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홀로 앉은 강원도 선이골 외딴집엔 일곱 식구가 산다. 백발과 흰수염의 남편과 며느리같이 보이는 그 아내, 올망졸망한 다섯 아이가 문명과 속도를 등지고 전기도 학교도 자동차도 없이 대자연과 마주서 산다. 데이비드 소로의 『숲 속의 생활』을 읽고 고등학교를 그만두었던 아내는 용기백배의 여장부다. 머리로 마음으로야 누구나 원할 수 있지만 실천에 옮기기란 보통 용기와 의식을 필요로 하지않는 결단이다. 더구나 다섯 아이. 이 아이들의 미래를 두 부부가 온통 짊어지고도 숲 속을 선택하기란 운명을 맞바꾸는 도전이었을 것이다. 그래도 매일매일 사는 것 같지 않게 사는 서울 생활보다 이 편이 훨씬 행복할 것을 알았던 부부의 예감은 적중했다. 삶은 선택이다... 천지분간하기 어렵게 널려있는 여러 가능성 중에 어떤 것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진다. '팔자는 고치라고 있다'는 어머니의 말처럼 선택해서 가꾸어가면 그것이 내 인생이 되는 것이다. 강원도의 이 일곱 식구는 우리가 보기에 가장 어렵고도 좁은 왼쪽 가장자리의 길을 선택해 선택한 자만이 누릴 수 있는 혜택과 가치를 깨달았다. 용기있는 선택만이 특별한 보물을 가질 자격이 있다. 누런 벽지에는 고사성어들이 붙어있고, 휘어진 상다리에는 손수 기른 밥과 나물이 정겹게 올라있다. 꼬질꼬질 때가 묻은 아이들의 손은 주변 모든 것에 민감하게 열려있다. 그 손으로 자기 이를 뽑고, 장작을 패고, 벼를 벤다. 촛불 아래서 편지를 쓰고, 지붕을 고치며, 서로의 손을 잡는다. 늙은 아비와 어미는 하루가 다른 아이들을 보며 하늘과 땅, 이웃을 존중하는 마음을 심어준다. 9시에는 잠자리에 들고, 매일 새로운 아침맞이를 하며, 생일맞은 아이는 부모와 함께 생일여행을 떠난다. 절기의 이치를 깨달아 도시인보다 한달은 먼저 계절을 감지하고 맞이한다. 이렇게 살 수 있느냐. 내게 반문해 본다. 청결치 못한 환경, 숲의 무서움, 밤의 어둠, 생활의 불편 등을 즐길 수 있겠느냐. 일체의 헛된 소유와 욕심을 버리고 하늘과 땅에만 의지할 수 있겠느냐. 『즐거운 불편』의 호쿠오카 켄세이처럼 선이골 식구들을 보며 몇가지 '즐거운 불편'을 따라해 보기로 작정하며 선이골의 따뜻한 촛불을 끈다. |
| 여자가 팍팍한 도시에서 일을 할라치면 아이는 축복이기도 하지만 덫입니다. 일을 하기 위해서는 아이를 누구에게 맡겨야 하는데 그것이 여의치 않으면 일을 포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선이골의 어미 또한 마찬가지였습니다. 돈을 벌지 못하지만 사람들로 바글대는 약국 일을 하면서 아이들은 덫으로 작용합니다. 그것도 한두 명이 아니라 무려 다섯 명. 첫아이 선목이는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라서 학교에 수시로 불려가야 하고, 다섯 살, 네 살, 세 살의 연년생 아이들도 끊임없이 어미 손을 필요로 합니다. 뱃속 아기는 몸을 무겁게 합니다. 아이들을 제대로 챙길 수도 약국 일을 제대로 할 수도 없는 상황입니다. 그러니 첫아이 선목이는 학교에 마음을 붙이지 못해 제멋대로이고, 연년생 아이들은 어미가 일하러 가는 것을 울며불며 막습니다. 바깥 일을 최대한 줄여 가족만을 돌보던 남편도 지쳐갑니다. 도시에서 아이를 제대로 키우기 위해서는 ꡐ가족 계획ꡑ을 해야지 하늘이 주시는 대로 받을 일이 아닙니다. 다섯씩이나 낳는다는 것은 아이나 일 중 어느 하나를 포기해야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더구나 양심적인 약사로 일을 하려고 하는 여자이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아이나 일을 포기하도록 강요하는 서울에서는 일을 제대로 할 수 없고, 그래서 먹고살 수도 없어서 오로지 다섯 아이와 함께 지낼 수 있기만을 바라고 서울을 떠나 선이골로 깃들었는데, 우리의 어버이들이 우리를 키웠듯 땅을 기면서 살아야지 모질게 마음먹었는데 선이골은 상상도 못한 축복으로 다가옵니다. 봄이면 지상에 펼쳐지는 하늘의 노래를 맞이합니다. 여름이면 아이들은 숲에서 그냥 훌러덩 벗어제친 몸으로 돌아다니며 놉니다. 창피할 것도 없습니다. 치장하지 않고 제 모습 그대로 보여주는 숲과 같이 자랍니다. 가을에는 산에서 얻은 온갖 양식들로 밥상이 풍성해집니다. 그 동안 기울인 온갖 정성과 노력의 결과를 거둬들이면서 자연과 하늘에 더욱 감사하게 됩니다. 겨울은 하늘의 노래, 나무의 노래가 선이골을 가득 채웁니다. 집 안에선 난로의 따뜻한 노래가 가족을 하루종일 감싸 몸에서조차 나무 냄새가 납니다. 방 안도 나무 냄새로 가득하고, 책이며 살림살이에서도 나무 냄새가 납니다. 그렇게 선이골에서 아름다운 우주의 춤무리에, 장엄한 대화합에 동참하는 축복을 누립니다. 비로소 때와 철을 온몸으로 알아가게 된 것입니다. 서울 생활을 지배하던 시간 법칙에서 벗어나 자연의 시간 법칙에 몸을 맞추게 된 축복 못지 않게 크나큰 축복은 화천 사람들과의 만남입니다. 서울에서의 삶은 남에게서 하나를 받으면 하나를 돌려줘야 하고, 염치가 있어야 하고, 남에게 의존하지 말아야 하고, 남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염두에 두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다 사람들과의 관계가 힘이 들면 아예 관계 자체의 문을 닫아버렸습니다. 차라리 무관심이, 익명이 좋았고 혼돈스런 관계에서 도움을 주고받으며 사느니 모든 것을 스스로 해나가는 게 편했습니다. 현관문을 닫으면 그때부터 철저한 무관심과 익명의 세계로 들어가던 서울에서의 생활에 비하면 선이골 생활은 활짝 열려진 생활입니다. 이곳에선 나도 남도 완전히 열어야만 살아갈 수 있습니다. 물론 처음에는 열린 생활에 익숙치 않아 신경이 곤두서고 꽤나 피곤했습니다. 하지만 혜림이네 가족과의 만남을 끈으로 하여 화천의 여러 이웃들에게 마음을 열어놓기 시작합니다. 전화도 자동차도 우체통도 없을뿐더러 사람도 없는 외딴 산골짜기 집이 오히려 활짝 열려 있게 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웃들은 이제 선이골 삶을 가족보다 더 훤히 압니다. 홍수로 길이 무너지면 먼 마을에서 달려와 무너진 길을 포크레인으로 손보기도 하고, 때가 되면 논도 떠주고 모도 길러서 가져다가 심어주기도 합니다. 더 먼 마을에 사는 환경미화원 이웃들은 옷이며, 신발, 이불 같은 살림에 필요한 것을 바리바리 갖다 줍니다. 오일장에 가면 친정 어머니처럼 보리며 기장쌀, 청국장 등을 듬뿍 싸놓고 선이골 사람들을 기다리는 분도 계십니다. 아이들이 텔레비전에 빨려들 듯 마음놓고 볼 수 있는, 칼국수 네 그릇 시키면 일곱 그릇에, 거기다 산에 올라가면서 먹으라고 김밥까지 얹어주는 가게도 있습니다. 30여 년 전에 선이골에서 팔 남매를 데리고 몸을 도끼 삼아 살았던 분도 춘천에 사시면서 일년에 한두 번씩 들르십니다. 이제는 성공해서 그런 대로 살 만한데도 선이골에서 살았던 것을 생각하면 밤에 잠이 안 온다고, 그래서 선이골 사람들만 보면 눈물을 글썽이며 당신 가진 것 아무거나 놓고 가십니다. 군청, 학교, 은행, 농협, 심지어 군부대와도 말이 통하는 사이가 되면서 화천 사람들은 아이들에게 이모고 삼촌이고 할아버지, 할머니입니다. 생애 처음으로 실감하는 동포이고 겨레입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진정한 관계에 대해 깨닫습니다. 경전 공부로 어찌어찌 하늘의 뜻을 알 것도 같았고, 유기농․자연농의 농사 짓기로 어찌어찌 땅과 하나될 것 같기도 했지만, 사람과 사람이 하나됨은 너무나 어렵고 막막했다. 그러던 내가 이곳 선이골에 살면서 알게 된 것은 하늘과 하나됨, 땅과 하나됨은 바로 이웃과 하나됨에서 드러난다는 것이다. 눈엣가시 같은 미운 놈에게도 떡 하나 더 줄 수 있는 그 마음이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이웃을 사촌지간으로 묶어내지 않았을까 어렴풋하게 느낀다. 아이 기르기와 농사 짓기를 통해 하늘과 땅과 하나됨을 알아가고, 알아가는 만큼 이웃과 하나됨을 꿈꾼다. ꡒ미운 놈 떡 하나 더 주는 마음ꡓ을 하늘에 구할 수 있게 되었다. (226쪽) 허연 수염의 시아버지 같은 남편과 다섯 아이를 데리고 선이골 외딴집에서 하늘과 땅과 사람들이랑 하나되는 모습은 깊은 감동으로 다가옵니다. 미운 놈 떡 하나 더 주는 마음의 경지는 마치 재가 수행자의 경지 같습니다. 영혼의 개화를 위한 길에는 두 가지 길이 있을 것입니다. 하나는 출가하여 수행하는 길이고, 또 하나는 세상 속에 살면서 그것을 추구하는 길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지금까지 보아온 길은 출가한 사람들의 것이었습니다. 설사 세상 속에 살고 있더라도 가족 이야기는 쑥 빠져 있는 출가 수행자 같은 사람들의 길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생에서 한 몸을 이루어야 할 남편과 어미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는 열 개의 초롱초롱한 눈동자의 다섯 나무와 지내는 선이골 어미는 선이골 사람들 그 누구도 도드라지지 않게 하여 가족 모두를 주인공으로 내세웠습니다. 가족 모두가 서로 부대끼면서 서로 북돋워 주기도 하는 도반입니다. 그만큼 관계를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지요. 그것은 선이골의 하늘과 땅, 화천 사람들과 맺는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느 것도 배경으로 존재하지 않는 중요한 관계입니다. 그리하여 현실을 벗어나지 못하고 가족과 복작대며 살아가는 우리에게 여러 가지로 귀감이 될 만합니다. 오랜만에 참 좋은 관계를 만났습니다. |
| 전에 한번 우연히 TV에서 선이골에서 사는 두 부부와 다섯아이들의 이야기를 본적이 있다. 세상 참 어렵게 사는 사람이 있나 보다라고 단순히 생각했다. 아마 장날에 차를 타기 위해 정거장에서 기다리며 이웃 할머니들과 이야기를 하는 장면이 생각난다. 그리고 한참이 지나서 지난 추석때 고향에 가서 친척들과 농촌에서의 삶과 생각을 이야기할때 그분들의 이야기가 나왔다. 전기도 드러오지 않는 골짜기에서 아이들을 자연에 맡겨 키우는 사람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농촌사람이나 도시의 물을 먹고 있는 나같은 사람도 참으로 대단한 철학을 지닌 사람이 아니면 정신적으로 약간 비뚤어진 사람들의 이야기라는데 동의를 했다. 또 어느정도의 시간이 흘러 인터넷 사이트에서 '선이골외딴집 일곱식구 이야기'라는 책이 출간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자연속에서 흔적없는 삶을 살고자 고민하는 나같은 사람에게 어떤 메세지를 주지 않을까하는 기대로 책을 읽어 보았다. 이 책은 일곱 가족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일상과 글쓴이의 생각을 잔잔한 필체로 써 내려가고 있다. 왜 이런 산골로 내려 와서 사는지, 어떻게 나이 차이가 많이나는 남편을 만났고 삶의 철학을 어떻게 공유하는지, 아이들의 교육은 어떻게 하는지, 자연과 그리고 이웃과 어떻게 하나가 되는지 등등을 일인칭의 관점에서 진솔하게 쓰고 있다. 문명의 이기를 삶에 적용하지 않을려고 애쓰고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자발적 가난함을 몸소 실천하기가 지극히 어려울텐데 어찌 이리도 담담하게 말하고 있는지 아직 철학적인 사고를 확실히 정립하지 못한 나와 같은 어정이에게는 가히 충격이 아닐 수 없다. ... 우리 가족이 농사를 잘 지을 수 있다는 안팎의 자기확인과 계절이 다르게 부쩍부쩍 커가는 우리 아이들이 철저한 건강식 유기 농산물을 먹을 수 있어야 한다는 생존에 대한 이기적인 욕구로 가득찬 산골 아지메의 의식변화가 생생하다. 산골에서의 농사는 잘 지어도 산짐승들 때문에 남는게 별로 없을거라는 이웃사람들의 지적에 대한 미묘한 반항과 하느님이 도우실거라는 교만까지 가지고 봄의 씨앗을 뿌렸던 것이다. 그러나 인간에 대해 계속 밀리고 이 깊은 산골까지 쫒겨 들어온 산짐승들에게 내가 지은 농산물을 기꺼이 내어 줄 수 있을까?라는 자기와의 대화 끝에 "이제는 하늘이 자라게 한 이 만큼의 열매들을 나눠 먹읍시다. 그대들이 설령 다 먹어치운대도 우리는 결코 굶주리지 않을 것이고, 깨끗한 유기 농산물을 우리만 먹어 더욱 건강해지고 더욱 교만해지는 것보다는 속사람이 더 건강해지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땅과 곡식을 보살폈던 그 자체가 즐겁고 소중한 체험이었어요. 기적과도 같은 기쁨의 나날이었습니다. 땅바닥을 기면서 우리가 배우고 익혔던 것이 얼마나 많았던가요? 올해 우리의 노동이 그대들의 풍성한 양식이 된다면 작년에 비해 얼마나 놀라운 발전인가요?"라며 스스로 반성하고 자연에 대한 사랑의 지평을 넓히고 있다. 이내 마음을 옦죄였던 쓴맛이 사라지고 입안에는 단맛이 돌고 하늘에 대한 지극한 감사를 드리고 있다. -산짐승들과 화해하다 p.p 158~160 - 살아가면서 부대끼는 자연과의 조화로운 삶을 위와같이 담담하게 펼치고 있다. 애초에 가지고 있는 원초적인 욕심도 인정하면서 그러한 욕심이 천천히 변화되어 가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어느정도 농사를 짓고 자연에 대한 사랑이 어느정도 확신이 서나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는 신중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살아가면서 사람은 자연에게서 상처를 받기보다는 사람에게서 상처를 받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웃사람들의 사랑에 조금식 문을 열기 시작하면서 미운놈에게 떡을 하나 더 주는 마음으로 이웃들과 하나됨을 꿈꾸고 있다. 대단한 두부부와 다섯아이들의 사는 모습을 글로서 그 자연스러움을 느껴보고 있지만 나는 아직도 도시의 많은 때를 벗겨내지 못하고 있다. 이것이 그들이 그렇게 거리를 두고자하는 문명의 이기를 몸과 마음으로 떨쳐버릴 수 없는 욕망이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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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고기잡이 그물망처럼 촘촘하게 짜여진 대도시에서의 삶에 지치고 염증을 느끼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연으로의 탈출을 꿈꾸며 실제로 탈출을 감행하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도시인들이 결행하는 탈출이란 기껏해야 주말의 산행과 일년에 몇 번 다녀오는 짧은 여행 속에서 만나는 자연이 전부이다. 그래도 그러한 한시적인 탈출로 모처럼 품에 안고 돌아온 자연의 기운에 힘입어 일상의 수레바퀴는 한동안은 또 삐걱대지 않고 굴러가게 되는 것이다. 이렇듯 대부분의 도시인들에게 있어 자연이란 일상의 활력소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지 않다. 도시인의 일상으로 편입되는 자연은 극히 단편적이고 기능적일 수밖에 없다. 그것은 우리 시대 사람들이 생애의 대부분을 보내는 곳이 자연과는 거의 무관한 인공 환경으로 이루어진 도시이기 때문이다. 도시의 병실에서 태어나서 아파트에서 자라나며 콘크리트 교실에서 공부하고 빌딩 사무실에서 생활하다가 다시 병실에서 삶을 마감하는 것이 우리 현대인들의 삶이 아닌가. 그런 우리들에게 있어 자연은 경이로울지언정 결코 친숙하지 않으며 아름다울지언정 결코 편리하지 않은 대상인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자연으로의 탈출이 지나치게 길어지면 오히려 불안해하며 일상으로의 복귀를 서두르게 된다. 도시에서의 삶은 바쁘고 숨막혀서 언제나 벗어나고 싶은 삶이지만 현대인들의 삶은 도시에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이 덫인지를 뻔히 알면서도 도시의 일상으로 매번 다시 서둘러 돌아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 그 덫을 과감하게 끊고, 전기도 없고 자동차도 올라오지 못하고 심지어는 우편배달부조차도 들어오지 않는 깊은 산골로 들어가서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 그것도 혼자가 아니라 아이들 다섯 명까지 포함한 일곱 식구가, 또한 한두 해가 아니라 벌써 10년 가까이 살고 있으니, 월든 호숫가에서 2년 동안 혼자서 숲속 생활을 한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에 비길 바가 아니다. <선이골 외딴집 일곱 식구 이야기>는 그렇게 거대도시 서울을 떠나 강원도 화천의 깊은 산골인 선이골로 들어가서 살아가고 있는 한 가족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산문집이다. 지은이 김용희는 전문 작가가 아니기에 이 책에 수록된 산문들은 미문(美文)은 아니었지만, 체험에서 우러나온 깨달음을 소박하고 진정 어린 마음으로 전하고 있는 그녀의 산문들은 묵직한 감동으로 내게 다가왔다. 감동과 함께 나는 부끄러움도 느꼈다. 어떤 이들은 마흔도 안 된 젊은 나이에 안정된 직장을 훌훌 털고 미련 없이 뉴질랜드로 떠나와서 새로운 삶을 살고 있는 나와 아내를 보고 참으로 용감한 사람들이라고 말했지만, 우리는 선이골 식구들에 비하면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서울은 떠났으되 도시를 떠나지 못했고 제법 자연을 가까이하며 살고 있으되 여전히 문명의 편리에 기대어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선이골 외딴집 일곱 식구 이야기>가 담고 있는 메시지가 현대 문명을 벗어나서 자연 속에서 누리는 삶에 대한 예찬 일색일 것이라고 지레짐작하는 것은 속단이다. 이제 살펴보겠지만, 서울을 떠나 산간벽지에서 전깃불도 없이 살아가고 있는 그들의 삶은 세상으로부터의 도피도, 자연 속으로의 은둔도 결코 아니었기 때문이다. 2. 1998년 봄, 그들로 하여금 서울을 떠나 강원도 화천의 선이골로 삶의 터전을 옮기도록 한 것은 한 순간도 마음의 여유가 없이 늘 바쁘고 지치게 만드는 대도시에서의 고단한 삶이었다. 그러니 분명 선이골에서의 삶은 도피이며 은둔이었을 터인데, 그곳에서 몇 년을 살아가면서 그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축복들이 우리를 위해 기다리고 있을 줄이야! 화천 형제들을 통해 우리에게 전해지는 축복은 나와 남편을 변화시켜 갔고, 해마다 우리의 ‘떠남’의 의미를 새롭게 해주었다. 우리는 왜 떠났는가? 우리는 왜 이곳에 있는가? 7년째 선이골 삶을 맞이하면서 우리는 ‘만나기’ 위해서 ‘떠났음’을 깨닫는다. 서울 삶에서 우리는 ‘하나되는 만남’에 배고프고 목말라 했음을 깨닫는다. (37-38쪽) 지은이는 이러한 삶을, 자신의 어머니 말씀을 빌어서 ‘하늘과 땅, 사람이 하나되는 삶’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이 셋 중에서 그들이 가장 먼저 만난 것은 하늘이었다. 선이골로 이사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날마다 아침 일찍 갖가지 새소리에 잠이 깨어나서 동틀 무렵에 유난히도 아름답게 노래부르는 새들과 하루 중 그때 가장 맑고 선명하게 피어난 들풀들의 모습을 보면서, 이렇게 아름답고 경건하게 아침을 맞이하는 자세야말로 살아 숨쉬는 모든 생명들의 당연한 삶의 몸짓임을 깨달은 것이다.
이후 선이골 일곱 식구들은 새날을 맞이하는 기쁨과 소망과 다짐을 노래와 기도와 말씀으로 서로 나누는 아침맞이 의식을 행함으로써 하루를 시작하게 된다. 눈뜨자마자 출근 준비와 등교 준비로 정신없이 서두르느라 아침 시간이 마치 전쟁터 같은 우리의 삶과는 얼마나 다른 모습인가! 사춘기에 접어드는 딸아이를 가르칠 목적으로 주말마다 가족회의는 해봤어도 아침맞이 의식은 한번도 해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우리의 희망이고 날마다 새로 시작되는 삶’이라는 선이골 일곱 식구의 아침맞이가 무엇보다도 인상적이었다. 하늘과 만나 하나되기 위한 이들의 소망은, 도시에서는 좀처럼 느끼지 못했던 계절을 선이골에서 들어와 살면서 생생하게 느끼게 되면서, 철맞이로까지 이어진다. 입춘과 입하 등 절기에 맞추어 새로운 계절을 맞이하는 나름대로의 잔치를 벌이는 것이다. 인간도 대자연의 일부이니, 우주의 춤이며 하늘 지휘자의 지휘에 따라 부르는 우주의 대합창인 계절의 운행에 맞추어 함께 춤추고 노래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들이 하늘에 이어서 만난 땅과의 하나됨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처음 두 해 동안에는 선이골의 숲에서 온갖 산나물들을 따다가 먹었지만 그들의 입맛이 그 천연의 맛을 제대로 느끼기까지는 제법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고백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이것도 선이골 3년 째에 본격적으로 논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 경험한 절망감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나는 그 동안 머리로 일하는 것을 배웠고, 그들은 몸으로 일하는 것을 배웠다. 지금껏 살아온 환경과 전혀 다른 환경에 처하고 보니 내 몸은 아무것도 할 수 없고 내 머리는 뒤죽박죽 전쟁을 치르느라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다. 슬펐다. 논농사를 짓지 못하여 배고픈 것보다 내 이런 거품 인생이 너무 슬펐다. 내 몸에서 쌀 냄새가 아니라 돈 냄새가 나는 것 같아 슬펐다. 나의 어머니가 먹는 밥과 내가 먹는 밥도 다른 것이었다. 어머니는 쌀을 알고 밥을 아는 몸으로 밥을 먹었고, 나는 쌀도 밥도 모르는 몸으로 단지 먹을 수 있는 그 어떤 것을 먹어댔던 것이다. 40년 넘도록 세상의 지식과 지혜를 얻고자 발버둥쳐 왔지만 이 가공할 무지 앞에 오히려 공포를 느꼈다. (80쪽) 이러한 절망감을 그들이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농사의 ‘농’자도 모르는 이들에게 따뜻한 도움의 손길을 내준 아랫마을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험한 산골짜기에 포클레인을 가지고 올라와 논을 만들고 손수 모내기도 도와 주고 벼농사 지식도 가르쳐주는 등 도움을 아끼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오랜 서울 생활을 하는 동안 저절로 몸에 밴 피해의식과 익명성과 오직 나만의 노력으로 이루는 삶의 방식을 아직도 버리지 못하고 있던 지은이는 이러한 이웃들의 도움이 처음에는 어색하고 부담스러웠다고 한다. 너무 신세를 진다는 생각, 도움을 받은 만큼 내 쪽에서도 줘야 한다는 부담감, 그리고 피해를 주는 것은 아닌가 하는 긴장감 등 때문에 쉽게 마음을 열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뭘 바라는 것이 있어서 그렇게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그들의 몸에 밴 삶의 방식이기에 그렇게 도와주는 것임을 깨닫게 되면서, 지은이는 마침내 자신의 집 문도 활짝 열어놓고 살게 된다. 서로서로 사돈에 팔촌으로, 동네로, 삶으로 맺어져 있는 마을 사람들은 그들이 생애 처음으로 실감하는 동포이고 겨레였던 것이다. 이러한 깨달음은 특히 그들이 나들이 삼아 화천 5일장에 자주 다니면서 더욱 굳건해진다. 장터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그들에게 베풀어주는 아무 조건 없는 따스한 인정은, 그들 마음 속에 아직도 남아 있는 물건에 대한 욕심과 이기심을 들여다보도록 했을 뿐만 아니라 이웃과 더불어 사는 삶의 소중함을 다시금 생각하도록 해주었던 것이다. 경전 공부로 어찌어찌 하늘의 뜻을 알 것도 같았고, 유기농, 자연농의 농사 짓기로 어찌어찌 땅과 하나될 것 같기도 했지만, 사람과 사람이 하나됨은 너무나 어렵고 막막했다. 그러던 내가 이곳 선이골에 살면서 알게 된 것은 하늘과 하나됨, 땅과 하나됨은 바로 이웃과 하나됨에서 드러난다는 것이다. (226쪽) 지은이의 말을 빌리자면 ‘내 안으로의 길고 험한 순례’를 걸쳐 마침내 도달한 이러한 깨달음에는 과장이나 거짓이 조금도 섞이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사건 발생 이후 이틀이나 늦게, 그것도 장터에서 우연히 신문을 보고 알게 된 9∙11 사건으로 받은 충격을 토로한 다음의 글을 읽어보면 잘 알 수 있다. 우리의 이웃이 겪는 고통을 우리만 피해 보고자 선이골로 온 것은 아니었다. 하늘이 인간에게 정해 주신 길을 나 몰라라 하고 산 것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9·11 사건은 “너희는 어디에 있느냐? 무얼 하고 있느냐?”며 피할래야 피할 수 없는 질문을 해대는 것 같았다. 전기도 전화도 자동차도 인터넷도 인가도 없는 선이골이지만, 서울에서 살 때보다 시대에 대해, 인류와 이웃에 대해, 자신에 대해 더욱 민감해진 우리에게 9·11 사건은 우리 내면의 적대감과 증오와 안일을 분명하게 볼 수 있게 해주었다. 세계의 부와 지식과 권력의 상징이라는 무역센터의 삶과는 정반대인 선이골에 있지만, 우리의 잠재 의식 깊은 곳엔 110층 무역센터가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173쪽) 이처럼 도시에 사는 우리들보다 더 투철한 역사 의식을 보이고 있는 이들의 삶이 어찌 세상으로부터의 도피이며 자연으로의 은둔이라 말할 수 있겠는가. 그들이 인터넷도 전화도 안 되는 오지에 살고 있지만 어찌 세상과 고립되어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3. 안타깝게도 <선이골 외딴집 일곱 식구 이야기>의 지은이 김용희씨는 지난 해 1월에 오래 앓던 병인 산후통으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당시 언론매체를 통하여 그녀의 사망 소식을 접한 많은 사람들이 슬퍼했지만, 그녀가 자연주의자 흉내를 너무 무모하고 지나치게 내다가 그렇게 어이없는 죽음을 맞은 것이라고 비아냥거린 사람들도 일부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사람의 태어남, 자라남, 질병, 그리고 죽음조차도 우리 몸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하늘의 사랑이라고 굳게 믿고 있는 그녀로서는, 병을 치료할 시기를 놓쳤기 때문이 아니라 이제는 하늘의 부름을 받고 돌아갈 때가 되었기에 자신이 죽음을 맞이하게 된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눈을 감았을 것이다. 또한 그녀의 죽음도 죽음이지만 이제 엄마를 잃고 살아갈 다섯 아이들의 교육과 미래에 대해서도 참으로 말들이 많았다고 한다. 그러나 홀아비가 된 그녀의 남편과 다섯 아이들은 선이골에서 계속 살아가기로 결정을 했고 아마도 지금도 여전히 선이골 외딴집 ‘하늘맞이 배움터’에서 매일 아침맞이를 하고 그들을 둘러싼 자연 세계를 교과서 삼아 삶을 배우고 익히고 있을 것이다. ‘바람 속에서 크는 나무가 뿌리가 깊어진다’고 쓴 그녀의 글처럼, 선목, 주목, 일목, 화목, 원목 이렇게 선이골의 다섯 그루 어린 나무들은 제도권 교육을 받고 자라난 아이들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깊고 튼튼한 뿌리를 마음 속에 품으며 어른이 될 것이다. 그리고 돌아가신 어머니의 평소 가르침처럼, ‘사고 팔리지 않는 사람, 삶’을 살아가게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녀의 이러한 가르침은 “영혼에게 필요한 단 한 가지의 필수품을 사는 데는 돈이 필요없다”고 말한 바 있는 소로우의 사상과도 통한다. 그러고 보니, 이 두 사람의 삶은 자연 속에서 삶을 살아간 것 뿐만 아니라 대단치 않은 병이 악화되어 죽은 것이나 죽었을 때 둘 다 45세의 젊은 나이였다는 것까지도 참 많이 닮았다. 고3 때 소로우의 <월든>을 읽고 감명을 받아 학교를 그만두고 독학으로 공부를 하기도 했던 그녀이고 보면, 소로우와 공유하고 있는 것이 이렇게 많다는 사실이 어쩌면 지극히 당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미국에 월든 호숫가의 소로우가 있다면 있다면 한국에는 선이골의 김용희가 있다고 말하는 것이 전혀 과장이 아니리라. <선이골 외딴집 일곱 식구 이야기>는 한국인이 다시 쓴 우리 시대의 <월든>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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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보면, 저자의 지식이 멋지게 펼쳐져 있어서 그 지식을 주워담는 일도 멋있고, 내가 생각도 못한 것을 기발하게 제시하는 것을 듣는것도 즐겁고, 즐겁게 또는 감동적으로 살아가는 모습에 함께 즐거워하고 감동받고, 완전히 다른 새로운 세상에 경탄하고, 이런 만남을 주는 책을 읽으면 너무 너무 아깝고, 귀합니다. 그 여운은 또 얼마나 마음 훈훈한지 ...
선이골 외딴집 일곱식구 이야기 또한 이런 책입니다. 이책의 가장 즐거움은 무엇보다 저자의 진심과 만날수 있다는 것입니다. 한페이지 한페이지가 그냥 쓰여진것이 아닙니다. 마음으로 쓰여진것을 느낄수 있습니다. 모이고 모여 넘쳐서 흐르는 것입니다. 그 흐름을 쫓아 가다보면 가슴 한 가득 기쁨으로 넘칩니다. 진심으로 쓰는 글의 힘이라고 생각됩니다. 화려한 문장도 빼어난 기법도 따라올수 없습니다. 어쨰든 나는 이 책을 읽으면 저자의 진심과 만났다고 생각하며, 그래서 기쁨이 넘쳤고, 함께 행복했습니다. 읽고난후 며칠동안 가슴 흐뭇했습니다.
일곱식구들의 삶 또한 참 재미있습니다. 읽어보세요. 그러면 기쁨으로 빠져 드실겁니다. |
| 강원도 화천군 선이골... 선이골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가 <원목>이다. 어머니 용희님도 가장 사랑스런 아이라고 표현하셨는데 방송에선 본 모습이나 책을 통해 비춰진 원목이는 정말 누가 보더라도 한번 더 눈길이 가게 되는 사랑스럽고 귀여운 얼굴이었다. 기억나는 대목중에 원목이가 서너살까지 젖을 먹었다는데, 추운 겨울날 놀러 나갔다 와서 손과 온몸이 꽁꽁 얼었을텐데 엄마를 생각해 차디찬 손은 대지 않고 입으로만 엄마 젖을 빨았다는... 사려 깊은 꼬맹이 원목이를 어찌 이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 사랑스런 원목이를 두고 용희님은 어떻게 눈을 감으셨을까...) 선목이, 주목이, 일목이, 화목이, 원목이... 4남1녀. 저출산시대라는 말을 무색해하고, 多産상 받으실 만한 자식농사 참 잘 지으신 김명식 아버지와 김용희 어머니... 나름대로 대안교육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써 하늘평화학교라 지칭하며 가르침의 원리를 알려주시는 위대한 교사 아버지와 어머니. 자연에 순응할 줄 알고 자연을 벗삼은 자연친화적인 교육. 요즘 같이 입속에 넣어주는 로봇식(일명 주입식) 교육이 아닌 생각하고 또 생각하도록, 나아가 삶의 자세에 있어서도 사고하는 사람이 되도록 더 나아가선 국가적으로도 큰몫을 할 수 있는 자질력이 풍부한 사람으로 만들어가는 실천적인 교육, 자연적인 교육... 우리가 나아가야할 교육이 아닌가 싶다. 보고도 못본체... 기다림의 미학을 보여주신 부모님.. 또래 아이들보다 훨씬 어른스러운, 그러나 순수한 다섯아이들... 이렇게 화천골의 행복한 일곱가족이 살고 있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어머니 김용희님은 먼저 세상을 뜨셨다. 지난 1월 9일 45세의 일기로 생을 마감하신 것이다. 이제 화천골 외딴 집엔 여섯 식구 이야기가 펼쳐질 것이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 논갈고 밭갈아 먹을 것 키우고, 산에서 들짐승이랑 사이좋게 나눠서 열매도 따다 먹고 전기도 없고, 전화도 없는 강원도 외딴 두메 산골집에서 옹기종기 모여 재미나게 지내는 일곱식구들... 사실 언젠가 휴먼다큐 프로그램 어느메쯤 아주 잠깐 스쳐 본 기억이 난다.그때 잠깐 든 생각이 나도 아이들의 건강걱정쯤이야 제대로 대처할 수 있는 전직 약사 출신정도라면, 산골에서 살만도 하겠다.... 라는 거였다. 책 안에는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별로 산골 외딴집에서 살림살며 지내는 얘기들과 흑백사진 몇 장씩 수수하게 장식해놓고, 바가지 씌워놓고 자른 머리모양에 아무렇게나 대충 걸쳐입은 옷매무새에 꼬질꼬질 때 묻은 아이들의 손안에는 대단한 힘이 들어있다. 스스로 땔감을 구해오고 농사 짓고 밥하고 설거지하며 그렇다고 공부도 게을리 하지 않는다. 매일아침 아침맞이로 시작해서 잠들기 전 일기쓰기 까지 특별하지 않은 듯 아주 특별하게 일곱 아이들을 키우는 엄마 아빠가 참으로 대단하다. 누가 그런 선택을 쉽게 하리오만은 산골에서 산내음 들내음맡고 식구들끼리 농사 짓고, 공부하고, 좋은 공기거느리며 사는게 얼마나 행복할까? (실제로 그 식구들이 무지 행복해 하고 있음으로 부럽다) p.257 나는 콩나물이 꼭 우리 아이들 같다는 생각을 한다. 아침 저녁으로 오며가며 아이들에게 가르침의 물을 부어준다. 물이 콩나물을 스치기만 할 뿐 부어주는 족족 찜통으로 새어나와 물받이 통에 가득해지는 것처럼, 아이들에게 부어주는 가르침도 그때 그 순간에 아이들 몸을 스치기만 할 뿐 고스란히 내가 다시 받는다. 아이들에게 가르침을 붓는 일은 계속해서 되풀이된다. 그러나 콩나물에게 했던 딱 그만큼만 해야 한다. 그 이상 되풀이하면 콩나물이 썩듯이 아이들도 지겨워한다. p. 282 언젠가 이곳을 찾아온 어떤 분이 일목이에게 물었다. "너는 나중에 커서 뭐가 되고 싶어?" "나는 평민이 될 거예요." "평민이라고?!" 김매는 일을 시키면 끝까지 안 하고 혼자 숨어서 백과 사전을 즐겨 읽는 일목이, 그 일목이에게 감동을 준 평민은 어떤 사람일까? 일목이와 얘기 나눴던 그분은 그 말이 '사람'이라고 들렸단다. 수천 년 동안 이 겨레의 평민은 어떤 사람인가? 아이들과 부모는 같은 바람을 품고 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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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김용희씨는 1961년 제주도 서귀포에서 태어나고 제주시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중앙대학교 약학과를 나와 10년동안 서울 봉천동에서 약국을운영하다가 1998년 4월 남편과 다섯아이와 함께 가장 가까운 마을에서도 1시간이나 떨어진 강원도 화천군 선이골 외딴 곳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다. (지은이 소개글중에서 발췌)
김용희씨는 고3때 헨리 데이빗 소로우의 <숲속의 생활>을 읽고 학교를 그만두었다고 한다. 원래 부터의 심성이 자연인 것을 짐작케 한다. 나도 숲속의 생활을 읽고서 마음 속으로 그 생활에 대해서 생각을 하긴 했으나...내가 가진 것들의 무게 때문인지...엄두도 내지 못한 일들이었는데 말이다.
김용희씨의 글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글솜씨야 재주로만 되는 것이 아닌 반복되는 자기 성찰과 내공이 만만치 않은 경지에 이르러서야 읽는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게 되는 것이다. 귀향, 귀농하는 사람들이야 요즘 심심찮게 볼 수가 있지만...김용희씨 일곱가족처럼 옛날 화전민같이 저렇게 전기도 개스도 이웃도 아무것도 없는 그야말로 오지 산골에 자리를 잡아 자연으로 들어 간 사람은 보지 못했다. 남자나 여자 혼자 또는 부부가 뜻한바 있어 지리산자락이나 깊은 산골로 들어 간 경우는 왕왕 봤어도 일가족이 모두 들어간 경우는 처음 보는 것 같다.
서울에서 살던 사람이 그야말로 자연으로 바로 들어 갔으니 그 어려움과 마음앓이와 갈등이 말로 할 수 없을만큼 많고 깊었을것이라 짐작이 되지만 이 책에선 별로이 그런 것에 대한 표현은 없다. 아마도...7년을 그곳에서 살아 내는 동안 다 삭여 내었거나...아직도 삭여내는 과정인지도 모를일이다. 책 전반에 걸쳐 흐르는 담담함과 조용조용함...은 이 가족들이 어우러져 같이 살아 내고자 하는 마음의 다짐처럼 느껴졌다. 따뜻한....KBS 2TV 의 인간극장 5부작을 보는 듯한 느낌이다. 가보지 않았어도 책을 읽고 있노라면 산골의 정경들이 저절로 눈앞을 스치며 지나간다...
부모들이야 선택한 삶이지만 어찌 보면 아이들은 선택당한 삶일수도 있겠다. 합리적이고 지적인 부모들이 직접 필수교육을 하고 최대한 자연적, 인성교육을 하고 있지만...삶은 어차피 다른 사람들과 같이 살아야 하는 것일진데....이 아이들이 독립해서 앞으로 살아 내야할 삶들이 걱정도 되고 긍금도 해진다. 상대적인 삶들에서 지극히 자연스러운 삶을 살고 배우고 있는 아이들이지만 지극히 비자연스러운 사람들의 삶이 압도적 전부를 차지하고 있는 세상에서 부자연스런 위치가 될 이 아이들이...상처받지 않고 행복하게...자기의 짝들을 찾아서 주어진 한 삶을 살게 되기를 기도한다....
언제...몸과 마음의 여유가 생길 때 책들을 차 가득히 싣고서 선이골 일곱가족에게 훌쩍 다녀와야겠다.
추기: 인터넷서점에서 독자들의 리뷰를 읽다보니....지은이 김용희씨가 2006년 1월 4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는 글이 적혀있다....웬수같은 남편과...저 똘망똘망한 아이들을 두고서 어찌 눈을 감을 수 있었을까...고인의 명복을 빌면서...또 가슴한켠이 텅 비었을 남편과 하늘 한자락이 무너졌을 것 같은 아이들이 더 씩씩하게..건강하게 살아가기를 빈다...그래도...막내 딸아이는 엄마의 손길이 정말 필요할 때인데.... [인상깊은구절] 하늘은 이렇게 속삭인다. "내가 창공의 불을 껐다. 부드러운 밤의 이불은 내가 주는 안식이다. 자, 들어와 자거라. 내가 불러주는 자장가를 들으며 모든 염려와 근심, 두려움과 야망을 버려두고, 빈몸으로 들어와 자거라. 내가 밤새 네 몸을 새 몸으로, 평화의 몸으로, 활기찬 몸으로 지어주마." 나는 밤이 주는 이 평화와 쉼이 떨릴만큼 좋아서 선이골에 전깃불 들여오는 것을 먼 훗날의 일로 미루었다...........전깃불이 없음으로 해서 우리 모두는 서둘러야 하고, 전깃불이 없기 때문에 천연그대로 흘러 가는 것에 우리의 삶을 맡겨야 하고, 맡김으로 해서 받게 되는 축복인 것이다. 만남이란 무엇일까? 맞이란 무엇일까? 지금껏 살면서 전혀 예기치 않은 때에 전혀 모르는 사람을 온전하게 맞이해 본적이 있는가? 반대로 내가 모르는 사람에게 온전한 맞이를 받아 본 적은 있었는가? 나는 내가 아는 사람, 내가 좋아하는 시간에 내게 이익이 되는 사람만을 만나왔을 뿐이었다. 아니면 익명의 군중속에서 내가 이벤트가 되어 만났을 뿐이었다.........어떤이가 찾아와도 이렇게 맞이할 수 있길 꿈꾼다. 우리 모두 나그네의 몸으로 왔다가 가는 긴 인생의 순례길에 우리 가족이 잠시 머무는 이 선이골에 또 다른 나그네가 언제 어떻게 찾아와도 편안하게 쉬고 갈 수 있도록 하고 싶다. 언제나 기대한 것보다는 조금 못한 체험들을 하지만, 그래도 한 계절 지나면 나와 아이들은 또다시 낯선 세계로의 나들이를 꿈꾼다.... 내 안으로의 길고 험한 순례를 거쳐 나는 남편이 다른 性의 나 자신, 하늘이 내게 주신 몸임을 깨달았다. 저 ''웬수''는 하나되어야 할 나 자신이었다. 너무 힘들어서 나도 모르게 쏟아부었던 원망과 야속함은 ''낯선 나''를 알기 위함이었다. ''낯선 나''에 대한 나의 무례와 배척은 지난 40년간 나 자신에게 대해 온 태도이기도 했다. 남편의 말에 깊게 귀 기울여봄으로써 내 안의 소리를 듣고, 받아들이기 힘든 남편의 행동을 잘 받아 안음으로써 나 자신을 바르게 대하는 것을 익히고 싶어졌다. 가정안에서 남편과 아이들과 하나되는 과정은 잃어버린 태초의 나를 찾아가는 공부의 길임을 알았다.......하늘과 하나 되는 것도, 이곳 선이골 천연계와 하나 되는 것도, 이웃들과 하나되는 것도, 먼저 "허공중에 산산이 부서진 이름, 내가 부르다가 죽을 이름", 남편과 하나되는 일부터였다. 나와 남편, 두 몸이 한 몸되는 그일은 새 하늘, 새 땅의 열림이었다. 암에 걸렸는지도 모르는 세계의 작디 작은 방, 우리 가정은 그렇게 새로 나기 시작했다.... 나는 서울 봉천동에서 보낸 10년 약국생활과 이곳에서의 생활을 통해 사람의 만들어짐과 태어남과 자라남, 그리고 죽음, 심지어 사람의 질병조차도 우리 몸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하늘의 사랑이라고 믿게 되었다. 우리를 부수어 버릴 것 같은 질병의 아픔까지도 제멋대로 살아 온 우리를 돌이키려는 하늘의 애타는 부름이라고 믿게 되었다. 현관문만 닫으면 그 때부터는 철저한 무관심과 익명의 세계속으로 들어가는 서울에서의 생활에 비한다면 이곳 생활은 활짝 열려진 생활이다. 이곳에선 나도 남도 완전히 열어야만 살아갈 수 있었다. 열린 생활에 익숙치 않아 처음엔 신경이 곤두서서 꽤나 피곤했다. 하늘의 이끄심이라고밖에 달리 말할 수 없는 혜림이네 가족과의 인연....낯설고 물선 이곳 생활에서 우리는 혜림이네 가족과의 만남을 끈으로 하여 화천의 여러 이웃들에게 우리 마음을 열어 놓기 시작했다. 전화도 자동차도 우체통도 없을 뿐더러 사람이라곤 우리 가족밖에 없는 이 외딴 산골짜기 집이 이토록 열려있게 될줄이야! 하늘은 나무로 시를 짓고 노래하는 것 같다. 하늘의 노래, 나무의 노래가 선이골 겨울을 가득 채운다. 집안에선 난로의 따뜻한 노래가 우리를 하루종일 감싸 우리 몸에선 나무 냄새가 난다. 방안도 나무 냄새로 가득하고, 책이며 살림살이에서도 나무 냄새가 난다. 내가 보낸 편지에 나무 냄새가 가득하다는 답신이 오는 걸 보면, 그 냄새는 선이골을 벗어나도 사라지지 않는가 보다. 나는 나 자신에게도, 우리 아이들에게도,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도, ''사고 팔리지 않는 사람, 삶''을 바란다. 사고 팔리지 않을 떄 우리는 쉼을 얻을 수 있고, 평화롭게 하나되는 삶을 살 수 있다고 믿는다. 내 어머니는 "돈 버는 일은 너무나 어려운 일이다. 돈을 많이 벌 생각말고 돈을 쓰지 않아도 되는 삶을 생각하라"고 가르치셨다. 하노라고 파닥여보긴 했지만 쉽진 않았다. 사고 팔리지 않는 사람, 삶도 어려우리라. 그러나 평화롭게 하나되는 삶을 향한 목마름이 그 어려움을 견디게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