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리뷰 (6)

한줄평
평점 분포
  • 리뷰 총점10 67%
  • 리뷰 총점8 33%
  • 리뷰 총점6 0%
  • 리뷰 총점4 0%
  • 리뷰 총점2 0%
연령대별 평균 점수
  • 10대 0.0
  • 20대 0.0
  • 30대 0.0
  • 40대 10.0
  • 50대 9.0
리뷰 총점 종이책
침묵의 뿌리
"침묵의 뿌리" 내용보기
작가가 75년에 쓴 난쏘공을 저는 초등학교 6학년 때 동화책인 줄 알고 읽었더랬죠. 그는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서 이 책을 썼다고 합니다. 어린 마음에도 책을 읽으며 아릿한 슬픔이 느껴졌어요. 곱추 난장이와 철거민들의 삶을 동화적인 필치로 그려낸 그 소설이 대학에서는 운동권 도서라고 금서 목록에 올라 있었죠. 참 웃기는 일이었어요. 전 초등학생때 읽은 책인데 말이예요. 그
"침묵의 뿌리" 내용보기

작가가 75년에 쓴 난쏘공을 저는 초등학교 6학년 때 동화책인 줄 알고 읽었더랬죠.

그는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서 이 책을 썼다고 합니다. 어린 마음에도 책을 읽으며 아릿한 슬픔이 느껴졌어요. 곱추 난장이와 철거민들의 삶을 동화적인 필치로 그려낸 그 소설이 대학에서는 운동권 도서라고 금서 목록에 올라 있었죠. 참 웃기는 일이었어요. 전 초등학생때 읽은 책인데 말이예요.

그 시대에는 사회의 모습을 그대로 그려내선 안 되었죠. 도무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 황금빛 미래에 관한 노래나 글만 허가된 시절이었어요.

 

침묵의 뿌리가 무얼 말하는 걸까요?

 

조세희는 한 사람의 작가로서가 아니라 이땅에 사는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그동안 우리가 지어 온 죄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고 합니다.

그는 84년과 85년 사북에 들어가 그들의 삶을 사진으로 찍습니다. 그리고 80년에 폭동으로 규정되었던 사북사태의 진실에 대해 나직하게 우리들에게 들려줍니다.

어려움을 딪고 선 나라는 어떤 점이 다를까요? 우리나라가 소수의 행복을 위해 다수의 희생을 눈감았다면 미국같은 나라는 대공황시절 비참한 다수의 삶을 여과없이 보여줬다고 해요. 그래서 함께 고통을 나눠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를 끌어냈고, 고통의 분담을 통해 그 시절을 극복해 냈지요.

 

아이들에게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가르쳤던 기억이 부끄럽게 되살아납니다.

그 속에서 숨죽이고 인간의 기본권 조차 무시당하며 견디다 도시의 쪽방에서 연탄가스로 숨진 어린 도시 노동자들, 농약을 마시고 목숨을 끊은 농민들, 막장에서 가슴에 푸른 멍이 드는 병을 얻으며 묵묵히 탄을 캤던 광부들의 무조건적인 희생 위에 이루어진 경제개발이었습니다. 거기에 인간의 논리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어요. 우리나라 재벌들은 천문학적인 개인 재산을 갖게 되었구요.

 

침묵한다면 사회의 죄를 나누어 져야 한다고, 그것은 지금도 되풀이 되고 있는 일일 뿐더러 하나도 변하지 않음이 오히려 놀랍다고 그는 쓰고 있어요.

 

입만 살은 나 같은 사람은 이 책이 무겁습니다. 갚을 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YES마니아 : 골드 p******e 2007.04.15. 신고 공감 2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당신의 알리바이는 정당한가
"당신의 알리바이는 정당한가" 내용보기
중고등학교 학생들 필독 도서 목록에서 빠지지 않는 소설이 조세희 선생의 이다. 한때 그 책을 필독 도서로 올린 교사가 문제 교사로 낙인 찍힌 적이 있기도 했지만 지금은 대부분의 학교나 교육청 청소년 단체에서 권장하는 책이다. 나도 고등학교 시절 을 읽었고 조세희 선생의 그 다음 작품을 몹시 기다렸다. 기다림이 길어질수록 기대는 커졌다. 거기엔 옛 애인과의 해후를 기
"당신의 알리바이는 정당한가" 내용보기
중고등학교 학생들 필독 도서 목록에서 빠지지 않는 소설이 조세희 선생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다. 한때 그 책을 필독 도서로 올린 교사가 문제 교사로 낙인 찍힌 적이 있기도 했지만 지금은 대부분의 학교나 교육청 청소년 단체에서 권장하는 책이다. 나도 고등학교 시절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을 읽었고 조세희 선생의 그 다음 작품을 몹시 기다렸다. 기다림이 길어질수록 기대는 커졌다. 거기엔 옛 애인과의 해후를 기대하면서도 변해버린 연인의 모습을 봐 버릴까봐 차라리 그리워만 하고 나타나기를 바라는 심정과 유사한 면도 있었다. <서울 1964년 겨울>로 타인과 단절된 채 살아야하는 도시인의 고독과 익명성을 그려 현대 사회의 문제점을 누구보다 예민한 촉수로 포착하여 그렸던 김승옥이 오랜 침묵 끝에 기독교의 장로가 되어 돌아와 우리에게 제시한 구원은 종교였다. 85년도에 출판된 조세희 선생의 작품집 <침묵의 뿌리>를 늦게야 접한 것은 97년. 나는 책을 사서 늘 곁에 두었다. 때론 사무실 서랍 속에, 거실 책꽂이에, 화장실에 두기도 했다. 선생이 다시 들려주기 시작한 언어는 버려진 것, 내팽개친 것들에 대한 기억, 재소유였다. 그리고 그것들을 환기시켜주는 언어는 글뿐이 아니라 사진이 있었다. 선생은 흑백의 언어로 <난장이가 쏘아 올린 공>에서 다 하지 못한 얘기를 하고 있었다. "지금은 부를 분배가 아니라 축적할 때"라는 말을 알리바이 삼아 죄로부터 자유롭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이 글과 사진들은 거북살스러운 것이 되겠지만....... 상징적으로, 암시적으로 전달하던 메시지가 이제는 우회적이지 않은 가감없는 흑백의 언어로 독자에게 전달되고 있었다. 선생이 찾아간 강원도 소읍(小邑)을 사람들은 입에 올리기를 꺼려했다. 선생이 책을 펴낸 무렵 나는 강원도의 작은 마을에서 첫 직장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그 곳에 무슨 일이 있었느냐는 나의 질문에 그 곳에 있었던 몇몇 사람들도 말하기를 꺼렸다. 사람들이 한사코 말하려 하지 않은 이야기들을 나는 뒤늦게 책을 통해 보았다. 그리고 오랫동안 가까이 두었지만 막상 펼칠 기회가 없던 책을 다시 읽게 된 것은 어느 소설에 인용된 "배가 고파서 아무나 두들겨 패 주고 싶었다"는 시구 때문이다. 마침 신년 벽두부터 유기농 채소 바람이 거세다. 사람들의 입맛을 위해 식탁에 올려지는 가축 사료로 잉여 농산물의 40%가 쓰인다는 반성이 앞섰다면 다행이겠지만, 자국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잉여 농산물을 여전히 바닷속에 폐기하는 대신 세계 인구의 16%가 절대빈곤에 시달리고, 매년 4만명의 아이들이 굶어죽는다는 이 모순된 풍요의 시대에(위에 인용한 수치가 정확한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문득 다시 선생의 책을 읽고 싶어진 것이다. 빛만을 좇아 사는 해바라기처럼 풍요와 영광만을 탐식하던 우리에게, 빛이 있는 자리 그 곁엔 그늘이 있음을 일깨워준다. 그리고 그 그늘이 있었기에 그나마 빛이 존재 의미를 나타낼 수 있었고, 우리 누구도 지난 죄의 시간에 정당한 알리바이를 댈 수는 없음을......

[인상깊은구절]
최근에야 나는 사진이 갖는 기능 가운데서 내가 힘 빌어야 할 한 가지를 발견했는데, 그것은 기본 과제 해결에 그렇게 열등할 수 없는 민족인 우리가 버려두고 돌보지 않는 것, 학대하는 것, 막 두들려버리는 것, 그리고 어쩌다 지난 시절의 불행이 떠올라 몸서리치며 생각도 하기 싫어하는 것들을 다시 우리 것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즉 재소유시키는 기능이었다.
l******r 2002.02.02.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당신의 알리바이는 무엇이지?
"당신의 알리바이는 무엇이지?" 내용보기
이 글을 읽으면서 실시간으로 막연한 가난, 굶주림에 대해 떠 올려 보았다. 즉, 가난과 굶주림은 색깔로 치자면 무언가 어둡고, 냄새로 따지자면 칙칙하며, 살에 닿는 느낌을 말하자면 매우 차갑고 건조한, 때로는 습기가 가득 찬 그 무엇. 하지만, 나는 그러한 가난을 모른다. 그렇다고 그렇게 넉넉한 집안에서 자라지는 못했으나, 자식새끼 굶주려가며 키우지는 않겠다는 우리 아버지
"당신의 알리바이는 무엇이지?" 내용보기
이 글을 읽으면서 실시간으로 막연한 가난, 굶주림에 대해 떠 올려 보았다. 즉, 가난과 굶주림은 색깔로 치자면 무언가 어둡고, 냄새로 따지자면 칙칙하며, 살에 닿는 느낌을 말하자면 매우 차갑고 건조한, 때로는 습기가 가득 찬 그 무엇. 하지만, 나는 그러한 가난을 모른다. 그렇다고 그렇게 넉넉한 집안에서 자라지는 못했으나, 자식새끼 굶주려가며 키우지는 않겠다는 우리 아버지의 책임감 덕분으로 나는 그다지 잘 먹지도 입지도 못하는 유년을 보냈지만, 그것이 가난이었는지 조차 실감하지 못하고 지냈다. 더구나 적어도 중학교 때까지는 성적이 상위권이었음으로 내 주변은 언제나 공부 잘하는 부자 아이들이었다. 그 아이들 틈에서 잠시나마 나는 중산층 그 이상이었다. 그들도 나를 성적이라는 단 하나의 이유로 나를 그들 옆에 끼워 주었고, 적어도 나는 그 때만큼은 중산층의 아들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더욱 가난은 나와 거리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머리가 굵고 대학생활을 지나 작은 농촌의 교사로 있으면서 나는 책에서 공부했던 가난의 근원과 폐해를 바로 지금 내 주변에서 이제야 눈과 귀로 보고 듣는다. 그 옛날 얼음골 쪽 산내초등학교에 있을 때도 그 가난은 들렸건만, 지금처럼 그렇게 와 닿지는 않았는데...... 우리 반 기쁨이는 아직도 콘테이너 박스에서 여섯 식구가 농사를 짓고 살고 있고, 바쁜 농사일에 정신이 없는 부모 덕과 동생 뒤치다꺼리에 아침을 늘 거르고 온다. 그래서 그런지 이쁜 기쁨이 얼굴엔 언제나 내가 놀려대는 허연 버짐이 있다. 말을 하지 않고 우둔하다 하여 전에 있던 학교의 담임으로부터 짐승처럼 맞기만 하여 더더욱 선생님인 나에게 마음의 문을 열지 않는 중완이는 오직 하고 싶은 것이 아버지 농사일 돕기란다. 중완이 어머님은 작년 12월 학예회가 있다고 중완이가 직접 다른 아이들과 함께 수화(手話)공연을 한다고 바쁜 농사시간을 쪼개 학교로 찾아왔다(이전까지 중완이는 언제나 따돌림을 당했었다고 한다. 아이들과 심지어 선생님에게서조차). 내 앞에서 이러한 중완이 얘기를 꺼내며 그 육중한 몸을 가누지 못하고 그 어머님은 끝내 억수 같은 눈물을 한 시간이나 흘렸다. 그리고 나와 헤어지는 길 끝에서조차 ''잘 부탁하십시더''를 연달아 내 뱉었다. 그 아이와 이제 2개월밖에는 남지 않았는데도. 이 밖에 우리 아내 학교에서 농사 타작 도중에 한 아이의 아버지가 손가락이 세 개나 잘려 나가 두 개는 봉합을 했는데, 나머지는 찾지를 못했다느니, 시골 길 근처 얕은 늪에서 놀던 어린 아이가 엎어져 일어나지 못하고 그대로 죽어버렸다는 얘기, 도시에 살다 부모가 교통사고로 다 죽어 어쩔 수 없이 하나밖에 없던 그 손녀는 무관심하고 무지한 할아버지 내외의 보살핌으로 결국 가출을 하여 지금까지 어디에 있는지 소식도 없다는 얘기. 우리 주변의 가난은 화려하고 달콤한 텔레비전 속의 삶들과 그렇게 엄청난 거리를 두고 있었다. 이 책은 바로 이러한 가난을 얘기한다. 그리고 굶주림을 지나쳐 비굴한 인간들의 모습까지 까발린다. 조세희라는 그 옛날 70년대 이른바 ''난쏘공''이라 불리는 책을 쓴 저자의 글솜씨로 포장이 되어 강원도 탄광촌이었던 사북 지역의 모습을 찍은 여러 장의 사진들과 함께 그는 가난의 억울함과 질곡, 비참함 그리고 나아가서는 읽는 독자에게 무거운 책임감을 요구하고 있었다. ''알리바이라면 우리 시대의 시민 모두가 갖고 있다. 그러나 우리 땅 어느 곳의 역사가 20년밖에 안 된다는 것은 곧 그곳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대한 책임을 남에게 전가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했다.''라고 말이다. 사실 이 글은 1985년에 첫 출간이 된 것이라 시간적인 가난의 양상은 지금과는 분명 다르다. 그런데 가난이라는 낡은 옷의 그림이 70-80년대라는 것말고, 지금과 다른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느낌을 받은 것은 왜일까. 이제 책 속으로 잠시 들어가 볼 필요가 있겠다. 이 글 본래의 취지는 책소개임으로. 조세희씨는 가난의 아픔을 얘기하는 출발로 ''어린 왕자''라는 소품을 빌린다. 작가는 ''어린 왕자''와 끊임없이 얘기하며 이 놈의 가난은 우리 땅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를 되묻고 있다. 이후 사북지방에서 어렵사리 얻은 아이들의 글모음집을 통해 아이들의 눈을 통해 본 사북지역의 가난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자 했다. 부모님을 잃고 작은 집에서 학교에 다닌 5학년 한식이의 글은 너무 가슴을 시리게 한다. 한편, 조세희는 자신이 쓴 소설 중 <풀밭에서>의 일부를 소개하고, 쓰다 버린 작품 <1979년의 저녁밥>의 일부를 통해 엽기적인 부의 축적과 구토하고 싶은 그들의 행각, 그리고 중산층 계급의 환상을 드러내고자 한다. 조세희의 이러한 독특한 산문집은 사북지방을 직접 방문하여 찍은 낡은 사진들을 통해 ''침묵의 뿌리''라는 책을 완성 짓는다. 그리고는 아주 소박한 소망을 드러내기도 하는데, 2003을 맞이한 지금 이 소망이 아직도 유효하다는 인식을 하면서도 조금은 낯설게 느껴지는 것은 그만큼의 지나 온 세월 덕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내 이웃의 가난함이 결코 자신의 책임과 그다지 멀리 있지 않다는 표현의 ''알리바이''. 우리 이웃의 가난이 나의 무관심이었고, 내 식구의 목구멍에 거미줄이 우선 급했기에 나는 그 원죄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그 ''알리바이''. 적어도 나는 내 이웃의 가난에게 난 ''사랑의 리퀘스트''라는 2000원짜리 양심을 끝임 없이 쏟아 부을 수 있다는 또 다른 ''알리바이''. 조금 더 부풀려서 어느 교사친구의 말처럼 내가 가난한 농촌의 아이들과 함께 하지 않는 이유는 도시 아이들의 건강한 사회인식과 역사성에 대한 고민도 마찬가지로 중요하기 때문이라는 색다른 ''알리바이''. 우리는 그렇게 내 알리바이를 짜 맞추려 애쓰지 않는가. 하지만, 우리들은 가난과 억압이 드러나고 횡행하는 그곳에서 아무도 자유로울 수 없음을. 그곳의 책임을 우리 것이 아니라 당당하게 말할 이는 그리 많지 않음을 생각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YES마니아 : 골드 k*****8 2003.04.28.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조세희, 침묵의 뿌리
"조세희, 침묵의 뿌리" 내용보기
사북사태, 라고 들었다. 광부들이 어용노조와 살인적 저임금에 항의하면서 공권력 개입으로 대규모 유혈사태로 번진 사건을 사북사태, 라고들 한다. <침묵의 뿌리>는 사북사태로 기억되는 강원도 사북의 모습을 보여준다. 1. 삶을 말하는 방식 조세희가 사북에서 얻었다는 어린이 글모음집에 실린 글은 가난하고 슬픈 역사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아이들의 표현은 더하기도 빼기도 없
"조세희, 침묵의 뿌리" 내용보기
사북사태, 라고 들었다. 광부들이 어용노조와 살인적 저임금에 항의하면서 공권력 개입으로 대규모 유혈사태로 번진 사건을 사북사태, 라고들 한다. <침묵의 뿌리>는 사북사태로 기억되는 강원도 사북의 모습을 보여준다.


1. 삶을 말하는 방식

조세희가 사북에서 얻었다는 어린이 글모음집에 실린 글은 가난하고 슬픈 역사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아이들의 표현은 더하기도 빼기도 없다. 아이들을 둘러싼 현실을 그대로 재현한다. 아이들의 글을 빌어 표현되는 당시의 모습은 마음이 아프다 못해 그렇지 않은 삶을 살아온 자로서의 부끄러움까지 느낀다.

아버지
무용이 다 끝나고 집에 와 보니 아버지께서 세수를 하고 계셨다. 아버지 얼굴을 가만히 살펴보면 굴 속에 들어가셔서 우리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탄을 캐내고 월급은 조금밖에 없다는 것이 나타나 있다. - 5학년 박영희


아이들은 부모들이 푸념처럼 내뱉는 말을 무심결에라도 들었을 것이고, 그래서 아버지의 검은 얼굴에서 고단한 현실을 읽었을 것이다. 아무런 잘못없는 자의 입이, 자신에게 부과된 현실을, 이유를 모르는 채 읊조린다. 죄없는 자의 입을 통해 죄책감 느끼지 않는 세상이 그려질 때, 죄많은 세상의 부당함은 극대화된다.


1984년 3월 18일
아빠께서 일을 안 나가셨다. 왜냐하면 몸이 너무 아프시기 때문이다. 엄마도 안 계신데 나는 어쩔 줄 몰랐다. 엄마는 여덟 시가 되어야 오신다. 엄마께서도 일을 다니시기 때문이다. - 6학년 김미숙



2. 상징과 은유


조세희는 몇 편의 소설에서 상징과 은유로 말한다. 그러한 방식으로 그가 말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시대가 강요하는 침묵 때문이었을까. 있는 그대로 말하고자 하기엔, 하늘이 부끄러울 정도로 적나라한 현실, 그 현실을 현실의 언어로 말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일까. 난쏘공의 연작 중 한 편이 되었을 <1979년의 저녁밥>은 난쏘공에서 발휘한 힘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난쏘공과 다름없이 가진자의 삶 중 타락상을 부각시킨 까닭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가난한자의 삶에 무관심한 것만으로도 그것은 타락이기 때문이다.


3. 흑백사진 한 장
책 후반부에 실린 사진모음에 앞서, 글 중간에 실린 사진 한 장. 한 컷의 그림만으로 많은 것을 말하는, 가장 강렬했던 사진. 직사각형을 대각선으로 가로지르는 커다란 쇠기둥과 그 끝에서 기다란 줄로 내려오는 쇠도르래. 쇠도르래 아래 작업중인 노동자 한 명. 튼튼한 쇠기둥이라해도 대각선구도로 인해 위태롭게 느껴지는 불안한 구도. 그 속에서 보이는 것은 불안한 노동조건.


-----------------------

 

이 책은 글을 깨친 자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다.

함부로 침묵하지 않는 삶을 살기 위해서, 꼭 읽어야 할 책이다.

o********s 2008.04.13.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어떤 행복은 죄악이다
"어떤 행복은 죄악이다" 내용보기
'너무 배가 고파 나는 아무나 때리고 싶었다'라는 유명(?!)한 구절은, 조세희 선생이 사북에서 가져온 아이들 문집에 수록된, 그리고 이 책 '침묵의 뿌리'에 인용되어 있는, 시의 한 대목이다. (*이 구절이 유명하다, 고 적는 것은 내가 이 책을 읽기 전에도 어디선가 최소한 세네번은 이 구절을 읽었기 때문이다. 어디서 읽었던가는 기억나지 않은데, 내가 읽었던 책들에서는 이 구절이
"어떤 행복은 죄악이다" 내용보기
'너무 배가 고파 나는 아무나 때리고 싶었다'라는 유명(?!)한 구절은, 조세희 선생이 사북에서 가져온 아이들 문집에 수록된, 그리고 이 책 '침묵의 뿌리'에 인용되어 있는, 시의 한 대목이다. (*이 구절이 유명하다, 고 적는 것은 내가 이 책을 읽기 전에도 어디선가 최소한 세네번은 이 구절을 읽었기 때문이다. 어디서 읽었던가는 기억나지 않은데, 내가 읽었던 책들에서는 이 구절이 조세희 선생이 '침묵의 뿌리'에서 인용했던 싯구절이라고 밝히지도 않았던 것같다. 어쨌거나 나는 이 구절이 이 책에 등장하는 것인줄도 모르는 채 알고 있었다.) 가슴이 후들거린다, 어쩌고 한다면 과장이겠으나, 이 책을 전혀 아무런 동요없이 읽는 독자가 있을 수 있을까? '어떤 행복은 죄악이기도 하다'는 것이 조세희 선생이 이 책을 통해 가장 하고 싶었던 말인 것으로 보이는데, 과연 나는 '무죄'라고 추호의 의심없이 말할 수 있는 사람들, 이 많을 것같기도 하지만, 어쨌든 최소한 이 책을 읽는 동안 나는 자꾸 암담한 느낌에 빠지곤 했다. 이 책은, 조금이라도 자신에게 정직할 수 있는 어느 독자에게나 반성을 강요하는 책이다. '강요'라고 말했지만, 그것은 사실 '의무'였던 반성일테고..

[인상깊은구절]
우리 시대의 희망이 한 쪽으로 몹시 기울어져 있는 일을 나는 슬퍼한다. 능력있는 사람, 많이 배운 사람, 똑똑한 사람, 힘 센 사람, 많이 가진 사람, 적당하게 가진 사람들이 협력해 우리 시대의 문제를 바로 짚기만 한다면, 우리는 그 좋은 희망이 여러 곳으로 퍼져 나가는 것을 지금 당장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것은 국민학교에 갓 입학한 어린이까지 아는 민주주의를 더 이상 파괴하지 않으면서 고통받는 다수를 소수 쪽으로 옮겨놓는 일이다. 어려운 사람들의 생명이 지친 몸에 깃들어 있지 않게 하고도 다른 환경에 닿을 방법이 우리에게는 있을 것이다.
c******r 2001.02.22.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비루한 글을 앞서는 소녀의 눈빛 앞에서 발길을 돌려버린 말들... 조세희, 침묵의 뿌리
"비루한 글을 앞서는 소녀의 눈빛 앞에서 발길을 돌려버린 말들... 조세희, 침묵의 뿌리" 내용보기
조세희의 소설집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 출간된 것은 1978년이다. 《문학사상》 1975년 12월호에 발표된 단편 소설 <칼날>에서 같은 잡지의 1978년 3월호에 발표한 <에필로그>까지 모두 열두 편의 소설로 채워진 연작 소설집이었다. 그는 이 책으로 1979년 동인문학상을 수상하였고, 80년대에 대학을 다닌 이들에게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난쏘
"비루한 글을 앞서는 소녀의 눈빛 앞에서 발길을 돌려버린 말들... 조세희, 침묵의 뿌리" 내용보기

  조세희의 소설집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 출간된 것은 1978년이다. 《문학사상》 1975년 12월호에 발표된 단편 소설 <칼날>에서 같은 잡지의 1978년 3월호에 발표한 <에필로그>까지 모두 열두 편의 소설로 채워진 연작 소설집이었다. 그는 이 책으로 1979년 동인문학상을 수상하였고, 80년대에 대학을 다닌 이들에게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난쏘공’으로 불리우며 필독서가 되었다.


  “알리바이라면 우리 시대의 시민 모두가 갖고 있다. 그러나 우리땅 어느 곳의 역사가 20년밖에 안 된다는 것은 곧 그곳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대한 책임을 남에게 전가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했다.” (p.138)


  그로부터 십여 년이 흐른 1985년 조세희는 절반은 텍스트 그리고 나머지 절반은 사진으로 채워진 사잔-산문집 《침묵의 뿌리》를 세상에 내놨다. (그 사이 《난쏘공》에 실린 단편 <칼날>의 신애를 주인공으로 하는 《시간여행》을 출간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과 《침묵의 뿌리》 사이에 1980년이 있었다. 광주항쟁이 있기 얼마 전 사북사태라고 불리우는 사건이 발생한 강원도의 소읍이 있었다.


  “60년대 초반 사북은 주민이 수백 명밖에 안 되는 작은 마을에 지나지 않았다. 외지에서 일자리를 찾아 들어오는 사람도 그때는 없었다. 반대로 밭농사를 지으며 살던 주민 가운데 얼마가 밖으로 나갔을 것이다. 태어나 자란 곳에서 나가버리는 일, 옛날부터 가난한 나라 또는 궁핍한 지역의 빈곤 완화 방법으로 이 이상 유용했던 것은 없었을 것이다. 공장과 광산이 일자리 찾아나선 그들을 받아 고용했다. 사북에 광업소가 들어선 것은 1962년이었다. 동원탄좌개발주식회사. 설립자는 이연씨. 그러나 외지 사람들은 아직 무리지어 몰려오지 않았고, 석탄은 캄캄한 수백 수천 미터 땅속에서 잠을 잤다.” (p.241)


  책은 1980년 4월에 있었던 ‘사북사태’를 지근거리에 놓고 씌어졌다. 산업화라는 미명 하에 자행된 고강도 그리고 장시간 노동이 극대화된 버전이라고 할 수 있는 탄광 노동자들이 열악한 노동 환경의 개선을 가로막고 있던 (사측과 결탁된) 어용 노조에 대항하여 목소리를 내고, 그 목소리를 폭압적으로 막는 정부에 항거하다 그들의 일터이자 삶의 터전이었던 사북 일대를 일순간 점거하게 되었던 것이 ‘사북사태’였다.


  “사북사태 발새의 근본적 요인으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노동조합의 무력화 또는 어용화를 들 수 있다. 열악한 노동조건, 불합리한 임금체계 등 산적한 노동문제와 생활고에 시달려 왔던, 더구나 지역적으로도 고립되어 있던 탄광촌의 광부들이 최소한의 인간적 생활을 위해서 그들의 요구를 주장하고 실현시킬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은 노동조합뿐이었다. 그러나 노동조합은 이같은 광부들의 희망을 저버린 채 회사와 결탁하여 오히려 이러한 문제들을 온존시키고 심화시킴으로써 사북사태와 같은, 광부들의 폭발적이고 대규모적인 집단 항의를 유발시키게 된 것이다...” (p.246, 황인호 「사북사태 진상보고서」 중)


  그는 사북에 가서 그곳에 있는 이들을 사진으로 찍었고, 그곳에 있는 이들과 말을 나누었다. 작가는 1984년과 1985년 그곳을 방문하였고 그곳에서 어린이들의 글모음집을 발견하여 책에 그중 일부를 실었고 그곳 어린아이들의 시선을 이미지로 남겼다. 책의 표지에 실리기도 한 어린 여자아이의 눈빛은 들여다보는 일이 쉽지 않다. 천연한 눈빛의 소녀가 눈앞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만 같다.


  “미술가가 꿈속에서 빛깔을 본다는 것은 잘 알려진 이야기이다. 작가는 꿈속에서 별처럼 반짝이는 많은 말들과 만난다. 그해에는 잠을 자는 동안에도 내가 써야 할 말들이 끝없이 이어져 나와 정말 때에 어울리는 나의 말들아 너희도 이제 잠을 좀 자고 내가 깨어나 일할 때 차례로 일어나 나와라 부탁할 정도였다. 나는 말할 수 없이 피곤했지만 깊이 잠들 수 없었다. 어떤 말들은 끝내 잠자지 않고 다가와 나를 잡아 흔들었다. 나는 빨리 써 달라고 보채는 그 말들을 머리맡 빈 커피잔에 넣어 받침접시로 눌러놓은 다음에야 잠을 잘 수 있었다.
  그 많은 말들을 내가 그 뒤에 어떻게 했는지 알 수 없다. 나의 지금 머리는 철야 조업 공장의 기계처럼 망가져 떠오르는 말 하나 없다. 오랫동안, 찾아오는 말들을 너는 안 될 사정이 있어 안 돼 하며 돌려 보내기만 했더니 이제는 모든 말들이 내게 필요하지 않다 지레 채고 발길을 끊어 버렸다.“ (p.20)


  책에 포함되어 있는 액자 소설에 실린 위의 문장을 보면서, 《난쏘공》 이후 눈에 띄는 글 작업을 해내지 못한 조세희를 떠올렸다. 그를 글로 이끈 것이 이 땅의 생생한 처연이었던 것처럼 그를 글로부터 떼어낸 것 또한 이 땅의 여전한 야만이 아니었을까 싶다. 자신의 비루한 글보다는 저 소녀의 눈빛이 보다 많은 것을 말해 주고 있다는 사실에 직면한 소설가의 선택을 받아들이지 않을 도리가 없다. 바로 저 소녀의 눈에 '침묵의 뿌리'가 있었다.

 


조세희 / 침묵의 뿌리 / 열화당 / 263쪽 / 1985 (1985)

YES마니아 : 플래티넘 k******i 2018.07.01.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