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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울적하거나 뭔가 안정되지 못하고 불안한 느낌일 때는 고전을 읽는다. 매번 그런 것은 아니지만 가급적 그렇게 하는 편이다. 음악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사람도 클래식 음악을 무작정 듣고 있노라면 어느 순간 기분이 나아지고 삶에 대한 의욕이 솟구치는 것처럼 고전 문학도 크게 다르지 않은 듯하다. 다른 곳에 마음이 가 있는 상태에서 책을 잡았으니 한동안 집중을 할 수 없는 건 자명할 터, 도입부에서는 언제나 길을 잃고 헤매게 마련이다. 읽었던 부분을 다시 읽기도 하고, 낯선 인물의 출현에 당혹해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렇게 어수선한 시간을 보내고 나면 어느 순간 평화의 시간이 찾아오곤 한다. 세상의 소음이나 잡다한 고민으로부터 영원히 분리된 듯한 느낌. 그렇게 나는 투명 유리관 속으로 깊이 침잠하여 세상과 결별한다.
"순진한 눈으로 인생을 바라보는 이 소년은 두 사람이 알면서도 알고 싶어 하지 않는 일로부터 그들이 얼마나 벗어났는지 가리키는 나침반과도 같았다." (1권-p.420)
레프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카레니나>는 사실 소설에 등장하는 다양한 인간 군상의 일거수일투족을 통해 인생 자체의 덧없음과 의미를 깨닫게 한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서로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각기 달리 불행하다.'는 문장으로 시작되는 장대한 서사는 작가의 화려한 문체와 인생에 대한 깊은 통찰, 그리고 세밀한 묘사와 빠른 전개로 인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깊이 빠져들게 한다. 고민거리가 많지 않았던 학창 시절에는 쉬는 시간 틈틈이, 그리고 수업이 끝난 후 밤늦도록 읽어 단 이틀 만에 <안나 카레니나>를 완독했던 기억이 있다. 물론 톨스토이가 주도하는 사랑과 인생의 의미를 깨닫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나이이기는 했지만 말이다.
"키티는 이 모든 것을 말로 알게 된 게 아니었다. 슈탈 부인은 키티와 이야기를 나눌 때면 마치 자신의 젊은 시절을 회상하듯이, 사랑스러운 아이를 바라보는 눈빛으로 넋을 잃고 키티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모든 인간의 괴로움을 위로해줄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오직 사랑과 신앙뿐이며 인간에 대한 그리스도의 사랑에 하찮은 슬픔은 없다고 단 한 번 언급했을 뿐, 그것도 곧 화제를 다른 데로 돌렸다." (1권-p.504))
소설은 안나 카레니나의 오빠인 스테판이 가정교사와 바람이 나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러한 사실을 스테판의 아내인 돌리가 알게 되자 부부 사이는 돌이킬 수 없는 파국으로 치닫게 된다. 오빠의 가정을 되돌리고 차갑게 돌아선 돌리의 마음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안나가 나서게 되는데, 결국 안나의 간절하고 진정 어린 설득으로 돌리로부터 용서를 받게 되는 스테판. 목적을 달성한 안나는 자신의 집으로 되돌아가기 위해 기차역으로 향하게 되는데 그곳에서 안나는 브론스키와의 운명적인 만남을 갖게 된다. 총각이었던 브론스키는 안나와의 첫 만남에서 한눈에 반하고 마는데 유부녀였던 안나는 크게 마음을 쓰지 않았다. 한편, 돌리의 여동생인 키티가 브론스키를 마음에 두고 있었고, 스테판의 친구인 레빈 역시 키티를 짝사랑하고 있었다. 결국 키티는 레빈의 청혼을 거절하고 낙심한 레빈은 시골로 낙향한다.
"레빈은 자기가 요즈음 진심으로 생각하고 있던 것을 말한 것이었다. 그는 모든 곳에서 오직 죽음, 혹은 죽음에 가까이 가는 것만을 보았다. 죽음이 오기 전까지 어떻게든 삶을 살아가야만 했다. 그에게는 모든 게 암흑으로 뒤덮여 있는 듯했다. 그러나 바로 그 어둠 때문에 그는 자신의 일이 그 어둠 속에서 자기를 이끌어 줄 유일한 끈이라고 느꼈고, 온힘을 다해 그것을 붙잡고 그것에 매달렸다." (2권-p.252)
꺼져가는 애정의 불꽃이 되살아난 것은 한 무도회에서 벌어진 일 때문이었다. 무도회에서 브론스키는 키티에게 별 관심을 두지 않은 채, 안나에게 끊임없는 애정공세를 펼친다. 안나는 열정적인 브론스키의 애정공세를 몇 번 거절하다가 결국 넘어가고 만다. 위험한 밀회를 지속하던 안나는 남편인 알렉세이와 아들을 등지고 브론스키와의 동거를 시작한다. 안나는 알렉세이에게 이혼을 요구하지만 완벽주의자였던 알렉세이는 자신의 이력에 이혼 경력이 남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한편, 레빈의 사랑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뒤늦게 깨달은 키티는 그와 결혼한다. 시간이 흘러 브론스키의 아이를 갖게 된 안나는 자신의 처지가 조금도 나아지지 않고 있다는 사실에 절망한다. 남편과의 이혼도 성사되지 않았고, 아들 알료사를 보고 싶었지만 만날 수도 없었으며, 설상가상 브론스키의 사랑도 점점 식어가는 듯 의심하게 되었다.
"그녀는 물에 들어가려고 준비하다가 막상 물속에 들어갈 때와 흡사한 감정에 사로잡혀 성호를 그었다. 그러자 성호를 긋는 익숙한 동작은 그녀의 마음속에 잇던 처녀 시절과 어린 시절으 온갖 기억을 끌어냈다. 그리고 갑자기 온통 그녀를 뒤덮고 있던 암흑이 흩어지더니, 한순간 삶이 온갖 밝은 과거의 기쁨과 함께 그녀의 눈앞에 떠올랐다. 그러나 그녀는 다가오고 있는 두 번째 차량의 바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3권-p.478)
안타깝게도 안나는 역으로 들어오는 열차에 몸을 던져 비참하게 삶을 마감한다. 브론스키의 마음이 변했다고 판단한 안나는 그의 변심에 대해 자신의 죽음을 통해 응징하려 한 것이다. 그렇게 끝날 것처럼 보였던 소설은 레빈과 키티의 행복한 결혼 생활을 덤처럼 보여주며 마무리된다. 대선이 끝난 대한민국의 국민들 중 절반은 서로 비슷한 이유로 행복하고, 또 다른 절반은 서로 비슷한 이유로 불행하다. 그리고 안나 카레니나가 살았던 그 시절의 러시아는 지금 전쟁이라는 끝없는 절망으로 불행하다.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 레빈과 키티의 삶이 그랬던 것처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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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후의 명작 -안나 카레니나의 삶, 사랑, 비극-"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 1~3세트>를 읽고
“행복한 가정은 모두 서로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각기 달리 불행하다.”
불후의 명작이며, 전 세계 작가들이 뽑은 최고의 소설인 『안나 카레니나』 드디어 나도 불후의 명작이자 최고의 소설을 읽었다. 지금까지 몇 번 이 책을 읽으려는 시도를 해왔지만, 매끄럽지 못한 번역으로 너무나 어렵게 느껴졌다.
그러나 이번에 소담출판사에 바이올렛 표지의 예쁜 옷을 입고 출간된 『안나 카레니나』세트는 매끄럽고 자연스러운 번역으로 읽기가 수월했고 내용도 머릿 속에 쏙쏙 들어왔다. 예전에 가지고 있던 책들과 내용을 비교한 결과, 이번에 출간된 소담 출판사책이 고어나 한자어 대신 쉬운 현대어로 쓰여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래서 3권으로 이루어진 많은 분량에도 불구하고 가독성이 높아서 순식간에 읽을 수 있었다. 더군다나 내가 좋아하는 사랑과 이별 등 로맨스적 요소가 중심이라서 더욱더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3권에 걸친 '안나 카레니나'라는 한 여성의 삶을 읽으면서, 사랑에 대한 그녀의 열정과 선택, 책임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소위 말하면 그녀의 사랑과 선택을 '불륜'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나는 안나 카레니나의 사랑을 그렇게 부정적으로만 보지 않는다. 저자인 톨스토이또한 어느 누구도 안나에 대해 비판하고 정죄할 수는 없다고 말하고 있다. 그는 맨 앞 표지에 로마서 말씀을 인용하면서 그런 자신의 생각을 담아놓았다,
"복수는 내가 할 일이니, 내가 갚으리라." -로마서 12:19
누가 안나에게 돌을 던질 수 있을까. 물론 이 책 『안나 카레니나』는 불륜이라는 신의 질서를 깨뜨린 안나의 불행한 삶을 보여주지만, 안나가 그 사랑에 행복해하고, 진정으로 '사랑'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고 하는 말을 통해 그녀 또한 사랑을 하고 사랑을 받고 싶은 한낱 여인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어찌 사랑을 빠지지 않을 수 있었을까. 안나에게 찾아온 사랑은 운명이었고 어쩌면 거스를 수 없는 사랑이었을지도 모른다. 물론 안나의 연인인 브론스키에게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사랑받는 것이 과거나 지금이나 인간의 자연스러운 욕망이고 감정일지 모른다. 그 사랑을 조절할 수도 막을 수도 없는 것이다.
사실 안나가 브론스키와 사랑에 빠지게 된 것은 정말 우연이었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안나는 오빠 스테판 아르카디치 부부 사이의 불화를 중재하고 그들을 화해시키기 위해 모스크바로 온 것이다. 브론스키 또한 키티와 사랑에 빠졌고, 그래서 그녀와 결혼할 생각까지 했으니 말이다. 그렇게 안나와 브론스키는 그들 곁에 각자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고, 그들은 서로 모르는 존재였다. 하지만 안나가 기차역에서, 무도회에서 브론스키와 운명적으로 만나게 되고 안나는 브론스키에게 빠져드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누가 예상했으랴. 안나가 브론스키와 사랑에 빠지게 될 줄은... 안나가 그 사랑을 선택하기에는 그녀가 잃을 것이 너무나 많았다. 페테르부르크의 고위 관리의 아내라는 높은 사회적 지위와 사랑스런 아들의 어머니라는 역할도 세상의 비난과 경멸 등 그녀에게는 브론스키 그 사람외에는 아무 것도 남지 않게 된다. 하지만 브론스키를 만나 사랑하게 된 후 안나는 깨닫게 된다. '그동안 자신이 진정으로 행복하지 않았다는 것'을 말이다. 브론스키의 말대로 안나가 그토록 싫어하면서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사랑' 이라는 말에는 정말로 많은 의미가 담겨 있는 것 같다. 그 사랑 속에는 앞으로 오게 될 안나의 운명까지도 담겨 있는 듯 느껴진다.
안나 아르카디예브나는 작은 손으로 재빨리 모피 코트의 호크에 걸린 소매의 레이스를 풀고는 고개를 숙인 채 자신을 배웅하러 나온 브론스키의 말을 황홀하게 듣고 있었다. -[1권] p.320-
안나와 브론스키의 이미 시작된 사랑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 버린다. 그 사랑을 누가 막을 수 있으랴. 거부할 수 없는 그들의 운명적인 사랑은 결국 사교계에 알려지고 커다란 파장을 불러 일으킨다. 그리고 안나는 결국 그 사실을 남편에게 말하고 남편과 아들 곁을 떠나 브론스키와 외국으로 떠나게 된다. 결국은 안나에게 남은 선택은 이것 밖에는 없었으리라. 어쩌면 안나는 사랑을 시작하기 전에 알고 있지 않았을까. 자신에게 다가올 비극적인 결말을 말이다. 그렇게 가족이 아닌, 안정된 생활과 귀족이라는 높은 사회적 지위가 아닌 '사랑'만을 선택한 안나는 결국 모두를 버리고 떠난다. 사랑하는 그와 함께 말이다. 어쩌면 사랑의 도피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러나 그 사랑 또한 모래성과 같이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을 왜 안나는 몰랐을까. 그게 바로 사랑의 양면성인데 말이다.
이와 대조적인 사랑이 바로 레빈과 키티의 사랑이다. 2권에서는 레빈이 우여곡절 끝에 그가 꿈에도 그리던 키티와 드디어 결혼을 한다. 레빈과 키티는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자신들이 서로 사랑하고 있음을 깨닫고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게 된다. 농촌 경영에 관심이 많고 농사 일에 최선을 다하는 레빈을 보며 키티 또한 농촌 생활을 적응하며 안정적인 생활을 해 나간다. 레빈의 형이 건강이 나빠졌고 투병 생활 중 결국은 죽게 되고, 그런 형의 죽음에 레빈은 절망하지만, 그의 곁에 사랑하는 아내인 키티가 있어서 그는 형의 죽음으로 인한 절망과 슬픔도 이겨내고 더욱더 사랑하며 살겠다고 다짐한다. 그리고 그는 그 사랑으로 인해서 자신이 좀ㄷ더 강해지고 성숙해졌음을 깨닫게 된다.
형의 모습과 죽음의 접근은 레빈의 마음속에 형이 찾아왔던 그 가을 저녁에 자기를 사로잡았던 죽음의 불가해함과 동시에 죽음의 임박함과 불가피함에 대한 공포심을 불러일으켰다. 이 감정은 전보다 지금이 한층 더 강했다. 그는 자기에게 죽음의 의미를 이해할 능력이 없다는 것을 느끼면서 그 불가피함이 더욱 두렵게 생각되었다. 그러나 이제는 아내가 가까이 있는 덕분에 이 감정도 그를 절망으로 이끌지는 못했다. 그는 죽음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살아가고 사랑해야만 한다는 것을 느꼈다. 그는 사랑이 자신을 절망에서 구했고, 절망의 위협에서 이 사랑은 더욱 강하고 순결해졌다는 것을 느꼈다. - [2권], p. 578~579
레빈과 키티의 사랑은 안정적이고 편안해보인다. 물론 안나의 사랑처럼 불꽃같은 열정은 없지만, 천천히 타들어가는 모닥불처럼 그런 은근하고 꾸준한 사랑의 마음이 있고, 그 사랑은 그들의 인생을 살아나가는 힘이 된다. 저자인 톨스토이는 안나의 사랑과 레빈의 사랑을 대조적으로 보여주면서 진정으로 추구해야 하는 사랑은 레빈과 같은 사랑이지 않을까 말하고 있는 듯하다. 레빈이 그토록 꿈꾸었던 가정과 결혼생활을 이제 그는 키티와의 결혼으로 이루어었고, 이제 레빈의 삶은 완전해보인다. 레빈은 키티와의 사이에 아들을 얻고 행복한 가정을 꾸려 나간다. 그 행복으로 인해 그는 사람은 타인과 신을 위해 살아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게 된다.
레빈은 똑바로 누워 구름 한 점 없는 높은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난 저 하늘이 둥근 천장이 아니고 무한한 공간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 하지만 내가 실눈을 뜨고 아무리 열심히 주시해도 둥글지 않고 유한하지 않은 것으로 볼 수는 없어. 그리고 무한한 공간에 대한 지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푸르고 단단한 둥근 천장이 보이는 내가 당연히 옳아. 그건 내가 멀리 무한한 공간을 보려고 시선을 긴장하여 애쓰는 것보다 오히려 더 옳다는 거야.’ -[3권], p.548
한편 외국으로 도피한 안나는 어떻게 될까. 3권에서 안나의 이야기와 비극적인 결말이 이어진다. 영원할 것 같았던 사랑, 불꽃같이 활활 타올랐던 사랑은 결국 사그라들고 변하기 시작한다. 그들 사이에 존재했던 믿음과 신뢰는 비난, 불만, 잔소리로 이어지고 그들의 사랑에 금이 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급기야는 안나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만다. 그녀의 불꽃같은 사랑과 극단적 선택을 보면서 안나는 참 감성적이고 열정적이고 적극적인 사람이 아니었나 생각해본다.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고 그 감정이 자신의 의무나 역할보다 더 중요해서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을까. 어떻게 보면 무책임하고 너무 극단적이고 충동적인 선택이라고 볼 수 있지만, 그만큼 안나가 더이상 이 세상에서 살아갈 수 없었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지 않았을까 생각도 된다. 항상 사랑은 사랑하는 당사자들만이 알 수 있는 문제라서 우리가 그 사랑에 대해 왈가왈부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저자인 톨스토이는 안나의 사랑과 그녀의 극단적인 선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이런 스토리를 썼을까. 저자는 그 당시 귀족 사회와 위선적인 사교계를 풍자하면서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속이고 위선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보다는 차라리 안나처럼 솔직한 것이 더 나은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듯도 하다.
그러나 저자인 톨스토이가 긍정적이고 이상적으로 바라보는 사랑은 타인과 신을 위해 살아가고 행복한 가정을 꾸려가는 레닌의 사랑인 것 같다. 안나의 삶과 레닌의 삶을 대조적으로 보여주면서 인간이 추구해야 할 완벽한 삶이 무엇인지를 말해주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나는 레닌의 삶이 과연 완벽하고 인간이 추구해야하는 이상적인 삶이라는 것에는 의구심이 든다. 물론 톨스토이가 신앙에 일치하는 삶을 중요시했다는 점을 생각해볼 때 그는 이 삶을 이상적으로 생각했다는 것이 이해가 된다. 그러나 나는 안나의 삶 또한 존중받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초반에는 안나의 사랑에 대해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듯했으나, 레닌의 사랑과 그의 행복한 가정을 보여주면서 안나의 사랑과 잘못된 선택을 비판하는 듯도 하다. 하지만 나는 비록 안나의 선택이 잘못 되었다 생각이 될 지 모르지만, 그녀의 용기있는 선택은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당시 역사적, 시대적 상황 속에서 안나의 사랑은 결코 용납되고 인정받을 수 없는 금지된 사랑이었다. 그렇지만 안나는 그 모든 것을 알면서도 사랑을 선택했다. 모든 것을 잃을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톨스토이가 『안나 카레니나』를 썼을 당시인 1878년에는 이런 사랑 이야기는 사회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많은 비판을 받았을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톨스토이가 이런 소재의 이야기를 사회 속에 던진 시도는 대단하고 용기있는 도전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톨스토이는 그 당시 부유하고 학식있는 귀족의 위선적이고 공허한 삶을 풍자하고 인간 관계 속에 내재된 모순, 갈등, 사회적 부조리를 들여다보았다는 점에서 이 책 『안나 카레니나』는 문학적, 사회적인 의미와 가치가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과연 불후의 명작이라는 명성과 세계적인 작가들의 찬사의 이유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나 또한 나의 감명깊게 읽은 책 리스트 속에 이 책을 담아보게 되었다. 이제서라도 불후의 명작을 만날 수 있어서 너무나 행복하고 감사한 마음이다.
#이 글은 소담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료로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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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3권으로 재출간된 안나 카레니나, 마지막 3권을 마침내 끝냈다. 레빈과 키티의 결혼이후 이들을 둘러싼 가족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내내 읽으며, 앞서 언급했던, 2013년 영화 안나 카레니나에서 기억에 남았던 기차 플랫폼에서 방황하던 안나의 모습이, 3권 7부의 마지막과 겹쳐졌다. 안나와 브론스키, 브론스키는 그녀를 사랑함에 한치의 거짓도 없지만, 안나는 그의 말한마디, 행동 하나에 점점 집착하고, 그가 잠시라도 자리를 비우면, 불안에 압도되어버린다. 그녀의 이런 행동과 말에 지쳐갈법도 하지만, 브론스키는 그녀를 위한다면, 그녀의 뜻대로 할 생각이다. 그러나, 결국 안나는 극단적인 생각을 한다. 그러자 그의 마음에 그녀에 대한 사랑을 되살리고, 그를 벌하고, 그녀의 마음에 자리 잡은 사악한 영혼이 그와 싸워 승리를 거둘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인 죽음이 선명하고도 생생하게 그녀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p443 불안한 결말로 치닫는 안나의 감정, 어느 순간, 아, 그녀가 지금 제정신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결국 제때 도착못한 전보 하나로, 삶과 죽음이 자리를 바꿨다. 그때 문득 브론스키를 처음 만났던 날 기차에 치인 사림이 떠올랐다. 그녀는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깨달았다. 그녀는 빠르고 경쾌한 걸음으로 급수탑에서 선로로 난 계단을 내려가서 그녀의 옆을 지나가는 열차에 바짝 가까이 붙어 섰다. p477 그녀의 죽음으로 오랫동안 브론스키는 절망하지만, 그의 어머니 말에 의하면 '이게 그 애를 일으킬 수 있는 유일한 것이니 말이에요.p503' 라며, 세르비아 전쟁에 참전한다. 가정생활에서 뭔가 실행하기 위해서는 부부 사이에 완벽한 불화가 있든지 아니면 애정 어린 화합이 필요하다. 그런데 부부사이가 이것도 저것도 아닌 불분명한 관계에서는 어떤 일도 실행될 수 없다. 많은 가정은 완벽한 불화도 화합도 없다는 이유로 남편과 아내 모두 지겨운 옛 자리에 그대로 남아서 해마다 살아간다. p417 반박할 수 없는 문장이다. 역시나 사람사는 거, 다 같다. 안나와 레빈이 한번 만나는 장면이 나온다. 안나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가졌던 레빈 또한 그녀를 이렇게 생각한다. 안나의 말하는 모습은 자연스럽고도 지적일 뿐만 아니라 거침없고 부드러웠다. 그녀는 자기의 생각에는 전혀 가치를 부여하지 않으면서도, 상대의 생각에는 커다란 가치를 부여하는 듯 했다. p327 그녀에게 맞는 시공간은 아마도 지금이지 않았을까, 자유롭게 이혼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했다면, 극단적 선택은 없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작가 자신이 고민해오던 그 깊은 고민들과 상념들이 레빈을 통해 8부 내내 길게 이어진다. 키티를 향한 사랑때문에, 그의 집을 방문한 손님이 조금의 호의만 키티에게 보여도 질투심을 드러내는 레빈, 여리고 여린 그의 성격이 드러나고, 긴 산고끝에 만난 아들앞에서도 섣불리 사랑을 드러내지 못하며, 귀족사회에서 또한 쉽게 다수에 동의하지 못하는 그를 이해하게 된다. 3권 앞부분 6부에 레빈과 스테판등이 사냥하는 장면이 긴 분량으로 나오는데, 사냥개 라스카의 속내를 묘사하는 장면이 재밌었다. 마치, 동물영화에서 말하는 동물을 보는 듯 했다. 한 시대를 드러내는 이 소설의 3권에, 정치 사회적 상황을 드러내는 다양한 인물들의 의견충돌은 현시대에 고스란히 가져와도 어색하지 않다. 19세기나, 21세기나, 먹고 사는 일이 뭐가 다를까 싶기도 하다. "한 표가 모든 일을 결정할 수 있기 때문에 공공의 복지를 위해 봉사하고 싶으면 진지하고 온당한 절차를 거쳐야만 하는 거야." 세르게이 이바노치치는 이렇게 말을 맺었다. p227 "바로 거기에 문제가 있는 것이네. 정부가 국민의 의지를 수행하지 않는 경우가 있을 수 있거든. 그때는 사회가 자신의 의지를 표명해야 한다는 거네." 카타바소프가 말했다. p559 불과 10일전의 한표가 생각났고, 절묘하게 현재의 상황과 겹치는 몇몇 대사들과 상황에서 나라밖, 이 소설의 배경이 되는 그곳의 일들이 반복되는 것 같아서, 읽다가 침울해지기도 했다. 100년이 지나도 여전히 필독서이고 추천도서인 이 소설, 시간이 허락한다면, 넉넉히 여유를 두고 읽어보시길. <<소담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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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색의 고운 표지가 참 인상적인 책이었다. 워낙 유명한 책이고 고전이다 보니 여러 출판사에서 많은 판본의 책이 쏟아진다. 지금도 어디선가는 만들어지고 있을 수도 있다. 참 고운 색감에 비해 표지는 오히려 심플함을 추구했다. 안나로 보이는 귀부인의 얼굴을 얇은 선으로 그려 놓았다. 제목에만 금박 처리를 해서 그 심플함을 더욱 끌어올렸다.
다른 출판사나 다른 번역자의 책을 읽어보지 않아서 비교는 불가능하지만 러시아 국립 연구소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옮김이 이은연의 문장은 좋다. 내가 러시아 문학 이름 공포증을 탈출하는 데도 번역자의 책임이 컸다고 할 수 있다. 복잡하게 두루뭉술하게 쓰는 것이 아니라 누가 읽어도 딱 이해가 될 정도로 쓴 문장들이 오히려 가독성을 높여서 고전이라면 어려워서 섣불리 손을 대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 문턱을 확실히 낮춰줬다 할 수 있겠다.
단순하게 안나가 바람이 나서 다른 남자랑 사랑을 했어요라는 것이 이 책의 전부는 아니다. 그럴 것이라면 이렇게까지 긴 이야기가 될 수도 없지 않은가. 작가는 다수의 등장인물들을 통해서 자신이 그 당시에 살았던 시대상을 반영하면서 자신이 바라는 바를 내포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겠다. 아무리 일해도 귀족들이나 소위 말하는 화이트 칼라들의 임금을 따라잡을 수 없었던 농뷰들. 노동이라고 다 같은 노동이 아닌 것이다. 아니 노동은 농부들에게나 다른 계급의 사람들에게나 사용되는 그런 단어였을지도 모른다.
그런 빈부격차에 따른 문제들이며 농부들이나 여성들의 교육문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회문제들을 곳곳에 잘 버무려 놓았으며 그것에 대한 해결책이 이거다 하면서 정확히 알려주기보다는 인물들의 말이나 생각을 통해서 암시적으로 드러내고 있음이 보인다. 아이의 탄생을 통해서 세상이 달리 보인다는 것은 인구수가 감소하고 있는 지금에 분명한 캐치 프레이즈를 줄 수도 있다.
도시와 시골의 대비를 통해서 사람의 삶이나 사회풍조를 엿볼 수도 있다. 농부들은 열심히 일하지만 귀족들은 사냥을 하고 자신들만의 놀이를 찾지 않던가. 차 문화나 사교회도 마찬가지였다. 모든 루머는 거기서부터 나오며 소문의 중심지가 바로 그곳이었다. 한 여자의 인생을 통해서 사랑과 믿음 그리고 신뢰를 보여주면서 계몽주의나 사회적 분위기를 드러내고 있는 소설 안나 카레니나는 이것이 왜 고전의 진수인지를 보여주면서 모든 사람들이 꼭 읽어야 하는 소설로 꼽는지를 아주 잘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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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 까레니나... 영화나 드라마로 난 안나를 만났었다. 책으로 봐야지 하면서도 잘 되지 않았었다. 그래서 안나 까레니나엔 안나와 브론스키만 주된 인물인 줄 알았었다. 하지만 그들만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 스테판의 여동생 안나는 오빠 부부의 불편한(?) 사이를 풀어보고자 그들에게 온다. 그리고 그곳에서 브론스키를 만난다. 이미 남편과 아이까지 있던 그녀... 하지만 사랑이라는 녀석은 그녀를 가만두지 않았다. 그로 인해 오빠의 아내 돌리와 그녀의 동생 키티 뿐 아니라 키티를 사랑하는 코스챠까지 여러 사람이 곤란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그리고 이런 상황은 결국 안나에게 불행을 가져온다. 하지만 남겨진 사람들에겐 불행이면서 또 희망을 꿈꿀 수 있는 무언가를 남겨준다. 권수나 두께에 비해 어렵거나 힘든 이야긴 아니다. 다만 주인공들의 풀네임이 너무 길고 어려워서 간략하게 정리된 이름이 아니었다면 읽기 버거웠을 것 같다. 왜 이렇게 운을 띄우냐 하면 안나 카레니나에 대한 나의 짧고 허접한 생각들이 변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영화나 드라마로만 작품을 접하다 보니 책의 전반적인 내용이나 주인공들에 대한 것보단 안나와 브론스키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그래서 책이 담고 있는 수많은 감정들과 이야기들을 놓쳤었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하나하나 그 감정들을 따라가다 보니 책 속엔 생각보다 여러가지 이야기가 있었다. 수많은 감정선들과 인물들이 등장했다. 그리고 복잡하고 미묘한 그들간의 관계와 그에 따른 생각들이 나온다. 그렇게 난 왜 이 책을 위대한 소설이라고 칭했는지 조금 이해하게 되었다. 그런데 책을 읽으면서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제목에 등장하는 주인공과 그녀의 연인인 브론스키에 대한 관심도 보다 레빈과 키티에 대한 관심도가 더 높았다. 물론 스테판과 돌리, 안나와 브론스키, 안나의 남편 카레닌 등이 주요인물로 이야기를 이끌어가지만 유독 레빈과 키티의 이야기에 좀 더 집중하게 되었다. 더불어 안나와 브론스키의 불륜만이 화두가 되는 경우가 많은데 안나 카레리나는 그것만이 전부가 아님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마지막까지도 그들 사이에서 수많은 고뇌와 고민을 하는 레빈의 모습에서 살아가면서 느끼는 고민들을 만날 수 있었다. 나도 저런 고민을 했는데... 저런 생각들을 했는데... 물론 그의 처지와 내 처지가 같진 않다. 하지만 인간사이에서 고민하고 관계에 대해 생각하고 고심하는 그의 모습에서 내 모습을 봤다. 충분히 신중하지만 때론 아무 생각없이 저질러 보고 싶기도 한 그래서 더 나은 모습으로 더 나은 관계로 가고자 했던 그의 모습이 자꾸 눈앞에 선하다. 그래서 더 그에게 마음이 쓰였는지 모르겠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서로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각기 달리 불행하다." 행복은 어렵지 않아 보이지만 쉽지 않다. 그리고 불행은 한순간 찾아오기도 한다. 또한 불행은 각기 달리 찾아오지만 각자에게 느껴지는 아픔은 모두 다 크다.
*소담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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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숙명적인 불행이야. 그러니 인정할 수밖에 없어. 나는 이 불행을 이미 일어난 사실로 인정하고, 저 애와 자네를 도우려 애쓰고 있다네." 스테판 아르카디치가 말했다. p425/ 2. 4부 1870년대 러시아의 대도시를 배경으로 인간관계에서 필연적으로 벌어지는 삶, 죽음, 사랑, 행복 등을 등장인물의 가치관을 통해 적나라하게 펼쳐지는 대하드라마, 안나 카레니나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 작가님의 책을 정독을 한 것은 이 책이 처음이다. 사실, 내가 아는 '안나카레니나' 는 '키이라나이틀리'주연의 2013년 영화로, 아들이 있는 아름다운 유부녀가 젊은 장교와 사랑에 빠져, 가족을 버리고 도피하는, 사랑에 목마른 여성으로 느껴졌고, 그래서, 이 소설이 로맨스 소설인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이번에 이 책의 완역본을 받아보니, 분량이 무려 1700페이지 가량되어서, 이 분량이 다 로맨스이기에는, 아니 대문호이니까 가능할지도...라고 생각했는데, 안나 카레니나는 다양한 등장인물 중 가장 강렬한 이야기를 품은 한명에 불과했다. 그녀의 오빠 가족, 새언니의 자매와 운명의 상대가 되는 귀족의 사랑, 그녀의 남편과 이들의 둘러싼 모스크바 귀족 사회의 다양한 이야기, 화려한 귀족사회 뿐만 아니라, 농업을 관장하는 귀족의 경제적 고뇌, 여성문제, 사랑과 불륜을 바라보는 이들의 이견등등 '안나 카레니나' 는 읽을수록 기대감 이상의 감상을 갖게 만드는 소설이다. 책을 펼치면, 주요 인물의 관계가 나와있다. 오래전에 '백년동안의 고독'을 읽으며, 등장인물의 이름때문에 고생했었는데, 이 소설을 읽다가 다시금 생각이 났다. 러시아 이름 자체가 길고, 처음 등장한 이름대로 불리는 게 아니라, 줄여불렀다가, 성만 부르다가, 이름만 부르다가 제멋대로?! 라서, 처음에는 새로 등장했나, 하다보면, 앞서 이어지는 인물이고, 누구 얘기하나 보면 그 사람이...이야기의 흐름을 쫓다보니 어느순간부터는 이렇게 저렇게 다르게 불러도 같은 인물임을 알게 됐다. 각 인물의 서사를 한번에 정의하지 않는다. 누구와 만나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에 따라, 각 인물의 여러 성격이 서서히 들어나고, 그렇게 이야기를 계속 읽어야만 그 인물의 서사를 온전히 알 수 있게, 겉핥기식으로 읽어서는 각 등장인물을 다 안다고 할 수 없 다. 그래서, 나에게 가장 흥미로운 인물이 안나의 남편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 였다.
아내와 8년간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면서,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는 부정한 남의 아내와 배신당한 남편들을 볼 때마다 얼마나 많이 자신에게 말했던가! ‘어떻게 저런 지경이 될 때까지 내러벼두었을까? 어째서 저런 추잡한 상황을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걸까?’ 그러나 지금 자기 머리 위에 그 불행이 떨어지자, 그는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생각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 사실을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가 그것을 알고 싶어 하지 않은 이유는, 그 사실이 너무나 두렵고 너무도 부자연스러웠기 때문이었다. p456 / 2부 아내에게 다정하지는 못할지라도, 그는 꽤 능력있는 관료이다. 그런 그는 아내의 외도를 알게 되고, 이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한다. 1870년대 러시아는 사랑에 관대했던 시대였나? 싶게 명성있는 남자의 아내가 젊은 장교와 바람이 났는데, 내가 제대로 이해한건지 모르겠지만, 남편인 이 남자가 더 고민에 빠졌다. 안나의 오빠이자 그의 친구는 오히려 그에게 이렇게 충고한다.
"내가 한마디만 하겠네.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 나는 자네가 훌륭하고 공정한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네. 그리고 안나도, 미안하네만, 그 애가 아름답고 훌륭한 여자라는 내 생각도 바꿀 수가 없네. 그래서 난 그런 일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단 말이네. 거기엔 뭔가 오해가 있겠지."스테판 아르카디치가 말했다. p309 / 4부 안나의 오빠, 스테판 아르카디치가 할 소리인가, 소설 첫 시작은 스테판과 가정교사의 관계를 아내가 알게 된 상황으로 시작했기 때문이다. 아내 돌리는 우여곡절끝에 용서하고 함께 살지만....아무튼, 내가 잘못 이해했나.. 싶은, 그럼 브론스키와 안나는 플라토닉 사랑만 했던건가? 아니다. 그녀는 브론스키의 아이를 아직 남편과 사는 집에서 낳았다. 아이를 낳고 사경을 헤매는 그녀 앞에서 이들은 이렇게 마주한다. 그는 일어섰고, 흐느낌 때문에 말문이 막혔다. 브론스키도 일어서서는 구부정한 상태에서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는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의 감정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는 그것이 자기의 세계관으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뭔가 높은 것으로 느껴졌다. p387 /4부 뒤에 더 읽다보면,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는 결혼을 원하지 않았지만, 주변의 강권에 의해 그녀와 결혼한 것으로 나온다. 그럼에도, 가정을 지키기위해 애쓰고, 그녀를 품으려고 했는데, 결국 그녀는 사랑의 도피를 떠난다. 사랑의 도피를 이렇게 당당하게 하는 그들이라니! "체면이라도 지켜달라는 내 요구를 저버렸으니, 나도 이런 상태를 끝내기 위해 조치를 취하겠다는 것을 당신에게 알리기 위해서요.“ “이대로 두어도 곧 끝날 거예요.” 안나가 말했다. ........... “그래, 당신은 오직 당신 자기만을 생각하고 있군. 당신의 남편이었던 사람의 고통은 전혀 관심도 없다는 거군. 사람의 일생이 망가지고 그 사람이 게.....게....게로워한들 당신은 상관하지 않겠지.”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는 너무나 빨리 말하는 바람에 혀가 꼬여 ‘괴로워’라는 말을 제대로 발음할 수가 없어서 결국 ‘게로워’라고 발음하고 말았다. p280 / 4부 레빈은 자기의 마음을 가득 채우는 그 사랑의 기쁨으로 놀란듯한 그녀의 맑고 진실된 눈을 보았을 뿐이었다. 그 눈빛은 사랑의 빛으로 그의 눈을 멀게 하며 점점 더 가까이에서 빛나기 시작했다. 그녀는 그의 옆에 바짝 붙어 섰다. 그녀의 두 손이 올라가더니 그의 어깨 위에 내려앉았다. p364 / 4부 다른 한편에는 이런 사랑도 있다. 안나 오빠의 처제, 키티를 사모한 레빈, 그러나 어느 순간 과연 이렇게 그녀를 사랑해도 될까 싶어 이유없이 그녀를 떠났고, 그 사이에 브론스키와 결혼을 기대했는데, 키티와 연을 만들어주겠다던 안나는 브론스키와 사랑에 빠진거였다. 다시 키티에게 나타나 청혼했지만, 브론스키로 인해 흔들렸던 키티는 레빈에게 상처를 주고 그는 그의 농지로 돌아가 농업에 빠졌다. 그러나, 운명은 반드시 다시 이루어지는 법! 키티와 레빈은 결국 서로를 이렇게 바라보게 된다.
“그래서 은행이란 게 있지 않습니까?” “그럼 마지막 기둥뿌리까지 뽑으라는 말씀입니까? 천만에요, 사양하겠습니다.” “난 농업의 수준을 한층 높여야 한다든지, 또 높일 수 있다는 말에는 동의할 수 없군요.” 레빈이 말했다. p212 "나는 그 반대로 생각해요. 이 두 문제는 끊을 수 없는 관계로 묶여 있다고 봅니다.” 페스초프는 계속 말했다. “이것은 악순환이에요. 여성은 교육이 부족하기 때문에 권리를 빼앗깁니다. 바로 그 권리가 상실됨으로 인해서 교육의 부족이 생겨난다는 거지요. 여성 속박은 매우 오래되고 뿌리 깊은 문제입니다. 그래서 우리 남성들은 종종 우리와 그들을 갈라놓는 심연을 이해하려들지 않는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p329 등장인물의 관심사는 당시의 사회상을 말해주는데, 150년전이나 지금이나 어느 면에서는 나아진 것이 없어보인다. 오히려 그들이 더 나은 것은, '사랑'에 대한 그들의 관대함 혹은 무심함, 존중이라고나 할까. 귀족이면서 농업에 진심인 레빈, 그의 내면 또한 여리고 진중하다. 키티를 향한 지고지순한 사랑, 결혼식 전에 그에게 자신의 내면을 담은 일기장을 건네며, 모든 것을 함께하길 바라는 그, 결혼하기로 해놓고, 혹시 그녀는 내가 사랑한다고 하니까 마지못해 나를 선택한 게 아닐까 싶게, 소심함을 드러내기도 한다. 브론스키에게 거절당한 아픔에 병이 들 정도로 나약했던 키티는 레빈과 결혼후에는 오히려 더 강한 의지를 드러낸다. 레빈의 형이 병으로 눕자, 레빈보다 더 적극적으로 그를 간호하고 당황해하는 레빈을 이끈다. 1870년대의 사랑을 중심에 놓고, 그 당시 시대상을, 그들이 어떤 생각으로 살았는지, 작가님의 통해 알아봤다. 등장인물의 깊은 내면은 결국 작가님의 상념일텐데, 작가님의 행복과 사랑에 대한 치열한 고뇌를 읽게 되어, 독자로서 영광이다. 한명의 등장인물만큼이나 나는 행복과 사랑에 대해 깊은 생각에 빠져본 적이 있을까, 라는 질문을 안고서...... <<소담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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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은 참 많이 들어봤지만, 도저히 엄두가 안나는 분량. 이번 기회가 아니었으면 언제가 될지 몰랐겠지만 이렇게나마 오랜 숙제를 해낸 것 같아서 개인적으로 뿌듯하다. 레프 톨스토이. 톨스토이는 정말 많이 들어봤지만, 부끄럽지만 그가 러시아인이라는 사실은 이번에 처음 알았다. 그저 톨스토이라는 이름만 들어서 그랬던 것 같다. 풀네임을 보니 러시아 사람이구나! 알게 되는 걸 보면...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사실 외국소설을 읽을 때마다 긴장하게 된다. 등장인물의 이름이 입에 붙지도 않고, 헷갈리기 때문이다. 그동안을 일본 작품이 그랬는데, 러시아 작품에 비교하면 새 발의 피다. 다행히 책 첫 장에 등장인물들의 이름이 간략하게 정리되어 있어서, 읽다가 헷갈리면 앞으로 와서 확인하는 작업을 꽤 오래 했더니, 어느 순간 익숙해졌다. 물론 완독을 한 지금도 풀 네임은 모른다. 그저 구분되는 이름만으로 알뿐... 가령 안나, 스테판 혹은 레빈처럼... 1권을 상당 부분 읽었는데도 주인공인 안나는 등장하지 않는다. 전체 3권 총 분량이 1500페이지가 넘으니... 전체 분량으로 따지면 머... 당연할지 모르겠지만, 당황스러웠다. 그래도 흥미로웠다. 주변 인물들에 대한 소개가 상당히 자세하고, 그들 간의 대화도 자세하기에 나도 모르게 빠져들었다. 고전이지만, 분량의 압박만 아니면 그리 어렵게 느껴지지 않았고 오히려 흥미롭기도 했으니 말이다. 역시 인생사의 상당 분량은 사랑 이야기다. 이 벽돌 분량의 이야기 중 주된 포커스는 역시 주인공 안나의 사랑 이야긴데, 문제는 안나가 유부녀라는 사실이다. 1부의 시작은 안나의 오빠인 스테판이 바람을 피우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그리고 스테판의 친구이자 부유한 귀족 레빈이 스테판의 처제인 키티를 향한 사랑의 이야기도 담겨있다. 사실 레빈이 왜 초반부터 키티를 사랑하지만, 자신의 모습에 자꾸 자신이 없어하는지 도통 이해하기 힘들었다. 귀족이고, 깨어있는 지식인이고, 키티에 대한 사랑이 참 크지만 사랑 앞에서 불안함에 도망하는 그의 모습은 안타깝기도 했지만, 화가 나기도 했다.(내가 키티라도 그의 청혼을 거부할 수 있을 듯하다. 그렇게 사라지는 모습은 책임감 없고 가벼워 보일 수 있으니 말이다.) 물론 레빈의 연적인 브론스키와 안나의 만남 역시 흥미로웠다. 오빠 부부의 문제를 해결하러 온 안나가 오히려 자신의 문제를 만들게 되었으니... 사실 지금도 불륜은 문제가 크다. 특히 안나는 귀족층이자 사교계에서도 꽤 이름이 있는 가문의 여성이었고, 같은 귀족인 브론스키와의 사랑이었기에 말이다. 책 속에는 다양한 모습의 사랑이 담겨있다. 어떤 모습이 진정한 사랑인지에 대한 판단은 개개인의 몫이겠지만 말이다. 개인적으로 안나 카레니나가 주인공이지만, 키티와 레빈의 모습에 더 집중이 되었던 것 같다. 결국 사랑의 결실을 맺는 레빈. 하지만 그는 사랑에도 한결같았지만, 귀족이면서 다른 귀족들과 다른 행보를 보였다. 특히 2권에서 레빈에 대한 이야기가 상당수를 차지했는데, 그의 이야기와 행동에 담긴 모습이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우연으로 시작된 이들의 만남이 결국 이들의 삶을 다른 방향으로 인도하게 된다. 만약, 안나의 오빠인 스테판이 가정교사와 바람을 피우지 않았다면, 안나는 모스크바에 올 일이 없었을 것이고, 그렇다면 안나와 브론스키의 만남은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사실 그랬다면 레빈과 키티 커플도 이어질 수 없었겠지만 말이다. 사랑에만 집중하고, 모든 것을 거는 여성 안나. 그녀의 사랑의 끝은 과연 어떨까? 엄청난 벽돌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생각보다 빠른 전개와 파격적인 이야기 속에 꽤 오래 빠져 있었던 것 같다. 사실 나 또한 엄마의 입장이기에 자신의 사랑에 집중하면서도 아들에 대한 그리움과 미안함이 담긴 안나의 모습에 자꾸만 마음이 갔다. 나름 많이 해준다고 하지만 한편으론 다 해주지 못해 미안한 엄마의 마음 말이다. 개인적으로 이름이 어렵긴 했지만, 번역이 매끄럽고 흥미를 유발하기에 어렵지 않게 읽어갈 수 있었다. 분량에 엄두가 안 난다 해도 처음 읽기 시작하는 게 힘들지, 막상 읽게 되면 그 어떤 작품보다 흥미롭게 접할 수 있을 것 같다. 코로나로 심신이 지친 요즘.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와의 만남을 통해 또 다른 삶의 모습을 경험해 보는 것은 어떨는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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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 카레니나를 예전에 읽다 중단하였는데 드디어 완독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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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 카레니나 하면 키이라 나이틀리의 아름다운 모습이 먼저 연상되는 건 아마도 영화의 이미지가 강하게 남아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작품을 책으로 다시 읽어보니 '역시 책으로 읽었어야 해'라는 생각이 또 한 번 들게 된다. 영화 속 이야기는 제목에 충실하게도 안나에 관한 게 다였는데 책으로 읽다 보면 도대체 안나는 어디 있는 거야?라고 생각하게 되니 말이다. 두꺼운 합본으로 한번 보고 이번이 두 번째인데 보랏빛 컬러에 금장 스케치와 제목이 너무 아름다운 책이었다. 내 손목을 생각한 건 아니겠지만 그래도 3권, 상중하로 나누어 읽으니 누워서 읽기가 편해 부담도 덜었다. 톨스토이는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이렇게 두껍고, 권수도 3권이나 되는 책을 썼을까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었는데... 레빈과 키티의 사랑과 성격도, 안나의 오빠인 오블론스키와 그의 아내 돌리의 속마음도, 브론스키와 안나의 사랑도 모두 이야기하려니 이 정도 두께가 당연하게 여겨진다. 책을 읽다 보니 안나보다는 레빈이 더 눈에 들어왔고, 사랑꾼으로만 알고 있었던 브론스키의 인간적인 면모도 볼 수 있게 되어서 즐거웠다. 스토리가 꼬여있거나 길진 않다. 아니 오히려 아주 짧은 스토리지만 등장인물의 감정선을 세세하게 그려냈고, 타 러시아 문학들과는 다르게 어렵거나 머리 아픈 독서는 아니었다. 오히려 사랑 가득 로맨스가 넘실대는 가족소설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결혼 전에 읽었던 안나 카레니나는 '바람피운 나쁜 여자 이야기' 정도로만 기억에 남았었는데, 결혼 후 아이도 낳고 키우며 다시 읽은 안나 카레니나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로 와닿았다. 물론 [안나 카레니나] 속에서 톨스토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사랑만은 아니었으리라. 시대적 배경과 당시의 귀족 생활, 그들의 비합리적인 생각들과 불통이 낳은 대화들, 여자들의 잃어버린 자유와 섬세한 심리묘사까지 많은 것들이 담겨있지만 내게는 사랑이 제일 크게 와닿았다. 톨스토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내가 다 이해한 것인지 곱씹고 되짚어 보면서 생각해 본다. 내 경험에 비추어 인물들의 감정을 이해하고 공감하다 보니 고전을 읽으며 느끼는 감정이 20, 30, 40대 모두 다르다. 등장하는 세 가정을 비교하고, 그들의 심리적 갈등을 이해하기까지 무척 오랜 시간이 걸렸고, 내가 추구하는 삶의 가치와 사랑과, 행복에 대한 생각들이 옳았던 것인지 의문도 들고 레빈의 철학적 고뇌를 이해하기에도 힘이 들었다. 하지만 책을 읽고 난 후 더욱 나를 제대로 바라보고 인정하며 아낄 수 있도록 관심을 갖고 애정을 쏟을 수 있게 변하게 된다. 책을 읽는 동안은 내가 돌리였고, 안나였다가, 키티였으므로... 누구나, 한 번쯤 꼭 읽어보길, 정독하고 재독하고 다시금 마음속에 담아보면 좋을 책 [안나 카레니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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