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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속에 스며든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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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크 헤이머 산문집 『두더지 잡기』(카라칼, 2022)를 읽고   “노년의 정원사가 자연에서 배운 것들”이라는 부재를 달았다. 시인, 정원사, 전직 두더지 사냥꾼이라고 소개된 마크 헤이머는 10대 초반부터 50여 년을 채식주의자로 살아왔다. 산문과 시가 번갈아 나오는 책이다.   정원사이면서 생계를 위해 두더지를 잡았던 작가는 자연을 사랑하고 자연의 삶에 조용히 스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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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헤이머 산문집 두더지 잡기(카라칼, 2022)를 읽고

 

노년의 정원사가 자연에서 배운 것들이라는 부재를 달았다. 시인, 정원사, 전직 두더지 사냥꾼이라고 소개된 마크 헤이머는 10대 초반부터 50여 년을 채식주의자로 살아왔다. 산문과 시가 번갈아 나오는 책이다.

 

정원사이면서 생계를 위해 두더지를 잡았던 작가는 자연을 사랑하고 자연의 삶에 조용히 스며든 사람이다. 두더지에 대한 해박한 지식은 애정에서 나왔다. 세계적으로 서식하는 두더지를 소개하고 있다. 생계를 위해 두더지 잡기를 했지만, 자연과 생물을 사랑하는 그는 두더지 잡기를 그만두고 글을 쓴다.

 

자연 박사, 토양 박사쯤의 대명사를 붙여도 될 만큼 지적인 내용들로 가득 차 있다. 위대한 자연의 자생력은 사람이 살아가는 인생과 닮았으며, 사람이 자연의 생태를 따라서 살아야 함을 알려 준다. 숲에서 살면서 일기를 쓴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을 읽었을 때처럼 편안하고 자유롭고 다정한 위로를 받았다.

 

프롤로그에서 자연에 대한 열정을 부추기는 삶을. 자연의 실용적 아름다움과 난폭하고 잔인한 에너지에 대한 열정, 심지어 자연의 부패에 대한 열정까지도 북돋우는 삶을. 그 삶은 세계를 더 넓게 보는 시야와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방식에 영향을 준 성찰적인 삶이었다.”

 

길 위의 신사에서 나는 내가 잘하는 일, 즉 걷는 일을 하겠다고 결심했다. 그리고 내가 즐거워하는 일, 즉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이것저것을 관찰하고 그것들을 이해하려 노력하는 일을 해보겠다고 마음먹었다.” 사람들과 얽힌 복잡한 세계보다는 자연과 함께하는 자유로운 삼을 선택한 사람이다.

 

흙과 집에서 나는 땅에 속해 있으며, 흙을 사랑한다. 그것은 살아 있는 유기체이고, 나는 그것이 내 피부에 닿길 바란다. 걷는 것, 가능하면 맨발로, 맨손으로, 맨머리로 걷는 것은 내 기분을 좋게 해 주고, 내 몸으로 대기와 땅을 잇는 기분을 들게 해 준다. 그곳은 살아가고 자라나는 모든 것들이 최종적으로 이르게 되는 곳이다. 모든 것들의 먹이터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그가 자연을 너무나도 사랑한다고 고백하고 있다.

 

땅으로 녹아든 밤에서 내가 더 조용할수록, 더 많은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동물들은 긴장을 풀었다. 그들은 내가 그곳에 있지만 위협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더 많은 잡음을 낼수록, 자연은 더 조용해진다. 침묵을 유지하면서 나는 내 주위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어둠 속에서 나는 수역의 차갑고 축축한 공기를 느낄 수 있었고, 야생동물이 없는 안전한 은신처가 되어주는 잘 관리된 솔숲의 침묵을 느낄 수도 있었다.”며 자신이 자연에 침해되지 않도록 자연에 대한 예의를 말하고 있다.

 

걷는 사람에서 그곳에는 언제나 어떤 종류의 생명이 있을 것이며, 무언가에 매달려 애쓸 일은 전혀, 전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바위와 살덩이 위에서 일어나는 바람과 물의, 이 끊임없는 선회는 그것들을 모두 하나로 만든다. 그곳에 타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내 아이들을 만들었고, 자연은 더 이상 나를 필요로 하지 않다. 이는 나의 불가피하고 개인적인 생태계다. 당신에게는 당신만의 생태계가 있을 테고, 다만 그것들은 서로 비슷할 것이다. 치유란 그저 변화, 받아들임에 적응하는 것일 뿐이다. 그것은 모두 평범한 일이다. 우리는 이곳에 와서 자라나고, 그러고는 다시 점차 사라져 간다.”라고 적고 있다. 자연을 떠난 그의 일상이나 생각들은 상상할 수 없는 이야기다. 그는 자연에서 태어났고, 자연에서 자랐고, 자연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선언한다. 우리 모두 그것을 알고 있지만, 모르는 채 사는 것 같다.

 

두더지들 2에서 선택은 내가 내리는 것이 아닌 듯 보였고, 나는 삶이 그냥 일어나도록 내버려 두기 시작했다. 그러는 편이 훨씬 기분 좋게 느껴진다. 나는 그것을, 그저 날아와 둥지를 틀고 먹이를 먹고 새로운 새를 낳은 새들로부터, 그리고 그냥 느릿느릿 기어 다니고 먹이를 먹고 새 고슴도치를 낳은 고슴도치들로부터 배웠으며, 그들은 모두 죽어서 제때 진흙으로 돌아갔다.”는 말을 듣고 일순, 안심이 되기도 했다. 살면서 이루고 싶은 일들이나 이루지 못한 일들 앞에서 안달복달 속을 끓이는 그런 행위들이 무용하다는 것이 느껴지기도 했다. 그냥, 물 흐르는 대로, 순리적인 삶을 받아들이면 삶이 평안해진다고 일러주는 것 같다.

 

나는 내 주위를 끊임없이 돌고 도는 자연 속에서 생존하는 법을 알고, 그것과 사랑에 빠져 있다. 나는 그것이 늘 하던 대로 행동할 거라고 믿으며, 그것이 위험할 거라고 예상한다. 자연은 우리의 안전에 신경 쓰지 않는다. 편안하고 안전하기 위해 나는 알아차리는 법을 배웠고, 그러기 위해 나는 내 안에서 일어나는 대화를 잠재워야 한다. 뭔가가 잘못되면 내 몸이 그렇다고 말해줄 거라고 믿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나는 귀 기울여 들어야 하고, 혼자가 되어야 한다.”라고 적었다. 그는 자연에 온 정신과 마음을 기울이는 것처럼 자기 몸과 마음도 들여다볼 줄 아는 사람이다.

 

망가진 것들에서 불교도들은 삶이 슬픔으로 가득한 것이며 슬픔과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연민을 베푸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들은 우리가 하는 모든 일에서 슬픔과 기쁨을 모두 느껴야 한다고 말한다. 이 들판에 존재하는 것, 매나 고슴도치처럼 존재하는 것에는 기쁨이 존재한다. 그것에는, 우리가 시작하는 곳에서 끝나는 곳까지 가는 여정에는 슬픔 또한 존재한다.”라고 적었다. 나는 불교 서적에서 위안을 많이 받는다. 삶이 온통 행복이고 아름다움뿐이라고 했다면 더 믿지 않았을 것이다. 삶 속에 슬픔이 있다는 말을 새겨듣는다.

 

나도 함께 숲을 걷고 숲의 소리를 듣고, 숲을 보고 있었다. 이름 모를 꽃과 벌레를 하늘과 구름과 온갖 자연을 그대로 보여 준다. 인생을 살아 본 지혜로운 어른이 한 말씀 한 말씀 들려주는 모든 이야기가 잠언처럼 꼭 들어야 할 말들처럼 따듯한 위로로 다가왔다.

 

나도 70쯤 나이를 먹게 되면 세상의 이치들을 알 수 있을까? 담담한 목소리로 삶에 대해 조곤조곤 이야기할 수 있을까? 기쁨과 슬픔 등의 감정들도 무뎌지고 잔잔한 감정들로 살아갈 수 있게 될까? 정원사로 살아온 그는 자기 삶의 바탕들인 흙과 자연을 무한히 사랑한다. 내 삶에도 그토록 깊은 애정으로 사랑하는 것들이 있을까를 돌아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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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이 사실을 능가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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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과 진실은 다르다. 요컨대 사실이 논리의 영역이라면 진실은 윤리의 영역이다. 나는 영화를 보며 그것을 배웠다. 가령 영화 속에서 사람이 죽었다고 우리가 경찰에 신고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영화는 사실이 아니다. 하지만 영화 속 비참한 죽음 앞에 누구든 경건해지거나 슬퍼할 필요는 있는데, 그 장면이 어떤 진실을 담고 있기 때문에 그렇다. 다시 말해 그 이야기가 사실은 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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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과 진실은 다르다. 요컨대 사실이 논리의 영역이라면 진실은 윤리의 영역이다. 나는 영화를 보며 그것을 배웠다. 가령 영화 속에서 사람이 죽었다고 우리가 경찰에 신고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영화는 사실이 아니다. 하지만 영화 속 비참한 죽음 앞에 누구든 경건해지거나 슬퍼할 필요는 있는데, 그 장면이 어떤 진실을 담고 있기 때문에 그렇다. 다시 말해 그 이야기가 사실은 아니라고 해도, 거기에는 분명 삶과 죽음에 관한 일말의 진실이 포함되어 있다. 한 편의 영화가 아름다워지는 순간이 바로 이때다. 사실이 아니라 진실을 말할 때. 그때 우리는 그 허구의 이야기 속에서 사실과 결별하고 진실과 대면하는 극적인 경험을 하게 된다.

ㅡ 영국에는 전문 “두더지 사냥꾼”이 따로 존재한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처음 알았다. “영국 제도에 두더지 사냥꾼이 처음 등장한 것은 기원전 54년 무렵이었다.”(248면) 정원을 훼손하는 두더지를 잡는 일로 생계를 꾸려 나가는 사람들. 그중 한 명의 증언을 읽으며 우리는 그동안 몰랐던 한 가지 ‘사실’과 만난다. “나는 돈 때문에 두더지를 잡는다.”(49면), “나는 그에게 죽은 두더지 몇 마리를 보여주고, 열세 마리에 대한 값을 청구한다.”(256면) 이것은 한 두더지 사냥꾼의 입에서 튀어나온 ‘사실’들이다. 돈을 벌기 위해 두더지를 죽여야 하고, 많이 죽일수록 수입이 늘어난다는 냉혹한 사실. 그런데 그는 이런 말도 한다. “나는 될 수 있는 한 최고의, 그리고 가장 인도적인 두더지 사냥꾼이 되길 바랐다.”(47면)

ㅡ “인도적”인 두더지 사냥꾼? 이 모순적인 말속에 진실이 있다. 이 노년의 두더지 사냥꾼은 생명을 죽일 때마다 죄책감을 느끼지만 생계 유지를 위해 그 일을 계속할 수밖에 없다. ‘돈을 벌고 생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사실과 ‘그러려면 두더지를 죽여야 한다’는 또 다른 사실, 이 두 가지 사실이 충돌하는 곳에서 그는 괴로워한다. 그리고 그 괴로움은 질문의 형식으로 나타난다. 강한 인간이 약한 두더지를 잡는 것은 자연의 순리인가? 죄책감을 느끼지 않아도 될까? 그런데 인간은 (살생이라는) 비인간적인 방식으로도 과연 인간답게 살 수 있나?……

ㅡ 바로 저 질문들이 인간 삶에 관한 진실을 발생시킨다. 그러나 헷갈리지 말아야 한다. 저 질문들에 대한 완벽한 대답을 진실이라고 부르는 게 아니다. 마땅히 대답하기 곤란한 저 어려운 질문들 앞에서 최선의 답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것, 그것을 진실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아마 “인도적인 두더지 사냥꾼”이란 이상한 말도 저 질문들에 대답하기 위해 한 남자가 고군분투한 흔적이겠다. 그가 ‘나는 두더지 사냥꾼이다’라고 말할 때 그것은 일견 ‘사실’에 불과하지만, 그가 ‘인도적인 두더지 사냥꾼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를 질문하고 고민하는 순간, 그는 우리 삶의 중요한 ‘진실’ 하나를 들춰내게 되는 것이다.

ㅡ 그러니 다시 한번 말하지만, 사실은 논리의 일이고 진실은 윤리의 일이다. 다르게 말해 볼까. 사실은 우리 앞에 평서문으로 나타나지만 진실은 의문문으로 나타난다. 책 속에서 그 둘을 구별해 보자. “이어서 또 다른 곳에서 덫을 설치한다. 나는 두더지를 덫으로 포위하려고 애쓰는 중이다.”(220면) 이 냉혹한 문장이 가리키는 바는 두말할 것도 없이 ‘사실’이다. 덫을 잘 놓아 두더지를 많이 잡아야 돈을 벌 수 있다는 차가운 사실. 반면 ‘진실’은 다음과 같은 문장 속에 들어 있다. “나는 두더지를 죽이는 것 말고 다른 방법은 없을지 궁금했다.”(45면) 윤리적인 문제의식을 갖고 질문하는 자에게만 진실은 제 모습을 드러낸다.

ㅡ 팀 버튼 감독 영화 『빅 피쉬』(2003)는 사실과 진실이 다를 뿐 아니라 진실이 사실을 능가하기도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영화 속 아버지는 놀라운 이야기꾼이다. (“자동차만 한 거대한 물고기가 내 반지를 물어 갔어!”) 그러나 성인이 된 아들은 더 이상 저런 환상적인 이야기가 즐겁지 않다. 그는 차라리 ‘사실’이 알고 싶다. 꾸며낸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 아버지의 모습을. 그러나 아버지의 이야기는 모든 아버지들이 아들에게 할 만한 그저 그런 과장된 모험담이 아니었다. 그는 그 이야기 속에서 진정으로 행복했기 때문이다. 내가 궁금한 것은 이것이다. 그의 인생을 행복하고 살 만한 것으로 만들었다면, 그 이야기가 사실인지 아닌지가 과연 그렇게 중요한가?

ㅡ 요컨대 영화 속 아들과 아버지의 갈등은 한 사람이 사실(fact)을 요구할 때 다른 한 사람은 진실(true)만을 말했다는 점에서 발생한다. 임종을 앞둔 순간까지도 아버지는 끝내 ‘사실’을 말하지 않는다. 그는 끝까지 이야기를 계속한다. (“수백만 마리 파리가 내 차에 달라붙더니 글쎄 차를 들어 올려버렸다니까!”) 그러나 그 거짓 이야기가 그를 행복하게 살게 했고 끝내 행복하게 죽을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러니 그 이야기들은 아버지에게 사실은 아니었을지언정 진실의 한 형태였던 것은 분명하다. 그 진실 앞에, 이제 사실은 무의미해진다. 이 놀라운 영화가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은 아마도 이것이 아닐까. 진실은 종종 사실을 무기력하게 만들면서 그것을 극복한다는 것.

ㅡ 마크 헤이머는 저 『빅 피쉬』 속 아버지를 닮았다. 그가 발견한 진실은 사실을 얼마나 멋지게 능가하는가. 그는 두더지 사냥을 그만둘 것이고 그만큼 그의 수입은 줄어들 것이다. 이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이 사실을 무력하게 하는 힘은 그가 보호하려는 진실에서 온다. 생명을 해치지 않고 자연을 ‘자연’스러운 상태 그대로 놔두어야 한다는 진실, 그것이 인간답게 사는 것이며 모든 인간에게는 그런 삶을 선택할 의지도 능력도 있다는 진실. 그 진실은 ‘인간은 자연을 통제할 수 있다’는 ‘사실’을 가뿐히 뛰어넘는다.

ㅡ 저자는 말한다. “나는 딱딱하고 차가운 감옥과도 같은 사실을 좋아하지 않는다. 사실들은 당신을 자유롭게 해주지 않는다. (…) 그럴 때마다 나는 ‘진실’의 한 형태를 이야기하게 될 것이다.”(19~20면) 우리는 사실들 속에서 살고 있다. 그 사실들이란, 가령 이런 것이다. ‘덫을 이용하면 손쉽게 두더지를 잡을 수 있다’. 이와 같은 사실들은, 저자의 말에 따르면 우리를 자유롭게 해주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를 자유롭게 해 주는 ‘진실’은 어디에 있나. “인도적”인 두더지 사냥꾼이 될 순 없을까, 하는 고민 속에, 더 나아가 두더지를 죽이지 않는 방법은 없을까, 하는 고민 속에 있다.

ㅡ 사실들로 이루어진 세계에서 인간은 진실을 작동시키며 살아간다. 삶의 여러 진실 중 한 가지를, 이 책이 내게 알려 줬다. 이제 나는 ‘인간은 두더지를 죽일 수 있다’는 무던한 ‘사실’ 속에서 ‘두더지를 죽이고 싶지 않은 인간이 있다’는 ‘진실’을 발견한다. 사실에 갇혀 사는 삶과 진실을 찾아 떠나는 삶이 있다면, 이 남자가 다시는 두더지를 사냥하지 않겠다고 다짐한 것은 그의 삶이 진실을 좇는 자유로운 삶이라는 방증일 것이다. 그런 삶이야말로 정말 ‘영화 같은’ 삶이 아니겠는가. 마지막으로 사실과 진실의 예를 하나만 더 들며 마친다. 우리가 인간이라는 것, 이 말은 사실에 불과하다. 그러나 우리가 인간답게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면, 그 말은 진실에 속한다.

k********n 2022.12.11.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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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더지 잡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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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어렸을 때, 그림책과 동화책을 섭렵하던 시절, 상상 속에서 두더지는 선생이었고, 친구였고, 엄마였고, 아기였고, 현자였고, 장난꾸러기였다. 땅속에서 살기 때문에 눈이 좋지 않아 안경을 꼈고, 지렁이 창고에 지렁이를 가득 담아두고 굴을 파는 속도만큼 지렁이를 먹는 탓에 남산만큼 나온 배는 들어갈 줄 몰랐고, 때깔은 언제나 좋아 보였다. 두더지는 그렇게 친근했다. 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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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어렸을 때, 그림책과 동화책을 섭렵하던 시절, 상상 속에서 두더지는 선생이었고, 친구였고, 엄마였고, 아기였고, 현자였고, 장난꾸러기였다. 땅속에서 살기 때문에 눈이 좋지 않아 안경을 꼈고, 지렁이 창고에 지렁이를 가득 담아두고 굴을 파는 속도만큼 지렁이를 먹는 탓에 남산만큼 나온 배는 들어갈 줄 몰랐고, 때깔은 언제나 좋아 보였다. 두더지는 그렇게 친근했다. 누군가에게 잡히고 죽임을 당해야 하는 동물과는 거리가 멀었다. 





나는 정원사다. 나는 오랜 시간 정원과 농장에서 두더지를 잡아왔고, 이제 더는 그 일을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두더지 잡이는 내게 풍족한 생활을 가져다준 전통적 기술이지만, 인제 나는 늙었고, 사냥을 하고 덫을 놓고 죽이는 일에 지쳤으며, 그것으로부터 배워야 할 것들은 모두 배웠다.

_마크 헤이머, 『두더지 잡기』중에서


마크 헤이머라는 낯선 작가의 직업은 정원사다. 평생을 정원의 두더지를 잡아주는 것으로 생계를 이어왔고, 그 일을 통해 자연의 이치와 삶의 지혜를 터득했고, 그의 인생이 축축하고 어두운 굴 속, 외롭고 공허한 그 굴속에 마치 보석처럼 박힌 책이다. 언젠가 동화 속에서 보았던 현자였던 두더지의 지혜가 저자에게 고스란히 녹아든 것 같았다. 평생을 자연에서 생활하며 두더지를 관찰하고, 공부하고, 만져보고, 하나가 되어 보기도 하면서, 무언가를 죽이는 일이 커다란 죄라는 것을 느끼기 시작하고, 더는 죽이지 않겠다고 다짐하면서.


이 책은 너무 좋은 책이다. 재미있는 책이 전부 좋은 책은 아니듯이 이 좋은 책을 재미있다는 말로 단정할 수는 없지만 좋은 책인 것만은 알겠다. 왜냐하면 누군가의 인생이 고요하고 담담하게 배어있기 때문이고, 어떤 순간에도 존재하는 모든 것은 숭고하고 경이로움을 몸소 체험하여 들려주기 때문이고, 진짜 삶이란 정의에 다가가려고 노력하기 때문이다. 그 모든 숭고한 문장들을 아름답게 수놓을 수 있다면 이 책이 될 터였다. 더 이상 두더지를 잡지 않겠다는 다짐을 담은 『두더지 잡기』라는 제목으로. 그러니 두더지를 잡지 않겠다는 다짐의 징표인 셈.



자연에 속하지 않은, 인간이 만든 것들이 썩어서 땅과 하나 되길 거부한다는 사실은 나를 우울하게 한다. 인간과 관련된 것들 가운데 유일하게 영구적인 것은 인간의 쓰레기뿐이다. 자연의 존재들은 썩는다. 모든 자연의 존재들이 거치는 달콤 쌉쌀한 존재의 상태, 그들이 예전의 모습을 관두고 무언가 새로운 모습이 되기 시작하는 단계가 있다. 나는 내가 그 시점에 이른 것 같다.

_마크 헤이머, 『두더지 잡기』, 본문 84쪽


이 책에서 찾아낸 수많은 지혜 중 제일 먼저 마음속에 새긴 건 정체성이다. 나라는 정체성. 지금 열심히 갈고닦는 것들, 내 손에 쥐고 있는 것들은 이제 나의 새로운 거푸집이다. 그것들로 새롭게 시작할 터였다. 그런 깨달음이 없었던 시절, 과거 속에 나 자신을 얽매어 두고 나라는 인간이 가진 속성에 대해 수없이 돌팔매질을 해왔다. 무언가가 되고 싶었으나 되지 못했던 나, 끝까지 하지 못했던 무책임한 나, 사소한 잘잘못들. 하지만 그 무수한 과거는 내 삶에 크고 작은 흉터가 되었지만 그 자리에 새롭게 나라는 정체성이 시작되고 있었음을 간과했다. 그 흉터 위에 새롭게 돋아난 나의 삶이 '지금의 나'라는 정체성이다. 그 정체성으로 지금 순간의 감정을 충분히 느끼고 살아야 한다. 과거의 무수히 많은 흉터가 존재의 유무를 결정짓지 않는다. '지금의 나'로 충분히 느끼고 즐기고 행복하게 살고 있다. 지금의 나는 그렇다. 


"나는 곧 유해 생물 또한 내 일의 일부임을 알게 되었다.

어떤 사람들에게 정원 일이란 대체로 생명을 죽이는 일이다. 

내게 이 문제는 언제나 갈등의 영역이었다." 


별것 없는 문장처럼 보이는데 이 글을 읽고 복잡한 심경이 들었다. 우린 삶의 아주 중요한 순간에 쉽게 순진해지곤 한다. 결혼이란 일이, 아이를 낳는 일이, 직업을 선택하는 일이, 삶의 터전을 옮기는 일이, 늘 아름답고 즐겁기만 한 것은 아닌데, 순진하게도 희망적인 것들을 먼저 떠올리려고 한다. 시간이 지나 알게 된다. 너무 순지했음을. 순진하게도 결혼하면 행복한 일만 가득할 줄 알았다. 결혼은 집단 사이의 상호 증여로서 존재했다. 아이는 어떤가. 아이가 나고 성장하는 모습을 보면 왠지 뿌듯하고 행복할 거라 믿었다. 나 스스로도 부침이 많았던 것을 모르지 않으면서. 늘 걱정과 불안과 초조함이 앞선다. 갈등은 인생사에 늘 따라다니는 일부임을 받아들이게 된다. 


두더지들은 함께 있는 걸 질색한다는 문장에 밑줄을 그었다. 두더지는 친구나 가족이 없다는 말에도. 녀석들은 남을 방문하지 않는다는 말에도. 애써 넘어지지 않아도 되고, 어느 세상에 속하지 않아도 되고, 회피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 오로지 개별 존재로 존재하는 세상. 이 공허하고 존중받아야 할 것만 세상이 타의에 의해 간섭받는다. 두더지들이 사는 세상에 신식 기계들이 들이닥치고 파괴되는 것처럼 누군가의 고요한 삶도 타의에 의해 쉽게 파괴되고 폭로되기도 한다. 


혼자 사는 것을 배우는 것이 인생이라고 했다. 힘든 인간관계를 이으려 애쓰지 말고 혼자 있음으로 진정한 자유와 평안을 찾는 것이 인생이라고. 혼자 외로이 어둠 속을 깊이 파고 들어가 자신만의 독특한 세계를 만들어 가는 두더지처럼 저자 또한 자신만의 고독한 길을 개척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어떤 굴이 될지 모르지만 아름다움을 진정으로 느끼고 살아갈 수 있다면 무언가 대단하지 않아도 스스로 빛날 수 있다고 자만해도 될 것 같았다. 각자의 인생에 새겨진 흉터들을 잘 들여다보면 답을 해주겠지. 더 이상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더는 물을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모른다는 것은 내게 있어 상상 가능한 최고의 상태이다.

모른다는 것에는 변화를 수용하고자 하는, 

그리고 모든 걸 알아야 한다는 강박 없이

백만 개의 꽃잎이 달린 다층적 인생의 꽃을 즐기고자 하는 

달콤함과 명랑한 의지가 깃들어 있다. 

_마크 헤이머, 『두더지 잡기』, 본문 104쪽


YES마니아 : 로얄 i*****j 2026.02.02.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