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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같은 혼란스러운 사회에서 어떻게 제대로 된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를 궁구해 본 책이다. 내용에 심도가 있다. 깊은 생각과 그 생각으로 인한 행위를 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다. 이런 세상을 만드는데 지도자들의 지혜가 필요하고 도덕성이 필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그들은 개개인에게 공정과 진실의 가치를 심고, 그런 사람들이 잘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나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 지도자 자신부터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한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을 것을 요구할 수 있지 않을까? 지난 경제부흥기를 거치면서 참으로 의식주를 위해서 모든 가치를 도외시한 우리들의 삶이었다. 이제는 그렇게 살아갈 수 없다. 그런 지도자가 되어서도 안 된다. 그럼 어떻게 제대로 된 삶을 살 수 있을 것인가? 이 혼란스러운 시대에 어떻게 가치 있는 삶을 살아갈 것인가
문명전환기에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아니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를 생각해 보게 하는 책이다. 결론적으로 상식이 회복되고 도덕과 양심이 사회를 유지해 나가는 상태가 되어야 함을 이야기한다. 이를 위해서 미국의 19세기 사상가인 에머슨을 데리고 왔다. 에머슨은 미국이 양분해 있을 때 통합의 비전을 말하고 그것을 실천에 옮길 수 있도록 한 인물이다. 그의 사상을 통해 미국은 위기를 조화롭게 극복하고 세계 강대국의 대열에 올라설 수 있는 기틀을 마련했다. 그들의 나아갈 방향 설정을 제대로 했고 미국은 그것을 올바르게 수용했다.
저자는 에머슨의 시대와 지금의 우리 시대가 비슷하다고 얘기하고 있다. 다른 면에서 그런 것이 아니라 양분된 세력이 서로 대립하여 있고, 문명의 변화가 급격하게 이루어져 세계관에 혼란을 가져올 수 있는 시대가 되고 있다는 점에서다. 이런 시대에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해 나갈까? 지도자는 어떤 지혜를 가지고 민족의 비전을 제시해 나가야 할까 이 문제들을 거론의 대상으로 삼아 논지를 전개해 나가고 있다.
저자는 에머슨의 철학과 역을 통해 중도의 길을 주장해 나간다. 흔히 황금률이라고 하는 비율을 통해 다양한 가치를 융합해 나가고 조화를 이루게 만들어가야 한다고 보고 있다. 거기에 성인들을 통해 보여주는 통찰력으로 세상을 조율해 나가길 찾아가고 있다. 그런 면에서 지식을 우리들에게 공급해 주고 있는 책이라고 보면 되겠다. 성인으로는 공자, 노자, 석가, 예수 등을 제시한다. 그들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지혜를 배우게 하고 있다.
본격적으로 동서양의 정신을 융합한 사람은 에머슨이었습니다. 그는 서양의 다양성과 동양의 통일성을 중도의 정신으로 융합한 장본인입니다. 에머슨이 창시한 초절주의는 서양의 물질주의와 동양의 정신주의를 융합해 실체적 진실을 담아내려는 노력의 결과입니다. p31
글을 통해 저자가 가장 역점을 두고 있는 에머슨의 사상을 보여주고 있는 부분이다. 미국이 아시아에서 건너간 원주민들과 유럽에서 건너온 청교도 이전의 많은 사람들이 공존하면서 새로운 질서를 이뤄가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문명의 거친 결합, 식민지 건설과 독립전쟁, 종교의 타락과 마녀 재판, 노예제도의 갈등과 남북전쟁, 미 횡단철도의 건설, 급격한 산업화와 생태계 파괴, 첨단과학의 발달과 우주항공 시대의 개척, 정보통신 기술의 발전 등 수백 년의 역사가 수천 년의 인류문명의 역사를 뛰어넘고 있다. 이는 미국에 몰려든 세계의 유수한 인재들의 융합으로 이뤄진 것이다. 어느 한 민족의 성과물이 아니다. 즉 에머슨이 말한 동서양 융합의 초절주의에 의해서 된 것이라 보고 있다. 초절주의라 함은 현실의 수용과 초월을 동시에 의미한다. 즉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가장 멋진 말이 되겠다. 글을 전체적인 내용이 이 에머슨 사상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천지자연이 하는 일은 매일 같은 일을 반복하는 것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그사이에 천지의 기운이 바뀌고, 계절이 바뀌면서 식생도 변화합니다. 봄의 변화는 이미 겨울부터 준비되어 있던 것입니다. 표면에 드러나기 전에, 내부에서는 변화의 에너지를 응축하고 있지만, 우리는 그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을 따름입니다. p41
이 글의 또 한 가지 시각은 동양에서 보여주는 역의 사상이다. 사회는 기존의 사회구조를 지키려는 세력과 변화를 모색하는 세력 사이에 모순과 갈등 요소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늘 싸움이 있고, 이기가 발동한다. 하지만 역(易)은 갈등과 모순이 오히려 변화의 원동력이라고 한다. 앞으로는 인류의 생존방식이 바뀌게 될 것이라고 본다. 코로나 시대를 통해 인류의 각성이 따라야 하고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감지해야 함을 말한다. 코로나를 물질만능주의에 대한 경고로, 인간의 탐욕에 대한 경종으로 보고 있다. 그리고 자연으로 돌아갈 것을 권유한다. 그 자연은 인간 생명의 자연스러운 흐름이라고 본다. 바이러스가 이 흐름에 역행한 결과로 생겼다고 얘기한다. 그렇기 때문에 생존을 위해서 산업시스템이 전환하고 도농 간의 조화도 이루어야 한다고 본다. 이것이 역의 관점에서 살핀 것이다. 변화가 따라야 하고 새로운 것을 찾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 3 가지를 제시한다. 멈춤의 지혜, 적폐청산의 도리, 새로운 에너지 확보 등으로 변환을 꽤해야 한다고 본다. 음지일 때 물러나 힘을 기르고 양지일 때 나아가 활동을 해야 한다고 한다. 그것이 순리라고 한다. 역의 사상으로 본 관점이다. 이는 에머슨의 사상과 같이 이 책의 근본이 되는 내용이다.
팬데믹 상황은 우리의 생존에 큰 위험이 되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가 새롭게 변화하고 비상할 수 있는 기회를 동시에 주고 있다. 각 분야의 지도자, 특히 정치 지도자들의 지혜와 각성이 필요하다. 위기가 오히려 기회가 된다는 말이다. 이를 할 수 있는 것은 개인이 아니다. 지도자들의 의식이 그렇게 되어야 하고 행동으로 옮길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오늘의 사회는 제대로 된 지도자를 갈구하고 있다. 우리는 팬데믹을 통해 보다 능력 있는 지도자를 선택할 수 있는 지혜자들이 되었으면 한다. 그것이 우리의 삶을 보다 넉넉하게 만들어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디지털 시대, 정보의 분산을 막을 길이 없다. 이럴 때 구태의연한 정치는 금물이다. 언론 통제가 어려운 것과 마찬가지로 여론의 힘을 막을 수가 없다. 그 여론을 등에 업은 정치인들의 걸음이 중요하다. 도의가 중요하고 시대정신이 투철해야 한다. 그렇지 않을 때는 혼란만이 야기된다. 촛불 집회를 통한 탄핵 등도 정보의 분산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가 된다. 법과 제도가 오히려 개방형 융복합 산업의 성장을 막고 있는 점도 아쉽다. 견제와 균형이 이루어져야 하지만, 진영의 논리에서 벗어나야 한다. 중도가 되어야 한다. 중도에는 좌와 우, 진보와 보수의 개념이 없다. 오늘의 우리 사회를 볼 때 여야가 너무 대립하고 있다. 그러면서 중도라는 말을 호도하고 있다. 중도 보수, 중도 진보란 말이 어찌 있을 수 있다는 말인가. 중도는 말 그대로 중도다. 우리 사회에서 여야는 오른발, 왼발이라 볼 수 있다. 서로의 역할이 어때야 할지 자명하다.
우리 사회의 생활환경도 문제다. 우리가 만드는 공해가 심각하다. 그것을 조금이라도 해소하기 위해 건강음식문화는 너무도 필요하다. 먹고 사는 문제에도 도리가 있다. 자신의 먹고 사는 문제를 위해 타인에게 해가 되면 안 된다. 이를 위해 융합 스마트 시스템이라는 것을 생각해 보고 있다, 먹는 문제가 해결되면 사랑 다가오는 것이 사랑이다. 이성간의 사랑, 그것은 생존의 문제다. 그런데 요즘은 환경이 변함에 따라 자녀들에 대한 생각도 달라지고 사회 환경도 많이 달라졌다. 가부장적사회에서 양성평등사회로 나아가고 있다. 이렇게 됨으로 파생된 것이 저출산 문제다. 여성들이 조금 힘 드는 일들을 피하고자 하는 관점에서 아기를 낳는 것을 선호하지 않는다. 자연의 질서가 무너지고 있는 한 예다. 물론 앞으로 가족도 그 형태가 변해 가리라 생각된다. 새로운 형태의 모계사회가 형성되고, 여성이 주도적으로 좋은 씨앗을 받아 아이들 낳아 기르는 사회가 되지 않을까? 어떤 환경이 되더라도 새로운 가족 제도에서는 풍속을 바르게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단 말을 하고 있다. 도덕성, 인륜, 사랑 이런 것들이 되리라.
소로우가 윌든 호숫가에 산 이유를 말하고 있다. 소로우는 에머슨과 밀접한 관계에 있었던 사람이다. 소로우는 자연의 생명흐름에 따라 자기 정체성을 구현하고 행복하게 사는 것이 가장 경제적인 삶이라고 생각했다. 돈과 물질의 노예가 된 삶이 팽배하고 있는 시대적 상황 속에서 그의 삶은 신선했다. 그는 삶의 수단과 방법이 바뀌었다라고 생각했다. 에머슨의 자연에의 회귀도 소로우와 공유된 생각이 아닌가 한다. 우리는 최근 방영된 ‘오징어 게임’을 통해 인간의 이상 심리를 잘 보고 있다. 물질만능의 시대적은 얼마나 이상한 세상을 만드는가? 저자는 말하고 있다. 우리들의 삶 속에서 항상 쾌락을 두려워하라. 덕을 쌓고, 진실을 추구하라. 그 말은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다른 말일 것이라 여겨진다.
중세 기독교는 전염병의 원인을 마귀의 짓으로 돌렸습니다. 그래서 그 유명한 마녀재판이 벌어졌던 것입니다. 그 재판의 실상을 들어다보면, 권력 없고, 돈 없는 사람만 악마로 몰려 죽임을 당했습니다. p153 지난 세상 속에서 어떤 종교도 세상을 구하진 못했다. 개인을 구원할 수 있을지 모르나. 사회를 구하진 못한다. 종교는 형식적인 틀 속에 인간을 많이 속박하고 있다. 오히려 신을 내세워 인간을 종교의 노예로 삼고 있다. 에머슨은 그렇게 보고 있다. 그리고 종교는 살아있는 종교를 지향해야 한다. 그것은 자율 종교다. 단체를 통해 계급을 만들고 단체에 귀속되어 수단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신을 은혜를 바라는 생활을 해야 한다. 종교는 개인에게 가장 큰 행복의 도구가 되어야 한다. 상업화, 정치화 되어서는 안 된다. 이것을 콩코드의 초절주의를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 콩코드는 에머슨이 머물면서 초절주의를 주장한 조그만 마을이다.
신인류의 등장하고 있는 시대다, 인공지능이 나타나고 있는 초인시대다. 이런 사회에서는 인간교육이 절대로 필요하다. 도덕성에 기반을 둔 인간교육, 그것만이 앞으로의 세상을 열어갈 수 있는 바탕이 된다. 세상은 하나지만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상은 제각각이다. 경계가 중요한 요인으로 떠오르는 것은 변화의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변화가 대세다. 그것을 다스리는데 방향은 중도다. 진리는 하나이지만 현상은 무궁하다. 무궁한 현상을 관통하는 이치가 있다. 중도의 지혜다. 프로기사는 비교적 작은 부분에서 묘수를 생각하는 데 반해, 알파고는 전체 대세의 균형점을 찾아간다. 이런 균형을 이루어낼 수 있는 사람들은 지도자다. 지도자들이 제대로 된 지혜를 가지고 모든 사람들을 직분과 본성에 따라 일상의 삶을 진실하게 살 수 있도록 할 때 상식적인 사회가 회복된다. 이런 상식적인 사회의 회복이 중요하다. 도덕과 양심이 이런 사회를 유지하는 힘이 된다.
우리의 삶이 정성과 충실함에 기반을 둬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진실에 입각해야 할 일이다. 이 책을 통해 변화가 기반이 되어 있는 사회에 어떻게 대처한 삶을 살아야 할까를 생각해 보는 기회를 가졌다. 중도, 균형 등이 얼마나 중요한 개념인가를 생각해 보게 되었다. 하지만 개념이 개념으로 그쳐서 되는 것이 아니고 현실이 될 때 가치 있으리라 여겨진다. 이 변화의 시대에 “지도자들은 어떻게 대처해 나가야할까?”를 이 책에서 도움 받으면 되겠다. 진실한 자세, 균형의 조율이란 말이 마음에 많이 와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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