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솔직히 얘기지만/ 이곳은 우리들이 천년 이천년/ 울타리 없이도 콧노래 부르며 잘 살아온/ 아름다운 강산이다." 그러나 지금 그러한가 돌아보면 수십년 전 한 시인이 불렀던 노래앞에 부끄러움이 앞 설 뿐이다. 김수영과 더불어 1960년대 한국시의 사실주의 전통을 확립하였던 신동엽의 시들은 말 그대로 부끄러움을 느끼게 하는 것들이다. 김수영이 산문정신을 통해 현실을 직시하고 사회비판과 자기비판을 거행했다면 신동엽은 전통적인 정서를 바탕으로 수많은 사람들의 공감대를 형성해 마치 거부할 수 없는 도덕률을 제시해주는 시인이 아니었던가 싶다. "누가 하늘을 보았다가 하는가"라고 묻고, "네가 본 건", "먹구름", "쇠항아리"라고 한다. 또한 "껍데기는 가라"고 외치면서 그 껍데기들은 "쇠붙이"로 표현된다. 먹구름을 제외한 나머지 단어는 쇠와 관련이 있는데, 이때 쇠는 단단한 기성체제, 견고한 폭력체제를 의미하기도 하겠지만 전통적이고 농본적인 우리들의 문화와 상반되는 이미지를 지닌 것으로도 여겨진다. 김수영이 신동엽을 모더니즘의 세례를 가장 적게 받은 사람이라고 했다는 것은 바로 이런 점을 염두에 두었던 말일 것이다. 그러나 신동엽이 서정주와 다른 점은, 서정주가 전통적인 이미지를 조작해 말을 능수능란하게 꾸몄던 것에 비해, 신동엽의 무대는 농촌이나 고향이 아니라, 지금 사람들이 살고 있는 삶의 깊숙한 현장이다. 따라서 신동엽이 지닌 전통적이고 농본적인 이미지들이 그러한 것과 어울려 새로운 느낌을 주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김수영이 서정주를 그토록 혐오했던 데 반해 신동엽에 대해 호의적일 수 있었던 것은, 신동엽이 지닌 그러한 감수성 때문일 것이다. 물론 신동엽의 시에서도 복고적인 냄새가 풍겨나오지 않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의 시가 일관되게 추구하는 아사달, 아사녀의 이미지는 시의 구성을 강화해 주는데 일조를 하는 것으로 보인다. 말하자면, 그가 천착하는 이미지들이 다양하게 사회적 의미를 획득함으로써 단순히 복고적이거나 전통적인 이미지로 함몰되어 있지는 않다는 것이다. 김수영도 그러하지만 신동엽 역시 사일구와 떼어서 생각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강산을 덮어 화창한 진달래는 피어나는데/ 그날이 오기까지는, 사월은 갈아엎는 달./ 그날이 오기까지는, 사월은 일어서는 달"이라고 말하는 신동엽의 목소리는 무언가를 굳세게 다짐하는 사람의 목소리이다. 그것이 곧 좌절된 미완의 혁명 사일구의 정신을 이어가려는 시인의 다짐임에는 두말 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신동엽의 어조가 항상 격정적이거나 열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미완의 혁명에 대한 애달픔도 곳곳에서 드러난다. "다시는 못 만날지라도 먼 훗날/ 무덤 속 누워 추억하자./ 호젓한 산골길서 마주친/ 그날, 우리 왜/ 인사도 없이/ 지나쳤던가, 하고./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먼 훗날 무덤속에 누워서 그날 왜 인사도 할 수 없을만큼 서로에 대해 여유롭지 못했던가를 추억하자는 것은 곧 자신이 바라는 대상을 앞에 두고도 스쳐지나가야 하는 현실을 일컫는 것이다. 그건 사일구라고도 할 수 있는데 그것에 대한 안타까움이 이렇게 서정적인 목소리를 통해서도 표출된다. 전체적으로 신동엽 시에 대한 느낌은, 미칠듯한 상태, 무언가 가슴속에서 터져나오기 일보직전의 상태에서 시인을 손끝을 타고 흘러나온게 아닌가 하는 것이었다. "이대로 죽어버리고 싶은/ 훌륭한 순간이여"처럼 죽음이나 미치는 것에 대한 시인의 갈망은 죽음과 광기의 상태를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혁명으로 향하고 있기 때문에 그 절박한 상태가 더욱 순결하고 정갈한 형태로 드러나는 게 아닌가싶다. 혁명도 미치도록 하면 아름다울 수 있구나 싶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