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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선진국'이라는 말을 들으면 손발이 오그라든다. 언제부턴가 어색하지 않게 '선진국'이라는 말을 쉽게 사용하는 듯 하다. 한류로 인해 문화적 위상이 높아지고 경제에 관한 자부심이 높아지면서, 특히나 젊은 층 사이에서는 거부감 없이 사용되는 단어다. 또, 이미 어느정도 경제적 업적을 이룬 나이 많은 세대에게도 '이제는 선진국'이라는 말을 쉽게 들을 수 있다. 2000년 대 초에 한창 유행하던 말있다. 어떤 문제가 있을 때마다 우스께 소리로 TV에서 나오던 말이다. '이렇게 해서 선진국이 될 수 있겠어?' 아마 이 말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말을 빌려 유행된 유행어 인듯 하다. 이와 비슷한 말로는 '이러니까 우리가 선진국이 안되는 거야'로도 사용된다. 90년 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의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이런 대사들이 꽤 자주 등장한다. 그런데 이제는 '한국은 선진국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일부 사람들에게 거부감이 드는 표현이 되기도 했다. 내가 첫사회 생활을 시작했던 곳은 '뉴질랜드'다. 그곳에서는 각종 알바부터 관리직까지 다양한 일을 했다. 흔히 'Flyer'라고 불리는 길거리 사람들에게 '전단지' 돌리는 알바, 'Glassie'라고 불리는 'Bar/Club'에서 빨간 헝급으로 컵 닦는 알바, 현지 학교와 아파트를 청소하는 알바, 면장갑 하나 들고가서 정원을 다듬어 주는 알바, 주차장 안내원, 마트 캐셔, 주방 설거지까지... 얼핏 생각하기에도 이 정도지만, 말도 안통하는 해외로 나가서 했던 알바와 직장생활은 생각보다 길고 많다. 인생이라는게 참 알 수 없는게, 이런 다양한 해외 현지 경험을 하고서 한국에서도 특별한 경험들을 했다. 중견기업 인사담당자, 경리회계 사무직, 구매대행업체 클레임 담당, 독일외제차 서비스 인사, 수출업, 농사, 교육업 그리고 도서 출판 등. 나이가 많다고 할 수 없지만 국내취업, 해외취업, 정규직, 비정규직, 국내외 알바, 농사, 강사 등 별의 별 경험을 국내외에서 겪다보니 분명하게 보여지는 차이가 있다. 어린시절부터 나는 통계화된 자료를 좋아했다. 중고등학교 학창시절에서도 'Developed countries', 'Advanced countries', Developing countries' 등의 단어를 구글에 검색하곤 했다. 또한 국가나 사회에 대한 통계와 자료를 한 동안 들여다 보며 자료를 모아두는게 취미였을 정도다. 다른 친구들과는 다르게 관련 온라인 카페에서 활동하며 나름 많은 자료를 보고 모으기도 했다. 그러다보니 누군가가 '한국은 선진국이다'를 '참의 명제'로 받아들이는 날이 왔다는 사실이 격세지감이다. 20대 초반 해외로 나가 30대까지 젊은 시절을 보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다는 이 기간동안 생각하는 방식과 살아가는 방식이 꽤 많이 달라졌다. 일하면서 사용하는 단어는 '한국어'보다 '영어'로 먼저 접하게 되는 단어가 많았고, 지금도 '영어'로 먼저 접했던 단어는 한국어로 쉽게 떠오르진 않는다. 당시 4년 간 해외에서 동양인도 흔치 않은 환경에서 살다가 처음 한국으로 휴가를 받고 서울에 거주하던 기억이 떠오른다. 아마 당시 나의 시선은 해외 외국인들의 시선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서울의 첫인상은 '무례하다. 바쁘다. 무표정하다'였다. 그리고 하나 또 하나의 생각은 독특하게도 2가지가 없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장애인, 쓰레기통' 물론 여러가지 있는 것과 없는 것을 비교해보자면 한도 끝도 없지만, 당시 강한 인상을 받았던 것은 이것이었다. 해외에서 알바와 일을 할 때, 생각보다 쉽게 만날 수 있는 것들은 '외국인, 장애인, 노인'과 같은 당양한 사람들이었다. 다만 한국에서는 일을하면 비슷한 또래의 사람들, 비슷한 경험을 갖고 있고 같은 사람들 뿐이었다. 특히나 현지에서는 학교, 직장, 도서관 등 어딜 가도 장애인을 만날 수 있었는데, 한국에서는 쉽지가 않았다. 내가 일했던 Bar에서 아예 말을 하지 못하고 '소리' 정도만 내는 '마오리 언어 장애인'이 있었다. 지금도 기억이 나지만, 그가 사회생활을 하는데 결코 불편함이 없어 보였다. 인간관계나 사회생활에서도 전혀 불편함이 없었다. 신체의 장애는 있지만 사회적인 장애가 없었기에, 같이 일하는 이들도 그를 특별하게 보지 않았던 것 같다. 심지어 불편할 수 있는 농담을 서로 주고 받으며 웃는 모습이 특이하기까지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흔히 '차별적 발언'이라는 수위 높을 수 있는 농담이 통용되기 위해서 그 사회는 얼마나 '장애'라는 인식에 '불편함'이 없는지 알 수 있었다. 유학하던 당시 나의 가장 친한 친구는 '싱가포르인'이었다. 그는 한국의 문화에 굉장한 관심을 가졌다. 그러다 우연히 당시 한국의 최저임금 이야기가 나왔다. 당시 대한민국의 최저임금은 4,000원이었다. 친구는 절대 그럴 수 없다며 이를 믿지 않았다. 1시간을 일하고도 햄버거 하나 못사먹는게 말이되냐는 식이었다. 그게 왜 이상한지 이해를 못하는 나와 그게 왜 당연한지 이해를 못하는 그와의 생각의 차이는 엄청나게 깊었다. 간국의 경제력에 비하면 터무늬 없다고 했다. 당시 호주의 최저임금은 2~30불인 경우도 많았고 뉴질랜드도 11~14불 사이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현지 교포와도 관계가 꽤 있었는데, 그들이 한국으로 여행을 가면 하는 얘기는 분명하게 있었다. "왜 쓰레기 통이 없어?" 한국의 길거리에 쓰레기통이 없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 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만, 생각보다 불편한 일이다. 한국에 쓰레기통이 없는 이유는 시민들이 생활 쓰레기를 자꾸 버림으로 관리가 없어진 탓이다. 간혹 지하철 화장실에 가면 종종 화장실에서 발생하기 힘든 쓰레기들이 보이기도 하는데, 변기 옆에 있는 쓰레기통에 온갖 쓰레기를 버리는 이유도 있는 듯 했다. 도서관이나 지하철에는 빈번하게 '화장지'를 훔쳐가는 경우도 많아서 화장지를 열쇠로 잠궈 놓는 경우도 많고 때에 따라서는 화장지가 비치가 안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지금도 한국의 경제력에 관해서는 어느 나라에가서도 자부심이 느껴진다. 또한 일부 사회에 대한 인식은 우리가 선진국으로 알고 지내던 기타 선진국들과도 비슷하다. 다시 또 어떤 부분은 그렇지 않다. 우리 사회가 이 정도로 올라와서 보니, 우리가 선진국이라고 동경하던 국가들도 비슷한 양면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미국, 이탈리아, 스페인, 일본 등 선진국이라고 여겨오던 이들이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은 점을 보다보면 '선진국' 별게 있나. 싶기도 하다. '선진국'이라는 말은 굉장히 모호하다. '당신은 좋은 사람입니까'라고 묻는다면, "어떤 부분에서는 좋은 사람이지만 어떤 부분에서는 아닐 수도 있겠네요."라고 말 할 수 밖에 없다. 직원으로써의 평가는 어떻고, 가족 구성원으로써는 어떠하며, 친구로써는 어떤지, 모든 분야를 따지고 봐서 하나로 정의 할 수 없다. 우리는 복지에 관해서는 북유럽과 비교하고 경제에 관해서는 서유럽과 비교한다. 군사력에 대해서는 '미, 중, 일'과 비교한다. 세계 최강의 국가와 비교하기에 언제나 우리는 선진국이 아니다. 이는 좋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솔직한 개인적인 생각을 담아두자면, '대한민국은 아직 개발도상국다'가 내 생각이다. 이 말에 기분이 나쁠 수는 있으나, 개발도상국에서 '도상'이라는 말은 '어떤 일이 진행되는 과정이나 도중'을 의미한다. 한국은 아직 현재 진행형이며, 아직도 개선해야 할 많은 사회, 경제, 정치적 부분이 존재한다. 우리가 '선진국'이라면 '완성형'이어야 한다. 아직 그렇지 않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책은 객관적인 통계자료를 통해 한국이 갖고 있는 여러 문제에 대해 보여준다. 여성에 대한, 장애인에 대한, 노인에 대한, 농어촌에 대한 아직까지의 대한민국의 현상과 민낮에 대해 시원하게 까발리고 정리해 뒀다. 두꺼운 책임에도 불구하고 쉽게 읽히고 볼거리가 많다. 현재의 우리를 알고 싶어하는 현대인들에게 한 번 쯤 우리 위치를 확인하기 좋은 책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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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끊임없이 변하고, 사람들의 변덕도 덩달아 끝이 없다. 하루 조용할 날이 없는 것이 세상이다. 그런 일상의 작은 기쁨에 즐거워하고 슬픔과 아픔을 가슴에 품고 사람들은 살아간다. 그것이 대한민국만의 일도 아니다. 내가 돌아다녀본 다른 나라도 비슷하다. 정도의 차이가 축적되고 그 지표의 대표적인 수치인 화폐적 계량 평가를 통해서 선진국, 중진국, 후진국을 말하는 것이 어떤 면에서는 더 혼란스럽다. 여러 나라를 가보면 물질적으로 한국보다 못하지만 살만한고 마음 따뜻한 곳이 있고, 잘 살아도 이런 곳은 못살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런 생각이 나에게 다가오는 이유를 생각해보면 사회와 문화가 만든 영향에 대한 느낌과 생각이다.
종종 어린 시절의 사회를 기억해보고, 현재를 보면 우리는 편리함과 넉넉함을 돈이란 수단으로 바꾸며 각박해진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인간의 문화와 문명이 정확성과 합리성이란 이름하게 조금씩 재수 없게 변해간다는 점인데 인간이 그렇게 완벽하지 못한다는 점을 보면 부작용이라고 할 수 있다. 부작용의 원인은 탐욕이 근간에 자리 잡는다.
책의 서두는 경제적 지표인 소득, 성장을 통해서 전후 60년 가까이 우리가 얼마나 큰 성장과 성과를 이루었는지 말하고 있다. 현재 할아버지, 할버니 세대의 부모 시절부터 열심히 일하고 노력한 결과다. 현재는 열심히 해도 쉽지가 않다고 느끼는 점이다. 이런 부분에 정치적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다. 돈과 데이터는 좌우가 없다. 해석과 관점에 좌우가 있을 뿐인데 자신의 해석을 바탕으로 돈과 데이터에 좌우란 구시대적 개념을 더해 편견을 증폭하고 대중을 선동하는 것이 문제다. 그렇다고 국민들에게 편익이 돌아가는 경우보다 중간에 일명 슈킹, 와이로를 먹었다는 사실을 통해 앞뒤가 안 맞는 세상의 현실을 바라볼 때가 많다. 우리 사회의 수준이다.
그럼 물질적으로 성장했는데 사람들은 왜 불평등하다고 생각할까? 최소한 전보다 나아진 것 아닐까? 내가 접한 작은 세상을 봐도 30-40년 사이에도 물질적으로 크게 성장했다. 그런데 사람 인심은 훨씬 사나워지고 재수 없다는 생각을 금할 길 없다. 이런 느낌은 비관적인 나의 관점일까? 그럴 수도 있다. 동시에 물질적 발전과 대비해 뭔가 제대로 함께 성장하지 못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 한 가지가 의식 수준 즉 문화 수준이란 생각을 한다. 책 속에 소득계층, 청년, 노인, 외국인, 여성들에 대한 불평등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아쉬운 점이라면 마땅한 해결책이 안타까운 현재의 적나라한 데이터와 사실이란 점이다.
세상이 발전한다는 말을 고도화라고 한다. 대부분의 고도화는 계산적 분석이 더 복잡해지고, 정확해지는 경향이 있다. 이 말을 쉽게 하면 예전에 콩나물을 사면 아줌마가 집는 손의 크기와 인심(=나의 태도가 미치는 영향)에 비례했다면, 지금은 비닐 봉다리에 저울로 정확한 양이 포장된 상태로 만인이 평등한 것처럼 느끼게 되었다는 점이다. 만인이 평등한지는 좀 생각해 볼 일이다. 특히 개인적 역량이 발휘될 기회가 원천 봉쇄되었다는 점이다. 다른 관점에서는 협상의 기회가 없음으로 판매자가 가격을 결정하고 휘두르면 대다수가 속수무책이다. 가끔 불매 운동과 같은 일이 있지만 개인들이 시스템에 영향을 주기 대단히 어려운 구조가 된다. 아줌마나 회사나 정책을 바꾸면 소비자들은 멘붕이나 불만이 생길 수 있다. 그러나 아줌마랑은 쌈박질을 하던, 협상을 하던, 뭔가 협의해서 결과를 도출하기 위한 접근성이 있다면, 회사에 대해서 소비자가 뭘 한다는 것은 어렵다. 용기 있는 자가 소비자 보호원에 신고를 해도 결과가 아니라 업체에 권고 수준일 뿐이다. 이런 시스템이 갖는 구조적 특성에 대해서는 특별히 알려주는 곳이 없다. 단지 시스템이 주는 장점만 이야기한다. 불평등은 그 이면에 수도꼭지를 잠그고, 틀 수 있는 권한과 반드시 연결된다. 이것이 다시 권력, 계층, 권한과 연계될 소지가 높다는 생각을 한다. 동시에 시스템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람과 기관이 힘을 갖는다. 요즘 개혁이라 말하며 그 대상을 말하는 것을 보면 그렇다고 생각이 들지 않는가?
시스템을 도입하면 일정한 포기도 수반되고, 성장 집중이란 결과를 낳기도 한다. 문제는 기분이 나빠지고 억울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출현한다는 것이다. 그들의 출현이 통계적 자료를 통해서 근거가 있다는 생각을 한다. 일부는 그런 사회적 제도와 시스템에 익숙해져 가고, 누군가는 반발하고, 그렇게 당장의 기분은 나쁘지만 생존이란 문제 속에 무엇이 문제인지 잊고 살아가기 바쁘다.
이렇게 사람들을 몰아가는 시스템은 비문명적이고 비인간적이다. 그렇다고 세상 모든 사람들이 이것을 이해하는 것도 아니다. 내가 세상을 볼 때 매트릭스 영화를 자꾸 생각하게 되는 이유다. 세상은 생산과 분배가 균형을 이루고, 이 생산과 분배를 조율하는 국가 관리들의 카르텔(공무원이 갈수록 가장 강력한 이익집단이란 생각이 들기도 함)이 최대 효과만 신경 쓸 것이 아니라, 사안에 따라선 최대의 사람에게 또는 필요한 사람에게 자원이 집중되거나 분배되는 것도 필요하다. 일관성 있게 획일적인 것도 필요하지만 이것만큼 사람 맛을 보내는 일도 없다. 그렇게 해야 할 일도 있지만 사람에 관한 일은 융통성이 필요하고 이것을 제도화하기엔 인간의 역량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워낙 서로 변덕스럽기 때문에) 사실 국가사업 예산 중 공무원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소진하는 비용이 민간기업들의 프로젝트와 비교해서 얼마나 뛰어난지 의문이다. 영업으로 보면 판매관리비와 같은 비중이 높을 수 있다. 높아야 하는 분야도 있지만 세금 거둬서 정말 자기 집안일하듯 하면 많이 바뀔 소지가 있다. 요즘 걸핏하면 전화기에 나타나는 허경영의 말이 과하지만 관료들과 나라의 녹을 먹는 사람들이 되돌아볼 부분이 많다. 그가 틀렸다고 반박하기 어려운 부분이 존재한다.
회사를 다니며 출장비 기준을 보면 임원, 팀장, 팀원들의 기준이 다르다. 숙박비의 기준은 업체 미팅 대상에 따라 달라지고, 직원들과 기업의 체면을 위해서 한도가 다르게 책정될 수 있다. 내가 제일 불만족스러웠던 부분은 체류비(식대, 교통비) 부분이다. 임원은 하루에 10 끼 먹고, 직원은 3 끼 먹나? 기본 비용은 비슷하다. 식사 대접의 경우에는 별도 비용 처리를 한다면 기본 지급비용은 사실 거의 비슷해야 한다. 내가 임원이 되어 회의상에서 해 본 말이다. 차라리 임원 입장에서도 얼마 안 되는 비용을 줄여 함께 더 잘하기 위한 비용으로 사용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그런데 세상에 나와보면 그런 일은 참 드물다. 심지어 악착같은 사람들이 더 많다. 한편으로 불평등에 대한 피해의식이고 한편으로는 남들도 가능하니 나도 그렇게 악착같이 탐욕 때문에 불평등을 가속한다. 동물의 세계와 무엇이 다른가? 세상의 약자에 대한 복지는 다른가? 기업도 세상 속에 있고, 세상의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평상시 '아이들이 미래다'라는 말을 많이 하지는 않지만 아이들과 청춘들이 즐겁고, 미래에 대한 꿈과 희망을 가질 수 있는 환경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들의 문화를 통해 미래를 상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살던 20대를 돌아보다 지금의 20대들의 문화를 단편적으로 보면 글쎄? 미안함? 20년 뒤 미래에 대한 걱정 그런 생각이 들 때가 많다. 그렇다고 희망이 없는 것도 아니다. 그들이 세상의 미래인데 미래가 떡잎이 누렇게 떠서 황달이 오르는 사회가 희망을 잉태할 수 있을까? 많은 사람들이 매체에다 이 문제가 중요하다고 하지만 정작 좋은 효과가 나오는 것은 별로 없다. 아님 내가 잘 모를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불평등 뒤집어 생각하면 공정(특정 정당의 의미와는 전혀 다른 사전적 의미)이란 의미가 세상에 더 넓게 활용될 필요가 있다. 정치에서 공정은 마치 "공격은 정확하게"라는 수단과 말장난이란 생각을 더 많이 한다. 효과와 결과가 고도화된 사회만큼 측정이 되어야지...
통계 자료를 보면 우리나라 전체의 부는 증가했다. 그런데 한 마을의 부자는 한 명이고 나머지 마을 사람들이 소작농이라면 아니 그런 세상을 향해 달려간다면 모두들 좋아할 일인가? 그래서 제도와 법률이 세상의 변화에 맞춰 변화해야 한다. 그렇게 변화해도 사람들은 생존을 위해서 정책이 나오면 대책을 낸다. 한 발 느리지만 제도와 법률이 따라가면 사람들의 행동이 변하고 사회적 문화에 영향을 준다. 불평등은 어쩌면 세상의 변화와 흐름들을 모르거나 반대하는 사람들의 목소리 크기만큼 커질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그 크기만큼 사회적 문화도 물질적 수준에 비해 떨어지는 일이다. 사회적 문제를 바라보면 현재 우리나라가 졸부의 위치에 다다랐고, 졸부로 끝날 것인가 아니면 정말 그 이상의 과정을 걸을 것인가의 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할 시점이란 생각을 한다. 배부른 소크라테스는 없다. 배부른 돼지와 헝그리 한 소크라테스의 이전투구는 계속될 뿐이다.
#불평등한선진국 #고도화 #법과제도 #문화 #독서 #리뷰어클럽 #Yes24 #khori
Yes24 리뷰어 클럽에서 도서를 지원받았습니다. 각 챕터별 통계지표들이 세상을 보는 안목을 넓혀주고, 가끔 잊고 사는 현실속에서 스스로를 반성하기도 합니다. 책은 자료와 함께 설명이라 쉽게 읽히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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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등의 선진국
이 책의 제목은 <불평등한 선진국> 쓰고, <불평등의 선진국>이라 읽을 수도 있겠다. 지은이는 대한민국의 불평등을 통계로 본다고 했다. 통계는 조사 목적에 따라 수치가 달라질 수도 있지만, 이 책의 핵심은 통계는 시각적으로 보는 이들에게 이해가 쉽도록 사용한 도구, 즉, 주장을 뒷받침하는 수치로서가 아니라, 대개 상황이 이러하다는 총론적 이해를 돕기 위함인 듯하다. 산재만인율, 실업률 등등...
그리고 이 책의 결론은 글을 마치며 ? 불평등한 선진국 대한민국에서-에 담겨있다. 구구절절 자신의 이제껏 한국 사회를 경험하면서 이리 보고 저리 보고 위에서 또 밑에서 보고, 그것도 모자란 듯 조목조목 뜯어본다. 빈곤율, 상대적, 중분위, 그리고 중산층의 환상까지도 지금까지 경제지에서 시사잡지에서 부문별로 다루던 내용을 총체적으로 묶어서 다뤘다는 점 또한 큰 노력의 흔적이 역력히 보인다.
구절구절, 면면을 톺아볼수록 선진국이라 부르기 어렵다.
지은이는 반어법으로 “불평등한 선진국아니, 불평등의 선진국 대한민국”이라고 힘주어 말하고 있지는 않는지...
그러면 우리에게 선진국은 어떤 이미지일까?, 아직 사회적으로 합의된 기준이 있나?, 언론에서 떠들어 대는 수치 나열이 곧 선진국의 증거는 아닐 터, 선진국은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렵다. 대개 국가 경쟁력과 경제력, 잠재적 가능성 등을 기준으로 분류하는 방법이 있는가 하면, 인권을 기준으로, 삶의 질을 기준으로, 문화예술을 그 근거로 삼기도 한다. 선진국이란 개념에 관한 여러 다양한 의견들 가운데 “선진국의 기준”은 새롭게 정의해야 의견도 더해져, 선진국이란 무엇일까? 그 개념은 또 어떤 상태일까 라는 생각을 해볼 수 있는 계기라는 면에서는 이 책이 끼치는 영향이 클 듯하다.
선진국의 헛소리다!!, “선진국” 이라는 혹세무민, 견강부회의 극치, 언론의 시각들
한 언론[무등일보의 무등의 시각(2020.4.9.)]의 칼럼에서 말하는 선진국의 새로운 기준을 보자. 선진국. 경제가 고도로 발달해 다양한 산업과 복잡한 경제체제를 갖춘 국가라 한다. 또, 인류 문명 진보의 첨병이자 첨단 산업과 민주주의 보루라고 할 수 있다. 선진국으로 분류되는 나라는 더 많지만, 대체로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캐나다, 이탈리아, 일본 등 G7 국가를 꼽는다고 했다.
여기에 동의할 생각은 없지만, 좀 더 보자. 이들 나라 1인당 소득이 2만 달러 이상에 인구 2천만 명이 넘어야 한다. 이 기준이 선진국의 하한선이다. 여기에 또 두 가지의 조건, 교육수준과 문맹률, 평균 수명 등도 고려되고, ‘파리클럽’ 가입도 조건 중의 하나다. 이 그룹에 우리나라가 끼어들면서 G 10대 열에 들어섰다. UN이 한국을 중요 10대국에 넣었다고 하는데…….
아무튼, 한국의 GDP는 200여 개 국 중 12위, 복지가 잘 돼 있고, 민주주의 지수도 높아 OECD나 IMF도 선진국으로 분류한다. 그런데 우리나라도 선진국이다는 명제에 상당수의 국민은 아직 선진국이 아니라고 답한다. 선진국에 콤플렉스이자 아직 열강보다 제도나 복지, 노동정책, 등 상당 부분이 부족하다는 자조 섞인 판단…. 이 언론의 주장 핵심은 코로나 방역이 세계적인 모범이어서 국격이 올라갔다는 말도 빼놓지 않는다.
높은 자살률과 저출산으로 근본적으로 불안정한 나라가 어떻게 세계 10위 안에 드는 삶의 질이 높은 나라일까?, 한국의 진정한 모습은?
참으로 혹세무민이다. 견강부회도 이 정도일 수는 없을 것이다. 이 책을 이들에게 보내주고 싶을 정도다.
무역량이 많고, GDP가 얼마나 높던, 부익부 빈익빈의 고리가 엄연히 존재하는 한, 그들만의 리그다. 대한민국 국민에게 ‘선진국’의 기준을 물어본 적이 있는가?, 국민이 소외된 껍데기만 선진국인 한국 사회를 이 책은 조목조목 신랄하게 꼬집는다. 그것도 ~척하지 않고, 바로 쏴댄다. 시원스럽게….
이 책으로 돌아가서 보자. 모두 5부다. 1부 불평등한 선진국 대한민국은 지은이가 밝혔듯이 <세계불평등보고서2018>(파쿤도 알바레도, 토마 피케티 외, 장경덕 옮김, 글항아리, 2018)에서, 2부 대한민국 불평등의 근원, 노동(비정규직, 플랫폼, 특수형태 고용 등), 3부 불평등의 중심, 청년(네 개의 청춘, 불공정에서 불평등으로)은 조귀동<세습 중산층 사회>(생각하는 힘, 2020)에서 도움을 받았다고 적고 있다, 4부 불평등으로 해체되는 대한민국, 가족해체, 노인자살, 지방소멸, 5부 불평등이 향하는 곳, 소수자(이주노동자와 이주여성, 장애인, 여성차별, 모자 가구, 유리천장과 경력단절, 주거 취약계층)
온통 불평등의 바탕에는 신자유주의적 사고가...
이렇게 다루는 주제만 봐도, 정확하게 대한민국 불평등과 차별, 소득의 양극화, MZ세대라고 스스로를 그렇게 부르지 않는 청년들, 청년 정책에서 청년이 소외된 정책, 이 모든 것이 그럴 것인양하고 만들어낸 아젠다들 투성이 임을 지은이는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으며, 이 밑바탕에는 신자유주의가 여전히 힘을 발휘하면서 면면히 흐르고 있다는 점도 명확히 인식하고 있다.
지은이는 글 마무리에서 이를 모두 언급한다. 신문쪼가리에서 봤던, 보일 법한 주제들…. 한국 사회는 어디로 가고 있는지, 사회 안을 들여다보면 그 얼개가 도대체 어떻게 돼 있는지 궁금한 이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다만, 옥에도 티가 있는 법, 지은이가 의식했던 안 했든 간에 ‘근로자’ ‘노동자’의 구분법이 혼란스럽다. 고용계약과 노동계약은 그 주체가 다르지는 않지만, 그 개념의 의미는 사뭇 다르다는 점. 다소 아쉬운 점은 적절한 용어보다는 적확한 용어를 썼더라면 좋았을 것이라는…. 그렇다고 이 책의 내용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은 물론 아니다.
불평등의 근원을 노동문제로, 불평등의 중심에 청년이, 불평등으로 해체되는 대한민국, 가족해체와 노인자살 그리고 지방소멸, 불평등이 향하는 곳, 소수자 이렇게 압축적으로 대한민국의 민낯을 까발렸다. 촌철살인이다.
이렇게 영향력이 파급력이 클 것으로 보이는 아니 큰 책에서는 반드시 용어를 정확, 적확하게 표시, 표기해주십사 조심스레 부탁드려본다. 불법체류자가 아니라 미등록외국인으로. 때로는 언어가 그 쓰는 이의 생각을 투영하기도 한다는 점 때문에 그렇다.
<출판사에서 받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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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한 나라의 경제 수준을 평가하는 지표인 GDP 기준으로 대한민국은 세계 10위권이고, OECD 내 국제적인 위상도 그 정도 회의에 초대받을 만큼 올라섰다. IT 강국답게 노동자 1만 명당 산업용 로봇 사용량으로 따지는 로봇 밀집도는 세계 1위다.(107쪽) 비단 경제력뿐 아니라 최근에는 BTS, 오징어 게임, 기생충 등 한국 대중문화의 인기도 전 세계를 강타하여 국민의 자부심을 높였다. 숫자로 드러나지 않는 사회 전반적인 도덕 지수는 그만큼은 아니라고 보지만, 어쨌든 전쟁의 포화속에서 탄생한 분단국인 점을 감안하면 분명 대단한 성취라 하겠다. 박재용이 쓴 <불평등한 선진국>(부제 : 대한민국의 불평등을 통계로 보다)은 그러한 경제 성장의 어둠을 통계로 톺아보는 책이다. 통계는 가장 객관적인 잣대로 활용되어야 마땅하지만, 어떻게 만들고 어떻게 제시하느냐에 따라 오차도 많을 수 있다. 정치적으로 악용될 여지가 있단 이야기다. 이 책에 제시된 통계의 오류 몇 가지를 살펴보자. 1) 업무상 사고 재해율 0.5% - 우리나라는 산재보험에 따라 보상을 신청하고 승인을 받은 사람을 기준으로 통계를 낸다. 따라서 특수고용 노동자처럼 애초에 산재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노동자는 여기에서 누락된다. 2) 2020년 제외하고 지난 5년간 자영업 폐업률 11% 내외 - 폐업률은 가동사업자 수로 폐업사업자 수를 나눈 것인데, 비교적 오래 자영업을 하는 이들은 계속 버티고 있으니 전체 폐업률은 우리가 느끼는 것보다 확연히 낮게 나타난다. 3) 장애 출현율(장애인 수/전체 인구) 5.39% - OECD 국가 중 가장 작은 편. 이는 장애 판정의 기준이 다르기 때문으로, OECD 대부분의 국가 기준으로는 장애로 판정받아 공적 지원을 받을 수 있는 많은 이들이 우리나라에선 장애를 인정받지 못한다. 실업률은 말할 필요도 없고, 이쯤 되면 '눈 뜨고 코 베어 가는' 통계라고 할만하다.
우리는 악명 높은 통계를 익히 알고 있다. 낮은 출산율과 높은 자살률. 이 책을 통해, 보다 세부적으로 OECD 불명예 1위가 속출한다. 노인 자살률, 노령층의 상대적 빈곤율, 내국인 노동자와 외국인 노동자의 임금 격차, 국회의원 중 여성의원의 비율( '아! 대한민국'이란 유행가가 허망하고, 세계 10위권 국가라는 한국의 민낯이 밝혀지는 순간이다. 책을 정독할수록 읽기가 곤혹스러울 지경이다. 저자는 기밀이 아닌,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통계청 통계포털사이트를 비롯한 정부 자료에 근거해 <불평등한 선진국>을 완성했다. 여기 적시된 통계에도 오차가 생길 수 있음은 앞서 언급했고, 저자는 이런 통계만 잘 살펴봐도 대한민국의 현재 문제점을 적확히 파악할 수 있다는 취지로 이 책을 집필했다. 저자가 보기에 이미 대한민국은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전 세계 어디나 소득 불평등 심화가 화두긴 하지만 대한민국은 거기에 대한 정책적인 대비가 매우 부족하다. 박재용의 시선이 머무는 항목인 노동 / 청년 / 가족 해체 · 노인 · 지방 소멸 / 소수자(이주 노동자와 이주 여성, 장애인, 여성차별 등)로 나누어 본문을 구성하고 안타까운 통계를 제시하고 거기에 대한 설명을 이어간다. 특이하게 매 챕터나 부(部)가 끝날 때 '팩트 토론을 위한 간단 퀴즈'를 넣어 내용을 되새김질하는데, 무슨 교재도 아니고 왜 이런 편집을 했는지 좀 의아하다.
「부모의 부는 자식에게 당연히 이전된다. 어렸을 때부터 좋은 주거환경에서 남보다 앞선 교육의 기회를 제공받아 야구로 보면 이미 2, 3루에 위치해 있다. 좋은 대학교를 거쳐, (부모 찬스를 쓰든 안 쓰든) 좋은 직장을 잡고 비교적 풍족한 생활을 이어 나간다. 계약금이 없어 당첨된 분양권마저 포기해야 하는 서민들과는 다르게, 내 집 마련을 할 때도 든든한 부모의 지원을 받는다. 부가 세습된다면 같은 논리로 가난도 대물림된다. 이들이 상대적으로 고소득 일자리를 차지할 확률은 드물다. 오죽하면 '개천에서 용이 나는 시대는 지났다'라는 말을 하겠나. 치열한 취업 전쟁에 나서야 하고, 설사 일자리를 구한다 한들 임금 격차는 피할 수 없고, 열심히 살아도 나이 들면 노인 빈곤이란 현실에 처한다. 여기에 대한 부수적인 작용으로 1인 가구 증가와 출산율 저하는 운명이다.」 "이들의 노동은 경력이 되지 못하고 그저 소비될 뿐입니다." - 163쪽 너무 비관적인가? 책에 나온 무수히 많은 통계가 이런 라이프 사이클을 반영한다.
이미 여러 매체를 통해 많이 알려진 핵심적인 팩트(소득 불평등, 외국인 증가, 지방 소멸, 노인 빈곤, 청년 실업 등)를 입증하는 무수히 많은 통계를 반복해서 확인하고, 그 숫자들을 나열하며 설명하는 내용이 다소 지루하고, 중언부언의 느낌이 강하게 들기도 했다. 너무 많은 통계가 제시되다 보니 오히려 '뭣이 중한디?'란 생각도 들고. 방식을 살짝 달리해서 각 챕터의 가장 핵심적인 지표를 보여주는 대표 통계 A를 설정해 설명하고, 필요하면 A1, A2 정도 예시하는 방식이면 어땠을까? '팩트 토론을 위한 간단 퀴즈'보다는 간결하게 독자의 기억에 어필하지 않을까.
저자의 취지는 잘 알겠다. 그래서 이 나라의 선장을 뽑는 대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단 생각이다. 대한민국의 불평등을 통계로 보면서 수치스럽다 느끼기보다는 실행 가능한 개선책을 찾아야 한다. 아마도 이런 정책은 포퓰리즘이 아닌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다는 행위가 될 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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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이 모든 것을 말해준다. 지난동안 우리는 기적처럼 잘 사는 선진국대열에 진입했다.
사실 선진국이란 단어는 늘 우리에게 요원한 꿈처럼 여겨지던 단어였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대한민국의 국격이 급격히 신장되고 K로 시작하는 한류의 열풍속에 비로소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선진국의 반열에 들어섰음을 실감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 반대급부는 아프기만 하다. 불평등지수는 더 높아만지고 계층사다리는 무너지는 사회가 되었다. 개천의 용이 사라진 시대, 흙수저로 태어난 이상 흙수저로 살 수 밖에 없는 사회구조가 되어버린 지금의 대한민국, 그 현실을 이 책은 많은 통계치와 분석을 통해서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다.
어렴풋이 아는 사실을 이렇게 정밀하게 살펴보니 마음이 착찹하다. 저자는 최저소득이나 가처분소득등의 통계를 통해 한국의 불평등이 심화되었음을 알려준다. 그리고 커지는 노동격차, 앞이 안보이는 청년들의 취업문제, 해체되어 가는 가족, 노인자살, 지방소멸, 마지막으로 이주노동자, 장애인, 모자가구등 사회적 소수자들이 불평등으로 겪는 어려움을 다루고 있다.
눈여겨보았던 것은 청년때부터 본격적으로 불거지기 시작하는 불평등한 인생의 본격적인 출발점에 관해서다.
책에서 분류한 네 부류를 보니 대부분은 확률적으로 80%안에 속할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네 부류가 나뉘게 된 가장 큰 요인이 부모의 경제력이란 것이다. 네 부류중 어디에 속하느냐는 부모의 소득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이다. 물론 개인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보편적으로 보면 태어나는 순간 신이 무작위로 던진 주사위에 의해 인생의 상당 부분이 결정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일자리 격차는 교육격차로부터 시작된다. 그 교육격차 역시 부모의 경제력이 가장 큰 요인으로 작용한다. 사교육으로 무장한 상위소득 부모의 아이들은 결국 명문대에 갈 확률이 높아지고, 이 확률은 대기업등 좋은 일자리로 연결되는 것이다. (물론 사교육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지는 않는다, 이 아이들의 부모는 교육열이 높고 정보도 많아 아이의 미래에 대한 적절한 조언을 해 줄 수 있는 시간과 능력이 있을 것이다)
이렇게 부모의 경제력에 따라 자녀들의 대학과 직업은 계층적으로 분화되는데, 더 큰 문제는 설상가상 좋은 일자리와 그렇지 않은 일자리간의 급여는 연차가 더할수록 더 벌어진다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교육에 대한 신화가 있었다. 가난하고 불우해도 공부로 인생을 역전시킬 수 있다는 믿음, 그것이 우리사회를 건강하고 역동적으로 만들어 왔다. 그런데 그 믿음이 철저히 파괴된다면 그로 인해 겪어야 하는 부작용의 부메랑은 기득권층에게도 결코 바람직하지 못한 결과로 나타날 것이다. 모두가 기회가 평등한 사회를 펼쳐야 한다는 대의는 찬성하지만 개개인이 처한 상황속에 매몰되다보면 각자도생하기도 바쁘다.
책을 보면서 이미 아는 내용을 재확인하는 과정이었음에도 구체적인 수치앞에 암울함을 느끼게 된다. 불평등의 근본원인이 시작되는 시점인 부모의 경제력에 초점을 맞추어 리뷰를 작성했지만 이 책에서는 다른 형태의 여러 불평등에 대해 논하고 있다. 그리고 그 현상들은 점점 심화되어 가고 있다.
IT시대, 네트워크로 연결된 사업들은 더 번창하고 자본은 소수에게 과다하게 집중되고 있다. IT가 없던 시절 동네 골목마다 수퍼를 비롯한 올망졸망한 자영업자들 모두가 나눠먹으며 살았다. 그리고 그 수입만으로 자녀들을 공부시키고 좋은 대학에 진학하는 것이 가능했다. 하지만 지금은 공룡화된 쇼핑몰과 배달 플렛폼등이 점령군처럼 모든 것을 집어삼켜버렸고 골목을 지키던 자영업자들은 빈민층으로 전락하게 되었다.
시대의 흐름이 그러한데 심화되는 불평등을 어떻게 막겠는가? 사실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저자가 제시하고 있는 해결방안을 적어본다. 저자의 제시방안에 찬반이 있고 논쟁의 소지도 있을 수 있다. 하다못해 최저임금 문제만 해도 기본적으로는 올리는 방향으로 나가야 하지만 그 직격탄은 대기업이 아닌 영세 사업자와 자영업자의 몰락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을과 을의 싸움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갑’이 더 과감한 투자를 해서 고용을 창출해야 하는데 이를 강제할 수단이 없다. 세제혜택을 유인수단으로 쓸 수 있겠지만 모든 정책은 실타래처럼 얽혀있고 이해득실관계에서 자유롭지 못한 관계로 풀기가 참 힘든 문제다.
하지만 불평등을 겪는 약자의 입장을 대변하면서 제시하는 저자의 의견에도 귀를 기울여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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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등한 선진국 대한민국의 불평등을 통계로 보다
선진국인가, 불평등한 나라인가? 대한민국 최초의 불평등 교과서
저자는 대한민국이 몇가지 기준에서 선진국임을 인정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60년대 초 아시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였지만, 지난 60년간 눈부신 성장을 했고 GDP421배, 수출액과 정부예산규모는 1만배 이상 늘어났으며 GDP규모는 전세계 10위 국가 예산 1만배 성장, 국방 예산 북한의 27.5배 대한민국 R&D 총89조 억 , 보건복지 예산 40년간 256배 증가 1인당 소득 역시 2019년 기준 3528만원으로 무려 60년대에 비해 26배가 증가한 수치입니다.
#불평등한선진국 #북루덴스 #박재용저자 #선진국인가불평등한나라인가 #대한민국의불평등을통계로보다
1부 불평등한 선진국, 대한민국 2부 대한민국불평등의 근원, 노동 3부 불평등의 중심, 청년 4부 불평등으로 해체되는 대한민국, 가족해체· 노인자살 · 지방소멸 5부 불평등이 향한 곳, 소수자
선진국에 살고 있음에도 힘들고 불안하게 된 이유를 자료을 통해 찾아봅니다
자료를 통해서 세계는 불평등해 지고 있고 불평등의 정도가 다르다는 것은 제도와 정책에 조절이 가능하지만, 또 다르게는 심화되는 기본적인 방향에는 변함이 없다는 것을 뜻하며 우리나라에도 투영이 된다 합니다
불평등의 소득격차는 최저소득 가구 1분위, 가처분소득의차이, 지니계수 격차, 상대적 빈곤율, 중위소득과 빈곤율 자료를 통해 알아볼 수 있습니다. 특히나 월소득10분위별 자료는 가구원수, 가구주 연령, 가구 분표, 소득, 비소비지출, 처분가능 소득 등 구체적으로 나와 있습니다.
통계자료를 통해서 처분 가능 소득보다 월평균 지출이 더 쓴다는 이야기 살기 위해 써야할 돈이 있는데 소득이 따라가 주지 않으니 빚이 지속하는 구조 이 빚은 월세, 전기요금, 가스요금 공과금 등으로 구성되며 빚을 감당하기 어려운... 참 씁쓸하죠.
책을 읽으면서 주제마다 만나볼 수 있는 팩트 토론을 위한 간단 퀴즈 아이들 책읽기 하면 제대로 책을 숙지했는지 중간중간 퀴즈나 정리해주는 것을 볼 수 있는데요. 이 책에서 팩트 토론을 위한 퀴즈를 만나볼 수 있네요.
불평등의 근원은 노동으로 보며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기업 규모에 따른 초봉차이를 자료를 통해 나타내주며 커지는 노동격차를 자료를 통해 한눈에 알수 있답니다. 비정규직의 노통 고용형태, 비정규직이 생기는 이유, 재해율 등의 문제를 짚어줍니다.
청년문제는 대입에서 시작하며 입시에 관하여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불평등한 입시관문, 대학입시의 중요한 요소가 되어버린 사교육 초중고 사교육비의 통계를 나타내며 부모의 자산과 소득에 의해 영향을 받는 통계를 보니 더 씁쓸하지요. 옛말에 '개천에서 용난다'라는 말은 눈 씻고 찾기 힘든 구조가 되었습니다. 불과 몇개월전에 입시를 치른 아이가 있는 엄마이기에 입시에 대한 생각은 물론 구조적인것, 현실에서 부딪히게 되는...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주관적인 생각일 수 있으니 말을 아낍니다. 그러나, 자료에서 말해주듯 분명한 것은 부모의 자산과 소득이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죠
명문대가 일자리를 독식하며 학벌도스펙도 부모의 돈이 있어야 한다는 것 가족해체와 노인자살, 지방 소멸, 소수자등의 이야기는 계속됩니다
저자가 다짐한 것은 주장을 내세우지 말고 데이터가 말하게 하자는 것! 데이터를 최대한 객관적인 데이터를 고르자는 것!
대한민국의 불평등한 문제의식을 느끼며 그에 따른 근거를 자료를 찾으며 통계로 연관성을 제시하니 막연히 그렇다고 생각했던 것들은 더욱 선명해지며 구체화 되기도 하고, 참 읽는 내내 씁쓸하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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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등한 선진국 표지입니다~ 표지 중앙에 웃는 모습의 이모티콘이 있는데 한 눈에는 눈물을 흘리고 있어요ㅠㅠ
지은이에 대한 간략한 설명입니다~~
들어가며 입니다~ 대한민국이 이미 선진국이 되었지만 그 안에 있는 다양한 불평등을 파헤쳐 보고자 합니다~
차례이고요~ 총 5부로 되어 있습니다~~
1부 불평등한 선진국, 대한민국편입니다~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 비해 굉장히 빠르게 고도성장을 이루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의 대한민국이 있는 것이지요. 한편으로는 세계는 점점 불평등해 지고 있는데 대한민국도 예외는 아닙니다. 저자는 도표와 그래프를 통해 굉장히 상세하게 대한민국의 불평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장이 끝날 때 마다 팩트 토론을 위한 간단 퀴즈가 있어서 책에서 배운 내용들을 되짚어 볼 수 있어요~~ㅎㅎ
2부 대한민국 불평등의 근원, 노동편입니다~ 비정규직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 주고 있습니다~
3부 불평등의 중심, 청년편입니다~ 불공정에서 불평등으로 가는 관문이 바로 입시라고 합니다. 소득이 높을수록 사교육비가 늘어나며 2012년 서울대 대학생활문화원의 조사에 따르면 월평균 가계 소득이 500만 원 이상인 고소득층 가구에 속한 신입생이 거의 50%에 달한다고 합니다.ㅠㅠ 명문대는 곧 일자리를 독식하고 또한 대학 서열에 따라 월급의 차이가 난다고 합니다. 결국 명문대의 독식인 것이지요.
4부 불평등으로 해체되는 대한민국, 가족 해체, 노인 자살, 지방 소멸편입니다. 우리나라는 고령화 사회를 넘어서 고령 사회의 진입을 앞두고 있습니다. 심각한 것은 노인 자살율이 세계 1위라는 사실이고요, 또한 저출산율과 고령화는 지방의 소멸을 불러오고 있습니다.
5부 불평등이 향하는 곳, 소수자편입니다~ 이주 노동자, 이주 여성, 장애인, 여성, 모자 가구등은
글을 마치며입니다~ 해결책으로 소득에서의 불평등을 줄이기 위해 최저임금을 올리고, 비정규직의 노동권을 확실하게 보호하고, 노동 시간을 줄이라고 합니다. 불평등이 줄어들면 교육 문제의 기본이 해결된다고 합니다. 소득 격차가 적어지면 기를 쓰고 명문대를 갈 이유가 즐어들고 자연스레 사교육도 감소하기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소득 격차가 줄고 국가의 소득 재분배가 더 활발해 지면 중산층이 넓어지고 여유가 생기면 자연스레 출산율도 높아지고 지방 소멸도 더뎌질 것이라 예측합니다.
이상으로 불평등한 선진국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교육학을 전공하면서 어떻게 하면 우리나라의 과열된 학력열을 없앨 수 있을까? 사교육을 완화시킬 수 있을까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의 학생들이 왜 명문대를 가려고 하는가? 그것은 좋은 직장을 가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왜 좋은 직장을 가려고 하는가? 그것은 바로 연봉이 높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러한 학력열을 없앨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해 보았습니다. 기업에서 명문대 뿐만이 아니라 그 외 대학 출신자, 혹은 고졸 출신이라도 연봉을 비슷하게 준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 책에서 소득격차를 줄이는 방법으로 최저임금을 이야기 했을 때 불가능 속에서도 작게나마 실현할 수 있지는 않을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아직까지 불평등이 많은 한국 사회에서 이 책을 통해 어떻게 하면 불평등을 조금이나마 해소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대한민국의 불평등이 없어지는 그날까지, 우리 모두 함께 노력했으면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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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불평등을 통계로 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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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학기에 대학교에서 교양으로 『빈곤론』 강의를 수강했던 기억이 난다. 사회복지학을 전공하고 있는 나로써 굉장히 수강하고 싶었던 강의였다. 『빈곤론』 강의를 들으며 놀랐던 것은, 소위 선진국이라고 불리는 우리나라와 미국의 상대적 빈곤율이 OECD 국가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간다는 것이었다. 우리나라가 상대적 빈곤율 4위였던 것에 굉장히 놀랐고, 노인 빈곤율도 세계 1위라는 것도 놀랐고, 여러 자료를 접하며 더욱 놀랐다.
왜 선진국에서 이러한 빈곤율의 격차가 크게 나타나는 것인지 궁금하였던 찰나에, 본인의 블로그 이웃이신 탐서가 님과 북루덴스에서 통계를 통해 우리나라의 불평등을 살펴보는 서적 <불평등한 선진국> 서평이벤트를 진행하는 포스팅을 읽게 되었다
먼저 경제 관련 통계들을 살펴보면 우리나라가 선진국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여타 OECD 국가는 물론이거니와 전 세계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이다. 우리나라는 1960년대 이후 급속도로 경제성장을 이루었다. 한반도에 사람이 거주한 이후로 이 정도로 잘 먹고 잘 살았나 싶다. 그러나 급속한 경제성장은 부작용도 따라올 수밖에 없었다.
최저소득, 비정규직, 상대적빈곤율, 불공정과 불평등, 지니계수, 노동, 가족해제, 노인자살, 여성차별, 주거취약계층 등등. 북루덴스의 사회비평서 <불평등한 선진국>를 읽으면서 이 책이 어떤 책인지 잘 나타내주는 단어들이라고 생각했다.
그 중에서 나는 취업을 준비하는 청년이라 그런지, 3부인 「불평등의 중심, 청년」에 대해 관심있게 읽게 되었다. 서울의 중심에 있는 동네와 지방 동네의 교육환경의 차이로 시작하는 3부 내용은 나에게 많은 고민을 안겨주었다. 어려서부터 비싼 과외와 해외언어연수를 갈 수 있는, 즉 지식을 돈으로 살 수 있는 집안인가 아닌가에 따라 학벌에 큰 차이를 보여주었다. 재작년에 서울특별시 강남서초교육지원청에서 수능 접수를 보조하는 행정 아르바이트를 3주 정도 했었는데, 수능 접수를 하는 학생들의 출신 학력을 보니 정말 대단했다. 과학고, 외고, 영재고, 자사고 등등, 우리가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명문고 출신들이 많았다. 그런 학생들을 응대하며 들었던 생각은, ‘나도 저런 교육을 받아보고 싶다. 저 학생들은 모두 엘리트 코스를 밟았거나 부모님의 든든한 지원으로 공부를 할 수 있는 것이겠지?’였다. 특히나 내가 알바하던 시기의 수능 접수는 N수생을 대상으로만 받는 것이었기에, 유명 기숙학원에서 온 친구들이 대다수였다. 이 책의 내용을 그 당시 경험을 종합해본 바, 학벌은 부모의 돈으로 만드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또 다시 곰곰히 생각해보게 되었다. 다들 왜 명문대에 들어가려고 할까? 그 본질에 대해 고민하던 중, 모 공시 강사님이 이러한 말씀을 해주신 게 생각난다. “왜 군인은 육사(육군사관학교) 출신이 입결이 높고, 경찰관은 경찰대학 출신이 입결이 높은 것 같으냐? 주요 요직에 동문이 많기 때문이다. 명문대에 가고자 하는 이유는 바로 그것이다. 결국 명문대를 졸업하면 라인을 잘 타서 출세할 가능성이 높으니까.” 나는 이 말씀에서 힌트를 얻었다. 결국 학력이 높으면 나이가 들수록 소득이 높아지는 이유가 여기에서 나온 것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나는 어느 쪽일까? 든든한 빽이 있어서 번듯한 일자리를 애써 구하지 않아도 되거나, 그런 일자리를 얻기에 성공할 가능성이 큰 젊은이인가? 아니면 빽이 없어서 미친 듯이 취업 준비를 하거나, 그저 그런 일자리로 갈 젊은이인가?
이외에도 우리에게 던져주는 메시지가 많은 책이다. 현 시대 우리가 발 딛으며 살고 있는 대한민국이란 이 나라의 세대별, 분야별 불평등이 무엇이 있는지 통계라는 자료로, 팩트만 가지고 우리에게 메시지를 안겨준다. 이 책을 조금만 더 일찍 만났더라면 학부에서 공부하는데 굉장히 도움이 되었을텐데 |
대한민국은 과연 평등한가? 아니면 불평한 국가인가? 이 책은 대한민국 최초읩 불평등 교과서라는 타이틀로 대한민국의 불평등을 구체적인 통계로 보여주는 책입니다. 1960년 GDP는 39억 달러였는데 2019년은 1조 6,423억 달러라고 합니다. 무려 421배라고 합니다. 1인당 평균소득이 3,528만원이라 하니 이 정도면 선진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상위 10%의 소득이 나머지에 비해 매우 높고 게다가 그들이 돈을 버는 방법이 배당과 이자, 임대소득이 많다는 것에 있습니다. 소득 불평등의 징후는 여러 곳에서 발견되는데 요즘 특히 플랫폼 노동자들을 비롯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노동시장에서 쓰여지다가 버려지는 형태에 대한 걱정이 이 책에도 나타나 있습니다. 이주 노동자와 이주 여성, 장애인 등 사회적 소수에 대한 걱정과 데이터들도 책에 나와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통계로 들여다보는 노동, 청년, 소수자, 지방의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한 불평등한 선진국, 대한민국의 오명은 쉽게 벗어지지 않을듯한 걱정이 됩니다. 그럼에도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해주고 불평등에서 조금씩 평등한 쪽으로 가려면 우리가 어떻게 어떤 방향으로 연대해 나가야 하는지에 대한 그림이 그려지게 하는 것에 이 책의 목적이 있는듯합니다. 막연하게가 아닌 구체적인 방법론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책읽기였습니다.
<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자유롭게 작성했습니다.> #불평등한 선진국 #박재용 #북루댄스 #컬처블룸 #컬처블룸리뷰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