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F의 재미를 알아 SF소설들을 찾아서 읽고 있는데, 천선란의 2020년 작 <천개의 파랑>을 만나게 되었다. 이 책 역시 준비해두고 다른 책들에 밀려 있었던 책 중 하나였다. 읽으며 책의 가치를 다시 평가할 수 있었다. SF의 질감을-느낌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천개의 파랑>은 천선란의 2019년 한국과학문학상을 수상한 작품으로 휴머노이드 로봇기수 '콜리'와 경마장의 말 '투데이', 그리고 그 주변의 사람들인, 모든 행동을 연결시켜주는 '연재', 연재의 언니 '은혜', 연재의 엄마 '보경' 연재의 친구 '지수' 가 엮어가는 이야기다. 이 이야기를 읽으며 나는 감정에 젖어들었다. 인간을 하나의 사회의 부품으로 본다면, 휴머노이드 콜리와 다를 바없는 우리의 모습이 아닐가 싶었다. 하나의 부품이 잘못 삽인된 휴머노이드 로봇 '콜리'는 다른 로봇과는 달리 천개의 단어를 구사할 수 있는 로봇으로, 유사사고 비스므리한 생각이라는 것을 할 수 있으며, 자신과 관계를 맺을 경마장의 말 '투데이' 사이에서 '천개'의 단어로 감정을 생각하며 표현하는 기수 로봇 '콜리'는 자신이 타고 잇는 말인 이 투데이의 상태를 알아채고 스스로 낙마하여 말을 구하고 자신은 부서져 폐기처분 상태가 되어버린다. 이 부분에서 나는 '나-우리'의 모습을 발견하였다. 부서진 로봇의 모습에서 사회화된 '나'의 모습이 더이상의 사회에 필요치 않은 존재가 되어가는 모습과 과정을, 모드라마에서 나이든 노인은 0.5인분이라는 표현을 들으며 느꼈던 감정과도 통했던 부분이다. 아마도 찰리리채플린의 <모던타임>에서 느꼈던 기계화사회 속 인간 군상의 삶의 모습과 생존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과도 동질감을 느꼈던 같기도 하다. 소설 속 캐릭터 '은혜'의 장애인에 대한 사고를 바라보는 시각에서도, 소아마비로 인해 휠체어를 타고다니는 '은혜'를 향한 사회적 시선의 변화를 꾀하는- 그래서 언니를 위한 '소프트휠-체어'를 만들고 싶어한다. 연재는 이유를 "외롭지 않기 위해서요."라고 대답한다. "한 번 외출하기 위해 남들보다 많은 준비를 해야 하는 사람이 있어요. 하지만 준비를 한다고 나갈 수 있는 건 아니에요. 의지나 실력이 부족한 것도 아닌데 끝내 포기하는 경우도 많아요. 어렵거든요. 도움이 없으면 갈 수 없는 길들이 많으니까요. 누구는 쉽게 수술을 받으면 되지 않느냐고 말하지만 그 수술은 누군가에게는 불가능과 같은 비용이거든요. 그리고 또 그 사람은 우리와 같은 온전한 두 다리를 갖고 싶은게 아니에요, 다리는 형체죠. 진정으로 가지고 싶은 건 자유로움이에요. 가고자 한다면 어디든 갈 수 있는, 자유요. 자유를 위해서는 많은 돈이 필요한게 아니라 아주 잘 만들어진, 오르지 못하고 넘지 못하는 것이 없는 바퀴만 있으면 돼요. 문명이 계단을 없앨 수 없다면 계단을 오르는 바퀴를 만들면 되잖아요. 기술은 그러기 위해 발전하는거니까요. 나약한 자를 보조하는 게 아니라, 이미 강한 사람을 더 강하게 만든다고 생각해요." "인류 발전의 가장 큰 발명이 됐던 바퀴도, 다시 한 번 모양을 바꿀 때가 왔다고 생각해요. 바퀴가 고대 인류를 아주 먼 곳까지 빠르게 데려다 줬다면 현 인류에게도 그렇게 해줄 거라고 믿어요."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바꿔 줄만한 이야기였다. 이미 고정화된 사고를 바꿔줄 만 하였다. 문명의 정상인이라는 착각 속의 다수를 위한 사고와 규칙의 바운더리 안에 갖힌 굳어진 사고를, 유연한 사고를 통하여 세상의 변화를 꾀하려는. 장애인을 장애를 가진 사람으로 도움을 주고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사고가 아닌, 그들의 한 명의 개체의 온전성을 강조하며 필요한 것들을 바꿔나가야 한다는 것에 잠시 생각에 빠지게 하였다. (모든 면에서 사고의 전환은 필요불가결하다 여겨진다.) 생각할 수 있고 단순하지만 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 로봇이, 인간들에게 던지는 질문들은 단순해보이지만, 스스로를 돌아보고 반성하게 만들고 있었다. 결말에 또 다시 경마용 말인 '투데이'를 위해, 인간을 위해 혹사당해 무릎의 연골이 모두 닳아버려 달릴 수 없게 된, 무거워진 자신의 몸으로 인해 잘 달리지 못하지만 달리게 하고싶은 마음에 스스로 낙마하여 완전히 망가져 버리는 결정을 선택하는 콜리는, 허우적대며 현실을 살아가는 인간들에게 많은 질문을 주고 있다. 그 해결의 답을 찾아가는건 결국 인간 스스로이겠지만, 책 전체에서 전해지는 것처럼 홀로 외롭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현실의 어려움 속에 상처입어 흔들리면서도 '누구도 홀로 물방울처럼 울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본질적인 인간의 사회의 구성 이유를 망각한 채 사회를 혼자 있지않게 하려 한다. 결국은 관계일 것이고 관심일 것이며, 변화일 것이다. 그것을 "동물과 로봇 그리고 인간, 종을 넘어선 이들의 아름답고 찬란한 회복의 연대"라 말하고 있다. 언제나 그렇겠지만, 회복이 필요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우리는 희망을 노래한다. 아무도 혼자이지 않기를 바라고, 그것이 우리를 지탱해주기를 바라며! #자유자리뷰, #천개의파랑, #천선란, #허블, #202008, #모든작은존재들을긍정하는이야기, #우리는모두천천히달리는연습을해야한다, #한국과학문학상 |
같은 시대를 살고 있을 뿐 모두가 섞일 수 없는 각자의 시간을 보내고 있네요. SF소설이라는 허구의 세계가 현실보다 더 현실적이라는걸 알게 해준 소설이었다. 인간이 아닌 인공지능으로 만들어진 휴머노이드 로봇에게서 살아간다는 것을 배운다. 인간에게는 말하지 않으면 상대방의 속내를 알 수 있는 기능이 아예 없다. 다들 있다고 착각하는 것 뿐이다. 솔직함이라는 것이 꼭 필요한 곳에만 발휘된다면 인간관계가 얼마나 편해질까. 솔직해야만하는 곳에는 솔직하지 못하고 솔직하지 않아도 될 곳에서는 솔직하게 말해버리는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콜리는 땅에 떨어져 부서지는 순간, 커다란 진동을 느끼며 부서지는 순간. 행복을 느꼈을까? 소설의 시작은 건조함, 삭막함으로 다가왔다면 끝에는 푸른 하늘이 펼쳐진듯, 파란 바다가 밀려오는 듯 어떠한 위로와 살아가는 힘을 북돋워주는 메세지를 읽었다. |
|
5년하고도 1년 전에, AI가 바둑 기사를 상대로 승리한 적이 있었다. 그때부터였을까. 사람들은 기계를 다시 바라보기 시작했다. “또 사라진 ‘인간고유영역’…거꾸로 ‘알파고 바둑’ 배우기 나서”라는 기사가 나올 정도로 로봇은 인간의 영역에 깊게 침투해있다. 최근에 나온 그림 그려주는 Novel ai 역시 그림을 그리는 이들의 영역에 본격적으로 영향을 끼친다. 이와 같은 과학기술의 발전은 인간의 삶에 직접, 간접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문학은 사회를 담는 틀이라고 하지 않는가. 여성문제가 대두되었을 때는 여성과 성폭력 문제를, 학교 폭력 문제가 언론에 나오면 학교 폭력을 주제로 한 작품이 대거 등장했다. 그래서였을까. AI와 인간의 바둑 대결 이후, 인간과 기계의 공존을 배경으로 한 문학 작품 역시 등장했다. 거기에는 천 개의 파랑도 있었다. 천 개의 파랑은 인간과 기계의 공존을 핵심 주제로 선정한 소설로, 기계 마부이지만 모종의 이유로 의식을 가지게 된 콜리와 기계를 잘 다루는 연재가 만나는 이야기이다. 인간과 기계의 공존뿐만 아니라, 기술 발전으로 인한 사람들 특히 콜리와 연재의 주변 인물을 중심으로- 의 인식 변화와 고도의 과학기술을 가진 사회에서 소외된 이들의 모습까지 조명하고 있다. 즉, 과학기술로 변화한 미래 사회를 제시함과 동시에 이로 인한 사회 문제를 함께 보여주고 있다. 다만 지나치게 많은 등장인물과 역할, 대사의 중복은 피할 수 없었다는 점은 아쉽다. 천 개의 파랑의 첫 번째 매력은 소설의 구성에 있다. 소설의 첫 부분에서 “이건 이 이야기의 결말이자, 나의 최후이기도 하다.”라는 문장은 이미 독자에게 결말을 알려주고 있다. 이는 마지막 문구인 “마지막으로 하늘을 바라본다. 파랑파랑하고 눈부신 하늘이었다.”라는 문장으로 연결된다. 이런 구성은 마치 영화의 플래시 백과 유사한 효과를 불러일으키며 콜리가 회상하는 느낌을 준다. 이는 짜임새 있는 결말을 유도하여 작품의 완결성을 잘 드러내 준다. 또한, 소설 중간에 특정 인물을 중심으로 내용을 이끌어 가고 있다. 일례로, 콜리에 관한 내용이라면 ‘콜리’, 연재에 관한 내용이라면 ‘연재’라고 적혀 있으며 특정 인물에 관한 내용이 아니라면 말(馬) 표시가 나타나 있다. 이런 구성은 각 인물의 생각과 삶을 파악할 수 있는 계기가 되며, 번잡하게 여러 인물이 등장하지 않고 각 등장인물에 집중하도록 하는 효과를 낳는다. 천 개의 파랑의 두 번째 매력은 로봇과 인간의 공존을 주제로 했다는 점에 있다. 인간과 기계의 관계를 다루는 기존의 작품들은 인간과 기계의 대립 과정이나 대립 이후의 디스토피아를 다루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천 개의 파랑은 이런 주제를 선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콜리 주변 인물들이 콜리를 고쳐주고, 콜리가 자기 주변 인물을 도와주는 공생을 부각하였다. 이는 로봇이 없던 사회를 보여주는 보경이 콜리로 인해 로봇에 관한 부정적 인식을 지워내는 모습, 콜리로 인해 연재 가족 내의 문제가 해결되는 모습, 콜리로 인해 다시 뛸 수 있게 되는 투데이의 모습을 통해 드러난다. 특히, 로봇과 인간의 공존을 보여주며 소수자 문제, 동물권 문제를 함의하고 있다는 점은 의의이다. 이는 은혜나 투데이의 모습을 통해 드러난다. 은혜는 다리를 다쳤지만 높은 비용 때문에 다리를 완벽하게 고칠 수 없어 휠체어를 타고 있다. 휠체어를 탄 은혜는 지나치게 경사가 있는 경사로를 보며 한탄하고,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 일례로, 소설 중에 “주된 공격은 시선이었고, 들어가지 못하는 가게들이 배경으로 지나갔으며, 가방에는 HP 회복을 위한 식량과 물이 구비되어 있었다.”라는 문장-을 통해 기술 발달과 인식 개선은 왜 별개의 문제일지 의문을 던지고 있다. 이는 기술 발달 사회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이들의 모습을 대변한다. 또한 콜리가 처음 낙마한 이유가 투데이의 건강 때문임을 밝히며, 인간의 유흥을 위해 사용되는 동물의 모습을 표현하였다. 소설에서는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경주마들의 일생을 이야기한다. “여기 말들이 갇혀 있는 것 같아요.”나 “문제는 급속히 발전하는 문명과 달리 말의 관절은 몇천 년의 유전자 정보를 쌓아야만 고작 한 걸음 더 진화한다는 사실이었다.”나 “… 짐승이 행성을 포기하게 되는 거요. 이곳에서는 더는 살 수 없다고 판단한 동물의 유전자가 스스로 죽음을 택하는 거에요.”와 같은 문장으로 과학기술의 발전과 동물권의 문제를 함께 다루어 보아야 한다는 주제 의식을 보여준다. 이 책은 중심인물들로 핵심 주제를 명확하게 표현하고, 주변 인물로 소수자, 동물에 관한 문제를 다루었다. 이런 점에도 불구하고, 등장인물이 지나치게 많다는 점은 아쉽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은 콜리, 연재, 지수, 보경, 은혜, 다영, 보경의 남편, 민주, 복희, 서진 등 매우 다양하다. 앞에서 언급한 대로, 다양한 등장인물을 통해 다양한 주제를 다룬다는 점은 좋으나, 그 인물이 너무 많다면 문제가 된다. 중간에 나온 보경의 이야기는 보경의 과거를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필요했으나, 중간에 등장한 서진과 복희의 이야기는 그 중요함에 비해 지나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관리자의 치부를 드러내어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쟁취한다는 내용은 소설을 이끌어 나가기 위해 많은 등장인물이 필요한 점은 사실이나, 각 비중은 중요도에 따라 다르게 책정할 필요가 있다. 많은 등장인물은 소설의 핵심 주제를 잃어버리게 하는 문제점이 있다. 다행히 이 작품은 소설의 전개를 틀어버리거나 시점이 바뀌는 문제는 발생하지 않았지만, 많은 등장인물로 인하여 중편을 장편으로 늘렸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는 이 작품을 심사한 김창규 소설가의 말에서도 드러난다. “… 중편을 확장한 작품이라는 느낌이 있지만, …” 또한, SF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과학과 매개할만한 요소가 없다는 점은 안타깝다. 여러 영상 매체나 문학 작품에서 등장하는 자아를 가진 로봇이라는 설정을 끌어온 점은 괜찮으나, 이후의 콜리의 결말이 기존의 로봇과 인간의 공존을 다룬 소설의 결말과 비슷하다는 점에서 참신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차리라 인간에 관한 고찰이나 인간과 로봇의 경계 지점을 부각하여 다루었다면 과학과 충분히 매개할 수 있다고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 혹은 콜리에 관한 명확한 설명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여 과학기술과 매개하는 방향으로 소설의 전개를 잡았으면 어떠했는지 하는 아쉬움이 든다. 정리하자면, 앞에서 말한 다양한 인물을 통한 다양한 주제를 제시하는 방식이 이 책의 장단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많은 인물이 등장하고 각 인물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소설은 인물 변경 지점이 자연스럽게 연결되어야 한다. 개별 인물을 부각하며 여러 주제를 융합하려는 시도는 책의 주제 의식을 명확하게 만들어주었다. 하지만 개별 이야기에 치중하여 왜 이 시점에서 개별 인물이 등장하는지를 이야기하지는 못했다. 쉽게 말해, 왜 개별 인물들의 이야기가 다른 인물의 이야기로 변경되는 지점이 부자연스럽다. 이는 소설 전반의 개연성을 떨어뜨려 핵심 주제가 주변 주제에 의해 옅어지는 문제점을 낳는다. 이런 문제점을 변경하는 방향이 바람직해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