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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은 시기별로 다른 특성을 보이는데, 조선시대 중기부터 일제강점기인 1936년까지, 해방 이후부터 2000년대까지, 그리고 2010년대 이후로 나눌 수 있다. 이태원은 조선 중기부터 1936년까지 공동묘지로 사용되었다. 당시 한양(경성)에는 홍제내리, 수철리, 신사리, 미아리, 이태원 등에 공동묘지가 있었는데, 일제의 도시 개발과 군사기지 설치에 따라뚝섬 면목리와 망우리, 교문리에 공동 묘지를 조성하여 이장하게 되었다. 이태원 공동묘지는 당시 공동묘지 가운데 가장규모가 컸으며 조선 중기부터 형성된 터라 연고를 찾기 힘들었다. 이때 연고를 찾지 못한 분묘의 유골들은 망우리 묘역에있는 ’이태원묘지 무연고묘 합장비‘에 합장했다. 유관순 열사도 이태원 공동묘지에 묻혀 있었는데, 이곳에 합장되어 있을가능성이 높다. - 책 속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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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은 시기별로 다른 특성을 보이는데, 조선시대 중기부터 일제강점기인 1936년까지, 해방 이후부터 2000년대까지, 그리고 2010년대 이후로 나눌 수 있다. 이태원은 조선 중기부터 1936년까지 공동묘지로 사용되었다. 당시 한양(경성)에는 홍제내리, 수철리, 신사리, 미아리, 이태원 등에 공동묘지가 있었는데, 일제의 도시 개발과 군사기지 설치에 따라뚝섬 면목리와 망우리, 교문리에 공동 묘지를 조성하여 이장하게 되었다. 이태원 공동묘지는 당시 공동묘지 가운데 가장규모가 컸으며 조선 중기부터 형성된 터라 연고를 찾기 힘들었다. 이때 연고를 찾지 못한 분묘의 유골들은 망우리 묘역에있는 ’이태원묘지 무연고묘 합장비‘에 합장했다. 유관순 열사도 이태원 공동묘지에 묻혀 있었는데, 이곳에 합장되어 있을가능성이 높다. - 책 속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