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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기록장 천삼십육번째.- 말라죽은 앵두나무 아래 잠자는 저 여자
"도서기록장 천삼십육번째.- 말라죽은 앵두나무 아래 잠자는 저 여자" 내용보기
가족극장이라는 연작시에서는 어머니가 나오지만 대체로 자신의 어깨에 올라타 꼼짝도 못한다는 이미지이고, 아버지는 이미 무슨 짓을 저질렀다는 설정이다. 그래서 저자는 아버지를 인공으로 여자로 만들어 인공으로 만든 그것으로 후비는(...) 복수를 한다.시인이 대체 무슨 일을 겪었는지 궁금해지는 면이 있었으나 읽으면 읽을수록 본인의 아버지보단 하느님 아버지가 아닌가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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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극장이라는 연작시에서는 어머니가 나오지만 대체로 자신의 어깨에 올라타 꼼짝도 못한다는 이미지이고, 아버지는 이미 무슨 짓을 저질렀다는 설정이다. 그래서 저자는 아버지를 인공으로 여자로 만들어 인공으로 만든 그것으로 후비는(...) 복수를 한다.


시인이 대체 무슨 일을 겪었는지 궁금해지는 면이 있었으나 읽으면 읽을수록 본인의 아버지보단 하느님 아버지가 아닌가하는 생각도 들었다. 계속 자신을 시체로 묘사하고 자신 따위가 태어난 것 자체를 좋지 않은 사태로 보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 발버둥은 결국 비정상적인 상황 자체가 익숙해지는 걸로 종결된다. 그녀는 아버지를 안으로 들이지도 못하지만 빼지도 못한 채 시를 종결짓는다. 생각해보면 이게 '여자의 일생'이 아닌가 한다. 82년생 김지영을 읽으면서 자신의 이야기라 생각하지 않으면서도 평소에 남동생 밥을 해주던 게 갑자기 지긋지긋해져서 신경질을 내보지만, 그것 또한 한때뿐인.

 


 


일단 대중들에게는 시 패러디로 이름이 나신 분이다.


이 시집에서도 나오지만 진달래꽃에서 즈려밟는다는 의미가 어떤 의민지를 몸소 알려주시는 분이다. (고어이니 주의 바란다.) 그러나 문단과 몇몇 분들에게는 하드고어로 이름이 나 있다. 아, 물론 선정성은 있다. 여느 고어들이 그렇듯이 여성과 남성의 음부가 가감없이 나오고 특히 전자가 노골적으로 나오는 편이다. 그러나 똥이 나온다. 그것도 많이 나온다. 요즘 나오는 깔끔한 고어가 아니라 90년대 똥과 침이 다 튀는 B급 고어이다. 비위가 안 좋은 사람들은 보다가 속이 안 좋아질 수도 있으니 주의를 요한다. 아무튼 난 90년대부터 제법 19금 문화를 제법 향유한 인간이라 서정성(?!)까지 느껴져 천천히 하나하나 음미하며 읽어보았다.

이 시집을 읽다보면 문득 비지터 Q라는 영화가 생각난다. 가족들이 배경인 고어 영화인데 질척질척한데다 마지막엔 어머니에게서 모유까지 분출된다. 지극히 남성이 만들법한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그러나 이 시집은 어디까지나 배설물(특히 똥)에 충실한 편이고 섹스와 관련된 이야기는 노골적으로 등장하지 않으며(안 나온다는 이야긴 아니다) 아버지가 나오지 않는 이상 자신의 몸 탐색을 주로 한다. 애인 이야기가 나오는 시는 단 둘 뿐이라 할 수 있다. 여성이 고어영화를 찍는다면 이런 느낌일까 생각했다.

사실 난 이 책을 추천하기 굉장히 난감함에도 다른 사람들에게 불구하고 읽으라고 권하고 싶다. 힐링 책들은 올바르고 착하며 청량하기 그지없지만, 그래서 재미는 없다. 가끔씩 할 수 있는 음울하고 야하고 비뚤어진 상상에 대해 죄책감을 가져다 준다. 이 책은 굉장히 시원하게 그런 잔소리꾼 같은 책들에게 자학으로 일침을 날린 뒤(사실 '내가 그렇죠 뭐'처럼 강력하게 남의 실수를 지적하는 사람의 입을 틀어막는 건 없다.), 그러면 안 될 곳에서 에로와 고어로 난장판을 벌이고 있다. 힐링에 질린 사람들을 치유할 수 있는 책이라 할까.

 

그라베

그 여자의 몸속에는 그 남자의 시신이 매장되어 있었다 그 남자의 몸속에는 그 여자의 시신이 매장되어 있었다 서로의 알몸을 더듬을 때마다 살가죽 아래 분주한 벌레들의 움직임을 손끝으로 느꼈다 그 여자의 숨결에서 그는 그의 시취를 맡았다 그 남자의 정액에서 그녀는 그녀의 시즙 맛을 보았다 서로의 몸을 열고 들어가면 물이 줄줄 흐르는 자신의 성기가 물크레 기다리고 있었다 이건 시간이야 근친 상간이라구 묵계 아래 그들은 서로를 파헤쳤다 손톱 발톱으로 구멍구멍 붉은 지렁이가 기어나오는 각자의 유골을 수습하였다 파헤쳐진 곳을 얼기설기 흙으로 덮었다 그는 그의 파묘 자리를 떠도는 갈 데 없는 망령이 되었다 그녀는 그녀의 파묘 자리를 떠도는 음산한 귀곡성이 되었다


 


약간 이 커플의 미래같아서 올려본다(...)
키리노 애정합니다.
v*******5 2018.01.15.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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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금기마저 파괴해버리는 용기?
"깊은 금기마저 파괴해버리는 용기?" 내용보기
여성시인인 김언희의 신성 모독적인 시들은 매우 과격하게 남성질서를 뒤흔들려고 하는 것 같다. 그녀의 시들은 우리가 혐오스럽게 생각하는 것들을 과감하게 시 전면으로 내세우고 거리낌없이 발설한다. 그래서 그녀의 시는 악몽과 같이 사람들에게 다가간다. 그녀의 시들이 섬뜩한 느낌을 주는 것은 시 전면에 내세운 금기, 또는 더러움이라고 우리가 생각하는 것에 묘하게 우리의 내면
"깊은 금기마저 파괴해버리는 용기?" 내용보기
여성시인인 김언희의 신성 모독적인 시들은 매우 과격하게 남성질서를 뒤흔들려고 하는 것 같다. 그녀의 시들은 우리가 혐오스럽게 생각하는 것들을 과감하게 시 전면으로 내세우고 거리낌없이 발설한다. 그래서 그녀의 시는 악몽과 같이 사람들에게 다가간다. 그녀의 시들이 섬뜩한 느낌을 주는 것은 시 전면에 내세운 금기, 또는 더러움이라고 우리가 생각하는 것에 묘하게 우리의 내면이 끌려가는 것을 느낄 때이다. 살부 충동, 남성적 질서를 파괴하고 싶은 충동은 근친상간을 스스럼없이 이야기하면서 '아버지'(상징적인 의미겠지만)의 근엄한 모습을 성을 바꿔 탕녀의 존재로 만드는데서 더욱 충격적으로 나타난다. 이리 와요 아버지 내 음부를 하나 나눠드릴게 아니면 하나 만들어드릴까 아버지 정교한 수제품으로 아버지 웃으세요 아버지 아버지의 첫날밤 침대맡에는 일곱 어머니의 창자로 짠 화환이 붉디 푸르게 걸려 있잖아요 벗으세요 아버지 밀봉된 아버지 쇠가죽처럼 질겨빠진 아버지의 처녀막을 찢어드릴게 몇 번이고 아버지 깊숙이 손잡이까지 깊숙이 아버지 심장이 갈래갈래 터져버리는 황홀경을 아버지 절정을 아버지 비명의 레이스 비명의 프릴 비명의 란제리로 밤단장한 아버지 처년 척하는 아버지 그래봤지 갈보예요 사지를 버르적거리며 경련하는 아버지 좋으세요 아버지 아버지로부터 아버지를 뿌리째 파내드릴게 -[가족극장, 이리와요 아버지] 아버지란 신성한 이름을 갈보로 바꾸는 이 신성 모독의 환상은 이 세상에 신성하지 않는 것들에게 가해지는 모독을 반어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다. 남성적 질서에 의해 여성으로 명명되는 것은 갈보로 만들어지는 것 아닐까. 여성은 남성적 힘에 매료되는 존재, '손잡이까지 깊숙이' 집어넣는 음경에 의해 황홀해하는 존재, 항상 갈보인, 섹스에 '사지를 버르적거리며 경련하는' 존재가 바로 여성으로 남성적 질서는 치부한다는 것을 고발하는 것? 남성은 여성으로 되고 여성은 남성으로 된다. 아버지와 딸의 근친상간이 이루어진다. 이 뒤바뀌고 도덕 없는 세계는 그러나 이 세상의 도덕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왜냐하면 남성이 된 여성의 목소리는 이 세계에서 낯선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흔히 들을 수 있는 야비하고 공격적인 목소리, 새디즘적인 남자의 목소리이기 때문이다. 남자는 공격적으로 섹스를 하고 여성이 자신을 잃어버리고 자신의 남근을 숭배하길 원하고 여성의 존재를 '뿌리채 파내'려고 하지 않는가. 김언희의 금기 파괴적인 몽상들은 이렇듯 남성적 권위질서의 전복에 대한 열망이 묻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전복적 사고를 가지기 위해선 이 보기 싫은 악몽 같은 환상들을 독자가 견디어 내어야 한다고 김언희는 생각하는 것이리라. 전복이란 금기를 깨고 새롭게 생각할 수 있을 때 그 가능성이 열리는 것이기에.

[인상깊은구절]
그 여자의 몸속에는 그 남자의 시신이 매장되어 있었다 그 남자의 몸속에는 그 여자의 시신이 매장되어 있었다 서로의 알몸을 더듬을 때마다 살가죽 아래 분주한 벌레들의 움직임을 손끝으로 느꼈다 그 여자의 숨결에서 그는 그의 시취를 맡았다 그 남자의 정액에서 그녀는 그녀의 시즙 맛을 보았다 서로의 몸을 열고 들어가면 물이 줄줄 흐르는 자신의 성기가 물크레 기다리고 있었다 이건 시간이야 근친 상간이라루 묵계 아래 그들은 서로를 파헤쳤다 손톱 발톱으로 구명구멍 붉은 지렁이가 기어나오는 각자의 유골을 수습하였다 파헤쳐진 곳을 얼기설기 흙으로 덮었다 그는 그의 파묘 자리를 떠도는 갈 데 없는 망령이 되었다 그녀는 그녀의 파묘 자리를 떠도는 음산한 귀곡성이 되었다 - [그라베]
YES마니아 : 로얄 r*******1 2001.02.06.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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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흩어버리기’ 실험의 결과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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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의 한 음습한 시골 마을 성의 주인은 봉건 영토를 돌보지 않는 마법의 취미를 가진 사람이다. 여기 저기 부글부글 끓는 비이커와 시험관. 그 속에 담긴 노랗고 파란 것들이 끓고, 마법사는 시커먼 무쇠 항아리에 박쥐의 발톱, 사자의 눈썹, 지렁이의 환대 같은 것들을 집어 넣는다. 아직 야생을 버리지 못한 개는 연신 으르렁 거리고, 여기 저기 기괴한 초상화 들이 걸려 있는 거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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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의 한 음습한 시골 마을 성의 주인은 봉건 영토를 돌보지 않는 마법의 취미를 가진 사람이다. 여기 저기 부글부글 끓는 비이커와 시험관. 그 속에 담긴 노랗고 파란 것들이 끓고, 마법사는 시커먼 무쇠 항아리에 박쥐의 발톱, 사자의 눈썹, 지렁이의 환대 같은 것들을 집어 넣는다. 아직 야생을 버리지 못한 개는 연신 으르렁 거리고, 여기 저기 기괴한 초상화 들이 걸려 있는 거대한 성. 2000년 한국에도 이에 못지 않은 분위기에서 실험을 하고 있는 사람이 있으니 그 이름은 ‘김언희’이다. 물론 이 사람의 작업실은 그다지 음침하지 않은 고층 아파트일 수도 있고, 이름 모를 약품들이나 재료들은 없다. 그녀의 실험은 말이라는 추상의 재료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추측컨대 ‘언희’라는 이름은 필명이 아닐까? 물론 그 뜻은 말(言)을 놀린다(戱)는 뜻일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이미 성립되어 있는 언어의 질서를 바탕으로 살아가는데 작가는 온갖 말들을 이렇게 희(戱)하고 저렇게 롱(弄)한다. 그 재미있는 여러 가지 놀음 중에서 잔인하고 성(性)스러운 방향의 극단으로 흐른 것들을 한데 모아 내어 놓은 결과물이 바로 ‘말라죽은 앵두나무 아래 잠자는 저 여자’이다. 말을 흩트려서 말의 질서를 와해시키고, 이에 화난 말들은 독자들의 가슴 속을 질주하여 어지러운 말발굽들을 남긴다. 파격이 주는 감흥은 언제나 독특하고, 금기를 넘어서는 발걸음은 언제나 가볍게 떨린다. 그런데 문득 예전에 생각해 놓은 퀴즈가 떠오른다. Q – 이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선물은? A – 1. 찢어진 채 돌아온 연애 편지 2. 사람의 목이 든 채 배달된 상자. 3. 야광으로 만들어진 자그마한 성모 마리아상. 4. 가장 재미있는 야구시합 구경 중에 날아든 입영 통지서. 짐작대로 말하고 싶은 답은 3번이다. 연애편지야 시간이 가면 해결될 듯 하고, 상자는 신고하거나 버리거나 하면 되고, 입영통지서가 왔더라도 그 시합은 마저 볼 수 있을 테니까….. 그러나 야광으로 만들어진 마리아 상은 그저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잠자리에 들려고 불을 끌 때 마다 언제나 나타나 불완전해서 인간인 인간의 그 불완전함을 준엄하게 노려볼테니까말이다. 게다가 버릴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하고 싶은 말은….. 이렇게 철저한 파괴와 자극적인 언어의 실험은 강렬한 자극을 주는 데는 성공적이나 진정으로 강렬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공유된 말의 질서 속에서 일상어를 사용해서 주는 감동은 지속적이고, 그 만큼 힘든 작업일 것이다. 하지만 이런 파괴적 언어 행위는 분명 새로운 영감을 불러 일으킨다. 극단으로의 체험은 언제나 새로운 인식을 주고, 다양함을 부여하기도 한다. 만약 유쾌하진 않으나 독특하고 용감하기 이를 데 없는 이 시집을 다시 읽는다면, 시집 속에 뚫려있는 구멍과 널려있는 똥을 바를 정(正)자로 표시하며, 아니 이 시집에 어울리고, 이 시집처럼 상상하지 못할 의외의 팔진법 아닐 비(非)자로 세어가며 읽어보고 싶으다.
e*****w 2003.05.16.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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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골적인 언어의 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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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언희씨를 알게된 건 '트렁크'라는 그녀의 처녀작을 읽고 나서다. 그 작품을 읽었을 때, 몸을 트렁크로 비유했으며 스프링이 소리를 내며 섹스를 한다는 표현 등에 충격을 받았다. 몸의 시대인 만큼 그녀의 시는 시대에 맞게 적절했으며 누구도 넘볼 수 없는 독특한 시적발상으로 내 신경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첫번째 시집의 충격에 벗어나지 못한 나는 두번째 시집에도 그만큼 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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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언희씨를 알게된 건 '트렁크'라는 그녀의 처녀작을 읽고 나서다. 그 작품을 읽었을 때, 몸을 트렁크로 비유했으며 스프링이 소리를 내며 섹스를 한다는 표현 등에 충격을 받았다. 몸의 시대인 만큼 그녀의 시는 시대에 맞게 적절했으며 누구도 넘볼 수 없는 독특한 시적발상으로 내 신경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첫번째 시집의 충격에 벗어나지 못한 나는 두번째 시집에도 그만큼 기대를 했었다. 그녀만의 독특한 시각은 나를 또 어떤 흥분의 도가니로 인도할까, 하는 기대감으로. 솔직히 말하면, 첫번째 시집보다 못하다. 몸을 소재로 했고 끊임없이 그것에 대해 탐색했으며 전번과 마찬가지로 '아버지'가 악역(?)임에 틀림없다. 아버지는 이 시대를 지배하는 남자일 수도 있고 성을 상품화하는 사회일 수도 있는, 부정적인 기득권세력이라고 본다. 이런 상징적인 아버지가 끊임없이 성을 갈구하고 파괴한다. 이런 표현에 있어서 첫번째 시집은 약간 수줍은 듯 하면서도 섬세한 상징적인 요소들로 굵직한 제 목소리를 냈다고 할 수 있으나 두번째 작품은 같은 연장선상이면서도 너무 노골적이다. 노골적이나 못해 내 치부를 드러낸양 부끄럽기까지 하다. 좀 더 대범해졌다고나 할까. 뒷부분으로 갈수록 그런 현상은 심해졌다고 볼 수 있다. 이런 면, 금기를 깨뜨렸다고 하는 면에서는 새롭다고 할 수 있으나 작품을 읽는데 있어서는 어떤 감동, 아름다움, 새로움, 독서를 하는데 있어서의 긍정적인 면이 있어야한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현대시의 다의성을 든다고 하지만 '충격' 하나만으로 밀어 붙이는 것은 좀 문제가 있지 않을까. 김언희씨의 작품을 좋아하는 독자로서 혹독한 평인지도 모르겠으나 첫번째 시집이 내게 있어 너무나 신선했기에 더욱 큰 새로움을 기대를 해서인지 모르나 그만큼 실망감도 컸다. 노골적인 시어들이 범람함과 함께 빈번한 반복사용으로 시를 읽는 나, 독자를 실망시켰다.
c*****l 2001.12.20.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