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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텔이라는 말이 익숙하지 않았던 시절, 터미널 근처의 여관에서 엄마와 하룻밤을 보냈다. 낯선 도시의 지리를 몰랐던 엄마와 나는 여관 주인의 도움을 받아 아침을 배달시켰다. 정확하게 무얼 먹었는지 기억나지 않고 2인분이 아닌 1인분이었다는 사실만 생각났다. 고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자취방을 구하러 나선 길이었다. 엄마는 방을 구하지 못하면 시골의 고등학교에 다녀야 한다고 했다. 나도 그러마했다. 다행이지 불행인지 골목에서 나와 같이 방을 구하는 여자아이와 그 아이의 엄마를 만났고 우리는 즉흥적으로 동거인이 되었다. 주인집 거실에 난 계단을 지나야만 하는 옥탑방에 방을 구했다. 보증금은 따로 없었고 사글세였다. 비비언 고닉의 『사나운 애착』을 읽으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기억이었다.
징글징글한 애착은 아니더라도 엄마와 나 사이에 적당한 애착이 필요했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비비언 고닉의 엄마처럼 사랑을 신봉하고 남편의 죽음에 식음을 전폐하는 모습은 엄마에게 찾을 수 없다. 그럴 수도 없는 게 엄마가 먼저 돌아가셨다. 엄마와 싸운 기억이 별로 없다. 고교 입시와 대학 때만 내가 원하는 대로 고집을 부렸을 뿐, 엄마도 나를 상대로 욕을 하거나 매를 들지도 않았다. 돌이켜보면 그게 너무 속상하다. 큰 소리를 내거나 화를 내지 않은 엄마는 조금씩 스스로를 갉아먹었을 게 분명하다. 할머니 때문에 그랬을까, 참고 살기만 한 엄마를 향한 마음은 그리움이지만 당시 애틋하고 애절함은 없었다. 그러나 십 대의 끝자락에서 나는 알았다. 언젠가는 엄마와 분리되었을 텐데, 그 시기를 늦추었더라면 좋았을 거라는 걸 말이다.
모든 모녀 사이에는 애증이 존재한다. 그런데 나는 그 타이밍을 놓쳤다. 서로가 서로를 거울로 삼고 살았던 비비언 고닉의 모녀의 일상을 지켜보는 일은 부러움과 즐거움의 연속이었다. 그건 고닉이 그만큼 글을 잘 썼기 때문이다. 1987년 공동주택의 한자리에 나는 착석했다. 침대에 누워 울부짖는 엄마와 창틀 난간에 기대어 밖을 내다보는 고닉의 모습. 고닉의 집을 오가는 이웃들. 그들의 면면이 내 눈앞에 펼쳐진다. 고닉의 엄마는 그곳에서 모든 걸 다 아는 듯한 표정과 말로 사람들을 압도한다. 같은 아파트에 살면 동지의식이 생기는 것처럼 고닉의 엄마와 그네들도 다르지 않았다. 서로의 고민을 토로하는 반면 험담도 오갔다. 당연하다. 사람 사는 건 다 그런 거니까.
노년의 어머니와 중년의 고닉이 뉴욕의 맨하튼, 브롱스로, 윌리엄스버그를 산책하면서 여전히 아웅다웅하는 모습은 아름답다. 하나도 변한 게 없어서 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현재에서 자연스럽게 과거로 이동하는 두 모녀의 대화는 같은 공간에서 살았던 시간을 생생하게 구연하는데 어떻게 그 모든 걸 기억할 수 있을까 놀라울 정도다. 길에서 만난 노숙자나 오랜만에 만나 얼굴을 알아볼 수 없는 동네 친구까지. 그들과의 에피소드는 새로운 이야기이면서 다른 삶이다. 그것은 고닉이 성장하는 과정이자 삶의 가치를 찾아가는 여정이다. 엄마와의 대립과 갈등은 당연하다. 고닉을 대학에 보내는 것에 대해 당당했던 엄마가 고닉이 대학을 나와 교사가 되지 않았을 때 보이는 반응은 익숙하다. 뼈가 빠지게 뒷바라지해서 대학을 보냈더니 번듯한 곳에 취직도 못하는 자식을 어처구니없게 대하던 우리 부모 세대와 다르지 않다.
그러니 그들과는 전혀 다른 외국인 화가와 결혼을 선언한 딸에게 과연 좋은 소리가 나오겠는가. 고닉에게 그 결혼은 일종의 반항이자 독립선언은 아니었을까. 그러나 엄마의 반대는 가히 옳았다. 엄마가 말하는 사랑이 아니라 자신이 믿는 사랑을 증명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뻔한 이야기지만 결혼은 현실이고 스물넷의 젊은 부부의 열정은 조금씩 균열이 생기지만 모른 척 시간을 끈다. 죽은 아버지를 향한 엄마의 끝없는 사랑이 고닉에게는 해당되지 않았다. 왜 자신이 음식을 해야만 하는지, 남편은 일요일에도 그림을 그리는지, 자신과의 산책이 왜 어려운지, 고닉은 이해할 수 없었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들의 헤어짐은 예상된 결과였다.
고닉의 엄마는 고닉을 키우고 만든 게 자신이라고 여겼지만 고닉을 변화하고 만든 건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고닉이 공부하고 문학을 읽고 경험하고 고민하고 당도한 것이다. 물론 가장 기본적인 큰 틀은 엄마라 할 수 있다. 유대인 이민자로 미국에서 정착하며 살기란 얼마나 버거웠을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배운 딸이, 작가가 된 딸이 자랑스럽지만 딸에게 주어진 환경이라면 자신은 더 잘 할 수 있을 거라는 마음, 그게 엄마의 솔직한 마음일지도 모른다. 고닉과 산책하다 만난 고닉의 친구가 호모섹슈얼이라는 말에 “사람들은 각자 자기 삶을 살 권리가 있지.”(95쪽)이라고 말하면서도 딸이 권한 전기를 읽으면서 “나는 삶으로 다 살았어. 나는 다 안단 말이다.”(113쪽)라며 화를 내는 모습을 돌아가신 내 엄마로 이입하려는데 쉽지 않다. 나는 그만큼 나의 엄마에 대해 아는 게 전혀 없다. 사소하거나 중대한 문제에 대해 서로의 의견을 길게 나눠본 적이 없다. 어떤 문제는 시대적 흐름에 이미 답이 정해져 있었고 사소한 것들은 사소해서 중요하다고 여기지 않았다.
만약 엄마가 살아 계시다면 우리는 어떤 대화를 나누게 될까. 어디가 아프다는 말이나, 동네 돌아가는 소식을 전해 들을 수 있을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엄마의 남의 집 이야기하는 걸 좋아하지 않았고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할 줄 아는 사람이 아니니까. 아니, 모른다. 우리는 좀 더 은밀하게 동네 아줌마나 어린 시절 친구에 대한 소문을 전할지도 모르고 어젯밤에 본 드라마 줄거리나 정치에 대해 언급할지도 모른다.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한 시간이기에 나는 그 시간을 상상하는 일이 서럽고 아프다.
“인생이 연기처럼 사라지네.”(300쪽)란 엄마의 말에 “제대로 살지도 않았는데. 세월만 가버려.”(301쪽)라고 답하는 고닉. “그러니까 네가 다 써봐라. 처음부터 끝까지, 잃어버린 걸 다 써야 해.”(301쪽)라고 말하는 엄마. 모녀에게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는 시간도 온 것이다. 함께 인생을 말할 수 있는 사이, 가장 가깝고 먼 관계. 그들은 어디서든 볼 수 있지만 내게 없는 관계라는 게 서글프게 다가온다. 사나운 애착은 끈끈하고 숭고한 연대가 되었다.
살면서 놓친 그 모든 것과 연기 같은 인생을 그저 바라보는 두 여자다. 엄마는 젊어 보이지도 늙어 보이지도 않고 그저 당신이 목도하고 있는바, 그 혹독한 진실에 깊이 침윤되어 있다. 엄마한테 내가 어떻게 보일지는 나도 모른다. (301쪽)
내 앞에 고닉이 앉아 묻는다. 잘 읽었어, 어땠어?라며 답을 기다린다. 치열하게 살아온 고닉의 생을 너무 재미있게 읽었지만 순간 엄숙해진다.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 사랑과 일 앞에서 최선을 다하며 살아왔을 눈부신 모습에 숙연해진다. 끊임없이 질문하고 자신 안의 공간을 확인하고 확장시킨 고닉. 그 공간이 만들어낸 매혹적인 이야기를 갈망한다고 나는 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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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비언 고닉의 책을 한 권씩 곁에 두고 있다. 소설이 아니 산문에 대한 기대가 큰 책도 오랜만 인 것 같다. 읽기도 전에 충만해지고 뿌듯한 기분이 드는 건 왜일까. 주변의 리뷰와 강력 추천도 한 몫 거들었을 것이다.
모녀관계, 그 둘 사이의 애착. 내가 아는 엄마, 내가 그리워하는 엄마, 엄마의 기억을 더듬는 시간이 될 것이다. 울컥하거나 아프거나 쓸쓸하거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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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비언 고닉의 <사나운 애착>을 통해 작가님의 책을 시작하게 되었는데, 문장력과 통찰이 너무 대단하셔서 작가님의 다른 책들도 읽어봐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 것 같다.. 작가님이 워낙 유명하셔서 기대했는데, 기대보다 훨씬 좋았던 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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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나운 애착 - 비비언 고닉 읽으면서 이렇게까지 솔직하게? 이렇게까지 적나라하게 사유한다고? 정말 너무 놀란 제품입니다. 이런 말 좀 그렇지만 너무 재밌어서.. 진짜 훑어서 쭉쭉 내려가면서 읽었네요. 엄마와의 애증 그런데 엄마의 싫은 모습을 내가 하고 있었다는 것을 문득 깨달았을때 느꼈던 소름이 가득한 책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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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돌아가신 엄마와 나의 관계에 대한 어떤 규정이 필요해서 자꾸 이런 책들을 찾아 읽게 된다. 딸과 엄마의 관계에 대한 책, 상실에 관한 책을 한꾸러미 사놓고 읽어나가고 있다. 애착인데 사나운 애착이라니... 엄마와 딸의 관계에 대한 오묘한 느낌이 전해진다. 이해하고 싶으나 이해가 안되고 사랑하고 싶으나 맘껏 사랑하게도 되지 않는 엄마와 딸의 관계. 어린 아이일 때와 현재 시점이 교차되면서 펼쳐지는데 어린아이라도 다 보고 있고 다 느끼고 ,생각하고 있음을 보면서 작가가 자신의 어린 시절을 되돌려 어쩜 저렇게 세세하게 잘 표현했을까 싶어서 감탄이 나왔다. 엄마에게 느끼는 표현들을 보면서 위로가 되기도 했다. 내가 느꼈던 감정들과 똑같아서 그랬던것 같다. 사람에게, 특히 엄마에게 느끼는 감정들은 보편인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1930년 무렵 뉴욕의 생활 상을 속속들이 알게 된 것 같아 좋았다. 그 시절의 미국은 아직 여자들이 살림하고 남자는 돈을 벌어오는 가정 구조였는데 그때 집에서 여자들이 느끼는 살림을 꾸려가는것 과 남편에 대해 느끼는 감정들이 공감이 됐다. 엄마와 티격태격하면서도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 소중하다는 것을 돌아가시고 나서야 알게 되는 것 같다. 좋은 책입니다. 추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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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비언 고닉 작가님께서 쓰시고 노지양 번역가님께서 엮으신 [eBook] 사나운 애착 독후감입니다. 개인적인 견해가 있을 수도 있으니 읽으실 때 주의하여주시길 바라곘습니다. 모녀의 관계에 대한 내용 입니다. 개인적으로 모녀의 관계는 단순할 것 같으면서도 굉장히 어려운 관계라고 생각합니다. 이 에세이에는 그러한 모녀의 관계가 잘 나타나 있어 공감이 가기도 하고 제가 느낀 모녀의 관계와는 다른 부분이 있어 흥미롭기도 했습니다. 제목처럼 사나운 애착의 복잡한 관계를 잘 나타낸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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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비언 고닉의 작품을 읽어보고 싶어서 작가의 대표작 중 하나인 사나운 애착을 구입해 읽어보았어요. 자서전 중에선 최고의 평가를 받는 책 중 하나인 거 같더라고요. 작가가 유년시절부터 나이들어서까지 엄마와 있었던 일화나 함께한 시간 속에서 했던 생각들을 잘 서술한 책이예요. 주관적이면서도 객관적인 시선으로 본인의 이야기를 잘 담은 책이라 생각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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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펼치면 [사나운 애착]의 저자 비비언 고닉에 대해 '비평가, 저널리스트, 에세이스트, 뉴욕에서 나고 자라고 활동했다. 칼럼, 비평, 회고록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정신의 삶을 건 독보적인 글쓰기를 보여주며 오랫동안 '작가들의 작가'로 불려왔다.'라고 쓰여 있습니다. '작가들의 작가'라는 표현을 본 순간 궁금해졌습니다. 더욱이 [사나운 애착](1987)은 뉴욕타임스가 선정한 '지난 50년간 최고의 회고록'으로 손꼽힌다는데 망설일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첫 문장에서 여덟 살의 비비언 고닉을 만났습니다. 엄마와 옆집 드러커 아줌마가 나누는 말들을 귀 기울여 듣고 있는 여덟 살의 여자애는 당시 살고 있던 다세대주택(아파트)에서의 기억속엔 여자들만 있었다고 회고 합니다. '그곳 여자들 모두가 드러커 아줌마처럼 상스럽거나 우리 엄마처럼 외고집이었다'라며 물론 남자들도 있었을 것이고 그들은 남편이었고, 아빠였고, 아들이었겠지만 워낙 여자들간의 충격적인 사건사고들이 일상으로 발생하고 소강상태였다가 다시 터졌기 때문에 특별히 기억남는 장면이 없었다고 설명합니다. 이제 세월은 흐르고 비비언 고닉은 엄마와 산책을 하면서 그때 브롱크스 다세대주택에 살던 여자들에 대해 기억하느냐고 엄마한테 묻습니다. 예의 드러커네, 열여섯 살 때 시집 온 지머먼, 윗집에 살던 러시아 사람들 이야기를 꺼내는 엄마와의 시간이 또다시 흘러 여전히 둘-마흔다섯 비비언 고닉과 일흔일곱의 엄마-은 산책을 하고 옛날이야기를 합니다. 시간을 박제한 것 처럼 그시절을 그대로 읊어주며 비비언이 기억하지 못하는 사건들, 비화들, 감춰진 진실들을 이제는 이야기하는 엄마와 엄마가 모르는 자신의 일들, 이야기들, 숨겨진 이야기들과 행복했던 이야기도 불행했던 이야기도, 불편하고 누군가는 아팠을지 모를 비밀 이야기들은 책에 쓰여 있습니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비통해하는 엄마를 향해 딸이 되어서 어쩜 그렇게 삐딱하게 바라볼 수 있냐고 말하고 싶을 정도로 냉철한 사람인가 싶다가도 자기 자신에 관한 이야기에 있어서도 칼 같은 날카로움을 유지하는 문장에 그녀는 타고난 비평가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제목 [사나운 애착]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해봅니다. '이상화 된 결혼'에 애착을 보인 엄마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본 것일까, 비유대인이며 보헤미안 예술가와 결혼했지만 결국 한쪽이 사라지는 결말로 끝이난 자신의 결혼생활 이후, 새롭게 엄마와 그곳 여자들-브롱크스 다세대주택에 살던-을 이해하게 된 나를 중심으로 애착이라는 단어를 쓴 것일까...시간이 흐르고 세월이 겹겹히 쌓였음에도 그때 그모습, 그시절을 재생하듯 상세히 들려주는 [사나운 애착]에 실린 비비언 고닉의 삶은 평범함속에도 얼마든지 특별한 이야기가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그녀가 쓰지 않았다면 누구도 기억하지도 생각하지도 못했을 그 시대, 그 시절 이야기들이었기에 가치와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아울러 부럽습니다. 애착이라는 단어로 묶여질 만큼의 엄마와 딸이라는 관계가. 상대방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없으면 결코 보이지 않을 내밀한 것조차 감지하고 발견하는 두 사람이 신기하면서 부럽습니다. #사나운애착 #비비언고닉 #노지양_옮김 #글항아리 #비비언고닉선집 #책추천 #책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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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게나 솔직한 에세이라니! 읽는 내내 풍경이 생생하게 그려져 놀라울 정도였습니다 마치 모녀와 함께 뉴욕 거리의 곳곳을 쏘다니는 기분이 들었으며.. 그녀의 선집 시리즈를 다 읽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더 그녀의 작품을 읽게 되기를 바랍니다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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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닉의 모녀관계를 통해 나의 모녀관계를 돌아다본다. 엄마의 인생저장소로서의 딸. 존재 모든 곳에 엄마가 있는, 모든 점막에까지 다 엄마가 스며들어있는 딸. 서로 지긋지긋하고 누구보다도 상처를 주고 받지만 그럼에도 멀어질 수 없는 끊어질 수 없는 미스테리가 바로 모녀관계 아닐까. 고닉의 엄마와 닮은 우리 엄마의 모습, 고닉과 닮은 나의 모습을 발견하는 재미와 다름을 곱씹으며 내가 왜 고닉의 목소리에 동의할 수 없는지 생각하게되는 책이었다. 결국 이들이 원한 것은 '사랑'이었다는 사실을 나는 캐낼 수 있었는데 그들은 그 사실을 순순히 가르쳐주지는 않았다. 사납지만 애착을 버릴 순 없고 애착은 있지만 다정할 수 없는 그녀들. 흥미진진할 순 있지만 깊은 통찰이나 감동을 주는 책은 아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