인의 비밀이란 존재할 수 있는 것인가? 그리 멀지 않은 미래를 그린 슈웨블린의 장편 <리틀 아이즈>는 2018년에 발표한 장편 <Kentukis>의 다른 이름으로 만다라체상을 받고 이 작품 역시 인터내셔널 부커상 후보에 올랐다.
"카메라는 인형의 눈에 달려 있었는데, 동물 모양을 한 이 인형은 밑바닥에 바퀴 세 개가 숨겨져 있어서 빙글빙글 도는가 하면 앞뒤로 움직이기도 했다"
켄투키라는 동물 모습을 한 인형에는 카메라가 내장되어 있고 켄투키 인형을 사는 사람은 켄투키 연결카드를 사는 사람에게 관찰당하게 된다. 즉 연결 카드를 산 사람이 켄투키가 되어 자신의 주인을 지켜보고 되는 것이다. 그들은 서버에 의해 랜덤으로 연결되기 때문에 상대를 선택할 권리는 없다.
"주인이 되는 것과 켄투키가 되는 것의 장단점을 두고 다들 이런저런 말들을 해댔다.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자신의 사생활을 드러내 보이려는 사람은 드문 반면, 다른 이의 삶을 엿보는 것을 마다할 사람은 없었다"
남의 사생활을 엿보거나 간섭을 하는 것에 흥미를 느낀다는 사실은 부정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가리어져 있는 누군가의 삶, 훔쳐보기가 가져다주는 짜릿함 때문일까? <리틀 아이즈>의 내용을 보면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라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가까운 미래에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국내에서도 미성년자들을 협박하여 끔찍한 음란물을 촬영하도록 만든 N번방 사건을 비롯하여 수많은 성범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남의 사생활이나 성행위를 훔쳐보는 관음증은 사회적으로 통용되지 않은 성행위를 즐기며 성적인 만족감을 느끼는 것으로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개개인의 성적 만족을 위한 관음 행위를 벗어나 정부적 차원에서의 감시도 상상해 볼 수 있다. 조지 오월의 1984에서의 텔레스크린과 사법경찰들의 감시, 심장 박동까지 감시받으며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은 슈웨 볼린의 우려하는 또 다른 미래의 모습인지도 모른다. 4차 산업혁명으로 모든 것이 연결된 지금, 겉으로는 인간의 자유와 해방이 실현된 것처럼 보이지만 분명 또 다른 형태의 억압과 불평 등이 존재하는 곳이다. 고도화되고 정교화된 CCTV 카메라 자이와 디지털 파눕티콘 구조 속에 사람들은 차츰 인간의 존엄성을 상실해 버리고 있지는 않은가? 슈웨 볼린의 글들이 진정한 공포로 다가오는 건 그녀의 상상이 멀지 않은 우리의 미래와 닮아있기 때문이다.
#사만타슈웨블린 #리틀 아이즈 #창비 #라틴아메리카문학 #세계문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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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자신의 사생활을 드러내 보이려는 사람은 드문 반면, 다른 이의 삶을 엿보는 것을 마다할 사람은 없었다. _1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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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와 뉴욕 타임스가 주목한 동시대 라틴아메리카 문학의 가장 빛나는 별 21세기의 프랑켄슈타인 '켄투키'가 바꿔놓은 달콤하고 섬뜩한 일상의 풍경 각기 다른 동물 모습을 한 반려로봇 '켄투키' 토끼, 까마귀, 용, 두더지 등이 있다. 적지 않은 금액을 투자해야 소유할 수 있는 반려로봇. 켄투키를 소유한다는 것은 내 일상 모든 것을 아무에게도 알리고 싶지 않은 비밀까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알려진다는 것! 켄투키를 소유하는 대신 조정한다는 것은 타인의 삶을 몰래 훔쳐볼 수 있는 재미와 다른 미지의 세계를 탐험할 수 있다는 달콤하면서 위험한 매력이 있다. 서로가 서로를 선택할 수가 없고 누구와 매칭될지 짐작조차 할 수가 없다. 언어도, 문화도 모든 것이 달라 소통도 할 수 없다. 장점만 생각한다면 신비로운 친구가 생길 수가 있고 내가 모르는 다른 나라를 구경하며 그 나라의 문화를 알 수 있고 경험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기는 하지만 글쎄.. 난 처음 글을 읽으면서부터 이건 아니다 싶었다. 모르는 사람이 나와 나의 가족의 모든 일상을 감시를 하고 있는 거 같고 그 모든 정보와 나의 일상을 그 사람이 어떻게 할지 알 수가 없으니 난 처음부터 아무리 핫템이라고 해도 무섭고, 섬뜩해서 너무 싫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을까? 정말 대단한 거 같다. 하지만 요즘 우리가 예상 못 했던 일 들이 너무 많이 일어나고 있다. 언젠간 정말 켄투기 처럼 반려로봇이 탄생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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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 아이즈
#서평단활동
리틀 아이즈에 나오는 켄투키는 귀엽게 생긴 동물모양의 모습을 한 반려로봇이다. 책 제목의 작은 눈은 켄투키의 눈을 뜻한다. 이 눈은 카메라다. 이 켄투키 반려로봇의 카메라 너머에는 태블릿으로 반려로봇을 조종하는 사람이 있다. 어떤 사람이 켄투키를 조정하는지 아무도 알 수가 없다. 임의로 매칭되는 시스템.
그래서 누군가는 켄투키를 소유하는 사람이 되고, 누군가는 켄투키가 되는 사람이 된다.
우리는 모두가 켄투키가 사실은 동물 인형 모양을 하고 있지만 사실은 사람이 조종하는 로봇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책에 나오는 인물들은 켄투키를 사람 대 사람으로 대하기도 하고 반려동물처럼 대하기도 한다.
뒤에 사람이 있다는 걸 알면서 이건 단지 로봇이라는 걸 알면서도 켄투키에게 이상이 생기거나 연결이 종료되어 더이상 켄투키가 작동하지 않을 때 슬퍼하고 심지어는 장례를 치르는 모습을 보면서 사람들이 이렇게까지 과몰입을 한다고? 하는 생각이 들어서 더 무서웠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리는 소통할 수 없는 존재에게도 이름을 붙여주고 정을 주지 않는가. 반려가전이라고 사람들이 말하는 로봇청소기도 그렇고 로봇강아지도 그렇고.
항상 모든 일에는 빛과 그늘이 있기 마련인데 켄투키를 통해 좋은 경험을 쌓는 사람만 있을 순 없었다. 책에 나오는 많은 등장인물들이 초반에는 켄투키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추억을 쌓다가도 이야기가 진행될 수록 문제점들이 발생했다.
귀여운 동물모양때문에 스스럼없이 정을 주고 자신의 사생활을 드러냈다가 문제가 되는 경우가 많아졌다.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 비해 법개정은 느려서 법이 현실을 다 반영하지 못하는 일이 이 소설에서도 나온다.
다른분들이 리틀아이즈를 보면서 sns가 생각났다고 했는데 나도 마찬가지였다. 요즘 sns를 안하는 사람을 찾기가 힘들다. 실제로 친분이 있는 사람을 팔로우하고 팔로잉하는 경우도 있지만 전혀 만나본 적이 없는 사람도 팔로우 버튼 하나면 그 사람이 보여주는 사생활을 들여다 볼 수가 있다. 그래서 sns를 할때는 신상이 노출되지 않도록 조심해야한다는 얘기가 꾸준히 화자 되곤 한다.
그런데 sns는 내가 올리는 것이 사람들에게 노출되는 정보의 전부라면 켄투키는 사람이 조종해서 스스로 움직일 수 있기 때문에 켄투키를 소유한 사람이 원치 않는 정보도 노출 될 수 있다는 점이 문제다. 재밌는 점은 사람들이 처음 켄투키에 열광했던 이유도 이 자율성이 한몫 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과 매칭될 지 어떤 관계를 맺게 될 지 알 수 없는 그 지점이 사람들의 흥미를 유발했다. 타인의 삶 속에서 익명의 존재로 타인의 삶을 들여다 볼 수 있는 혹은 타인에게 내 삶을 보여주는.
이 책을 보면서 sns 와 관련된 문제들이 자꾸 겹쳐 보였기 때문에 보는 내내 무섭다는 생각이 들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대체로 사생활이 노출되는 부분이 문제라고 생각했는데 마지막 에피소드를 보면서는 켄투키를 소유한 사람이 어떤 모습을 보여주는지에 따라서 그 모습을 보는 사람에게도 엄청난 폭력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니까 이 켄투키는 작고 귀여운 인형의 모습으로 사람들을 유혹했지만 결국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무서운 경험을 안겨준 셈이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고 이런 소설을 썼을까. 그리고 너무 현실과 맞닿아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더 오싹한 리틀아이즈.
#리틀아이즈 #사만타슈웨블린 #창비 #무서운소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