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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출판사에서 기획한 세계 고전을 통해 시대를 관통해 온 관념을 새롭게 바라보는 '이다의 이유' 시리즈 중 첫 번째 작품이다. 문학을 통해 가부장적 시대의 여성차별은 여성 문학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방관하지 말고 어떻게 맞서야 하는지 성찰하게 한다. 여성차별은 현재 진행형이므로. 그래서 "우린 모두 자기 자신이 되어야 한다."
<자기만의 방>은 1928년 10월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여성과 픽션'이란 주제로 한 강연의 내용으로 여성의 주체적인 작품을 위해서는 왜 자기만의 방이 필요한지, 왜 년 500파운드가 있어야 하는지, 모든 여성이 어떻게 용기를 가져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논란이 많은 많은 주제는 한 사람이 진리를 말하기란 기대하기 어렵다, 라는 문장이 페미니즘을 일컫는지는 모르겠지만 당시의 편견과 차별이 여전히 지속되는 오늘에 읽어도 따끔거리긴 매한가지다.
남성 우월주의가 낳은 가부장제가 당연한 시대에 여성 편견과 차별에 대한 강연에서 그는 대학의 훌륭한 건축물을 기념하는 오찬 자리에서 그는 대학 요리사의 훌륭한 음식에 대한 언급은 하찮은 것이라 치부하는 남성 소설가를 살짝 비꼬며, 여성 작가로서 관례를 거부한다. 하찮은 게 아니고 먹음직스러운 음식이 펼쳐져 있는 것처럼 실감 나게 묘사한다. 그럼으로써 그는 자신이 아닌 다른 누군가가 되려고 애쓰지 않는 것, 그저 자기 자신이었을지 모른다.
그러면서 교수, 신문사 사장, 편집장, 외무장관, 판사, 크리켓 선수, 승마, 요트 소유자, 자선단체에 기부하는 기업가 등 모든 사회적 위치에 남성들이 있으며 심지어 여성에 관한 책도 남성이 쓰는 시대에서 남성이 우월감을 느끼는 방법은 타인은 자신보다 열등하다고 믿는 것이며 그렇게 반대편 열등한 존재로 여성을 인식하는 남성들을 힐난한다. 그러면서 100년 후에는 보호받는 여성의 지위를 벗고 당당해질 것이라 선언한다. 그렇게 100년이 가까운 지금, 여성은 더 이상 보호받지 않는가, 를 자문하게 한다.
"여성은 세상 어느 곳에나 존재하지만 역사에는 배제되어 있다." 93쪽
셰익스피어를 비롯한 유명 극작가의 작품 속 여성은 남성만큼 위대하거나 더 위대했지만 실상 현실은 감금 당하고, 구타당하고, 방안 여기저기로 내팽개쳐지는 존재로 그저 남성의 소유물이라고 고발한다. 이런 일들은 여성 자신의 의지가 아닌 부모가 강제로 벌어진다는 점 또한 개탄한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작품 안에서 무궁한 표현의 자유를 만끽하는 셰익스피어의 글을 동경하는 듯하다. 남성 작가로 대변되는 그를 조롱했던 건 아니었나? 내가 그녀의 의중을 이해하는데 한참 모자라는 깜냥인 탓이겠지만 내용은 어렵고 가득한 은유와 비유는 문장을 느리게 여러 번 읽어도 쉽게 넘기지 못했다.
"나는 '클로이는 올리비아를 좋아했다.'라는 문장을 읽었습니다. 그러자 얼마나 엄청난 변화가 있었는지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클로이가 올리비아를 좋아한 것은 아마 문학 역사상 처음일 것입니다." 164쪽
대학 도서관에서 여성이란 이유로 입장을 거부 당한 후 그는 영국 문학의 시간을 거스른다. 책장 속에 여성 작가의 작품이 있는가, 있다손 치더라도 소설을 벗어날 수 있는가, 에 대한 한탄이며 메리 카마이클의 <생의 모험>을 통해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고 남성의 시선을 벗어나 성을 의식하지 않는 시도와 성과를 칭찬한다. 그리고 여성들이 좀 더 과감하고 진솔한 이야기를 구현하게 하려면 오롯이 글에만 집중할 수 있는 자신만의 방과 년 500파운드의 경제적 지원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책은 그가 제인 오스틴, 조지 엘리엇, 에밀리 브론테 등 여성 작가들의 뛰어난 작품들은 너른 상상력과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조용하고 쾌적한 독립된 공간이 아니라 사람들의, 남성들의 편견을 피해 덮고 숨겨가며 간신히 써야만 하는 공동 거실이어야 했음을 상기하며, 여성들은 스스로 지닌 뛰어난 재능이 있음에도 빛을 내지 못하는 현실을 개탄하며 스스로 자각하고 분연히 일어나, 라는 여성 계몽이자 남성 우월주의에 대한 저항이다. 안타까운 건 정확히 94년이 흐른 지금도 이 책이 그렇게 읽힌다는 거다. 여성차별과 편견은 현재 진행형이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완독 후 솔직하게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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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를 새롭게 들여다보는 명저를 선정해 출간되는 '이다의 이유' 시리즈 첫 번째 작품이다. <버지니아 울프의 방>과 <에밀 졸라의 진실>이 출간되었고, <나혜석의 고백>과 <정조의 공부>도 곧 출간될 예정이다.
버지니아 울프가 여성들에게 '자기만의 방'과 '매년 500파운드'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던 <자기만의 방>이 출간된 것은 1929년이다. 그로부터 거의 백 년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지만 여성들의 삶은 과연 자유로워졌을까. 여성들의 위상이야 확실히 당시보다는 나아졌겠지만, 여전히 가부장제와 불평등, 억압에서 멀리 벗어나지 못했다. 특히나 기혼 여성에게 '자기만의 방'이 있는 경우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며, 매년 500파운드에 해당되는 금전적인 지원 역시 전무할 것이다. 그래서 여전히 버지니아 울프의 목소리는 당대의 현실을 통과해서 빛을 발한다.
<자기만의 방>은 버지니아 울프가 1928년 케임브리지대학에서 '여성과 픽션'을 주제로 강연한 내용을 기초로 쓴 에세이집이다. 그리고 <3기니>는 그 후속편으로 구상된 작품으로, 보통 두 작품을 함께 묶어서 출간되곤 했다. <버지니아 울프의 방>은 <자기만의 방>만 수록하고 있어 분량 면에서 부담스럽지 않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을 읽고 나서 관련 주제에 대해 더 관심이 생긴다면 버지니아 울프의 <3기니>도 찾아서 읽어 보면 좋을 것 같다.
버지니아 울프가 글을 쓸 당시나 이전까지, 여성은 돈을 벌 기회가 적었고 그 기회조차 제대로 주어지지 않았다. 경제적으로 남성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었고, 이는 여성의 자유를 남성에게 종속시켰다.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자기만의 세계를 펼칠 공간도 당연히 없었다. ‘자기만의 방’과 ‘매년 500파운드’는 이처럼 자유가 억압당한 공간과 현실적 문제를 상징적으로 표현하며, 역사상 성 논쟁이 가장 치열했던 때에 여성 문제를 사회적인 이슈로 끌어올렸다. 강연 내용을 그대로 정리해 그 형식 그대로 흘러가는 이야기라 논리적이며 체계적으로 읽히는 작품은 아니다. 하지만 구어체 형식으로 진행되어 기존의 권위적인 글쓰기 방식에서 벗어나 독자가 스스로 사유하게 만들어 준다는 장점도 있다. 버지니아 울프는 이 책에서 실존하지 않는 누군가를 지칭해 '나'라는 화자를 만들고, 자신이 말하는 것 중에는 거짓말도 있을 수 있지만 그 속에 진실이 섞여 있다고 단언한다. 그 진실을 찾아내고 그중 어떤 부분이 간직할 만한 가치가 있는지 결정하는 것은 이야기를 듣고 (읽는) 우리의 몫이라고 말이다. 이는 여성에 대한 사회적 차별이 여전한 지금, 우리가 이 작품을 읽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한번은 고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던 중 제인 오스틴의 작품이 언급되었다. 그녀의 작품이 시간이 흘러도 퇴색되지 않고 살아남아서 고전의 반열에 오르게 된 이유들에 대한 대화가 오갔다. 그때 누군가 조소하는 뉘앙스를 담아 한마디를 던졌다. “제인 오스틴은 응접실 소설만 썼잖아요. 사소한 이야기들로 가득 채워진 소설이라는 한계가 있지요.” ‘응접실 소설’이라는 평가는 틀리지 않았다. 제인 오스틴은 실제로 혼자만의 방이 없었던 탓에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응접실 한구석에서 소설을 썼으니까. 그리고 사람들과 대화하고 교류하는 시간 속에서 인간의 본성과 사회구조 속에서 나타나는 행동과 언어의 특성을 꾸준히 관찰해왔으니까. 그런데 그 말을 던진 사람이 ‘응접실 소설’의 의도는 ‘사소’하다는 것에 방점이 찍혀 있었다. 거대한 흐름을 못 보고 작은 물살에 매몰되어서 상상력이 결핍되어 있다는 의도에 가까웠다. 그 후로 제인 오스틴의 소설을 읽을 때마다 ‘응접실’이라는 말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사소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완벽하게 자신의 문장으로 소설을 써냈기 때문이다.
《버지니아 울프의 방》을 읽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아끼면서 천천히 읽었다. 작고 가벼워서 두꺼운 패딩의 큰 주머니에 넣고 다니면서 앉을 자리가 생기면 펼쳐서 읽었다. <이다북스>의 책들은 작 고 가벼운데, 담긴 내용은 늘 무겁다. 무거워서 어깨를 펼치지 못하는 내용이 아니라 무게를 인식함으로써 어깨를 펼쳐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인식의 자각을 일깨우는 내용이다.
버지니아 울프는 "픽션을 쓰려는 여성은 돈과 자기만의 방이“ 있어야 한다는 의견에 도달하기 위해 ‘옥스브리지’라는 가상의 공간과 ‘나’라는 가상의 인물을 내세워서 이야기를 진행한다고 전제한다. 옥스브리지는 옥스퍼드 대학교와 케임브리지 대학교를 함께 부르는 명칭이지만 이 글에서 옥스브리지는 남성중심으로 구성되고 정립된 학문의 세계와 고착화된 문화를 의미하는 것 같다. 또한 ‘나’라는 가상의 인물은 배움에 대한 열망이 있지만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학문으로 나아가는 문 앞에서 차단당하고 마는 여성들을 포함한다. ‘나’는 옥스브리지에서 떠오르는 아이디어에 취해 잔디밭을 걷다가 자신을 향해 분노에 찬 얼굴로 걸어오는 교구관리인을 보게 되다. ‘나’는 그를 피해 잔디밭에서 인도로 내려가고 그제야 교구관리인의 얼굴은 평온해진다. 그런 다음 ‘나’는 도서관에 방문하지만 ”여자는 남성 연구원과 동행하거나 소개장이 있어야만 이 도서관에 들어올 수 있다”는 말로 문을 막아서는 노신사에 의해 차단당한다. 다른 이유는 없이 오직 여성이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남성중심의 사회에서 여성들은 많은 가능성을 차단당하고 남성보다 열등한 존재이라고 규정되었다. 남성의 존재를 실제보다 확대시키기 위해 여성의 열등함을 강조했다. 열등한 여성의 존재는 실제보다 줄어들어 보이고, 그럼으로 남성의 존재는 실제보다 확대되어 대단하게 보이도는 이상한 거울 효과가 발생한다. ‘심리적 코르셋’도 이런 거울 효과의 영향력 아래에서 발생했다. ‘여성과 픽션’이라는 주제는 여성으로 글을 쓰기 어려운 시대에도 천재성을 피어냈던 작가들을 언급하는 부분에 이르러서 더욱 구체성을 보여준다. 샬롯 브론테를 바라보는 안타까운 시선에도 공감이 간다. 종이를 한꺼번에 살 돈도 없었으며 자신만의 방과 고정된 수입이 없었고 집안살림에 바빴던 브론테가 어리석은 계약을 할 수 밖에 없었던 현실과 그로 인해 제한된 작품을 보여줄 수밖에 없었던 시대의 거울을. 앞서 이야기했던 제인 오스틴은 일그러진 거울에 휘둘리지 않았던 사람으로 자신만의 글을 제대로 써냈던 사람이다. 그래서 나는 ‘사소’하다는 그 말을 오랫동안 기억하고 있었다.
버지니아가 자기만의 방을 말한 이후로 거의 백여 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해결되지 못한 부분이 많다. 『보이지 않는 여자들』은 기술과 노동, 의료, 도시계획, 경제, 정치, 재난 상황 등 16가지 영역에 걸쳐 여성에 관한 데이터 공백이 우리의 삶에 미치는 영향과 차별의 단면을 면밀하게 보여주는 책이다. 남성을 인간의 디폴트값으로 여기는 방식 때문에 여성과 관련된 지식과 정보는 제대로 수집되지 않으며 그로 인해 인구의 반인 여성은 배제된다는 것이다. 그로 인해 여성은 가난하고 아프고 죽음에 이르기도 한다.
사방에 굴절된 거울이 걸린 이상한 시대에 살면서도 이상하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채 순응하며 살아가는 여성들에게 버지니아 울프는 눈을 뜨라고 말한다. 남성의 책망과 경고에 영향을 받지 않고 자신만의 시각으로 살아가려면 자신만의 문장을 가져야 한다고.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는 인식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문장을 쓰기 위해서는 경제적인 자립과 자기만의 공간이 있어야 한다고. 2022년 첫날, 부엌 한구석에 책장을 세워 겨우 나만의 방을 만들어놓고 책을 읽고 때때로 글을 쓰는 짧고 불안정한 시간 속에서 버지니아 울프의 목소리를 다시 꺼내 들어본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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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만의 방'과 '500파운드'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가?
10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온전하게 가질 수 없는 우리의 삶을 상징하는 이 두 가지가 가진 의미는 참으로 크다.
버지니아 울프의 강연을 엮은 '자기만의 방'을 이다북스에서 '버지니아 울프의 방'으로 새롭게 출간했다. 수많은 책이 쏟아져 나오는 요즘에 제목이 주는 매력을 감안한다면 시대의 흐름을 읽은 좋은 선택이라고 본다.
'여성과 픽션'이라는 주제의 강연을 부탁받은 버지니아 울프는 '자기만의 방'과 연간 '500파운드'의 돈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것은 어떤 상관관계를 가지는 것일까?
500파운드의 돈을 지금의 가치로 환산하면 2,500파운드 원화로 약 4,000만 원이 된다. 세금을 제외하고 생각하더라도 월 300만 원이 넘는 돈은 1인 가구 생활비론 꽤나 안정적이고 충분하다고 볼 수 있다. 동명의 숙모의 유언으로 안정된 수입을 얻게 되면서 깨닫게 된 것을 버지니아 울프는 강연에 참석한 모든 여성들에게 이야기해 주고 싶어 했다.
경제력 그리고 창조의 공간
경제력은 자유를 의미한다.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다. 독립된 개체로 인정받는다. 결정에 책임을 지고 폭넓은 사고를 보장한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볼 수 있고 선택할 수 있다. 글을 읽고자 선택할 수 있고, 어떤 글을 읽을지 그리고 글을 쓰고자 선택할 수 있다. 누군가의 허락 없이.
버지니아 울프가 살았던 시대는 여성이 적게나마 돈벌이가 가능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자유를 맛보기 시작한 시대이다.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많은 시간을 일해야 하는 안타까운 상황이었지만 희망이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버지니아 울프는 숙모의 유산으로 생계를 위해 일하지 않고 온전히 글쓰기에 전념할 자유를, 그것도 충분한 자유를 얻었다.
창조의 공간은 개인의 자유가 보장되고 독립된 존재로 인정받는 공간이다.
방해받지 않고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기회와 여유 있는 시간은 굉장히 중요하다.
독립된 공간이 가지는 의미는 꽤 중요하고 필수적이다. 방해받지 않는 독립적인 방을 갖는 것은 일정 수준 이상의 경제력이 뒷받침되어야 하고 구성원 간의 존중이 있어야 가능하다.
자신만의 공간에서 오랜 시간 앉아 사유하거나 글을 쓸 수 있는 환경은 기존 사회에서 여성에게 요구하는 역할을 모두 내려놓아야 가능하다는 것을 버지니아 울프는 말하고 싶은 것이다.
자유롭게 말하고 웃고 생각하고 울 수 있는 공간 나만의 창작에 몰두할 수 있고 나를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는 공간이 주어져야 가능하다.
외부와의 접촉을 선택할 수 있고, 나를 온전히 내려둘 수 있으며, 내가 선택하고 통제권을 가짐으로써 예측할 수 있는 여유와 안정감을 준다.
아마도 이러한 욕구를 실현하기 위해 현대의 사람들은 시간 단위 임대가 가능한 카페를 찾는 것일지도 모른다. 스스로의 공간인 ‘자기만의 방’을 소유하고 싶어서
위에 나열한 조건이 갖추어져야 비로소 좋은 글쓰기를 할 수 있다. 온전히 시간을 투자하고 자신이 가진 모든 재능을 쏟아부어 가장 좋은 문장을 뱉어 낼 수 있다.
셰익스피어에게 누이가 있었어도 그처럼 성공할 수 있었을까? 버지니아 울프는 가상의 인물을 예로 들어 말한다. 주변의 응원을 얻고, 가장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고, 학교에서 글쓰기 관련 교육을 듣고, 극단 문전에서 박대를 당하지 않고, 아직은 부족한 글을 읽어주고 이야기 나눌 사람을 만날 수 있었을까 질문을 쏟아내지만 결론은 여성 셰익스피어는 애초에 만들어질 수 없다에 다다른다.
버지니아 울프가 강연 초기에 설정한 가상의 이야기를 이해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은유와 비유를 드문드문 알아들을 수 있어 조금은 답답하지만, 그가 강연에서조차 직설적으로 말하지 못했던 현실을 탓해야 할 것이다.
깨어있는 여성으로 자신이 깨달은 것을 청중에게 전달하기 위해 고심한 모습이 역력하다. 이틀 동안 다양한 생각을 정리하고 전달 방식을 고민했을 것이다. 가상의 지역과 상황을 상상하고 의식의 흐름대로 흐르는 그 이야기 속에 숨은 뜻을 찾아가는 여정은 단시간에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여러 번 곱씹는 가운데 나보다 먼저 깨닫고 변화를 위해 노력한 이들의 발자취를 하나하나 따라가보고 싶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버지니아울프의방 #자기만의방 #버지니아울프 #여성을위한글 #페미니즘 #이다북스 #이다의이유 #지소강 #책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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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울프는 들어봤지만 저자가 여성을 이슈로 삼아 책을 썼었다는것은 알지 못했다 1929년 <자기만의 방>이 출간된지 대략 백년이 다되어가지만 우리네 여성들의 삶은 달라졌을까?? 예전에 비해서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가부장적은 사회에서속에서 여성의 당하는 불평등이나 억압은 여전하다고본다 <자기만의 방>과 <500파운드> 여성들에게 필요한 공간과 필요한 돈!! 비록 백년전에 쓴 책을 이 책을 통해 재조명하는 것이지만, 전혀 현재에 어울리지 않는다거나 그렇지 않다! 여성의 삶에 대하여 관심있는 분들에게 강추하고싶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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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 울프의 방은 울프가 거턴과 뉴넘에서의 강연을 위해 ‘여성과 픽션’을 주제로 한 강연 발표문을 발전시켜서 에세이 형식으로 써내려간 글이다. 제인오스틴, 에밀리 브론테 등 당대 여성 문학의 발전을 고찰하고, 이를 확장해 가부장제 사회에서 억압받는 여성의 삶에 획기적인 물음표를 던진다.
버지니아 울프가 살던 1900년대 초의 영국사회는 여성 인권 향상의 태동이 싹튼 시기였다. 1928년 서프레제트 운동으로 여성들은 남성과 동등하게 21세부터 첫 완전평등 참정권을 얻었다. 그 전까지의 여성은 정치에 참여할 수도 없었고, 본인의 부를 쌓을 수도 없는 남편의 부에 종속된 존재였다.
이런 사회문화적 배경 속에서 울프의 주장을 파격적인 것이었다. 울프는 남성이 독점적으로 지녔던 교육, 문화, 경제적 특권을 세익스피어의 여동생이라는 가상의 인물을 통해 하나하나 탐구하며, 이들이 어떻게 여성보다 훌륭하다고 평가되어지는 문학적, 경제적, 정치적 성취를 이뤘는지 밝혀낸다.
그리고 이러한 유물론적 사상의 바탕위에서 여성들이 마음껏 자신의 재능을 펼치고 글을 쓰며 ‘자기 자신으로서’ 살기 위해서는 ‘500파운드의 경제적 자유와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는 두 가지 조건을 제시한다.
버니지아 울프의 방은 가부장제 사회의 역사 속에서 그동안 어떻게 남성이 여성을 ‘열등한’ 존재로 규정해 상대적으로 자신의 우월함을 쟁취하였는지를 당대 인물의 삶을 다큐멘터리로 관찰하는 듯한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낯낯이 드러내는데 할애를 많이 하고 있다.
하지만 저자의 진짜 목적은 이러한 남성들을 ‘비난’하고 남성권력을 빼앗아 여성이 그것을 차지는 것이 아니다. 생물학적 성(性)이라는 이분법적 기준을 초월해서 ‘여성 안에 있는 남성성’, ‘남성 안에 있는 여성성’을 그대로 온전히 받아들이며 결국 ‘온전한 자기 자신’이 되는 공생의 길을 지향한다.
여성의 사회진출과 인권의식이 성장하고, 페미니즘이 새로운 이데올로기로 부상하는 현대 한국사회에서 버지니아 울프의 전언은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앞으로 나아갈 방향성을 제시한다. ‘여성혐오’, ‘남성혐오’가 현재 젠더갈들의 키워드가 되고 있는 요즘, 여성은 억눌렸던 과거를 청산하고 성을 넘어선 한 인간으로서 사회에 기여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하나. 남성은 그동안 가부장제 사회에서 누렸던 권한과 의무에서 탈피하여 자기 자신으로 여성과 공존하기 위해 어떤 자세가 필요한가. 이러한 공생과 성장의 키워가 필요한 시점에 버지나의 울프의 방은 우리 모두에게 의미가 된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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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 울프의 방’ 여성에 대한 이야기. 여자로 태어난 것이 남자를 위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성경이나 많은 기록에는 그런 의미로 기록되어져 있습니다. 남성위주의 사회로 흘러가다보니 여성은 가정을 지켜야 하고 순종적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습니다. 1800년대에는 더 심했을 것입니다. 어디를 가도 자유롭게 출입할 수 없었으니 자유아닌 자유로 인해 차별과 멸시를 받으며 살았을 것입니다. 그저 같은 사람일 뿐인데 성을 나누고 각자의 역할을 나누고 그것을 지켜야 한다는 보이지 않는 강요속에 오랜 시간동안 남성들을 위해 살아왔습니다. 비단 삶에서만 그런것이 아니었습니다. 인간에게 가장 큰 축복은 글자이며 이를 기록하고 보관되어 전해질 수 있었기에 지금이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기록물 자체에도 여성과 남성에 대한 차별이 존재했고 이는 보이지 않는 규율로 원래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습니다. 사실 현재도 크게 다른건 없다는 생각입니다. 이전보다는 많은 변화가 있었고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에 인식의 변화가 이루어졌지만 어디까지나 그러한 생각에 동의한 이들에 한한 것이기에 차별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버지니아 울프는 아버지의 죽음으로 정신병을 얻게 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어머니의 죽음을 경험담으로서 정신병이 더욱 악화되었습니다. 그 와중에 그녀를 사랑했던 남자로 인해 책에 몰두할 수 있었지만 결국 자신으로 인해 불행한 한 남자를 위해 자살을 선택하게 됩니다. 이 책은 그녀가 강연한 내용을 기록한 책입니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세상에서 차별받고 그것이 마치 원칙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 여성으로서 바라볼 수 있는 세상과 같은 인간이라는 인격체로서 존중 받아야 함을 말합니다. 이는 책에서도 나타나게 되자 안타까움을 토로하기도 합니다. 지금까지 여성의 모습은 남자들의 시선에서 이루어졌기에 그렇게 보여지는 모습과 현실의 괴리는 매우 컸습니다. 페미미즘의 선두주자라고 할 수 있으며 이를 잘 표현한 책이 이 책이라고 합니다. 여성, 남성을 나누어 생각하지 말고 인격체로 동등한 입장에서 존중하며 살아가는게 세상을 좀 더 아름답고 평화롭게 하는 가장 기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성차별이 없는 세상을 꿈꾸지만 여전히 남아있기에 망각에서 벗어나 무엇이 옳은 길인지를 깨닫기 위해서 오늘도 내일도 책을 읽으며 반성하고 또 반성해 봅니다. 이 책은 #이다북스 출판사에서 제공해 주셨습니다. 좋은 책 선물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이번 시간에는 여기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다음 시간에도 좋은 책으로 찾아 뵙겠습니다. 오늘도 좋은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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