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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쇄 수도회, 카르투시오 수도승의 단상을 모아 놓은 글이다!
오귀스탱 길르랑(1877~1945)이라는 수도자의 글이다. 이 글을 읽으면서 참 대단하다고 느낀 점은 '절제'하는 모습이다. 절제하는 이유는 딱 한 가지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위해서.
하나님의 관계를 위해서 수도승들은 평생 봉쇄 구역을 떠나지 않고 엄격한 침묵과 고독 속에 스스로 가난과 수행의 삶을 살아간다. 공동 산책, 공동 식사, 공동 기도회도 있지만 대부분 혼자서 침묵으로 수도한다. 세상과 완전히 단절한 삶이다. 과연 이런 삶이 가능할까 싶다.
성경의 말씀 한 귀절 한 귀절도 참 깊게 묵상한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라는 이 말의 의미를 깊게 이해하기 위해 오랜 시간 침묵 속에서 하나님을 묵상한다. 바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하나님이 사랑이시기에 우리에게 다가오는 고통과 어려움도 이해할 수 있다고 한다. 동문서답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다. 그러나 침묵 속에 오랫동안 하나님을 깊게 묵상하는 수도자들은 상황에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께 집중한다고 한다. 사랑의 근원인 하나님께.
가끔 산 길을 혼자 걸으며 복잡한 머리를 식힐 때가 있다. 잠깐 혼자 산 길을 걸었는데도 평소에는 생각지도 못한 뜻을 이해할 때도 있다. 조용히 침묵하는 순간 생각이 하나로 모아지는 느낌이 든다. 바깥 세상과 일절 접촉을 금하면서 침묵의 삶을 살아가는 수도자가 남긴 글을 통해 묵상의 힘을 느낀다.
고통, 우리를 위한 당신의 특별한 사랑의 표지이며 다른 어떤 것보다도 확실하게 그 분을 뵙는 길이다. _81쪽 승리, 영적인 교만이나 거짓 덕성을 불러 일으킨다. _89쪽 갈등, 무력과 공허의 자리로 머물게 하고 우리의 영혼을 무너지지 않는 토대 위에 세워 준다. _89쪽 이 세상은 잠시 천막을 쳤다가 곧 다시 걷어 계속해서 여행하며 건너야 하는 사막이다. _141쪽
'믿게 되었습니다' 라는 말은 우리가 하느님을 신뢰하면서 우리 자신을 포기하고 그분께 우리 자신을 내어 드리게되었다는 뜻이다. _159쪽 믿음의 삶,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사시는 삶이다. _167쪽 평화, 사랑의 하느님께, 전능하신 하느님께 의탁하기 때문이다. _177쪽 믿는다는 것, 하느님의 활동에 우리를 일치시키는 신앙 행위이다. _183쪽
"하느님, 저에게 불의를 행하고 있는 이 사람 안에서, 그리고 제게 불쾌감을 주는 저 성미 안에서, 저는 당신의 손길과 당신의 사랑을 흠모합니다" _187쪽 우리의 모든 괴로움은 우리가 지니고 있는 마음의 광대함에 비해 너무나 편협하고 덧없는 쾌락과 소유물을 원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비롯됩니다. _205쪽 은총이 어려움을 없애 주지는 않지만, 우리로 하여금 어려움을 우리에게 유익한 것으로 변화시킬 수 있게 해 줍니다. _210쪽
염려하는 사람은 하느님의 사랑을 진정으로 신뢰하지 않습니다. _219쪽 우리가 가장 치열한 전투를 치러야 하는 곳은 바로 우리 마음속이며, 우리가 승리를 거두어야 할 대상은 바로 우리 자신입니다._223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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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표지를 보면 따스한 햇살이 비치는 뜰을 가진 봉쇄 수도원에서 조용히 묵상하는 수도자의 뒷모습이 평화로움을 줍니다. 이렇게 고요히 묵상하는 시간을 가지기를 소망합니다.
대침묵 피정을 하면서 영혼의 자유로움을 체험한 적이 있습니다. 지금도 머리가 너무 복잡할때면 그때의 그 평안함과 자유로움을 늘 그리워 합니다.
이제 아이들도 다 키웠으니 코로나가 잠잠해지면 대침묵 피정을 할 수 있는 곳으로 가서 햇살아래 혼자 앉아 저런 모습으로 새소리, 물소리 들어가면서 피정을 하고 싶습니다.
이 책의 장점은 수도원의 사진과 작은 소묘들이 책의 중간중간에 삽입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바라만 보고 있어도 숨이 쉬어지는... 평안함을 주는 디자인입니다.
그런데 책을 보면서 새삼 느낀 것은 세상의 평화란 평화는 다 가졌을 이 평화로운 침묵의 봉쇄 수도원에서 묵상하는 내용들은... 인간의 고통에 관한 것이 거의 다 라는 사실입니다. 결국 우리가 바라는 평화는 인간의 삶에서 오는 고통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것. 그것을 딛고 눈을 하늘로 향해 평화는 누리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 책이 소중합니다. 사순.고통을 묵상 하는 시기에 고통을 묵상하고,,,그 묵상을 하면서 고통을 들여다보며 밝은 빛을 향해 나가는 방법을 배워나가게 됩니다.
책의 내용을 나누어 보겠습니다.
모든 큰 슬품은, 큰 은총을 감추고 있습니다. 그분은 치유 하시기에 고통을 겪게 하십니다. 확실하게 치유하시기 위해서 그분이 원치 않으시는 고통을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확실하게 치유하시는 것, 이것이야말로 하느님께서 오직 원하시는 것입니다.--------------------146p
잘못이나 실패와 더불어 우리가 하느님께로 돌아서는 것입니다.-------------------------------158p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오직 이 한마디 말을 듣기를 바라십니다."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사랑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고백으로 우리는 그분을 소유하게 됩니다---159p
참된 능력은 그분의 거룩하신 뜻에 대한 온전한 순종에 있습니다. 이것이 거룩한 무심함이며, 동시에 거룩한 독립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하느님의 자녀들이 누리는 자유입니다.--191p
코로나로 인해 어려움을 겪으시는 모든 분들과 이 책의 내용을 나누고 싶습니다.
이 책을 읽는 모든 분들이 고통의 늪에 빠지지 않게 빛을 향해 나아가는 법을 이 책을 통해 배워나가시기를 기도드립니다.
인간이 철학을 하게된 근본 원인이 바로 인간의 어쩔 수 없는 생존 본능이 만들어 낸 욕심.그로인한 고통. 그리고 인간의 유한함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결국 인간은 고통과 함께 살아가는 존재 이기에 종교는 인간의 고통을 없앨 수 없으며 우리는 고통과 공존하며 나를 위로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이 책을 읽으면서 들었습니다. 그래서 불교에서 인생은 고해라고 했나봅니다...
사순의 시기와 고통에 관한 묵상. 고통은 결국 하느님의 사랑을 느끼는 도구. 고통이 있기에 고통이 잠깐 멎는 그 순간에 감사를 느끼며 빛을 향해 나아가는 법도 배우나 봅니다...
늙음으로 인해, 그리고 코로나로 인해 더욱더 우울해지신 제 시모님께 이 책을 드려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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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께서 필요한 것을 안배해 주셔서, 우리 각자는 며칠간 피정을 잘 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에게 이런 시간은 매우 은혜롭고 소중합니다. 그토록 철저하게 세상과 거리를 두는 종교적인 삶에서도, 우리는 여전히 이런 시간을 필요로 합니다.』 - ‘영혼의 피난처’ 중에서
이 문장을 읽고 잠시 생각에 잠기게 됐다. ‘삶 자체가 피정이신 분들이 피정을 한다고? 왜?’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바닷가에 사는 사람이, 바다가 보고 싶다며 여행을 떠나는 느낌이랄까? 아무튼, 그랬다. 세상과 분리된 공간에서 삶을 사는 수도원. 그런 수도원보다 더 폐쇄된, 봉쇄수도원. 누구도 알 수 없는 그곳의 생활이지만, 영화와 다큐멘터리를 통해 이제는 세상에 어느 정도 알려졌다. 그래서 그런지 더, 이해가 안 갔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사람들의 반응은, 크게 두 가지 부류로 나뉜다. ‘저렇게 어떻게 살아?’라는 일반적인 사람들과 ‘나도 저렇게 살고 싶다!’라는 극소수의 사람으로 나뉜다. 사실 나는 후자에 속한다. 지금도 그런 삶을 꿈꾼다. 봉쇄수도원은 아니지만, 한적한 시골에서 조용하게 살고 싶은 마음이 있다. 조용하게 산다는 건, 침묵의 시간과 묵상의 시간이 많이 갖고 싶다는 것을 의미한다. 외부에서 들리는 소리보다 내 안에서 울리는 소리에 더 집중할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궁극적으로는, 나에게 전해지는 메시지를 온전히 받아안고 살아가는 시간이기도 하다. 이런 시간을 온전하게 보내기 위해서는 고요한 환경이 필요하다.
지금은 여건이 안 되니 미뤄야 할까? 아니다. 지금은 지금의 여건에 맞게 그런 시간을 만들고 가져야 한다. 내 안에 울리는 소리에 집중하는 시간은 지금 더 필요하다. 세상 안에서 들리는 갖은 소음으로부터 나를 온전히 지키기 위해서는, 고요하게 나를 들여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새벽에 고요하게 기도하고 묵상하는 시간을 갖는 것도 좋고, 명상하는 시간을 갖는 것도 좋다. 일과 중에 조용한 공간에서 5분이라도 눈을 감고 가만히 떠오르는 생각에 따라 의식이 따라가는 것도 좋다. 잠시라도 온전히, 나만의 시간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왜 그래야 하는지 아직 이유를 알 수 없다면 이 책, <그들은 침묵으로 말한다>를 참고하면 좋겠다. 좋은 길잡이가 되어주리라 생각된다. 길잡이가 도어줄 몇 개의 문장을 소개한다. 그리고 내가 묵상한 내용도 함께 소개해 본다.
우리의 삶을 이루고 있는 이 모든 괴로움은 본래 미미한 것입니다. 영혼의 표면이 조금 산란해진 것에 불과합니다. 깊은 곳은 변함없이 그대로 고요합니다. 불행하게도, 사람들은 평화가 다스리는 그 깊은 곳에서 충분히 살지 못하고, 동요를 일으키는 표면에 너무 많이 기대어 살아갑니다. -카르투시안의 기쁨- 중에서p31
바다의 예를 들어보자. 파도가 일고 있는 표면을 출렁이지만, 수면 아래로 내려가면 잔잔하다. 내 마음이 머물러야 할 곳은, 바로 수면 아래이다. 표면에 머물러 있으면 외부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몰아치는 데로 흘러갈 수밖에 없다. 이제는 외부에서 바람이 불어오면, 심호흡을 하고 수면 아래로 내려가야 한다. 그래야 조금이나마 평온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자기 자신을 잊는다는 것은, 자신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하신 범위 안에서 자신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느님은 영혼과 육신, 이둘 모두의 생명을 위해서, 우리가 초자연적인 목표에 시선을 두기를 원하십니다. 또 이성이 가리키는 기준, 그리고 신앙에 의해 더 높은 차원에서 받아들여지는 어떤 기준을 우리가 받아들이기를 원하십니다. 이렇게 하지 않는 것은, 자신을 하느님께 내어 맡기는 것도 아니고 자신을 잊는 것도 아닙니다. -민감한 감성- 중에서p77
어떤 선택을 할 때 내 상태를 생각해 보자. 마음이 편안한 상태에서는 여유 있게 선택할 수 있다. 하지만 마음이 불안한 상태에서는 어떤가? 소위 말하는, 악수를 두게 된다. 좋은 판단을 할 수 없다는 말이다. 그러니 내가 어떤 상태에 있도록 노력해야겠는가? 그 상태에 있기 위해 나는 어디에 속해있어야 하나? 그 답을 찾았다면 그렇게 하면 된다.
이 세상은 유배와 순례의 장소이며, 또 늘 그럴 것입니다. 잠시 천막을 쳤다가 곧 다시 걷어 계속해서 여행하며 건너야 하는 사막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너무 빨리 망각합니다. 그리고 길을 가는 동안에도 참된 행복이 놓여 있는 약속의 땅에 우리의 시선을 고정시키지 못합니다. -이 거룩한 계획을 받아들여야- 중에서 p141
재의 수요일. 사순 시기를 시작하는 날이다. 이날 우리는 재바르는 예식을 한다. 이때 이 말씀을 듣는다. "사람아,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다시 돌아갈 것을 생각하여라" 항상 듣던 말씀인데, 이번 사순 시기 때는 좀 더 강하게 스며들었다. 그리고 마음이 편안해졌다. 여행을 마칠 때쯤 집 생각을 하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은 마음을 참 편안하게 한다. 그 집에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면, 지금 쥐고 있는 게 큰 의미가 없게 느껴진다. 그래서 마음이 편안해졌다.
모든 큰 슬픔은, 큰 은총을 감추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자녀들에게 필요한 것을 해 주는 것처럼, 우리에게도 똑같이 해 주십니다. 그분은 치유하시기 위해 고통을 겪게 하십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하느님께서 고통을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확실하게 치유하시기 위해서 그분이 원치 않으시는 고통을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확실하게 치유하시는 것, 이것이야말로 하느님께서 오직 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슬픔- 중에서 p146
"하느님께서는 내가 원하는 것을 주시는 분이 아니라, 필요한 것을 주시는 분이다." 내가 깨달은 하느님 사랑이다. 힘들고 어려울 때, 왜 나에게 이런 시련을 주시냐고 따져 묻다가 깨닫게 되었다. 이것을 깨닫게 된 순간부터 나에게 오는 시련은 고통이 아니라, 또 다른 기대를 갖게 하는 희망이다. 내가 할 일은 그 안에 어떤 뜻이 있는지 살피는 것뿐이다. 그러면 반드시 나에게 필요한 것이 담겨있다.
우리가 성사를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유혹이나 나약함이 사라지는 것을 보리라고 기대하지 맙시다. 영적인 삶은 서서히 성장합니다. 끊임없이 우리 자신을 하느님으로 채우고, 거룩한 힘의 원천에서 물을 길읍시다. 어린이는 먹고 마시지만, 하루 만에 어른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니 우리의 삶을 안배하시고 당신 자신이 우리의 생명이 되어 주시는 그분께 모든 것을 맡겨 드립시다. -‘주님 앞에서’ 살아가는 법- 중에서p228
한 번에 달라지는 것은 없다. 그리고 한 번에 달라지는 것은, 언제 가는 나를 떠나게 된다. 내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내 것이 아닌 것에 집착하면, 정작 내 것을 받아안지 못하게 된다. 온전히 맡기는 게 쉽진 않지만, 그러지 않으면 온전히 얻지 못한다는 것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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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쁘고 정신없었던 연말과 신년의 일들이 어느정도 정리가 되고 난 지금 사순시기를 지나며 부활을 맞이하러 가는 길목에서 세상의 소음으로 부터 멀리 떨어져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싶은 시간입니다.
조용한 곳에서는 작은 소리도 크게 들리듯이, 침묵 안이라고 고요하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침묵 속에서 영적 여정을 가는 이들이 흔히 내적 소음에 시달리게 되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 일 것입니다. 외적 침묵 안에서는 작은 내적 소음이 큰 문제로 인식될 수 있고, 그래서 평화롭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침묵의 여정에서 영적으로 단련된 묵직한 평화의 담론을 펼쳐주는 책을 만났습니다.
‘침묵과 고독’을 삶의 근본으로 삼는 카르투시오회 수도승들은 그 침묵과 고독을 통해 성령 안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동화되며, 하느님과의 일치를 추구하는 사람들인데요~ 그 침묵이 그토록 세상의 소음과 그토록 다른 것이므로, 그에 대한 단상이 세상의 언어와는 사뭇 다른 결을 지니고 있는 것을 이야기해 줍니다.
영적인 삶의 경지에 이른 저자의 ‘침묵과 고독의 샘’에서 솟아 나온 편지들을 읽다 보면, 읽는 이의 마음 밭에 성령과 함께하는 삶의 씨앗이 뿌려지는 듯합니다. 그런 까닭에 이 책이 많은 분들에게 침묵의 고요 속에 머무르는 한 수도승을 만나고, 그 수도승과 함께 조금 더 깊은 영성의 삶으로 나아가게 하는 좋은 길잡이가 되어 줄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