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리뷰 (4)

한줄평
평점 분포
  • 리뷰 총점10 100%
  • 리뷰 총점8 0%
  • 리뷰 총점6 0%
  • 리뷰 총점4 0%
  • 리뷰 총점2 0%
연령대별 평균 점수
  • 10대 0.0
  • 20대 0.0
  • 30대 0.0
  • 40대 0.0
  • 50대 10.0

포토/동영상 (1)

리뷰 총점 종이책
혼란한 시기 민중의 등불 해월 최시형/ 자음과모음
"혼란한 시기 민중의 등불 해월 최시형/ 자음과모음" 내용보기
들어가기   나무는 떡잎을 보면 안다고 한다. 사람도 어릴 적 모습을 통해 그 미래를 짐작할 수 있다. 어릴 적 그 잠재적인 능력과 인간됨이 드러난다고 보면 되겠다. 요즘 곳곳에서 드러나는 10대들의 모습을 보면 그런 생각을 안 할 수가 없다. 지난 동경 올림픽에 참여한 고등학생들, 연예계에 참여한 초등학생들의 능력을 보고 있노라면 정말 대단하단 생각이 든다. 지난 구미에서
"혼란한 시기 민중의 등불 해월 최시형/ 자음과모음" 내용보기

들어가기

 

나무는 떡잎을 보면 안다고 한다. 사람도 어릴 적 모습을 통해 그 미래를 짐작할 수 있다. 어릴 적 그 잠재적인 능력과 인간됨이 드러난다고 보면 되겠다. 요즘 곳곳에서 드러나는 10대들의 모습을 보면 그런 생각을 안 할 수가 없다. 지난 동경 올림픽에 참여한 고등학생들, 연예계에 참여한 초등학생들의 능력을 보고 있노라면 정말 대단하단 생각이 든다. 지난 구미에서 행해진 전국 육상대회에서 초, 중등학교 학생들의 기록이 정말 대단했고, 앞으로 우리 육상계의 황금시대가 오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볼 수 있게 하는 흔적도 보였다. 앞으로 이들을 어떻게 길러 나갈 것인가가 한국 사회에 남겨진 과제가 아닌가 여겨진다. 정말 이들이 인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해월 최시형은 

 

해월 최시형도 어릴 적부터 남다른 풍모를 가지고 있었다는 얘기를 한다. 어려운 가정환경 속에서도 꿋꿋하게 자신을 지키고 남다른 생각을 하면서 성장한다. 부모가 모두 일찍 돌아가시고 15세부터 일가친척의 집을 돌아다니며 (그것도 여동생과 함께) 그 집의 일꾼과 같은 신분으로 자란다. 그러면서도 구김살 없이 잘 자란다. 인권에 대한 생각과 그것에 만들어가는 제도에 대한 회의, 그 답답함을 지닌 채 성장한다. 그러면서 그의 일에 대한 능력과 인품으로 인해 주변 사람들에게 호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런 것들이 가정을 이루면서도 세인들에게 인정받는 존재로 나타난다.

 

그러다 수운 최제우를 만난다. 그것은 그의 인생에 획기적인 전환점이 된다. 수운과의 만남은 자신이 이제까지 지녔던 많은 세상에 대한 질문을 해결하는 계기가 되고, 결국 수운을 스승으로 섬기게 된다. 수운도 그의 능력과 자질을 인정한다. 둘은 모두 신라 때의 명문장가 최고운의 후손으로 그려진다. 둘은 서로에 대한 인정과 동질성에 의해 깊은 교감을 느낀다. 결국 천도교를 창시한 수운과 2대 교주로 선택된 해월의 관계가 된다. <사람이 곧 하늘이다라는 인내천 사상을 기반으로 하는 천도교(서양 기독교에 반해 동학)를 이끌어 가는 인물들이 된다.

 

동학의 길과 해월

 

정상 역시 수운을 보는 순간, 풍모와 위엄에 놀랐다. 한지를 만들고 배달하면서 양반집의 숱한 선비들을 만나 보았지만 수운 같은 인물을 보지는 못했다. 그의 문하에 들어가 공부하면 이치가 풀릴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상의 내면에 가득 차 있던 의문은 차별의 근원은 어디에서 오느냐 하는 것이다. 또 하나의 고민은 인간이 저마다 주체성을 지닐 수 없는 현실의 제도다. 그중에서 그를 가장 고통스럽게 한 것은 삶의 고통이 어디에서 온 것이며 고통을 넘어설 수 있는 길이 어디에 있는가? 하는 것이다. p47

 

해월이 동학에 들어서던 때다. 해월이 수운을 만나면서 삶이 획기적으로 변한다. 사람을 중심으로 한 평등사상을 가지게 되었고 그것으로 인해 자신이 가진 의문점이 해소되었다. 그 후 그는 동학을 위해서 그의 삶을 살아간다. 수운이 대구에서 참형을 당하고 난 후에는 수운의 가족을 빼돌려 피난하게 하고, 자신도 피해 오지로 숨어든다. 그리고 지혜롭고 조직을 만들고 그것을 위해 자신을 바치게 된다. 그 후 동학은 전국적으로 요원의 불길처럼 번지게 되고, 사회운동으로 발전해 나간다. 동학혁명도 그런 과정 속에 이루어진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몸 안에 저마다의 하늘을 모시고 있습니다. 그러니 양반이나 상놈이나 누구를 막론하고 하늘처럼 존귀한 존재입니다. 사람이 하늘인데 양반이 따로 있고 상놈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양반이나 상놈이나 가리지 말고 하늘처럼 대하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 우리가 가야 할 길입니다. p56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인내천(人乃天) 사상에 관한 강론이다. 동학의 기본적인 이념이다. 사람들은 이 강론에 열광을 했다. 유교 이념과는 상반되는 신분철폐의 평등사상은 모인 도인들에게 가슴을 시원하게 하는 얘기였다. 그는 최재우의 시천주(하늘을 모시고 신다)에서 인내천(사람이 곧 하늘이라)으로 발전시킨 사상을 보여준다. 그의 삶은 늘 쫓겨 다니는 삶이었다. 농민으로 궁핍한 삶을 살아가면서 영양 용화리에 거처를 정해 살았다. 그 후 그의 소문을 듣고 많은 사람들이 용화리로 거처를 옮겼다. 이들로 접주제의 동학 기본 질서를 만들고 평화를 누리는 시간이 있었다. 하지만 사회가 그들을 평화롭게 살도록 두지는 않았다.

 

성을 지키던 수교 윤석중과 교졸이 정적을 깨트리는 함성에 깜짝 놀라 발포를 했다. 교졸들이 쏘아 대는 총성이 영해부 성에 메아리쳤다. 몇몇 교졸이 관아 담장 아래에 엎드려 동학도를 향해 조총을 쏘아댔다. 맨 앞에서 죽창을 쥐고 진격하던 장기 도인 하나가 총탄에 맞아 고꾸라져 피를 흘리더니 즉사했다. 선봉장인 경주 도인 박동혁도 총에 맞아 쓰러져 이내 숨이 끊겼다. 강수는 선두 공격 대오가 흩어지는 광경을 보고 앞장섰다. 공격 대오가 다시 전열을 가다듬고 진격을 시작했다. 그때 강수가 옆구리 쪽에 총탄을 맞고 쓰러졌다. p79

 

영해를 중심으로 도인들이 무장봉기를 획책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는다. 해월의 기본적인 사상이 무저항비폭력 운동이다. 간디의 사상을 많이 닮았다. 그러면서 자신들의 뜻을 새워나가는 것이다. 주로 말씀을 공부하고 수도를 하면서 하느님을 마음에 그리는 삶을 살았다. 하지만 영해에서 추구하고 있는 도인들의 생각이 교조신원운동을 내걸고 하고 있는 일이 되어 여러 차례 그들의 요구를 묵살하다가 결국은 승인을 한다. 주인으로 명명되어지는 해월의 승인이 없고는 많은 도인들을 모을 수 없기 때문에 영해부를 공격하고자 하는 세력들은 해월의 승인이 꼭 필요했고 그것을 수차례에 걸쳐 요구를 한 것이다. 결국 이 영해부 공격에 성공을 해 관리들을 축출하고 성을 접수했으나 그 후가 문제였다. 그곳을 지킬 수 있는 능력이 없었던 것이다. 영해를 무력 투쟁을 했던 지도부들과 참여했던 모든 사람들이 쫓기는 삶을 살지 않을 수 없게 되고 해월도 쫓기는 삶을 살아가게 된다. 가족들도 데리고 갈 수 없는 상황이 되기도 한다.

 

해월의 이 후의 삶은 도피의 삶이다. 대원군이 정권을 잡으면서 동학에 대한 고집스러운 파괴를 일삼는다. 지도부들을 잡고자 혈안이 된 모습을 보여주고, 동학이라는 단체를 인정하지 않는다. 해월은 1864년 스승 수운이 대구에서 목이 베였던 날부터 시작된 끊임없는 도주와 배고픔과 불안과 참혹한 고독의 시간을 보낸다. 이 같은 고난의 행군이 이후 1894년 동학혁명이 일어날 때까지 무려 30여 년의 긴 세월을 함께할 줄은 그도 몰랐으리라. 아니, 그의 생애 마지막 날가지도 가시밭길 속 피신의 역사로 채워질 운명인 것을 그는 진작에 알지 못했다. 하지만 피신하는 가운데서도 그는 동학의 근간을 세우는 일에 몰두했고, 동학은 그로인해 체계가 세워지게 되었고, 존재가 뚜렷해지기 시작했다. 동학을 위한 그의 업적은 대단하다.

 

18805월 하순 인제군 남면 갑둔리 김현수의 집에다 간행소를 설치하고 판각 작업을 했다. 이곳에서 초판 동경대전리 간행됐다. 100여 부를 출간했다. 18817월에는 단양군 천동리에 있는 여규덕의 집에서 용담유사를 간행했다. 천둥리는 소백산 줄기의 해발 1342m인 도솔봉 북쪽 산자락에 위치해 있었다. 또 이곳은 해월의 거처가 있는 송두둑에서 약 2km 떨어져 있었다. p118

 

동학이 단체의 성격을 갖출 수 있게 된 배경이 되는 책들이다. 동학의 경전이라 할 수 있다. 도인들은 이 책을 통해서 더욱 동학사상을 수용하게 되고, 동학이 광범위하게 번질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한다. 그리고 제도적으론 육임제를 운영 운영한다. 육임제는 교장, 교수, 도집, 집강, 대정, 중정 등으로 나눈 조직을 말한다. 이 조직은 동학 본부인 대도소에서 처음 실행돼 각 지역 포 단위의 도소로 확대됐다. 육임제는 동학이 전국적인 조직체로 발전하는 데 결정적인 기틀이 됐다. 이를 통해 전국의 도인들이 하나가 될 수 있는 조직체가 될 수 있었다.

 

이때 나라는 혼란에 혼란을 가져오고 있었다. 조선왕조가 힘을 잃고 지방관들의 수탈이 극심한 지경에 이르렀다. 도인들은 관리들에게 재산까지 다 빼앗기는 입장에서 해월이 거주하는 곳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이는 동학 조직체가 얼마나 힘이 있는가를 보여줄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2만이나 모인 동학의 무리들은 질서정연했다. 그것은 해월이 가르친 덕분이었다. 해월은 동학도인들에게 공문을 통해 수신을 잘 할 수 있도록 몇 가지 지시사항을 잘 준수하도록 가르쳤다. 그것이 모여서도 한결같이 지켜지는 사항이 되었고 단체가 함께 생활할 수 있는 틀을 만들 수 있었다.

 

동학도들은 2만여 명의 무리를 이루었지만 질서정연했다. 서로 다투는 일도 없었고 주변이 청결했다. 대소변의 흔적은 물론 침을 밭은 자국도 없었다. 해월이 이미 오래전에 가르친 청결 의식이 몸에 배었기 때문이었다. 도인들은 대변을 보거나 가래침을 뱉으면 반드시 흙에 묻는 것이 생활화되어 있었다. p158

 

이렇게 사람들이 모이니 정부에서는 위기의식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사자를 보내어 동학과 협상을 하기도 했다. 협상이 지지부진하자 토벌군이 내려오기도 했다. 정부는 늘 동학에게 약속을 하면서 약속을 어겼다. 하지만 해월은 정부군과 무력으로 충돌하기를 원하진 않았다. 그래서 눈의 끝에 해산을 명령했고 도인들은 그들의 삶의 터전인 땅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전라도 지방의 민심이 흉흉했고 도인들의 마음이 불타올라 해월이 걱정하는 일들이 진행되고 있었다. 이것이 동학혁명의 시작이다. 정읍 대접주 손화중, 태안 대접주 김개남, 고부 접주 전봉준 등이 일을 꾸미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실력 행사를 준비하고 있는 듯했다. 후천개벽의 때라. 해월은 무력 봉기를 막고 비폭력으로 그들의 뜻을 펴려고 했다. 하지만 전라도의 민심이 이미 그 단계를 넘어서고 있었다.

 

해월은 1017일 보은에서 최고 지도자 회의를 열었다. 강경론자 김연국과 온건파인 손병희, 손천민이 격론을 벌였다. 지도자들의 토론을 다 듣고 난 해월이 입을 열었다. 마음을 굳힌 듯 보였다.

이것이야말로 하늘의 뜻이요, 하늘의 운이라고 보네. 내 오랫동안 무력 투쟁에 대해 침묵으로 반대하고 질타하고 경고도 했던 게 사실이지만......, 이제 옳고 그름을 밝힐 때가 다가온 듯하네. 호남 지역 도인들의 목숨을 건 혁명 의지를 도와 함께 나가 싸우세. 외적을 몰아내고 스승의 원을 풀어 추천개벽을 이루기 바라네!”

 

해월의 결단이다. 이것이 동학혁명이 전국으로 비상하는 실질적인 상황을 만든다. 전라도에서 불씨가 인 것을 해월의 결단으로 기름을 부은 것이다. 동학혁명은 외세거부, 사람이 주인인 나라를 만들고자 하는 동학의 이름으로 이루어진 혁명이다. 우리는 녹두장군 전봉준을 동학혁명과 연루해 전부인 것처럼 안다. 하지만 당시 동학의 실질적인 지도자가 해월이었고, 해월의 결단이 없었으면 그렇게 거대한 민중혁명은 되지 않았으리라 생각된다. 해월이 그런 결정을 내린 것이 옳은 것인지 그렇지 않은지는 역사가 판단할 것이다. 단지 많은 도인과 농인들이 죽었고, 이를 기회로 일본의 대륙 진출이 더욱 활성화되었다는 안타까움은 있다. 해월이 비폭력을 고집했다면 동학혁명이 어떠한 형태로 나아갔을까? 아마 지방의 민란으로 끝나지 않았을까?

 

동학혁명을 앞두고 70여 세의 해월은 결단을 내리고 손병희를 통령으로 임명한다. 실질적으로 제 3대 동학의 교주 탄생이다. 혁명에 나선 도인들은 죽창과 농기구로 무장한다. 손병희는 경기, 충청, 경상 등의 도인들 10만을 아우르고 전라 동학군과 합류한다. 그리고 외세 척결을 위치며 상경한다. 우금치에서 왜군들과 대치하게 되고 우금치를 뚫지 못하면 그들의 미래가 없다는 것을 직시한다. 그리고 온 힘을 다해 왜군과 정부군 앞에 선다. 그들은 화력에서 전세가 꺾이는 것을 목도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된다. 그 후 전라의 동학지도자들은 모두 잡혀 처형을 당한다.

 

해월은 우금치에서 가까스로 탈출해 태백산맥을 중심으로 거처를 옮겨가면서 도피의 삶을 살아간다. 또한 혁명의 상황에서 국가적인 큰 죄인이 된 동학의 지도부들은 모두가 쫓기는 신세가 된다. 해월은 결단을 내린다. 지금은 명맥을 유지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생각을 하고 손병희를 비롯한 지도부를 각자 도피할 수 있도록 한다. 후일을 기약하고자 하는 마음에서다. 그리고 자신은 바람막이로 돌출되어 관군들에게 잡힌다. 그 후 대역죄인으로 해월 최시형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고 얼마 못 가 500년의 조선 왕조도 막을 내렸다. 또한 일본이 조선 땅을 차지했다. 이후는 동학은 손병희의 주도아래 동학이 운신을 해나간다. 3.1운동에 민족 대표로도 이들이 33인의 한 사람들로 참가한다.

 

나가기

 

해월은 정말 남다른 삶을 살아간 사람이다. 당시 사회에서 정말 영향력이 컸던 사람이라 할 수 있다. 동학이 급격하게 세가 불어나는 것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혼란스럽고 힘든 세상에 민중들의 유일한 희망으로 동학이 나타나게 되었다는 것을 부인하지 못한다. 이 동학의 체계를 세우고 질서를 만든 사람이 해월이다. 그는 비폭력무저항을 신조로 살았다. 하지만 혼자서 결정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기에 무장봉기를 허락하지 않을 수 없었고 그것이 동학이 세상을 놀라게 할 힘을 지닌 세력이라는 것을 알리는 계기도 되었다. 하지만 동학이 관군들과 대치하여 죽음과 고통 속에 살아가는 결과를 낳게 만들기도 했다.

 

위대한 세상을 만들고자 했던 동학의 2대 교주 해월 최시형은 그렇게 평생을 쫓기는 삶을 살았다. 쫓기는 삶 속에서 민중들을 위한 희망의 등불이 된 사람이다. 그의 삶은 궁핍하고 힘겨운 삶이었다. 하지만 정신적으로는 빛나는 보석처럼, 별처럼 하늘가에 있었던 사람이다.

 

예스24) 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j****3 2022.01.04. 신고 공감 15 댓글 4
리뷰 총점 종이책
Think 1. 모두가 하늘님이다. 그러니 사람을 볼 때 늘 우러러 보라
"Think 1. 모두가 하늘님이다. 그러니 사람을 볼 때 늘 우러러 보라" 내용보기
<위인전>을 읽는 적절한 시기는 따로 없다. 누구나 위인이 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위인전>을 꼭 읽어야 하느냐 마느냐는 전적으로 독자에게 달려 있고, 취향에 따라 많이 읽든, 적게 읽든 상관할 바가 아니다. 하지만 단 한 번뿐인 삶을 뜻 깊고 멋지게 살고 싶다면 <위인전>은 꼭 읽어야만 할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위인전>을 읽어야 하느냐고 묻는다면 '많이 읽
"Think 1. 모두가 하늘님이다. 그러니 사람을 볼 때 늘 우러러 보라" 내용보기

  <위인전>을 읽는 적절한 시기는 따로 없다. 누구나 위인이 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위인전>을 꼭 읽어야 하느냐 마느냐는 전적으로 독자에게 달려 있고, 취향에 따라 많이 읽든, 적게 읽든 상관할 바가 아니다. 하지만 단 한 번뿐인 삶을 뜻 깊고 멋지게 살고 싶다면 <위인전>은 꼭 읽어야만 할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위인전>을 읽어야 하느냐고 묻는다면 '많이 읽을수록 좋다'고 대답하고 싶다. 좋은 친구를 사귀기 위해서 많은 친구를 겪어봐야 하는 것처럼 나에게 딱 맞는 <위인전>도 많이 읽어봐야 '롤모델'로 삼고 싶은 위인을 만나기 때문이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롤모델'을 꼭 따라할 필요는 없다는 점이다. 발명왕 에디슨이 되고 싶다고 오리알을 품어볼 필요는 없다는 말이다.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 조지 워싱턴처럼 솔직하고 정직할 필요는 없다는 말이다. 심지어 윈스턴 처칠처럼 되기 위해 퇴학을 경험할 필요는 절대로 없다. 이는 그런 위인들의 업적을 돋보이기 위해서 고르고 고른 '어린시절의 일화'일 뿐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런 일화 가운데는 따라하면 좋은 점도 있긴 하다. 이를 테면, 아인슈타인의 '사고실험' 같은 것 말이다. 어릴 적부터 '공상(상상력)'으로 다져진 풍부한 사고력을 바탕으로 '상대성이론'을 완성했다는 일화는 과학자라면 반드시 갖춰야 할 좋은 습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위인 따라하기'가 아니라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보고 구체화시켜 보는 실천력이다. 자신의 기질은 무엇인지, 자기가 좋아하고 싫어하는 성향은 무엇이고, 그로 인해 잘 하는 것과 잘 못하는 것을 파악해서 '자신의 적성'을 찾으려는 노력이 인생을 살다보면 꼭 필요할 때가 있기 때문이다. 그 중요한 '적성 찾기'는 빠를수록 좋은데 10대 청소년시절에 찾아서 실행에 옮기면, 20대에 시행착오를 거치고, 30대에 실력을 다지며, 40대에 무르익어서, 50대부터는 참되고 안락하고 풍요로운 삶을 살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허나 20대에 찾거나 30대에 찾더라도 절대 늦은 것은 아니다. 심지어 인생의 끝자락인 70대에 적성을 찾아도 괜찮다. '적성'을 찾고 난 뒤부터는 하루하루가 행복한 나날일 것이기 때문이다.

 

  위인들의 삶이 꼭 그렇다. 위인들의 삶이 매일매일 행복했다는 것이 아니라, 또한, 위대한 업적을 남겨서 유명해졌을 때에 비로소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라, 시련과 역경이 반복되는 그 순간에도 '자신이 걸어가야 할 길'이 무엇인지 알고 있기에 육신과 정신의 고통을 이겨낼 힘을 낼 수 있고, 그 힘으로 끝내, 인류 모두에게 귀감이 될 위대한 업적을 남기게 되기 때문이다. <위인전>을 읽으면서 모든 것을 이겨내는 그 '원동력'을 찾아낼 수만 있다면 정말 참된 삶을 살 수 있는 힘을 얻게 될 것이다.

 

  꼴랑 <청소년 위인전> 한 권을 읽고, 이토록 비장해진 까닭은 '해월 최시형'의 굴곡진 삶이 남다르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때는 조선왕조 말기, 순조-철종-고종으로 이어지던 시대를 살았던 인물이다. 지질학적으로 '소빙하기'였던 탓에 전세계적으로 흉작이 이어져서 백성들이 더욱 살기 힘든 시절이었다. 그런데 나라가 망하려고 했는지 임금은 무능했고 관리들은 부패해서 '삼정문란', '매관매직'이 횡행했고, 굶주리고 헐벗은 백성들은 '초근목피'로 연명하고 있는데도 지배층인 양반들은 서서히 조여오는 서구열강으로 인해 세상이 변하고 있는데도 저들의 잇속만 챙기기에 급급할 뿐이었다. 이에 백성들을 살리고자 '동학'을 깨우는 이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수운 최제우'다.

 

  동학사상은 '인내천'과 '후천개벽'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서양의 평등사상을 우리네 실정에 맞게 고쳐 새롭게 내세운 종교로 동학을 소개하고 있으나, 동학은 '종교'라기보다는 '이념'에 더 가깝다고 보아야 한다. 왜냐면 '사람이 곧 하늘(神)이니, 신분의 고하를 따지지 말고 하늘(神)처럼 떠받들어야 한다. 그리하면 모두가 평등한 새 세상이 펼쳐질 것이다'라는 일념으로 온 나라사람들을 품으려 했기 때문이다. 물론, 2대 교주인 최시형에 의해 <동경대전>, <용담유사>와 같은 경전을 만들어 '종교의 교리'를 다잡고 동학을 체계화시킨 점, 그리고 훗날 천도교와 증산도 등으로 명맥이 이어져 종교화되긴 했지만,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동학사상'은 종교적 교리와는 거리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동학인들이 주축이 되어 대다수의 농민들이 참여했던 '동학농민운동'도 종교운동이 아닌 [반봉건, 반외세]의 기치를 높이 올릴 수 있었던 것이다. 암튼, 최제우의 동학사상을 고스란히 물려받아 우리네 어려운 시절의 한줄기 등불이 되어준 인물이 바로 '해월 최시형'이란 말이다.

 

  그러나 우리는 동학에 대해서 아는 바가 거의 없다. 창시자인 최제우를 기억하고, 동학운동이 가장 활발했던 시기의 전봉준을 떠올리며, 3·1혁명 때 활약한 손병희를 거론할 뿐이다. 하지만 동학이 가장 어려운 시기를 만나 절멸의 순간이 찾아왔을 때에 꿋꿋하게 버팀목이 되어준 역할을 해준 이가 있었으니, 바로 '최시형'이다. 최제우의 직속 제자였으며, 그가 순절한 뒤에 아무 것도 남은 것이 없는 동학사상을 이어받아 '2대 교주'로서 얼마 남지 않은 동학인들을 이끌었고, 사람을 하늘로 섬기는 사상을 펼쳐 다시금 동학사상을 널리 퍼트리는 역할을 해낸 것은 물론, 마침내 '동학농민운동'을 일으켜 무능하고 부패한 지배세력을 스스로 물리칠 힘을 일깨워서 '조선민중의 힘'을 만천하에 알렸으며, 이런 혼란을 틈타 조선을 침략한 외세(청, 일본 등)를 배격해 당당히 맞서 싸우는 용기를 선보이도록 결단을 낸 이가 바로 '해월 최시형'이다. 그렇기에 '최시형'을 모르고서는 동학을 논할 수 없고, 전봉준, 손병희 등은 최시형의 제자로서 '그분의 뜻'에 따라 훌륭한 업적을 남긴 것이라 평해야 적당할 것이다. 물론 그분들의 뛰어난 업적을 폄훼할 까닭은 없고 말이다.

 

  이처럼 최시형은 뛰어나고 훌륭한 분이신데 가시는 길은 매우 험난하기만 했다. 어릴 적부터 칠순 고령의 나이에 이르기까지 평온했던 나날보다 풍찬노숙을 하며 허름한 행색으로 동학도인들을 위해 전국을 뚜벅뚜벅 누비는 날이 더 많았을 정도다. '시대가 영웅을 만든다'는 말이 딱 어울리는 인물로 평할 수도 있겠지만 힘든 시절일수록 슬기롭고(?) 비겁하게 사는 인물이 더 많은 까닭에 최시형의 삶은 더욱 빛날 수밖에 없다. 그것도 자기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모두를 위해서 헌신한 분의 생애를 어찌 몇 글자로 쉬이 옮길 수 있을까.

 

  오늘날 우리는 평화와 번영의 시대를 살면서 '배려'가 익숙한 세상을 살고 있다. 이런 세상에서는 '자기 자신보다 남을 위해 헌신하는 이'에게 돈 몇 푼 쥐어주며 비정규 서비스직으로 근근히 살아가는 서민으로 대하기 일쑤다. 돈이면 뭐든 다 할 수 있는 세상을 살면서 남들 악착같이 돈 벌때 무엇을 했냐며 게으르고 나태한 자신을 탓하라는 막말이 횡행하는 세상이 되고 말았다. 그렇게 악착같이 악귀가 되어 돈을 많이 번 이들은 왜 하나같이 남을 배려하며 살 줄 모르게 되었을까? 어려운 이들을 도와주는 살가운 세상을 살면 안 되는 걸까? 어떤 이는 말한다. 부자가 되면 남을 도우며 살고 싶다고 말이다. 막상 부자가 되면 그러지 않을 거면서 말이다. 아니, 어느 정도 벌어야 '부자'가 되었다고 자각하게 되는지 명확한 선도 그어놓지 않고서 말이다. 최시형은 말한다. 사람 아래 사람 없는 세상이 되어야 복된 세상이 된다고 말이다. 모든 이가 '하늘님'이다. 그러니 사람을 바라볼 때는 반드시 우러러 보며 살아야 한다고 말이다. 모두가 존귀한 대접을 받으며 사는 세상을 꿈꾸며 자신은 모진 고난을 견디며 살아간 해월 최시형을 다시 살펴보면 어떨까 싶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쓴 리뷰입니다

YES마니아 : 로얄 이달의 사락 z******8 2022.01.05. 신고 공감 5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새로운 세상을 꿈 꾼 '해월 최시형'
"새로운 세상을 꿈 꾼 '해월 최시형'" 내용보기
최시형은.... 최제우에 이은 동학의 제2대 교주로써 호는 해월이며, 1861년 동학에 입교하여 1863년 최제우로부터 동학의 도통을 이어 받았다. 최시형은 모든 사람이 평등하며 귀천의 차별이 없어야 한다는 인내천(人乃天)사상을 피력했으며, 그뒤 자기 자신 속에 있는 한울을 키워 자신을 발전시키는 것이 동학의 기본임을 알려주는 양천주설(養天主說), 신과 사람이 직접 합일된
"새로운 세상을 꿈 꾼 '해월 최시형'" 내용보기

 

최시형은....
최제우에 이은 동학의 제2대 교주로써 호는 해월이며, 1861년 동학에 입교하여 1863년 최제우로부터 동학의 도통을 이어 받았다.

최시형은 모든 사람이 평등하며 귀천의 차별이 없어야 한다는 인내천(人乃天)사상을 피력했으며, 그뒤 자기 자신 속에 있는 한울을 키워 자신을 발전시키는 것이 동학의 기본임을 알려주는 양천주설(養天主說), 신과 사람이 직접 합일된다는 향아설위(向我設位)등의 법설을 남겼다
목차
1장. 모진 시절을 견디다
높이 날아 멀리 가라
외로운 소년
잠시 쉬는 바람

2장. 끝없는 탄압과 도피
폭풍 속으로
가시밭길
다래 먹고 머루 먹고
눈물 속에 피어나는 꽃
부안 변산에 꽃이 피네

3장. 동학혁명을 이끌다
고난의 행진
보은 땅에 봄이 왔네
타오르는 횃불
우금치에 떨어진 파랑새
새로운 세상을 향해

작가의 말
해월 최시형 연보

 

'해월 최시형' 동학을 이끌며 새로운 세상을 위해 싸운 해월 최시형의 전기가 기록된 책입니다

최시형은 조선을 바로 세우고자 백성들을 일깨우고 외세의 침략을 막기 위해 노력했으며, 자유와 평등과 주체의 삶을 위해 자신의 생을 바친 사람으로써 혹독한 탄압속에서 동학의 정신을 포기하지 않고 지켜 왔으며 그로 인해 동학을 중심으로 함 3.1운동도 싹틀수 있었습니다

 

두 달 전인 1864년 1월 16일에 갑자기 국왕 철종이 죽는 바람에 정국이 혼란스러웠다. 철종의 뒤를 이어 열두 살이던 어린 고종이 임금으로 등극했지만 왕실은 갈팡질팡하고 있었다. 전국 곳곳에서 민란이 끊이지 않았고, 기근으로 굶어 죽거나 집을 나와 유랑하는 사람들이 급증했다. 국가 경제는 갈수록 나빠져 회복이 불가능할 지경이었다.
세상이 혼란스러울수록 동학과 천주교의 교세는 날로 성장했다. 무엇보다 동학은 의지할 곳 없는 국민에게 캄캄한 밤중에 빛나는 등불의 역할을 했다. 너도나도 동학도가 되면서 그것을 따르는 사람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그러자 불안해진 전국의 사대부 양반과 유생들이 중앙정부에 동학을 단속해 달라는 상소를 올렸다. 중앙의 관료들은 법질서와 국가 기강을 바로 세우겠다는 핑계로 동학을 탄압했다 (10~11page)

박용호가 논리 정연하게 동학이 나가야 할 길을 밝혔다.
해월은 묵묵히 듣기만 했다. 평생을 쫓기고 탄압받아 온 해월은 여느 때와 달리 결연했다. 더는 물러설 곳이 없었다. 이미 공주와 삼례 그리고 광화문 집회를 통해 동학의 저력을 눈으로 확인한 해월은 결집력을 통한 대정부 압박만이 살길인 것을 알았다.
“내 뜻도 자네들과 같네. 보은 장내리에서 시위를 벌이겠네. 이번 집회는 스승의 명예 회복과 더불어 일본과 서양 세력을 물리치기 위해 도인들이 의롭게 일어서는 것으로 확실한 명분을 세우게!”
해월이 비장하게 말했다. 해월의 결정으로 곧 통문이 만들어졌다. (157page)

자음과 모음의 새로운 세상을 꿈 꾼 '해월 최시형'은 동학의 제2대 교주인 해월 최시형의 일대를 통해 어떠한 어려움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동학의 부흥과 나라의 안전과 백성들을 위한 세상을 이루기 위해 끝까지 인내한 최시형의 모습을 통해 비록 최시형처럼 지금의 우리가 나라를 위해 무언가 한다기보다는 나 자신의 꿈과 나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어떠한 어려움 속에서도 이겨 나가야겠다는 생각을 해 보게 되는 책입니다

 

또한 사람간의 양반과 노비의 계층으로써 사람이 평등하지 않았던 시절에 인간 평등을 외치고 귀천의 차별을 없애기 위해 노력하고 그 시대를 이루기 위해 어떠한 탄압속에서도 굴하지 않은 최시형의 모습이 오늘날의 이 시대가 만들어지까지의 밑거름이 되지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새로운 세상을 꿈 꾼 '해월 최시형' 은 청소년 시기에 한번쯤은 꼭 읽어야 할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저희 딸 아이가 조금 더 자라면 한번쯤은 꼭 읽도록 권하고 싶은 책이었습니다

여러 위인전을 딸 아이에게 읽도록 권하고 읽고 있지만 자음과 모음의 청소년 평전 시리즈인 '해월 최시형'은 최시형의 삶과 그가 겪었던 아픔과 고통, 그리고 탄압속에서 숨어 지내면서도 자신의 생각을 펼치기 위해 굴하지 않고 끝까지 인내한 모습을 통해 자라는 청소년들이 자신의 생각을 다시한번 정립하고, 앞으로 어떠한 모습으로 살아야 할지 생각해 볼 수 있는 귀한 책인 것 같습니다

YES마니아 : 로얄 c*****6 2021.12.31.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인간다운 삶에 두었던 해월 최시형의 진심
"인간다운 삶에 두었던 해월 최시형의 진심" 내용보기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문명civilisation은 도시city에서 유래한 단어이자 개념이고, 야만savage는 숲cavage을 뜻하는 라틴어에서 유래했다. 문명화된 생활방식으로 인류는 야만을 퇴치하며 살았고 그 결과 지배종 치고는 이른 시기에 멸종에 이르게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21세기 대한민국은 통계 상 3관왕을 달성했는데 군사밀도 1위, 원전(
"인간다운 삶에 두었던 해월 최시형의 진심" 내용보기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문명civilisation은 도시city에서 유래한 단어이자 개념이고야만savage는 숲cavage을 뜻하는 라틴어에서 유래했다문명화된 생활방식으로 인류는 야만을 퇴치하며 살았고 그 결과 지배종 치고는 이른 시기에 멸종에 이르게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21세기 대한민국은 통계 상 3관왕을 달성했는데 군사밀도 1원전(핵발전소)밀도 1기온상승률 1위를 차지했다극지방과 만년설은 자동차 유리창처럼 금이 가고 부서지고 녹고 있는데 우리는 놀랍도록 태연하게 잘 살고 있다.

 

해월 최시형> 책을 두고 이런 시작을 하는 것은 동학사상을 처음 만난 것이 20여 년 전 김지하 시인의 생명사상을 통해서였기 때문이다그때도 지금도 생명사상도 동학사상도 정확히 이해하진 못한다얼마 전 김용옥 교수의 동경대전도 백낙청 선생님과의 강연과 담론도 애는 썼지만 쉽지 않았다.

 

이 책은 청소년평전이라 아주 친절하다스토리텔링 방식이라 신격화되지 않은 위인전을 오랜만에 읽으며 역사를 배우는 느낌이다물론 역사의 세세하고 가감 없는 실증들은 다소 끔찍한 시절이다.

 

서로가 서로를 이용하여 자신의 적을 줄이고 다시 서로를 죽이는 문명이라 불리는 야만의 시대외세의 위협보다 신분제 지키는데 방점을 찍고 일본군과 손을 잡고 자신의 백성을 죽이는 것을 택한 왕조.

 

삶의 고통은 어디서 온 것이며 고통을 넘어설 수 있는 길이 어디에 있는가?”

 

형식적으로나마 인간은 모두 평등하다고 정한 사회와 인간은 평등하지 않다는 것이 당연한 사회는 당연히 다르다차별의 근원이 불분명하면 의문과 고민은 커지게 마련이다역할이 정해져서 출생한 집단생활처럼 주어진 역할만 하고 나답게 주체성을 가지고 살수 없는 현실은 중앙의 권력이 약화되면서 표면으로 부상했다.

 

사상이라는 것이 그러하듯동학 역시 개인적인 의문과 문제를 해결하는 것만이 아니라 같은 처지의 많은 백성들의 고통을 덜고 다른 세상에 대한 상상과 기대를 가능하게 하는 가이드를 제시하는 역할을 했으니 교세는 백만에 이르고 이는 집권세력에게 확실한 위협으로 인지된다.

 

각 종교가 비슷한 단계를 거치는 것처럼 동학 역시 구슬로 전해오던 가르침들을 정리해서 경전을 만든다읽으려 노력했으나 내 문해력으로 완독이 어려웠던 동경대전과 용담유사가 각각 1880년 5월 1881년 7월에 출간된다.

 

다음 달 임오군란을 비롯해 사회는 견제 받지 않는 부정부패로 원성이 자자한데왕권은 정상적인 외교라기보다는 어떤 외세와 손을 잡는 것이 권력 유지에 이득이 되는지를 계산하다 이용만 당하는 중이었고 나아의 위기는 심각한 지경에 이른다.

 

붕괴 직전의 권위를 잃은 왕권파탄에 이른 경제사라진 사회 기강외세에 맞설 군대도 무기도 없어 방어 불능……전 세계적으로 신분제 사회에서 계급적 지위가 낮은 사람들이 내 나라 내 국토라는 주인의식을 가지고 스스로를 조직하고 저항하는 역사는 흔하지 않다. 2000번이 넘는 침략으로 함께 맞서지 않으며 다 죽는다는 공동의 위기의식이 체화된 것인지 한반도의 사람들은 이 일어선 오랜 저항과 투쟁의 역사가 이어져왔다.

 

해월 최시형 선생 역시 교세가 가장 확장된 시절임에도 스승 수운의 명예를 회복하고 동학의 앞날을 인정받는 것보다 국가의 위기를 막아내고 외세를 물리치는 일이 급선무라고 여겼다그 와중에 동학이 나라 전체를 강하게 만들기 위해 감당할 역할이 무엇인지 고민했다그런 뜻과 희생에 대한 대접이 어떠했을지 알게 되는 역사적 장면이 난망하다.

 

많은 사상가들이 걸어간 유사한 그 길로 해월 최시형도 떠났다육체는 처형되고 뜻은 남았다동학혁명으로 이후 3.1운동으로 항일의 정신의 기저에 독립운동의 바탕에 독재에 저항하는 시민운동으로 민주화운동으로 그렇게 이어져왔다그렇게 해월 사상은 민본으로의 전환과 변환의 시기를 불러온 계기로 해석된다.

 

해월 최시형의 진심은 무엇일까그의 평전을 쓰는 동안 떠나지 않았던 의문의 대답은 의외로 간단했다우리 모두에게 인간다운 삶을 살도록 하는 것이었다인간다운 삶이란 자유와 평등과 주체적인 삶을 꾸리는 것이다.”

 







 

k****k 2022.01.01.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