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높은 도덕성을 정치가에게 요구하는 것. 요즘 우리 정치 사회 안에서 이러한 주장은 시대에 뒤떨어지는 것처럼 취급을 당한다. 이는 정치를 하나의 기술, 즉 테크닉으로 취급을 하고, 이러한 정치 테크닉을 가진 사람들이 전문적으로 정치를 해나가는 것으로 간주하는 요즘 시대적 풍토 때문이다. 이러한 정치 사회에 익숙해있는 우리에게 극작가로 시작하여 대통령까지 된 체코의 바츨라브 하벨의 생애는 너무 생소하게 다가온다. [실천도덕으로서의 정치]는 현 체코의 대통령이자, 지성인인 바츨라브 하벨을 모델로 한 책이다. 이 책은 전반부에서 2차 대전부터 벨벳 혁명에 이르기까지 체코 역사 안에서 바츨라브 하벨이 어떻게 살아왔는가를 소개하고 있다. 또한 이 책의 후반부에서 저자는 바츨라브 하벨이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대통령이 되었는가를 추적한다. 결국 이 책의 저자는 하벨의 정치 사상을 추적하여 기술함으로써, 하벨의 목소리를 통해 저자 자신이 주장하고 싶은 '도덕 이상'과 '정치의 의미'를 독자에게 던지고 있다. 저자는 "정치를 도덕의 기반 위에 다시 세워놔야 하며, 이를 위해 전체를 꿰뚫어 볼 수 있는 지성인의 정치 참여가 필요하다"는 하벨의 주장에 크게 동감하고 있다. 하벨이 생각하는 지성인의 역할이란 그리스 신화의 '카산드라'와 같이 앞날을 미리 예견하여 위험을 경고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하벨은 지성인이 양심으로부터 들려오는 초월자의 목소리를 듣고, 이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운 점은 하벨이 근대적 합리성에 회의적이었다는 것이다. 하벨이 체코의 공산당과 투쟁을 하였을 때, 이 투쟁은 공산주의에 반대하는 자유주의자로서의 이데올로기적 투쟁이 아니었다. 그의 투쟁은 체제 내적 무오류성을 담지하려고 하는 모든 체제를 향한 것이었다. 하벨은 저자가 후기 전체주의 체제라고 일컫는 공산주의 체제뿐만 아니라, 서구적 대의 민주주의 체제에 대해서도 반대를 하고 있다. 그는 서구적 대의 민주주의 체제 안에서는 모든 도덕 규범이 상대화될 수 있으며, 다수결 민주주의를 주장하는 다수에 의해 소수가 인권 유린을 당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 책의 저자 역시 하벨의 생각에 동의하며, "동구권 몰락으로 인해, 서구가 자신의 대의 민주체제에 대해 과도히 자만하게 됨으로써 또 다른 불행이 시작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현재 체코는 경제 이행에 있어서 서구를 단순 모방하고 있지 않으며, 의료, 교육, 연금 등에서 포괄적인 사회복지체계를 고수하고 있다. 이러한 체코의 모습은 어느 정도 하벨의 영향 때문이 아닐까? 하벨은 민주주의의 진정한 모습은 독립된 사법부, 의회, 다당제 등의 제도적인 것들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라, 만인에 대한 도덕적 책임감이라는 사회 구성원의 생각으로부터 나온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도덕적 책임감은 사실상 어느 정도 공산주의의 본래적 가치관과 통하는 것이다. 하벨이 공산주의의 절차적 측면은 부정을 하였지만, 그가 공산주의의 본래적 동기에는 공감을 하고 있다는 사실은 하벨이 가지고 있는 정치적 사상을 설명해주고 있다. 이 책의 주제인 "정치란 도덕적 기반 위에 세워져야하며, 이를 위한 지성인의 정치 참여가 필요하다"는 주장은 우리 사회에 던지는 파장이 크다. 하벨은 정치에 대한 전문적 지식을 갖추지 못한 한 명의 극작가이자 철학자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전체 사회를 조망하고, 그 위험을 알릴 수 있는 역할을 하기 위해 정치에 참여를 하였다. 그가 한 명의 지성인으로서 맡았던 '카산드라' 역할은 체코뿐만 아니라 우리 정치 사회에서도 보편적으로 필요하다. 현재 우리 사회의 정치는 과도하게 정치 현실주의적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시기에 우리 사회에서도 도덕적 정치 문화를 이끌어낼 지성인의 정치 참여가 요구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