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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하나님과의 대화
1. 생각보다 어렵고 깊이가 있다. 성서를 비판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정말 많이 이해하고 공부하고 어느 정도 파악이 되어야 가능합니다. 단순히 얄궂은 지식으로 몇 천년의 역사를 가진 책을 비판할 순 없지요.
존재의 본질, 삶과 죽음, 사후세계, 신의 정의 그리고 종교가 진정 지향해야 하는 목표에 대한 해답을 신학, 과학, 역사, 철학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고민하는 네 명의 대담을 담은 책. 대화식으로 풀어나가기 때문에 읽기 좋습니다. 정의란 무엇인가도 그런 식으로 풀어나가서 정의에 대해 좀 더 쉽게 접할 수 있었는데 이 책 또한 조금은 접근성이 좋네요. 책의 가격은 28000원. 한번 읽어보시길 추천합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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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책을 받아들었을 때 이상하다 생각했는데 유심히 보니 예수님을 비롯해 각 종교를 합쳐놨던 것이다. 토론 형식으로 구성된 이 책은 두레스팀, 라바모스, 바우류당, 아인스호키 등이 등장하는데 무신론자, 랍비, 신부, 물리학 박사 등 각자의 생각으로 열띤 주장을 펼치는 방식이라 집중하며 읽을 수밖에 없었다. 기독교인 입장에서 봤을 때 논쟁거리마다 상당히 도전적인 대화가 오가느라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을 독자가 여러모로 생각해 볼 수 있게 짜였다. 두레스킴은 사회자로서 진행하고 의제를 던지거나 깔끔하게 정리하는 역할을 한다면 라바모스, 바우류당, 아인스호키는 성경 구절을 해석하며 다양한 시각으로 분석한다.
창조론 대 진화론만 해도 수 세기 동안 논쟁거리로 다뤄진 대표적인 주제다. 과학의 눈부신 발전이 더해지면서 속속들이 우주의 비밀들이 풀려나가고 있다. 6일 만에 모든 생명체가 창조되었다고 믿고 있는데 창세기에 나오는 하루는 천년이나 그보다 훨씬 긴 기간으로 시간 개념이 인간 세계와 다르다고 주장한다. 성경책을 읽으면서 의문이 들었던 부분을 꽤나 논리적으로 거침없이 말하는 부분들이 내 믿음을 구체적인 증거로 더욱 확고하게 지키는 토대가 되었다. 토론 참가자들이 역사적인 사례와 과학적인 근거로 성경책에 나온 내용을 해석할 때마다 풍성한 자료로 인해 모르던 부분도 알게 되었고 생각의 다름도 인정할 수 있었다.
사실 책이 아닌 일반적인 토론 주제로 꺼냈다면 입장 차이가 갈려 제대로 된 진행이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종교 분쟁의 원인도 성경 구절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입장 차이가 갈려 일어났던 것인데 이젠 맹목적인 믿음보다 넓은 시야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해묵은 종교 갈등으로 맞설 것이 아니라 참된 진리와 믿음은 지키되 각자 인정하며 나아간다면 될 텐데라는 아쉬움도 있다. 다양한 해석이 존재할 수 있어도 내 믿음이 사라지거나 줄어든 것은 아니다. 성경책도 결국 사람의 손으로 쓴 것이라 어떤 근거로 해석을 하느냐에 따라 의견이 분분할 수 있다. 오히려 성경책을 제대로 알고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흥미로운 대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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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명의 대화자, 구약성경 입장의 유대 랍비 라바모스, 신약성경을 대변하는 천주교 신부인 바우류당, 과학자로 아인스호키와 저자의 의견을 대변하는 두레스킴이 대담하는 형식이다. 각 분야별 대표성을 띤 만큼 성경의 오류와 왜곡, 사후세계의 허구성, 그리고 신이나 존재의 본질에 대한 열띤 논의를 한다.
토론 내용을 보면 저자의 심층적인 지식 탐구가 돋보인다. 성경의 여러 버전을 대조하고 주변 신화도 비교하여 상황과 인물을 조사하고 인위적인 부분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과거 구텐베르크의 인쇄술 발명 후 성경이 일반 대중에게 배포되는 것을 반대한 당시와 비교해보면 요즘은 많은 자료와 정보들이 투명하게 공개되어 발가벗겨진 상태다. 과학적인 분석을 동원하지 않더라도 자체 비교만 해도 많은 허구성이 드러나고 있다. 성경 구절의 앞뒤 문장이 어긋나는 경우가 많고, 과학적, 역사적 오류 때문에 그 당시의 인간이 쓴 신화에 불과하다는 느낌을 떨치기 힘들다. 현대 수준에 맞춰 수정해야 할텐데 라는 생각도 많이 든다.
삶과 죽음에 대한 화두는 종교인이든 비종교이든 누구에게나 던져지는 고민거리다. 특히 사후 세계와 신의 의미의 모호성에 불안해하는 사람이 많다. 심도 있는 진리에 대한 고찰로 사후세계의 허황됨과 신의 의미를 정확히 파악하고 거기에 걸맞은 삶을 설계하라는 주문을 한다. 자신의 운명을 미지의 존재에 맡기지 않고 담대하게 받아들이고, 자력으로 정상적이고 긍정적인 삶을 살아가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과학과 지식의 발달로 세상이 변하고 있다. 과거의 모순을 인정하고 새로운 신성의 의미를 파악하는 통찰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종교가 내세우는 경전에 대해 바로보기가 필요하다. 저자의 <하나님과의 대화>가 좋은 안내자가 되어 줄 것이다.
.*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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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단순한 '하나님과의 대화'가 아니다. 절실한 기독교 신앙을 가진 신자가 하나님과의 대화를 나눈 간증형식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런데 책을 읽으며 정말 작가님이 얼마나 성서를 많이 읽고 연구하고 공부했는지 알 수 있었다. 40년 모태신앙인인 내 자신이 너무 부끄럽게 느껴질 정도였다. 살면서 이토록 성서를 자세하게 읽고 분석하고 비교한 책이 있었나 싶다.
하나님을 알고 싶어하고, 하나님과 대화하고 싶어하면서도 그동안 바쁘다는 걸 핑계삼아 성경을 읽는 것을 게을리했다. 주일 예배시간에 목사님께서 읽어주시는 성경말씀을 위로삼아 그래도 나는 교회 다니는 신자라고, 착한 마음을 가진 신자라고, 늘 기도하는 신자라고 자만하며 살았다. 그런데 책을 읽으며 철저히 반성하고 회개했다. 내가 모르는 부분이 너무 많았다. 새해가 되면 늘 성경 일독을 우선순위로 계획을 세우고 말씀을 읽지만 수박겉핥기 식으로 읽었던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며 내가 성경을 제대로 읽었던 적이 있던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책이 조금 두께감이 있지만, 하나님에 대해 알고자 하는 분이라면 전혀 부담없이 읽을 수 있다. 내용도 어렵지 않아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다. 작가님의 생각을 쭉 써내려간 책이 아닌, 4명의 화자를 등장시킴으로써 보다 여러 각도에서 다양한 시각과 관점으로 생각할 수 있게 해준다. 작가님의 회사이름에서 따온 두레스킴, 모세와 랍비의 이름에서 착안된 라바모스, 과학자인 아인스호키, 바우로라는 세례명을 가진 고등학교 친구덕분에 상정된 바우류당이라는 4명의 대화자가 구약성경의 가치와 모순에 대해서, 그리고 신약성경의 의미와 한계, 사후세계에 대한 오해, 신의 정의라는 커다란 네 가지 주제에 대해서 아주 열띤 토론을 펼치는 식으로 책이 전개된다.
사실 이제 막 하나님을 알아가는 성도라면, 또는 신에 대한 의심이 많은 분이라면 이 책을 읽고 조금은 시험에 들 수 있겠다 싶었다. 처음에 책을 읽으면서 구약성경을 이스라엘의 역사로 알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으로만 굳게 믿고 있던 나도, 성경의 오류와 모순에 대한 부분을 받아들인다는게 어렵고 두렵기도 했다. 정말 시험에 들까봐 무서웠다. 그런데 과학적으로, 역사적으로 볼때 구약성경의 잘못된 점이 있다면 성직자들이 바로 잡고, 누구에게나 권할 수 있는 경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바로 작가님 의 의도라는 걸 이해하고 깨닫게 되었다. 올해는 더욱더 말씀읽기에 열심을 내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한 책이었기에 너무 감사하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제공받아 솔직하게 서평을 작성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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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지원받아 작성한 솔직한 후기입니다>
최근에 전 지구의 7대 종교에 대한 책을 보았던 게 어렴풋이 기억난다. 유대교, 힌두교, 불교, 도교, 천주교, 개신교, 이슬람교를 7대 종교로 분류하고 그 종교의 기원 유일신여부 신앙체계 경전 기념일 신도의 일상 등등 일반인이 이해하기 쉽게 풀어쓴 책이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나이 50이 다 되어 가도록 종교를 가져본 적이 없다. 아내도 종교가 없고 아이도 종교가 없다. 어머니도 종교가 없으시고 내 형제들도 없다. 아버지쪽 친지 쪽에는 '교회' 그러니까 개신교를 믿으시는 분이 몇 분 계신다.
여러가지 종교가 있고, 또 우리나라 사람들로서는 '종교'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는 '도교'를 하나의 종교로 분류하고, 또 종교의 자유가 있는 나라가 아마도 전 세계적으로 대부분일 것이며, '유신론자' '무신론자'와는 별개로 '종교를 가지지 않은 자'의 비율도 전세계든 우리나라든 적지 않은 수라는 것 등을 다 종합해서 생각해보면, 결국 이건 문화의 하나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같은 종교라도 세계 각지로 퍼지면서 각 나라의 문화와 전통 및 풍습에 따라 적지 않게 변형되어 유지되고 강화되어오는 것 같다.
이게 맞다, 저게 맞다, 이게 진리고 저건 틀렸다라는 주장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본다. 그저 믿음일 뿐이다.
"그래 너는 그렇게 믿는구나 알았다 하지만 난 이렇게 믿는다" 이런 태도면 족하지 않을까.
저자의 선의를 믿는다. 저자가 '진리를 파헤치려고 저의 40여년에 걸친 귀중한 시간을 허비하였다'라는 취지의 문구로 서문을 적고 있어서 약간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진리를 구하는 시간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는 관점을 가지시길 기원드린다. 저자의 바램대로 이 책이 진정한 종교 혁명의 조그마한 밀알과 불씨가 될 수 있다면 이 얼마나 높은 가치가 있는 것인가.
비판은 죽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살리려고 하는 것임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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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만 보고 이 책을 골랐다면 아마도 두 가지 부류로 갈라질 것이다. 한 부류는 이 책에 대해 불쾌한 마음을 가지며 마치 리처드 도킨스의 책처럼 생각할 것이다. 또 한 부류는 이 책이 기존의 종교가 말하는 하나님이 아닌 새로운 차원 속에서 말해지는 하나님이기에 무언가 새로운 것을 찾는 사람에게 조금의 희망적인 책이 될 것이다. 문제는 이 책이 과연 저자가 말하듯 예수께서 말하셨던 존재의 본질, 사후 세계, 그리고 우리 모두 하나님이라는 진리를 깨우치고 사랑의 원심력을 키워나가는 방향으로 종교의 방향타를 잡게 되는가이다.
물론 읽는 자의 개인차가 있겠지만, 자신이 쓴 글을 통해 모든 이들이 자신과 같은 신의 진리를 깨닫고 그가 원하는 경지에는 이르지는 못할 것이다. 즉 이 말은 저자의 말 또한 신존재에 대한 하나의 설명이나 철학적 추론이나 가설이기 때문이다.
이 책을 처음 읽어 나가면서 기존 종교에 매우 화가 나있고, 종교가 저지른 실수나 죄악들을 보고 종교의 근간이 되는 신까지도 부정하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저자 나름 종교에 대해 많이 연구하고, 책을 읽으며 고민한 흔적이 보인다. 저자는 특이한 경험을 했는데 초등학교 5학년 때 증조부모께서 돌아가실 때 처음 죽음의 공포를 경험했고, 그러던 가운데 1977년 봄 대학교 정문을 넘어설 때 마른 하늘의 벼락을 맞고 살아나는 희한한 경험까지 하였다. 정신 없이 쿠사(KUSA, 유네스코학생회)라는 학회의 사무실로 뛰어들어간 그는 무의식 상태에서 무언가를 적게 된다. 그때의 쪽지는 잊어 버렸지만 적힌 내용은 이러하다. “모든 존재는 육체, 정신 그리고 영으로 구성되어 있다. 피로를 느끼는 육체와 정신은 사라진다. 하지만 태초부터 있었고 영원히 존재하는 영이 모든 존재의 본질이며, 이것은 결코 죽지 않고 존속하게 된다”
여기에 대한 해답을 찾고자 저자는 무수한 세월 속에 종교 책들을 섭렵하였고, 다양한 종류의 경전을 접했으며, 또한 철학자들은 이 문제를 어떤 식으로 다루었는지를 연구하며 동서양 철학 책들을 골고루 읽고 접하는 기회를 가졌다. 이런 배경 속에 그는 모든 존재가 하나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고, 정신이 배제된 영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는 경지에 이르게 된다. 그 후 저자는 비교종교학 책인 '영과 영'이라는 책을 출간 했으며, 출간 직후 스티븐 호킹의 『위대한 설계』라는 책을 읽으며, 자연법칙 속에 종교적 질문을 포함한 사회과학 분야의 담론에 대한 해답이 있을 거라는 확신 속에 하나의 문구를 발견하며 본 책을 저술하는데 큰 도움을 얻게 된다. 그 문구는 이러하다.
"모든 물질은 그에 대응하는 반물질을 갖고 있으며, 이들이 서로 교류하면 원래의 상태인 영(零, zero)으로 사라진다"
불교의 공(空) 사상과 흡사한 개념이다. 아무튼 저자는 스티븐 호킹을 통해 저자는 자신이 간구했던 질문에 대한 해답을 또다시 얻게 되었고, 그 해답으로 종교를 포함한 사회과학의 법칙과 자연과학의 법칙이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긴밀한 연관성을 갖고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그리하여 자신이 꿈꿔오던 책을 준비하며 약 3개월의 기간 동안 단 한 번도 텔레비전을 보지 않는 가운데 하루에 15-18시간씩 집필을 하게 된다. 그때 저자는 특이한 경험을 또 한 번 하게 되었는데 그건 잠시 머리를 식히는 동안 지속적으로 단어나 짧은 문장이 발상이나 착상을 통해 뇌리에 전달되고, 이를 찾으면 문장이 완성되는 경험을 한다. 꿈을 통해서도 책의 내용과 구성에 대한 아이디어도 재시되었다고 한다.
이 정도 설명이면 저자에 대한 선이해가 되었을 거라고 본다. 존재 본연의 진리를 찾고자 하는 열정은 가히 어떤 신학자보다, 종교인보다 열성적이다. 많은 지식들을 섭렵한 가운데 책을 구성한 흔적들이 곳곳에 보인다.
문제는 저자가 생각한 하나님에 대한 견해이다. 그는 개신교, 유대교, 이슬람교의 근간이 되는 구약을 배제한다. 구약성경이 신약성경이나 쿠란과 함께할 수 없는 교리이며 이 책(구약성경)과 결별을 선언해야 한다고까지 말한다. 구약성경에 대한 모순을 분석하는데 많은 할애를 하며 예민하게 성경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짚어낸다. 더불어 신약성경에 관해, 예수에 대해 문제점을 지적하고, 현 바울의 사상이 어떻게 기독교의 기본 교리로 자리 잡게된 사실을 설명하면서 사후세계에 대한 허구성을 드러내고 있다. 천국과 지옥의 기존 개념은 허구이며, 예수가 실현하고자 했던 것은 '이승에 천국을 실현'하는 것이기에 종교지도자들에 의해 잘못 가르침을 받아온 고대 우화와 같은 얘기에서 빨리 집착을 버릴 필요가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 이 책은 기존의 기독교가 가르쳐온, 창조론, 동정녀 탄생, 부활에 대한 개념을 사그리 무너뜨린다. 소위 또 다른 안티 기독교의 모습이다. 예전 마르키온파(Marcionism)란 이단이 있었다. 그는 구약성경의 하나님과 신약성경의 하나님은 전혀 다른 분이라고 말했다. 즉 구약의 하나님은 폭력과 복수의 잔인한 하나님이고, 신약의 하나님은 사랑과 정의와 용서의 신이라고 말하며 구약성경을 배제한 가르침을 전했다. 그런 그의 사상은 7세기경에 사라졌지만 그 잔재는 이렇게 지금까지도 존재하고 있다.
많은 지식과 정보를 활용하여 신에 대해 정리를 내리며 기존 기독교에 대해 따끔한 충고와 오류를 짚어주는 저자의 노고에 기독교는 무언가 귀담아 들을 내용들이 충분히 있다. 그 어느 책보다도 성경을 비판적으로 읽으려고 노력한 책이며, 구약성경을 근간으로한 종교를 완전히 짓밟아 감으로 종교 본연의 모습을 가져오려고 하였다. 문제는 성경이 가진 문장을 인간적 이해나, 지성으로 파헤친다고 해서 그가 성경에 대한 전지적 이해를 하였다고 볼 수는 없는 것이다.
신약성경에 보면 베드로후서 3:16절에 이런 말씀이 있다. "또 그 모든 편지에도 이런 일에 관하여 말하였으되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
이 말씀이 뜻하는 바는 함부로 성경을 재단하지 말라는 것이다. 물론 성경의 오류에 대해 무조건 눈감고 받아들이라는 것이 아니다. 맹목적인 종교는 기존 종교에서도 타파하고자 한다. 물론 그렇게 하더라도 맹목적인 사람들은 존재한다. 문제는 저자처럼 성경을 재단하며 성경을 비판적으로 대함으로 성경이 정말 인간에게 주고자 하는 진리에서 멀리 떨어진 존재로 전락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시인 중에 20세기 시인 중 가장 영향력 있는 에즈라 파운드라는 시인이 이런 말을 했다. "어느 누구도 이해하기 힘든 심오한 책은 그 내용의 일부를 실제로 보거나 체험하기 전까지는 참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저자의 시선으로 보면 모든 것이 문제 투성이며 오류이지만 신앙의 눈으로 보면 그 모든 것에서 신의 옷자락을 만지며 신의 숨결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저자의 말처럼 구약의 하나님이 마치 유대나라의 민족신정도로 치부될 정도로 성경이 그렇게 조약하게 적혀 있지 않다. 언젠가 저자가 성경에서 말하는 신적 체험을 하게 되는 날, 그는 성경을 달리보는 눈을 가지리라 생각된다.
리처드 도킨스, C.S. 루이스 그리고 삶의 의미라는 책의 글귀를 끝으로 이 책 서평을 마치고자 한다. "각각은 삶의 일부를 밝혀주지만, 전부는 아니다. 과학은 선한 사람이 되는 방법을 말해주지 않으며, 기독교는 자연의 기초물리상수의 가치를 말해주지 않는다. 그러나 둘을 합쳐 생각한다면 더 큰 그림을 볼 수 있다. 그 둘은 서로를 용납함으로써 서로를 풍성하게 할 필요가 있다." (40쪽)
"모든 인간은 신의 형상으로, 신의 현현으로 창조됐다. 이 형상은 모든 인간이 죄를 지었을지라도 간직하고 있는 인간의 고유한 특징이다. 신의 형상은 인간의 본성 안에 존재한다. 인간이기 때문에 그는 신의 형상이며, 바로 신이다. 인간이 신의 형상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은, 인간이 다른 인간에 대하 존엄성의 기초라는 것이다. 인간은 신을 알고 사랑하고 순종할 뿐만 아니라 신의 형상을 지닌 동료 인간들을 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바로 이것이 진정한 신에 대한 사랑의 완성이다." -p447
-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