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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힘들게 벌어 쓴 112만원의 가치를 알기에 당신을 아낍니다.” 요즘 한 TV광고의 문구입니다. 남자, 여자 버전이 있는데, 남자는 회식자리에서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노래를 열심히 부르고, 여자는 백화점 화장실에서 서러운 눈물을 흘립니다. 둘 다 노동의 고단함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광고는 ‘당신이 얼마나 좆빠지게 고생하는지 알기 때문에 우리 캐쉬백포인트로 당신의 고생을 어느 정도 보상해주겠다’라는 얘기를 하는 것 같은데요. 전 이 광고를 볼 때 마다 가증스러워 죽겠습니다. 이 광고는 ‘대한민국 상위 1%의 차’ 따위의 광고랑은 다른, 새로운 차원의 분노를 일으킵니다. 이 광고는 영리합니다.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살아가는 현대인의 굴레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는 결코 소비를 멈추지 않는 이상, 노동을 멈출 수 없습니다. 명품 가방에 대한 욕망을 억누르지 못하고 카드를 긁게 되면, 또 다시 카드 값을 메우기 위해 백화점에서 종아리가 부르트도록 일하고, 부장의 비위 맞추기 위해 자존심을 내던져야 합니다. (물론 그렇게 힘겹게 일한 대가도 점점 터무니없이 낮아지고 있죠.) 자본주의는 우리의 소비를 끊임없이 자극하고, 그 대가로 우릴 노동의 감옥 안에 가둬놓는 겁니다. 무한히 반복되는 이 굴레 속에서 인간은 노동의 족쇄를 결코 풀어낼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 광고는 이러한 현대인의 존재 비극을 다시 마케팅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합니다. 마치 “당신이 힘들게 벌어 쓴 112만원의 가치를 알기에 앞으로 물건 살 때 천 원 씩 깎아줄 테니 더 열심히 소비하고, 그 돈 메우기 위해 한 눈 팔지 말고 일해라”라고 말하는 식이죠. 몇 푼 안 되는 돈을 할인해주고, 당신의 노동을 알기에 더 아낀다니 이 얼마나 가증스러운 위선입니까. 노동의 가치를 안 다면, 저렇게 일한 사람에게 고작 112만원이 뭐냐고 외쳐야 맞겠죠. 결국 이 광고는 노동자를 위로하는 척 하며, 저임금 고강도의 노동 굴레를 빠져나오지 못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상위 1%’ 운운하는 광고들은 그냥 무식했다면, 이 광고는 영악합니다. 그래서 전 더 화가 납니다. 사실 자본주의의 영악한 기만은 아주 일상적인 현상입니다. 커트 보네거트의 <신의 축복이 있기를, 로즈워터씨>는 자본주의가 우리를 어떻게 기만하고 지배하는지 잘 드러나 있죠. 소설의 주인공 엘리엇 로즈워터는 갑부 집 아들로 태어납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재산을 불쌍한 사람들에게 나눠주려는 ‘기행(?)’을 일삼게 됩니다. 이에 그의 주변인들은 그가 미쳤다고 판단해, 그의 재산을 빼앗기 위해 이리 저리 충돌한다는 게 대강의 줄거리입니다. <신의 축복이 있기를, 로즈워터씨>는 다분히 이분법적이고 단정적인 소설입니다. 게다가 커트 보네거트는 상황을 단순화시키고, 과장을 섞어 소설 속 주인공인 로즈워터 가문을 탄생시킵니다. 한마디로 그는 공상과학소설을 쓰듯 로즈워터의 세상을 묘사하고 있는데요. 하지만 슬프게도 그의 과장과 단순화는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과 놀랍게도 닮아있습니다. 실제로 외계인의 눈으로 이 세상을 바라본다면, 우리가 사는 세상의 장르는 분명 블랙 코미디일 것이다. <신의 축복이 있기를, 로즈워터씨>처럼 말이죠. ‘안녕, 아가들아. 지구에 온 걸 환영한다. 여긴 여름엔 덥고 겨울엔 춥단다. 그리고 둥글고 축축하고 붐비는 곳이지. 여기선 고작해야 백 년 정도밖에 못 산단다. 아가들아, 내가 아는 단 하나의 규칙을 말해줄까? 제기랄, 착하게 살아야 한다.’ (P.146) 그는 간단한 몇 개의 문장만으로 미국 자본주의의 탄생을 요약해냅니다. ‘미국의 수많은 가산처럼 로즈워터 가의 가산도 애초에 유머나 융통성은 조금도 없이 교회만 열심히 다니던 시골 소년이 남북전쟁 때부터 투기와 뇌물을 일삼는 사기꾼으로 돌변해 쌓아올린 것이라오.’ (P.16) ‘그 돈이 스튜어트의 이름으로 보스턴의 뉴잉글랜드 시페어러 은행 신탁회사의 신탁 팀에 맡겨지자마자, 그 돈 농장은 수경재배를 하듯 그 돈으로 모종을 내고, 비료를 주고, 교배시키고, 변형시켜 해마다 팔십만 달러 정도를 불려나갔다.’ 미국의 부자는 남북전쟁 시절, 대부분 투기를 통해 생겨났습니다. 미국 부자의 탄생 과정은 이미 폴 토마스 앤더슨이 그의 대작 <데어윌비블러드>를 통해서 자세하게 그린 바 있죠. 록펠러도, 모건, 밴더빌트도 부자가 되는 과정은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부자들이 하나 둘 싹틀 무렵, 아직 미국엔 자본주의가 정착되기 이전이었습니다. 귀족제가 무너지고, 자본주의가 형성돼가던, 세상의 질서가 급격히 변화하는 혼란스러운 시기에, 그들은 부자가 된 것입니다. 한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일제강점기가 끝나고, 본격적으로 자본주의가 태동하던 시기에 오늘날 대부분의 부자가 탄생합니다. 아직 자본주의의 세계가 공고화되기 전엔, 쌀집에서 일하고, 신문을 배달하던 소년들이 성장하는 자본주의와 함께 쉽게 부자가 될 수 있는 여지가 있었습니다. 구조가 생성되던 시가, 계급의 장벽은 매우 낮았기 때문이죠. 하지만 자본주의가 공고해지고, 부자들이 성장하면서 얘기는 달라집니다. 혼란스러운 시기는 점차 안정기에 접어들게 됐고, 부자들은 자신의 기득권을 확립하기 위한 이데올로기를 만들어낸다. 한 마디로 일반인들이 함부로 자신들의 영역에 침범하지 못하도록 규칙을 설정한 것이죠. 이렇게 말입니다. ‘정직하고 부지런하고 평화적인 시민들은 최저임금만 요구해도 즉시 흡혈귀로 분류되곤 했소.’ (p.19) ‘그 교훈은 ‘미합중국이 유토피아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자는 누구든 욕심 많고 게으르고 천벌을 받아 마땅한 바보’라는 것이오.‘ (P.20) 이제 경제적 폭력과 사기는 순수경제학의 추상화작업이란 이름 속에 은폐됐습니다.(유한계급론, 원용찬 저/역 인용) 지식인과 언론은 노동자의 권익을 보호하려는 행동을 ‘게으름’으로, 부자들의 투기행위를 ‘사업’으로 바꿔놓았습니다. 실제로 도금시대의 경제학자 러플린 교수는 “거대한 부는 희생, 능력발휘, 기술에서만 나오며........노동조합은 파업과 보이콧 대신에 노동자의 자질을 키우는 데 전력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이제 자본주의는 계급 장벽을 더욱 높게 세웠고, 더 이상 쌀을 배달하던 소년이 재벌 회장으로 성장하는 일은 나오지 않게 됐습니다.
그런데 자본주의는 아주 영악합니다. 만약 계급 장벽이 너무 높아, 부자가 될 확률이 너무 낮다면, 노동자들의 불만은 커져갈 겁니다. 그러면 자칫 시스템의 전복을 야기할 수도 있게 됩니다. 그래서 신자유주의는 끊임없이 우리에게 환상을 제공합니다. ‘자, 쌀 배달하던 가난뱅이가 재벌 회장이 된 것처럼, 당신에게도 기회가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기회는 동등합니다. 열심히 일한 당신이라면 부자도, 대통령도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세상은 부자가 되고 안 되고를 철저하게 개인의 능력으로 돌립니다. ‘우린 기회를 줬는데, 네가 게으르고 무능해서 가난해진 거다.’라고. 졸지에 부자가 못 된 대부분의 사람들이 무능력자로 전락하고 맙니다. 이러한 자본주의의 거짓말 속에는 부정의 은폐와 착취의 기만이 숨겨져 있는 겁니다. “난 평생 동안 사람들에게 불행은 본인 탓이라고 말해왔지.” (P.95) "‘사람들은 다 가질 만한 걸 갖는 거야. 안 그래, 버니?’/ ‘그게 바로 인생의 제 1법칙이지.’ 버니 윅스가 말했다." (P.198)
하지만 오늘날은 더 이상 자본주의가 태동하던 때가 아닙니다. 계급은 물론 사회구조도 안정되었거든요. 부자가 갑자기 가난뱅이가 되지 않듯, 가난뱅이도 갑자기 부자가 되기 어려운 구조가 돼버린 거죠. 월급쟁이들이 열심히 일해서 월급을 모아도, 증권 대박 또는 아파트 대박이 터지지 않는 이상 내 집 마련도 쉽지 않은 게 현실 속에서, 사실 노동자들도 어렴풋이 자본주의의 희망이 환상에 불과하단 사실을 느낍니다. “노동자들은 프레드에게 불편한 존경심을 품었다. 그가 파는 상품에 짐짓 냉소를 보내면서도, 내심으론 일확천금을 거머쥘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것뿐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즉 보험에 든 다음 일찍 죽는 것.” (P.152) 그럼에도 신자유주의가 건네는 환상은 거부하기엔 워낙 매력적입니다. 때문에 오늘날 힘겹게 일하는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언젠가 자신도 강남의 부유층이 될 수 있을 거라 믿으며 현실에 순응하고 맙니다. 결국 노동자들의 믿음이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오늘날의 사회구조는 공고해지게 되는 거고요.
사회 시스템은 결국 우리의 행복을 위해 존재하는 겁니다. 하지만 신자유주의라는 시스템은 결코 시스템 내부에 존재하는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지 못합니다. 대신 시스템 자체의 몸집을 불리는 데는 좋은 수단입니다. 마치 영화 <매트릭스>에서 인간의 행복을 위해 존재하던 기계들이 오히려 매트릭스를 만들어 인간의 자유를 억압하고 기계의 영역을 넓혀간 것처럼, 자본주의는 노동자의 삶을 속박하고, 자신의 몸집만을 키웁니다. 그런 와중에 최근에 한국에선 “자본의 유출을 불러일으키는 상속세를 폐지해야 한다.”는 말이 나왔다고 합니다. 한 쪽에서는 대통령이 “여러분도 나처럼 열심히 일하면 부자가 될 수 있다.”라고 말하면서, 다른 한 쪽에서는 ‘상속세’를 폐지해서 현대판 계급제도를 더욱 공고하게 만드는 움직임이 이뤄지는 현실. 이게 바로 자본주의가 보여준 기만의 얼굴입니다. 때문에 전 사람들이 좀 더 세상을 크게 보고, 의심하며 살아갔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내가 속한 시스템을 무조건 순응하고, 시스템이 전달하는 환상을 무조건 쫓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구조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인간은 구조에 속박되는 수동적인 존재는 결코 아닙니다. 가난 탓이 전부 구조 탓은 아니라는 거죠. 그럼에도 오늘날은 모든 책임을 개인에게 돌리며, 사람들에게 거짓 환상을 끊임없이 심어주고 있습니다. 오늘날의 시스템은 점점 우리의 삶을 팍팍하게 만들고, 자본주의의 배만 불려준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가 거짓 환상에서 깨어나 온갖 부당함에 정당히 저항할 수 있어야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아니 적어도 포인트로 푼 돈 깎아주며, ‘당신을 아낀다’는 뻔뻔한 말은 하지 말아야 하는 걸 아닐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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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으로 "만세! 만세!"를 불렀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보네거트의 신작이 나왔으니 어찌 만세를 부르지 않을 수 있으랴. <마더 나이트>가 처음 읽은 보네거트 소설이었다. 읽고 나서 "아, 이런 작가가 있었다니. 정말 대단한걸"이라 생각하며 보네거트의 다른 작품들을 찾아보았다. 그러면서 보니, 이런, 나만 이제야 보네거트를 알았나보다. 보네거트 마니아가 국내에도 꽤 있었던 것이다. <제5도살장>과 <타임스퀘어>를 챙겨 읽으면서 이 독특한 작가에게 푹 빠져들었다. 그리고, 오랜만에 신작 <신의 축복이 있기를, 로즈워터 씨>가 드디어 나왔다. 이 작품은 국내에 처음 번역 소개되는 작품이다. 이전에 번역된 보네거트의 작품들과는 달리 이 소설은 SF 요소도 거의 없고(물론 보네거트가 창조한 공상과학 소설가 킬고어 트라우트가 등장해 중요한 역할을 하긴 하지만 말이다), 2차대전 얘기도 전면에 드러나지 않는다(물론 주인공 로즈워터 씨가 2차대전에 참전해 무고한 소방관 세 명을 죽이게 되는 끔찍한 경험을 하고 정신이 살짝 이상해지긴 하지만 말이다). 이 소설의 가장 중요한 소재는 바로 '돈'이다. 돈, 돈, 돈, 자본주의의 핵심. 보네거트는 미국 사회가 남북전쟁을 계기로 어떤 식으로 계급을 공고히 하고 부를 소수의 사람이 거머쥐게 되었는지, 그 소수의 사람이 가난한 다수를 어떤 식으로 무력한 인간들로 만들었는지를 보여준다. 이렇게 보면 주제가 참 사회과학'틱'해서 소설도 심각할 듯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왜? 이건 그 누구도 아닌 바로 커트 보네거트, '블랙유머의 대가'의 소설이기 때문이다. 보네거트는 이 소설에서도 작가 특유의 촌철살인 유머를 유감없이 발휘하며 읽는 내내 킥킥거림을 멈출 수 없게 만든다. 보네거트는 자신들이 쥔 부를 한 푼도 가난한 다수와 나눠가지지 않기 위해 온갖 수단(여기엔 물리적인 수단뿐 아니라 정신적인 수단까지 포함된다)을 다 이용해 대대로 자기 가문이 그 부를 계속 이어가는 방법을 강구한다. 그런 가문 가운데 하나가 바로 로즈워터 가이다. 그런데 이 가문의 마지막 상속자 엘리엇 로즈워터는 이런 식의 부 상속을 거부하고, 가난하고 볼품없고 쓸모없는 이들의 '친구'가 되기로 마음먹고, 몰락해가는 고향 마을 로즈워터 군으로 돌아가 그곳에서 그런 이들을 도우며 살아간다. 즉, 보네거트는 부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정신 나간 짓'을 하는 엘리엇을 통해 부를 지닌 자들의 오만함과 비열함을 비판하고 극도로 물신화된 사회에서 인간이 인간답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탐구한다. 부자의 입장에서 보면 정신병자에 가깝고, 가난한 이들의 입장에서 보면 기꺼이 '신의 축복'을 받아 마땅한 인물 엘리엇의 '기행'은 비열한 젊은 변호사 무샤리가 자신의 사리사욕을 챙기기 위해 로즈워터 재단을 엘리엇의 먼 친척 프레드 로즈워터에게 넘기기 위한 계약을 꾸미면서 위협받는다. 이 소설은 보네거트가 다른 소설에선 그다지 보여주지 않았던 "반전"으로 결말을 맺는다. 아, 그 반전에서 그동안의 킥킥거림을 멈추고 빵 터졌다. 이 얼마나 멋진 결말인지, 역시 보네거트답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 소설을 읽으며 다시 한번 보네거트의 세계관에, 인간관에, 가치관에 공감하게 되었다. 그리고 약 50년 전에 쓰인 이 소설이 지금 현재 한국사회를 다시금 들여다보게 해준다는 점이 좀 씁쓸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것이 바로 보네거트 소설이 시대와 나라를 뛰어넘어 많은 이들에게 꾸준히 사랑받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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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트보니것을 읽는다는 것은 나에겐 일종의 블랙코미디 같은 행위이다. 그의 작품 전편에 흐르는 유머와 풍자, 조롱, 비유 등은 결국 나 자신를 가리키며 그 방향성을 잃지 않고 있고 더군다나 작가 본인도 빠져나갈 수 없는 막다른 길목이다. 처음으로 소개되는 커트보니것은 장편임에도 아주 친숙하고 또 그의 장점이 잘 살아난 작품이다. 돈이라는 소재는 그야말로 보니것에게 필수불가결한 소재가 아니었을까. 어쩌면 뻔할 수 있는 우화일지 몰라도 현재도 능히 유효한 이야기라 힘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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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트 보네거트의 다른 작품을 읽어보지 않아 다른 작품들의 무게감은 모르겠으나
옮긴이는 이렇게 썼다. '전쟁과살육,도시 폭격과 대량학살 같은 무거운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다'
소감을 이야기하자면,, 무거웠고. 어려웠고. 유쾌했고. 멍해졌다.
풍자가이자 휴머니스트라는 작가 커트 보네거트는 곧 주인공 로즈워터가 분신인 양 보인다.
선조가 만들고 쌓아둔 금수저를 과감히 뱉어내고 로즈워터군에서 마치 괴짜 성인이 된 미스터 로즈워터.
이야기 전반에 깔려있는 자본주의와 부를 축적한 사람들과 평범하게 살아가는 범인들의 삶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이지만, 미처 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했던 것을 새롭게, 유머있게, 아프게 볼 수 있도록 해 준 흥미로운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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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인간은 무엇 때문에 존재하는 거요?"
보네거트가 항창 소설을 쏟아낼 당시 1965년에 발표한 소설이다. 1960년대 미국. 당시의 미국은 뭐든 되는데로 빨아들이는 리트머스 종이였다. 사회, 경제, 문화, 금융 등 말할 것도 없이 무지막지하게 대대적 개혁을 시작했다. 그야말로 물만 줘도 뻗어나가는 잡식 식물이었던 때다. 지금의 미국을 말하기엔 1960년대는 빼놓을 수 없는 격동의 시기이자 변화의 태풍이었다. 사회 전반적으로 급속도로 발전해 나갈수록 빛과 그림자의 구분도 점점 뚜렸해져만 갔다. 그동안 모아 놓은 종자돈으로 투자만 하면 돈이 생겼고 무언가 개발만 하면 대박을 맛봤던 때였으니까. 그런 시대엔 오로지 따뜻한 '빛'만을 보게 된다. 앞만 보고 밝은 빛만 쫓게 되는 건 어쩌면 당연항 생리일 것이다. 그러나 빈수의 격차는 점점 벌어지고 시대의 급류를 타지 못하는, 이른바 낙오자들에게 기다리는 건 피폐한 현실과 어두운 그림자뿐이다. 나라에서는 이들을 보살펴줄 시간도 없을뿐더러 도무지 관심이 없다. 한 나라를 통치는 대통령이나 각 국회의원들은 자신의 부를 위해 쫓을 뿐이다. 한마디로 눈이 뒤집힐 만큼 설탕을 쫓는 무리들 일뿐이라는 얘기다. 보네거트는 이런 현상을 아주 간결하고 알고 쉽게, 풍자와 유머를 적절히 섞어 독자들에게 던져준다. 보네거트스러운 글과 풍자를 우리는 마음껏 즐기되 결코 웃고 넘어갈 일은 아니라는 얘기다.
이 소설의 이야기는 남북전쟁을 거친 미국 사회에 뿌리내린 계급제도가 어떻게 고착화되었고 부를 어떻게 쌓았는지 낫낫이 까벌려 보여준다.로즈워터 가문의 시초는 물려받은 토지로부터 시작됐다. 그 보잘것 없는 토지는 돼지농장으로 시작, 톱공장에서 남북전쟁 특수를 맞아 하루 아침에 무기제조소로 전환해 큰돈을 만지기 시작한다. 이것을 필두로 무지막지하게 돈을 축척하게 되고 미국에서 손꼽히는 자산가가 된다. 전쟁 특수로 하루 아침에 때부자가 된 것이다. 돈을 벌어 최상위층으로 상승하는 방법, 참 쉽죠잉?^^
주인공 엘리엇은 이런 가문의 영광을 박차고 나가 하고싶은데로 행동하며 흡사 망나니가 되고만다. 하루는 소방관으로, 하루는 SF소설가로, 하루는 자선가로, 하루는 상담원으로. 그런 그를 세상이 가만히 내버려둘리가 없지 않겠나? 역시 돈이 미친 망할놈의 변호가가 등장해 그의 자산을 송두리째 빼앗아가려 모든 방법을 강구한다.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소견을 바탕으로 로즈워터 가문의 재산을 빼앗으려 한다. 도둑놈도 이런 날도둑놈이 있을까? 역시 돈 많으면 똥파리들이 꼬이는 모양이다. 결국 변호사는 그의 가문의 상속 재산을 모두 빼앗으려는 찰나에 엘리엇은 역사에 한 획을 그을만한 발표를 한다. 마지막 이 한 방이 가장 중요하기에 읽어보라고 권해주고 싶다. 차마 내가 글로 쓸 수가 없다.(이 글을 읽고 분명 읽어보고 싶은 사람이 있을 수 있기에.)
보네거트와의 첫 만남은 올해가 처음이다.보기만 해도 웃음꽃이 피어나는 외모에 통통 튀는 유머 감각이 단숨에 사로잡기 충분했다. 하루키의 롱 인터뷰집에서 커트보네거트가 언급된 부분이 있어 잠시 옮겨본다.
좋아하는 작가가 있다는 것, 낯선 작가를 만난다는 것, 다양한 작품을 읽는다는 것은 인생을 살아가는 데 모험의 기회를 준다고 생각한다.적어도 나에겐 그렇다. 어떤 작가의 작품을 하나 읽었는데 그 작품이 너무 좋아서 그 작가의 작품을 모조리 읽는다고 생각해보자. 그럼 그 작가가 칭찬하는 작가, 언급하는 작품이 분명 몇 작품씩은 나오게 마련이다. 그러면 언급된 작가나, 작품을 읽고 또 다시 파고든다. 그리고 또 반복, 반복. 이렇게 다양한 분야와 관심이 쭉쭉 뻗어나가게 되면 어느 순간 한 곳에서 만나게 되는데 요즘들어 그런 느낌을 많이 받고 있다. 아직도 만나야 할 작가와 작품이 많이 있다. 아이러니 한 게 시간이 갈수록 읽는 책은 많은 데 읽을 책은 더 많아진다는 것이다. 좀처럼 따라 잡을 수 없는 구조에 우리는 서 있다. 그렇다고 한 번 달리기 시작한 트랙을 벗어나 쉴 수도 포기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어쩌면 평생 골인 할 수 없는 트랙 위를 달리는 것이 아닐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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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축복이 있기를, 로즈워터 씨 | 커트 보니것 엄청난 돈을 상속받아 대대로 부자인 남자가 벌이는 사해동포주의적인 돈지랄(?) 이야기. 부자의 돈으로 세상을 정의롭고 아름답게 만들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을 하게 만든 책. 주인공 엘리엇 로즈워터의 아버지는 대대로 굴러온 재산에 별로 관심이 없어 사업에 손을 대지 않고 인디애나 주 상원의원으로 일하며 미국 의회에서 주로 ‘도덕’을 가르치는 그는 재단을 설립해 물려받은 부를 모두 운용하도록 한다. 그리고 자신의 가장 가까운 후손이 대대로 이사장을 맡도록 강령을 정한다. 이에 따라 그의 아들 엘리엇 로즈워터가 재단의 초대 이사장이 된다. 처음에 엘리엇은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에 사무실을 내고, 그곳을 그가 소망하는 ‘아름답고, 자비롭고, 과학적인 모든 일을 하기 위한 본부로 선언’한다. 그러나 한편 술고래였던 로즈워터는 늘 술에 취해 공상과학 소설가들의 회의에 난입하거나 소방관들과 어울리며 이상한 소리나 해대는 등 기행을 일삼더니 어느 날 가출을 감행해 미국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더니, 쇠락한 고향 마을 로즈워터 군에 정착하기로 결심하고, 로즈워터 재단 사무실을 이곳으로 옮겨 ‘버림받고 쓸모없고 볼품없는 사람들’을 도우며 지내기에 이른다. “로즈워터 재단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라는 간판을 내걸고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자선을 베풀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문제를 해결해주면서 소수가 독점한 부를 그 나름의 방식으로 ‘재분배’하는 엘리엇의 이러한 행보는 그의 주변 사람들에겐 전혀 정상으로 보일 수 없었다. 아버지 리스터 상원의원은 아들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아내 실비아는 끝내 사마리안 실조증, 즉 정신과 의사가 정의하기를 ‘자신보다 불행한 사람의 고통에 대한 히스테리성 무관심’이라는 병을 얻어 이혼 소송을 하기에 이른다. 한편, 로즈워터 재단 기금 운용의 법률 자문을 담당하는 법률회사의 젊고 교활한 변호사 노먼 무샤리는 어마어마한 재단 기금에 눈독을 들이고, 엘리엇의 이러한 행동을 핑계로 엘리엇을 정신이상으로 몰아 상속권을 박탈한 뒤 엘리엇의 먼 친척인 프레드 로즈워터에게 재단을 넘기고 그 과정에서 자신도 목돈을 챙길 계략을 꾸민다. 책 속에서 커트 보니것은 돈많은 사람들이 얼마나 무식하고 가식적인지를 까발리고 그 사회의 일원이 되기위해 황새 쫒아가는 뱁새같은 행태를 벌이는 사람들도 풍자적으로 묘사한다. ‘돈이란 건조시킨 유토피아’라면서 돈이 많은 부자로 태어난 것이 죄가 아니라는 말로 부자들의 손을 들어주는 세상. 다른 한편으로는 술주정뱅이 백만장자라는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세상을 진실되고 행복한 곳으로 만들려는 허름한 사무소를 차린다는 전개는 다소 황당하고 괴상하게 들린다.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차고 넘치는 내 돈으로 싹 해결해서 온 세상을 행복하게 만들겠다‘는 오만으로 비치기도 하고. 하긴, 평생을 그렇게 살아온 사람이라면 그렇게 생각하기 쉽겠다 싶기도 하고. 그러나 주인공 엘리엇이 밉지 않은 이유는, 고민이 있어 도움의 전화를 거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언제든지 받아주고, 이야기를 들어주고, 긍정적으로 말하면서 어느 순간 그들의 구원자로 거듭났다는 사실에 있다. 돈으로 처바른 오만이 아니라 정말로 사람을 사랑하고 구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우러난 행동을 보여주었다는 것. 아마도 커트 보니것 자신도 앨리엇 같은 사람이었으리라. 삶이 작품으로 그대로 녹여진 작가 중에 한 명이라 생각한다. 책 중간에 얼마전에 읽은 짧은 소설 [2BRO2B]가 언급되고, 작가 자신의 캐릭터도 책 속에 등장하여 이야기에 참여하는데, 너무 기발하고 재미났다. 보니것 작품 다른 것들도 몇 개 연속해서 읽어 볼 예정이다. #신의축복이있기를로즈워터씨 #커트보니것 #문학동네 #독서 #책읽기 #북스타그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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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구매하려던 그의 마지막 작품은 품절이라서 어떤 작품을 구매할까 고민했어요 유명한 작품들이 많았지만 제목에서 확 끌림이 느껴지는 <신의 축복이 있기를, 로즈워터 씨> 출판사도 문학동네로 번역에 대한 믿음도 있기에 구매 결정 택배기사가 집앞에 뒀다고 문자 한통 띡 던져서 기분이 상했지만 책을 받는 순간 그런 불쾌함은 사라지고 책장을 펼치게 되네요 아직 마지막 페이지로 가는 과정이지만 너무 좋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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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트 보네거트 연보를 쭉 살펴보았다. 그도 우리와 다를것 없이 평탄하면서도 굴곡진 인생을 살았다. 어머니가 자살을 하고, 독일군 포로로 잡혀가기도 하고, 살기 위해 일하고, 글을 쓰기도하고……. 놀라운건 '신의 축복이 있기를, 로즈워터 씨'가 1965년도에 쓰여졌다는 사실이다. 내 할아버지가 살아계셨다면 이런 얘기를 해주셨을까? 같은 시대를 살았기에 거스보네거트를 통해 어쩌면 할아버지께서 하셨던 생각들을 들을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83세까지 작품활동을 계속하시다 85세에 돌아가신걸 보면 대단하시단 생각이든다. 이 소설은 쓰여진 연대가 오래된 것이라 해도 절대 구시대적 시대관이 담긴 책이 아니고, 아직도 일어나고 있는 현재 진행 중인 소설이라 말하고 싶다. 아니, 돈에 관해서는 시대를 막론하고 어느 때 나 읽어도 좋다고 할 수 있으려나...
우리에게 돈이란? 돈이 많은 사람들에게는 아파트 한채에 몇 십 억이란 말이 대수롭지 않고, 아닌 사람들에게는 몇 천 만원짜리 전세를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른다. 아니 몇 십만원짜리 월세도 내지못하는 사람도 많다. 그렇다면 돈이 많은 사람은 도대체 무슨 수로 그렇게나 많은 돈을 벌었을까? 단순히 열심히 노력해서? 요즘 같은 시대에 단순 노력이 통할까? 소설 속에서 처럼 마구마구 퍼서 쓸 수 있는 강이 존재하진 않을까? 그래서 그들만 독식하고 있지는 않을까? 그러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렇게 빈부격차가 많이나는 걸까? 왜 돈이 순환되지 않고 한곳에만 정체해 있는 것일까?
우리시대에 과연 로즈워터씨 같은 사람이 나타날까? 그래서 우리들에게 '제기랄 착하게 살아야 한다'고 말해 줄 수 있을까? 점점 자본주의 사회로 변해가면서 사람들은 돈에 따라서만 움직인다. 로즈워터씨의 가문도 물론 그래왔을 것이다. 그러나 앨리엇씨는 다르다. 사람들은 그에게 미쳤다고 한다. 많은 돈을 두고도, 돈을 위한 일이 아닌 일에 투자를 한다. 바로 의용소방대 일이다.
p284 "앨리엇, 당신이 의용소방대 일에 헌신한 것도 지극히 정상이었소. 이 나라에서 의용소방대는 화재경보가 울리기만하면 열정적으로 남을 돕는 거의 유일한 예이기 때문이오 .그들은 위기에 처한 사람이라면 누구든 구조하러 달려가고, 비용을 따지지도 않소, 마을에서 가장 비열한 사람이라도 그의 비열한 집에 불이 나면, 그의 적까지도 달려가 불을 끄기 마련이오. 그리고 그가 잿더미 속에서 그의 비열한 소유물을 건지기 위해 잔해를 뒤적일 때, 그를 위로하고 동정하는 사람은 다름 아닌 소방서장이오."
돈이 되지 않아도 달려가는 일… 그래서 그는 미친 사람 취급을 받는다. 그리고 그의 돈을 가로 채기 위해 하이애나 같은 변호사가 어떻게 해서든지 그를 정신병원에 처 넣고 자신에게 돈이 떨어지길 기다린다. 그런데 과연 그 돈이 변호사에게 돌아갈 수 있을까? 정말 깜짝 놀랄 만한 반전의 결말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이 세상의 모든 로즈워터씨에께 신의 축복이 있기를….
그리고 돈이란 놈이 제발 잘 쓸 수 있는 사람의 손에 들어가 제대로 쓰여지길… 신의 축복이 있기를... 돈에 대해 억울한 사람들이 마음껏 비웃고 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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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당신의 재떨이에 오줌을 싸지 않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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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지구에서 백 년 정도를 살아간다는 것은 대단히 힘든 일이다. 살아남는다는 표현이 적절할 정도로 이곳에서는 착하게, 아주 착하게 살아야 그나마 삶을 편안하게 영위할 수 있다. 이에 커트 보네거트는 '신의 축복이 있기를, 로즈워터 씨'의 엘리엇을 통해 이 지구에서 제대로 살아가는 법을 가르쳐준다.
'제 5도살장'을 통해 작가의 이름은 익히 들었으나 '신의 축복이 있기를, 로즈워터 씨'를 통해 그의 작품 세계를 처음 들여다 보았다. 블랙유머를 담고 있다 하여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궁금했는데, 살아가는 것이 힘겨운 우리들의 삶이 바닥까지 떨어졌을 때 울음보다는 오히려 웃음이 터져나오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작가는 잘 표현해 놓고 있다.
로즈워터 재단 이사장인 엘리엇이 고향 마을 로즈워터 군에 내려와 가난한 사람들에게 희망을 전해주는 것을 보면서 그에게 '돈'이란, 이정도의 여유를 누릴 수 있을 만큼만 있어도 되지 않을까, 란 터무니 없는 생각을 했다. 아주 먼, 조금은 피가 섞인 프레드에게 엘리엇이 소유한 엄청난 '부'를 주어도 되지 않을까, 란 아주 간사한 생각도 들었다. 내 것이 아니어서 쉽게 말한다고? 맞다, 화려한 삶을 벗어던지고 로즈워터 군에 내려온 엘리엇을 보면서 그의 삶에 박수를 보내기 보다는 노먼 무샤리의 돈을 노린 간악한 계획에 더 눈길이 머문다. 로즈워터 재단의 돈은 모두 누구에게로 갈 것인가. 프레드가 받게 될 것인가. 정말 결말이 궁금해지지 않는가.
엘리엇이 정신이상자로 밝혀진다고 해서 로즈워터 재단의 돈이 모두 노먼 무샤리에게 가는 것도 아니건만 왜 노먼 무샤리는 프레드에게 엄청난 '부'를 주려고 하는 것일까. 늘 자살을 생각하는 프레드에게 그만한 '부'를 거머쥘 자격이 있다는 것을 안다. 로즈워터 가문이 어떻게 재산을 모았는지 그 처음으로 거슬러 올라가게 되면 프레드에게도 충분한 권한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의 프레드의 상황은 노먼 무샤리의 계략으로 희망마저 잃어 살아가는 것마저 힘겹게 되었으니 이 일을 어찌 하나.
로즈워터 군을 떠나며 금세 이곳을 잊고 그리워하지 않는 엘리엇에게 고향 마을 로즈워터 군은 어떤 의미로 다가왔을까. 자신의 상처를 잊기 위해 몰입할 곳이 필요했을까. 어떤 이유이건 엘리엇처럼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부'를 가진자의 여유라고 해도 말이다. 악착같이 살아도 고작 백 년을 살기 힘든 우리들이고 보니 목숨 걸고 죽을 듯이 타인과 경쟁하며 사는 것은, 생각만해도 벌써 힘이 빠진다. 하지만 말이다. 가까운 미래인 '내일'을 모르기 때문에 희망을 가지고 살아지는 것이 삶이니, 착하게 살면 뭔가 좋은 일이 생기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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