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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리뷰 쓰기 힘든 소설을 만난다. 소설이 말하는 주제가 명확하지만 그걸 글로 쓸 수 없는 상태. 책을 읽는 내내 뭐 이렇게 가슴에 와 닿는 소설이 다 있어? 이렇게 놀라면서도 이 소설의 리뷰를 어떻게 쓰지? 나는 리뷰를 쓸 자격이나, 그릇이 안 되는데? 이렇게 느껴지는 소설. 그런 소설을 만났다. 제목부터 범상치 않은. 많은 것을 담은. 책을 놓고도 계속 생각하게 만드는. 그 시대에 태어났다면 나나 우리에게도 겪을지 모를, 그리고 지금도 어디에선가 그런 부당한 일을 당하지만, 결국엔 또 다른 피해자가 되는. 세상이 변했다고 하지만 어느 세상이든 사회적 약자에게 세상은 녹록지 않고 반복된다는 사실.
중요한 순간, 8개월의 기억을 잃은 연구자 윤설영과 어떤 기억을 잊지 못하는 성형외과 의사 구연정. 그녀들은 설영의 사라진 친구 ‘셜록’이 남긴 단서를 함께 추적해 나간다. 설영은 셜록과 함께 빨치산 생존 여성에 대한 공공보건 사례를 주제로 한 논문 공동 저자로 참여했었다. 이 논문과 관련해 한국에서 임용기회가 주어지면서 일본에서 살던 설영은 한국에 온다. 그리고 셜록의 담당의였던 구연정을 만나게 된다. 단서를 추적하면서 설영은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게 되고 그 과정에서 역사적으로 반복되는 다양한 폭력과 만나게 된다. 국가폭력, 젠더폭력, 그리고 다양한 형태로 만난 사람들에 의한 폭력까지. 그 당시에도 있었을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냉소 그리고 따돌림과 집단 폭행들. 피해를 입었지만 말할 수 없었던 그들의 고통.
여자가 예전보다는 살기 좋아졌다고 말한다. 나도 그 말에는 동의하는 부분도 있지만 모두 그런 건 아니다. 생활이 편리해졌다고 해서 여자들한테 가해지는 다양한 폭력들이 사라진 건 아니다. 가해자는 잘 사는데 피해자는 여전히 숨어 살아야 하는 현실. 하나도 달라진 게 없는 것 같다. 주류가 아니면 여전히 비판받고 차별받아도 내색할 수 없는, 누군가는 어느 때보다 더 외롭고 소외되는 세상. 이런 세상이 과연 예전보다 좋아진 세상인지는 잘 모르겠다. 외모가 변했다고 해서 내가 나인 게 아닌 건 아닐 텐데, 나로 살아갈 수 있을 텐데 세상의 잣대는 내가 내가 아닌 것이 될 수도 있다.
나는 남자가 남자를 사랑하고 여자가 여자를 사랑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누군가는 그게 자연스러울 수 있다.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머리로는 가능하지만, 가슴으로는 안되는 그런 현실 앞에서 뭘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안되는 걸 되게 하는 것이 인생이라고 함부로 말해서는 안 되는 것 같다. 누군가는 죽을 만큼 힘들게 노력해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니까. 나와 다르다고 해서 그들이 틀린 것은 아니다. 혐오 가득한 눈으로 바라봐도 안 되는 것이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여자가 여자에게 끌리고 남자가 남자에게 끌린다는데 어떻게 하겠는가
주류의 역사가 아니어서, 주류의 사랑이 아니어서 그들이 받은 차별은 어마 무시할 것이고, 죽지 못해 사는 사람들도 많았을 것이다. 그들이 나와 다른 성 정체성을 가졌다고 함부로 하거나 폭력을 가할 수 있을까? 익명의 공간에서 함부로 욕할 수 있을까? 이런 주제의 책은 힘들다. 읽는 동안에도 힘들고 읽고 나서도 힘들다. 그들의 아픔을, 슬픔을, 그리고 기쁨을 모두 알 수 없지만, 그래도 그들은 이 시대를 살아간다. 내 주변에 내 이웃의 모습을 한 채. 그들의 사랑을 남녀의 사랑으로, 그 자체로 받아줬다면, 그렇게 받아 들여줬다면 조금은 다른 모습이었을까? 참 어려운 주제지만 참 재미있게 쓴 소설. 매력적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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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아파요. 그리고 지금 여기, 우리 이야기에요. 처음엔 재밌어서 후루룩 읽다가 마지막에는 슬퍼서 정신없이 울었어요 한정현 역사 소설이 좋은 건 역사가 역사로 끝나는 게 아니라 지금 현재 문제와 연결되어 있다는 거에요 그리고 요즘은 세대나 시대를 쓰는 소설 많지만 정말 깊이 자체가 남다른 거 같아요 작가님이 연구자이시다보니까 실증과 고증 실제 구술 인터뷰를 바탕으로 쓰기도 하셨고 한정현 작가님 읽으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그러면서도 문학적이고 너무나 아름답고 애틋해요 나중엔 그냥 표지만 봐도 울어요.. 그리고 너무나 현실적인 이야기이기도 해요 능력이 뛰어남에도 불구하고 변변찮은 학벌과 집안, 여성이라는 제약에도 살아남으려는 설영과 연정을 보면서 내 이야기네 생각 들어요 단지 역사소설이나 메시지 주는 소설 아니고 지금 이 시대 회사에서 학교에서 가족 안에서 살아남으려고 발버둥 치는 모든 사람들이 읽으면 공감될 ‘존버 하는 인간’들 이야기이기도 해요 읽고 나서 마음이 너무 아픕니다 벌써 다음 책을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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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현정현 작가님의 <나를 마릴린 먼로라고 하자>를 읽고 적는 리뷰글임을 미리 밝혀둡니다. 작품 관련 스포일러 및 결말을 포함하고 있을 수 있으니 예민하신 분들은 주의해주시길 바랍니다. 작가님 특유의 소재와 글을 너무 사랑하는데 이번 작품 역시도 너무 좋았다. 오래오래 작품 활동을 해주셨으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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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현 작가에게 관심이 가기 시작했던 것은 ‘교코와 교지’라는 작품을 통해서였다. 그저 일본에 거주하는 (또는 일본의 정서를 지닌) 재일한국인이나 일본인의 이야기라고만 생각했고, 막연한 거부감이 일었던 작품이 놀랍게도 역사적인 부분을 담고 있어서 한정현 작가에 대한 호기심과 관심이 커져갔던 것 같다. 제목이 가져다 주는 느낌은 여타의 통속소설과 같지만, 그 안에는 주류 사회에서 대의(?)를 위해 기꺼이 희생당해야만 하고, 주목 받지도 못했던 非주류들이 이야기이자, 소위 주류사회를 변혁하고자 했던 집단 안에서 행해지고 강요되는 폭력에 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소위 진보적이라고 하는 학생 운동권 내부에서조차 횡행했던 행위들, 정당화되고 감추어 지고 일방적으로 희생을 강요했던 과거의 상황들이 겹쳐지며 우리가 무관심하게 그냥 지나치고 만 것들이 누군가에게는 커다란 폭력이고, 씻을 수 없는 상처이고 또한 삶의 근간을 흔들어 버리는 크나 큰 사건일 수 밖에 없음을 다시 한 번 느껴본다. 작품 속에서는 과거 빨치산 활동 당시 인물을 찾아가며 (연구하며) 지금 현재 잊어버리고 싶은 만큼 처절했던 가까운 과거의 상황을 대비시키면서, 1950년대 초의 상황과 지금의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음을, 그리고 결코 우리의 인식과 사고방식과 관대함이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그 속에서 나 또한 무심코 지나쳐버린 모든 상황과 환경들이 때로는 누군가에게 큰 상처가 되지는 않았는지 한번 되돌아 보게 된다. 그리고 결코 떳떳하지 않음에 큰 부끄러움을 느끼게 된다. 이 작품을 읽으며 느꼈던 그리고 손을 떼지 못했던 두드러진 특징은 과거 역사적 상황을 따라가는 역사소설이면서, 또한 잃어버린 시간과 사람을 찾아가는 추리소설이면서, 동성 간의 사랑을 그린 퀴어 소설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대체적으로 요즘 문학의 흐름에서 퀴어 소설은 많이 노출된 만큼 큰 거부감은 없고, ‘그래 이 정도는 뭐’라고 넘겼던 부분들이 이번에는 좀더 현실감이 있게 상상해보게 됐다. 실제 그분들의 사고방식과 인식체계를 다시 한번 이해해 볼 수 있겠다라는 생각부터 이제까지 내가 동성애를 이해하는 방식 자체가 이성애에 바탕을 둔 관점과 사고방식으로 이해보다는 ‘수용해 줄게’라는 방식이 아니었나 자문해 본다. 아울러, 작가 또한 작가의 말에서 “우리가 겪는 일들은 지금도 너무나 비슷해요. 아무것도 끝나지 않은 것 같아요”라며, ‘확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당시 그곳의 문제는 여전히 지금 이곳, 이 사회에서 반복되는 문제라는 것. 많은 피해자가 피해자라는 이유로 오히려 숨을 죽이고 사회의 바깥에서 없는 사람처럼 살고 있다는 것 말이다’고 지적하는 것처럼, 과거 독립운동을 했던 분들에 대한 역사적 고찰이나 그 후손들에 대한 국가의 배려라든가 빨치산으로 표현되고 있는 과거 국가에 의해 낙인 찍힌 사람들에 대한 지속적이고 반복적인 배제와 따돌림이라든지, 우리와 같은 방식이 아닌 사람들에 대한 폭력(학교 폭력, 가정 폭력, 직장 내 폭력, 군대 내 집단 폭력 등 모든 형태의 사회적 주류가 非주류에게 가하는 폭력적 행위)이 정당화되고 피해자가 오히려 피해자임을 증명해야 하고 숨게 만들어 버리는 현실은 계속 되고 있으면서 더 공고해지고 있음을 새삼 깨닫게 된다. 한 순간도 인식하지 않거나 그냥 내버려두면 결국 이러한 폭력들은 다시 얼굴만 바꿔 재생산되면서 행해지고, 그리고 때로는 정당화되면서 ‘괴물’이 되어 버릴 것이다. 한 때 사회 변혁을 고민하고 진정으로 민주화되고, 주체적인 사회를 바랬던 사람으로서 작은 것부터 인식하고 나부터 성찰하고 고쳐 나가고, 다른 주위의 행위를 지적할 수 있는 냉철한 인식을 다시 해야 할 것이다. 마음이 묵직해오고 때론 아프고 유쾌하게만 읽히지 않았지만, 책을 읽었다라기 보다는 소설의 형식을 띈 다큐멘터리 영화를 본 듯 강렬한 잔상이 남게 한다. 끊임없이 생각하고, 인식하고, 비판적 시각을 놓치지 않고, 생활에서의 긴장을 풀지 않은 채 조금씩 조금씩 변화되며 살아가고 싶다. 나의 하루가 누군가에게 미칠 수 있는 영향을 생각해보고, 또한 누군가의 하루가 나의 하루에도 미치는 영향을 생각하며 좀더 의식있는 입만 번지르한 상태가 아닌 드러나지 않는 삶에서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이기를 바래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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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자의 관점에서 보는 내용인데 괜히 슬프다.
추가로 친일파 풀어준건 남로당의 빨치산들이 남한정권을 붕괴직전으로 몰아넣어 할 수 없이 공산당색출 경험이 풍부한 친일파를 풀어준 겁니다. 박정희대통령이 암살된 이유는 부마항쟁이나 부하들간의 권력다툼이 아니라 얼마전에 누가 김재규에게 잘보이려고 김재규아버지 산소를 석물로 왕릉같이 도배를 했기 때문입니다.
맞습니다. 개그콘서트 황해코너 보세요 조선족이 약자라서 남녀노소 다 웃잖아요 사람심리 다 그래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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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젠더, 성폭력의 피해를 당한 이들의 목소리를 들려주는 소설이자 이를 기록하는 사람들의 사랑이 담긴 이야기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기시감과 미시감이 교차했다. 직간접적인 경험들, 뉴스와 지면에서 폭로되어왔던 일들이 들어있었다. 개별적인 사건들이 수평과 수직으로 이어지는 걸 보여주고, 폭력의 계보를 드러내는 점은 다른 소설에서도 볼 수 있지만, 역사에서 배제되다시피 한 사람들을 무대에 세우고, 상상력을 씌워 캐릭터(예컨대 빨치산 트랜스젠더)를 만들고, 그 기록을 전달하는 사람들이 어깨를 잇댄다는 점에서 특별했다. 나는 소설 속 폭력에서 가해와는 동떨어진 곳에 있었지만 어떤 일상적인 폭력은 폭력이라 인지하지 못했다. 정상의 영역을 범주화하고 그 선 넘어 있는 사람들을 좌시하지 않으려 하는 사람들의 생각에 동조하지 않으면서도, 나 또한 차별과 배제의 시선을 갖고 그 시선을 내포한 말들을 무심결에 내뱉은 적이 없었는지 돌아보게 했다. 그런 생각에 도달하면 돌연 내가 낯설어진다. 독자에게 기시감과 미시감을 느끼게 하는 장치 하나가 ‘마릴린 먼로’이다. 마릴린 먼로를 떠올렸을 때 갖는 이미지에서 상품화된 여성의 성, 아름답다고 추앙하는 동시에 멸시하는 시선, 얼굴과 신체적 특징을 평가하는 사람들, 그들의 말 속에 들어있는 차별을 발견하게 한다. 마릴린 먼로의 형상 너머 알려지지 않은 그녀의 다른 이야기가 구심이 되어 소설은 혐오받는 퀴어, 불법 촬영, 혁명 활동의 내부 성폭행 은폐, 집단 성폭행으로 뻗어나간다. 1960년대에 어떤 여성들을 향해 한쪽에서는 달러를 벌어다주는 산업역군이라 불렀고 한쪽에서는 양갈보 또는 양공주라 부르며 멸시했다. 70년대의 김추자는 청혼을 거절했다는 이유로 매니저에게 폭행 당해 얼굴을 수술 받았다. 80년대의 모 여인은 결혼을 하지 않으면 얼굴에 면도날을 대겠다는 협박에 못 이겨 결혼해 1남 1녀를 낳았으며, 2010년대의 모 교사는 제자의 스토킹에 이름을 바꾸고 주소지를 옮겼다. 아마 얼굴도 바꾸려 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80년대에 다섯 살이던 아이는 엄마와 병원에 가다가 생애 최초로 변태를 만났고, 그 아이가 커서 다섯 살 아이의 옷을 사러 가는 길에 대낮의 도로변에서 다른 변태를 만난다. 뭐 그 사이에 만난 변태들은 손가락으로 다 꼽을 수가... 360. 나, 가끔 우리의 삶이 추리소설에서 탐정이 하는 가장 긴 추리 같아. 진실이 쉽게 밝혀지지 않아서 절망도 하고 실망도 많이 하지만 포기하지 않으면 그 끝엔 답도 있고 진실도 있고 보고 싶은 사람도 있는... 설사 그게 세상이 정한 답하고는 다를지라도 말이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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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한 문장 한 문장이 주옥같다. 역사는 언제나 승리자의 시선으로만 기록되어진다. 그 역사 속에서 진실을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이 우리의 역할일까? 여성, 성소수자, 젠더 폭력, 학교 폭력, 불법촬영의 피해자, 국가 폭력.... 예전이나 지금이나 폭력의 형태만 변할 뿐 폭력 그 자체는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 우리의 삶은 파이 게임이 아니다. 소수에게 파이를 나눠준다고 다수의 파이가 줄어들지는 않는다. 연구자인 설영과 성형외과 의사인 연정은 왓슨들이라고 말한다. 추리하는 사람인 셜록이 아닌 기록하는 사람인 왓슨. 추리 소설이면서 연애 소설이다. 우리가 지금 세상을 살아가는 사랑에 관한 이야기다. 나는 마릴린 먼로를 어떻게 바로보고 있었을까? “우리 다 마릴린 먼로 같지 않나요? 아름답다고 추앙하다가 거부하면 부숴버릴 듯 달려드는 사람들. 여자로서의 삶은 평생 어딘가에 전시되는 것만 같았어요. 내 몸은 마치 공공 기물 같은 느낌이었죠.” --- p.314 “왠지 이건 내 일이기도 한 것 같아서 그래. 아니, 어쩌면 우리 모두의 일…… 확실히 모두의 일 같아서 그래.” --- p.327 “사람들은 가끔 자신들이 정해놓은 것만 원본이라고, 진짜라고 믿는 경향이 있는 것 같지?” --- p.352 “[…] 나, 가끔 우리의 삶이 추리소설에서 탐정이 하는 가장 긴 추리 같아. 진실이 쉽게 밝혀지지 않아서 절망도 하고 실망도 많이 하지만 포기하지 않으면 그 끝엔 답도 있고 진실도 있고 보고 싶은 사람도 있는…… 설사 그게 세상이 정한 답하고는 다를지라도 말이야. 그러니까 우리, 서로에게 그런 일이 일어나도 살아내자. 살아내서 저기 인간의 시간을 벗어난 세상에서 만나서 말하자. 행복하게 살았다고, 누군가 이 기나긴 삶의 끝에 기다리고 있어서 더 행복하게 살았다고. 그 누군가에게 내가 통과한 시간을 말해주고 싶어서 더 열심히 기억하고 더 열심히 두리번거렸다고.” --- p.360 “원래 어설프게 권력 지향적인 사람들은 유사 권력만 봐도 잘 졸아붙잖아요. 뭐 하러 진짜를 가지고 가겠어요? 폭력에 폭력으로 대항하는 건 하수나 하는 일이죠.” --- p.37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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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느꼈던 감상과 가장 잘 맞아떨어진 부분이 김건형 평론가의 해설 하는 부분에 있어서 가져와봤다. ‘한정현을 따라 읽어온 독자에게, 역사의 빈틈을 우연한 결합에 관한 이야기로 채우는 작업은 익숙하다. 이 책에서 작가는 소설에 필요한 그 빈틈을 아예 창안하기 위해 역사를 헤집고 있다. 사회사나 문화사 연구가 비교적 일찍 일궈온 한국 퀴어사 발굴 작업을 충실히 따라가던 한국 문학은 이제 그 속도를 앞지르고자 하는 것 같다’ 소설 속에서 소수자들을 서로연대하고 그런 그림을 만드는 것, 연결하는 작업, 교차하게 하는 것, 그 자체가 하나의 작업이자 어떤 도전으로 느껴졌다... 정확히 설명하기 위해 노력해보자면, 도전은 과감하게 그들을 연결하고 같이 그려낸다. 기록되지 않은 부분들은 그들의 이야기로 다시 쓰여 지고, 이야기는 계속된다. 이 자체가 너무 멋진 하나의 작업 같다는 생각을 한다. 너무 너무 좋았다는 이야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