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부터 돌봐드립니다>는 2021년 프랑스-독일 청소년 문학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처음에 씨드북 출판사의 신간소개를 보고 ‘이 책은 감동적이겠다.읽어보고 싶다’라고 생각했다. 기분에 따라 매일 가발을 바꿔쓰는 17세 소녀와 할머니의 우정 이야기라니,그것도 요양원에서. 나는 이런 류의 이야기를 좋아한다,세대를 초월하고 인종을 초월하고,때로는 종을 초월한 ‘우정과 소통과 교감’의 이야기를. 20대 초반에 봐서 기억이 가물해지긴 했지만,인종과 성별을 초월한 우정 이야기가 있었던 영화‘파니핑크’를 너무 좋아했었고,‘쇼생크탈출’,‘인생은 아름다워’,‘드라이빙 미스 데이지’등 인종이나 국적,나이를 초월하여 교감을 나누는 이야기들은 우리가 살아가는 삶에 숭고한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 주는 힘이 있다고 생각한다. 모든 존재는 다 아름답고 고귀하지만, 때로는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존중받지 못하는 안타까운 일들이 일어나는 것이 또 세상살이인 것 같다.
이야기는 두명의 주인공이 끌고 나간다. 17세 소녀 ‘카퓌신’과 나이는 정확히 안 나오지만, 손녀의 자식까지 있는 증조할머니인 ‘비올레트’할머니. 첫장은 ‘카퓌신’이 요양원에 인턴으로 처음 출근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다른 장은 비올레트 할머니가 요양원에 입소하는 것으로. 각기 한 장씩 나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끌고 나간다. ‘카퓌신’은 고등학생에 친구가 별로 없지만, 절친인 ‘마르고’가 있고,엄마를 사고로 잃고 아빠와 둘이 살고 있다. 진로를 선택하다가 요양원 실습을 나오게 되었고,매일 기분에 따라 가발을 바꿔쓰는 소녀이다. 비올레트 할머니는,젊은 시절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하고 혁명에도 가담했던 열정적인 사람이었지만,지금은 보행기의 도움없이는 제 발로 걷기도 어려운 초라하고 힘없는‘늙음과 쇠퇴’의 시기에 있는 처지가 된 할머니이다. ‘비올레트’는 요양원에 처음 들어가게 됐을 때,자신의 삶이 끝나는 것처럼 우울함을 느꼈다. 방 한쪽에는 의료용 침대가 대부분을 차지하고,더는 아내와 엄마가 아니었으며,플로랑 부인도,퇴직한 초등학교 선생님도, 비올레트도 아니고, 마을도서관의 자원봉사자도 아니었고, 그저 요양원 입소자에 불과했다. 몸을 기울이다 넘어지는 사고가 생긴 이후로,안전하지 않아서 더 이상 집에서 살 수 없는 상태가 되어서 아들에 의해서 요양원에 입소하게 된 것이다. ‘비올레트’는 엄마가 사고로 돌아가시고 난 뒤,2년동안 세월이 정지한 것처럼 느끼고 있고,마음속으로 아빠가 엄마의 사고의 원인이라고 아빠를 은근히 미워하고 있었다. ‘비올레트’는 요양원에 들어가고 자신의 방안에만 틀어박혀 바깥만 내다보고 지냈다. 이런 ‘비올레트’할머니에게 ‘카퓌신’은 온기를 선물해 주고 싶어진다. ‘카퓌신’은 할머니에게 제일 큰 애착의 대상이었던 고양이 ‘껌딱지’가 사라져서 할머니가 마음이 무겁다는 것을 알고, ‘껌딱지’를 찾아주고, 두 사람은 친구가 되기 시작했다. 두 사람이 친구가 되어가는 과정,서로 속내를 털어놓는 부분들과 서로의 아픔을 치유하며 성장해나가는 이야기는 정말 아름답고 감동적이다. 몇 부분을 소개해 보고자 한다. p.37 내 나이 반의반도 안 되는 이 낯선 아이가 귀 기울인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나는 마음속 걱정을 털어놓았다. 마치 무거운 가방을 땅에 내려놓듯이. p.51 카퓌신은 거부할 수 없는 내면의 선함을 가진 아이다.나도 그걸 알아보았다. ▶늙음과 병듦,쇠함에 대해서 ‘비올레트’할머니는 인생이라는 다리에서 가장 마지막에 있는 단계이다. 몸은 이제 ‘내’가 ‘나’라고 생각했던 것이 되지 못하고,거추장스럽고,내 발로 제대로 중심을 잡지 못해,넘어질때도 있으며,살가죽은 얇아져서 빛이 나는 그런 경지. 그는 요양원에 들어가서 이렇게 느꼈다. p.59 이 소독약 냄새 가득한 공간에서 생을 마감하려고 한다. 너무 흔한 이야기라 눈물이 날 지경이다. 내 삶은 좁은 방 하나로 축소되었고,이 곳 노인들은 내게 두려움을 준다. 나도 그들처럼 될까 봐 두렵다. 때로는 좋은 아이디어 하나가 잡초처럼 자랄 때가 있다. ‘카퓌신’과 ‘비올레트’할머니는 점점 더 속을 털어놓는 대화를 해 나고,비올레트 할머니도 요양원 식구들과 친해진다. 요양원에서는 이웃 초등학교 학생들과 할머니.할아버지를 같이 ‘가장행렬’에 참여할 수 있는 이벤트를 기획한다. 카퓌신은 처음에 가장행렬 의상준비반을 맡게 되었을떄,‘두시간이나 편안히 의자에 앉아 있을 수 있겠는 걸’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건 그녀의 착각이었다. 노인들은 의상 카탈로그 페이지를 넘길때마다 탄성을 지르며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의상을 찾았고,난리법석이 되었다. 그리고 매일 모이면서,할머니는 요양원에 인력이 부족하고, 직원들이 과로하고 있으며,그로 인해 환자들도 방치된다는 것을 발견해낸다. 그리고는 가볍고도 톡쏘는 샴페인 방울처럼 ‘시위를 할 수도 있다’는 말을 한다. 흰머리 노인들은 가장행렬을 했고,‘직원의 과로로 환자들이 방치된다’와,‘인력부족:빨리 수혈하라’와 ‘궁지에 빠진 환자들의 건강’이라는 플래카드를 들었으며 지역 일간지에 기사가 소개되었다. 할머니.할아버지들과 요양사들과 카퓌신은 결국 혁명에 성공했다. 교감과 영혼의 조우 할머니는 편두통과 어지러움이 있었고,색전술 수술을 하게 되었다. ‘비올레트’할머니는 요양원에 들어왔던 날 ‘죽음의 복도에 서 있구나’라고 느꼈지만,수술을 앞두게 되자 다시 겁이 나고 무서웠다. 그런데 요양원 식구들은 할머니 생일에 ‘서프라이즈’파티를 해 주었고, 할머니는 심경은 무거웠지만 그 순간을 즐기기로 한다. p.138 나를 짓누러던 불편한 감정을 쫓고 이 아름다운 순간을 즐기자. 덧없는 것을 영원히 기억하기 위해서.하이쿠의 철학이 ‘아무리 덧없더라도 순간을 즐기자’는 것 아니었던가 ‘카퓌신’은 할머니를 위해서,사라져버린 ‘껌딱지’를 용돈을 다 지불하면서,유기견 보호소에서 데리고 나왔고,조심스럽게 요양원에 잠입해서 할머니 생일에 ‘껌딱지’를 할머니 앞에 데려다 놓았다. 껌딱지와 ‘비올레트’할머니는 엄마와 잃어버린 아이가 상봉하듯이 극적으로 다시 재회하게 되고,할머니의 웃음은 사람들에게 따뜻한 온기를 퍼뜨렸다. p.148 처음에는 뜬금없던 침묵이 무언가 다른 것으로 변했다.영혼이 조우한 듯 모두가 한마음으로 이어져 있었다. 그 감정이 얼마나 강했는지 이전에 일어난 일을 모두 지워 버렸다. p.157 “나는 인생이 우울하고 외로운 거라고 믿었던 늙은이야. 왜 그랬냐고 오랫동안 내 인생이 그랬으니까. 불평 많고 고집 센 할망구지. 웃지 마라.내가 얼마나 불평하고 고집부릴 수 있는지 나는 아니까.그러다가 운 좋게 너를 만났지.너는 특별한 아이야. 흔하지 않아서 귀하지.함께한 시간은 많지 않지만...네가 참 좋단다,카퓌신.” 나는 할머니를 두 팔로 감쌌다. 할머니의 연약한 몸을 꽉 안았다. 할머니도 나를 안아 주었다.내게 두른 두 팔이 가슴 속에 꽉 찬 얼음을 녹였다. p.158 눈물이 마를때까지 아이를 안고 기다렸다.내가 아이에게 가졌던 애정이 온 힘을 다해 나를 관통했다. 이상하게도 아이를 위로한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내가 위로를 받았다. p.159 “나도 완벽한 엄마가 아니었어.그러려고 노력은 했지만,아들에게 거짓말을 한 건 그래야 보호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떄문이야. 나는 사람들이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며 산다고 생각해.” ▶에필로그,할머니의 철학과 ‘하이쿠’ ‘카퓌신’과 ‘비올레트’할머니는 서로가 서로의 마음을 보다듬으며,짐승이 새끼를 핥듯이 상처를 핥아줬고,그들은 마음의 빗장을 풀고 한 단계 더 성장했다. 카퓌신은 엄마의 죽음에 관한 진실을 알게 됐으며,그 진실을 마주보고 인정하게 되었고,아빠에 대한 남아있던 미움이 저절로 녹아 없어졌고, 마침내 가발을 벗고 흉터가 있는 이마를 그대로 보여주게 되었다. 카퓌신은 정식요양사가 된 지 3년이 흘렀고,할머니는 돌아가셨다. 분위기는 애도로 젖어 들었다. 사랑,존중,슬픔,장례식을 모두의 경험으로 만드는 모든 것이 있었다. 할머니는 마지막에 완화 치료센터에서 카퓌신을 만났을 때 걱정 말라고 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모든 것에는 주어진 시간이 있단다. 살아갈 시간과 죽을 시간. 이제 난 준비가 된 것 같아.” 할머니가 좋아하는 하이쿠는 일본의 짧은 시 형식인데,카퓌신이 마지막 대면에 “할머니가 너무 보고 싶을 거에요”라고 했을 때 이런 하이쿠를 읊었다. 어쩔 수 없으니 꽃그늘 아래에서 죽음을 준비하자 할머니가 돌아가시고,‘카퓌신’은 추도사를 하러 연단으로 올라가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둘 다 흠이 있었어요.할머니는 제가 흠을 메우는 걸 도와주셨어요. 감춰봤자 소용없다는 걸 가르쳐 주셨죠. 사람들이 모른다고 없어지는 게 아니라는 걸요.할머니는 제가 성장하게 도와주셨어요. 나이 차이가 크게 났지만 친구가 되었죠.” “비올레트 할머니는 삶을 사랑하셨어요.매 순가니 아무리 짧은 시간이라도 소중하다고 가르쳐 주셨어요.분명 그래서 하이쿠를 좋아하신 거에요.할머니가 일기장에 마지막으로 적으신 하이쿠를 읽어 드릴께요. 할머니가 떠나셨어도 항상 우리 마음속에 살아 계신다는 걸 의미하니까요.” 나비가 가득한 죽은 나무에 꽃이 피었네
다 읽고 난 감상은 너무 마음이 아프고,슬프고,감동적이다.우리의 생애를 이렇게 축약해 내다니. 마지막은 카프카의 단편소설을 연상하게 한다. 생사의 윤회가 고리처럼 연결되어 진 우리의 안타까운 생에 대해서,그러나 하나의 끝에서 새로운 시작을 고하는 희망이 있음을 알리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