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경험들은 여전히 단어에 굶주려 있다. 그건 어떤 이들의 경험은 같은 특징을 지닌 이들끼리의 수평적 모임을 벗어나는 순간, 제대로 전달되지 못한다는 뜻이고, 그런 까닭에 외부인들의 편견에 따라 제멋대로 해석된다는 뜻이기도하다.
사회에 필요한 책이라고 생각했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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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락하게 살고 싶다. 둔감하게 살고 싶다. 편협하게 살고 싶다. 하지만 외롭고 싶지 않다. 이런 나에게 저자는 ‘그렇게 살면 외로울거야’라고 말한다. 글자들이 자꾸 피부를 콕콕 찔러 대서 아팠다.
연대와 환대는 나에게 친숙한 단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안락과 둔감과 편협 속에 갇힌 (거짓)연대와 환대는 얼마나 무례한 것인지. 해석 가능 범주 안에 없는 것들을 자꾸 해석하려고 안간힘을 쓰다가 타인을 오해하게 되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
저자는 ‘무기력’이라는 단어를 여러 번 썼다. 아마도 그건 내 몸과 마음이 경험해보지 못한 이야기의 낯선 감각이 불러온 것은 아닐까. 그럴 때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맥락에서 이야기를 풀어내려고 애쓴다. 「타인을 듣는 시간」은 그 순간에 내 몸을 움직여서 상대방의 자리로 옮겨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낯선 감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충분히 시간을 들여서 under-stand 하는 것, 그것이 개인의 고유성을 해치지 않으면서 타인과의 교집합을 넓혀가는 방법이다. 그러고 보면 독서 또한 나와 타인들의 교집합을 넓혀가는 가장 멋진 방법이다.
138p ‘이해하다’라는 뜻을 지닌 understand의 어원은 ‘(어떤 것의) 한가운데에 서다, 사이에 서다’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이해의 대상 ‘안으로’ 들어가서 대상의 위치에 서 보는 것이 이해다. 그것은 위치의 이동을 전제하는 행위이고 기존의 위치, 즉 나의 맥락을 벗어날 것을 요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