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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ㅁㄷ'에 관한 이야기 <아무튼, 무대>를 읽고
살아오면서 무대에 오른 적이 세 번 있었다. 유치원 학예회에서 아기 코끼리를 도와주는 하마 역을 맡았고, 대학 학회 공연에서 기타를 (치지 않고) 돌리면서 중국 노래를 불렀고, 직원 체육대회에서 신입사원의 열정과 패기를 걸그룹 댄스로 승화시키려고 무던히 애썼던 때가 있었다. '노래, 춤, 연극 따위를 하기 위하여 객석 정면에 만들어 놓은 단'에서 노래하고 춤추고 연극을 하면서 '무대'라는 낱말을 몸소 실감했던 것이다. 무대는 실제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주로 활동하는 공간이나 이야기의 배경으로 비유되기도 한다. <아무튼, 무대>의 저자는 이 무대 저 무대를 모두 밟아본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빗방울이 떨어지는 각도와 단면적을 계산하기보다 쇼팽의 빗방울 전주곡을 연주하고 싶었(27쪽)'던 그는 카이스트를 졸업하고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 음악원으로 진로를 선회했다. 이공계에서 공연계로, 공학도에서 공연 제작자로 삶의 무대를 옮긴 것이다. 저자는 무대 앞뒤와 안팎을 오가며 공연과 무대에 관한 경험과 감상을 들려준다. 특히 글쓴이가 맞닥뜨린 삶의 고비마다 책에 소개된 뮤지컬과 오페라 작품들이 건넨 위로와 응원은 읽는 이로 하여금 공감과 영감을 불러 일으켰다.
한예종 음악원을 졸업한 뒤 곧장 공연계로 환승할 줄 알았으나 정작 현실은 그렇지 못해 환장할 지경에 이른 저자에게 2개월짜리 아르바이트가 찾아온다. 로맨틱코미디 뮤지컬 『크레이지 포 유(Crazy For You)』의 통역 겸 조연출로 참여하게 된 것이다. 춤과 노래를 사랑하는 청년 바비가 부유한 은행가 어머니가 부여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찾은 데드록에서 극장을 지키며 살아가는 폴리를 만나면서 벌어지는 작품이라고 한다. 첫 대본 리딩 날, 배우들이 대사를 읽는 동안 저마다 여유 넘치게 대본을 넘기던 스태프들이 일제히 정좌를 한다. 다름 아닌 무대 위 상황을 지시하는 '지문' 때문이다. 짧다면 짧은 세 줄의 문장을 대하는 조명팀, 의상팀, 분장팀, 소품팀, 무대팀 사람들의 태도를 지켜본 그는 하나의 공연이라는 세계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그리고 앞으로 더 빠져들 수밖에 없는 무대임을 깨닫는다.
2006년은 모차르트 탄생 250주년이자 저자가 예술의 전당 공연기획팀 신입사원이던 해이다. 두 조건을 연결해보면 그가 모차르트의 작품을 무대에 올리는 일에 함께했음을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다. 오페라 『돈 조반니』 공연이 끝난 뒤 한 무대감독이 저자에게 건넨 말 한마디가 그때의 사정을 잘 말해준다. "오페라 공연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사고가 이번 오페라에서 일어났으니까, 앞으로 어떤 오페라 무대를 맡더라도 놀라진 않을 거야."(71쪽) 「쇼는 계속되어야 한다」는 <아무튼, 무대>에서 가장 많은 분량의 에피소드를 다루고 있다. 오페라 공연의 시작과 끝에 관한 이야기가 지루할 틈 없이 긴장감 있게 펼쳐지는데, 마치 방송 프로그램 『세상에 이런 일이』와 『극한 직업』을 보는 것 같기도 하다. 무엇보다 보이지 (혹은 미처 생각해보지) 않았던 무대 뒤의 사람들과 그들의 일들이 하나하나 머릿속에 그려지면서 무대 공연의 숨겨진 이야기와 의미를 어렴풋이나마 발견하게 된다.
무대에 오른 배우와 그를 보고 듣는 관객에 대한 저자만의 시선도 퍽 흥미롭다. 그 명성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으나 실제로 공연을 보지 않았던 소리꾼 이자람이 각색한 판소리 『노인과 바다』을 뒤늦게 알았을 때 마치 커다란 청새치를 낚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평소 어설픈 번역극에 대한 불만(을 넘어 분노)을 갖고 있으며, 『노인과 바다』가 왜 걸작으로 불리는지 이해가 되지 않아 케임브리지 영문학과 출신 지인과 함께 원서를 읽기까지 했다는 저자에게 이자람의 공연은 특별한 경험과 의미로 와닿았다. 오페레타 『박쥐』를 주제로 논문쓰기가 한없이 지체되며 자신에 대한 회의감을 느꼈던 그는 공연을 통해 고전의 힘을 새삼 깨달았을 뿐 아니라, 이자람의 자신감과 유연함에서 자기 삶을 되돌아볼 수 있었다고 말한다.
영국의 한 극장에서 1880년대 이탈리아 시칠리아의 평범한 마을에서 부활절 하루 동안 일어나는 치정극을 다룬 오페라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를 관람한 날, 저자 자신이자 공연의 3요소 중 하나인 '관객'을 재발견하게 만든 사람을 만난다. 바로 무대 한 편에서 배우가 노래하는 가사와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음악을 한 사람의 얼굴과 몸짓으로 표현해낸 수어 통역사이다. 뉴스가 아닌 오페라도 수어 통역이 가능하다는 사실에 글쓴이와 마찬가지로 읽는 이도 묘한 감정에 휩싸였다. 이어서 그가 영국 국립극장에서 운영하는 '음성해설(전맹 장애인과 저시력 장애인이 음성언어를 통해 공연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수단)' 지원 공연과 '터치 투어(시각장애인이 무대를 탐색하고 배우들을 만나고 중요한 소품이나 의상과 직접 접촉하며 공연의 요소들을 이해하는 과정)'을 체험하는 과정을 눈으로 좇아가면서 문득 링컨의 연설에 빗대어 '모두의 무대, 모두에 의한 무대, 모두를 위한 무대'를 상상해보았다. 무대를 내려오며 다시 책표지를 바라본다. 거기에는 '무대'의 초성인 'ㅁ'과 'ㄷ'이 각각 그려져 있다. 아니, 다시 보니까 '모두', '묻다', '뭐든', '맞다', '못다', '마당' 일지도 모르겠다. 무대의 어느 곳에 있든 '모두'가 삶이라는 무대의 주인공이다. 우리는 인생에 정답이 있느냐고 묻(는)다. 누군가 '뭐든' 당신이 믿고 행하는 것이 '맞다'고 이야기한다. <아무튼, 무대>가 무대 밖에 있는 독자들에게 '무대' 뒤에 숨겨진 것들에 대해 생각하고 서로의 '못다'한 이야기들을 나누는 '마당'으로 읽혀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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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연극, 영화, 뮤지컬, 콘서트 등등 공연 보는 걸 좋아하는 나에게 무대 뒤의 이야기는 당연히 흥미롭다. 쇼는 계속되어야하기 때문에 안 보이는 곳에서 몸과 마음을 갈아넣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건 덕후로서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직접 해본 사람의 말은 다를 수 밖에 없다. 외국인이기 때문에 알 수 없는 것들에 대한 어려움, 술 이름 하나만 들어도 알 수 있을 문화적 맥락을 몰라서 해야하는 고생은, 굳이 외국에 가지 않아도 새 직장, 새 학교, 새 집단에 들어갈 때마다 했던 고생이기도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