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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장면은 맛있다. 맛있는 음식이야 많고 많지만 그 중에서도 찐득하고 거무칙칙한 것들만이 가진 매력이 있다. 굳이 정의하자면, 감칠맛. 요새야 여간해서는 감칠맛이 곧 MSG맛이려니 하곤 먹는다. 안 그러면 싼값에 그 맛을 낼 수가 없다는 걸 아니까. 그래도 짜장의 짙은 갈색과 너무 볶아 녹아내리는 양배추, 돼지고기, 기름을 머금은 양파를 바라보면 그래 이거지, 여기서 맛이 나는 거지 싶다. 속임수라도.
내 머릿속에는 짜장면의 이데아, 어떤 초월적인 관념으로서의 짜장면이 있다. 면발은 부드러우면서 탱글탱글하고, 장은 진하지만 담백하고, 고기는 부드럽고 양파는 아삭하고... 실제 이런 짜장면을 먹어본 적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렇다면 이 관념은 어디에서 온 걸까? 어렴풋한 어릴 적 추억에서 끄집어낸 이상향일까? 내가 상상하는 그 맛이 언젠가는 내 혀를 굴러갔던 걸까? 더 괜찮은 많은 음식이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가끔 짜장면을 시키고, 마트에서 춘장을 고르는 건 그 닿지 못할 이데아 때문이다.
박찬일 셰프-작가라 해야 하나? 이 분은 글을 참 많이 쓴다.-는 나와 다른 시대를 살았다. 다른 짜장면을 먹었다. 예를 들어 나는 결혼식 피로연에 짜장면이라는 조합은 상상하지도 못하겠다. (아니 정말로? 아무리 맛있어도 짜장면을?) 하지만 완전히 다른 시대는 아니다. 배달음식 하면 곧 짜장면, 짬뽕이었던 시절을 기억하니까. 곱빼기를 좋아하는 아이였으니까. 그래서 박찬일 셰프가 어릴적부터 알았던 짜장면 역시 낯설지 않다. 내가 아는 짜장면이 자기 할아버지 할머니에 대해 뿌듯하게 알려주는 기분이다. 아하, 닮았구나. 다르구나.
띵 시리즈의 가장 큰 매력은 저자가 주제가 되는 음식에 진지할 때 드러난다. 그리고 박찬일은 언제나 진심이다. 그래서 <곱빼기가...>를 읽다 보면 어쩔 도리가 없이 짜장이 먹고 싶어진다. 짜장이 사랑스러워진다. 사은품으로 짜장면 면기를 증정한 기획자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탁월한 선택이었습니다. (후기: 중국집에서 보통 보내주는 면기의 70% 정도 되는 크기다. 집에서 쓰기 적당하다. 박박 긁어 설거지해도 칠이 벗겨지지 않는다.)
+ 사진을 올려놓고야 생각이 났다. 계란을 빠뜨렸다! 뭔가 잊은 것 같더라니... 어쩔 수 없다. 조만간 또 해 먹어야지.
+ 깨끗이 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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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과 돼지고기가 금기라는 사우디에 발령 받았을 때 술 없이 살 일은 걱정했어도 그깟 돼지고기야 없으면 뭐 어떨까 싶었다. 살다보니 돼지고기 들어간 음식이 그렇게 많은 줄 비로소 알게 되었다. 제일 그리운 음식을 꼽으라면 순댓국이 제일 첫머리에 나오지만, 그에 못지않은 것이 짜장면이다. 나는 짜장면을 좋아한다는 생각을 해본 일이 없다. 그저 주머니가 넉넉지 않거나 급하게 한 끼 때울 음식이었을 뿐이다. 그런데 돼지고기가 없는 곳에 살면서 가장 좋아하는 음식인 순댓국 턱밑에까지 치고 올라올 정도로 먹고 싶고 그리운 음식이 되었다.
사우디엔 돼지고기만 없을 뿐인데 짜장면을 왜 못 먹는다는 건지 궁금할 것이다. 물론 만들기도 하고 먹기도 한다. 돼지고기 대신 소고기를 넣어 만드는데, 먹어보면 소고기 짜장면은 짜장면이 아니라는 사실만 확인하게 된다. 언젠가 휴가 때 짐을 풀고 어머니 집 앞에 있는 중국집부터 찾았다. 조금 고급스러운 곳이어서 그런지 소고기 짜장면만 있다고 했다. 울며 겨자 먹기로 시키기는 했는데, 소고기 짜장면을 어떻게 돼지고기 짜장면에 비하겠는가. 나오면서 고급 식당은 개뿔, 짜장면이 뭔지도 모르면서 어떻게 중국집 간판을 달고 있냐고 한참이나 궁시렁댔다.
알고 보니 사우디에서 먹는 짜장면이 짜장면일 수 없는 건 그것 말고도 이유가 많았다. 저자는 “짜장면은 설탕과 미원과 탄수화물과 고기와 지방을 넘어서는 그 무엇, 정서적인 자극과 거의 종교에 가까운 복종이 그 한 그릇에 있다. 그래서 죽었다 깨어나도 짜파게티는 짜장면이 아니며 집에서 내가 만든 짜장면도 짜장면이 아니다. 주문을 넣고, 단무지와 양파, 춘장이 깔린 탁자 앞에서 기다리는 나라는 존재가 있어야 진짜 짜장면이다”고 말한다. 말하자면 짜장면을 주문하고 기다리는 과정이, 단무지와 양파와 춘장이 깔린 분위기가 갖춰져야 비로소 제대로 된 짜장면이라는 것이다. 거기에 하나 더 있다. 저자가 고등학교 때 매점에서 사먹던 짜장면은 제 맛이 나지 않았는데, 그것은 바로 스텐리스 젓가락이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위에 말한 분위기에 나무젓가락이 더해져야 비로소 짜장면이 완전체를 이룬다는 말이겠다. 그런 줄 알았으면 소고기 짜장면을 먹을 수밖에 없을 때 나무젓가락이라도 갖춰놓을 걸.
하지만 그 짜파게티조차도 사우디에서는 제 맛을 온전히 내지 못한다. 사우디에 공식적으로 수입되는 모든 식품은 할랄 인증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돼지고기나 술 성분이 섞여서는 안 된다. 스프에 돼지고기가 빠지고 메밀국수 찍어먹는 소스에 맛술이 빠지면 얼마나 밍밍한지 모른다. 그래서 한국에서 출장 오는 이들의 선물로 라면이 인기가 있고, 받으면 한두 봉지라도 꼭 이웃과 나누는 게 사우디의 미풍양속이 되었다.
이 책은 편집자가 “짜장이냐 짬뽕이냐, 그것이 햄릿의 질문보다 더 중요할지 모른다”는 말을 꺼내는 것으로 시작한다. 뒤이어 저자는 “짜장면은 얼추 망가졌다. 교세는 기울었고 신흥종교가 득세하고 있다. 더구나 교단 내 헤게모니는 짬뽕에게 밀렸다”며 짜장면교의 독실한 신도로서 안타까운 마음을 토로한다.
저자 말대로 요즘 짬뽕이 대세인지도 모르겠다. 대세는 아니라고 해도 적어도 짜장면에게 수위를 내준 것 같지는 않다. 그러니 “짜장면이나 짬뽕이냐” 하는 것이 햄릿의 질문보다 무겁고, 그 질문의 해결책이랍시고 ‘짬짜면’이라는 해괴한 음식이 등장하기도 했다. 그런데 언제부터 짬뽕이 이렇게 세력이 커졌을까? 내가 학교 다닐 무렵에는 짬뽕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가물가물할 정도로 존재가 희미했다. 당시에 학생이 택할 수 있는 메뉴로는 그저 짜장면 아니면 우동이었다. 그래서 여럿이 중국집에 가면 메뉴는 늘 ‘우짜우짜우짜짜’였다.
요즘은 중국집에 가도 우동을 찾을 수 없고, 이제는 우동이 어떻게 생겼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검색 결과 나온 생김새는 영락없는 ‘백 짬뽕’이다. 짬뽕의 연원을 살펴보니 중국 초마면에서 비롯되었다는 말도 있고 일본식 짬뽕이 수입된 것이라는 말도 있다. 그런데 검색으로 찾은 생김새를 보면 볼수록 우동이 맵게 변형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세월이 흐를수록 입맛이 점점 강하고 자극적인 것으로 변해 가는데, 그러다 보니 순한 맛의 우동으로는 성에 차지 않고 점점 벌겋고 맵게 바뀐 것이 아닐까? 내 말이 믿어지지 않으면 당장이라도 ‘중국집 우동’으로 검색해보라.
그나저나 짜장면은 이제 더 이상 예전의 화려한 시절을 회복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스스로 “짜장면 교의 열렬한 신봉자요 짜장면 추적단을 꾸려 맛있는 짜장면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간다”는 저자는 좋은 짜장면 집은 대도시가 아닌 곳, 도시화 진행이 늦거나 농촌지역이 대부분이라고 말한다. “이를테면 금산과 청양이나, 보령과 예천이나, 정선과 강진 같은 지역에, 그것도 사람도 많이 다니지 않고 노령화가 진행되어 공식적으로 정부에서 ‘인구소멸예정지역’이라고 부르는 면 단위 지역에 거의 몰려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소멸이 눈앞에 보이는 그 동네들처럼 짜장면의 소멸도 미구에 닥쳐올 현실이 되지 않을까 몹시 염려한다. 그러면서도 자신도 머지않아 소멸되어 없어질 나이에 있다는 것을 위안으로 삼는다.
그런데 과연 짜장면이 없어지는 게 저자가 지적한 대로 무성의한 요리여서, 면 뽑는 기술이 예전 같지 않아서, 거기에 사람들의 무관심과 홀대까지 겹쳐졌기 때문일까? 아마 그렇지 않을 것이다. 세월이 흐르면 나이가 들고 나이가 들면 사라지는 게 세상의 이치 아닌가. 짜장면이 생겨났으면 또 사라지기도 하는 것이지. 사라지는 것이 섭섭하기는 해도 그 섭섭함을 끌어안고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물설고 낯선 이방 땅에서 살면서 가장 견디기 어려운 것은 음식이 아닐까. 요즘은 세월이 좋아져서 돈만 있으면 어지간한 한국 식재료를 구하는 게 크게 어렵지 않다. 막상 그렇게 구해서 음식을 만들어놔도 기억 속의 그 맛을 되살려내지는 못한다. 하물며 음식의 주재료인 돼지고기와 술이 빠진 음식은 또 얼마나 밍밍할까. 그래서 한국에 갈 날을 앞두면 누구라 할 것 없이 음식 목록을 만들고 기어코 먹고 오고야 말겠다고 전의를 불태운다. 하지만 막상 와서 먹어보면 기대한 것과 너무 다른 맛에 매번 실망을 금치 못한다. 그리고 그 실망의 가장 큰 원인은 입맛이 바뀌었다는 걸 알아차리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에 한국에 와서 순댓국과 짜장면을 벌써 몇 번이나 먹었지만 어느 곳에서도 기억했던, 그리고 기대했던 맛을 경험하지 못했다. 섭섭하기는 하지만 그것이 자연의 이치인 것을. 저자는 아주 오래전 이탈리아 유학을 떠나 이탈리아 음식 전문 요리사가 되었고, 지금은 돼지국밥과 평양냉면을 주 메뉴로 하는 식당과 무국적 퓨전 양식을 선보이는 식당을 운영하며, 무엇보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맛깔스러운 글을 쓰는 셰프로 알려졌다. 그렇기는 했어도 아직 이순에도 이르지 않은 그의 연륜으로 보아 기억하고 기대했던 맛도 세월 따라 사라져 가는 게 자연의 이치인 것을 깨닫는 데까지는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내가 좋아서 읽는 책이기는 하지만 매번 읽고 난 느낌을 글로 쓰는 것은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다. 그래서 한 번쯤은 낄낄거리고 웃을만한 책을 읽고 또 그렇게 느낌을 남기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던 차에 목차만을 보고 굳이 혹한을 뚫고 서점에 다녀왔다는 어느 페친의 글을 보고 바로 주문해서 올 한 해의 독서를 마무리했다.
전대미문의 코로나로 우여곡절 많은 한 해였다. 해가 바뀐다고 당장 사태가 가라앉기를 기대하기는 어렵겠지만, 그래도 올해보다 낫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한 해를 접는다. 모두들 새해에는 더욱 큰 복을 받으시라. 그래서 그 복을 이웃과 함께 나누시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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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 짜장면이 전화기만 들면 배달되는 간편한 음식이 되어버렸는지 모르겠다. 분명 내가 어렸을 때의 짜장면은 "특별한 날"에 먹는 음식이었기 때문이다. 어린이날, 졸업식, 할머니가 집에 오신 날 등등 그런 날이 아니면 먹기 어려웠던 짜장면. 내가 기억하는 가장 오래된 짜장면 에피소드는 어느해 어린이날 점심과 저녁 연달아 두끼를 먹었던 기억이다. 점심때 부모님이 짜장면을 사주셔서 맛있게 먹었는데 가까이 사시던 고모님이 저녁에 어린이날이니 짜장면을 사주시겠다고 방문하셨다. 벌써 점심에 먹었으니 다음에 사주라고 하셔도 잘 먹는 모습이 보고싶으셔서 못참고 결국 중국집에 데려가셨다. 귀한 음식이니 두끼를 먹어도 맛있을거라 생각했지만 어쩐지 두번째 먹는 짜장면은 속도가 현저히 줄어들었던 기억이 난다.
흔하고 흔한 짜장면이지만, 또 신기하게도 "내 마음에 딱 드는 짜장면"을 찾기가 쉽지 않다. 어느 집은 짜장이 너무 짜서, 양이 작아서, 양파가 매워서, 너무 질어서 갖가지 이유로 단골 만들기가 어려웠는데, 최근 엉뚱하게도 배달앱을 통해 배달시킨 중국집 짜장면에 우리 식구가 다들 반하고 말았다. 덕분에 1년째 우리는 이삼주가 멀다하고 주말이면 짜장면을 시켜 먹곤 한다.
이렇게 사람들마다 짜장면에 대한 기억은 다양할 것이다. 음식을 하는 박찬일 셰프라면 더더욱 많은 짜장면과 만났을 터. 뭔가 좀더 예사롭지 않은 음식쪽으로 칼럼을 쓸 것 같은 그가 "나는 평생 짜장을 찾아 헤매었다"는 고백과 함께 짜장면 에피소드를 귀여운 책으로 내놓았다. 읽으면 읽을수록 그의 고백이 거짓이 아님을, "짜장에 진심인 그"를 만날 수 있었다. 예전의 짜장을 회상하는 글들에서는 "그래, 예전엔 그랬었지"라는 맞장구가 쳐지고, 짜장에 대한 그의 지식들을 풀어놓는 글들에서는 "이렇게 깊은 뜻이!"라며 감탄했다.
짜장이 어디서 시작했든, 누가 만들기 시작했든 상관없지만 박찬일 셰프가 풀어놓은 짜장면 이야기를 읽고난 후라면 내 앞의 짜장 한그릇을 무심하게 대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짜장면에 대한 박찬일 셰프의 찬사, <짜장면 : 곱빼기가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가>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