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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5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손보미 외6명 문학사상/20221.19 sanbaram
“수상 후보작 중에는 역시 코로나19로 인한 애환, 전세 만기와 대출금을 둘러싼 경제적 곤란과 부동산 문제, 임대아파트를 둘러싼 갈등으로 상징되는 계층간의 대립과 양극화, 성소수자, 인공지능, 혐오와 우울, 사회적 분노 등이 이 시대의 민감한 환부와 첨예한 어젠다를 다룬 작품이 많았다. 올해 이상문학상 심사 과정은 소설이 한 시대의 풍향계이자 문학적 성감대라는 사실을 새삼 절감하는 시간이기도 했다.(p.365)”라고 문학 평론가 권성우는 지적한다. 그리고 그들이 뽑은 대상 작품이 손보미의 <불장난>이었으며 작가의 자선 대표작이 <임시교사>다. 그리고 우수작 중에 강화길의 <복도>, 백수련의 <아주 환한 날들>을 간단히 소개한다.
<불장난> 주인공인 나의 부모는 초등학교 때 이혼을 했다. 아버지와 생활하던 나는 지방 대학의 교수로 가 있던 어머니가 주말 부부로 생활 하게 될 때 아빠는 같은 학교 선생님과 정분이 났다. 그것을 알게 되고 부부는 이혼을 했으며, 그 후에도 나는 아버지와 함께 살면서 방학 때는 어머니와 함께하는 생활을 했다. 그러나 어머니가 외국으로 교환교수로 가는 바람에 방학 때도 어머니에게 갈 수 없게 되었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된 나는 친구들과도 사이가 틀어졌다. 내 호기심을 채우기 위해 친구들의 제의를 거절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혼자가 된 나는 교사를 그만두고 함께 살게 된 그녀(새어머니)와 마찰을 빚게 된다. 우연히 쇼파 밑에서 발견한 아빠의 라이터를 가지고 처음에는 작은 불씨를 만드는 것으로 시작해, 나중엔 아파트 옥상에 올라가 소각장을 만들고 종이란 종이는 모두 태우는 불장난에 몰두하게 된다. 급기야는 참고서까지 태우게 되지만 그것을 경비 아저씨에게 들켜 집으로 도망친다. 이런 과정을 겪고 중학생이 된 나는 국어시간에 내준 불조심에 관한 글쓰기 숙제에서 고민 끝에 초등학교 때의 ‘불장난’ 이야기를 글로 쓰게 되고 그 글이 소방서 글짓기 대회에서 은상을 받게 되는데…
사춘기에 접어들려는 시기에 부모의 이혼이라는 아픔을 겪으면서도 현실에 적응하는 소녀의 마음을 제대로 표현하고 있는 작품이 <불장난>이다. 작가의 유년시절 경험을 토대로 썼다는 글에서 자서전적인 이야기를 통해 그 또래의 소녀 감성을 제대로 표현하는 것이 이 소설의 내용이다.
<임시 교사> 임시교사 경력을 가진 P부인이 프랑스 유학에서 돌아와 이름 있는 회사의 변호사와 결혼한 부부의 아이의 보모가 되어 있었던 이야기를 엮어낸 작품이 <임시교사>이다. 어린 아이를 유치원에서 데리고 와서 부모가 집에 오는 시간까지 봐주는 역할이 보모인 P부인의 역할이었다. 첫날 아이 엄마는 집에 있는 시설이나 물건들을 내 집인 것처럼 편안하게 사용하라고 했지만 보모는 꼭 필요한 동선만 이동하였고, 집안의 물건을 만지지 않았다. 그러다 아이의 엄마가 미술관의 큐레이터로 동유럽 작가들의 작품 전시회로 인해 바쁘게 되고, 아빠는 회사의 일로 바쁘게 되고 퇴근 시간이 늦게 되면서 저녁을 해서 아이와 같이 먹거나 잠을 재우게 되면서 집안에 있는 물건을 사용하게 되고 책을 보게 되었다. 그러는 와중에 아이의 할머니가 치매 때문에 이들과 함께 살게 되고 더욱 많은 시간을 보모는 함께 하게 되었다. 심지어는 보모 없는 주말에는 아이들의 부모는 너무 힘들어 보모의 도움을 받게 되면서 찻잔을 꺼내 차를 마시는 여유까지 갖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프랑스에서 어렵게 구한 찻잔이 보모가 퇴근한 후 개수대에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고, 치매에 걸린 할머니는 요양원에 보내게 되면서 아이를 종일반으로 돌리고 보모는 일을 그만두게 되는데…
동생을 위해 결혼을 포기한 P는 자기 생활에 만족하며, 아이를 돌보면서도 아이를 위해 여러 가지를 공부할 정도로 사랑하게 되지만 결국 남남이라는, 고용주와 고용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는 이야기다. 아이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고마움을 표현하기는 했지만 표면적인 일일뿐 깊은 교감을 갖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통해 현대인들의 생활상 한 부분을 보여주는 소설이다. 결국 정규 교사의 빈자리를 채우는 임시교사를 하던 P 부인은 아이의 엄마역할을 대신하는 보모 역시 임시 교사 같은 역할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뿐 아니라 결혼을 포기하면서까지 학비를 대준 동생과도 연락을 하지 않은 세월에 꽤 오랜 시간이 되면서 결국 ‘나의 인생’이란 무엇인가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는 소설이다.
작가 손보미는 2009년 <21세기문학>신인상을 수상하며 등단했고, 2011년<동아일보>신춘문예에 당선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그들에게 린디합을>, <우아한 밤과 고양이들>, 장편소설 <디어 랄프 로렌>, <작은 동네> 등이 있으며 젊은작가상대상, 한국일보문학상, 대산문학상등을 받았다.
<복도> 결혼 3개월까지 9평짜리 원룸에서 살며 4번째 신청해 당첨된 신혼부부용 임대주택이 파빌아파트 1단지 100동 101호였다. 처음 집을 찾아가는 날 한 참을 헤맸다. 구글앱에도 네이버 앱에도 우리 아파트는 나오지 않았다. 간신히 산쪽을 쳐다보다 찾았지만 입구는 단지 밖으로 복도처럼 난 길을 통해 가야 하는 구조였다. 1층이라 복도 같은 길 건너 판자촌에서도 집안이 훤하게 보였다. 그래서 블라인드와 두터운 커튼으로 막았다. 쓰레기분리수거장으로 가기 위해서는 복도같은 바깥 길을 통해 단지 안으로 들어가야 했다. 그래서 다른 주민들에게 오해를 받게 된다. 집에서 택배나 배달을 시켰을 때 기사들은 집을 찾지 못하거나 2단지 100동 101호에 배달하는 사고가 잦았다. 그리고 복도 같은 길에서 만난 여자 애를 택배를 찾으러 갔다가 만났는데, 집으로 가다가 우리 집에서 이상한 사람들이 어른거리는 것을 보고 쓰레기 분리수거장의 박스더미 속에 숨게 되는데…
서민들을 위한 임대주택 사업이 얼마나 차별받고 있는지 하는 것을 보여주는 소설이다. 작은 평수가 문제가 아니라 여러 가지 편의 시설을 이용하기 불편하게 만들거나 심지어 인터넷 지도에 단지가 표시되지 않는 일까지 일어나는 것은 과장된 것으로 치부하기에는 너무 불공평한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돈이 되지 않고 강제로 만들어야 하는 임대주택이 그곳에 사는 주민을 차별하고, 또 차별받도록 만들어 지고 있는 현실을 고발하는 소설이다.
작가 강화길은 2012년 <경향신문>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방’이 당선 되어 등단했다. 소설집 <괜찮은 사람>, <화이트 호스>, 장편소설 <다른 사람>, <대불호텔의 유형> 등이 있다. 한겨레문학상, 구상문학상, 젊은 작가상 등 여러 상을 받았다.
<아주 환한 날들> 자식들이 모두 출가한 후 평생하던 장사를 접고 혼자 살게 된 그녀는 정해진 계획표에 따라 반복된 삶을 살고 있었다. 그런데 수요일 오후에 다니는 평생교육원의 글쓰기 강좌에 다녔지만 글을 쓰지 못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사위가 찾아왔다. 아이들이 졸라서 산 앵무새가 아이들을 쪼고 잘 따르지 않아서 아이들이 준비가 될 때까지 한 달 만 앵무새를 맡아 달라는 사위의 부탁으로 앵무새를 키우기 시작했다. 딸은 청소년기 어느 때부터 존댓말을 쓰기 시작했고, 결혼해서도 부탁할 일이 생기면 사위를 시켜 말을 전했다. 사위의 부탁을 거절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그렇게 앵무새를 돌보기 시작했다. 기르는 법을 몰라 동물병원을 찾고, 인터넷을 뒤져서 알아낸 방법으로 먹이를 주고 놀아주고 돌보다 보니 정이 들었다. 앵무새와 함께 천변 산책을 하면서 자기의 어렸을 때의 기억과, 딸이 어렸을 때의 기억을 떠올려 보곤 했다. 앵무새가 돌아간 후 계절이 바뀐 어느 날 집안을 정리하다 발견한 글쓰기 노트에 잠이 안 오는 밤에 ‘앵무새’에 관한 글을 쓰기 시작한다.
나이든 사람의 외로운 생활과 그들 가족과의 관계를 통해 현대의 노인들이 처한 현실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소설이다. 작은 것에도 정을 붙여야 하는 일상과 젊은 자식들의 자기중심적인 생각으로 서운하지만 표현하지 못하고 사는 노인들의 문제다.
작가 백수련은 2011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거짓말 연습’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소설집 <폴링 인 폴>, <참담한 빛>, <여름의 빌라> 등을 펴냈으며, 젊은작가상, 현대문학상, 한국일보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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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이상의 이름이 가지는 영향력에 이끌려 제45회 이상문학상수상집을 구매했다. 손보미 작가의 수상작 불장난을 읽은 뒤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됐다. 언젠가부터 비슷한 주제와 형식의 작품들이 한국 문단에 주류가 된 것 같다. 한국 소설가들이 대부분 비슷한 나이대의 여성이니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많이 진부하다. 세상은 여성을 억압하고 있어, 세상은 여성에게 희생을 강요해, 여성은 피해를 보고 있어, 여성은 차별을 당하고 있어, 여성은 우월해… 이런 식의 소설을 읽고 또 읽고 계속해서 읽고 있다. 그러나 오늘로써 깨달았다. 세상에 대한 애정이 없는 사람은 작가의 자질이 약하다는 것이다. 세상에 대한 애정… 삶에 대한 애정… 인간에 대한 애정… 자신에 대한 애정… 타인에 대한 애정… 추억에 대한 애정… 등등 내가 좋아하며 인정하는 작가들은 모두 애정 넘치는 사람이었다. 이상문학상에 이름을 팔고 있는 작가 이상도 그랬다. 비록 기생집을 전전하며 살았으나 아스피린 아달린 아스피린 아달린… 이 주문 같은 문장에도 세상에 대한, 삶에 대한 애정이 있었다. 내가 개인적으로 한국 최고의 소설가라고 생각하는 박완서 작가님도 그랬다. 애정과 인정이 넘치는 사람이라서 전쟁 시대에 관한 이야기나 녹록하지 않았던 삶에 관한 이야기나 남편과 자녀들에 관한 이야기나 또는 가슴 아픈 어머니 세대의 이야기를 독자에게 들려주면서도 공감과 이해를 얻었다. 그러나 세월이 조금 더 흘러 모든 게 불편하고 짜증스러운 사람들이 늘어나다 보면 박완서 작가님이 ‘그 남자네 집’에서 시각장애인이 된 첫사랑을 향해 외쳤던 “어리광 좀 작작 부려 이 새끼야. 안 보이면 안 보이는 척하라고. 장난치지 말고 생긴 대로 살란 말야. 너 도대체 몇 살이냐. 장님이 눈을 떠도 적응하려면 시간이 걸리고 노력도 해야 할걸. 새 세상이 열린 건 눈뜬장님이나 장님 된 너나 다를 게 뭐냐? 일생에 두 세상 살기가 쉬운 줄 알아. 그것도 복이려니 해. 이 한심한 새끼야.” 이 문장도 장애인 혐오에 불과할까, 두려운 마음이 든다. 사상을 검증하듯 시비를 걸면 내가 사랑하는 박완서 작가님도 혐오의 굴레를 벗지 못할 것이다. 이것처럼 애정 없는 작가들이 써내는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식사를 차려주는 게 불편하고, 어머니가 청소하는 모습이 불편하고, 어머니가 아버지와 결혼을 한 게 불쌍하고, 더불어 여자로 태어나 불행하다는 소설을 언제까지 읽어야 할까 싶다. 내 소양이 부족해 이렇게 느끼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한국 문학은 언제부터인가 이런 소설이 득세하고 줄곧 양산되고 있다. 그래서 소설을 읽는 일이 즐겁지 않다. 신경숙 작가의 “외딴방”이라는 작품에서 큰오빠에게 신세를 진다고 느끼는 작가 자신은 사실 소녀공으로 하루하루 치열하고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스스로 자신의 밥벌이는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아버지 탓하지 않는다. 큰오빠 탓하지 않는다. 공장에서 소녀공을 강간하여 임신시키고도 책임지지 않는 유부남 범죄자를 직접 비난하고 파업을 하며 알몸으로 사이다병을 깨 손목을 그은 소녀공을 직접 위로하고 그 사회를 비난하고 비판한다. 더불어 큰오빠에 대한 애정이 있기에 큰오빠가 처한 현실의 문제를 바라보며 “아! 나는 왜 저 남자의 누나가 아닌지, 나를 왜 이리도 어린지,” 한탄한다. 정말 힘들었던 세대를 살아온 여성 작가들은 우리 엄마는 불쌍해, 여자라서 불쌍해, 이런 말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 사용하더라도 애정을 담기에 전혀 다른 문장이 되는 것이다. 세상이 각박하게 변했다. 애정이 사라진 공간에 혐오가 자리 잡았고, 이제는 다른 성별을 가졌다는 사실만으로도 혐오한다. 내 아비라도 어미가 차려준 밥을 먹는 모습이 혐오스럽다. 손이 없어? 발이 없어? 왜 청소는 엄마 몫이야? 이해한다. 그러나 언제까지 이런 소설이 상을 받을까, 싶다. 좀 더 즐겁고 재밌는 소설을 읽고 싶다. 자녀를 훈육하기 위해 든 회초리마저 폭력으로 판결되는 세상이다. 폭력과 훈육의 구분을 할 수 없는 세대라서 일방적으로 폭력으로 규정해야 사회가 유지된다. 애정이 없다. 애정이 없어. 자기 자신에 대한 애정도 없다. 이기심도 애정일까? 내가 산 소설마다 우연히 이런 내용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번에도 이런 소설을 읽어서 마음이 괴로웠다. 박경리 박완서가 있는데, 박보미를 읽어야 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차라리 그 시간에 이상의 소설을 읽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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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이상문학상 수상 작품집이 출간되면 습관적으로 손이 나간다. 소설을 그리 좋아하지도, 단편소설들을 읽고서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고, 그리고 구매는 했지만 읽기를 미룰게 분명하다고 투덜거리면서도 습관처럼 장바구니에 담고 구매버튼을 누른다. 올해도 그랬다. 수상 작가를 살펴보아도 그나마 이름이나마 들어본 작가는 강화길 작가가 유일하다. 그럼에도 혹 이 작품집으로 인해 좋아하는 작가가 생길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가지고 해마다 하던 일을 되풀이했다.
책에는 올해 대상 수상작인 손보미의 [불장난], 그녀의 자선대표작인 [임시교사]외 우수작 6편이 수록되어 있다. 총 8편의 작품을 읽으면서 편하게 읽은 작품은 한두 편에 불과했다. 편하게 읽었다 함은 작가의 의도와 상관없이 소설의 흐름이나 내용을 이해하는데 무리가 없음을 뜻한다. 읽으면서 무슨 말을 하는 건지, 그래서 읽고 난 후에도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했는지를 곰곰이 생각해보지 않아도 읽는 자체로 이해가 되면 편하게 읽은 것이다.
대상수상작인 [불장난]은 작가가 유년시절 했던 불장난을 모티브삼아 화자가 어린 시절 아파트 옥상에서 불장난을 하던 전후의 일을 통해 자신의 감정을 이야기하고 있다. 어른들은 자신들의 세상에 아이가 접근하지 못하도록 가리고 커튼을 치지만 그럴수록 아이는 오히려 더 큰 흥미를 느낀다. 그래서 사소한 소문에도 자신만의 상상을 더해 재혼한 아버지와 그녀의 관계에 대입하곤 한다.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하고 불온한 상상을 하는 자신에 대한 수치심과 굴욕감은 때마침 식탁 밑에서 발견한 아버지의 라이터를 가지고 불장난을 시작하게 만든다. 더운 여름날 아파트 옥상에서 노트를 찢어 불태우고 그 불길을 보는 순간 자신을 감싸고 있는 온갖 부정적인 감정에서 해방됨을 느낀다. 틈만 나면 옥상에서 불장난을 했던 화자는 이후 중학생이 되었을 때 불조심관련 글쓰기 대회에서 이 이야기를 썼다가 은상을 받게 된다. 아이들 앞에서 글을 읽어보라는 선생님 말에 자신이 쓴 글이 사실과 다르다는 것을 느끼고 당황한다. 선생님의 채근에 실제 쓴 글과 다른 이야기를 읊으면서 화자는 세상의 비밀 하나를 알았다고 느끼며 성의 없는 아이들의 박수소리를 들으며 의기양양하게 자리로 돌아와 앉는다. 사춘기시절 부모의 갈등으로 인한 이혼, 아버지와 재혼한 그녀와의 동거, 친구들과의 갈등은 수치심과 굴욕감 등 부정적인 감정을 수반한다. 화자가 노트를 불태우며 불장난을 하는 것은 이런 감정들을 소각하는 것이라고 작가는 말하는 것 같다. 더하여 글을 쓴다는 것은 뒤섞여 있는 사실과 허구를 조화시켜 자신의 감정과 욕망에 충실한 것이라는 메시지를 독자들에게 주는 것은 아닌지.
우수작 6편은 재개발지역 새로 지은 아파트에 함께 들어선 임대아파트에 입주한 부부의 일상을 그린 강화길의 [복도], 남편이 죽은 후 홀로 지내는 노인과 앵무새와의 관계를 통해 노년의 삶을 이야기하는 백수린의 [아주 환한 날들], 힙합음악을 통해 과거를 추억하는 서이제의 [벽과 선을 넘는 플로우], 전세를 살다 새로 집을 사서 이사하지만 하자투성이인 집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 누수는 집만이 아닌 자신의 몸에서도 일어나는 것임을 생각하게 하는 염승숙의 [믿음의 도약], 방화사건을 일으키고 분신하여 혼수상태에 빠진 환자와 남자친구의 죽음을 두고 상념에 빠진 외과의사의 이야기를 프랑스영화 <잠수종과 나비>에 대비시킨 이장욱의 [잠수종과 독], 그리고 시어머니의 장례식장에서 벌어지는 인간들의 욕망을 그린 최은미의 [고별]이다.
이들 단편소설들을 읽으면서 소설을 읽는 것도 내가 알지 못하는 것이라면 이해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음을 실감한다. 흔히 소설은 우리가 해보지 못한 것을 간접경험이라는 형태를 통해 삶을 풍부하게 만들어준다고 들었지만 그것도 내가 이해 가능한 범위여야 함을 느낀다. 힙합에 대해, 영화 <잠수종과 나비>에 대해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나의 이해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과연 내년에도 나는 이상문학상 수상 작품집이라는 제목만 보고 구매버튼을 누르게 될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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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상의 기준을 이 책 마지막 부분에 명명백백하게 수십페이지를 걸쳐 밝혀 두었으나 약 30페이지 분량의 글을 다 읽고 난감했다. 2단지의 그 아이를 죽인거야?? 왜? 갑자기 그 여자가 이렇게 된 이유가 뭐지? 단지를 잘못 착각한 배달을 받으러 갔다가 흑 토마토를 든 그 아이에 정신줄을 놓은 이유가 뭐지? 너무 급작 스럽게 전개가 되어 다른 사람의 해설도 읽어 보고 다시 한번 읽어보았지만 당혹스럽기는 마찬가지다. 당혹스러움이 평가의 척도라면 단연 1등이 아닌가 싶다. 문학상의 깊이를 내가 이해하지 못한걸수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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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보미 「불장난」
손보미, 강화길, 백수린, 서이제, 염승숙, 이장욱, 최은미 / 불장난 : 2021 제45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 문학사상 / 379쪽 / 2022 (20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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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함 속에서 특별한 무언가를 찾는 것 보다, 평범함 속에서 특별함을 찾는 것이 매우 흥미롭다고 생각합니다. 특별함이란 하나의 개성이라 할 수 있는데 개성 중에 하나를 찾는 것은 취향을 타지만 무난함 속에서 특별함을 찾는 것은 말 그대로 눈에 띄는 하나는 찾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특별함이란 어디에 쓰느냐에 따라 다른 느낌을 줄 수 있는데 이번에 읽은 불장난 2022 제45회 이상문학상 작품집의 경우가 후자의 특별함 같은 느낌의 한 권이었습니다. 우리 문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느낌의 소설이었지만 읽다 보면 매우 묘한 감정이 느껴지고 다 읽고 나면 신기하게도 기억에 남는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역시 전형적인 구성을 가지고 있으나 새로움이 추가된 작품이어서 이상문학상이라는 커다란 영광을 가져간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전체적으로 후보작들도 마음에 들었고 우리의 일상과 잘 맞물리는 이야기들이라서 재미있게 읽은 한 권이 불장난 2022 제45회 이상문학상 작품집인 것 같습니다. 다소 딱딱하다고 느낄 수도 있으나 이렇게 수준 있는 작품이라는 느낌이 고급스러움을 준다는 점에서 마음에 들었고 이런 느낌의 작가들이 우리 문단에 많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졌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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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하고 다채롭다. 서로 다른 작가(7명)는 자신만의 관점으로 바라본 다양한 이야기 거리를, 자신만의 문체와 개성을 담아 지면 곳곳에 풀어놓는다(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될 때마다 새로운 스타일과 소재가 떠오른다). 덕분에 서로 다른 작가의 서로 다른 이야기는, 각자의 자리에서 서로 다른 매력을 발산한다. 다양하고 다채로울 수밖에 없다. 나아가 신선하기까지 하다.
매년 수상작을 가려 책에 실어내는 만큼 그 해를 관통하는 소재, 주제, 화제 등의 등장이 빈번하다(일부 소설에 한정). 그 덕에 그간 일상에서 스쳐 흘렸던 이야기를 다시금 곱씹고 주워 담아 본다. 주변에서 자주 화두에 올랐던 이야기를 새로운 방향과 각도에서 관찰해본다. 소설을 거울삼아 현실을 들여다본다. 매해 새롭게 쓰이고 선정되는 이야기가 선사하는 또 한 가지 매력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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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춘기라는 시기는 사실 어른들이 회상하기에 풋풋한 그런느낌이 아니다 낯부끄럽고 생각보다 이르며 그시기를 어느떄 회상하더라고 창피함이 동반되는데 그런 시기를 지나고 있는 아이들을 내가 성인이 되어서 봐도 가끔은 내가 얼굴이 빨개진다.. 이건 그들의 풋풋함보다도 본인의 과거를 직면하게 되어서 그러지않을까..생각을 하는데 나만 그럴수도있고,, 아는게 적고 경험이 적기때문에 과장된 상상에 의존할수밖에 없는 모습들 정확한의미를 모른채 하는말들 어쨌든 나는 그런점 떄문에 사춘기주제를 꺼리기도하면서 좋아한다.. 불장난도 그래서 너무 잘 읽었고,,좋았지만 혼자 아주 분주하게 난리를 치면서 읽었다.. ㅎㅎ 매년좋은작품을 접할수있어서 좋ㅇㅏ하는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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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회 이상문학상 우수작, 백수린, 아주 환한 날들
내 인생에서 ‘아주 환한 날’은 얼마나 될까? 동영상을 보다가 정지를 시키고, 캡처를 하듯 내 인생의 환한 날을 예쁘게 잘라 노트에 붙이고, 소감을 정감 있게 쓰고 싶지만 과거의 어느 한 장면이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인과의 연을 따라 지금까지 이어오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는 터라, 어디서 어디까지 잘라낼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
아이들이 우리 곁으로 왔을 때가 환했었지. 내 눈에 너무나 예뻐 머리숱이 많으라고 빡빡머리를 한 아이 사진을 들고 주위 사람들에게 얼마나 자랑을 했던가. 고집이 센 나를 닮아 엄마를 이겨 먹을 듯 달려들던 녀석을 강압적으로 억눌렀던 기억에 환한 날이 조금씩 어두워진다. 매를 아끼면 아이를 망친다는 영국 어느 구석의 속담에 속아 아이를 억누르고 때려 아이들의 마음에 준 상처는 지금은 아물었을까? 나를 닮아 뒤끝이 있는 놈들이라 아마 지금도 나를 용서하지 않았으리라. 아이들을 핑계로 나의 환한 날이라고 하면 거짓말이 될 것 같다.
인생의 동반자라고 일생을 같이 하자고 했던 예쁜 아내도 나에게 상처를 받고는 치유 중이다. 자기가 한 짓은 모르고 내가 한 짓만 비난한다는 나의 변명은 어둡기만 하다.
아이가 데려온 강아지와 뒷산을 하루가 멀다 하고 다니던 그 시절은 어때? 산속에 들어가면 목줄을 풀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산을 오르내리던 밤이면 서로가 의지하며 무섬증을 달래던 기억이 새롭다. 이제는 늙어 귀도 들리지 않는 너를 보면서, 헤어질 날을 준비해야 한다는 것, 이제는 산을 데리고 나가면 무리라는 말에 종내 인정을 하지 못하면서, 그럼 뭘 하지? 네 생명이 다하면 어떻게 해줘야 할까? 너를 묻을 곳을 생각하다 보면 너와의 인연의 끝이 밟히고, 아직도 여전히 맑은 네 눈망울에 내 마음이 서럽다.
젊음이 가고 노년이 다가오는 인생에서 과연 어떤 것이 나를 환하게 웃게 만들 수 있을까? 둘째 아이가 데려온 앵무새와 친해졌다고 생각했다가, 무정란을 낳고 알을 품고 있는 둥지에 가까이 가면, 눈동자를 카메라 셔트처럼 닫고는 머리를 늘어뜨려 나를 공격하려는 모습에서 내가 네게 해 준 것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둘째에게는 먹은 것조차 내어주는 네 모습을 언감생심 내가 구하랴 싶다.
그래, 내가 해준 것들이 별로 없는데, 그 인과의 연에서 벗어나, 내가 심지도 않은 것을 원하는 것 자체가 문법에 맞지 않는 비문이다. 그래 이제부터라도 씨를 심어야 하겠다. 그 씨가 싹이 나고, 열매를 맺으면 ‘아주 환한 날들’이 내게도 올지도 모르겠다. 그때까지 살고 싶다고 욕심을 부려볼까? 욕심만 빼고 주어진 하루하루를 그냥 살아내자. 인연의 감옥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훨훨 날아가는 그날 하루만 아주아주 많이 환한 날이었으면… 마음이 간절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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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회 이상문학상 우수작 서이제, 벽과 선을 넘는 플로우
내가 힙합을 어찌 알겠는가? 기꺼해야 리듬이라고 해봤자 44조의 시조, 판소리 그리고 불경을 따라 했던 것이 다였다. 그런데 들을 수 없었던 벽을 때리는 비트 소리를 상상하고, 일일이 사전을 찾아야만 했던 가수들의 이름, 그 가수조차 여자인지 남자인지, 혼자인지, 떼창을 하는 그룹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어디선가 들었던 리듬을 흉내 내며 글을 속으로 소리 내어 노래하니 어~~ 이게 되네~~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통쾌함 비슷한 즐거움이 있었다. 이 글을 읽으면서 떠오른 것이 처음에는 이것이었다.
‘마하 반야 바라밀다 심경 관자재보살 행심반야바라밀다시 조견 오온개공 도 일체고액 사리자 색불이공 공불이색 색즉시공 공즉시색 수상행식 역부여시 사리자 시제법공상 불생불명 불구부정 부증불감 시고 공중무색 무수상행식 무안이비설신의 무색성향미촉법 무안계 내지 무의식계 무무명 역무무명진 내지 무노사 역무노사진 무고집멸도 무지역무득 이무소득고 보리살타 의반야바라밀다고 심무가애 무가애고 무유공포 원리 전도몽상 구경열반 삼세제불 의반야바라밀다고 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 고지 반야바라밀다 시대신주 시대명주 시무상주 시대등등주 능제일체고 진실불허 고설반야바라밀다주 즉설주왈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사바하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사바하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사바하.’(이 경의 뜻은 인터넷 검색을 하시기 바란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 글을 읽으시면서 리듬을 타시는 것임을 잊지 마시길 바란다)
그다음 떠오른 것은 춘향전이다. 인터넷을 검색했다.
‘눈결에 얼핏 보니, 삼삼이를 덮고 있는 것이 맹랑하고 야릇하다. (중략) (농염한 성적묘사는 무시하고 역시 리듬을 타고 읽어보시기 바란다. 불경의 리듬 뒤에 젊은 남녀의 춤이라니, 불경스럽긴 하다)
이제 서이제의 글을 옮기면서 그 흥을 이어보자. 힙합처럼…
‘말을 뱉는다고 모두 말이 되는 건 아니란 말이야, 하고 말해 주고 싶었지만, 나는 그저 그렇게 생각할 뿐 그렇게 말하지 않았고 그렇게 말하지 않은 건 그런 말을 할 사람이 앞에 없었기 때문이다. 하고 싶은 말 너무나도 많지만, 할 말은 일단 두고. 쿵 쾅쾅. 트랩에 취한, 옆집 놈부터 처리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다시 펜을 잡는데. 그 순간 바로, 첫 문장이 “머리 위에 띵 하고 떠올랐지 전구같이.” 쿵 쾅쾅’ (219쪽) 이 부분만 리듬이 있다는 말은 아니다. 리듬을 타고 읽고 싶은 분은 서 작가의 글을 다 읽어보시면 되겠다.
나는 힙합의 리듬이나 랩의 가사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작가의 소설이 리듬을 타고 입에서 절로 흥얼거리며 읽는 즐거움은 처음 느꼈고 즐거웠다. 그렇지만 이런 즐거움을 얻으려 나의 초라한 아파트 앞집이나 위나 아래나 밤낮없이 '쿵 쾅쾅' 대는 친구를 갖고 싶지는 않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