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학이고 무료했던 차에.. 학교 도서관에 들렀다가.. 책제목에 이끌려 정말 우연히 읽게 된 책이다. 읽다보니..저자가 "서른,잔치는 끝났다"를 쓴 시인이었단 사실을 알게 되고 정말 그녀의 일기를 읽는 것처럼 그녀를 알아갈 수 있었다. 책 내용 중 인상 깊었던 것은 나이 서른에 대한 그녀의 생각이었다. 아직 젊음의 불꽃이 남아 있을 때 있는 힘을 다해 생을 한 번 뒤집어 볼 수 있는, 도박을 할 수 있는 나이... 그녀는 이렇게 서른을 얘기하고 있었다. 이제 서른을 조금씩 느껴가고 있는 이 시기에 이 책을 읽게 되어 더 와 닿았다..시련의 시기를 겪고 지금 이 자리에 와 있는 그녀를 바라보고 희망을 느낄 수도 있을 것 같다. 다채로운 소재의 일기를 읽는 듯한 느낌이 이 책의 재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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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가 되면 무언가 평온한 삶이 나를 기다릴 것만 같은 생각을 가진 나는 최영미 님의 시집도 아주 감명깊게 읽었다. 시속에 나타난 의미와 생각들을 모두 이해하지는 못했겠지만 한 인간으로서 그녀를 알아간다는 것은 의미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인지 그녀의 일상적인 삶이 나타난 그 책을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풋풋하기도 하고 일상적인 우리네들의 삶도 나타났다.
이 책은 정말 '일기' 같았다. 하루하루 살아가면서 세상살이가 쉽지만은 않겠지만 누구나 자신의 하루를 조용한 방안에서 생각할 것이다. 아마 그 생각들 속에서 나온 것들이 이 책이 아닐까 한다. 내 일기를 남에게 보여준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겠지만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무언가를 생각하게 만들고 진정한 길로의 인생이 무엇인지를 다시금 고려하게 한다면 이처럼 좋은 일이 더 있을까? [인상깊은구절] |
| 오래전 친구에게 선물로 받은 책이다. "우연히 내 일기를 엿보게 될 사람에게"라는 제목이 인상적이었다... 초등학교 다닐때 어쩔 수 없이 일기를 써야했고, 참잘했어요...라는 도장을 받던 기억이 나는가? 난 지금도 어린시절에 내가 썼던 일기를 가지고 있다. 그 일기장에는 지금은 기억이 없는 친구들의 이름, 나의 생각들이 빼곡히 적혀있다. 더욱 잼있는 것은 맞춤법의 변화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바쁘다는 핑계로 한동안 쓰지 않았던 일기를 대학에 입학하면서부터 다시 쓰기 시작했다. 너무도 사소한 이야기들이 대부분이지만 지금도 내게 가장 소중한 물건임에는 틀림없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난 어떠한 생각으로 일기를 써왔는지 생각해 봤다. 사람들이 내 일기를 보지 않을 꺼라는 생각으로 내 맘속의 진실을 그대로 적었는가?? 가끔 예전 일기를 읽다보면 느끼는 건데, 누군가 내 일기를 훔쳐 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던거 같다....실명이 아닌 이니셜로 적어진 몇몇 사람들이 있는 걸 보면 말이다. 그때는 엄청 짜증나서 그 사람에 대한 온갖 불만들을 적었는데... 도대체가 그 이니셜을 보고도 누군지 생각이 나질 않는다.. 나쁜 추억들을 기억하지 못하는거 오히려 잘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간간히 보여주는 멋진 그림들과 그때 그때 자신의 생각을 적어낸 이 책은 읽는 이로 하여금... 진짜로 작가의 일기를 몰래 훔쳐보는 듯한 짜릿함을 제공해준다. 아마도 이책을 읽은 사람들은 일기장을 새로이 마련하고픈 맘이 들것이다. 그리곤 새로운 맘으로..누군가 내 일기를 엿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일기를 쓰게 될지도 모를일이다. 한번쯤 읽으면 좋을 책^^ 추천합니다...^^ ***인상깊은 구절*** 이 세상엔 한번 시작하면 결코 멈출 수 없는 일이 꽤 있는데, 일기도 그런 일 중의 하나인것 같다. 언제부턴가 나는 일기라는 걸 쓰기 시작했다. 어느날 우연히 손을 댄게 어느덧 십년, 이십 년을 훌쩍 넘었다. 괴로울 때나 기쁠때나 늘 나와 함께했던 일기는 나의 오랜 친구이자 연인이다. 그가 결코 날 실망시키거나 배반하지 않을 거라는 걸 나는 안다. |
| 남의 일기를 본다는 것의 곧 그의 모든 것을 보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든다. 난 유달리 내것을 남에게 보이기 싫어한다. 내것 네것이 따지는 이기주의적 감정을 떠나서라도 그냥 남의 눈 흘끗하는 것조차 가끔은 기분이 찜찜해 지곤한다. 그러면서 또 남의 것을 보는 것 왜그리 좋아하는지...... 책에 있어서도 그렇다.... 소설도 좋아하시만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삶의 이야기..... 그런류가 더 재미있다. 이번에도 제목이 말해주듯 일기라는 게 너무 솔깃했다. 이 사람은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단지 난 그게 궁금했다. 저 멀리서 그 삶을 바라볼때 난 또하나의 삶을 살고 있는듯한 착각에 빠지곤 한다. |
| 최영미. 뭔가 도전적이고 도발적일 것 같은 작가. 하지만 이번에 낸 그의 새 책에서 우리는 그의 나이를 느낄 수 있다. 잘 익은 포도주 같은 느낌이라고 할까? 이번에 낸 그의 책은 거창하지 않다. 어쩌면 우리에게 작가 최영미가 아니라 인간 최영미로 다가오는 듯한 느낌이다. 그녀가 읽은 책, 본 영화, 그리고 일상에 대한 짧은 사색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평범하게 생을 사는, 조금은 따뜻한 눈길을 가지고자 하는 한 여인을 볼 수 있다. 그녀의 이번 글에 많은 비판이 있다고 알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그것을 비난할 수는 없다. 변신의 자유. 작가는 작가이기에 앞서 인간이며 우리는 그들에게 어떤 정형화된 틀을 요구할 수는 없다. 그 틀조차도 우리가 만든 것이기에.. 나는 그래서 그녀의 변신이 정겹고 아름답게 느껴진다. |
| 독자리뷰를 통해 독자리뷰를 또 쓰게 되었다. 최영미의 책은 그렇게 내게로 왔다. 나는 최영미라는 작가에 대해 배경지식이 별로 없다. 하지만 책을 읽어가면서 나는 그녀가 독신이라는 것을 알았고..나이 들어감에 달라지는 그녀의 분위기를 읽었고..똑같은 일상에서 오는 색깔을 그녀만의 색깔로 칠할 수 있는 남다른 재주를 보았다. 이 책은 그런 책이다. 그녀의 생각과 일기 같은 일상들을 여러 책에 투고했던 것을 모으고 엮어서 한권의 책으로 만든 것이다. 그녀는 과거를 회상할 줄 알고 자신만의 입장이 분명한 여자인것만은 분명하다. 내가 부러웠던 점은 똑같은 것을 보아도 느끼는 다른 점을 글로 표현할 수 있는 그 재주가 정말 부러웠다. 나 또한 지금 독자리뷰를 쓰면서도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나의 생각들이 나의 생각과는 다른 방향을 가고 있음을 안타까워하고 있다. 최영미는 그런 점에 있어서 나에게 대선배이다. 최영미와 조금이나마 친해지고 싶다면 이 책장을 펼쳤으면 한다. |
| 시인 최영미, 그녀는 읽히 알고 있듯이 '서른 잔치는 끝났다'라는 시집으로 대중에게 다가왔다. 당시 그녀의 시집은 전국을 강타(?)했고, 소위 시를 읽는다는 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시를 읽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녀를 처음 접했던 것은 그 유명한 시집이 아니라, 내가 일하던 케이블 방송사에 그녀가 출연하면서였다. 산문집인 '시대의 우울'을 출간하면서, 책의 내용과 함께 유럽여행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방송사의 성격때문에 빠뜨릴 수 없었던 그녀의 종교에 대한 대화가 그 프로그램의 주가 되었다. 그 날 스튜디오에서 만난 그녀의 모습은 다소 여린듯하면서도 강한 눈빛을 가진 시인이었다. 그리고 그녀를 두 번째 만나게 된 것이 바로 이 책 '우연히 내 일기를 엿보게 될 사람에게'다. 몇 해전(아마 시인은 기억하지 못하리라) 스튜디오에서 받았던 시인의 강한 인상을 떠올리며 주저없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할머니'라는 글을 시작으로 그녀의 생활 이야기, 일상에서 느끼는 것들, 시인이 되기 전에 우울(?)했던 시간들... 이런 것들이 솔직하게 씌여 있었다. 일상에서의 작은 기쁨, 행복 등등... 반드시 그런 것들을 느껴야 하는 것처럼 씌여진 많은 수필에 염증을 느꼈던 나로서는 반가운 책이 아닐 수 없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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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미의 <우연히 내="" 일기를="" 엿보게="" 될="" 사람에게="">는 최영미의 예전모습부터 현재의 모습까지 중첩되어 있다. 일기처럼 내밀한 자신의 고백은 아니지만, 최영미의 변화된 모습을 조금씩이나마 눈치챌 수 있다.
<서른 잔치는="" 끝났다="">라는 베스트셀러 작가이면서, 민족문학작가회의의 회원 그리고 <길>지나 <한겨례> 등의 매체에 솔직한 글을 썼던 작가. 그리고 미술에 대한 해박한 지식으로 미술관 여행을 떠날 수 있었던 미학전공자. 내가 알고 있는 최영미에 대한 전부일 것이다.
여기에서 볼 수 있었던 강력한 언어와 목소리를 너무 좋게 느꼈다. 겉모습과는 달리 강한 언어에서 난 매력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글이 나왔던 시점은 대부분 등단 한 후 몇 년 사이의 일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면 지금은. 결혼을 한 지금은... 최영미의 예전 모습이 훨씬 보기 좋았다라는 것을 감히 말하고 싶다. 이데올로기가 우리를 구원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우리는 이데올로기에 쌓여 있다는 것을 억지로 외면하는 것은 아닌지 싶다. [인상깊은구절] 두렵다. 내 자신이 얼마나 오래 버틸지. 언제까지 쓸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 다만 한 가지,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만큼만 하겠다는 생각뿐. 나는 지금 민족문학이니 민중문학이니 하는 데 필연적으로 따르게 마련인 어떤 의무감이나 뭐가 되야겠다는 내적인 자기강제로부터 멀찌감치 떨어져 있다. 그저, 어중간한 어정쩡한 전망보다는 괜찮은 부정 하나 하고 싶다. 그리고 시 이전에 삶에 대한 고민이 더 깊고 끈질기다는 것. 어떤 이데올로기도 현재 우리를 구원할 수 없으며, 결국 사랑과 연민만이 나 아닌 너를 더듬고 이해할 힘을 준다는 것, 잘 보낸 하루가 그저 그렇게 보낸 십 년 세월을 보상해줄 수도 있다는 것. 이 정도가 지금 내가 자신있게 할 수 있는 말의 전부이다.한겨례>길>서른>우연히> |
| 저는요. 서른이 되고 마흔이 되면 얼마나 사람이 너그러워질 수 있을까 가끔 생각합니다. 스물에 송곳같던 사람도 시간이 지나면 포기하고 내려놓으면서 여유를 갖게 되겠죠. 그래서 빨리 나이가 들었으면 좋겠어요. 대학에 막 들어왔을 때 일기장에 정서했던 '내 마음의 비무장 지대', '가을에는'.같은 시가 생각납니다. 내가 그를 사랑한 것도 아닌데 미칠듯 그리워질 때가 있다... 그래도 어딘가 남아있을, 잡초 우거진 내마음의 비무장지대에 그대, 들어오겠나요 어느날 문득 소나기 밑을 젖어보겠나요... 지금도 기억하는데, 그만큼 많이 읽었는데 아무에게도 이 시를 좋아한다 말한 적이 없어요. 내가 송곳같아서요. 누구를 다치게 할까봐 아무에게도 다가가지 못했던 거죠. 지금도 저는 별로 달라진게 없지만, 이 책을 읽으니 시인은 많이 달라진 것 같습니다. 아직도 조금은 불같고, 아직도 조금은 아팠던, 송곳같던 젊은 시절을 붙잡고 있긴 하지만요. 이 사람은, 남자로 여자로, 어머니로, 아버지로 사람을 구별짓는 틀속에 갖히지 않고 인간으로, 인간 그 자체로 나에게 다시 옵니다. 이 책한번 읽어보세요. 그러면요. 불편하지만 아늑한, 어머니는 아니지만 여자인, 어중간하지만 자유로운, 그런 느낌 가진 사람을 만날 수 있을꺼예요. 저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요. 시간이 지날수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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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엿보게 될걸 염두에 두고 일기를 써본 적이 있다. 일기라고 하기도 좀 우습지만 세상무게를 십자가인양 다 짊어지고 가시밭길을 가는 예수처럼, 고통이나 원망을 표현할 수 있는 여구는 다 동원해 노트를 메우고 누가 보아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방치해 놓았던 적이 분명히 있었다. 사춘기였을까? 그때의 기억을 이 책의 제목이 자극했나보다. 남의 일기를 엿보는 건 얼마나 가슴뛰고 짜릿한 경험일까. 얼마나 비밀스럽고 솔직한 이야기들이 그곳에 또아리를 틀고 숨어있을까.
시집 두 권과 산문집 <시대의 우울="">을 읽고 최영미 시인이라는 사람과 술잔을 기울이며 밤이라도 샜으면 하는 생각을 했었고 책소개 코너마다 김정란 교수의 비평에 대한 작가의 반박이 책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듯 소개되어 최소한 감상적이고 신변잡기적인 얘기들을 남루하게 늘어놓지는 않았겠구나 하는 마음으로 주저없이 책을 선택했다. 김정란의 비평에 대해서는 의아하고 모순된 내용들이 많다고 생각하던 차였고, 표지제목이나 시의 한구절 만으로 표절 운운한 그네의 발상에 되려 김정란,그가 외계인 E.T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작품에 대해. 창작의도나 과정에 대해 최영미적인 방법으로 솔직히 풀어나가겠구나 기대하며 책장을 넘겼고 역시..!,하는 부분도 없지는 않았다. 그러나 책을 덮고난 뒤 난 작가에게 직접 물어보고 싶었다. 서른이 되기 훨씬전부터 서른을 의식했던 작가가 자신의 책을 읽는 독자는 얼마나 의식하고 있는지를 말이다. 여러 지면을 통해 근래 발표한 산문들을 다 모아 놓은 것 같은데 쪽수가 줄더라도 뺄건 빼야 하지 않았을까.
1부의 (할머니),(끝끝내 도스),(저 달좀 보아요),(나의 바다...) 같은 글들은 지극히 개인적인 신변의 이야기들로 나로서는 재미도, 느낌- 적어도 내개 재미나 느낌은 쓰임새와 별개로 매우 중요하다- 도, 지면을 차지할 어떤 정당함도 발견하지 못했다. 레이디경향, 여성동아, 이프...그 글들을 실었던 여성지의 무게만큼 가볍게 여겨져 혹시 그 잡지의 독자들만을 의식한 건 아닐까 의심스러울 정도였으니 말이다.
최영미라는 이름을 눈도장삼아 7,500원을 지불하고 책을 구입한 독자를 재고했다면 어릴적 사진과 할머니의 기억,해외여행도중 비행기 안에서 만난 소년에 대한 추억,속초로 이주한 이후의 지극히 개인적인 일상등의 고루한 내용들은 신달자에세이도 아닌 다음에야 싹 제외시켰으면 얼마나 괜찮았을까 싶다. 그래서 책을 다 엮고 난후 그런 제목을 붙였을까? 일기니까, 내맘이니까. 작가에게 딴죽걸어 시비붙고 싶은 마음은 전혀없다. 그러기엔 책에 실린 대부분의 작품들이 그답고 좋으니까.
지금 본인이 원하지 않는게 무엇인지 확실히 알고있는, 양심을 버리면서까지 책을 팔고싶지는 않은, 김정란이 예전에 얘기했듯이 삶에 대해 어떠한 환상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거친어법에도 불구하고 매우 건강한 시인 최영미니까. 만약 최영미적이라거나 그답다는 말이 거슬린다면 그건 그가 자유로운 사유와 명료한 의식을 가지고 있으리라는 독자의 믿음을 미처 눈치채지 못해서이리라. 제대로 즐기지도 못하고 떠나보낸 우리들의 청춘을 함께 아파하는 동시대인들의 믿음을 말이다. [인상깊은구절] 두렵다. 내 자신이 얼마나 오래 버틸지, 언제까지 쓸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 다만 한가지,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만큼만 하겠다는 생각뿐. 나는 지금 민족문학이니 민중문학이니 하는데 필연적으로 따르게 마련인 어떤 의무감이나 뭐가 되야겠다는 내적인 자기강제로부터 멀찌감치 떨어져있다. 그저 어중간한 어정쩡한 전망보다는 괜찮은 부정 하나 하고싶다. 시대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