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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책시렁 46 《뱀사골에서 쓴 편지》 고정희 미래사 1991.11.15. 나는 꽃이다, 하고 입술을 달싹이면 참말 나 스스로 꽃이 된 듯합니다. 나는 꽃이다, 이 말이 수줍어 좀처럼 터뜨리지 못하곤 하는데, 살며시 터뜨리고, 거듭 읊고, 자꾸자꾸 말하다 보면 어느새 노래처럼 가락을 입고 흥얼흥얼 즐거워요. 나는 바보이다, 하고 입술을 놀리면 참으로 나란 녀석은 바보가 된 듯합니다. 바보스러운 짓을 했으니 이렇게 말하지만, 정작 이렇게 말하면서도 스스로 아픕니다. 스스로 깎아내리거나 슬픈 말은 하지 말자고 여겨요. 《뱀사골에서 쓴 편지》를 읽으면, 노래님 스스로 꽃이 되다가 바보가 되는 가락이 넘실거립니다. 때로는 눈부신 꽃으로 피어나고, 때로는 슬픈 바보로 가라앉습니다. 때로는 수줍은 꽃이었다가, 때로는 슬기로운 바보이고 싶은 마음을 느껴요. 우리는 누구일까요? 우리 참모습은 무엇일까요? 우리는 어디에 설까요? 우리 참길이란 참삶이란 참사랑이란 어떤 그림일까요? 진눈깨비가 흩날리다가 함박눈이 퍼붓는 겨울에 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얼어붙을 수 있지만, 겨우내 꽁꽁 얼다가도 포근한 볕하고 바람을 맞이하면서 기지개를 켤 수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우리 길이요 삶이요 노래이면서 하루입니다. 두 팔을 펼쳐 바람을 안습니다. ㅅㄴㄹ 잔설이 분분한 겨울 아침에 / 출근버스에 기대앉아 / 그대 계신 쪽이거니 시선을 보내면 / 언제나 / 적막한 산천이 거기 놓여 있습니다 (묵상/90쪽)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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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정희 시인. 시인. 시인. 그녀의 시에는 더 큰 것들에 대한 염려와 배려가 있다. 그리고, 그 염려와 배려의 형식은 슬픔이다. 사적인 슬픔도 시가 되지만, 공적인 슬픔도 시가 된다면, 당연히 시가 된다면, 그 슬픔은 고정희 시인에게서 빛을 발한다. 사적인 슬픔은 이미 허수경 시인에게서 느꼈었다. 자잘하고 또 미시적인 것들을 클로즈업 하여, 슬픔으로 묶어내는 그 허무의 힘이 허수경 시인에게서 있다면, 고정희 시인은 큰 것들을 작게 감싸 앉는다. 큰 것들을 무리없이 작게 만든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 옆에 있는 문제임을 보여준다. 그것이 시인의 업보이며, 시인의 관심일 것이다. 나는 그 점 때문에 고정희 시인의 시를 즐겨 읽는다. 그녀의 시는 큰 것들을 과도하게 부풀리지 않는다. 그렇다고 피 끓는 열정으로 큰 것들 속으로 몸을 던지지도 않는다. 오히려 큰 것들을 내 몸 속으로 담아낸다. 그래서, 냉정한 슬픔으로 형상화한다.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는 평생 시인의 모습인가. 지리산에서 불의의 사고로 시인이 떠난 후, 그 슬픔이 차오른다. 큰 것들을 담아두었던 그 가슴이 터지고 터져, 세상으로 다시 돌아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