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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을 읽는 순간 충성에도 다양한 종류가 있음을 순간 놀라게 될것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직장생활에서 상사에게 잘보이기위한 충성정도라고 생각하겠지만, 그것은 금물이다! 바로 충성에는 어느 집단이냐에 따라 그 정도와 깊이가 제각기 다르다는것이다. 이책은 그 집단별로 분류하여 충성의 보이지 않는 진실을 하나하나 파헤친다. 처음 원초적으로 집단이라는 개념부터 접근하여 충성의 본질을 뜯어본다. 여기서 인간이라면 본능적인 집단안에 따뜻한 소속감등에 원천으로 시작되는 여러부분을 다룬다. 그다음 가족, 사회면에서는 우리가 충성이 강요된 사회 안에서 찌들어진 모습등 여러 놀라운 부분에 충격을 준다. 그리고 우리가 생각하는 회사에서는 내부 고발자라는 이면의 존재를 부각시키며 불충의 의미를 모색한다. 그밖에도 이탈자의 또다른 탄생의 배경도 살펴보며, 충성을 강요당하게되어 생기는 분노와 불충으로 인한 해방등 여러 시각에서 충성의 의미를 분석한다. 이책을 통해 충성이라는 메세지가 여러 함축되어있음을 알수 있게 된다. 그리고 이 충성에대한 의미가 우리 인생에 있어 자기 결정적인 삶에 얼마나 큰 역할을 하는제 깨닫게 될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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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성이라는 함정 #서평 ??변화하는 시대 속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다보니 늘 가치에대해 반문해보아야만 하는 순간이 생긴다. 특히나 문학 작품에는 우리 선조들이 긍정적으로 여겼던 가치들이 함의된 것들이 많은데 그것이 여전히 유효한지는 항상 고민해봐야 하는 문제다. 이를테면 과거의 '해학'에는 소수자 혐오적인 내용들이 많다. 고통스러운 나의 삶을 웃음으로 넘기기 위해서 더 낮은 존재들의 삶을 자조하는 것이 해학의 민낯임을 봉산탈춤 같은 흥겨운 작품을 가르치면서도 느낀다. 이처럼 긍정적이라고 생각했던 많은 것들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반문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유교랜드에서 '충성'이란 절대가치에 해당했다. 나는 유교랜드의 모든 형이상학적이고 종국의 가치는 '의리'라는 단어로 모인다고 생각하는데, 부모에 대한 의리는 '효', 주군에 대한 의리는 '충' 등으로 결국 모양이 다를 뿐 같은 뿌리를 가진 것들이 아니었을까 싶다. 유교에서 '수신제가치국평천하'라는 말을 사용하는데, 결국 이는 나-가정-국가-천하로 집단의 크기를 키워가는 것이다. 이중 나를 제외한 모든 타인과의 관계, 집단의 유지에 '의리', 즉 '충성'의 여러 가지 모습들을 활용해온 것이다. 그런데 이 시대가 혼돈의 시대가 된 이유는 사실상 유교랜드에서 유교 가치의 전복이 일어나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형이상학적 가치들이 계층간의 수직적 위계로 강요당하는 것이 세계의 법도이고, 이를 모르거나 지키지 않는 사람을, 혹은 이보다 경제적인 가치를 더 따지는 사람을 '상놈', '속물'이라고 가스라이팅할 수 있었던 시대에서 바야흐로 당당한 속물들의 시대가 와버렸으니까. '충성'의 기수를 잡을 수 있는 사람이 계층적 소수가 아니게 되었으니까. 그래서 그 가치 전복의 모습들이 사회의 모든 부분에서 크고 작게, 혼란스럽게 나타난다. 그것은 일련의 혼란이기도 하고, 한 발짝 나아가기 위한 발전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결국 전근대의 소수를 위한 세상으로 회귀할 수는 없으니까.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더 나은 세상에 살기 위해서는 맹목적 충성의 기수를 기존의 소수가 새로운 소수에게 넘겨주는 세상이 아니라, 혹은 모든 충성을 부정하는 모두가 모두와 투쟁해야 하는 레지스탕스의 세상도 아니라, 궁극적으로 우리가 무엇을 위해서 무엇에 얼마나 충성해야하고 그래도 되는지를 검토하고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여정에 서야한다고 생각한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에서 오로지 '수신'에만 충의 개념이 자신의 내부로 향하지 않는데, 나는 이제는 '충성'의 본질이 자신을 향해서도 적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충성의 기수를 내가 잡고 컨트롤할 수 있어야 변화하는 세상을 건강히 살아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 이 책에서는 집단/가족/회사/정당에서 충성이란 어떤 모양새로 이루어지고 있었는지를 다룬다. 우리는 그 누구에게도 충성하고 살고 있지 않았다고 스스로 생각하더라도, 나도 모르게 충성 속에서 길러지고 있었다. 가족의 이데올로기 속에서, 국가의 이데올로기 속에서. 그리고 좋든 싫든 자본주의의 이데올로기 속에서 회사라는, 혹은 자본논리라는 무언가에 충성하고 살아간다. 우리는 무언가의 구성원일 수밖에 없고,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하는 순간 이탈자, 내부 고발자의 타이틀을 지니게 된다. 하다못해 성경에서도 극적인 이야기를 위한 이탈자가 드러나고, 이탈자의 말로를 이야기함으로써 교훈을 준다. 그런 많은 것들에 분노하는 사람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분노하게 되는데, 그런 분노는 방향성을 잃으면 폭력만을 남긴다. 저항운동은 언제 필요한가, 그리고 어떻게 분노해야하는가, 그리고 위에서 내가 짚어냈던 '수신'에 대해서 6장에서 다루어주고 있다. 결국은 스스로를 주체로 하는 삶을 살아낼 수 있어야 진정한 해방을 맞을 수 있는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다정한것이살아남는다 #사랑하지않으면아프다 #이상한정상가족 이 부분부분 떠올랐다. 함께 읽으면 아마 인류애 회복과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할지에 대한 구상을 함께 할 수 있는 좋은 길잡이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결국 '나'를 지키고 '나'로서 살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그리고 그렇게 살아야 하는 낱개의 세계 속에서 바람직한 관계를 맺고 연대하며 무엇을 주의하고 무엇을 성찰해야하는지를 알고 싶은 사람들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충성이라는함정 #시원북스 #서평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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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너 하크 저의 『충성이라는 함정』 을 읽고 내가 자라면서 느끼고 배우고 그리고 실제로 생활하면서 직간접적으로 생각하는 자체로는 충성이라는 의미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정성을 다하여 윗 사람을 섬기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당연히 가정에서 부모님에게 복종해야만 하고, 직장에서는 상사에게 따라야 하는 룰을 엄격하게 지키는 것을 당연하게 알고 그렇게 생활해왔다. 그런데 이런 충성의 의미가 바뀌고 있다는 것에 대해 사회의 변화 추세나 사회를 움직이는 각종 조직에 있어서의 충성이라는 개념자체에 대해 어떤 모습인지에 대해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어 아주 유용한 시간이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얼만 전 대선에 이어 최근 지방선거에 이르기까지 상명하복과 같은 모습을 보기도 하였다. 또한 정당이라는 집단에서 공천과정에서 불거지는 탈당이나 각종 잡음 내용들은 알고 보면 충성에 대한 반발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예전 같으면 감히 생각해볼 수 없는 일이라 할 수 있다. 이제는 오직 주어진 조직이나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는 시대로 바뀐 것이다. 충성하지 않는 사람들의 시대, 조직을 움직이는 룰이 바뀌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기업과 조직에서 리더는 더 이상 직원에게 충성을 요구하지 않으며, 한 직장에 뼈를 묻겠다고 말하는 직원도 예전과 달리 없는 것이다. 독일의 저명한 저널리스트 라이너 한크(Reiner Hank)는 ‘충성하지 않는 사람들’을 가리켜 ‘충성을 요구하는 시스템에서 벗어나 자신의 자유와 신념을 선택한 사람’이라 말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충성의 심연을 파헤친다. 이 책을 통해 조직과 집단에서 충성이 위험한 이유와 진심으로 충성을 다해야 할 대상이 누구인지에 대한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충성이 모든 조직에 반드시 필요한 것인가? 이라는 질문에 대해서 “무조건 충성하는 사람이 위험하다!”고 말한다. 예전과 달라진 것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과거에는 충성이라는 좋은 개념을 통해 사람들이 조직들이 국가가 잘 화합이 운영이 발전을 이루었기 때문에 가능한 최고 개념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시대가 바뀌었다. 바뀐 시대조류에 따라야 할 필요가 있다. 시대조류에 따르지 못하면 분명 국민의 저항과 위험에 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기업과 조직도 더 이상 직원들에게 예전과 같은 충성을 요구하지 말아야 한다. 가족 안에서도 부모와 자녀는 각자의 인생관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하지 강압적으로 요구해서는 안 된다. 충성하지 않는 사람에 대해 저자는 ‘독립된 자아를 가졌고, 충성을 미덕으로 여기지 않으며, 자신의 원칙에 충실한 사람’이라 말한다. 저자는 이 책 에서 정치, 경제, 문화, 심리, 역사, 철학, 문학, 진화생물학 등 다양한 학문과 이론을 통해 충성을 낱낱이 해부한다. 저자에 따르면, 충성은 인간이 무리에서 살아남기 위해 선택한 가장 안정적인 생존 방식이지만 조직의 발전과 개인의 자유를 가로막는 장애물 즉 충성하면 무조건 안전한 것이 아니라 함정에 빠질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충성하면 꼰대가 된다면서 바야흐로 ‘충성하지 않는 사람들’의 시대다 라고 말한다. 이제는 충성을 요구하는 시스템에서 벗어나 자신의 신념을 선택한 사람이라 말하면서 충성의 심연을 낱낱이 파헤치고 있다. 조직과 집단에서 충성이 위험한 이유와 진심으로 충성을 다해야 할 대상이 누구인지에 대한 깨달음도 얻을 수 있다. 시대적으로 어느 때보다도 충성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아야 할 시기에 독일의 저명한 저널리스트인 저자의 책을 대할 수 있어 행복한 시간이었다. 조금 어려울 수도 있었지만 현 시대의 추이와 맞물려 고민해볼 수 있는 사안이어서 좋은 공부 주제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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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는 당신에게 충성을 요구하지 않는다." 이 책 앞표지에 나오는 말입니다. 사실 우리 주변에는 아직도 전근대적인 무조건적 충성을 요구하는 어이없는 자칭 참칭 리더들이 많습니다. 그 리더가 조직의 성과를 그런 식으로 보장이라도 하면, 강요하지 않아도 부하직원들이 알아서 충성을 바칠 것입니다. 그렇지도 못하면서 리더랍시고 온갖 불합리한 지시를 남발하고 인격적 종속을 요구한다면 그런 조직이 제대로 돌아갈 리 없습니다. 바꿔 말하면, 이제는 내가 리더나 그 비슷한 자리에 올랐을 때, 하위 랭크에 대고 함부로 충성을 요구해서는 안 된다는 뜻도 됩니다. 직원들이 그런 요구를 받아들이지도 않고, 조직의 성과를 올바르게 내려면 그런 방식은 당연 지양해야 하니 말입니다.
확실히 독일 책이라서인지 다른 책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이채로운 사례나 교훈이 많이 인용되어서 좋았습니다. 그렇다고 독일 특유의 어려운 말투로 내용이 이어지는 것도 아니며, 초등학생 정도만 되어도 쉽게 읽어나갈 수 있는 포맷입니다. p28에는 미국 예일대 니콜라스 크리스타키스 교수의 사례가 나오는데(이름은 그리스식이네요) 여기서 이 교수님은 "진화의 우울한 현상"이라는 원리를 도출해 냅니다. 집단끼리는 동질감을 갖고 더 큰 호의를 베풀며, 그 집단 밖에 있는 이들에게는 "차별"이라는 원칙(?)으로 대응한다는 겁니다. 재미있는 건 내(內)집단에 속한다 아니다를 가르는 기준이 매우 자의적이고 허술하며 유치할 수도 있다는 점이네요. "우리는 다른 집단에 속한 일원보다 고유의 집단에 속한 구성원을 기꺼이 도와 준다." 저자는 이런 본성과 경향성을 두고 "마치 선천적으로 타고난 듯이"라는 표현도 씁니다.
잘 알려진 "던바의 숫자"를 거론하며, 제아무리 잘 작동하는, 또 내적인 인화를 자랑하는 집단이라고 해도 구성원이 150인을 넘어가기는 힘들다고도 합니다. 이 수를 넘어가면 "충성도 연대도 해를 입는다"고 합니다. 그러니 그저 숫자만 많다고 어느 집단의 무한확장을 도모할 수는 없고 임계치를 넘으면 역효과가 나는 셈입니다. 집단도 그러하고 한 개인이 자기 중심으로 구축하는 네트워크의 효율도 마찬가지이겠습니다.
작가 미하엘 클리베르크는 "지키려는 소수 정체성과 바뀌려는 다수 정체성이 서로 만나는 건, 이민국 내 상호 통합에 결코 좋은 전제조건이 아니다"라고 발언했다고 합니다(p40). "혐오"라고까지 단정지을 수는 없어도 논란을 부를 만한 소지는 충분하다 하겠습니다. 다만 저자는 "독일 대학에서 이야기를 하려면 진보 보편주의를 믿는다고 고백을 해야 하니까" 이후 문학상은 클리베르크에게 더 이상 주어지지 않았다고도 합니다. 명백한 헤이트 스피치가 아닌 이상 이 정도 발언의 자유는 개인에게 주어져야 하지 않나 싶기도 해서 씁쓸한 구석이 있네요. "용납될지는 모르나, 원하는 의견은 아니었다." 결국 원하지 않는 의견은 용납되지도 않는다는 뜻 아닙니까.
한국이라면 혹 부모의 교육 수준, 경제적 계급이 낮더라도 그 자녀가 이를 극복하여 상위 랭크로 올라서려는 노력이 집요할 것이며 "내가 열심히 하면 그건 부모의 계급을 배반하는 거야" 같은 생각은 아무도, 정말 아무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ㅎㅎ 그런데 독일은 사정이 그렇지 않은가 봅니다.이른바 "사회적 상승 의지의 결핍"은 한국에서는 절대 찾아보기 쉽지 않으며, 교육이나 경제 활동을 통해 가열차게 신분 상승을 노리는 건 한국뿐 아니라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 문화권의 공통 특징이라고까지 할 수 있습니다. 아무튼 저자는 이런 분석틀을 통해 독일에서 발생하는 계급 배반 회피 현상, 혹은 그 반대 현상의 원인에 대해 재미있게 설명합니다. "충성"이라는 개념이 이렇게까지 확장되어 적용된다는 게 너무도 재미있습니다.
한국에서도 엄청난 충격을 안긴 폭스바겐의 배기량 조작 스캔들, 이른바 디젤게이트에 대해 저자는 독일 사회를 암울하게 짓누르는 "충성"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분석과 비판을 통해 접근합니다. 한국인들도 벤o, 또 저 폭o바겐이라고 하면 거의 무한에 가까운 브랜드 신뢰도가 엄연히 있었기 때문에 그 충격은 한층 컸었습니다. "규칙 위반의 도덕화는 무의미하며 틀림없이 위선과 가식으로 이어진다." 슈테판 퀼의 주장(p87)입니다. 독일인들은 특히 소속 집단에 대한 충성심이 강하므로, 그 특유의 정직함과 직업 정신에도 불구하고 저런 대형 사고가 터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한국에서라면 설령 비슷한 스캔들이 터져도 그 동기가 저런 쪽은 아닐 것입니다. 여튼 그래서 저자는 챕터 3에서 "내부 고발자"의 중요성과 의의에 대해 길게 논의합니다. "'탐욕스러운 기관'의 위험성을 항상 잊지 말자(p105)." 이어서 그 유명한, 백 년 전 드레퓌스 사건에 대한 회고도 나옵니다.
"소속감은 집단 자아(그루펜 이히)를 만들어 공동의 씨족 양심을 형성한다(p141)" "충성은 호혜를 기초로 하며 따라서 집단에 대한 충성을 보답을 받는다. 보답이 없는 타 집단에는 그럴 의무가 없으며 오히려 공격으로까지 이어진다." 저자는 이어 (역사적) 독일 공산주의자에 대한 비판도 합니다. "그들은 자기 자신보다도 공산주의를 더욱 확실히 믿었다" 이런 병리현상이 극에 치달으면 배타적 패륜적 파괴적 진영논리로 바뀌며, 진영의 이익이 인간 본연의 양심이나 도덕률에 우선한다고 대중 앞에서 당당히도 털어 놓을 수 있게 됩니다. 그들은 자신이 지금 무엇을 저지르는지 모릅니다. "구호는 신체적 무아경과 관련된, 군중 속 몸의 언어행위라 할 수 있다(p158)." 재미있게도, 저자는 배교자(널리, 배신자라고 할 수 있는)에 대해 가혹한 제재를 가하는 예시로 두 집단을 드는데 하나는 크리스트교요 다른 하나는 이탈리안 마피아입니다.
"민주주의 찬양은 과도한 걸까? 싱가포르 같은 권위주의 체제도 코로나 위기를 잘 헤쳐나가지 않았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거짓 폭포가 다수에게 무제한으로 흐르도록 자유로운 길을 허락하는, 포퓰리즘적 입헌 민주주의 법치국가들을 단념해서는 안 된다(p229)." 이게 저자의 결론입니다. 거짓 폭포나 포퓰리즘이 좋다는 게 아니라, 전체 공동체의 건강성을 지키는, 굴종의 독과 순응의 덫을 해체하는 "불충의 영웅"들을 지키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자유롭고 예측 불가능한 상태로 머물자! 당신 자신이 되자!(p240)" 얼마나 감동적입니까. 이게 인간 조건의 본연입니다. 이걸 부정당하거나 스스로 부정하면 우리는 더 이상 인간이 아닙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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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성이란 하나의 주제로 다뤄지지만 들여다보는 측면은 매우 다양하다. 대부분 길게 끌지 않고 짧은 호흡으로 제시하고 전개시키는 터라 이해가 잘되고 빠른 정리로 마무리 되면서 이어지므로 충성 관련한 다양한 시각정리가 편하게 읽힌다.
책이 말하는 충성은 사실 매우 폭넓다. 좁게는 회사와 가정, 넓게는 국가를 잡으나 충성이란 맥락을 수평적으로 들여다보는 편이라, 예시들을 저자의 필력에 기대 따라가다 보면 딱딱할 수 있는 소재의 여러 이야기가 어디 한군데도 답답한 구석 없이 부드럽게 흐르는듯한 리듬을 탄다.
이들 중, 이 책을 선택하게 만들었던 가장 궁금했던 부분이면서, 여러 내용중 가장 기승전결이 분명하고 간략하게 정리된 흥미롭던 소재가 하나 있다. 그것은 충성스런 사람이 일종의 변절로 내부적으로 홀로 됐을 때, 스스로 벌일 수 있는 자아붕괴를 다룬 부분이었다. 제일 궁금했던 이 부분이 책에선 내부고발자의 예로 좁게 지칭되며 전개됐지만, 충성스러웠던 자 스스로의 혼란을 단계별로 변화를 겪는 괴로움으로 묘사한 부분이라 매우 심도있게 다가왔다.
케이트 케니 교수는 이 단계의 처음은 동료들의 무시하기로 시작된다고 보는데, 이 상황 속 스스로 내부 고발자가 된 과거 충성했던 이의 태도는 그저 고집스럽게 버티는 것. 이런 선택을 설명할 때 당사자가 싫은 절을 떠나는 중이 되지 않으려는 이유로써, 도덕적 나르시시즘 성향의 강한 천성이 상황 자체를 견디게 만든다고 추론하고 있다. 하지만, 버티는 자를 주위는 결코 가만두지 않는데, 무시하기만 주구장창 지속되는게 아닌 괴롭히거나, 고립시키기 순으로 진행된 후 배제하기로 이어진다고 가정해보고 있다.
하지만, 진짜 궁금했던 부분은 이 다음에 등장하는 최종적 심리변화였다.
그것은 '자기 의심'
저자는 이를 최악이라 보는데, 모든 문제의 시작을 내부고발자 스스로 자신이 문제 아닌가 또는 시발점이 아닐까 스스로의 확신에 혼란을 느끼게 되면서, 마치 급조된 양심의 가책을 자발적으로 느끼면서 자신이 비난받을 만한 이유가 있고 그 원인제공자는 아닐지 의심케 된다. 책은 간단하게 배신자라고만 묘사되는 간단한 부분 중 하나지만, 읽다보면 행간의 흐름이 느껴지기도 한다. 이 쯤에서 책은 다시 한번 상황정리. 스스로를 탓하고, 결국 주변인들의 비난을 타당한 반응으로 여기게 되는 당사자는, 불충의 댓가를 받고 있는거라 생각하며 스스로를 평가 절하시키는 꾸짖음 같은 행동들을 보인다.
이에 이어지는 효과 또한 매우 드라마틱한 감정변화이자 최종적 심리로써, 아쉽지만 이렇게 되어가는 내부고발자는 자신에게 비난을 가한 이들과 맞서지 않으며 스스로 저항할 능력을 박탈시킨다고 한다.
내부고발자란 하나의 주제만 놓고 보면 책에서도 등장하는 유명한 스노든의 예가 더 이야기거리로써도 적합했겠지만, 하나의 흐름으로 정리되는 충성스러운 자의 자아붕괴 과정이, 좀더 충성의 반대급부처럼 여겨져 함정의 좋은 예란 생각이 들었다.
많은 내용 중에 내부고발자의 수난만을 대표적인 예로 들고 싶었던건 아니지만, 충성스런 심리가 자신도 모르게 어떻게 자신을 궁지로 몰아가는지에 대해 그 메커니즘을 여러모로 생각해보는게 일반적으로 유익하다 여겨졌기에 정리해 봤다.
충성을 배척하는 책도 아니고 충성의 가치가 점점 사라져가는 사회적 현상을 되돌아 보거나 예전을 그리워하는 책도 아니다. 개인이 선택하는 충성이란 선택지가 있을 때 과연 어떤 충성의 가치가 각자에게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지를 다양하게 생각해 보도록 해주는 다소 철학적인 책이라 보면 좋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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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한 삶의 최고 가치는 우리 자신을 향한 충성이다. _201 작년 한 해 동안 소설과 에세이에 편중된 독서를 해서, 올해부터는 다양한 비문학 책에도 도전하고 싶어졌다. [서평단에 당첨되어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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