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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진실이란 말이 있다. 거짓이 판을 치는 더러운 세상에서나 있을 법한 이야기 같지만, 우리 일상에서 아주 흔하게 찾아볼 수 있는 엿같은 상황을 단박에 정리해서 말해주는 유용한 표현법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거짓이 판치는 경우가 더 많다는 얘긴데, 정치가 그렇고, 종교가 그렇고, 결정적으로 언론이 그렇다. 물론 우리는 참다운 정치, 종교, 그리고 언론에 대해서 대단히 존중하고 있다는 점이 기본임을 밝히는 바다. 자기 자신이 아닌 남을 위해 희생할 줄 아는 정치인과 종교인에 대해서 우리는 아낌없는 찬사와 존경을 표하고 있으며, 진실을 밝혀줄 참언론의 필요성은 두말하면 입 아플 정도다. 그러나 그런 존경받아 마땅한 이들이 참 드물다는 점이 매우 아쉬울 뿐이다. 가물에 콩 나듯 말이다. 어쨌든 '진실'이 불편했던 한 사건을 우리는 유심히 지켜봐야만 한다.
프랑스대혁명에서 보여준 '자유 평등 박애' 정신은 구시대를 타파하고 새로운 세상을 펼쳐낸 대명사로 쓰임과 동시에 '프랑스의 지성'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자랑할 만큼 대단한 영향력을 지녔다고 믿는...암튼, 프랑스인들의 자부심의 밑천이다. 하지만 그 이후 프랑스는 혼란기를 맞이하고 국력이 쇠퇴하며 라이벌인 영국에게 뒤쳐지기 일쑤고, 특히, 비교되는 것만으로도 자존심을 상할 정도로 한 수 아래로 내리보던 독일과는 전쟁만 했다하면 져버리는 수모를 당하고 있었다. 1870년대 '보불전쟁'에서 패배한 프랑스는 더욱 그러했다.
이렇게 열등한(?) 프랑스에게 아주 좋은 핑곗거리가 생겼다. '드레퓌스 사건의 발단'이기도 하다. 1894년 어느 날, 드레퓌스는 군사재판에 회부된다. 프랑스 육군 포병 대위인 그는 적국인 독일에 '군사기밀'을 빼돌렸다는 혐의를 받았고, 기밀문서에 담긴 그의 '필체'가 비슷하다는 것이 유일한 단서였다. 그리고 반역죄를 선고받고 유죄 판결이 났으며, 종신형에 처해졌다. 군인신분을 박탈 당한 것은 물론이다. 드레퓌스는 글씨체가 다르다며 자신의 무죄를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고, 재판관은 드레퓌스가 고의로 글씨체를 바꿔 썼다며 주장을 묵살했다. 이렇게 군사법부는 끝내 그를 죄인으로 만들었고, '악마의 섬'으로 유배를 당해 죽을 때까지 갇혀 지내야할 운명이었다.
그렇다면 드레퓌스는 유죄인가? 결론만 말하면 '아니다'. 그는 결백했고, 나중에 밝혀진 사실이지만 '진범'은 따로 있었다. 프랑스 참모본부 소속의 조르주 피카르 중령이 다른 간첩 사건을 조사하던 중, 우연한 기회에 드레퓌스가 날조된 증거로 범인으로 몰렸고, 에스테라지 소령이 '군사기밀문서'를 독일대사관에 넘겼다는 증거를 찾았으며, 문서의 필체가 에스테라지의 글씨체와 '정확히' 일치한다는 사실까지 밝혀냈다. 하지만 프랑스 군 당국은 재판결과가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감추기에 급급했다. 자신들의 잘못이 알려지면 '프랑스의 위상'이 흔들릴 것이라 여겼는지, '반대의 목소리'에 힘을 실어주기 싫었는지...암튼, 사건의 진상을 파악한 피카르 중령을 외국으로 좌천시키면서까지 '진실'을 밝히려 하지 않았다.
도대체 왜 그랬을까? 불편한 진실이었더라도 그때 밝혔더라면 사태는 커지지 않았을 것이고, 개인의 희생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프랑스는 드레퓌스를 '희생양'으로 삼는 쪽을 선택했다. 어쩌면 드레퓌스가 '유대인'이었고, 심지어 '독일계'였다는 사실이 중요했던 모양이다. 자신들의 무능을 감출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반유대주의'와 '반독일주의'로 감추고 대중의 비난과 시선을 '다른 곳'으로 쏠리게 만드는 것이라고 철떡같이 믿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진실'이 불편한 까닭은 언젠가는 반드시 밝혀지기 때문이다. 아무리 감추려해도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일마냥 부질 없는 짓이다.
피카르 중령이 파리로 되돌아오자 감췄던 진실이 다시 드러나기 시작했다. 드레퓌스의 무죄를 주장하는 재판이 다시 벌어졌고, 에스테라지를 진범으로 고소했다. 하지만 군사법원은 에스테라지를 무죄로 방면했다. 심지어 에스테라지는 진실과는 다른 얼토당토 않은 증언들을 쏟아내는데도 군부와 재판관은 눈을 감았는지 하나도 인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진범이 무죄로 풀려나자 고소를 한 당사자들이 군사기밀을 누출했다는 이유로 체포하는 등 '프랑스 당국'은 자신들의 잘못은 은폐하고 권위만 드높이기로 결심했다.
이제 사건의 진상은 시민들에게 알려지게 되었고, 여론은 두 갈래로 갈리어 갈등을 촉발시키고 심화시켰다. 우선, 재판 결과에 분노한 에밀 졸라는 <나는 고발한다>를 신문에 기고하면서 '드레퓌스 사건의 진실'을 세상에 알렸다. 글의 내용은 아무런 죄가 없는 한 젊은 장교를 구명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프랑스를 뒤흔드는 정치적 쟁점이 핵심이었고, 전세계를 강타한 이슈가 되었다. 진실을 밝히는 것이 당연한데도 '진실'을 두려워하는 프랑스 당국을 고발하는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에밀 졸라는 수많은 지지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군사법원을 중상모략했다는 이유로 징역1년을 선고 받았고, 생명의 위협을 받아 영국으로 망명 했다 1년 뒤에 귀국하는 헤프닝이 연출되었다.
갈등의 상황은 더욱 심각해졌다. 반대파인 애국보수진영은 파리 시내 한복판에서 "졸라와 유대인을 죽여라"라고 외치며 시위를 펼쳤고, 프랑스 군부는 "진실을 밝히라는 것은 군사기밀을 밝히라는 것이라며, 그로 인해 독일과 전쟁이 벌어져도 괜찮은가"라면서 으름장을 놓기 일쑤였다. 그럼에도 졸라와 진보진영은 프랑스 군부와 정부에 대한 비판을 멈추지 않았고, 전 세계 여론도 드레퓌스의 무죄를 주장하는 쪽에 동조하였다. 이에 프랑스 정부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고, 드레퓌스 사건을 애써 없던 일로 감추려고만 했다. 그럴수록 진보진영은 시위를 멈추지 않았고, 심지어 테러와 폭동까지 동원하는 일이 빈번했다. 국제사회는 '프랑스 사태'에 관심을 높였고, 이로 인해 프랑스는 외교적 부담감을 떨칠 수가 없게 되었다.
일파만파로 커지던 '드레퓌스 사건'은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치며, 관련자들이 자살을 하는 등의 우여곡절 끝에 '재심'에 들어갔고, 사건 5년만에 드레퓌스는 유배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무죄로 풀려난 것이 아니었으며 종신형이 '10년형'으로 줄어들었다. 대통령 특별사면으로 풀려났던 것이다. 다시 7년이 지나서야 프랑스 대법원은 드레퓌스에게 무죄를 선고했고, 모든 혐의에서 사면되어 육군에 복직해서 1차 세계대전 내내 복무하다 육군 중령으로 전역하는 것으로 마무리 되었다.
100년도 더 지난 '드레퓌스 사건'에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그것은 당연히 밝혀져야 할 진실이 '외면'받는 비극이 오늘날에도 여전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드레퓌스 사건'을 통해서 진실을 외면하는 순간, 죄 없는 사람이 죄인이 되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진실을 감추려는 이들의 후안무치하고 뻔뻔한 짓거리도 아울려 잊지 말아야 한다. 이들이 '권력'을 갖고 있을 때, 얼마나 커다란 비극을 불러오는 지도 명심해야 한다.
우리도 '드레퓌스 사건' 못지 않은 부끄러운 짓을 하고도 당당한 권력자들이 있었음을 명심해야 한다. 나라를 팔아먹고도 위풍당당한 '매국노'와 '친일파'들이 그들이었으며, 해방이 된 뒤에 재빨리 '반공주의자'로 거듭나서 '독재정권'을 든든히 뒷받침했던 그들도 기억해야 하며, 한때 진보진영을 선도했던 이들이 '권력의 맛'을 본 뒤에 '과거 정권의 무능'을 그대로 답습했던 답답한 그들도 절대 잊어선 안 된다. 우리 국민들도 마찬가지다. 자칭 '애국보수'라는 분들이 아무런 비판도 하지 않고 '무능한 정권'을 무조건 지지하는 어처구니 없는 작태를 보여주었기에 '그들'이 후안무치하고도 여태 살아남았던 것이다. '진보진영'이라는 분들도 전혀 진보진영답지 않게 '그때그때마다 달라요~'를 신념으로 삼아 줏대없는 행보를 보여주었기에 스스로 무너진 결과를 보여주었다.
진실은 언제고 밝혀지지만 '타이밍'이 중요한 법이다. 무능한 정권이 들어서고 난 다음에 진실이 밝혀진들 그로 인해 온갖 피해와 손해를 보는 것은 결국 국민들이기 때문이다. 또한, 진실은 그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다. 그러나 한 번 감춰진 진실을 다시 밝히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거짓말은 쉽게 믿고 빨리 퍼지는데 반해서 참말은 잘 믿어지지 않고 더디게 밝혀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모두 '교양 넘치는 똑똑한 시민'으로 거듭나야 한다. 거짓에 속아넘어가지 않고 참말을 단박에 알아채고 참말을 굳게 믿을 수 있는 힘을 가진 교양시민 말이다. 쉬운 일은 아니다. 늘 진실을 밝히는 이는 '권력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한사람 한사람에게는 아무런 힘이 없는 '시민'일 뿐이다. 힘 있는 권력자가 진실을 밝히는데 앞장 섰으면 좋으련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하지만 '교양시민'은 하나가 아니다. 에밀 졸라와 같이 진실을 용감하게 밝히는 이가 있다면, 교양시민은 진실에 공감하며 지지를 표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여럿이 모여 진실을 함께 밝히면 언제나 진실이 승리하곤 했다. 교양시민의 무기는 바로 '연대의 힘'이고, 하나로 뭉치게 만드는 원동력은 바로 '진실'이었다. 이 '진실의 힘' 앞에서 거짓은 힘을 쓰지 못하게 된다. 우리는 이미 '촛불'로 그 힘을 증명해 본 적이 있다. 아마도 졸라가 '촛불'을 보았다면 망명 따윈 생각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대선정국이 혼란으로 치닫는 것을 보았다면 개탄해 마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난 믿는다. 함께 '촛불'을 들었던 그 진정성은 잃지 않았을 거라고 말이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쓴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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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를 새롭게 들여다보는 명저를 선정해 출간되는 '이다의 이유' 시리즈 두 번째 작품이다. <버지니아 울프의 방>에 이어 <에밀 졸라의 진실>을 만나 보았다. 이 책은 에밀 졸라가 드레퓌스 사건과 관련하여 쓴 글들을 묶은 <멈추지 않은 진실>을 우리말로 옮긴 것으로 국내에는 <나는 고발한다>라는 제목으로 작년에 최초로 번역 소개되기도 했다.
프랑스의 젊은 유대인 장교가 군사기밀을 적국에 넘겼다는 이유로 종신형을 선고 받고, 프랑스령 악마의 섬에 유배되었다. 드레퓌스는 자신의 무죄를 외쳤지만, 사실 재판이 시작되기도 전에 결과는 이미 정해진 거였다. 그가 정말 적국에 기밀문서를 보냈느냐 보다 그가 유대인이며 독일계였다는 사실이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2년 뒤 진범이 밝혀 졌지만, 새로운 증거는 모두 묵살된 채 오히려 혐의자가 석방되었고, 프랑스 군 당국은 사실이 알려졌을 때의 파문이 두려워 오히려 입을 막고 진상을 덮기에 바빴다. 이 사건을 지켜 본 에밀 졸라는 진실은 반드시 밝혀져야 한다며 펜을 들었다.
사실 드레퓌스 사건이 세상에 알려졌을 때, 에밀 졸라는 굳이 세상에 나서지 않아도 되었다. 언젠가 진실을 말할 사람이 있을 테고, 나서서 자기 이름에 흠을 낼 이유가 없었으니 말이다. 당시 에밀 졸라는 <목로주점>, <나나>, <제르미날>을 비롯한 작품으로 작가로서 거의 모든 것을 이룬 상황이었다. 그런데 왜 에밀 졸라는 자신의 명성을 내려놓고, 멈추지 않는 진실의 길을 선택한 것일까. 그는 '행동하는 지성'이 세상에 설 때 사회정의를 실현할 수 있으며 정의 역시 자리매김한다고 믿었으며, 그러한 신념을 행동으로 고스란히 보여준 것이다. 에밀 졸라를 비롯해 진실과 정의의 편에 선 이들의 노력으로 결국 드레퓌스는 12년 만에 누명을 벗을 수 있었다. 프랑스 최고재판소가 '드레퓌스에게 유죄를 선고한 것은 오류였다'는 판결을 내리게 된 것이다.
그러한 모든 과정이 이 책 속에 수록되어 있다. 기존에 <나는 고발한다>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을 때 수록된 글이 11편이었는데, 이 책에는 거기서 제외되었던 두 편의 글들을 포함해 13편이 수록되어 있다. 드레퓌스 사건의 진상과 에밀 졸라의 주장, 공권력에 의한 인권유린의 모든 진실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에밀 졸라는 이 사건에 대한 첫 번째 글에서 이런 말을 했다. '이 얼마나 비통한 드라마이며, 이 얼마나 기막힌 등장인물들이 아닌가! 우리 앞에 펼쳐진 이토록 비극적인 이야기 앞에서 한 사람의 소설가로서 나는 주체할 수 없는 흥분과 감탄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나는 이보다 더한 심리적인 사건을 경험한 적이 없다'고 말이다. 드레퓌스 사건 행동하는 지성으로서뿐만 아니라 전업 소설가로서도 흥분하고 끌릴만한 극적인 사건이었던 것이다. 물론 그를 행동하게 했던 결정적인 것은 연민과 신념, 진실과 정의를 향한 열정에서 비롯되었던 것이지만 말이다. 드레퓌스 사건은 지나간 일이 아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진실과 정의의 발걸음이다. 그래서 우리는 에밀 졸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것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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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의 명저를 주목하는 '이다의 이유' 두 번째 인물로 에밀 졸라 이야기다. 1894년, 억울하게 옥살이를 한 '드레퓌스 사건'의 진실을 덮기에 급급한 기득권 세력을 날선 비판을 담은 1901년 작 <멈추지 않는 진실>을 옮겼다. 그리고 들어가는 글, 에서 에밀 졸라의 기고문 <나는 고발한다!>를 요약정리한 내용만으로도 숨이 가빠진다.
그러고 보면 나는 고전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 자랑하듯 읽는 다독은 활자를 그저 스치듯 넘기는데 급급한지라 어렵고 두꺼운 책은 피한다. 하여 세기를 넘나드는 거장들의 책은 모른 채 이름만 기억하는데 에밀 졸라 역시 그렇다. 이 책은 내가 읽게 된 그의 첫 책이다.
진실과 관계없는 조작된 사실이 어떻게 덮이는지, 이 과정에 진실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되고 특정된 사람은 어떻게 마녀사냥감이 되는지 알게 된다. 그들을 맹신하는 사람들은 진실에 귀 닫고 눈 감고 입을 막는다. 어느 순간 진실이 무엇인지 깨닫더라도 말이다. 1898년에 프랑스에서 벌이진 일이 2022년, 여전히 그것도 자주 목도되는 일이라서 놀랍지도 않다.
"진실과 정의는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없이 존엄하다. 진실과 정의만이 국가의 위대함을 보장해 주기 때문이다. 정치적 이해관계가 한순간에 정의와 진실을 가릴 수 있지만, 진실과 정의를 유일한 존재 가치로 삼지 않는 민족이야말로 오늘날 가장 저주받은 민족이 될 것이다."
그런데 한편, 이런 생각도 들었다. 에밀 졸라의 진실을 향한 외침이 시위와 투쟁의 현장이 되는 동안 시민은 '드레퓌스를 죽여라!' 라며 갈라치기 되고 정작 현실에서 멀리 수감된 드레퓌스의 목숨이 위태로워졌다. 그의 기분은 어땠을까. 진실이 밝혀지리라 고대했을까? 아니면 침묵하길 바랐을까? 당사자 없는 진실은 과연 진정한 진실일까, 만약 그때 드레퓌스가 에밀 졸라의 행동하는 지성을 향한 양심의 소리가 야기한 일련의 소요로 목숨을 잃었더라도 진실은 유효한가?
"역사와 내일의 정의 앞에서 내 행동을 정리한 기록이다." 25쪽
이 책은 1897년부터 1900년까지 <르 피가로>나 팸플릿 등에 실린 기고문을 엮은 것으로 드레퓌스 사건 3년의 기록과 영국 망명 11개월의 기록이 다른 의미로 왜곡되지 않고 자신의 기록으로서 오롯이 남길 바라는 다짐이 담겼다. 사실 히틀러가 벌인 2차 세계대전보다 45년이나 먼저 유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이렇게 반역자로 몰려야 했던 이 사건이 놀랍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도 독일이 아닌 프랑스에서.
에밀 졸라는 그들은 내게 더도 덜도 아닌 인간일 뿐이다, 라며 인종이나 종교적 신념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으로서 마땅히 지켜져야 할 인권을 강조하며, 침묵하지 않고 펜을 들었고 "우리는 돈 냄새에 발정이라도 난 것처럼 저열한 언론을 보았다." 라며 언론 조작을 향한 그의 표현은 강렬한 청량감이 넘친다. 그런 저열한 언론을 우리는 매일 마주하고 있어 그냥 넘길 수 없는 분개함이 있다.
에밀 졸라는 작가로서의 명성보다는 행동하는 지성으로서 멈추지 않는 진실의 길을 선택했다. 공권력 남용의 인권유린, 언론의 진실 조작으로 진실이 어떻게 묵살되는가를 목도한 그는 행동하는 지성이 올바른 목소리를 낼 때 사회정의는 실현되고 정의 역시 올바르게 설 수 있다고 믿었다. 그는 드레퓌스 사건을 통해 그러한 신념을 행동으로 고스란히 보여준다.
이들의 노력으로 결국, 프랑스 최고 재판소가 판결의 오류를 시인하면서 드레퓌스는 12년 만에 누명을 벗을 수 있었다. 이 책은 에밀 졸라의 13편의 기고문이 수록되어 있다. 이 극적인 사건을 통해 그의 사람에 대한 연민과 정의에 대한 신념, 진실을 향한 열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드레퓌스 사건은 현재 진행형이며, 우리가 매일 목도하는 일이라는 점에서 반드시 기억해야 할 진실과 정의다. 그리고 진실 앞에 눈 감지 않는 행동하는 지성은 여전히 필요하다는 점에서 에밀 졸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완독 후 솔직하게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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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에밀졸라의 진실 (이다북스) - 에밀졸라 지음, 이진희 옮김
얼마 전 유시민 작가님의 거꾸로 읽는 세계사를 재독하였다. 재독 후 내게 적지 않은 충격을 준 드레퓌스 사건에 대한 여운이 많이 남아있던 상태다.
그러던 중 에밀졸라의 진실이라는 책이 신간으로 나왔다는걸 알게 되었다. 거꾸로 읽는 세계사를 읽지 않았다면 에밀졸라가 누구인지 몰랐을테지만 전혀 일면식 없는 사람을 위해 진실을 밝히려 애쓰고 노력했던 인물로써 내게 여러가지 감정을 느끼게 했던 인물이기에 이 책을 꼭 읽어보고 싶었다.
진실은 결코 멈추지 않는다.
에밀 졸라는 프랑스 자연주의 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이자 저널리스트이다. 1894년 드레퓌스 사건이 일어나자 드레퓌스의 무죄를 주장하며 진실을 밝히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대통령에게 공개 서한을 보내는 등 드레퓌스 구명을 위해 힘쓰는 중 1902년 파리에서 가스중독으로 사망했다고 알려져있다.
짧게 드레퓌스 사건에 대해 소개하자면 국가의 내부정보가 담긴 문서를 적국에 빼돌렸다는 혐의로 유대인인 드레퓌스는 억울하게 반역자가 되었고, 체포되어 종신형을 선고 받은 후 외딴섬에 유배되었다. 이렇게 들으면 평범한 사건일 수 있지만 이 사건이 인권유린이자 간첩 조작 사건으로 남게 된 이유가 있다. 일단 그가 문서를 썼다는 명확한 증거와 동기가 없었으며 억울하게 반역자가 된 이후 이 사건의 진범이 밝혀졌음에도 그는 빛을 보지 못했다. 그 이유는 이 사건의 진실이 드러남으로써 조직의 신뢰가 떨어질 것을 우려한 이들이 다시 사건을 은폐했고, 증거조작까지 일삼으며 진범을 풀어주었기 때문이다. 국가의 위신을 염려한 권력자들은 끝내 이를 눈감아 주었다. 이로써 국가권력은 아무 죄도 없는 한 사람을 범죄자로 만들었고, 국가의 권위와 명예라는 이름으로 이미 드러난 진실마저 덮어버렸다.
이런 사건에 대항해 진실을 밝히기 위한 에밀졸라는 이를 고발하는 글을 신문에 실으며 세상에 알렸다. 정의와 진실을 바로 세우고 밝히기 위해, 이로써 올바른 사회를 실현하기 위해, 그것을 위해 고통스럽지만 앞장서기 위해 펜을 든 것이다.
감명깊게 읽었던 내용 중 일부분을 소개하려고 한다.
이 책은 드레퓌스 사건 자페의 기록이기 전에 결코 멈추지 않는 진실과 정의의 발걸음이다. 그리고 그 발걸음은 여전히 우리 시대를 되돌아보게 하며, 우리의 양심과 함께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도 진실을 향한 에밀 졸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들어가는 글)
그러나 오늘부터 나는 프랑스 전체에 적어도 한 가지 진실을 외치려 한다. 저들은 정의롭고 관대한 나라 프랑스가 진짜 범죄를 저지르게 하고 있다. 이제 프랑스는 더 이상 우리가 알던 나라가 아니다. 한 나라를 이렇게 기만하다니. 3년 전부터 혹독한 여건 속에서 자신이 저지르지도 않은 죄의 대가를 치르는 한 불행한 사람과 맞서서 나라 전체가 광분하다니! 그렇다. 저기 뜨거운 태양아래, 멀고 먼 외딴섬에 인간세계로부터 격리된 한 남자가 있다. 망망대해가 그를 고립시킬 뿐만 아니라 간수 열한 명이 살아있는 장벽처럼 밤낮없이 그를 가두고 있다 단 한 사람을 감시하기 위해 열한 명을 동원한 것이다 어떤 살인자나 미치광이도 이렇게까지 철저하게 가둔 적은 없다. 영원한 침묵 속에서, 온 국민의 저주를 받으며 천천히 죽음의 순간만을 기다리게 하다니! 이런 상황에 누가 이 남자는 죄인이 아니라고 감히 나서서 말할 수 있겠는가. (p.51)
청년이여, 청년들이여! 간절히 바라느니, 그대들을 기다리는 위대한 사명을 잊지 말라! 그대들은 미래의 일꾼이다. 그대들이 이제 저물어가는 세기가 남겨 놓은 진실과 정의라는 문제를 해결할 다음 세기, 그 시대의 토대를 다질 것이라 마음속 깊이 믿는다. (...) 그대들이 우리의 뒤를 이어 우리의 꿈을 실현해줄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을 때, 그대들에게 이 자리를 기꺼이 물려주고, 우리 나름으로 완수한 과업에서 행복한 마음으로 물러나 죽음이라는 편안한 영면에 들 수 있으리라. (p.82-83)
사태가 어디까지 진행되었는지 보라, 이제 막 새로운 걸음을 내디뎠다. 에스테라지 소령이 군사법원에 소환되었다. 처음부터 내가 말한 대로 진실은 전진하고 있다. 그 무엇도 진실을 막을 수 없다. 이를 막으려는 사악한 무리의 방해에 지지 않고, 진실은 어김없이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갈 것이다. 진실은 그 자체로 모든 장애물을 이겨내는 힘을 갖고 있다. 누군가 진실의 길을 가로막을 수도 있다. 얼마 동안은 진실을 땅속에 묻어두는 데 성공할 수도 있다. 그러나 땅속에서도 진실은 한데 모이고, 엄청난 폭발력을 응축해, 어느 날 모든것을 땅 위로 솟아오르게 한다. 앞으로 몇 달 더 거짓 뒤에, 아니면 비공개 재판으로 진실을 가두어보라. 훗날 최악의 재앙을 스스로 준비했다는 사실을 깨달을지어다. (p.92)
우리는 오직 드레퓌스만 생각했습니다. 드레퓌스 사건은 금방 확대되어 사회적 사건, 온 인류의 사건이 되었습니다. 죄 없는 사람이 악마의 섬에서 고통받는 일은 그대로 재난과도 같은 사고였습니다. 진실과 정의를 파렴치하게 멸시하는 사악한 권력자들에게 짓밟혀 온 민족이 그와 함께 고통스러워했습니다. 그를 구하는 것은 곧 압제에 신음하는 모든 사람, 희생된 모든 이들을 구하는 것입니다. (...) 우리는 드레퓌스가 모든 법적 수단을 강구해 렌의 판결을 다시금 검토하게 하기를 바랍니다. 물론 그는 분명히 그렇게 할 것이며, 우리에게 기회만 주어진다면 온 힘을 다해 그를 도울 것입니다. (p.284)
대통령님, 들을 때마다 저를 분노하게 하는 말이 하나 있습니다. 드레퓌스 사건이 프랑스에 너무 큰 해를 입혔다는 진부한 표현이 바로 그것입니다. 모두 입으로 그렇게 말했고, 모두 글로 그렇게 썼고, 심지어 제 친구들도 제게 그렇게 말하곤 했습니다. 어쩌면 저조차 그런 말을 했을지고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이보다 더 잘못된 표현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 드레퓌스 사건이 프랑스에 남긴 막대한 유산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됩니다. 이 사건은 속으로 곪아 터진 종양을 피부 밖으로 드러나 보이게 한 부스럼처럼 프랑스 내부의 부패를 드러낸 사건이지 않습니까? (p.286)
이렇게 진실을 위해 펜을 들었던 에밀졸라와 그 외 정의의 편에 선 지식인들의 노력으로 드레퓌스는 12년만에 무죄판결을 선고받았다. 드레퓌스 사건 자체는 이미 지나간 과거에 남아있지만 이 사건은 끝난게 아님을 기억해야한다. 현재 곳곳에서도 진실을 외면하는 일들은 끊임 없이 벌어지고 그로 인해 피해입는 피해자들 또한 많을 것 이다.
지금의 나라면, 모두가 귀를 닫고 눈을 감을 때 당당히 진실의 목소리를 낼 수 있을까? 하다못해 누군가가 외롭게 진실을 외친다면 나는 거기에 귀 기울일 사람일까? 혹시 내 일이 아니라고, 대다수의 사람들처럼 외면하지는 않을까? 진실을 위해 행동하는 지식인, 아직은 두렵지만 언젠가는 나도 이러한 사람이 되길 희망한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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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 졸라의 진실>을 읽으려고 했던 이유는 단순했다. 세계사의 한 부분을 차지하는 인권 유린 사건의 당사자 드레퓌스를 에밀 졸라가 어떻게 변호했는지 알고 싶었고 <나는 고발한다!> 전문을 비록 번역문이라 하더라도 직접 읽어보고 싶었다. 에밀 졸라가 진실을 밝히는 과정을 함께하고 싶었다. 미리 말하지만 에밀 졸라와 함께 하고자 했던 욕심은 이 책을 읽는 내내 고통으로 변해갔다.
이 책을 읽는 행위가 고통이었던 이유는 두 가지였다. 이 책은 작가의 일상을 담은 에세이도 아니고, 기승전결이 있는 이야기를 담은 것도 아니다. 이미 결말을 알고 있는 사건의 진행 상황을 따라가는 것은 꽤 지루한 일이었다. 나도 누군가처럼(*) 용감하게 고백하자면, 이 책은 읽기 힘들었다. 알량한 지적 욕심 때문에 서평단 신청을 했었고, 책을 받아들고서 당당하게 책장을 넘겼지만 책의 중반쯤 다다랐을 때 꾸벅꾸벅 졸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이 책을 읽는 것이 고통이었던 두 번째 이유는 너무나 몰입했기 때문이다. 읽기 힘든 책을 어떻게 몰입할 수가 있느냐고 묻는 이가 있다면 기꺼이 대답해 줄 수 있다. 꾸벅꾸벅 졸던 나는 책을 소리 내어 읽기 시작했다. 에밀 졸라가 써 내려간 글자들이 내 목을 타고 소리가 되어 내뱉어지자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그가 느꼈던 고통, 짜증, 분노들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눈으로 따라 읽기만 할 때는 미처 느끼지 못했던 감정들이 쏟아지듯이 느껴져 졸음이 싹 가셔버렸다. 책을 소리 내 읽으면서 몰입한 나머지 어느새 울먹거리고 있었다. 한가로운 주말 오후 곁에 있던 아이는 놀라서 내게 물었다. 울어요? 아니, 우는 거 아냐, 그냥 울컥해서 그래.
(*)찹쌀님의 서평 공감이 주는 쓰라림 <무심한 듯 씩씩하게>에서 '책을 읽기 힘들다'고 고백할 수 있는 용기를 배웠다.
에밀 졸라와 함께할 여정을 위해 드레퓌스 사건을 간단히 설명하자면, 1894년, 프랑스인이면서 유대인이자 독일계 드레퓌스 대위는 독일의 스파이라는 혐의를 받아 반역죄로 종신형에 처해진다. 1896년, 정보국장 피카르는 스파이는 드레퓌스가 아니라 에스테라지 중령이라는 것을 알아낸다. 1897년, 에스테라지를 진범으로 고소했으나 군부는 잘못을 은폐하고 피카르를 군사기밀 누출 혐의로 체포한다. 1898년, 에스테라지의 무죄 선고에 분노한 에밀 졸라는 <나는, 고발한다!>를 통해 드레퓌스 사건을 세상에 알린다.
<나는, 고발한다!>는 에밀 졸라 개인이 대통령 펠릭스에게 보태는 서신의 형태로 되어있다. 그 글에서 드레퓌스 사건의 증거를 날조한 군사 관계자들 그리고 필적 감정사를 실명으로 언급한다. 에밀 졸라는 군사 법원을 중상모략했다는 이유로 징역 1년을 선고받았고, 필적 감정사들에게 손해배상을 해줘야 한다는 판결로 그의 집은 경매에 부쳐졌다. 에밀 졸라는 자신이 피고가 된 재판을 항소하는 중에 영국으로 망명했다가 1년 후에야 귀국을 하는 데, 귀국 후 쓴 글에서 그의 억울함이 절절히 묻어 나와 소리 내어 글을 읽던 나를 울게 만들었다.
그가 영국으로 망명한 것은 감옥에 가지 않기 위해 도망한 것이 아니며 진범을 확실하게 지목하는 증거를 찾는 동안 시간을 벌기 위함이었음을 말한다. 그럼에도 반유대주의자들과 애국주의로 광분한 이들은 에밀 졸라가 유대인들에게 돈을 받아 흥청망청 쓰기 위해 도피 했다 주장하고, 그를 만나 인터뷰를 했다는 신문기자들까지 등장한다. 에밀 졸라는 영국에 있는 동안 단 한 명의 기자도 만난 적 없고, 재판을 위해 침묵을 지키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이러한 진흙탕과 같은 상황에서 1898년 8월 31일 드레퓌스 사건의 증거를 조작한 앙리 소령이 자살한다. 이 사건을 계기로 1899년 고등법원은 드레퓌스 사건의 재심을 결정한다. 재심의 결과는 드레퓌스의 유죄였다. 유죄가 선고되고 이틀 후 에밀 졸라는 신문에 글을 기고한다. 드레퓌스의 두 번째 유죄선고로 분노가 아니라 도리어 공포를 느끼지만 진실을 위해 끝까지 싸우겠다는 결의를 밝힌다.
진실을 위해 싸우고자 했던 에밀 졸라에게 현실은 가혹했다. 드레퓌스의 두 번째 유죄 선고 후 10일 만에 대통령이 그를 복권 없이 사면한 것이다. 드레퓌스는 유배지에서 벗어나 가족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었지만 그는 여전히 파렴치한 반역자로 남아있어야 했다.
에밀 졸라는 드레퓌스 부인에게 남편의 귀환을 축하하는 따뜻한 인사의 글을 보내면서 그의 무죄 선고를 위해 끝까지 싸울 것임을 알린다. 드레퓌스가 사면되었음에도 그의 무죄를 위해 투쟁하는 이들에게 여론은 싸늘하다. 드레퓌스 사건은 덮어야 할 그들의 상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에밀 졸라에게 드레퓌스 사건은 프랑스의 상처를 치료할 수 있는 기회였다. 드레퓌스에게 무죄가 선고되고 그의 인권을 짓밟은 군 관계자들을 처벌함으로 종기를 깨끗이 도려낼 때 프랑스가 진정한 민주국가가 될 수 있음을 그는 주장한다.
진실을 밝히기 위한 에밀 졸라의 여정은 여전히 험난하다. 에밀 졸라가 항소하던 재판에서 에밀 졸라와 그가 고발한 군 관계자들까지 한꺼번에 사면한다는 사면법이 통과됨으로 정부는 상처를 덮어버리고자 한다. 진실을 밝히기 위해 함께 투쟁해왔던 상원 의원들 중 몇몇도 사면법에 찬성한 것을 알게 된 에밀 졸라는 절대적 정의가 정당의 이익 앞에 사라지는 것을 한탄했다. 이 책의 마지막 글인 대통령 루베 씨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에밀 졸라는 그에게 엄중히 경고한다.
"대통령님, 당신의 정부는 사면법으로 평화를 실현하리라 주장했지만, 우리는 당신의 정부가 사면법으로 새로운 재앙을 불러오리라고 생각합니다. 조금만 기다리면 누가 맞는지 알 수 있겠지요. 거듭 강조하지만, 프랑스가 불의를 깨닫고 이를 바로잡지 않는 한 사건은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
이 편지가 1900년 12월 22일 자 로로르지에 실리고, 에밀 졸라는 1902년 3월 29일 파리에서 가스 중독으로 사망한다. 에밀 졸라가 그토록 원했던 드레퓌스의 무죄는 1906년 대법원에서 선고되었다. 에밀 졸라가 영웅이라 칭송하던 드레퓌스는 그의 기대에 걸맞게 육군에 복직하여 제1차 세계대전 내내 장교로 복무하다가 중령으로 전역했다. 나라는 드레퓌스를 반역자라 손가락질하며 조작된 증거로 유배지에 내몰았지만 그는 끝까지 자신의 나라에 충성을 지켰다. 에밀 졸라가 그토록 원했던 진실은 비로소 완성되었다.
<에밀 졸라의 진실>은 1897년 12월부터 1900년까지 에밀 졸라가 드레퓌스 사건을 위해 신문에 기고하거나 팸플릿을 통해 발표한 14편의 글로 이루어져 있다. 에밀 졸라와 함께한 고통스런 여정에서 발견한 것은 진실의 끈질긴 생명력이다. 진실은 결코 사라질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감추고자 하는 세력들이 비열한 노력을 마다하지 않는 것이다.
드레퓌스 사건에서 부패한 프랑스 군부와 정부, 세력을 잃어가는 기독교에서 조장한 반유대주의 여론, '돈 냄새에 발정이라도 난 것처럼 저열한 언론' - 에밀 졸라의 표현을 그대로 가져왔다. - 이러한 세력들이 한 사람의 인권을 짓밟으며 진실을 감추려고 12년간이나 발버둥 쳤음에도 진실은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 비록, 에밀 졸라는 진실을 만나지 못한 채 사망했지만 그가 남긴 글을 통해 밝히고자 했던 '진실'은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YES24 리뷰어 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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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 졸라의 진실』
에밀 졸라(지음) | 이다북스(펴냄)
아! 얼마나 읽고 싶었던 책인지! 한 책의 운명은 저자보다 더 위대하다는 책의 부제처럼! 에밀 졸라는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된 문학가이자 사상가였다. 프랑스 자연주의 문학을 대표하는 에밀 졸라. 우리에게 드레퓌스 사건으로 알려진 에밀 졸라. 그의 삶은 길지 않았다. 책에는 에밀 졸라가 청년들에게 프랑스 대통령에게 배심원을 향해, 드레퓌스 부인을 향해 보낸 편지가 수록되어 있다.
책의 서두에 드레퓌스의 무죄를 주장하는 에밀 졸라의 선언문이 실려있다. 학창 시절 역사 시간에 지나가듯이 배운 드레퓌스 사건, 그 선언서의 전문을 보기는 처음이다. 작가는 이 부도덕한 현실을 고발하면서 지식인이 아니라 지성인으로서 글의 파급력은 엄청났다. 그는 군림하고 독점하는 지식인이기를 거부했다.
1870년 보불 전쟁에서 프랑스는 독일에 처참하게 패배하다. 1894년 프랑스 육군 정보부는 도대체 누가 프랑스의 내부정보를 파리의 독이ㅏㄹ대사관에 건네고 있는 정보를 입수했다. 수사를 진행하던 중 문서의 필체가 참모본부에서 근무하는 육군 포병 대위 알프레스 드레퓌스의 필체와 비슷하다는 이유로 드레퓌스는 범인으로 지목된다. 그는 우대인이고 독일계였다. 드레퓌스는 내내 자신의 무죄를 외쳤지만 재판의 결과는 이미 정해져있었다.
극단적 애국주의와 우대인에 대한 편견은 그를 간첩으로 몰기에 충분했다. 우리에게도 이런 역사가 있지 않은가? 이제서야 조금씩 밝혀지고 있는 군사정부 시절 무고한 목숨들이 희생당한 간첩 사건이 떠오른다. 아직도 밝혀지지 않았고 덮혀있는 사건들이...
에밀 졸라는 굳이 나서지 않아도 되는 사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올바른 지성인의 모습을 보여준다. 많은 진보 성향의 인사들이 진범인 에스테라지 소령을 지목했지만 법원은 그의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마침내 드레퓌스가 그 모든 누명을 벗기까지 12년이 걸렸다. 마침내 진실을 밝혀진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믿었던 사람의 행동으로 인해 이 사건은 하나의 재판 내용이 아니라 역사로 남았다.
우리에게도 에밀 졸라와같은 양심이 필요하다. 우리에게 그런 지성이 있는가? 우리는 지성인으로 살고자 하는가? 한낱 지식인으로 살고자 하는가?
공권력에 의한 인권 유린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역사는 되풀이될 것이다. 잊은 자에게는... 진실은 결코 멈추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 기억한다
yes 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도서를 지원받아 읽고 쓴 주관적인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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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유명 소설가로서의 입지에 선 에밀 졸라가 억울한 누명을 쓴 일명 '드레퓌스 사건'에 대해 지식인으로서의 양심을 걸고 이에 대한 사건과 관련하여 다룬 글을 모은 책이다.
프랑스의 유명 장교이자 유대인인 드레퓌스가 군사기밀을 적군에게 넘겼다는 이유로 종신형을 선고받는데서 출발한 이 사건은 실상 그가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세상에서 보는 관점과 법의 판결은 이미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가 유대인이자 독일인이란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미 그의 결백을 들어줄 의사는 없었다고 봐도 무방할 그 당시의 정치 사회적인 분위기는 불리한 상황으로 치닫는다.
결국 2년 뒤에 진범이 밝혀지지만 되려 혐의자는 석방되고 이런 진실을 덮기에 급급한 프랑스 당국의 모습을 보면서 에밀 졸라는 자신의 펜을 들게 된다.
일개 유대인 장교의 사건이 그저 하나의 사건처럼 여겨지고 한순간 흘러가도 됐을 일을 에밀 졸라는 '진실'이란 이름으로 자신의 생각한 바를 실천하는 모습이 지성인으로서의 양심과 잘못된 일에 대한 올바른 수정의 필요성을 보인 부분들이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에밀 졸라를 비롯한 당시 그를 지지하던 이들의 노력으로 무려 12년 만에 누명을 벗게 된 드레퓌스 사건, 이 사건에 대한 모든 과정이 수록된 이 책은 기존에 '나는 고발한다'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11편의 글과 이번에 2편의 글을 더 포함한 총 13편의 글이 수록되어 있다.
누구나 정의를 실천하고 양심의 올바른 소리를 내야 한다는 말엔 공감을 하지만 실제 행동으로 나선 에밀 졸라의 진실에 대한 쓴소리와 자신의 소신이 깃든 글들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많은 생각을 던진다.
이 사건은 그저 한 개인의 불운한 사건으로 넘기기엔 너무나 많은 희생을 요구했다.
권력기관의 권력 남용과 그로 인한 인권 유린, 여기에 언론들의 오보는 이를 믿은 대중들로 하여금 정말 그렇게 믿게끔 만들어 버렸고 이는 곧 간첩 사건으로 남게 된 안타까움이 들어있는 사건이었다.
타 작품에서도 종종 등장하는 드레퓌스 사건, 그 안에 드러난 한 인간의 결백을 믿어주고 이를 확인하기 위한 절차가 제대로 이루어졌다면 과연 이 사건이 여전히 회자되었을지에 대한 의문도 생긴다.
드레퓌스 사건을 통해 이 사건이 과거의 일만이 아닌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필요한 진실과 실천에 대한 의미, 그리고 정의에 대한 그 모든 것들에 대한 의미를 부여하기에 충분한 사례로 보아도 무방할 듯하다.
자신에게 쏟아진 비난에도 불구하고 소신을 굽히지 않았던 에밀 졸라의 용감한 행보는 그런 의미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진실은 언젠가는 밝혀진다는 진리를 다시 느껴보게 한 책이다.
-저들이 감히 그랬듯이 나 또한 감히 이렇게 하려 합니다. 진실, 나는 진실을 말할 것입니다. 재심이 정식으로 이루어지더라도 진실이 온전히 밝혀지지 않는다면 내가 진실을 말하기로 약속했기 때문입니다. 나의 의무는 말하는 것입니다. 나는 공모자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내가 침묵한다면, 자신이 저지르지도 않은 죄를 뒤집어쓰고 먼 곳으로 유배되어 세상에서 가장 잔혹한 고문으로 고통받는 결백한 자의 유령이 끝없이 나의 밤을 맴돌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이 진실을 외칠 것입니다. 정직한 시민으로서 내가 느끼는 모든 분노의 힘을 모아 있는 힘껏 소리칠 것입니다. 나는 명예로운 당신이 진실을 알지 못해 그런 것이라 믿습니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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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 졸라의 진실’ 프랑스 공화국. 1890년대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간 한 대령이 있습니다. 드레퓌스 사건이라 부르는 이 사건은 군대와 정부의 오류를 바로잡기 위한 한 작가의 싸움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잡지사에 올리가나 플랫폼에 올린 글들 중 중요한 부분의 내용을 모아 담았습니다. 사건진행에 따라 그가 취한 행동들이 고스란히 느껴지기에 읽으면서 그가 주장하는 국가와 군대의 모습이 무엇인지 알게 됩니다. 지금 우리시대에 이런 작가가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정의와 진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사람. 지금도 분명 있을거라 생각됩니다. 사건은 국가기밀을 적국 독일에 정보를 제공했다는 이유로 드레퓌스를 구속시키면서 시작됩니다. 어처구니없는 증거들이 고스란히 받아들여졌고 이를 토대로 유죄를 판결한 법원에 대해 에밀 졸라는 그들의 오판이 프랑스 공화국을 망치는 일이라 생각해 이 일에 뛰어듭니다. 모든 증거는 부족했으며 유일하게 증거로 보이는 문서는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증거를 객관적으로 바라봐야 할 사람들도 누군가의 지시에 필체가 맞다는 판단을 내립니다. 아무리봐도 증거로서 가치가 없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오판을 숨기려 또다른 증거를 만들었고 그 결과로 그에게 유죄를 판결합니다. 하지마 아이러니 한 것은 진짜 범인이 잡혔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뒤집는 것은 사법부로서 명예가 실추되기 때문에 그를 풀어주고 누명을 쓴 그를 감옥에 넣었다는 것입니다. 이 모든걸 알게된 에밀 졸라는 대통령이나 정부에 편지를 씁니다. 프랑스 공화국이 언제부터 이렇게 변했는가. 진정 자신의 조국이 원한 것이 이것이었는가에 대해 장문을 남겼고 이는 마지막 판결에서 무죄를 선고받게 만듭니다. 약 2년동안의 싸움은 지워지지 않는 역사로 남게 됩니다. 하지만 이러한 과오는 절대 바뀌지 않았습니다. 다만 이런 사건이 있었다는 것만 기록됩니다. 길지도 짧지도 않은 사건에서 남겨진건 자신에게 내려진 형벌이었습니다. 국가을 위해 한 가정의 남편을 위해 잘못된 것을 바로잡으려고 했던 그에게 남겨진건 명예훼손등을 빌리로 고발된 내용들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국회에 통과될지 모르는 사면법에 대해 간곡하게 그러나 명확하게 대통령에게 해당 법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보여주면서 이 진실 사건은 마무리 됩니다. 이후 그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40년동안 글을 쓴 작가가 누명을 쓴 한 남자를 구하기 위해 노력했던 것이 오히려 그를 비난한 사람들만 남긴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어떤 비난도 감수하고 진실을 위해 싸웠고 그리고 이겼습니다. 지금 우리 시대에 이러한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진실을 밝히고자 자신을 희생할 수 있는 사람. 아마도 쉽게 찾기는 어려울거라 생각됩니다. 진실속에 거짓을 밝히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이니까요. 인간은 거짓말을 하고 그 거짓을 감추기 위해 또다른 거짓을 만드는 존재니까요. 그래도 다행입니다. 누명을 벗고 가정의 품으로 돌아갔으니까요. 진실은 언젠간 반드시 밝혀진다. 이 책은 #이다북스 출판사에서 제공해 주셨습니다. 좋은 책 선물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도 좋은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그럼. 이번 시간에는 여기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다음 시간에도 좋은 책으로 찾아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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