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리뷰 (62)

한줄평
평점 분포
  • 리뷰 총점10 69%
  • 리뷰 총점8 31%
  • 리뷰 총점6 0%
  • 리뷰 총점4 0%
  • 리뷰 총점2 0%
연령대별 평균 점수
  • 10대 0.0
  • 20대 0.0
  • 30대 10.0
  • 40대 10.0
  • 50대 9.0

포토/동영상 (5)

리뷰 총점 종이책 구매
노동의 이중성과 상품물신주의에 대한 이해...
"노동의 이중성과 상품물신주의에 대한 이해..." 내용보기
<북클럽 자본 시리즈>의 두 번째 책 [마르크스의 특별한 눈]은 [자본] 제1편 <상품과 화폐>中 제1장 <상품>에 대한 읽기이다. 시리즈 1권인 [다시 자본을 읽자]에서 [자본]이라는 책의 전반적인 성격을 다루었다면 2권부터는 [자본]의 본문을 다루는 셈이다.   저자는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 비판을 한마디로 ‘눈’에 대한 비판이라고 말한다. 기존의 정치경제학자들이 부의 실
"노동의 이중성과 상품물신주의에 대한 이해..." 내용보기

<북클럽 자본 시리즈>의 두 번째 책 [마르크스의 특별한 눈]은 [자본] 제1편 <상품과 화폐>中 제1장 <상품>에 대한 읽기이다. 시리즈 1권인 [다시 자본을 읽자]에서 [자본]이라는 책의 전반적인 성격을 다루었다면 2권부터는 [자본]의 본문을 다루는 셈이다.

 

저자는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 비판을 한마디로 ‘눈’에 대한 비판이라고 말한다. 기존의 정치경제학자들이 부의 실체로 노동을 내세우고, 그 노동의 가치를 논하면서도 정작 노동의 생산물인 상품에 대한 이해에는 등한시했지만,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생산양식이 지배하는 사회의 부는 상품의 형태로 나타나고, 그 상품이 바로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임을 알아챘다고 한다. 다른 사람들이 엉뚱한 곳을 보고 있을 때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사회의 부의 기본 형태인 상품으로 시선을 돌리고 상품에 들어있는 가치를 새롭게 해석한 것이다. 상품이란 노동생산물로써 사회적으로 그 쓸모를 인정받고 동등한 교환이 이루어지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고전경제학에서는 가치의 척도와 원천을 노동으로 보았지만 마르크스는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즉 현물로서의 상품과 가치로서의 상품을 말할 때 상응하는 노동을 구분했다고 한다.

 

흔히 상품을 가치를 이야기할 때 사용가치와 교환가치를 든다. 사용가치는 그 상품의 유용성이고, 교환가치는 다른 상품에 대한 구매력이다. 마르크스는 바로 이들 가치에 상응하는 노동이 이중성을 가지고 있다고 보았다. 사용가치를 가진 현물을 생산하는 노동을 구체적인 유용노동이라고 한다면, 상이한 상품들의 교환가치를 생산하는 노동을 추상노동이라고 불렀다. 이는 한 상품에 들어있는 가치에 따라 동일한 노동을 서로 다른 관점에서 바라본 것을 뜻한다. 유용노동은 사용가치의 생산이란 관점에서, 그리고 추상노동은 교환가치의 생산이란 관점에서 본 것이다. 마르크스는 상품의 문제가 가치의 문제이며, 가치란 교환가치를 현상하는 것이라고 할 때, 그 가치의 실체는 추상노동이라 말했다. 그리고 이것을 역사적으로 출현한 특수한 형태의 사회, 즉 자본주의에서 노동이 갖는 독특한 성격으로 규정했다고 저자는 말한다. 상품의 가치를 규정하는 추상노동의 양은 사회적으로 결정되는데, 평범한 인간이 평균적으로 지닌 능력을 기준으로 했다. 즉 사회에서 평균적으로 어느 정도의 노동을 필요로 하는가에 따라 가치가 정해진다는 것이다.

 

이어서 마르크스는 화폐형태의 발생과정을 논증하고 있다. 단순한 가치형태, 총체적 또는 전개적 가치형태, 일반적 가치형태를 거쳐 화폐형태가 나타났다고 본 마르크스는, 화폐란 일반화된 등가형태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추가 무게를 부여하는 것이 아니듯 화폐가 가치를 부여하는 게 아니라는 뜻이다. 표준화된 저울추만이 무게를 달 수 있는 것이 아니듯 화폐만이 가치를 나타내는 것이 아닌 것이다. 한 상품이 일반적 등가물이 되는 것은 상품세계의 다른 모든 상품들이 등가형태로부터 배제되는 것을 의미했다. 화폐는 일반화된 등가물 자리에 금이 들어감으로써 생겨났고, 이는 사회적 관습에 의해서였다는 것이다. 따라서 화폐형태의 발생은 역사적 발생이라기보다는 논리적 발생이고, 한 상품의 가치가 다른 상품으로 표현되는 것은 역사적으로 특수한 발전단계에 속하는 일이라고 했다. 저자는 이러한 마르크스의 화폐형태 발생과정을 살펴보면서 거기에 내재된 의미를 읽기도 한다. 일반적 등가물로 표시될 수 있는 상품만이 다른 상품과 교환될 수 있는 상품임을 인정받는다. 따라서 상품이 된다는 것은 가치를 인정받아야 가능하다. 이는 순응을 강요받는 것, 복종해야 하는 것, 즉 폭력을 경험하는 것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우리가 무심코 화폐를 통해 가치를 받아들이는 것은 바로 그런 사회적 관계에서 나타나는 것이라고 한다.

 

제1장 <상품>에서 상품의 두 얼굴, 노동의 이중성, 화폐형태의 발생기원을 차례로 살펴본 마르크스는 마지막으로 상품의 물신적 성격에 대해 이야기한다. 상품이 단순한 노동생산물과 다른 것은 가치가 붙는다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가치를 표현하는 사물이 되는 순간 상품은 스스로 춤을 추기 시작한다. 고전경제학의 근본 결함중 하나는 상품가치분석에서 가치형태 문제를 끄집어내지 못하고 오로지 가치량 분석에만 신경 쓴 것이고, 이는 자본주의적 가치형태가 역사적으로 얼마나 특이한 것인지를 몰랐기 때문이라고 마르크스는 말했다. 그 결과는 관계를 사물로 착각하고 인간들의 사회적 관계를 사물들의 관계로 착각하는 상품물신주의로 나타났다고 한다. 그리고 이런 상품에 대한 물신주의는 주관적 현상도, 현실에 대한 그릇된 지각도 아니며, 자본주의 생산양식이 지배하는 고유한 것이라고 한다.

 

저자는 이러한 자본주의 역사성에 대한 마르크스의 강조는 자본주의가 자연적 체제, 인간 본성에 부합하는 체제, 가장 발전된 형태라는 주장을 기각하며, 다른 사회형태와 다른 생산양식의 사회가 가능하다는 것을 암시한다고 말한다. 즉, 비자본주의 생산양식에서는 상품, 추상노동, 상품물신주의와 같은 신비가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저자의 읽기를 따라 [자본] 제1장을 읽었다. [자본]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먼저 길잡이삼아 이 책을 읽고 있지만, 이 책이 저자의 관점에 따른 마르크스에 대한 이해라는 것을 염두에 두고 읽는다. 내가 [자본]을 읽으면서 어떤 생각을 하게 되고, 마르크스의 주장이나 저자의 읽기에 얼마나 공감을 할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자본] 1장을 읽어본 후, 시리즈 3권을 읽어야겠다.

k*****1 2021.05.25. 신고 공감 23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구매
알고 있는 것을 새롭게 알게 해주는 [자본]
"알고 있는 것을 새롭게 알게 해주는 [자본]" 내용보기
철학자 고병권과 함께 마르크스의 [자본]을 읽는 ‘북클럽 자본 시리즈’ 제5권은 마르크스 [자본]의 제3편 ‘절대적 잉여가치의 생산’중 5장~7장 읽기이다. 5장의 제목은 ‘노동과정과 가치증식과정’이고 6장은 ‘불변자본과 가변자본’, 그리고 7장은 ‘잉여가치율’이다. 4장에서 잉여가치는 노동력의 사용에서 생겨날 수밖에 없음을 추론한 마르크스는 제3편에서 그것을 검증하고
"알고 있는 것을 새롭게 알게 해주는 [자본]" 내용보기

철학자 고병권과 함께 마르크스의 [자본]을 읽는 ‘북클럽 자본 시리즈’ 제5권은 마르크스 [자본]의 제3편 ‘절대적 잉여가치의 생산’중 5장~7장 읽기이다. 5장의 제목은 ‘노동과정과 가치증식과정’이고 6장은 ‘불변자본과 가변자본’, 그리고 7장은 ‘잉여가치율’이다. 4장에서 잉여가치는 노동력의 사용에서 생겨날 수밖에 없음을 추론한 마르크스는 제3편에서 그것을 검증하고 있다. 고병권은 책을 읽기에 앞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위화의 소설 [허삼관 매혈기]를 통해 허삼관이 살기 위해 매혈을 했듯 노동자들도 생존을 위해 노동에 자신의 생명을 짜 넣고 있음을 말한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이 [생명을 짜 넣는 노동]이다.

 

잉여가치에 대한 이야기에 들어가기 전 마르크스는 먼저 노동의 합목적성, 노동의 대상화 등 이야기를 풀어나가는데 필요한 말의 개념을 정리한다. 노동이란 인간이 어떤 수단을 가지고 대상에 작용을 가해 그것을 자신의 목적과 필요에 맞게 변형하는 일을 말한다. 인간은 처음 노동을 시작한 이래로 노동을 하면서 설정된 목적을 위해 자신의 충동이나 본능을 제어할 수 있었다. 이를 두고 노동은 합목적적 활동이라고 말한다. 인간의 노동력이 상품이 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의 목적과 필요에 따라 노동을 할 수 있어야 하는데, 바로 노동의 합목적성이 노동력을 상품으로 만들어 주었다. 노동대상은 원료를 말하고, 노동수단은 도구를 의미한다. 생산물이라는 목적에 어떤 기여를 했는가 하는 관점에서 본다면 노동수단과 노동대상은 생산수단이 된다.

 

노동의 대상화란 노동과 노동대상이 결합하는 것을 말한다. 생산물 안에는 인간의 노동이 굳어진 채로 대상화되어 있다. 즉 원료란 과거 원료를 생산하는데 소요된 노동이 담긴 대상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과거의 노동에 현재의 노동을 더하는 노동과정은 노동을 대상화하는 일이다. 마르크스는 생산수단 앞에 선 노동자의 노동을 ‘살아있는 노동’이라 불렀는데, 노동자의 노동이 살아있는 노동이기 때문에 죽어있는 사물인 생산수단을 살려내고, 가능성으로만 존재했던 사용가치를 현실화시킨다고 했다.

 

시대를 막론하고 사람들은 일상에서 노동생산물을 사용했다. 그러나 노동과정이 자본가가 구매한 노동력의 소비과정이 되면 두 가지 독특한 현상이 나타나는데, 하나는 노동자의 노동이 자본가의 통제아래서 이루어진다는 것과, 다른 하나는 노동생산물이 직접 생산한 노동자가 아니라 자본가의 소유물이 된다는 점이다. 이는 자본주의 생산체제에서 노동력을 판매한다는 것은 노동력 사용에 대한 자신의 통제권을 상실하는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의 능력을 마치 처분 가능한 사물처럼 외화(外化)해서 타인에게 넘겨주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에서 노동과정이 노동자의 생산 활동이 아니라 자본가의 상품소비과정으로 나타나는 이유이기도 하다. 따라서 자본가는 노동의 합목적성이 최대한 효과를 낼 수 있도록 할 것이다. 노동대상과 관련해서는 원료를 조금도 낭비하지 않도록, 노동수단에 대해서는 최대한 손상을 입히지 않도록 신경 쓰며, 노동과정을 합리적으로 운영하게 된다. 여기서 합리적이란 효율성을 의미한다.

 

자본가가 원하는 것은 상품이 아니라 이윤이다. 그가 신경 쓰는 것은 오직 잉여가치일 뿐이다. 가치의 이전과 증식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먼저 사용가치가 생산되어야 하고, 생산과정에서 사용한 것들의 가치가 사회적 필요노동시간에 맞아야 한다. 마르크스는 상품의 가치를 논하면서 사회적이란 말은 평균을 의미한다고 말했었다. 그리고 잉여가치란 노동력의 가치와 노동력을 사용해서 생산한 가치의 차이라고도 했다. 생산물의 가치는 이전되는 가치와 형성되는 가치의 합계이다. 이전되는 가치는 노동과정에서 소모되는 생산수단의 양과 관련 있고, 형성되는 가치는 가치증식과정에서 더해진 노동량과 관련 있다. 생산수단에 들어있는 가치는 과거 노동이 대상화된 것이지만 그것을 생산물로 이전하는 것은 현재 노동의 몫이다. 즉 노동력은 새로운 가치를 더하면서 과거의 가치를 보존한다. 마르크스는 노동자가 생산한 노동력의 가치는 새로 생산된 것이라 하여 이를 본원가치라 했다. 또 여기서 생산수단으로 전환된 자본은 그것을 사용할 때 가치가 변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전되는 가치라 했고 마르크스는 변하지 않는 자본이라 하여 불변자본이라 불렀다. 반면에 노동력으로 전환된 자본은 가치가 변한다. 노동력의 가치 자체가 변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력의 사용을 통해 그 가치 이상의 가치를 생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마르크스는 가변자본이라 했다.

 

이를 수식화하면 C(자본) = c(불변자본) + v(가변자본) + m(잉여가치)으로 나타낼 수 있다. 생산물의 가치는 생산요소들의 가치 합계(c+v)보다 크다. 잉여가치(m)로 인한 가치증식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변자본은 가치증식이 일어나지 않고 가치가 재현될 뿐이다. 따라서 현재의 생산과정에서 산출된 가치생산물은 v+m이다. 오늘날 우리가 부가가치라 부르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이것으로부터 우리는 잉여가치율을 계산할 수가 있다. 잉여가치는 필요노동에 대한 잉여노동의 비율이므로 m/v이 된다. 마르크스는 ‘무에서는 아무 것도 생겨나지 않는다. 가치는 노동이 대상화된 것일 뿐이고, 잉여가치는 잉여노동이 대상화 된 것일 뿐’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잉여가치율은 자본에 의한 노동의 착취도가 된다. 자본가가 계산하는 이윤율은 m/(c+v)이다. 이 책의 저자 고병권은 잉여가치율을 착취도라 부르는 것은 어떤 관점에서 그것을 바라보느냐에 따른 것이라고 말한다. 즉 그 사람의 당파성이 나타나는 지점이라는 것이다. 또한 마르크스는 새로운 사실을 발견한 창조자가 아니라, 우리가 이미 알고 있던 것을 새롭게 알게 해주는 전복자라고 강조한다.

  

이 책의 저자를 따라 마르크스의 [자본]을 읽으면서 쉽게 이해하는 것 같다. 일단은 저자의 안내를 따라 이 시리즈를 전부 읽어보려 한다. 시리즈 한권이 끝날 때마다 해당되는 장(章)을 읽으려 했는데, 처음 읽기 시작한 때부터 지금까지도 마르크스 [자본 1-2]권(강신준 역/길)이 일시품절 상태다. 그래서 아예 통째로 읽기로 하고 뒤로 미루었다. 그때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일지 나도 궁금해진다.

k*****1 2021.06.27. 신고 공감 22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구매
수십 년 된 숙제, [자본]을 읽기 시작하다.
"수십 년 된 숙제, [자본]을 읽기 시작하다." 내용보기
이 책은 카를 마르크스의 [자본] 1권을 철학자 고병권이 새롭게 해석하며 읽어간 <북클럽 자본>시리즈의 첫 번째 책이다. <북클럽 자본>시리즈는 열 두 번의 강의와 열 두 권의 단행본으로 채워졌다고 한다. 저자는 그 첫 번째 책인 이 책에서 [자본]의 제목과 부제, 서문, 후기를 중심으로 마르크스의 [자본] 전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다시 말해 저자는 [자본]의 본문을 읽기에
"수십 년 된 숙제, [자본]을 읽기 시작하다." 내용보기

이 책은 카를 마르크스의 [자본] 1권을 철학자 고병권이 새롭게 해석하며 읽어간 <북클럽 자본>시리즈의 첫 번째 책이다. <북클럽 자본>시리즈는 열 두 번의 강의와 열 두 권의 단행본으로 채워졌다고 한다. 저자는 그 첫 번째 책인 이 책에서 [자본]의 제목과 부제, 서문, 후기를 중심으로 마르크스의 [자본] 전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다시 말해 저자는 [자본]의 본문을 읽기에 앞서 [자본]이라는 책의 제목과 ‘정치경제학 비판’이라는 부제가 의미하는 바를 살펴보고, ‘서문’과 ‘후기’등에서 마르크스가 말하는 [자본]에 대한 이야기를 자신의 시각으로 바라보며 앞으로 읽어나갈 [자본]에 대한 안내를 하고 있다.

 

나는 마르크스의 [자본]을 아주 오래전에 접했지만 정식으로 읽은 적은 없다. 대학시절 일어판 책 부분부분을 복사하고 누군가 번역한 필사본으로 된 유인물로 읽었다. 그것도 남의 눈을 피해 이해보다는 내용파악에 주안점을 두며 억지로 내 것으로 만들고자 했다. 이 책에서 저자도 말하고 있지만 내 관점이 아닌 다른 이들의 관점으로 해석한 내용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그 후 시간이 지나고 국내에서 처음으로 [자본]이 번역되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제대로 된 [자본]을 한 번은 읽어보아야 할 것 같은 마음이 들었지만, 그럼에도 수십 년째 마음만 먹고 있는 책이기도 하다. 가장 큰 이유는 아마 책을 읽어가면서 내용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었다. 그러다 이 시리즈의 완결소식을 듣고 우선은 저자의 안내를 따라 [자본]을 읽어보겠다고 생각했다. 시리즈 한권 한권을 읽을 때마다 [자본]의 해당 편을 찾아 읽으려고 한다.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모르겠지만 일단 시작을 했으니 반은 읽은 것이나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다.

 

먼저, 저자는 마르크스가 자본이라는 말에 어떤 의미를 부여했는지를 살펴본다. 자본이란 단어는 당시 상업세계에서 사용되고 있던 말이었지만 마르크스는 자본을 증식하는 가치, 끊임없이 잉여를 낳는 가치라는 특별한 의미를 부여했다. 근대사회는 가치의 증식과 축적을 목표로 하는 사회, 즉 상품을 생산하고 판매하고 소비하는 시스템이 계속 돌아가는 이유가 바로 가치의 끊임없는 증식을 위해서라고 보았다. 이는 마르크스가 자신이 고발하고 극복해야 할 대상을 먼저 개념적으로 정립한 것에 다름 아니다. 어떤 대상을 비판하기 위해서는 그 대상에 대한 명확한 자기 이해가 필요하다. 우리가 마르크스의 [자본]을 오독하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자본이라는 대상에 대한 정확한 개념과 이해 없이 그저 일반적인 수준에서 자본을 생각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자본에서 가치를 끌어내고 잉여를 끌어낸다는 것은 어쩌면 우리가 자본에 대해 배워온 내용에 포함되어 있지만 우리는 그것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자본]의 부제인 ‘정치경제학 비판’에서 정치경제학도 마찬가지이다. 당시의 정치경제학이란 국가통치술로 확장된 가정관리술이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즉 근대에 들어 사회가 생겨나면서 사적인 이해가 가정 내에 머물지 않고 공적영역으로 확장되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정치경제학에서 모든 가치의 원천은 전통사회와 마찬가지로 노동이라 주장했지만, 그럼에도 부와 빈곤이라는 계급적 분화를 이해하지 못했다. 이는 정치경제학이 공적소유가 아닌 사적소유를 위해 존재한다는 것을 외면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마르크스는 가치를 생산하는 자가 왜 더 가난해지는지를 통해 노동의 소외된 현실을 고발한다. 그리고 착취를 메커니즘의 결과가 아니라 전제로 규정했다. 착취는 자본주의적 경제형태의 결과가 아니라, 그것이 작동하기 위해 전제되어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마르크스가 말하고자 했던 것이 바로 이것이었다. 저자는 이런 정치경제학에 대한 마르크스의 비판은 두 가지 측면, 즉 역사적으로 확보된(혹은 제한된) 시야를 가지고 있다는 것과 계급적으로 제한된(혹은 확보된) 시야를 갖고 있음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말한다.

 

먼저, [자본]은 역사적 사회형태로서 자본주의를 분석하고 비판하는 책이지 역사를 관통하는 영원한 법칙을 말하는 책이 아니라고 저자는 읽는다. 마르크스가 [자본]에서 분석하고 드러내는 법칙이나 경향들은 자본주의적 생산양식, 부르주아적 사회관계가 지속되는 한에서만 적용된다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이러한 생산양식과 사회형태를 역사적으로 매우 특수한 형태로 보았고, 따라서 자본주의의 역사적 필연성이나 미래로의 영속성을 제거하고 오직 역사적 이행 속에서만 그것을 보고 있다고 한다. 또한 마르크스의 비판은 앎을 둘러싸고 있는 의지, 앎에 투여된 욕망에 대한 비판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물질적 이해관계를 다루고 있는 정치경제학은 1848년 계급혁명으로 국민의 부라는 것이 결국은 계급의 부였음을 보여주었다고 마르크스는 생각했다. 즉, 어떠한 과학도 당파성과 무관할 수는 없으며, 마르크스는 단지 자신의 생각이 프롤레타리아의 입장임을 분명히 밝혔을 뿐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어떤 사물을 보거나 대상을 이야기할 때 어떤 렌즈, 어떤 조명, 어떤 시각, 어떤 틀로 보느냐에 따라 보는 것과 볼 수 있는 것이 달라진다. 때로는 누구도 볼 수 없는 것을 보게 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자신이 쥐고 있는 것조차 볼 수 없게 되기도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프레임을 만들고 선점하기 위해 선전선동을 강화하고 있는 것 일게다. 저자는 그동안 우리는 [자본]을 너무 투명하게 읽어왔다고 말한다. 통상적인 조명아래서, 전통적인 시각으로, 권위자의 지도에 따라 독해를 했다는 것이다. 즉 마르크스의 [자본]이라는 책에 덧 씌어진 프레임 속에서 읽었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 그러나 이제는 당파성을 가지고 자신만의 렌즈로 읽어내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자본]에 대한 전반적인 이야기를 저자의 안내에 따라 읽으며 나는 어떤 관점에서 읽게 될지 궁금해진다. 물론 저자의 안내에 따르다보면 어쩌면 내가 가지고 있는 렌즈와는 다른 시선으로 읽게 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일단은 저자의 강의 시리즈를 따라 읽어보고 나만의 시선으로 정리해 볼 것이다. 수십 년째 마음속에 숙제처럼 남아있던 [자본]을 막상 읽기 시작하면서 맨 처음 이 책을 대했을 때와는 또 다른 긴장감이 생긴다. 잘 읽어낼 수 있을까?

k*****1 2021.05.11. 신고 공감 22 댓글 5
리뷰 총점 종이책 구매
잉여가치율 확대를 위해 반드시 필요했던 노동일 증가..
"잉여가치율 확대를 위해 반드시 필요했던 노동일 증가.." 내용보기
‘북클럽 자본 시리즈’ 제6권 [공포의 집]은 마르크스 [자본] 1권의 제3편 ‘절대적 잉여가치의 생산’중 마지막 부분인 8장과 9장 읽기이다. 8장의 제목은 ‘노동일’이고 9장의 제목은  ‘잉여가치율과 잉여가치량’이다. 앞서 5권에서 잉여가치율은 오늘날 우리가 부가가치라 부르는 가변자본과 잉여가치의 비율임을 분석하고 설명한 저자 고병권은, 이 책에서 잉여가치율은 높이기
"잉여가치율 확대를 위해 반드시 필요했던 노동일 증가.." 내용보기

‘북클럽 자본 시리즈’ 제6권 [공포의 집]은 마르크스 [자본] 1권의 제3편 ‘절대적 잉여가치의 생산’중 마지막 부분인 8장과 9장 읽기이다. 8장의 제목은 ‘노동일’이고 9장의 제목은  ‘잉여가치율과 잉여가치량’이다. 앞서 5권에서 잉여가치율은 오늘날 우리가 부가가치라 부르는 가변자본과 잉여가치의 비율임을 분석하고 설명한 저자 고병권은, 이 책에서 잉여가치율은 높이기 위해 노동시간을 한없이 늘리려는 자본의 운동과 노동자의 저항을 다룬다. 마르크스는 그의 [자본] 8장을 ‘노동일’을 둘러싼 자본과 노동의 투쟁에 대해 쓰고 있다고 한다. 이 책을 통해 엿보는 마르크스의 글은 마치 노동자의 연대에 대한 르포르타주를 읽는 듯한 느낌이다.

 

노동일이란 하루의 노동시간을 말한다. 하루의 노동시간은 노동자가 자기 노동력의 가치를 생산하는 시간과 자본가의 잉여가치를 위해 일하는 시간의 합이다. 노동일은 정해질 수는 있지만 그 자체로는 규정되지 않기 때문에 노동일을 둘러싼 자본과 노동의 대립은 불가피하다. 자본가는 상품을 구매한 이상 구매자에게는 그것을 최대한 사용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고, 노동자는 상품을 판매한 것보다 더 많이 가져간다면 판매자를 강탈하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이는 권리 대 권리의 충돌이지만, 이름만 다를 뿐 ‘노동시간’이라는 동일한 것을 두고서 대립하고 있다. 마르크스는 노동일의 눈금은 힘이 결정한다고 말한다. 자본가계급과 노동자계급 사이 투쟁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노동일의 확장에 대한 자본가의 열망은 노동일 자체보다는 잉여노동에 대한 열망이라고 한다. 잉여노동시간만이 가치를 증식시키기 때문이다. 자본가에게 생산수단을 놀린다는 것은 낭비이다. 자본가와 정치경제학자들은 절제와 금욕, 절약을 강조하지만 그것이 무엇에 대한 낭비를 대상으로 하는지는 말하지 않는다. 그들은 연료를 아끼고, 시간을 아끼고, 임금을 아끼지만 노동자들의 건강과 시간은 아낌없이 낭비한다. 다시 말해 돈을 아끼고 생명을 낭비하고 있는 것이다. 기업 활동의 자유라는 것은 이윤추구 활동의 자유이지 양심의 자유를 의미하진 않는다. 자본가란 인격화된 자본일 뿐이다. 마르크스는 8장에서 노동일을 다루면서 영국과 유럽에서 노동일을 두고 벌어졌던 자본과 노동사이의 투쟁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산업자본주의가 궤도에 올라서면서 자본은 사회가 강요하지 않는 이상 노동자의 건강과 수명에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다. 제약이 있다면 있는 한에서, 없다면 없는 한에서 항상 최대한의 증식을 위해 움직였다. 노동일 연장에 대해 법적 규제가 가해진 것은 19세기 들어 공장법을 통해 표준노동일이 정해지면서부터이다. 18세기 후반까지 노동일이 계속 늘어나면서 12시간에 이르기까지는 수세기가 걸렸지만, 이후 19세기 초반까지 노동에 대한 자본의 무절제한 향연이 벌어지며 14시간, 16시간이 되는 것은 금방이었다고 한다. 노동자계급의 저항이 시작되면서 1833년 공장법에서 노동일을 15시간으로 규정한 표준노동일이 제정되었고, 그때부터 표준노동일은 힘겨루기의 대상이 되었다. 1850년 공장주와 노동자의 타협이 이루어져 10시간이 될 때까지 수차례의 공장법 개정이 있을 때마다 자본과 노동은 충돌했다. 그럼에도 자본은 법률을 무력화하고, 편법을 찾아내고, 심지어 법률을 위반하고 벌금을 내겠다고 공언했다. 지금의 우리를 보는 것처럼 생생하다. 이처럼 공장법 개정의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이고 힘이 사태를 결정했다고 한다. 마르크스는 영국 공장법의 역사를 소개하면서 이것만큼 자본의 본질을 잘 보여주는 것은 없다고 말했다. 또한 노동자들이 저항하고 자본의 힘을 일정부분 제어한 것은 바로 ‘연대의 힘’이었다고 강조했다.

 

17-8세기 유럽 곳곳에는 구빈원이 세워졌다고 한다. 애초 빈민과 부랑인 수용시설이었던 구빈원은 빈곤의 원인이 낡은 인습과 개인의 병든 심성에 있다고 보고, 하루 14시간의 노동을 통해 사람을 뜯어 고치려 했다. 강제수용소였던 구빈원은 산업자본주의 초기 노동력의 중요한 공급처였고, 당시 사람들은 구빈원을 ‘공포의 집’이라 불렀다고 한다. 그러나 19세기 노동자의 눈에는 공포의 집이 전혀 공포스럽지 않았다. 산업화의 진전과 함께 공장이 탄생되면서 공장으로 빨려 들어간 노동자들은 하루 16시간이 넘는 노동을 하게 되자 비로소 자신들이 일하는 그곳이 바로 ‘공포의 집’임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의 저자는 시리즈 6권의 제목을 [공포의 집]이라 한 것이 아닐까?

 

1850년 공장주와 노동자 사이의 타협은 자본이 더 이상의 가치 증식을 할 수 없다는 한계에 부딪히게 만들었다. 잉여가치량을 늘리기 위해서는 잉여가치율을 올리거나 노동자수를 늘려야 했다. 그러나 계급투쟁은 자본이 노동일을 연장하여 착취도를 높이거나, 노동자에게 지불하는 가변자본의 총액을 힘을 동원하여 낮추는 것을 사실상 불가능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회적 조건하에서 자본은 이를 실천적 방법으로 해결하였다고 한다. 자본의 양질전환이 일어나면서 자본은 노동에 대한 지휘권과 노동자에게 더 많은 노동을 하도록 강요하는 강제관계로 발전을 하고, 생산수단은 타인의 노동을 빨아들이는 수단이 되면서 궁지에서 벗어나게 되었다고 한다. 이것이 마르크스가 [자본] 1권 제4편에서 다루게 되는 ‘상대적 잉여가치의 생산’이라고 한다.

 

오늘날 우리사회의 노동일은 휴게시간을 제외하고 8시간이며, 특정한 주의 연장근무를 포함하더라도 주 52시간을 넘지 못하도록 되어있다. 마르크스가 [자본]을 쓴 19세기에 비하면 짧아진 것은 분명하지만, 불과 몇 십 년 전만 하더라도 우리 역시 긴 노동일 속에서 혹사당했었다. 책을 읽으면서 우리의 그 시기 자본과 정치경제학자들의 논리가 19세기 그들의 논리와 너무 흡사한 것을 보며 자본과 권력의 본질은 같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노동일이 줄어든 것은 노동자들의 연대에 의한 저항이 큰 역할을 했다.

 

마르크스는 ‘절대적 잉여가치의 생산’을 이야기하면서 전제한 것이 있다. 유통과정에서의 교환은 등가교환이고, 노동력의 가치는 그것을 생산하는데 필요한 사회적 노동량이라는 것이 그것이다. 아마 ‘상대적 잉여가치의 생산’에 대한 이야기가 끝나면 전제했던 것들이 변함에 따라 일어나는 이야기가 이어질 것이다. 그렇게 되면 현실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더 확실히 이해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시리즈의 절반을 넘겼다. 시작이 반이라 했는데 시작한지 오래되어 겨우 반에 이르렀다. 또 다시 새롭게 시작해야 할 것 같다.

k*****1 2021.07.07. 신고 공감 21 댓글 3
리뷰 총점 종이책 구매
노동자와 자본가의 탄생, 그리고 자본의 운명..
"노동자와 자본가의 탄생, 그리고 자본의 운명.." 내용보기
철학자 고병권과 함께 읽는 북클럽 자본 시리즈의 마지막인 열두 번째 책 [포겔프라이 프롤레타리아]는 마르크스 [자본] 1권의 마지막 편인 제7편 ‘자본의 축적과정’중 제24장 ‘이른바 본원적 축적’과 제25장 ‘근대 식민이론’에 대한 읽기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자본주의의 출현에 대해 다루고 있다. 자본가와 노동자가 어떻게 탄생했는지에 대해 마르크스가 쓴 자본주의의 전사
"노동자와 자본가의 탄생, 그리고 자본의 운명.." 내용보기

철학자 고병권과 함께 읽는 북클럽 자본 시리즈의 마지막인 열두 번째 책 [포겔프라이 프롤레타리아]는 마르크스 [자본] 1권의 마지막 편인 제7편 ‘자본의 축적과정’중 제24장 ‘이른바 본원적 축적’과 제25장 ‘근대 식민이론’에 대한 읽기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자본주의의 출현에 대해 다루고 있다. 자본가와 노동자가 어떻게 탄생했는지에 대해 마르크스가 쓴 자본주의의 전사(前史)를 해석하여 우리에게 알려준다.

 

저자는 먼저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포겔프라이 프롤레타리아’에 대한 설명으로부터 시작한다. 마르크스는 생산수단을 잃고서 쏟아져 나온 사람들을 근대적 프롤레타리아의 선행적 형상으로서 포겔프라이 프롤레타리아라고 불렀다. 포겔프라이란 ‘땅에 묶여 있지 않은’ 존재,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존재를 가리키는 말이었으나, 언제부턴가 공동체에서 ‘추방되어 아무런 보호도 받을 수 없는’ 존재, 자신이 머무는 곳에서 ‘아무런 권리도 갖지 못한’ 존재, 그래서 ‘무차별적인 폭력에 노출된’ 존재를 지칭할 때 이 말을 썼다고 한다. 저자는 이들을 두고 오늘날의 이주노동자, 특히 미등록 이주노동자에 딱 맞는 표현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그는 임금노동자의 탄생이란 관점에서 본 포겔프라이 프롤레타리아들의 ‘비참한 삶’에 초점을 맞추고 자세하게 살펴본다.

 

마르크스가 [자본]에서 앞서 이야기한 것들은 모두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을 전제했었다. 그렇게 볼 때 [자본] 1권의 제24장은 그 전제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즉 임금노동자와 자본가가 어떻게 출현했는지를 다루고 있다.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이 시작되려면 일정규모 이상의 축적된 자본이 존재해야 한다. 처음의 자본은 자본이 낳은 잉여가치가 다시 자본으로 전환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자본을 두고 정치경제학자들은 주로 ‘원시적 축적’이라 부르고 마르크스는 ‘본원적 축적’이라 부르지만, 저자는 ‘시초축적’이라는 말이 더 낫다고 생각하여 그렇게 부르고 있다. 또 노동력이 상품으로 나오기 위해서는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함을 우리는 앞에서 살펴본 바 있다. 하나는 노동자가 자기 노동력을 시장에서 자유롭게 거래할 수 있는 존재가 되기 위한 신분해방이 이루어져야 하고, 다른 하나는 노동자가 생활수단과 생산수단을 상실하여 노동력을 팔지 않고서는 살길이 없는 빈곤상태에 처해야 한다. 그래서 저자는 노동자와 자본가의 탄생에 대해 마르크스는 어떻게 보았는지를 해석하고 있다.

 

자본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16세기 이후라고 한다. 대량의 인간대중이 갑자기 폭력적으로 생존수단을 잃고 포겔프라이 프롤레타리아로서 노동시장에 내 던져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일이 일어나기 전 먼저 중세 봉건영지에 속해있던 농노들의 신분해방이 이루어졌다. 15세기 후반 봉건영주들은 장원을 목초지로 바꾸면서(인클로저) 울타리를 치고 사유재산으로 선포하며 농민들을 쫓아냈다. 종교개혁으로 수도원이 해산되고 토지가 몰수되자 이 토지를 사들인 부르주아들은 인클로저를 단행하며 농민들을 몰아냈고, 국유지와 공유지의 약탈 또한 같은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사유지 청소는 이른바 ‘인간 청소’였다고 한다. 이러한 토지수탈에서 중요한 것은 농민들의 추방이었다. 이때 추방된 농민들은 비록 기존의 예속관계에서 해방되었다고는 하나 어떠한 권리도 인정받지 못했다. 추방은 물질적 생산수단에 대한 약탈이자 인간관계에 대한 약탈로서 이들은 빈민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신분제에서 풀려나고 빈민이 되었다고 해서 다수의 인간 모두가 노동자가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이들과 노동시장 사이의 내적인 인과관계는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의 운명은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때부터 각국에서는 부랑자에 대한 잔인한 법률들이 제정되기 시작되었다고 한다. 이는 역설적으로 부랑자들이 많았다는 사실과 일하지 않고 돌아다니는 것을 범죄로 규정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토지에서 쫓겨났으나 일할 곳은 많지 않아 부랑자와 빈민이 될 수밖에 없었지만 법은 그렇다는 이유로 이들을 처벌했다. 즉 국가는 폭력적으로 이들을 임금노동자로 몰아갔다는 것이다. 이는 노동자의 탄생에 두 단계가 있음을 말하고 있다. 하나는 토지의 수탈과정에서 포겔프라이 프롤레타리아가 대규모로 양산된 것이고, 다른 하나는 피의 입법이라는 국가폭력에 의해 이들이 임금노동자로 전환된 것이다. 그래서 마르크스는 ‘이러한 수탈의 역사는 피와 불의 문자들로 인류의 연대기에 기록되어 있다’라고 쓰며, 국가폭력이라는 외적 힘이 없었다면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고 말했다 한다. 또한 마르크스는 국가폭력을 소위 시초축적의 본질적 계기라고 불렀다. 자본의 전제정이 완성되기 전에는 임금규제, 노동시간 연장, 노동자의 복종 등 모든 것이 국가의 법령을 통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이어서 저자는 자본가의 탄생을 살펴본다. 그는 먼저 자본가는 노동의 흐름과는 다른 방식으로 생겨났으며, 그들의 유래도 다 다르다고 말한다. 동일한 산업자본이라 해도 농업자본가, 산업자본가, 금융자본가는 서로 다른 사건 속에서 서로 다른 경로로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또한 시초축적에는 새로운 축적만이 아니라 기존축적의 성격변화, 기존 존재의 변신이라는 의미도 담겨있다고 한다. 그중에서도 마르크스가 가장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산업자본가의 탄생이다. 봉건 영주들의 토지 관리를 맡던 계층이 차지농업가의 모습을 띠기 시작하고 농업혁명이 일어나면서 축적을 통해 농업자본가가 탄생했다면, 산업자본가의 축적은 개인차원이 아니라 사회적 차원의 변동, 사회적 배치를 뒤흔드는 혁명적 사건들을 필요로 했다고 한다. (신대륙에서 금은 산지의)발견, (동인도의 정복)약탈, (원주민)섬멸, (아프리카 흑인의)사냥, (광산에)생매장, (원주민과 흑인의)노예화 등이 시초축적의 계기가 되었고, 국가권력이 시초축적을 도울 방법들을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그것을 식민시스템, 국채/공채시스템, 조세시스템, 보호무역시스템의 네 가지로 보고 있다. 그 결과 ‘권력자는 돈을 쓰고, 백성은 돈을 갚고, 자본가는 돈을 벌’게 되었다고 한다. 봉건적 생산양식이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는 어느 국가를 막론하고 어김없이 국가권력이 이용되었으며, 새로운 사회를 잉태한 낡은 사회에서는 폭력이 산파역할을 했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처럼 자본의 탄생이 의미하는 것은 직접적 생산자에 대한 수탈이다. 근대 부르주아 사상가들은 사유재산권을 일종의 자연권으로, 그리고 사적 소유의 원천에 노동이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노동하는 자의 재산을 빼앗아 노동하지 않는 자의 재산으로 만들면서 시작되었다. 이러한 자본주의가 발전할수록 축적의 규모는 커지지만 대자본가의 수는 줄어든다. 그리고 축적규모가 커지는 것에 비례해 ‘빈곤, 억압, 예속, 타락, 착취의 정도’가 증대한다. 마르크스는 그러다 어느 순간 생산력의 무한한 발전이 자본의 증식이라는 목적과 충돌하기 시작할 것이고, 이때 ‘자본주의적 사적 소유의 시대는 조종을 울린다. 수탈자가 수탈당한다’라고 강조한다. 즉 이것이 자본주의의 운명이라는 것이다. [자본] 첫 장에서 자본주의가 역사적으로 얼마나 독특한 사회형태인지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한 마르크스가 마지막 장에 이르러서는 자본주의가 자연스럽게 생겨날 수 있는 사회형태가 아니라 폭력적인 개입을 통해서만 생겨날 수 있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드디어 철학자 고병권과 함께 읽는 자본 시리즈 열두 권을 모두 읽었다. 저자는 마르크스가 [자본]에서 하고자 한 말을 자신의 렌즈로 해석하여 우리에게 알려주었다. 그 렌즈가 어떠한지를 떠나 저자의 설명은 으레 어렵다고 느끼는 마르크스 [자본]의 이해에 도움을 주고 있다. 때로는 마르크스의 말인지 저자의 말인지 헷갈리기도 했지만 그만큼 활자너머 이면에 있는 의미까지도 전달하려 했기 때문이지 싶다. 저자를 따라 읽은 자본 시리즈를 토대로 이제 [자본]을 읽으려 한다. 저자의 렌즈로 바라본 독법이 이끌겠지만 때로는 나만의 렌즈를 통해 다시한번 생각하며 읽고 싶다. 잘 되려나..

k*****1 2022.03.30. 신고 공감 20 댓글 2
리뷰 총점 종이책 구매
임금이란 노동에 대한 가격이 아니라 노동력의 가격이다.
"임금이란 노동에 대한 가격이 아니라 노동력의 가격이다." 내용보기
철학자 고병권과 함께 공부하는 북클럽 자본 시리즈 아홉 번째 책 [임금에 관한 온갖 헛소리]는 마르크스 [자본] 제1권의 제5편 ‘절대적, 상대적 잉여가치의 생산’과 제6편 ‘임금’에 관한 읽기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잉여가치율과 임금을 둘러싼 고전 정치경제학의 온갖 횡설수설과 착시, 기만, 술책 등에 대한 마르크스의 비판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다.   마르크스는 [자본]
"임금이란 노동에 대한 가격이 아니라 노동력의 가격이다." 내용보기

철학자 고병권과 함께 공부하는 북클럽 자본 시리즈 아홉 번째 책 [임금에 관한 온갖 헛소리]는 마르크스 [자본] 제1권의 제5편 ‘절대적, 상대적 잉여가치의 생산’과 제6편 ‘임금’에 관한 읽기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잉여가치율과 임금을 둘러싼 고전 정치경제학의 온갖 횡설수설과 착시, 기만, 술책 등에 대한 마르크스의 비판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다.

 

마르크스는 [자본] 제3편에서 절대적 잉여가치의 생산방식을 다루었고, 제4편에서는 상대적 잉여가치의 생산방식에 대해 이야기하였다. 절대적 잉여가치는 노동일 연장을 통해서, 그리고 상대적 잉여가치는 노동생산력 증대를 통해서 얻는다. 자본은 잉여가치를 얻기 위해 노동자들을 더 오래, 더 효과적으로, 더 강도 높게 일하는 유능한 노동자로 만들었다. 제5편에서는 그렇게 잉여가치를 생산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살펴보고 있다.

 

일반적으로 노동과정이란 노동자가 노동수단을 가지고 노동대상에 변형을 가하는 과정이다. 자본주의적 생산과정이란 현물을 생산하는 노동과정인 동시에 가치를 생산하는 가치증식과정이다. 여기서 노동과정은 자본이 구매한 노동력을 소비하는 과정이고, 가치증식과정은 잉여가치를 생산하는 노동을 말한다. 따라서 자본주의에서 말하는 생산적 노동이란 자본의 가치증식에 봉사하는 노동, 즉 잉여가치를 생산하는 노동을 일컫는다. 그러면 노동자는 왜 노동력의 가치를 넘어서는 잉여가치를 생산하는 노동을 하는 걸까? 그것은 노동이 자본에 포섭되었기 때문이라고 마르크스는 말한다. 절대적 잉여가치의 생산은 노동의 형식적 포섭이고, 상대적 잉여가치의 생산은 노동의 실질적 포섭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노동자의 노동이 가치증식의 요소로 계속해서 기능하는 것은 노동이 자율성을 잃고 자본의 하위요소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자본이 주권자인 사회에서 노동자는 노동력의 판매자 즉, 상품으로써 살아가야 한다. 우리 눈에는 자유롭고 평등한 교환으로 보이지만 포섭은 억압과 구속이 곧바로 드러나지 않는 형태의 예속이라고 저자는 마르크스의 비판을 통해 이야기한다. 또 마르크스는 노동력의 가치와 잉여가치의 상대적 크기가 노동일, 노동의 강도, 노동생산력에 따라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살펴본다. 각각의 요인이 증가, 감소, 불변인 경우 중 주요한 조합에 대해서 고찰해보지만, 어떤 경우에도 잉여가치의 비율은 상대적으로 늘어나며 따라서 계급 간 격차는 더욱 확대됨을 보여준다. 결국 [자본] 제5편에서 마르크스가 강조한 것은 때때로 노동력의 가격이 그 가치 이상으로 상승한다 해도 잉여가치가 커질 수 있으며, 노동력의 가격과 잉여가치 크기의 상대적 격차는 더 벌어질 수 있음을 지적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저자는 이처럼 마르크스가 얘기한 잉여가치 생산의 의미를 살펴보는 한편, 노동의 가치와 관련한 애덤 스미스의 오류, 잉여가치에 대한 리카도의 오류를 교정하는 마르크스의 비판내용을 상세하게 분석하여 소개하기도 한다. 또한 노동해방을 위한 중요한 전제인 ‘노동의 일반성’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자본주의에서 노동일 단축의 절대적 한계는 잉여노동이 생겨날 수 있느냐에 달려있지만, 자본주의가 아니라면 얼마나 많은 구성원들이 노동에 참여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고 한다. 다시 말해 특정계급(자본)이 자유를 얻기 위해 다른 계급에게 노동을 강요하는 게 아니라 모두가 함께 일함으로써 전체의 자유 시간을 키울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노동의 일반성은 요즘 우리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주52시간 노동시간과 관련해서도 많은 생각을 해보게 만든다.

 

이어 마르크스는 임금과 관련한 정치경제학의 오류를 살펴본다. 정치경제학에서 임금은 분배의 문제로 보고 있다. 자본주의는 자본가가 이윤을 얻기 위해 자본을 투자하여 상품을 생산하는 체제이다. 따라서 자본, 토지, 노동에 대해 각각 이윤, 지대, 임금으로 분배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이윤과 지대와 이자는 모두 잉여가치의 특수한 형태로 노동력을 통해 생산된 잉여가치를 분배한 것이라 단언한다. 임금은 노동력의 가치로써 노동력을 생산하는데 필요한 사회적 노동량이기 때문이다. 잉여가치율을 따질 때 살펴본 정식 w=c+v+m에서 생산물의 가치(w)에 담긴 생산수단의 가치(c)는 과거에 생산된 가치를 이전한 것이고, 노동력의 가치(v)와 잉여가치(m)는 노동자가 새로 생산한 가치이다. 따라서 가치의 생산과정에서 생산수단의 가치는 재현되지만 노동력의 가치는 재생산된다. 즉, 노동자는 생산과정에서 노동력의 가치를 재생산하여 노동력의 대가로 받은 임금을 자본가에게 돌려준다. 그럼에도 임금은 나중에 받기 때문에 노동에 대한 대가로 분배받는 것이라 착각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또한 저자는 노동과 노동력에 대한 의미를 분명히 한다. 임금은 노동력의 가격으로 노동력의 가치를 화폐와의 교환비율로 나타낸 것이다. 그러나 이데올로기는 노동의 가격을 임금이라고 한다. 이는 고전파 경제학자들이 노동력(거래상품)과 노동(가치)을 구분하지 못해서이고, 그래서 말도 안되는 노동의 가격이라 부름으로써 잉여노동의 존재를 은폐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이처럼 임금을 노동의 가격이라고 규정함으로써 임금에 관한 온갖 헛소리들이 나온다는 것이다. 그리고 노동자들이 이런 헛소리를 믿는 까닭은 자본과 노동의 교환이 일반적으로 상품매매처럼 지각되고, 교환가치와 사용가치가 그 자체로는 비교 불가능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마르크스는 제6편에서 임금형태를 검토하고 있다. 자본주의에서 어떻게 하여 시간급제와 성과급제 같은 임금형태가 나타나게 되었는지, 자본가들이 성과급제를 선호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고찰한다. 그를 통해 임금이 ‘일한 만큼 받는 것’이라는 말이 거짓임을 깨닫게 된다. 즉 자본은 노동력의 가치를 모두 제대로 지불한 것 같지만 실제로는 눈속임에 불과하다는 것을 마르크스는 분석을 통해 보여준다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는 마르크스의 [자본]에서 개념의 핵심은 잉여가치이고, 이는 노동과 노동력을 엄격히 구분함으로써 알 수 있음을 역설한다.

 

‘북클럽 자본 시리즈’를 통해 마르크스의 [자본] 제1권에 대한 독법을 배우고 있다. 총 열두 권의 책 중 이제 아홉 권을 읽었다. 남은 세 권은 또 어떤 이야기들을 들려줄지, 시리즈를 다 읽고 난 후 막상 [자본]을 읽게 되면 어떤 생각을 하게 될지 궁금해진다. 그런 궁금증을 뒤로 하고 우선은 남은 세권을 마저 읽어야겠다.

k*****1 2022.03.13. 신고 공감 16 댓글 1
리뷰 총점 종이책 구매
자본의 핵심은 잉여노동에서 나오는 잉여가치이다.
"자본의 핵심은 잉여노동에서 나오는 잉여가치이다." 내용보기
북클럽 자본 시리즈 4권은 마르크스의 [자본] 제4장에 대한 읽기이다. 제1편 ‘상품과 화폐’의 1장에서 3장까지 읽은 저자는 이어 제2편 ‘화폐의 자본으로의 전화’를 읽는다. 1편에서 마르크스는 노동생산물과 상품을 구별하는 것은 가치라고 했다. 화폐 또한 일종의 가치형태이지만 다른 상품과 달리 일반적인 가치형태이다. 이론적으로는 보았을 때 가치개념이 자본개념에 선행하
"자본의 핵심은 잉여노동에서 나오는 잉여가치이다." 내용보기

북클럽 자본 시리즈 4권은 마르크스의 [자본] 제4장에 대한 읽기이다. 제1편 ‘상품과 화폐’의 1장에서 3장까지 읽은 저자는 이어 제2편 ‘화폐의 자본으로의 전화’를 읽는다. 1편에서 마르크스는 노동생산물과 상품을 구별하는 것은 가치라고 했다. 화폐 또한 일종의 가치형태이지만 다른 상품과 달리 일반적인 가치형태이다. 이론적으로는 보았을 때 가치개념이 자본개념에 선행하지만 가치개념을 설명하려면 자본에 기초한 생산양식을 가정해야 한다. 자본주의 생산양식으로의 이행은 사물에 대한 가치판단이 변하고,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변하는 것이기에 상품의 가치형태를 논할 때 이미 자본주의 생산양식을 전제하고 있다. 따라서 마르크스의 [자본] 논의는 자본주의가 역사적으로 정립되어 있음을 전제하고 있는 셈이다.

 

1편에서 상품과 화폐에 대한 논의를 마친 마르크스는 2편에서는 화폐가 자본으로 변신하는 이야기를 다룬다. 화폐는 화폐일 뿐이지만 어떤 관계에서는 자본이 된다. 그냥 화폐로서의 화폐도 있지만 자본인 화폐도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자본으로 쓸 때 그 돈은 다시 돌아온다고 강조한다. 화폐로서의 화폐의 경우 그 화폐를 쓰고 나면 그것으로 끝이 나기 때문에 그것을 아무리 많이 쌓아도 자본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마르크스는 스스로 가치를 증식해가는 가치를 자본이라 했다. 증식한 가치는 바로 잉여가치를 말한다. 즉 잉여가치를 낳는 가치, 잉여가치를 위해 투자한 가치가 자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자본이 잉여가치를 낳고나면 그 둘은 다시 한 몸이 되어 자본으로 기능한다. 저자가 자본으로서의 화폐를 설명하면서 이 책의 제목에 ‘성부와 성자’란 제목을 붙인 이유이다. 이러한 자본의 특성은 보존과 증식이다. 상품 역시 자본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자본은 유통과정이나 순환과정에서 사라지지 않고 자기동일성을 유지하며, 순환될 때마다 잉여가치를 낳는 것이 그것이다. 그렇다면 잉여가치는 어디에서 생겨나는 것일까?

 

자본은 상품과 화폐의 유통을 전제로 하고 있다. 마르크스가 ‘자본의 일반정식’이라 제시한 G(화폐)-W(상품)-G‘(화폐)에서 G'는 G보다 항상 커야하고 이 차이분이 바로 잉여가치이다.  마르크스는 이 잉여가치가 일어나는 곳이 어디인지를 살펴본다. 유통과정에서는 등가교환이 원칙이기 때문에 잉여가치가 생겨날 수 없다. 잉여가치는 자본가가 구매한 물건을 이용하는 과정에서 일어난다. 구매한 상품의 사용가치에서 판매할 제품의 교환가치 증대를 이끌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우리의 이해를 돕기 위해 이 정식을 G-W-W'-G'로 변형하여 설명한다. 상품 W가 W'로 변하면서 가치증식이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최종산물(W')의 가치는 원료·도구·노동력의 가치를 합한 것보다 커야 가치증식이 일어난다. 그러나 원료나 도구의 경우 등가교환이 일어나기 때문에 가치증식이 일어날 수 없다. 단 하나, 노동력만이 가치증식을 일으킬 수 있는 특별한 상품이라고 마르크스는 말한다. 노동은 모든 가치의 원천이라고 1편에서 마르크스는 설명했다. 따라서 잉여가치도 노동에서 나와야 한다. 그리고 노동의 가치는 다른 상품과 같이 등가교환 되어야 한다. 그런데 어떻게 노동에서 잉여가치가 생겨날 수 있을까?

 

상품의 가치는 그것을 생산하는데 필요한 사회적 노동량으로 계산된다. 노동력 또한 상품이기에 그 가치는 다른 상품과 마찬가지로 노동력을 생산하는데 필요한 사회적 노동량이다. 그러나 노동력은 그것을 사용하기 전에 이미 시장에 나온 상품 중 하나로서의 가치를 갖는다. 마르크스는 이러한 노동력의 가치는 한 개인이 그 사회에서 자신을 재생산하고 생활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사회적 노동량이라고 말한다. 노동력의 생산에 필요한 노동시간은 생활수단의 생산에 필요한 노동시간이 되고, 사회적 노동량의 ‘사회적’이란 평균적인 의미를 갖는다. 이 말은 노동력의 가치와 노동자가 실제로 수행한 노동의 양은 같지 않다는 뜻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잉여가치란 바로 이런 노동력의 가치와 노동력이 창출한 가치의 차이에서 생겨난다. 한마디로 잉여가치란 잉여노동인 것이다. 이는 자본이라는 개념자체가 비록 그것이 적법하다 할지라도 착취사회에서만 가능하다는 뜻이고, 노동력이 상품으로 시장에 나올 때에 한해서 자본이 성립할 수 있다는 의미라고 저자는 말한다.

 

이렇게 노동력이 상품이 되기 위해서는 전제조건이 있다고 한다. 먼저 노동력의 소유자가 자유롭게 노동력을 판매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신분해방이 이루어져야 했다. 노동시간이나 노동조건들이 제도적으로 규제된 것은 노동력소유자와 화폐소유자가 법률상으로 동등하다는 의미이다. 노동자가 자본가에게 넘기는 것은 노동력에 대한 소유권이 아니라 사용권이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노동자는 노동력을 처분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놓여야 했다. 생존을 위해서 자신의 노동력을 기꺼이 내놓는 사람들이 있어야 상품으로서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이는 자본이 등장하기 위해서는 신분해방과 빈곤이 필수적이라는 말에 다름 아니다. 부의 창출 조건이 바로 빈곤의 창출에 있는 셈이다.

 

결국 노동력이 없으면 잉여노동이 없고, 잉여노동이 없으면 잉여가치가 없고, 잉여가치가 없으면 자본이 불가능하다는 말이 된다. 그렇다면 노동력이란 단 하나의 상품이 존재하지 않으면 자본주의 생산양식은 불가능하게 된다. 그래서 저자는 가치증식의 또 다른 이름은 노동력의 착취라고 말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자본가와 노동자가 만나 거래하는 곳은 자유·평등·소유가 지배하는 곳이라고 한다. 자유로운 인격의 소유자가, 법적으로 동등한 사람이, 각기 소유한 것을 처분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전의 화폐소유자는 자본가로서 앞장을 서고, 노동력의 소유자는 자본가의 노동자로서 그의 뒤를 따라간다. 전자는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으며 바쁘게 가고 후자는 가죽을 팔고서는 무두질만을 기다리는 사람처럼 마지못해 주춤주춤 따라간다’고 마르크스는 말한다. 여기서 자본가는 인격화된 자본을 의미한다.

 

마르크스의 [자본]을 읽기에 앞서 이 책 ‘북클럽 [자본]읽기 시리즈’를 먼저 읽기 잘했다는 생각이 계속 든다. 그만큼 이해의 폭을 넓혀준다는 생각에서다. 이 시리즈를 다 읽고 나서 [자본]을 직접 읽게 되면 어떻게 이해하고,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게 될지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책을 읽어갈수록 기대가 높아진다. 다음 권은 잉여가치의 생산과정을 다루는 [자본] 5·6·7장 읽기이다. 마르크스는 어떻게 풀어가고 저자는 어떻게 읽는지 따라 가봐야겠다.

k*****1 2021.06.18. 신고 공감 16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구매
욕망의 대상으로서의 ‘돈’, 화폐의 기능적 현존.
"욕망의 대상으로서의 ‘돈’, 화폐의 기능적 현존." 내용보기
<북클럽 자본 시리즈>의 세 번째 책 [화폐라는 짐승]은 마르크스의 [자본] 제1편 <상품과 화폐>중 제2장 <교환과정>과 제3장 <화폐 또는 상품유통>에 대한 읽기이다. 이 시리즈의 2권 <마르크스의 특별한 눈>에서 화폐형태의 발생기원을 살펴본 저자는, 3권에서 화폐를 소유한다는 것의 의미와 화폐의 기능에 대한 마르크스의 생각을 읽는다.   마르크스는 1장에서 상품의
"욕망의 대상으로서의 ‘돈’, 화폐의 기능적 현존." 내용보기

<북클럽 자본 시리즈>의 세 번째 책 [화폐라는 짐승]은 마르크스의 [자본] 제1편 <상품과 화폐>중 제2장 <교환과정>과 제3장 <화폐 또는 상품유통>에 대한 읽기이다. 이 시리즈의 2권 <마르크스의 특별한 눈>에서 화폐형태의 발생기원을 살펴본 저자는, 3권에서 화폐를 소유한다는 것의 의미와 화폐의 기능에 대한 마르크스의 생각을 읽는다.

 

마르크스는 1장에서 상품의 가치에 시선을 두고 서로 다른 사물들이 상품으로서 교환되려면 등가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즉 상품의 사용가치와 교환가치 측면에서 접근했다면, 이제는 그 상품을 소유하고 교환하려는 인간들의 관계에 시선을 돌린다. 사물들이 상품이 된 것은 사물 사이에 일어난 일 때문이 아니라 사람들 사이에 일어난 일이기 때문이다. 사용가치 측면에서 상품의 유용성이 상품소유자의 개별적인 욕구라면, 교환가치는 상품의 가치에 대한 사회적 승인이다. 따라서 상품교환은 상품소유주에게 있어 개인적인 일인 동시에 사회적인 일이 되고, 두 사람의 관계는 평등함을 전제로 한다. 이처럼 마르크스는 교환을 위해 만난 두 상품소유주의 관계에서 이전의 공동체와는 다른 근대적 인간관계를 읽어낸다. 이에 대해 저자는 자연스럽게 교환하고 거래하는 것이 본래 인간의 본성이 아니라고 말한다. 공동체가 붕괴되고 사회가 출현하면서 교환이 생겨나고 화폐가 생겨났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상품과 화폐의 유통이 자유로운 사회에서는 공동체가 해체될 수밖에 없으며, 인간관계 역시 공동체적 관계에서 사회적관계로 이행된다고 한다.

 

화폐는 가치 자체가 아니라 가치가 표현된 형태이다. 화폐로서의 금은 다른 상품들과의 사회적 관계를 표현하는 가치형태임에도, 화폐가 되는 순간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 역시 화폐 자체를 부의 축적, 가치의 축적과 동일하게 여기며 화폐가 그 자체로 독립해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이는 ‘다른 모든 상품들이 자신들의 가치를 특정한 상품으로 표현하기 때문에 그 특정한 상품이 화폐가 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한 상품이 화폐이기 때문에 다른 상품들이 일반적으로 자기들의 가치를 그 상품으로 표현하는 것’처럼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품 사이의 관계를 떠받치는 인간 사이의 사회적 관계는 지워지고, 상품과 화폐의 유통이 전제하는 인간관계의 발생 과정에서 자행되는 폭력도 은폐된다고 저자는 말한다. 가치는 사물이 아니라 관계임을 잊은 화폐물신에 빠진 현대인들의 자화상이다.

 

마르크스는 이런 화폐의 기능적 현존, 즉 화폐가 어떤 기능으로 존재하는지를 살펴본다. 가치척도, 유통수단, 화폐로서의 화폐가 바로 그것이다. 먼저 가치척도로서의 화폐는 화폐가 다른 상품들의 가치를 표현하는 사물이라는 점에서 곧바로 도출된다. 가치척도인 한에서 화폐는 가치를 가진 사물, 즉 상품이어야 한다. 모든 상품의 가치를 화폐라는 동일한 단위로 측정할 수 있는 것은 상품 속에는 인간의 추상노동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품의 가치를 화폐로 표현할 때 가격이라 부르며, 이때의 가격은 해당상품과 화폐상품 사이의 교환비율을 나타낸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에서 가치와 가격의 괴리가 수없이 발생하는 이유를 화폐의 가치척도 기능에서 찾고 있다. 상품의 가치량은 그 상품을 생산하는데 필요한 사회적 노동량이지만, 다른 상품과의 교환비율인 가격은 다양한 간섭현상이 일어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리고 가격과 가치량의 편차가 커지면 가치가 없는 것에 대한 가격도 생겨나는데, 이것은 화폐가 상품이 아닌 것의 가치를 재는데도 남용된다는 뜻이다. 화폐가 이러한 가치척도이고 계산수단인 한에서는 반드시 실물로 존재할 필요는 없다. 단지 머릿속에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러나 상품과 교환하기 위해서는 가치척도인 화폐가 아니라 유통수단인 화폐가 필요하다. 교환은 두 물건의 소유권을 이전하는 순간 끝나지만 유통은 계속된다. 상품의 자리를 화폐가 차지하고, 다시 그 화폐의 자리를 다른 상품이 차지하면서 교환의 사회적 연결망을 계속 발전시키기 때문이다. 또한 상품교환이 이루어지는 유통은 판매와 구매로 나누어지고, 이는 화폐를 기준으로 시공간적으로 분리된다. 마르크스는 바로 이 지점에서 자본주의 사회의 위기인 공황이 발생된다고 본다. 상품은 개인이 생산하지만 그 가치는 사회적으로 결정되는 상품유통의 원리 속에 산업공황의 가능성이 상존해 있다는 것이다.

 

마르크스가 구분한 화폐의 기능적 현존의 마지막은 화폐로서의 화폐이다. 이는 거래의 최종 목적이 상품이 아니라 화폐인 것을 말한다. 화폐를 재물로서 모으는 축장화폐, 지불수단으로서의 화폐, 세계화폐 등이 그 예이다. 화폐가 교환의 일반적 등가물이라는 사실은 사람들로 하여금 가치를 상품형태가 아니라 화폐 형태로 보유하고자 하는 욕망을 불러일으킨다. 화폐는 원할 때 원하는 상품으로 교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상품매매가 채권채무 관계일 때나 세금납부와 같은 경우 화폐는 지불수단이 된다. 지불수단으로서의 화폐는 다른 상품으로 대체되지 않는 화폐 그 자체이어야 하며, 유통수단과는 아주 다른 기반을 가진 기능적 현존으로 거래를 시간적으로 확장시켜 준다. 반면 세계화폐는 거래의 공간적 확장이라 볼 수 있다. 화폐공황이 발생하는 이유는 바로 화폐의 이 기능적 현존 때문이기도 하다.

 

이러한 화폐의 세 가지 기능적 현존 가운데 이 책의 저자가 가장 관심을 두는 것은 세 번째 기능인 화폐로서의 화폐이다.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의 눈이 향하고 있는 곳이 바로 이 화폐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화폐, 즉 돈을 모으기 위해 노력한다. 돈이 돈을 낳고, 돈이 있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화폐 물신에 빠져 끝없이 욕망한다. 그래서 저자는 화폐를 짐승이라 비유했고 이 책의 제목을 [화폐라는 짐승]으로 했다고 한다. 그는 마르크스가 이처럼 화폐를 기능별로 살펴본 까닭은 화폐가 그냥 화폐로 기능하는 것과 자본으로 기능하는 것을 구분할 필요가 있어서였다고 말한다. 마르크스는 책의 제목인 자본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그 이해를 돕기 위해 상품과 화폐의 근원을 살펴본 것이지 싶다.

 

이 시리즈의 저자, 고병권의 [자본] 읽기를 따라 마르크스의 [자본] 제1편을 읽었다. 이제 2편에서는 본격적으로 자본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될 것이다. 마르크스가 ‘자본’을 이해하기 위해서 필요하다고 생각하여 쓴 상품과 화폐에 대해, 저자의 관점에 따라 읽으면서 내용의 이해를 다졌다. 직접 읽어보는 [자본]은 어떤 생각을 하게 만들지 기대가 된다.

k*****1 2021.06.04. 신고 공감 15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구매
매뉴팩처 안에서 파편화되고 무능해지는 개인들..
"매뉴팩처 안에서 파편화되고 무능해지는 개인들.." 내용보기
‘북클럽 자본시리즈’ 제7권 [거인으로 일하고 난쟁이로 지불받다]는 마르크스 [자본] 1권의 제4편 ‘상대적 잉여가치의 생산’에 대해서 쓴 글 중 10장에서 12장까지의 읽기이다. 10장의 제목은 ‘상대적 잉여가치의 개념’이고, 11장은 ‘협업’ 그리고 12장은 ‘분업과 매뉴팩처’이다. 자본이 잉여가치를 늘리기 위해서는 노동일이나 노동인구를 늘려야했으나 한계에 이르자 새로
"매뉴팩처 안에서 파편화되고 무능해지는 개인들.." 내용보기

‘북클럽 자본시리즈’ 제7권 [거인으로 일하고 난쟁이로 지불받다]는 마르크스 [자본] 1권의 제4편 ‘상대적 잉여가치의 생산’에 대해서 쓴 글 중 10장에서 12장까지의 읽기이다. 10장의 제목은 ‘상대적 잉여가치의 개념’이고, 11장은 ‘협업’ 그리고 12장은 ‘분업과 매뉴팩처’이다. 자본이 잉여가치를 늘리기 위해서는 노동일이나 노동인구를 늘려야했으나 한계에 이르자 새로운 길을 찾아냈다. 그것은 바로 상대적 잉여가치를 늘리는 방법이었다. 앞 권인 6권에서 절대적 잉여가치에 대해 설명한 저자 고병권은 7권과 8권에서 상대적 잉여가치에 대해 다루고 있다.

 

근대정치학은 두 종류의 인간을 상정한다. 집합적 통일체로의 인간과 그 구성원인 개별인간이 그것이다. 주권자라 불리는 집합적 통일체로서의 인간은 역사상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존재로 거인에 비유된다. 반면 개인으로서의 인간은 군주나 정부의 돌봄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는 나약한 존재로 흔히 난쟁이로 비유되곤 한다. 마르크스는 노동자가 자본가에 고용될 때도 마찬가지라고 보았다. 노동자는 독립된 개인의 자격으로 고용되지만 작업이 시작되면 결합된 노동력을 이루어 거대한 시스템을 구성한다. 그러나 임금을 받을 때는 전체 시스템의 한 부분인 개인으로 다시 돌아온다. 상대적 잉여가치란 바로 이런 구조 속에서 생겨난다고 말한다.

 

생산물의 가치(w)=생산수단의 가치(c)+노동력의 가치(v)+잉여가치(m)이다. 그리고 노동일은 필요노동과 잉여노동의 합이다. 잉여가치란 잉여노동이 대상화 된 것이며, 잉여가치율은 필요노동과 잉여노동의 비율 즉 m/v이다. 따라서 잉여가치를 늘리기 위해서는 노동일을 늘리거나 고용을 늘려야 한다. (필요노동은 정해져 있기에 늘어난 시간만큼 잉여노동이 되거나, 고용의 증가로 잉여노동의 합이 커진다) 그러나 시간과 인구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자본은 새로운 길을 찾아냈는데 그것은 노동력의 가치하락을 통한 필요노동시간을 줄이는 것이었다. 이처럼 노동일을 연장하거나 고용을 증가시키지 않고 필요노동시간과 잉여노동시간의 비율을 바꿈으로써 얻어지는 잉여가치를 바로 상대적 잉여가치라 부른다. 이는 자본가가 그것을 염두에 두고 행동한 것이 아니라 작업방식이나 노동수단을 혁신함으로써 경쟁업체보다 생산성을 높인다는 생각에서 이루어진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런 혁신은 생산량 증가로 자본가의 눈앞에 직접적인 이익을 준다. 마르크스는 생산량 증가분이 주는 잉여가치를 추가 잉여가치라 부른다. 상대적 잉여가치가 전체 가치 생산물중 자본가와 노동자가 가져가는 몫의 비율을 바꾼 것이라면, 추가 잉여가치는 자본가들 사이에서 이익의 재분배가 일어난 것이다. 흔히 자본가들은 잉여가치율대신 이윤율(m)을 따진다. 이윤율(m=w-k)은 생산물의 가치(w)에서 비용가격(k=c+v)을 뺀 것이다. 그럼에도 마르크스가 잉여가치를 따지는 것은 비용과 이윤만을 가지고 따질 때 노동과의 관계는 사라지고 이윤이 자본 스스로의 운동으로 창조된 것이라는 환상을 품게 만들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다시 말해 자본가가 원하는 것은 가치가 아니라 잉여가치이고 노동이 아니라 잉여노동이란 것을 이해한다면 이윤이나 이윤율을 사용해도 상관없다는 것이다. 또 마르크스는 이런 노동생산력 증대를 강화된 노동으로 이해했다. 절대적 잉여가치는 연장된 노동의 형태를 취하고 상대적 잉여가치는 강화된 노동의 형태를 취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볼 때 자본주의는 인간의 자유와 복리가 아니라 이윤만을 목적으로 하는 체제라는 것이다.

 

노동생산력을 증대함으로써 노동력가치의 상대적 비중을 줄이는 방법, 즉 상대적 잉여가치를 올리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작업방식의 변화와 기계의 변화가 그것인데 저자는 작업방식의 변화가 이 책 7권의 주제라면 기계의 변화는 8권의 주제라고 말한다. 작업방식의 변화란 일정규모 이상의 노동자가 모여 ‘함께’ 일하는 것, 다시 말해 협업하는 것을 말한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협업함으로써 자본가가 얻는 효과는 세 가지로 평균노동의 실현, 생산수단의 절약, 그리고 추가생산력의 창출이 그것이다. 이렇게 ‘함께’ 일하는 노동자들의 모습을 마르크스는 전체노동자 혹은 결합노동자라 했고 저자는 거인노동자라 부른다. 그리고 거인의 노동력에 대한 임금은 개별 노동자들에게 지불되지 않고 자본가의 차지가 된다. 노동자 추가생산력의 크기는 거인노동자가 얼마나 온전한 형태로 출현 하는가 즉 노동자들이 얼마나 유기적으로 결합하느냐에 좌우된다. 마르크스는 이를 위해 자본가의 지휘가 필요하며 이 지휘는 최대한의 노동을 짜내 노동생산력을 증대코자 하기 때문에 착취이며 억압을 띨 수밖에 없다고 보았다. 그래서 공장의 자본가는 지휘자이자 진압봉을 든 경찰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협업은 언제나 자본주의적 생산약식의 기본 형태이며, 따라서 자본주의적 협업은 전통적 협업의 발전 형태와는 다르다는 것이다.

 

초기 자본주의의 생산방식은 매뉴팩처이다. 매뉴팩처는 생산과정에 기계가 본격적으로 사용되지 않고 사람의 손이 주요한 노동수단이었다. 마르크스는 매뉴팩처가 두 가지 형태로 발생한다고 보았는데 하나는 서로 독립된 수공업 부문의 노동자를 하나의 작업장에 모으는 이종적 매뉴팩처이고, 다른 하나는 동일한 업종의 여러 수공업자를 한데 모은 유기적 매뉴팩처이다. 그리고 어떤 매뉴팩처가 되었든 간에 노동은 기본적으로 분업에 기초한 협업으로 이루어진다. 이러한 분업은 노동자들의 노동이 부분노동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마르크스는 이들을 부분노동자라 부른다. 그 결과 노동자는 독립성을 잃게 되고 그만큼 유능한 매뉴팩처 노동자, 즉 숙련공이 된다. 이는 노동자가 전체 생산 메커니즘의 한 기관으로 전락하여 기계가 되는 과정이기도 하다. 한 가지 일밖에 하지 못하는 분업은 노동의 종류뿐만 아니라 등급의 분화를 촉진하고 노동의 가치하락에 기여하게 된다. 당시의 정치경제학자 애덤 스미스는 이러한 매뉴팩처를 두고 사회적 분업이며 자연발생적인 분업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사회적 분업이 독립된 다수 생산자를 전제로 한다면, 매뉴팩처 분업은 자본가에게 철저하게 예속된 부분노동자들 간의 협업이라며 매뉴팩처 분업은 자본주의적 생산양식 특유의 창조물이라고 강조하며 자본가들의 이중성을 비판한다. 결론적으로 매뉴팩처는 자본의 원리 내지 목적을 실현하는 방법 중 하나인 상대적 잉여가치의 생산방법이라는 것이다. 착취사회에서는 진보도 이렇게 착취의 진보가 되고 만다.

 

부분노동자들이 숙련되어 갈수록 이들의 저항도 거세진다. 거인노동자는 언제든 믿음직한 일꾼에서 무서운 투사로 돌변하기도 한다. 공장은 자본가가 전적으로 지배하는 공간임에도 매뉴팩처 생산형태에서는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자본가들은 또 다시 고민한다. 그때 작업장 밖에서 어른거리는 그림자가 있다. 저자가 다음 권에서 다루는 상대적 잉여가치를 증대시키기 위한 두 번째 방법 기계이다. 기계는 어떤 식으로 노동력의 가치를 떨어뜨릴까? 다음 권을 읽어야겠다.

k*****1 2022.02.19. 신고 공감 13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구매
기계의 도입으로 일어난 일들..
"기계의 도입으로 일어난 일들.." 내용보기
북클럽 자본시리즈 여덟 번째 책 [자본의 꿈 기계의 꿈]은 마르크스 [자본] 1권 제4편 ‘상대적 잉여가치의 생산’중 마지막 장인 제13장 ‘기계와 대공업’ 읽기이다. 상대적 잉여가치는 노동생산력의 증대로 생겨난다. 노동생산력이 증대하면 노동력의 가치가 떨어지고 이는 노동일 중 필요노동시간과 잉여노동시간의 비율을 바꾼다. 노동생산력을 증대하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는데,
"기계의 도입으로 일어난 일들.." 내용보기

북클럽 자본시리즈 여덟 번째 책 [자본의 꿈 기계의 꿈]은 마르크스 [자본] 1권 제4편 ‘상대적 잉여가치의 생산’중 마지막 장인 제13장 ‘기계와 대공업’ 읽기이다. 상대적 잉여가치는 노동생산력의 증대로 생겨난다. 노동생산력이 증대하면 노동력의 가치가 떨어지고 이는 노동일 중 필요노동시간과 잉여노동시간의 비율을 바꾼다. 노동생산력을 증대하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는데, 작업방식의 변화와 기계의 변화가 그것이다. 7권에서 작업방식의 변화로 매뉴팩처 공업에 대해 알아본 저자는, 이번 권에서는 기계의 도입으로 기계를 통한 자본의 증식에 대해 다루고 있다.

 

매뉴팩처가 작업방식의 변화를 통한 생산형태라면 기계제대공업은 노동수단이 도구에서 기계로 바뀐 혁신의 결과이다. 자본의 목표는 자본증식에 있다. 매뉴팩처에서 개별노동자들을 결합시키는 것은 자본가의 결정만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거인노동자의 출현은 무상으로 이루어진다. 반면에 기계괴물의 출현은 막대한 비용이 소요된다. 그럼에도 기계를 도입하는 이유는 생산성 향상으로 상품의 가치를 떨어뜨려 특별잉여가치를, 노동력의 가치하락으로 상대적 잉여가치를 얻을 수 있어서라고 한다. 이처럼 기계는 이윤 때문에 도입된다. 만약 이윤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노동을 크게 절약해주는 획기적인 기계라 할지라도 생산에 투입되지 않는다. 그리고 이러한 기계제로의 전환은 인간의 부품화로 인간이 다른 인간이나 혹은 사물과 하나의 메커니즘을 구성함을 의미한다. 도구가 인간의 도구에서 기계의 도구로 변화하는 순간 인간은 더 이상 고려대상이 아닌 것이다. 이것은 매뉴팩처에서 개별노동자들 전체가 결합된 노동력으로써 하나의 메커니즘을 이룰 때 이미 예견된 일이기도 했다고 한다.

 

매뉴팩처의 기술적 토대는 노동의 숙련이었다. 그러나 기계제에서의 숙련은 별 의미가 없으며, 이는 곧 노동의 균등화 혹은 수평화의 경향으로 나타난다고 한다. 매뉴팩처 시스템 안에서의 노동자들도 부분노동을 했지만 기계제대공업에서는 기계의 조수로 전락하여 그런 부분적 의미마저도 사라졌다. 즉 기계시스템의 편제 안에서 노동자는 의식을 가진 부분기계로 전락한 것이다. 그래서 마르크스는 매뉴팩처의 노동자들을 부분노동자라 불렀듯, 기계제대공업의 노동자들을 기계노동자라 불렀다. ‘기계는 노동자를 노동에서 해방시킨 것이 아니라 노동의 내용에서 해방’시켰다.

 

기계제대공업의 메커니즘에서 고려되는 것은 기계적 한계이다. 인간의 한계는 고려대상에서 제외된다. 그로 인해 사회전반에 큰 변화가 일어났지만, 그중에서도 노동자에게 미친 일반적인 영향을 마르크스는 세 가지 현상으로 설명하고 있다. 노동인구의 확대, 노동일 연장, 노동 강도의 강화가 그것이다. 생산성 높은 기계의 도입은 흔히 고용의 감소로 이어지지만 저임금의 아동과 여성을 새로운 노동인구로 편입하면서 자본관계가 개별노동자 자신을 넘어 가정으로까지 확대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노동인구의 확대는 기계의 가동시간을 늘렸고, 이는 부분기계가 된 노동자의 노동일 연장으로 이어졌다. 또한 기계의 속도를 높인다는 것은 기계의 움직임에 적절하게 반응해야 하는 노동자들의 작업강도가 높아짐을 의미했고, 이에 따라 각각의 기계노동에 따른 고유한 질병과 과로사가 생겨 낳다. 이처럼 기계제대공업에서 노동자는 가치착취의 대상 혹은 가치착취의 재료로 작동했다고 저자는 말한다.

 

기계제대공업에서 생산성 높은 기계의 도입은 성인노동자들의 고용감소로 이어졌다. 즉 일자리를 놓고 기계와 노동자가 경쟁함으로써 산업예비군이 양산되었다. 19세기 초 영국에서 일어나 러다이트(기계파괴)운동은 이런 배경에서 발생했다. 자본주의에서 자본가계급과 노동자계급의 투쟁은 자본관계 그 자체의 발생과 함께 시작된 것으로 특별한 것이 아니라고 한다. 그러나 러다이트운동은 투쟁의 대상이 노동수단이었다. 마르크스는 러다이트운동을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물적 토대인 생산수단의 특정 형태에 대해 분노를 일으킨’것이라고 말한다. 이런 기계제 공장이 산업전반에 자리를 잡게 되면서는 생산성이 아닌 원료의 구입과 생산물의 판매가 중요해졌고, 이는 식민지 개척으로 이어졌다. 이처럼 자본주의는 식민주의를 품고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또한 기계제대공업이 지배적 생산형태로 자리를 잡더라도 매뉴팩처와 가내공업 모두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작업장과 기능의 의미는 완전히 달라진다. 구성인원은 여성과 아동, 미숙련노동자로 이루어지고 공장이나 선대상인 등의 주문을 받고 수공업형태로 생산, 납품하는 하청관계로 이어진 것이다. 당연히 노동력의 착취는 보다 강해지지만 저항은 더욱 약해진다. 마르크스는 이를 두고 ‘보이지 않는 실’로 연결되어 있다고 했다. 즉 대공장의 자본가는 보이는 않는 실을 통해 이들을 지휘 통제하고 있는 셈이다. ‘기계화가 생산력을 높인다는 것을 모르지 않지만 값싼 노동력에 대한 무한정 착취가 가능한 곳에서는 기계화의 유인이 크지 않다.’ 따라서 법적 규제가 없다면 노동력에 대한 착취는 더욱 심해질 수밖에 없게 된다. 공장법규제가 시작될 당시에도 자본가들은 법을 지키기 어렵다고 했다. 법이 규정한 노동시간으로는 필요한 생산량을 얻을 수 없고, 제품의 특성 혹은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사업을 할 수 없다고 극렬하게 저항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렇게 불가능하다고 했던 일들이 공장법에 대한 규제가 시작되자 그 순간부터 가능해지고, 오히려 자본의 집적이 가속화되었다고 마르크스는 지적한다. 어디서 많이 본 모습들이다. 오늘날 법을 통한 사회적 규제에 대해 자본가들 혹은 그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집단의 목소리와 전혀 다르지 않다. 자본 안에는 가치증식의 내적충동을 제어할 아무런 장치가 없기 때문에 외부규제가 꼭 필요하다는 말이 이해가는 대목이기도 하다.

 

기계제시대에 제정된 공장법은 사회가 생산과정의 자연발생적 형태에 가한 최초의 의식적이고 계획적인 반작용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리고 마르크스가 공장법에서 읽어낸 것이 무엇인지를 알려준다. 예를 들어 보건조항에서 잔혹한 자본의 정신을 읽었다면, 교육조항에서는 아동 노동자에 대한 최소한의 조치인 의무교육에서 미래를 향한 단서를 발견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를 두고 자본의 꿈이 곧 기계의 꿈은 아니며 기계를 앞세워 자본가가 하려던 혁명을 아주 다른 방법, 즉 기계와 노동자의 연대를 통해 뒤집을 수 있다고 역설한다.

 

절대적 잉여가치와 상대적 잉여가치에 대해 살펴본 저자는 다음 권에서 잉여가치생산의 의미와 임금에 대해서 살펴볼 것이다. 국내에 번역 소개된 마르크스 [자본] 1-1권(강신준 역/도서출판 길)이 끝나고, [자본] 1-2권이 시작된다. 그런데 [자본] 1-2권은 절판이 아니라 품절이다. 그것도 거의 1년이 다 되어간다. 언제 다시 출간되려는지 아쉽기만 하다.

k*****1 2022.03.04. 신고 공감 12 댓글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