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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는 어떤 꿈을 꾸며 "다만 흘러가는 것을 듣"고 있는 것일까
"상처는 어떤 꿈을 꾸며 "다만 흘러가는 것을 듣"고 있는 것일까" 내용보기
시인을 생각해 봄에 있어, 결코 그의 시와 떼어서 따로 볼 수는 없는가 보다. 그의 생활이 그렇듯 그의 모습은 시집 "다만 흘러가는 것을 듣는다"에 빼곡히 드러나 있다. 그의 시집은 온통 생채기 투성이다. 극성스럽고 완강한, 그래서 어딘가 과장과 허식이 옅보이는 그런 아픔이 아니다. 오랜 시간 동안 안으로 안으로 깊어져 그 극악스런 고통을 몸과 마음으로 겪어온 시인으로서는
"상처는 어떤 꿈을 꾸며 "다만 흘러가는 것을 듣"고 있는 것일까" 내용보기
시인을 생각해 봄에 있어, 결코 그의 시와 떼어서 따로 볼 수는 없는가 보다. 그의 생활이 그렇듯 그의 모습은 시집 "다만 흘러가는 것을 듣는다"에 빼곡히 드러나 있다. 그의 시집은 온통 생채기 투성이다. 극성스럽고 완강한, 그래서 어딘가 과장과 허식이 옅보이는 그런 아픔이 아니다. 오랜 시간 동안 안으로 안으로 깊어져 그 극악스런 고통을 몸과 마음으로 겪어온 시인으로서는 이미 생활이 되어버린 아픔이다. 그것은 외로움이었다. 언젠가 모악 산방을 들른 적이 있었다. 사실, 그닥 시인과는 지인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여러 사람들과 어울리는 자리에 두어 번 먼 발치에서 그의 모습을 본 적이 있다는 것을 미끼 삼아 친구 서넛과 함께 그의 고즈넉하고도 은일한 살림터를 침입해 들어간 것이다. 전주에서 남쪽으로 차를 40분 가량 달려가면 나오는 작고 평범한 마을이었다. 그 마을에는 "풍경"이라는 제법 맛갈스럽고 따스한 국물을 내어주는 국수집을 겸해 찻집이 있어 그곳에서 차를 한 잔 마시고는 마을 길을 둘둘 돌아 모악산방이라 불리는 헐겁고 느슨한 여느 농가와 다를 바 없어 보이는 그의 집을 찾아 간 것이다. 그의 집은 마을에서 한모퉁이를 돌아 있다. 그러나 절대 멀리 떨어지지 않아 있다. 그는 사람 사는 곳과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그래서 세상事 모른 척 외면할수도 있고, 또 그러지도 못하는 위치에서 살아간다. 그와 녹차 한 잔씩을 앞에 두고 빙 둘러 앉아 나눈 짧은 몇 마디의 대화에서도 그는 그의 시가 보여주는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과연 무엇이 시인으로 하여금 그렇게도 아프고 외롭게 만들었을까. 시인의 주관을 꿰뚫지 못하는 것이 나로서는 안타깝지만, 그렇다고 시인의 비밀스러운 주관까지 모두 꿰뚫어 버린다는 것 또한 송구스러운 일이 될 것이기에 나는 애초에 그것을 포기하고 말았다. 나는 "풍경의 저편"이라는 시에서 그의 소망 중 하나를 찾아 본다. 흰 억새꽃들은 먼길을 걸어오며 서로의 지팡이가 되어 백발의 부부가 되었다. 시인은 그렇게 누군가를 만나서 사랑하고, 또 그 사랑보다 더 깊은 의지를 꿈을 꾼다. 그러나 "완강한 차단기"처럼 현실의 삶은 "가위 눌림"이나 "악몽"이 되어 있다. 시인은 어떤 벽 앞에서 좌절하였던 것일까? 시인은 '사는 일에 서툴'고 그래서 시인의 정신은"길을 잃고", "유목민의 꿈"처럼 떠 돌아 다닌다. 그래서 그는 '싸리나무 빗자루'로 어두운 자신의 마당 한켠을 쓸어내며, 자신의 몫은 "견디는 일"이라고 말한다. '선운사 동백꽃'에 같이 아파하고 "봄날"에는 "흰나비 떼"가 되고 여름 날에는 "매미"처럼 울어 보기도 한다. 그러나 시인의 진정한 소망은 무엇일까? 품 너른 나무가 되는 것일까? 손등과 다리를 찢기며 산에서 베어온 나무로 저녁나절 한기를 쫓기위해 아궁이 속으로 집어던져진 나뭇가지들의 도끼질 당한 상처들이 무섭게 타오른다. 뽀얀 재로 남는다. 그것을 모아다 부추밭에 뿌리면 하얀색 부추꽃으로 환생하길 꿈을 꾼다. 그렇다면 시인은 그렇게 환생한 세상이 어떤 세상이길 바라는 것일까? 아니라면 시인은 또 어떤 다른 모습으로 환생하길 꿈꾸는 것일까. 그는 어떤 내일 혹은 꿈을 꾸며 햇볕이 드는 툇마루에 나른히 앉아 다만 흘러가는 것을 듣고 있는 것일까? 이 지점에서 나는 시인을 더이상 따라가지 못하고 주저 앉아 버리고 만다. 그러나 나는 박남준 시인이 좋다. 그의 시는 한국적이다. 그보다는 시골에서 자랐고, 지금도 그 고향으로의 불가능한 귀향을 꿈꾸는 내 감성에 맞아 떨어진다는 표현이 옳겠다. 김소월의 시만큼 단아하지는 못해도 그보다 훨씬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더 많고 깊은 이야기들을 쉽게 보여준다. 박정만 시인만큼 언어가 초절하지는 않아도 편안하게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의 시는 같은 시대의 안도현시인이나 김용택시인 보다는 훨씬 더 주관적 깊이에서 깊고 풍성한 매력을 가지고 다가온다. 그의 집으로 향해 난 동네 골목길의 끝자리에 우수수 바람 결에 쓸리던 댓잎 부딛는 소리, 그 허전하고 서느런 바람소리가 들려 오는 듯 싶다.

[인상깊은구절]
문, 혹은 벽 한 시절 밀고 나갔던 길을 문이라 생각했다 이곳과 저곳의 경계가 분명했을 때였다 그 경계의 사이에 문은 언제나 빗장이 완강했다 문을 지탱하는 것이 벽이었다니 이곳과 저곳의 그 일치할 수 없는 벽이 다리에 이르는 것이었다니 ......
d***0 2001.11.20. 신고 공감 2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