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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떠올리는 프랑켄슈타인은 납작한 머리에 목에 볼트가 붙어 있는 무서우면서도 어딘가 귀여운 만화 캐릭터다. 나이가 들어 이 <프랑켄슈타인> 소설을 읽고서야 나는 프랑켄슈타인이 그 피조물의 이름이 아니라, 그 피조물을 만들어낸 사람의 이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프랑켄슈타인>은 1818년 출판된 소설이다. 이 책은 여성 작가 메리 셸리에 의해 쓰였다. 유명한 작가들과 함께한 여름 휴가에서 초자연적인 소재로 이야기를 써보자는 제안이 있었고, 그 이후 유일하게 출판 작품이다. 이 작품이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는 이유는 무엇일까.
339p 텍스트와 콘텍스타가 아무리 흥미롭고 매혹적이라 해도 <프랑켄슈타인>이 20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강력한 호소력을 갖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우리의 모습을 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중략) 누구나 한 번쯤은 어리석은 욕망이나 야망에 휘둘렸을 것이고, 크고 작은 일로 가책이나 후회에 시달려봤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누구나 사회적 고립을 두려워한다.
해설에 소개된 것처럼 이 이야기는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들과 맞닿아 있다. 자신의 실수로 만들어진 불행이 삶을 옥죄어 오는 것만큼 두려운 일이 있을까. 그 불행이 또 다른 불행을 낳고, 결국 깊은 고독으로 이어진다면. <프랑켄슈타인>은 바로 그런 이야기다.
빅토르 프랑켄슈타인은 자연과학에 빠져들어 인간의 몸을 이어 붙여 새로운 생명체를 만들어낼 수 있는 방법을 깨닫는다. 과학기술의 진보가 미래의 성공을 이끌 것이라는 희망 속에 그는 마침내 2미터 40센티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피조물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만들어 냄과 동시에 그는 자신이 만든 존재에게 알 수 없는 혐오감을 느끼고 그를 버린 채 도망친다.
프랑켄슈타인에게 버림받은 피조물은 그를 증오하게 되고, 그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차례로 죽인다. 동생, 친구, 그리고 사랑하는 아내까지. 하지만 피조물의 살인을 단순한 악행으로만 볼 수는 없다. 그는 창조된 이후 단 한 번도 사랑받지 못했다. 사람들을 피해 숨어 살아야 했고, 만나는 이들마다 그를 멸시했다. 심지어 자신을 만든 창조자에게조차 철저히 외면당했다.
피조물은 프랑켄슈타인에게 자신과 같은 존재를 하나 더 만들어 달라고 부탁한다. 자신을 이해하고 공감해 줄 존재만 있다면 다시는 인간 앞에 나타나지 않겠다고 말하면서.
피조물의 살인은 물론 지탄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세상에 태어나 단 한 번도 사랑받지 못한 그가 인간을 사랑해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내가 피조물이었다면 과연 인간을 사랑할 수 있었을까.
200년이 지난 지금도 이 소설이 여전히 우리에게 의미 있는 이유는 바로 이런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나와 다르다는 이유(성별, 인종, 나이 재산 등등)로 누군가를 두려워하거나 밀어낸 이들이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가 두려워하는 괴물은 세상 어딘가에 있는 존재가 아니라, 타인을 이해하지 못하고 외면하는 우리 자신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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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엘리자베스 개스켈은 [크랜포드 (드라마 보다 잔잔하지만 여전히 소박하게 아름다운 원작 (Hugh Thompson의 일러스트레이션을 확인하세요)//작은 기쁨과 슬픔의 아름다운 마을, 크랜포드에서 일어나는 이야기 ]로 친근하다. 이 작품에서는 사회고발성이 강한 그녀의 특징보다는 초기빅토리아시대의 농업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넘어가는 와중에 인간미가 강한 작품이였다. 그리고 그녀의 North and South는 내가 죽기전 읽어야할 책들 리스트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이 책은 Penguin에서 나온 [The Gothic Tales]에서 세 작품을 뽑았다.
회색여인 '푸른수염의 아내'에서 이야기를 가져온 것처럼, 자신의 의사보다는 남편의 결정이 불합리하건 잔인하건간에 따라야만 하는 여자, 아내의 숙명에 관한 이야기이다. 여자의 적은 또 여자이기도 한다지만, 이건 남자에 의해 Manipulation되었을뿐, 구원자이자 조력자는, 계급을 뛰어서는 같은 여성이다. 동지애와 모성애로 여성은 서로를 구원한다.
마녀 로이스 그 유명한 세일럼의 마녀사냥을 모티브로 하였다. 질투와 시기로 인한 고발이나 아직 밝혀지지않은 풍토병으로 인한 환각, 부녀자만이 소유한 재산을 몰수하기 위한 가부장제의 음모 등에 의해 희생되었던 여성의 모습이 그 착하고 어디에도 기댈데에도 없는 로이스의 모습이다. 고발될까봐 이성적인 판단을 잃어버리고 마구 고발하고 말았지만 가는 길에 동지가 되어준 것은 또한 인종을 떠난 여성뿐이였다.
늙은 보모이야기 맨앞의 이야기와 함께, 고딕소설의 전형이다. 외로운 성, 핍박받는 여성... 회색수염에서도 여성을 도구로만 생각하는 남성이 나와 공포를 가져다준다면 여기에선 이기적인 음악가가 나와 여성간의 유대를 파괴하고 이간질을 하는 인물로 나온다.
과연 모두다 200여년전만의 이야기라고만 할 수 있을까. 현재도 여성의 운명에 대한 정책을 여성이 아닌 남성이 내리고, 사회의 주도권조차 여성이 잡은 것은 허상이 되어버려 오히려 과거로 회귀할뿐인 이 시대에. 정말 믿을 것은 서로에 대한 유대감만이 남았을 뿐이다. 서로에 대한 적대성을 버리고, 핵과 세균, 온대화의 위기 속에서 인간은 서로간 유대, 공감을 가지고 서로 다가야만 한다.
참, 원전인 Penguin판의 전작품이 소개되었더라면 훨씬 더 좋았을것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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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디스 워튼의 환상 이야기>를 흥미롭게 읽었다. 단순히 '환상'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단편의 매력을 느낄수 있었기 때문이다. 해서 <징구>를 읽었고, 가장 최근에 읽은 것은 <버너 자매>. 출판사마다 작품을 고르는 이유가 다른듯 같은 것인지, 중복 수록되는 경우가 있어 구입할 때마다 고민이 따른다는 건 단점이다.그럼에도 당분간 그녀의 단편읽기는 멈출수 없을 것 같다. <석류의 씨>에는 4편이 실려있다. '하녀의 종'을 제외하면 처음 만나는 작품들인거다. '편지' 와 ' 빗장 지른 문' 은 재미도 있었지만..반전이 있어 헛웃음이 나고 말았다.. 알고 나면..충분히 해 볼 수 있는 의심이였을 텐데...온전히 리지의 인생 속으로 들어갔었나 보다. 그러니 누군가 왜..그런 행동을 했을까..에 대한 비판은 신중해야 한다. 타인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 보기 전에는 알 수 없는 것이 인생일테니까 말이다.
"이제야 이 마지막으로 밀려드는 동정심과 깨달음 속에서 모르타르와 유리 자갈의 쓸모없는 조각들로 단단한 대리석의 형태를 만들 수 있듯이 뒤죽박죽 섞인 비루한 것들에서 삶의 압박을 견디게 해줄 사랑이 빚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72쪽
그냥 말랑말랑한 로맨스소설일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래도 이렇게까지 심오한 이야기로 끌고 갈 줄 몰랐다. 제목이 너무 심심한 '편지' 였기 때문에 살짝 속단을 했던 탓이다. 남녀가 사랑을 해서 결혼을 하기까지 이르는 과정에 진실한 '사랑'만으로 채워졌을 거라 믿는 다면..그 믿음에 균열이 가는 순간 고통의 파동이 밀려오는 걸 경험해야 한다. 그러니까 본격적인 결혼의 시작은 어떤식으로든 균열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부터인지도 모르겠다. 작가는 그 순간을 기막힌 반전을 통해, 헛움을 선물했다. 거짓에..대해 어떤식으로든 항변할 수 없는 상황..그래도 사랑했던 시간이 있었다는 것에 대한 고집...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마도 리지처럼 살아가지 않을까..물론 앤도라 같은 여성을 이해할 수 없다는 시선으로 말이다. 자신이 믿었던 사랑에..거짓도 있었을수 있다는 걸 받아들인 리지와 달리 '빗장 지른 문'은 끝끝내 진실을 밝히고자 몸부림치는 남자가 등장한다. 그런데 그래니스..가 밝히고자 하는 진실이 무서운 건 다른 지점에 있었다.반전이라고 하면 반전이라고 해야 할 지점..공포가 아니어도 소설은 충분히 섬뜩할 수 있다. 오히려 칼부림 나는 공포가 덜 공포스러울수도 있다. 처음 그가 자신의 과거를 고백할 때만 해도, 도선생의 소설 한 자락이 떠오르기도 했고, 지나치게 염세적인 사람인가보다..했다. 작품으로 성공하고 싶었는데 뜻대로 풀리지 않은 것에서 오는 우을증 같은 것일수도 있겠고.그런데 그는 '진실'이란 화두의 서막에 불과했던 거다. 그가 살인자일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 사람들은 침묵한다. 진실이 밝혀지는 것이 두려운 사람들이 있으니까. 그가 살인자임을 왜 그토록 고백하려고 했을까..후회를 남기지 않기 위해? 뒤늦은 후회...일수도 있겠지만..그렇게라도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싶어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덕분에 나는 사람들이 진실에 침묵하는 모습이 더 섬뜩하게 느껴진 것 같다. 그럴 사람이 아니라는 이유로..그가 죄를 짓지 않았을 거란 논리는 그래서 불편하다. '석류의 씨'는 중후반까지는 긴장감이 느껴져서 결말이 궁금했는데...생각 이상으로 모호한 결말( 이성적으로는 해석이 가능했지만^^) 에 당혹스러웠다. 그러면서도 신화에서 가져온 주제라..오스카와일드 의 '석류의 집' 이 궁금해졌다. '하녀의 종'은 두 번째 읽기에서도 조금 평범한 느낌이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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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프랑켄슈타인〉이 극장 상영중이다. 넷플릭스 제작 영화로 이례적인 극장 개봉이다. (곧 넷플릭스에서도 볼 수 있다.) 〈판의 미로〉 이후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을 크게 좋아히기 시작한 아내와 함께 극장을 찾기로 하였다. 그리고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을 (정말로) 읽기 시작했다. 《프랑켄슈타인》이야말로 너무 유명하여, 읽지 않았음에도 읽은 것으로 여기는 작품들의 대표 주자다. “어떤 광인의 꿈을 얘기하는 게 아닙니다. 저 하늘에서 태양이 빛나는 것만큼 확실하게 일어난 일입니다. 어떤 기적이 개입했을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뚜렷하고 개연성 높은 단계들을 거쳐 발견한 것이었지요. 밤낮없이 극심한 노고와 피로로 몸을 혹사한 끝에 마침내 발생과 생명의 근원을 밝혀냈지요. 그뿐만이 아닙니다. 나는 생명이 없는 물질을 움직이게 하는 능력을 갖게 됐습니다.” (p.64) 또한 제목인 프랑켄슈타인(프랑켄의 돌이라는 독일어 의미를 가지고 있고, 13세기에 성씨였지만 현재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이라는 성씨는 괴물을 창조한 인간에게서 비롯되었지만 종종 괴물을 가리키는 것으로 오해되고 있다. 이름이 없는 《프랑켄슈타인》 속의 생명체는 창조물, 피조물, 괴물 등으로 지칭된다. 그리고 지성을 갖춘 다음에는 ‘나’라는 인칭으로 스스로를 드러내고 변호한다. “... 그때까지 어떻게든 잊으려 했던 일을 머릿속으로 되짚어보았습니다. 창조물이 탄생하기까지의 과정과 내 손으로 만든 존재가 살아서 내 잠자리에 나타났던 일, 그리고 사라진 일까지. 그가 생명을 갖게 된 지 2년이 다 되어가는데 과연 이 살인이 처음이었을까? 아! 나는 살육과 참극을 즐기는 타락한 괴물을 세상에 풀어놓은 겁니다. 내 동생도 죽이지 않았습니까?” (pp.100~101) 소설에서 ‘나’는 프랑켄슈타인이기도 하고 때로는 프랑켄슈타인이 만들어낸 피조물이기도 하다. 프랑켄슈타인은 심혈을 기울여 생명이 사라진 것에 다시 생명을 불어 넣었다. 하지만 그렇게 탄생한 것을 보자마자 혐오하기 시작하였고 그것이 떠나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바로 그것에 의해 자신의 친구인 앙리 클레르발, 동생인 윌리암, 아내가 된 엘리자베트를 차례대로 잃었다. “... 나는 당신의 피조물이니 당신이 본분을 지킨다면 나의 주인이자 왕인 당신에게 복종하겠다. 아, 프랑켄슈타인. 다른 사람들에게는 도리를 다하면서 나만 짓밟으려 하다니. 누구보다도 나를 공정하게 대해주고 관용과 사랑을 베풀어야 할 사람인데. 내가 당신의 피조물이라는 것을 잊지 마. 나는 당신의 아담이 돼야 하지만 타락 천사가 됐지. 당신은 죄없는 나에게서 기쁨을 빼앗아 갔어. 온 세상이 축복으로 가득한데 오직 나만 지독한 외톨이로 살아가고 있다. 나는 인정많고 선량했지만 비참한 삶이 나를 악마로 바꿔놓았어. 나를 행복하게 해준다면 다시 선량하게 살겠다.” (pp.136~137) 거기에서 그친 것도 아니다. 그것은 친구인 앙리의 죽음에 나를 끌어들이려다 실패하였고, 동생 윌리암의 죽음 이후에는 착한 하녀 쥐스틴에게 누명을 씌웠다. 쥐스틴은 결국 사형을 당했고 이 또한 그것이 만들어낸 죽음이다. 나와 결혼한 엘리자베트가 첫날 죽음을 맞고 그 사건에 충격을 받아 나의 아버지가 죽었으니 이 또한 그것의 책임이 아닐 수 없다. 다만 그것을 만들어낸 것은 바로 나 프랑켄슈타인이다. “넌 노예야. 좋은 말로 설득하려 했는데 그럴 가치가 없다는 것을 스스로 보여주었군. 내가 어떤 힘을 지녔는지 잊지 마라. 넌 이미 네가 불행하다고 생각하겠지만 나는 네가 햇살조차도 진저리 낼 만큼 더 비참하게 만들 수 있다. 넌 나의 창조주이지만 난 너의 주인이야. 그러니 복종해!” (pp.236~237) 소설은 프랑켄슈타인의 시점과 동시에 그것의 시점 또한 등장한다. 읽다 보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생명을 부여받았지만 탄생하자마자 자신의 창조주로부터 버림받은 그것을 그저 괴물로 치부하기 힘들다. 그것은 태어날 때부터 악마였다기 보다는 혐오와 기피의 대상이 되면서 악마화되었다. 그것은 어떻게든 자신 내부의 선함을 끌어내보려 하였고, 그러한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든 것은 프랑켄슈타인을 비롯한 인간들이었다. “이 자도 내 희생자다! 그를 죽이는 것으로 내 죄는 완성됐군. 굴곡진 내 비참한 삶도 이제 막바지에 이르렀다! 아, 프랑켄슈타인! 고결하고 헌신적인 존재여! 그대에게 나를 용서하라고 애원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나는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모두 파괴함으로써 당신을 돌이킬 수 없이 무너뜨렸지. 아! 이제는 차갑게 식어 나에게 대꾸할 수도 없구나.” (p.311) 200여 년 전의 소설이고 이미 속속들이 알고 있(다고 오해되)는 작품이지만 읽다 보면 꽤나 흥미롭다. 산업 혁명의 시기, 자연을 정복할 수 있다는 인간(프랑켄슈타인)의 욕망이 만들어낸 괴물이면서 인간을 뛰어넘는 힘을 지닌 그것에 대한 이야기는 인공 지능에 지배당하는 인간이 상상되는 요즘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그런 면에서 소설의 액자 역할을 하는, 탐험가 월튼이 무모한 여정을 중단하고 돌아선다는 설정 또한 의미가 있다. 메리 셸리 Mary Shelley / 박아람 역 / 프랑켄슈타인 (FRANKENSTEIN: Or ‘The Modern Prometheus’) / 휴머니스트 / 341쪽 / 2022 (18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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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단편소설집인 줄 모른 채로 읽기 시작했다. 소재나 분위기는 각각 다 르지만 네 개의 단편이 모두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는 불안과 공포를 다 루고 있다는 점이 취향에 맞았다. 특히 <석류의 씨>와 <하녀의 종>은 고딕소설의 중요 요소 *음산한 중세의 성이나 수도원 등 고립된 장소를 배경으로, 유령과 같이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초자연적 대상을 다 루며 미지의 영역에 대한 공포와 불안을 드러낸다 (작품 해서 참고)* 가 잘 녹아들어 있어 흥미로웠다. 고딕호러장르 소설들이 더 읽고 싶어졌다. 2. 첫 이디스 워튼 작품인데, 너무 만족스러웠다! 여성 작가가 표현하는 ~ 여성이라면 온전히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그들의 삶의 이면~ 을 엿볼 수 있어서 좋았다. 완독 후 책 앞면의 작가 소개글을 다시 보니 그 가 이 소설집에서 왜 결혼과 여성에 대해 묘사를 이런 식으로 했는지 이 해가 됐다. (당연히 워튼의 불행했던 결혼생활에 대해서는 유감스럽지 만 덕분에 결혼 이후 여성이 느끼는 여러 감정들을 이토록 짧지만 강렬 하게 풀어쓴 작품들을 만날 수 있어서 좋았음.. 3. 첫 흄세!! 책 디자인이 너무 이쁘고 번역도 어렵지 않게 잘 되어있다. 다른 소설들도 읽고 싶어져서 전에 추천 받았던 <악의 길>과 <녹색의 장원>을 구매했는데 급!! 고딕소설에 관심이 가서 그런지 시즌1. 여성과 공포 라인의 <프랑켄슈타인>과 <회색 여인>도 궁금해졌다. |
| 엘리자베스 개스켈의 단편선을 읽으며 좋았던 것은 주인공도, 적도, 구원자도 모두 여성이라는 점이다. <회색여인>은 동화 푸른수염을 모티브로 새로운 이야기를 풀어내고. <마녀 로이스>는 1692년의 세일럼에서 벌어진 마녀사냥 사건을 이야기 속에 끌어들인다. <늙은 보모 이야기>는 당시의 여성에게 억압적이었던 생활상을 섬뜩하게 그려낸다. |
| 아일랜드 작가 도러시 매카들의 첫 소설입니다 유령의 집 이야기입니다 이런 고딕 소설 좋습니다 휴머니스트 출판사 세계문학 여성과 공포 시리즈입니다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초자연적 현상이 벌어져서 이야기에 빠져듭니다 분위기가 마음에 들어요 표지도 어울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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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중의 고전인 프랑켄슈타인을 완역으로 읽고 싶었다. 괴물이라는 과감한 소재로 반향을 일으킨 작가의 정체가 여성이었다는 것이 밝혀졌을 때 사회는 경악, 비판, 무시, 오독을 포함해 엄청난 선풍을 일으켰다. 프랑켄슈타인은 산업혁명과 프랑스혁명의 여파에 사로잡힌 당시 사회에 무분별한 과학의 발전에 경종을 울린 SF의 시초가 된 작품이다. 그래서 종종 최초의 SF라고 꼽히기도 한다. 영화의 이미지 때문에 프랑켄슈타인은 우스꽝스러운 괴물의 이름으로 각인되어 버렸지만, 이 작품이 가진 훨씬 풍부한 이야기가 다시 재해석되었으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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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부터 인상적이어서 기대한 소설이었다. <회색 여인>은 힘없는 평범한 여성들의 아픔을 잘 그려낸 이야기로, 여성이 그려낸 여성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가치 있는 소설이다. 작가 엘리자베스 게스켈은 평생 인간의 선의와 종교에 대한 신뢰를 잃지 않았다고 한다. 당시의 사회문제와 생활상을 생생하게 다루었다는 점에서 생활상, 역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읽어도 좋은 느낌이다. 가장 안전해야 할 가정에서 일어나는 붕괴를 다루었다는 점에서 여성이 그려내는 고딕호러의 공통점을 발견한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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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가장 즐겁게 읽은 시리즈. 버넌 리는 언캐니한, 낯익은 것이 오싹하게 변하는 순간을 잘 그려낸 작가다. 살아 있는 것과 죽은 것을 더이상 믿기 어렵게 되고, 의혹을 품게 되는 것이다. 해가 지고 밤이 오면 돌아와서는 안되는 존재들이 돌아온다... 유령이 나오는 공포 소설을 읽고 싶은데 새로운 작품을 만날 수 있어서 좋았다. 버넌 리는 어머니의 사별한 전남편의 성을 따서 중성적으로 지은 필명이라고 한다. (어쩐지 여성적인 느낌이 별로 느껴지지 않았다.) 평생 두 가지 정체성을 오가며 살았다는 신비로운 인생을 살았던 작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