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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탄생>은 사실 '남성성의 탄생'이다.
가수 전인권과 동명이인인 전인권 작가가 유년기를 돌아보며 자신의 경험을 통해 한국 남자의 정체성이 형성 되는 과정을 탐구한다.
한 개인의 내밀한 고백을 바탕으로 씌어졌기 때문에 구체적이고 재밌다.
재밌다, 라고 쓰고난 후 생각해 보니, 과연 남자의 탄생을 재밌게만 볼 수 있을까 싶다.
남자의 탄생은 곧 국가권력의 탄생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 책을 통해 비로소 어떻게 국가가 국민을 지배하고 규제하고 학습하려 하는지 알 수 있게 됐다.

이책의 저자도 그렇지만, 현재 한국에 사는 대부분의 남자들은 자신의 남성성에 대하여 이중적인 생각을 갖고 있을 것이다. 몸과 마음이 따로 논다는 느낌. 자기는 어떤 부분에서 굉장히 민주적인 사람이라고 느끼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권위적인 면이 분명히 있음을 느낄 때가 있다.
어려서부터 아빠라는 사람이 갖고 있는 가부장적 권위를 보면서 컸기 때문에 나는 그런 사람이 되지 말아야지 생각하면서도, 엄마에 의해 '동굴속 황제'로 자라왔기 때문에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아버지와 똑같은 형태의 권위적인 행동을 하는 것이다.
유아가 엄마의 젖을 떼게되는 이유(離乳) 사건은 아마 한국 남자들이 겪게 되는 최초의 권위주의와의 조우일 것이다.
'앞으로는 젖을 못 먹을 거야' 라는 어른들의 으름장은, 나의 행동이 사회의 규제를 받기 시작했다는 걸 알리는 첫 사건이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분명 '젖을 먹어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있는데, 어쩐지 '너는 가끔 젖을 먹어도 돼!'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것은 어른이 '젖을 금지할 수도, 허용할 수도 있는 중요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이다.
"즉, 아버지는 이유 문제에 대해 정책 지향적(policy-oriented)으로 임했던 것이 아니라, 신분 지향적(status-oriented) 태도를 보였다. 아이가 젖을 떼느냐 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젖을 떼든 계속 먹든 모든 것이 아버지의 통제 아래 이루어지는 것이 중요했다."
재밌는 것은 저자마저도 4~5살 무렵부터 동생이 젖을 물고 있는 걸 보며 '아기가 젖을 물고 있네! 아이고! 예뻐라! 젖 많이 먹어!'라 말한다는 것. 그것은 정말 아이가 예쁘다는 것보다 내가 자애로운 선배라는 것을 확인하는 것이기도 했다.
'선배-후배' 관계는 우리 사회를 운영하는 중요한 방식이다.
생각해보라. 어딜가든 나이 먼저 물어보고, 학번을 따지는 우리들의 모습을. '선배-후배' 관계가 왜 중요하냐 하면, 이 관계에서는 신분과 권위가 커뮤니케이션을 대체하는 현상이 벌어진다. '너는 젖을 먹어서는 안 된다'는 말의 실제적 의미는 '나는 너보다 어른이다'라고 말을 하는 것이 된다. 한국에 더 이상 양반, 상놈을 나누는 신분은 없어졌지만, 행동차원에서는 신분적 태도가 많이 남아 있다.
"아버지야말로 대표적인 '신분적 인간'이었다. 아버지는 당신과 나, 사람과 사람이 모두 같은 인간이라고 생각하는, 유식한 말로 유적존재(類的存在)란 관념이 없었다. 오직 나를 자식이라는 관점으로만 대했다. 내가 어렸을 때는 나를 아직 인간이 덜 된, 미숙한 아이로 보았으며, 자신은 그 미숙한 아이를 성숙한 인간으로 키우는 막중한 임무를 떠맡았다는 것으로만 생각했다."
그 의무감이 아버지들의 어깨를 짓눌렀을 것이다. 바로 그 의무감이 아버지들을 더욱 신분의 감옥에 머물게 했을 것이다.
이것의 결과는?
그렇다. 집안에서 아버지들은 절대적 권력을 누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허수아비일 때가 많다. 아버지는 돈을 벌어다주는 기계였을 뿐, 구체적인 상황에 이르면 빈 껍데기나 다름 없다. '현대의 권력은 형식적인 지위나 신분이 아니라, 인간관계와 정보에 기반을 두고 있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남자들이라면 신분의 감옥에서 벗어나 가족과의 커뮤니케이션에 뛰어드는게 1000백 낫다.
그 다음으로 중요한 건, '동굴속 황제'라는 개념이다. 프란시스 베이컨이 설파한 '동굴의 우상'은 '모성의 공간' 같은 격리된 공간에서 생기는 편견과 가치관을 일컫는 말인데, 우상을 뛰어넘어 황제처럼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저자는 '동굴 속 황제'라는 표현을 쓴다.
아들의 존재를 통해 시월드에서 비로서 인간 대접을 받을 수 있었던 엄마들은 아들을 황제처럼 대우했다. 황제 대우를 받으며 자라니 당연히 황제의 성격이 남자들에게 생긴다. 여러 가지 특징 중에서 대표적인 것이 '빨리빨리' 병과 '허영심'이다. 허영심은 더 나아가 스스로를 '진선미의 화신'으로 생각하는 단계까지 이른다.
물론 아무 때나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진선미의 소유자'임을 내세우진 않는다. 학교나 직장처럼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끼리 모여 있을 때 '동굴 속 황제'의 본색을 드러낸다. 자기가 타인 보다 더 올바른 생각을 하며, 더 선한 마음을 가졌으며, 더 아름다운 존재라고 주장한다. 절대 자기보다 신분이 높은 사람에 대해서는 '진선미의 화신'임을 주장하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동굴 속 황제는 인간 대 인간의 관계를 신분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신분적 인간이라고 할 수 있다.
'동굴 속 황제', '진선미의 화신'은 시간이 흐르며 '타집단에 대한 적대감'으로 자라난다. 그래, 비로소 우리사회가 갖고 있는 타집단에 대한 적대감의 실체가 드러난다. 나만 옳은 것이고 나와 다른 녀석들은 배척해야만 하는 쌍것들이다. 이런 모든 것들이 가족과 학교, 군대 그리고 회사에서 반복적으로 교육되고 있다.
자, 그럼, 이제 누군가의 아버지가 된 나는 어떤 행동을 해야할까?
이젠 남자니까 어떠해야 한다는 관념에서 벗어나는게 맞는 것 같다. 남자와 여자는 결코 종속 관계가 아니다. 권위주의를 쓰레기통에 버리고 커뮤니케이션을 시작하자. 저자의 말처럼 '자신의 마음에 형성되어 있는 어린 시절의 우상, 아버지를 발견하고 그 아버지를 살해해야 한다'. 그게 진정한 변화의 시작이다.
이 책 <남자의 탄생>은 대한민국 모든 남자들이 꼭 봐야할 필독서가 아닐까 싶다. 이 책 읽고나면 여성혐오 따위는 생각할 수도 없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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