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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경성의 화가들을 따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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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촌이란... 경복궁을 중심으로가 아니라 청계천과 종각의 북쪽에 있는 동네인 데서 마을 이름이 유래되었다. 예로부터 조선시대 왕족이나 고위관직에 있던 사람들이 많이 거주하였다. ≪매천야록≫권1 상에 의하면 “서울의 대로인 종각 이북을 북촌이라 부르며 노론이 살고 있고, 종각 남쪽을 남촌이라 하는데 소론 이하 삼색(三色)이 섞여서 살았다.”고 기술하고 있다.   저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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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촌이란...

경복궁을 중심으로가 아니라 청계천과 종각의 북쪽에 있는 동네인 데서 마을 이름이 유래되었다. 예로부터 조선시대 왕족이나 고위관직에 있던 사람들이 많이 거주하였다. ≪매천야록≫권1 상에 의하면 “서울의 대로인 종각 이북을 북촌이라 부르며 노론이 살고 있고, 종각 남쪽을 남촌이라 하는데 소론 이하 삼색(三色)이 섞여서 살았다.”고 기술하고 있다.

 

저자가 한국 근대미술사의 인물들을 논하며 펴 낸 두 권을 굳이 북촌과 서촌이라 구분을 한 사유는 1922년 조선총독부에 의해 조선미술전람회가 창설되자 미술인들의 경성 집중이 더욱 심화되며 조선총독부가 경복궁 안에 있었고 전람회를 주로 열었던 덕수궁이 지척에 있어 미술가들이 서촌과 북촌에 거주하는 것이 유리했다고 보고 있다. 또한 서,북촌 주위에 공,사립 중등학교가 많아 교사로 일하기 쉬웠으며 화랑으로 사용되었던 백화점이나 신문사가 대부분 종로나 명동에 있어 지리적인 접근이 쉬운 것도 이곳의 거주이유중 하나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 책을 들어가면 먼저 북촌에선,북촌 근대 서화골동 매매 거리의 원조 인사동근대 동양화단의 좌장 안중식다재다능하고 신비로운 서화가 지운영근대 전각의 길을 개척한 전각 명인 오세창근대 난초 그림을 정립한 서화가 김응원근대 서화계의 어른으로 불린 김용진서양화의 시작을 알린 고희동조선조 마지막 내시 출신 서화가 이병직독립운동에 앞장선 서화가 김진우임금의 초상을 그린 인물화의 귀재 김은호금강산을 잘 그린 산수화의 거장 배렴기억상실증으로 불행했던 비운의 화가 백윤문남과 북에서 공명을 누린 서화가 이석호장애를 극복한 의지의 화가 김기창한국 문인화의 정형을 정립한 장우성한국적 인상파 화법을 완성한 화가 오지호해방 후 좌익 미술계를 이끌었던 길진섭월북한 감성적 모더니스트 최재덕근대 나전칠기를 개척한 공예가 전성규현대 건축의 산실 공간 사옥과 김수근근대 미술의 요람 중앙고보와 휘문고보에 대해 서술하고 있고이 이후 북촌 주변으로 들어가면 사진관, 화랑까지 경영한 서화가 김규진근대 서예의 체계를 정립한 김돈희한국 최초로 시사만평을 그린 이도영조선미술전람회 입선한 명월관 주인 안순환금강산 그림 전통을 이은 산수화의 명인 변관식늘 경계인이었던 월북 서양화가 임군홍유럽에 이름 떨친 첫 한국화가 배운성좌수서의 신경지를 개척한 서예가 유희강한글 서예를 개척한 김충현과 김씨 4형제죽음으로 예술을 완성한 비운의 조각가 권진규국립중앙박물관 최초의 유물사진가 이건중화가들도 흠모했던 슈퍼스타 최승희와 매란방천도교 중앙대교당을 설계한 나카무라 요시헤이 등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m******1 2022.03.04.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