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서는 제명에서 보이듯이 ‘대한민국 건국사’(이하 건국사)에 관한 글로 이뤄져 있다. 제명은 저술의 목적과 의도를 집약적으로 보여준다고 생각되는데, 상당한 저자의 의지를 읽을 수 있다. 건국사는 8.15에서 1948년 5.10선거 이후 대한민국 건국에 이르는 3년 동안 일어난 일들을 다루고 있다. 이 과정에서 일어났던 수많은 사건들은 아직까지도 합의된 인식이나 평가에 도달하고 있지 못하며, 그러한 면에서 보자면 해당시기 역사에 대한 평가는 현재진행형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건국사는 공산당과 소련에 대항하여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출범시킨 과정을 정통으로 하여 80년대 학계에서 상당한 파급력을 가졌었던 소위 ‘수정주의적 시각’을 넘어서려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그것이 얼마나 성공적이며 설득력이 있는가는 읽는 사람들의 몫이며, 각자의 역사관이 투영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한마디로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만큼 조심스러우며 공개적으로 천명되기 어려운 지점이기도 하다. 저자는 결론 부분에서 ‘대표적으로 잘못된 인식 10가지’를 정리하고 있는데, 일별해 보면 저자의 문제의식을 옅볼 수 있을 것이다.(세부항목은 생략) 이책 요지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이승만의 단선단정수립 노선은 당시 좌익이 주도하고 있었던 해방정국에서 한반도 전체를 공산화로부터 지켜주는 유일하고도 현실적인 대안이었으며, 김구나 김규식의 남북협상 시도는 감상적 민족주의, 자신의 정치적 이해에서 나온 것으로 북한에 이용만 당하고 말았다. 건국준비위원회와 인민공화국은 좌익의 대표체였지 당시 전민족의 정치적 대표체가 아니었으며 전농이나 전평 등을 비롯한 각종 (친)좌익 외곽단체들의 파업은 조선공산당이 불법화되면서 미군정을 몰아내기 위해 공산당의 지도하에 진행된 것으로 공산주의화라는 하나의 목표를 가지고 일어난 일사분란한 움직임이었다. 5.10선거는 당시 좌익의 방해와 폭력에도 불구하고 91.7%의 등록률과 95.5%의 투표율을 기록했다. 한민당에서 친일파는 거의 없었거나 소수에 불과했으며, 미군정이 이승만을 견제했던 사례를 보면 대한민국이 친일파의 앞잡이나 미국의 앞잡이에 의해 건국되었다고 보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소군정은 자신의 정치체제를 이식하려는 실질적이고 체계적인 노력을 경주한 반면, 미군정은 그렇지 못했기 때문에 분단의 원흉은 오히려 소련이다고 요약할 수 있다. 이 책 논지에 접근하기 앞서 저자의 논의 스타일을 살펴보자. 정부 수립에 관해 서로 다른 노선을 추구하는 정치 세력들의 건국 투쟁 과정으로 점철된해방3년의 역사는 과거의 것이긴 하지만, 결코 확정된 것이 아니다. 다만 후대 역사가들상이한 해석에 의해 다양하게 규정될 뿐이다. 비록 미간사료의 발굴 등으로 이해(understanding)의 수준이 깊어진다손 해도 역사에 대한 해석(interpretation)의 엇갈림은 피할 수 없다. 본서의 기본 관점은 이른바 진보사학계-또는 이른바 민중사관-의 8-90년대의 -저자에 의해 좌편향적인 것으로 비판받는-성과에 대한 비판의식에서 출발했으므로 저자 진의는 그러한 역사해석의 상이성이 지니는 가치를 중심으로 평가되어야 한다. 즉, 특정 역사의식의 경사(傾斜)가 가져올 수 있는 편향성을 교정하겠다는 저자의 저술의도가 숨겨진 행간의 의미를 놓쳐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에 대한 기본적 인식은 지극히 가치중립적인 자세가 전제되어야 한다. 이는 저자가 평시 제자들에게 강조하는 가치중립성에 대한 엄정한 준수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떠올리게 한다. 왜냐하면, 저자의 의식 과잉으로 인해 학문적 용어로서는 지나친 수사를 사용하는 사례가 종종 등장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박헌영의 인공(人共) 간부 미참여에 대한 기존 역사 기술에 대해 ‘어이없다’라고 하거나(p.69), 김규식이 남한단정을 불가피한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는 점에서 ‘합리적인 인사’라고 한다던지(p.219), 이승만이 갈등에도 불구하고 통합을 모색했다는 점에서 김구에 대한 '인간적인 애정’이 있다(p.427)고 평하는 것이 그러한 예이다. 이런식의 기술은 상이한 관점을 가진 일부 예의없는 학자들에겐 또다른 지나친 감정적 언사를 이끌어 낼 빌미가 될 수 있다.. 위와 같은 기술은 저자의 스타일에 달려 있는 것이기 때문에 논의의 내용과는 본질적 관련은 없다. 그러나 본서는 저자가 서문에서 밝혔듯이 ‘대한민국의 건국과정 및 해방 후 3년의 정치과정에 대해 잘못 기술된 논저들로 인한 몰이해를 교정하려는’ 의도에서 저술된 기능적 성격이 있으므로, 그릇되었다 여겨지는 역사관을 보다 세련되게 꾸짖는 여유를 보여줄 필요가 있지 않나 싶다. 잘못을 저지른 학생에겐 회초리 못지 않게 따뜻한 훈화도 필요한 법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이 주는 장점을 살펴보자. 우선, 결기 있고 힘찬 글에 걸맞게 매우 도전적 문제제기를 하고 있기에 독자 개개인 배경지식과의 충돌속에서 폭넓은 사고의 계발을 자극한다는 점을 꼽고싶다. 특히 이승만과 김구, 김규식, 한민당, 한독당, 미군정 등 다수의 건국사의 주인공들간의 협력과 대립의 미묘한 긴장적 공존관계를 집요하고 세밀하게 추적함으로써 심층적 이해를 가능한다는 점은 빼어난 장점이다. 마치 대하역사극이나 다큐멘터리를 시청하는 착각을 불러 일으키게 한다. 각각의 이해관계에 따라 어떻게 분기되고 어떻게 합치되는지에 대해 저자 특유의 날카로운 감각으로 파헤치고 있다. 이는 아마도 젊은 시절 기자 생활에서 닦인 본능적 감각이라고 생각되는데, 사실 이런 부분이야말로 후학들이 배우고 익혀야 할 중요한 기량이 아닌가 생각된다. 아울러 일반 학술서와는 달리 흥미로우면서도 쉽게 씌어 있어 대중계몽서로 널리 읽힐 수 있도록 잘 풀어썼다는 점도 장점으로 꼽고싶다. 계몽적 열정을 담은 책이라는 점에서 일반인과 선입견에 사로잡힌 사람들에게 분발과 자극을 줄 수 있는 책이라 생각된다.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가 청소년 권장도서로 본서를 선정했다 하니, 주변의 젊은이들에게도 일독을 권하자.(아울러 진보적 시각의 관련서도 권하길 바란다.) 이열치열의 마음가짐으로 이 여름을 대한민국건국사와 보내는 것은 매우 유익할 것이다. 일찍 잠을 청하기엔 무더운 한밤에 저자의 저술의도를 본받아 가족이나 친구들과 더불어 대한민국 건국의 역사를 소재로 진지한 토론의 장을 열어봄은 어떠할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