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 노르웨이의 숲 만큼은 유명하지 않더라도 많은 분들이 읽으신 책으로 알고 있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 책을 읽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서 인기가 대단한만큼 책도 엄청 몰입감 있게 잘쓰는것 같습니다.잘 읽어보겠습니다. |
| 하루키의 등단작인 바람의노래를들어라로 시작된 초기작품 3부작을 비롯해 세계적 작가로 만들어준 상실의시대를 정점으로 한 하루키 특유의 세계관이 형성되있다.그러나 그 안에 구원을 위한 해결방안은 제시하지않았다.등단 후 16년만에 발표한 이 작품은 하루키의 다섯작품속에서 계속 결론을 미뤄왔던 미완의 명제를 풀어낸해결편과같은 작품이다. |
|
상실의 시대 완결편이라는 말이 괜한 말이 아닌 듯 하다. 어릴적 읽었던 국경은 그냥 추억에 대한 불륜의 핑계라고 생각했었건만 다 늙은 어른이 되어 다시 읽은 국경은 과거의 그림자가 현재의 삶에 미치는 영향과 인간의 근원적인 고독과 상실감에 대해 공감하게 되고 취하게 되고 위로 받게 된다. 상실의 시대 보다는 덜 몽환적이나 글이 더 읽기 쉽고 두 작품 다 꿈인 듯 현실인 듯 나를 찾아가는 여정을 즐기기에 부족함이 없다. |
|
정말 좋은 아내(미도리)를 만난 주인공(하지메). 상실을 딛고 새로운 시작을 하는 주인공을 통해 내가 힘들때 언제까지나 마음을 굳게 닫기보다는 그래도 한번 문을 열어 환기시켜보자는 희망을 준다. 개인적으로는 노르웨이의 숲보다 재밌게 읽었다. |
|
노르웨의 숲의 완결편이라는 평가를 받는다는 글이다. 요즘 거꾸로 하루키 글들을 읽어가고 있어서 마침내 이 글까지 읽게 되었다. 하루키 글은 정말 신기하게 읽는 동안에는 지루함없이 쉽게 쉽게 읽힌다. 마치 내가 다 이해하는 것처럼 느껴지고 문장도 간단해서 별 내용이 없는 것처럼도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다 읽고나서 곱씹어 보다보면 그가 담은 비유나 은유들이 꽤나 오래도록 생생하게 기억이 나는 것이다. 이글도 역시나처럼 재미있게 읽었다. 글잘쓰는 작가들은 과거의 글이라고 해도 어수룩하지 않음을. |
|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은 사랑과 상실을 탐구하는 섬세한 소설로, 하루키 특유의 몽환적이고 서정적인 분위기가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이 소설은 주인공 하카세가 어린 시절의 사랑과 그 후의 삶에서 겪는 감정의 변화를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
|
이 책은 후반부보다 전반부가 더 기억에 남는다. 주인공이 만난 세 명의 여자 중에서 시작과 끝이라고 할 수 있는 시마모토보다 나는 이즈미가 더 인상적이었다. 시마모토는 주인공의 표현에 따르면 자신의 일부를 가지고 있는 여자였다. 아마도 그게 다리를 절고 사교성도 없는 여자아이와 허물없이 가까워질 수 있었던 이유일 것이다. 어린 시절 시마모토는 함께 있어도 불안하지 않고 주인공이 하는 이야기를 끊임없이 궁금해하는 아이였다. 그건 시마모토가 주인공의 일부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나머지를 궁금해했던 까닭일 것이고 주인공 입장에서 보면 자신의 일부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곧 자신이나 마찬가지니까 편했으리라 생각한다. 세상에 자기만큼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도 없지만 그렇다고 자기만큼 편한 사람도 없으니까. 우리는 누구와도 함께 있고 싶지 않은 순간마저 자기 자신과는 함께 있지 않는가.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런 것이다. 주인공은 시마모토와 헤어졌다. 다른 학교로 진학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사는 곳이 멀어졌기 때문이기도 하고 또 시마모토의 어머니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런 것은 부수적인 것이다. 우리가 가까운 사이라고 할 때 이 가까움은 집이 가깝다거나 부모님끼리 친하다는 말이 아니라 서로의 마음이 가깝게 붙어 있다는 뜻이다. 주인공은 중학생이 된 후 시마모토를 보기 위해 몇 번 찾아갔지만 그 이후로는 만나기를 그만두었다. 자연스럽다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서로 사춘기에 접어들기도 했고 자연스럽게 함께 다닐 수 있었던 예전과 다르게 이제는 함께 있기 위해서는 같이 있으려는 노력이라는 걸 해야 하니까. 그리고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은 단순히 친구가 아니라 그 이상의 관계를 뜻하는 것이다. 아마 주인공은 시마모토와 그 이상의 관계를 맺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요컨대 시마모토는 분명히 자신의 일부를 가지고 있지만 그 일부는 더 이상 나의 일부가 아니게 된 것이다. 우리는 살면서 원래 자기 것이었던 것들을 많이 버리고 반대로 내 것이 아니었던 것들을 내 것으로 만든다. 사람마다 내 것과 내 것이 아닌 것의 비율은 천차만별이지만 아무튼 섞여 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죽을 때까지 자기 것만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 시마모토가 자신의 일부를 가지고 있었다고 해서 시마모토가 영원히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하는 건 이상하다. 그보다는 두 사람이 멀어졌을 때 시마모토 속에 있던 주인공의 일부는 더 이상 주인공의 것이 아니게 되었다고 하는 게 맞을지도 모른다. 그것은 아마도 시마모토의 일부가 되었을 것이다. 내가 주인공의 두 번째 여자라고 할 수 있는 이즈미를 인상 깊게 기억하는 이유는 그녀를 만나면서 주인공은 겨우 한꺼풀의 옷이지만 겉옷을 벗기고 속옷까지 벗기는 데까지 아주 많은 단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단계들 중 몇 가지를 무시하거나 건너뛸 수 없다는 사실이다. 나는 그동안 책을 보다가 인상 깊은 구절이나 장면이 있으면 페이지를 접곤했는데 그러다 보니 어떤 책은 너무 많은 페이지를 접어서 오히려 다시 읽기가 힘들어지는 경우가 있었다. 그래서 이제는 가급적이면 페이지를 접지 않으려고 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서는 두 번 접었다. 그중 하나가 이즈미와 주인공이 처음 알몸으로 서로를 껴안았을 때인데 이 순간을 두고 주인공은 이렇게 말한다. 중요한 것은 커다란 사건이나 엄청난 약속 같은 게 아니라 작고 구체적인 일들의 축적이라고. 레고 블록을 쌓아올려서 성을 만들고 스타워즈에 나오는 비행선도 만들듯이 우리가 쌓아올려야 하는 것은 바로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구체적인 것이면서 동시에 위로 차곡차곡 올릴 수 있는 안정감 있는 무게를 가진 것이어야 한다. 이즈미의 겉옷과 알몸 사이에는 겨우 두 겹의 얇은 옷이 있을 뿐이지만 그 사이에는 무수히 많은 단계가 있고 그 단계들은 바로 작고 구체적인 일들을 통해 하나씩 앞으로 나아가게 된다. 이건 여고생의 옷을 벗기는 일에 대한 이야기지만 아마 여고생의 옷을 벗기는 일 외에도 아주 많은 일에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소설의 주인공은 이즈미의 사촌 언니와 성관계를 맺었다가 그 사실을 들키는 바람에 이즈미와 헤어진다. 그리고 이 사건은 이즈미에게 커다란 상처를 남겼다. 여기까지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문제는 이후에 만나게 되는 시마모토와의 사이에 똑같은 일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주인공은 이미 결혼을 해서 아내와 아이도 있는데 시마모토와 함께 있을 수만 있다면 아내도 아이도 버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미 자신의 욕망을 충족하려다 소중한 누군가에게 상처를 준 경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마모토에게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는 생각에 아내에게 상처를 주고 만다. 아마 여기서 특별한 것이란 주인공이 자신의 일부라고 생각했던 그 무엇일 것이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이 그건 분명히 주인공의 일부였던 적이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어린 시절 두 사람이 헤어진 이후에는 더 이상 주인공의 것이 아니었다. 주인공은 이즈미의 사촌 언니와 시마모토는 전혀 다른 존재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전자가 단순히 성욕의 해방을 위해 필요한 관계였다면 후자는 그 이상의 어떤 고양적인 무언가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특별한 무언가가 아니라 과거를 이상화하는 것이다. 과거에 이루지 못했던 어떤 일은 그 자체로 이미 자기 인생에 영향을 미침으로써 그 역할을 완수했다. 이루지 못했기 때문에 당연히 미쳤어야 할 영향을 미치지 못한 채로 어정쩡하게 상실되어 버린 게 아니다. 그러나 주인공은 시마모토와의 만남이 과거의 결손을 회복하고 그로 인해 새로운 인생을 시작할 수 있는 계기라고 생각했다. 말하자면 그는 과거를 램프의 요정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숨겨진 동굴의 입구를 찾아 때묻은 램프의 표면을 천으로 비비면 소원을 이루어주는 지니가 나타나듯이 과거로 통하는 문으로 들어가 거기서 이루지 못했던 관계를 회복시키면 새로운 인생이 열릴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시마모토는 사라졌다. 주인공은 과거로 통하는 문을 찾아 그곳으로 들어갔고 시마모토와의 관계를 원상복구했지만 결과적으로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그는 삶이 작고 구체적인 것들의 축적이라는 것을 이즈미를 통해 배웠음에도 불구하고 자기도 모르게 과거라는 환영에 사로잡혔던 것이다. 이 소설의 제목 중 국경의 남쪽은 어딘가 이상적인 세계를 떠올리게 하지만 실제로는 멕시코라는 구체적인 지명을 가리키고 태양의 서쪽은 매일 농사만 짓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넋을 놓고 걷게 되는 방향이다. 요컨대 유토피아를 찾는 사람은 구체적인 현실과 마주하게 되고 반대로 구체적인 현실에 묶인 사람은 유토피아를 찾게 된다. 이것은 머리와 꼬리를 서로 물고 있는 뱀의 형상처럼 출구가 부재한 세계다. 그래서 주인공은 모든 사실을 고백하고 아내와 화해한 뒤에도 멍하니 자리에 앉아 움직이지 못한다. 환영의 끝은 현실이고 현실의 끝은 환영이니까. 이렇듯 작고 구체적인 것들을 쌓아가지 못할 때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는 대신 이 탈출이 불가능한 서클 속을 맴돌게 된다. 그러니 중요한 것은 욕망이 아니라 감각이다. 하고 싶은 것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것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그렇게 쌓은 블록이 어떤 모양이 될 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모양을 상상하다가 아무것도 쌓지 못하면 그곳에는 자기라고 말할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말은 공허하다. 우리가 무게를 느끼는 건 오직 쌓여져 있는 블록뿐이다. 2024년 12월 4일부터 2024년 12월 9일까지 읽고 생각하고 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